2016. 7. 28. 09:36ㆍ★ 기맥,지맥/영춘영월지맥[완료]
영월지맥 5구간 배재에서 못재(오미재)까지
◈ 산 행 지 : 충청북도 제천시 고암동, 송학면, 도화동, 모산동 용두산(해발871m) 영월지맥5구간
◈ 산행일시 : 2016년 8월20일(토요일, 당일산행)
◈ 산행코스 : 배재(뱃재, 38번 국도)-고암농공단지 철조망- 제천시 쓰레기 매립장-금강레미콘-다량고개
(82번 지방도로)-제천변전소-인바이오믹스(주)-도화동 표지석-개나리공원묘지-386봉-송전
철탑(4번)-송전철탑(7번)-모산재-과수원-동막고개-주택단지-송전철탑(11번)-특용작물 재배
지-송전철탑(7번)-송전철탑(8번)-690봉-청송심씨 묘지-용두산(871봉)-송한재-5대조 영월신
씨 묘지-867봉-전망쉼터-오미재(못재)-용두산자연휴양림
◈ 산행시간 : 9시55분~15시40분(5시간45분, 식사 및 휴식시간 포함)
◈ 산행거리 : 약12.8km(지맥11.3km, 접속구간1.5km), GPS거리(13.05km)
◈ 산행인원 : 40명
◈ 산행날씨 : 폭우주의보가 내린 무더운 여름날씨(29~34)
◈ 산행코스 및 소요시간 : 도상거리(10.5km),실제거리(12.8km),소요시간(4시간25분), GPS 거리(13.05km)
배재-4.5/5.0km(1시간40분)-동막고개-2.6/3.2km(1시간20분)-용두산-2.6/3.1km(1시간)-못재(오미재)-
1.3/1.5km(25분)
* 배재(2.4K)-개나리공원묘지(2.8K)-도화리군도 (2.6K)-용두산(2.2K)-오미재(1.0K)-피재점(1.1K)-피재』
도상거리 : 마루금(약10.0Km) + 접속거리(1.1Km), 총거리(11.1Km), 산행시간(5시간)
◈ 교통 : 경진관광
◈ 산행 상세안내
지명 | 거리 (km) | 출발시간 | 소요시간 | 비 고(GPS거리) |
배재 | - | 09:55 | - | 해발280m, 제천시 고암동 고척마을에서 송학면 무도리로 넘어가는 고개, 38번 국도 4차선 도로 |
동막고개 | 5.0 | 12:15 | 2시간20분 | 해발m, 제천시 고암동에서 송학면 도화리 넘어가는 고개로 2차선, 좌측편 대각선방향 록수가든방면으로 진행 |
용두산 | 3.2 | 14:12 | 1시간57분 | 해발873m, 충북 제천시 모산동과 송학면 포전리,도화리, 오미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용두산이라는 명칭은 산 모양이 용의 머리 형국을 띠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용 신앙과 관련이 있다 |
못재(오미재) | 3.1 | 15:12 | 1시간 | 해발696m, 제천시 송학면 오미리에서 모산동 용두산 산림욕장으로 내려서는 고개로 오미리의 지명을 따서 오미재라 부르며 의림지 윗쪽의 고개라 하여 못제라고도 불린다 |
용두산 자연휴양림 | 1.5 | 15:40 | 28분 | 해발m, 제천시 송학면의 용두산에 조성된 산림욕장, MTB산악자전거 오토 캠핑장, 계곡 |
| ||||
마루금거리 | 11.3 | 5시간17분 | ||
접속거리 | 1.5 | 28분 | ||
총거리 | 12.8 | 5시간45분 | ||
GPS거리 | 13.05 |
배재(해발280 m), 38번국도(4차선도로), 배재 주유소 전 토교산업 입간판 앞에서 우측편 포장도로로 진행(원 영월지맥 마루금은 배재 표지석 뒤편 현대오일뱅크 주유소 입간판 뒤편능선으로 진행)
포장도로 진행후 갈림길에서 좌측방향 진행후 철조망과 마루금 합류(원 영월지맥 마루금은 능선에서 진행하면 밭, 잡목, 조경수 재배지 차례로 통과)
좌측편에 과수원과 철조망을 두고 우측방향으로 우회하여 진행(원 영월지맥 마루금은 희미한 갈림길 좌측방향 과수원으로 진행후 고암동 테크노 공단 철조망 옆으로 진행)
능선에서 내려서면 넓은 밭이 나오고 농작물이 없다면 직진으로 반대편으로 진행할건데 좌측편으로 우회하여 능선으로 진행
능선 상부 절개지에서 좌측방향 또는 우측방향으로 내려 전원주택지 통과
전원주택지에서 좌측편 철조망이 있는 방향으로 진행
콘테이너가 설치되어 있는 공터와 마루금 합류하여 우측편으로 진행
대진환경산업 갈림길 우측으로 대진환경산업(주) 입간판과 금강 레미콘 공장
대진환경산업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좌측으로 제천시 쓰레기매립장 정문 통과
다량고개(해발313 m), 82번 지방도(2차선 도로), 변전소, 횡단보도 건너 버스 정류장과 인바이오믹스(주) 옆 도로 따라 진행(원 지맥길은 변전소가 자리하여 우회하여 진행)
도화동 표지석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
도로 우측편으로 버스정류장과 도화동 슈퍼가 있고 직진으로 진행
한계영당(韓溪影堂) 이정표 좌측편에 두고 도로 따라 직진으로 진행
개나리공원묘원 입구 표지석(289 m) 삼거리에서 좌측방향 공원묘지로 진행
개나리공원묘지 진입후 첫번째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후 송전철탑이 보이는곳 능선으로 진행
386봉, 군부대 참호 통과
송전철탑 4번 통과
무명묘지를 지나면 T자형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
송전철탑 7번 통과
송전철탑 7번에서 지나 능선에 올라 좌측방향으로 진행후 내려섰다 다시 오르면 T자형 갈림길이 나오고 지맥길은 좌측방향으로 진행(팁: 직진 등로길이 뚜럿하고 산악회 리본도 있어 알바하기 쉬운 지점)
425봉, 영월지맥 마루금은 우측방향으로 진행(팁: 좌측방향은 제천시 고암동으로 가는길)
모산재(茅山峙),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에서 고암동으로 통하는 조그만 고개, 직진으로 진행
안부 철조망 통과
慶州李公 묘지 가운데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과수원 건물이 나오고 과수원 건물 갈림길에서 좌측방향 진행
좌측으로 폐업한 '복사골' 식당 입간판, 우측의 효자마을 '동막' 도화2리 표지석 통과
동막고개(359 m), 제천시 고암동에서 송학면 도화리 넘어가는 고개,38번 지방도(2차선포장도로), 용두산권역 종합개발안내판, 좌측에는 세명대학교와 솔밭공원, 의림지가 있는 곳, 마루금 우측방향으로 진행
동막고개 2차선 도로 좌측편 대각선으로 록수가든으로 진입하여 좌측편 능선을 올라 전원주택지를 관통하는 루트로 진행(원 영월지맥 마루금은 도로 건너 능선을 올라서 주택단지 입구 삼거리에서 음식점 입간판이 설치되어 있는 방향으로 진행-장어나라 식당건물을 좌측편에 두고 직진으로 진행-식당을 지나면 소나무 군락지를 이룬곳 통과 )
전원주택 통과 마루금 합류
송전철탑 12번 통과
송전철탑 11번 통과후 조금 진행후 좌측방향으로 진행
原州李公과 부인 江陵柳氏 합장묘 통과
합장묘지에서 조금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으로 밭과 호화묘지가보이고 영월지맥길은 우측 진행
특용작물 재배지역, 철조망이 설치되어 잇는곳 진행
청송심씨 묘지 돌아 왼쪽으로 내려서 우틀하여ㅏ 갈림길 우틀해 용두산 초입이후 등산로, 이정표 양호한 용두산 일반 등산로로 진행
이정표(용두산 1.5 km) 통과
송전철탑 7번 통과
송전철탑 8번 통과 , 벤치
8번 송전철탑 지나 오른후 우측방향으로 진행
690봉, 좌측방향으로 진행
돌탑이 있는곳 통과
쉼터, 벤취 통과
나무계단 통과
용두산(龍頭山, 해발871m), 제천의 진산, 충북 제천시 모산동과 송학면 포전리,도화리, 오미리에 걸쳐있는 산헬기장, 넓은 공터, 벤치, 정상석, 삼각점(△307 / 건설부) , 이정표(송한재 2.4 km), 마루금 송한재방향 진행
내림길 나무계단 통과
송한재((松寒峙:725m), 제천시 송학면 송한리와 모산동 물한이 마을로 잇는고개, 용두산 숲안내도, 넓은 공터, 사거리 안부, 벤치 3개, 이정표(피재점 3.2 km) 피재점 방면으로 진행
영월신씨 5대조 묘지 통과
쉼터,국가지점번호‘라사 6208 1217’ 구조 표지판, 벤치 3개, 공터, 의림지 조망 양호
867봉/이정표(석기암 3.8 km. 오미재 1.2 km, 용두산 1.7 km) 오미재 방면 좌측방향으로 진행
전망쉼터, 모산동과 의림지, 제2의림지와 세명대학교 캠퍼스 조망지
모노레일 설치지점 지나 무명봉에서 우측방향 내림길 통과
능선분기점 오미재방향 우측으로 진행
S라인 소나무 통과
오미재(五味峴, 해발684 m), 제천시 송학면 오미리에서 모산동 용두산 산림욕장으로 내려서는 고개, 사거리 안부, 벤치 2개, 이정표(피재점 1.1 km. 용두산 2.9 km) 피재점 방면으로 진행
피재(529 m), 제천시 모산동에서 봉양읍으로 넘어가는 9번 지방도 2차선 도로, 좌틀 골이천 방면으로
용두산자연송림
산행종료
□ 영춘지맥[寧春枝脈]
영춘지맥이란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던 백두대간이 오대산의 두로봉에서 서쪽으로 가지를 쳐 한강기맥을 일구고, 한강기맥을 일군 산줄기는 불발현과 구목령 부근에서 또 다른 산줄기를 만들어 북한강과 남한강으로 이어진다.
영춘지맥은 영월에서 춘천을 이어주는 산줄기라 하여 이렇게 명명하였으며 도중에 한강기맥과 그 맥을 함께 한다. 아울러 영춘지맥은 남한강과 북한강 및 남한강과 북한강의 지류인 평창강, 섬강, 소양강, 홍천강 등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그 품안에 용암천, 유동천, 흥정천, 내촌천, 장남천 등이 흐르고 있다.
박성태님이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을 종주한 후 지맥이 갈리는 한강기맥의청량봉~장곡현~구목령~삼계봉 구간 11km를 합하여 약 272여km를 "영춘지맥"이라고 불렀다는데 한강기맥을 걸으면서 느낀 것은 엄연히
춘천지맥과 영월지맥이 확연히 구분이 되어 있는데 영춘지맥으로 부르는 것에 대하여 난 그 부분에 조금은 동의하기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영월지맥으로 부르기로 한다
영월지맥이란 한강기맥 상에 있는 삼계봉(1,065m)에서 남동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태기산(1,261m), 덕고산(705m), 봉화산(670 m), 풍취산(699m), 매화산(1,085m), 치악산 비로봉(1,288m), 향로봉(1,043m), 남대봉(1,182m), 감악산(954m), 감악봉(886m), 석기암(906m), 용두산(871m), 왕박산(598m), 가창산(820m), 삼태산(876m), 국지산(626m), 영월의 태화산(1,027m)을 거쳐 남한강에서 가라 앉는 약 136km의 산줄기를 말한다.(삼계봉(1,065m)은 홍천군, 평창군, 횡성군 등 3개 군이 만나고 홍천강, 평창강, 섬강 등 세 강이 갈리는 곳이나 이름이 없어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님이 종주한 후 셋의 경계가 되는 봉우리란 뜻으로 "삼계봉"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영월지맥 도상거리(134.5km)
삼계봉분기점~5.1~태기산(1258.8)~8.5~깎은재~6.1~검두재~9.0~고들고개~1.4~덕고산(702.8)~4.7~봉화산(667.8)~7.4~풍취산(697.2)~4.7~매화산(1084.1)~8.1~치악산비로봉(1282)~5.6~향로봉(1041.4)~3.2~남대봉(1180)~3.1~대치~9.1~싸리치~4.4~감악봉(885.9)~2.5~석기암(905.7)~5.5~용두산(871)~7.4~배재~2.4~왕박산(597.5/-0.6)~4.6~가창산(819.5)~11.1~삼태산(875.8)~2.7~해고개~7.3~국지산(625.6)~7.0~태화산(1027)~3.6~샘골
◈ 주요지명 안내
■ 뱃재(敗峴)
제천시 고암동 고척마을에서 송학면 무도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38번 국도의 4차선 도로가 지나가고 있으며 고개 정상에는 오일뱅크 주유소가 자라잡고 있다. 지명 유래는 여러가지 설로 전해내려 오는데 고개 형상이 배(船)와 같이 생겼다고 뱃재(船峴), 배를 많이 팔았다고 배고개(梨峴), 임진왜란 때 왜적에 패했다고 팻재(敗峴)라 불려졌다
[임진왜란에 관한 설]
제천 지역의 신혼부부는 예전부터 신행길로 제천시 고암동에서 송학면 무도리로 가는 고개를 피하였다고 한다. 왜냐하면 임진왜란때 우리 관군과 의병이 이곳까지 쳐들어 온 왜군을 고개에서 맞아 일전을 벌려서나 중과 부적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그래서 이 고개를 ‘팻재’ 또는 ‘패현’이라 하였고, 신혼부부는 불길한 장소라 생각하고 이 길을 피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신혼부부는 인생의 새로운 출발이기에 ‘실패’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팻재를 금기로 하여 이 고개를 지나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 다랑고개
제천시 고암동에서 송학면 도화리를 넘어가는 고개로 82번 지방도가 지나며 고개 정상부에는 제천변전소 버스 정류장과 우측편으로 농약 제조공장인 인바이오믹스(주)가 있다. 원 영월지맥 마루금은 변전소 정류장 뒤로 올라서야 하나 변전소가 자리잡고 있어 변전소를 우회하여 진행한다.
■ 한계영당(韓溪影堂)
조선시대 선조임금의 어의(御醫)를 지낸 한계군 이공기(李公沂) 선생의 옥축(玉軸)과 영정이 모셔진 사당이리고 한다
목은 이색 선생의 6대손인 이공기 선생은 조선 선조 때(1567~1608)의 인물로 침술에 능하였으며 왕비의 인후증을 치료한 공을 인증받아 동반(東班)의 직을 받으면서 허준과 함께 선조의 내의(內醫)가 되어 1593년(선조26년)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에서 우리나라에 원병으로 온 명나라 군사들을 치료한 공으로 1595년 가선대부(嘉
■ 모산재(茅山峙)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에서 고암동으로 통하는 조그만 고개로 이곳은 예전에 모산동(茅山洞)이었는데 행정개편으로 인해 고암동에 편입된 곳으로 모산재의 지명 유래는 의림지의 안쪽이라는 뜻에서 못안이라고 불리다가 발음하기 쉬운 모산으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즉 모산(茅山)은 못 안의 이두식 지명이다.
마을로 이어지는 포장된 조그만 小路로 우측으로는 의림지로 통하는 마을 도로처럼 보이는 고개가 나오는데 이곳이 모산재란다. 고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선다
■ 동막고개(東幕峙)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에 있는 고개로 동쪽에 막을 친 것처럼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동막'은 다른 지역에도 흔히 보이는 지명이므로 한자 지명에 맞춘 인위적 설명에 불과하다. 동막마을에「효자 박전(朴瀍)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마을이다
효자 박전 이야기의 전반부는 효박전(朴澱)이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병환이 든 아버지를 살리고, 후반부는 아버지가 음력 6월에 배를 드시고 싶다 하자 죽음을 무릅쓴 지극 정성으로 배가 든 작은 상자 궤짝을 구하여 드렸다는 효행담이다. 세명대학교에서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로 넘어가는 길을 따라 고개를 넘으면
동막마을이 있고, 이 마을을 지나는 길옆에 박전효자문이 위치하고 있다
제천시 고암동에서 송학면 도화리 넘어가는 고개로 2차선의 도로로 고개 좌측에는 세명대학교와 솔밭공원, 의림지가 있는 곳이다
■ 제천시
조선조 영조 때 택리지(擇里志)를 저술한 이 종환은 제천땅에 대한 기록을 저술하기를 “만첩 산중에 있는 깊은 산골이므로 참으로 난리를 피하고 속세를 피할 만하다”라고 하였는데, 『동사강목』을 지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안정복이 제천에서 태어났고, 생육신의 한 사람인 원호가 기거했던 곳이기도 한 곳이며 직제학을 지냈던 원호는 단종이 강원도 영월에서 연금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서 벼슬을 내놓고 제천시 송학면 장곡리 번자리에 살면서 관란정(觀瀾亭)이라는 정자를 지었다.
원호는 날마다 이 정자에 올라 단종이 있는 곳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짓고 탄식하다가 날이 저물면 비로소 돌아가고는 하였으며, 철 따라 나는 과물(果物)을 나무 상자에 넣어 정자 밑을 흐르는 시냇물에 띄워서 단종에게 보냈다고 한다
제천시 지도
제천시는 본래 고구려사열이현(沙熱伊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청풍으로 고쳐 내제군(奈提郡)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현종 9)충주에 속하였다가 뒤에 감무를 두었고 1317년(충숙왕 4) 이 고을의 중 청공(淸恭)이
왕사(王師)가 되었으므로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였다.1660년(현종 1) 부(府)로 승격되었으며, 1895년(고종 32)에 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제천군에 병합시켜 읍내면(邑內面)이라 하였다가 1917년에 청풍면으로 고쳤다.지명의 유래는 이곳의 산천경개가 빼어나 남도의 으뜸으로 쳐, 이에 따라 청풍명월(淸風明月)이라 한 데에서 따온 것이며 조선시대에는 진산(鎭山)인 인지산(因地山) 부근의 남한강유역에 한벽루(寒碧樓)가 있어 많은 시인 묵객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군사적으로는 오현봉수(吾峴烽燧)가 있어 동쪽으로 단양군 소이산봉수(所伊山烽燧)와 서쪽의 충주 심항산봉수(心項山烽燧)에 연결되었다.
■ 용두산(龍頭山, 해발873m)
충북 제천시 모산동과 송학면 포전리,도화리, 오미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용두산이라는 명칭은 산 모양이 용의 머리 형국을 띠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용 신앙과 관련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용두산이 현의 북쪽 20리에 있으며 진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용두산은 감악산의 줄기이다. 현의 북쪽 12리에 있다. 산 정상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동쪽으로 가라곡현(加羅谷峴)·이치(梨峙)·삽현(揷峴)·조흘치(助屹峙)가 되며 동남쪽으로 솟아나 오작산(烏鵲山)이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북서쪽으로 석기암, 감악산과 이어지고 용두산에서 발원한 물이 용두천을 이룬 뒤 의림지로 흘러든다. 용두산 서쪽 862m 봉우리는 황소가 드러누운 형상을 하고 있으며, 그 너머로 석기암과 감악산, 멀리 치악산 남대봉 줄기가 보인다
용두산은 의림지로 흘러드는 수원의 발원지로 제천시의 상징적 진산으로 따라서 시민들이 즐겨 찾고 있다.
의림지를 지나 제2의림지 오른쪽 길을 따라 약 20분 정도 오르면 용담사 대웅전 앞에 이르고, 용담사에서 약 100m 올라가면 동릉과 서릉으로 갈리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서릉 코스는 경사가 완만하고, 동릉 코스는 경사가 가파라서 용두산 깔딱고개로 불린다. 정상에는 330.58㎡ 남짓한 공터 북쪽 끝머리에 삼각점(△307 / 건설부) 이 박혀 있다.
■ 송한재(松寒峙, 해발725m)
제천시 송학면 송한리와 모산동 물한이 마을 갈림길로 지명은 송한리에서 따온듯 하다. 정상에는 이정표(←물한이 1.9km ↑송한리 4km ↓용두산 0.8km →피재점 3.2km)와 휴게용 벤취가 있으며 지맥길은 피재점 방향으로 이어진다
■ 송한리의 지명유래
송학면에서 가장 넓은 지역인 송한리(松寒里)의 송학산(松鶴山)의 명칭을 따서 지었다. 송한리에는 절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고려 고종 때 몽고군이 우리나라에 대거 침입하여 조정에서 강화도로 천도할 무렵, 서울에서 난을 피하여 이곳에 온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다. 부인은 낮이고 밤이고 부처님 앞에 나가 불공을 드렸다. 그러던 중 절 근처에 살던 젊은 머슴이 이 아름다운 부인을 사모하게 되었다. 날마다 불공드리는 부인을 멀리서 엿보며 가슴의 연정을 달래었다.
그러던 어느 달 밝은 밤, 부인이 불공을 마치고 절 뒤편으로 잠시 나온 것을 보고 뒤를 따라가 부인에게 달려들어 부인을 숲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얼마 후 절로 돌아온 부인은 자기가 기거하는 방에 들어가 조용히 자진(自盡)을 하였다. 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절은 갑자기 온데간데없이 사람의 눈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부인이 기거하는 방이 있던 자리에서 바위가 하나 솟아 나왔다. 사람들은 부인의 한이 사무쳐 바위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 바위를 ‘설통바위’라고 불렀는데, 부인의 화신(化身)이라고 믿었다.
■ 의림지(義林池)
의림지는 김제 벽골제와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로서, 우리나라 수리 역사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농경 관련 유적이다. 충청도를 호수의 서쪽이라 하여 호서 지방(湖西地方)이라고도 불렀는데, 바로 이 의림지가 기준이 되었다. 의림지가 언제 축조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며 삼한 시대에 축조되었다는 설도 있고, 신라 진흥왕 때 악성 우륵이 개울물을 막아 둑을 쌓았다고도 전하며 그로부터 700년 뒤 이곳에 온 현감 박의림(朴義林)이 쌓았다는 설도 있으나, 제천이 고구려 때 이름이 ‘내토군(奈吐郡)’인 것으로 보아 삼국 시대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저수는 2곳에 있으며 주민들은 큰 의림지와 작은 의림지 혹은 제1 의림지와 제2 의림지로 구분해서 부르기도 한다. 세종실록지리지(제천)에 "큰방죽(大堤)이 한곳 있으니, 현의 북쪽 6리에 있다. 의림제(義林堤)라 한다.
길이가 5백 30척이며, 논 4백 결에 물을 댄다."고 수록되어 있다. 이곳에 '의림제'라는 지명이 처음 나타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제천)에 "의림지가 현의 북쪽 10리에 있다. 그 깊이가 헤아릴 수 없고, 관개하는 것이 대단히 넓다." 그리고 "순채(蓴)가 의림지에서 난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의 옛 지도에 용두산 남쪽에 의림지가 그 형세와 함께 크고 뚜렷하게 표기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의림지를 중심으로 연자암 · 폭포 · 영조정 · 우륵대가 그 형세와 함께 표기되어 있다. 대부분의 지도에는 하나의 의림지만 표기되어 있지만, 특히 『조선지도』에는 의림지 남쪽에 제2 의림지가 함께 표기되어 있다. 『여지도서』(제천)에는 현좌면과 현우면 · 남면에 9개의 제언이 뚜렷하게 표기되어 있는데 의림지만 그 지명이 표기되어 있다. 이 문헌에서는 "의림지 제언의 둘레는 5천8백 5척이고, 깊이는 헤아릴 수 없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지명 유래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의림지가 생기기 전에 부잣집이 있었는데, 어느 날 찾아온 스님에게 탐욕스럽고 심술 사나운 집주인이 거름 한 삽을 스님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것을 본 며느리가 쌀을 한 바가지 퍼서 스님에게 주며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었다고 한다. 그러자 스님은 조금 있으면 천둥과 비바람이 칠 터이니 빨리 산속으로 피하고 뒤돌아보지 말라고 했다. 집에 있는 아이들 생각에 뒤를 돌아본 며느리의 몸은 돌로 변했다. 집이 있던 자리는 땅속으로 꺼져 버렸는데 그곳에 물이 고여 의림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며느리가 돌이 된 바위는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제비바위(연자암)라고 한다. 의림지를 중심으로 경호루 · 와소정 · 의림정 · 영호정 · 용폭포 · 임폭정 · 홍류정 · 청폭정 · 후선정터 등이 있다
■ 오미재(五味峴)
제천시 송학면 오미리에서 모산동 용두산 산림욕장으로 내려서는 고개로 오미리의 지명을 따서 오미재라 부르며 의림지 윗쪽의 고개라 하여 못제라고도 불린다. 오미리의 지명유래는 야생 오미자가 많이 자생해서 오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고 또 다섯 골의 물맛이 골마다 달라 다섯 가지 맛이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자연마을로 나랭이, 나막신골, 선바우, 소바우, 우암, 일오곡 등이 있다. 특산물로는 고추, 담배가 있다.
■ 피재점(784m)
피재 갈림길에 피지점이란 이정표가 서있고 이곳에서 피재까지는 1.3km의 거리란다. 정상에는 멋진 금강송 3그루가 도도한 자태를 뽐내고 있고 지맥길은 우측으로 이어진다. 피재는 “직티”라는 지명으로 불리며 제천시 모산동에서 봉양읍으로 넘어가는 9번 도로상에 있다.
◈ 에필로그
영월지맥 4구간을 진행후 한달여만에 재천소재 영월지맥 마루금을 다시 찾는다.
여름휴가철과 무더운 날씨가 겹쳐 산악회에서 산우들의 건강을 위해 여름휴가 기간에는 산방휴식이라 하여 가족과 함께 남도여행을 떠나본다(남해, 여수, 순천, 담양, 안면도) 휴가를 떠나보지만 무더운 날씨 때문에 여행의 목적은 뒤로하고 시원한 에어컨이 나오는 펜션에서 에어컨 바람에 의지하면 해가 저물기만 기다린다.
여행을 했는지 에어컨 바람을 맞으려 갔는지 분간하기 어려울 정도로 휴가를 무사히 마치고 회사로 출근하니 사무실이 천국이다. 예전에는 이렇게 까지 날씨가 무덥지 않았는데 기온이 상승하여 우리나라도 아열대기온으로 변하고 있는 기후가 여기 저기에서 보이고 있는 상태다. 시원한 빗줄기가 하늘에서 내려주면 좋을것 같은데 햇살이 뜨겁고 도로에 내 뿜는 차량의 열기와 함께 도심의 기온이 상승하는 상태다.
주말을 이용하여 모처럼 친구들과 함께 도심에 있는 삼성산 산행을 계획한다. 삼성산에 올라 계곡에서 삼겹살을 꾸어 먹기로 하고는 석수역에서 친구들을 만나 삼성산을 올라 경인교대방면 계곡으로 내려갔지만 계곡에는 물이 말라 없는 상태다. 한참을 계곡따라 내려오니 물놀이 하기 좋은곳에 두분의 여인이 점령하고 있어 양해를 구하고는 함께 그곳에서 흘린땀을 계곡물에 담구고는 산사에서 친구들과 삼겹살 파티를 한다.
한달이 눈깜빡할 사이에 금방 지나가고 내일이면 영월지맥 5구간 산행이 있는 날이다. 그런데 몇일전부터 발목에 이상정세가 발생하여 한의원에서 침과 뜸으로 진료를 보지만 차도가 없어 걱정이다. 아마도도 통풍인것 같은데 통풍약을 먹어도 차도가 없는 상태다. 아침에 기상하여 발목에다 파스를 붙이고는 상일동 육교 집결지로 나간다.
상일동 집결지로 가는 길목에 마트에 들려 삼각김밥으로 간단하게 요기를 하고는 이온음료와 김밥을 준비하고는 상일도 육교에 도착한다. 먼저 오신 회장님과 대원들이 반갑게 맞아주시고 버스는 조금 늦게 도착한다. 잠시후 버스가 도착하고 버스에 올라 대원들과 인사를 나누고는 영월지맥 5구간 날머리 지점인 배재로 출발한다.
상일IC에서 고속도로에 올라 중부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를 거쳐 중앙고속도로상 치악휴게소에서 간단하게 휴식를 취하고는 제천 IC를 빠져나와 38번 4차선 국도 배재에 도착한다. 베낭을 챙겨 내려서니 저 멀리 배재주유소가 보이고 바로 앞에는 토교산업 입간판이 보인다. 마루금은 배재주유소 뒤편 능선으로 이어 고암농공단지 철조망 따라 이어가야 하지만 등로길이 희미하고 잡풀이 무성하여 배재주유소 전 토교산업 입간판을 끼고 우측방향 임도길로 진행한다.
가을이 다가온 영월지맥 마루금이지만 날씨가 무덥고 바람한점 없는 재천의 진산 용두산을 탐방하며...
[배재~다랑고개]
38번 국도편에 있는 배재 주유소 뒤편으로 올라 좌측으로 있는 공장뒤 철망을 따라 돌아야 하지만 사람들의 통행이 없어 마루금이 보이지 않고 잡풀만이 무성하여 배재주유소 전 토교산업 입간판 앞에서 우측편 임도길로 진행하여 고암농공단지 철조망에 합류한다.
고암농공단지 철조망을 따라 진행후 좌측편 절개지 배과수원으로 내려 좌측편으로 보이는 철탑방향으로 이어가야 하지만 장애물들이 많아 이곳에서도 우측편으로 우회하여 폐기물 업체인 대진환경산업(주) 입간판이 있는 포장도로 삼거리에 도착한다.
대진환경산업(주) 우측편에 위치하고 있고 마루금은 삼거리에서 좌측방향 도로로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금강 레미콘 공장이 보이고 좌측편으로 제천시 쓰레기 매립장이 나온다. 도로를 따라 내려서면 다랑고개인 82번 지방도로가 나오고 우측편 대각선으로 4찬선 도로를 무단회단하여 제천변전소 버스 정류장앞에 도착한다.
[다랑고개~용두산]
다랑고개는 82번 지방도로에 위치하고 있고 제천변전소 버스 정류장과 우측으로 농약 제조공장인 인바이오믹스(주)가 있다. 원 영월지맥 마루금은 제천변전소 정류장 뒤편 능선으로 올라서야 하나 제천변전소가 자리잡고 있어 우회를 해야한다. 제천변전소 정류장과 농약 제조공장인 인바이오믹스(주) 사이 포장도로로 우회하며 동화동 마을 표지석을 지나 개나리 공원묘지앞까지 우회하여 이어간다.
개나리 공원묘지 영내를 진입하면 첫번째 삼거리가 나오고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후 능선으로 붙으면 제천변전소에서 이어지는 마루금과 합류한다. 잡풀이 무성한 마루금을 이어가면 386봉 봉우리에 군부대 벙크가 나오고 연달아 송전철탑이 두개가 나온다. 428봉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방향 전환후 바로 우측편으로 내려서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편 직진으로 진행하면 알바하기 쉬운 갈림길에 도착한다. 직진 등로길이 선명하여 자세히 지형을 살피지 못하면 알바하기 쉬운지점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모산재에 도착한다.
모산재에서 직진으로 오르면 다시 이름모를 안부가 나오고 안부을 올라 진행하면 경주최씨묘지에 도착한다. 선두그룹은 이곳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있어 후미그룹은 그냥 지나친다. 경주최씨묘지를 지나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사과 과수원이 나오고 과수원에서 좌측방향 농장건물과 집사이로 들어가서 농장길따라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동막고개에 도착한다. 농장건물 앞에 식수가 있어 이곳에서 식수공급이 가능한곳이다.
동막고개는 제천시 고암동에서 송학면 도화리 넘어가는 2차선 고개에 위치하고 있고, 고개 좌측에는 세명대학교와 솔밭공원, 의림지가 있다. 2차선 도로를 건너 절개지를 올라야 하지만 이번에도 우측편에 있는 록산가든으로 우회하여 진행한다. 선답자의 후기글을 보면은 직등으로 올라 루드베키아 입간판앞 도로를 따라 진행 에스골농원 ,루드베키아를 지나 숲속으로 진행하였지만 우리 일행들은 2차선 도로 좌측편 대각선으로 록수가든으로 진입하여 좌측편 능선을 올라 전원주택지를 관통하는 루트로 진행한다.
전원마을 통과후 능선으로 진행하면 발아래로 철조망이 가로막고 철조망을 조심해서 통과하니 바로앞에 송전철탑 12번이 나온다. 송전철탑 12번을 지나면 다시 송전철탑 11번이 나오고 조금 진행후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잘정돈된 밀양박씨 묘지앞에 도착하는데 묘지비석에 로타리클럽 4대회장 밀양박씨 묘지라고 적혀 있었다.
밀양박씨 묘지앞 임도길을 지나면 편안한 등로길이 나오고 잠시후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오르면 나무계단이 나오고 한차례 밀어올리면 안부 쉼터에 도착한다. 안부 쉼터에는 이정표가 있는데 용두산1.5km라고 적혀있고 옆으로 휴식을 취할수 있는 의자가 설치되어 있었다. 의자에서 잠시 물한모금 마시고는 소나무 군락지를 지나 계속하여 용두산정상으로 고도를 높혀간다.
송전철탑 2개를 지나고 오르면 바로앞에 용두산정상부가 보이고 나무계단이 앞을 막고 있다. 나무계단을 올라서니 넓은 헬기장이 나오고 좌측편으로 제천시내와 의림지 그리고 세명대학교가 조망되는 전망대가 있으며 우측편으로 용두산정상석과 삼각점 그리고 나무테크가 설치되어 있었다.
[용두산~오미재]
용두산는 충북 제천시 모산동과 송학면 포전리,도화리, 오미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용두산이라는 명칭은 산 모양이 용의 머리 형국을 띠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용 신앙과 관련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용두산이 현의 북쪽 20리에 있으며 진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용두산은 감악산의 줄기이다. 현의 북쪽 12리에 있다. 산 정상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동쪽으로 가라곡현(加羅谷峴)·이치(梨峙)·삽현(揷峴)·조흘치(助屹峙)가 되며 동남쪽으로 솟아나 오작산(烏鵲山)이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용두산정상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연달아 나무계단이 나오고 완만하게 진행하면 송학재에 도착한다. 송학재는 제천시 송학면 송한리와 모산동 물한이 마을로 이어지는 고개이며, 이곳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용두산 산림욕장 오토캠핑장으로 내려설수 있다. 영월지맥 마루금은 직진으로 진행하면 영월신씨 5대조 묘지를 지나고 국가지점번호‘라사 6208 1217’ 구조 표지판 쉼터를 지나게 되고 잠시후 867봉에 도착한다.
867봉에서 직진으로 완만하게 내려서면 조망이 좋은 전망대가 나오고 주변에 소나무와 의자가 있어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우측편 내림길로 내려서니 산에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다. 알아보니 MTB자전거를 싣고 이곳까지 운반하는거라고 한다. 용두산 MTB출발점 봉우리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S라인 소나무가 등로길 중앙자리에서 멋진 연출을 하고 있어 사진에 담고는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오미재에 도착한다.
원래 예정했던 산행은 피재점까지지만 피재점에서 하산하면 계곡에 물이 없어 피재점은 다음구간에서 진행하고 오늘은 날씨도 무더운 관계로 오미재에서 용두산산림욕장으로 하산한다. 오미재에서 영월지맥 마루금은 직진이지만 용두산산림욕장은 좌측방향으로 하산한다.
뱃재(敗峴, 09:55)
제천시 고암동 고척마을에서 송학면 무도리로 넘어가는 고개로 38번 4차선 국도가 지나가고 있으며 고개 정상에는 오일뱅크 주유소가 자라잡고 있다. 지명 유래는 여러가지 설로 전해내려 오는데 고개 형상이 배(船)와 같이 생겼다고 뱃재(船峴), 배를 많이 팔았다고 배고개(梨峴), 임진왜란 때 왜적에 패했다고 팻재(敗峴)...등등
그 중에서도 임진왜란에 관한 설이 가장 많다
제천 지역의 신혼부부는 예전부터 신행길로제천시 고암동에서 송학면 무도리로 가는 고개를 피했다. 임진왜란 중에 우리 관군과 의병이 이곳까지 쳐들어 온 왜군을 고개에서 맞아 일전을 벌였다. 그러나 관군과 의병은 중과부적으로 패하고 말았다. 그래서 이 고개를 ‘팻재’ 또는 ‘패현’이라 하였고, 신혼부부는 불길한 장소라고 여겨서 이 길을 피하게 되었는데 그 이유는 신혼부부는 인생의 새로운 출발이기에 ‘실패’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는 팻재를 금기로 하여 이 고개를 지나다니지 않았다고 한다.
제천시 송학면 무도리방면의 모습
제천시 고암동 고척마을방면의 모습
바로 몇미터 앞에 배재주유소가 있다. 영월지맥 마루금은 배재 주유소 뒤편 능선으로 올라 좌측편에 있는 공장 철망을 따라 돌아야 하지만 사람들의 통행이 없어 마루금이 보이지 않고 잡풀만이 무성하여 배재주유소 전 토교산업 입간판 앞에서 우측편 포장도로로 진행한다.
토교산업 입간판앞 들머리(09:56)
배재 주유소 뒤편능선으로 올라야 하지만 등로길이 없어 배재주유소 전 토교산업 입간판앞에서 진행하여 마루금과 접속한다.
임도길 통과(09:58)
임도 갈림길 통과(09:59)
토교산업 입간판앞에서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후 마루금과 접속하여 진행한다.
마루금 접속(10:02)
우측편으로 진행후 철조망을 만나고 철조망 따라 진행후 좌측편 과수원방향으로 내려서야 하지만 괏원 주인의 불허로 인하여 우회하여 마루금 접속한다
철조망 따라 진행(10:06)
과수원 농장 통과(10:13)
선답자의 후기글을 보면은 좌측편에 있는 과수원을 통과하여 철탑이 있는 방향으로 진행하였다고 하는데 과수원 주인이 농장 일을 하면서 이곳으로 통과하기는 어렵다고 하신다. 명절 과실 수확이 얼마남지 않아 우리 일행들이 지나가면 민망할 일이 발생할수 있어 선두대장님이 우회하여 진행한다.
마루금 우회하는 모습(10:19)
잡풀이 앞을 가로막고 그 사이로 모기가 공격하니 사면초가인 상태다. 선두에서는 없는길을 만들며 진행하는 관계로 녹초가 되고 뒤에서 따라가는 대원들은 그냥 대로길로 가자며 아우성이다. 그래도 이대장님은 조금이라도 마루금을 잡아 대원들을 인솔하신다. 얼마나 고마운 마음인가 박수를 보내며 험난한 등로길을 빠져나와 밭을 우회하여 좌측편 능선으로 오른다.
밭 통과 루트(10:24)
마루금 겨울철에 배재구간을 통과시에는 과수원을 지나면 되지만 가을추수 시절에는 이곳으로 통과해야 할것 같다.
밭을 우회하는 모습
밭 탈출(10:25)
밭을 우측편에 두고 좌측편 능선으로 올라서면 절개지가 나오고 선두는 절개지에서 좌측방향으로 능선으로 진행하고 후미그룹은 우측편 공터로 내려 좌측방향으로 진행하여 선두조와 합류한다.
넓은 공터 통과(10:28)
절개지에서 내려서면 넓은 공터가 나오고 좌측편으로 진행한다.
갈림길 통과(10:30)
우회하여 진행하면 공장부지앞에 도착하고 선두조도 이곳으로 하산한다.
선두조 하산하는 모습
공장 폐 자제가 무성한 곳으로 하산한다. 후미조 방향으로 진행하는것이 수월하다.
전원주택마을 진입
갈림길 통과(10:32)
좌측편 송전철탑이 있는 방향으로 진행하면 폐기물 업체인 대진환경산업(주) 간판이 설치되어 있는 삼거리에 도착한다.
과수원과 마루금의 모습(10:33)
원마루금은 과수원 뒤편에서 좌측방향이지만 등로길이 없어 선답자들은 과수원을 통과하였고 우리들은 과수원 주인의 통과 불허로 우회하여 진행 하였다.
과수원의 모습
농장 건물 통과(10:36)
농장건물을 지나 비닐하우스동을 끼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콘테이너가 설치되어 있는 공터 마루금에 합류한다.
마루금 접속(10:39)
대진환경산업(주) 갈림길(10:40)
마루금에 합류하여 약100m 진행하면 삼거리가 나오는데 좌측편으로 폐기물 업체인 대진환경산업(주) 입간판을 보면서 영월지맥 마루금은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다랑고개에 도착한다.
대진환경산업(주) 입간판의 모습
도로 삼거리에서 우측방향 약300m지점에 대진환경산업이 있고 다랑고개 방향으로 금강 레미콘 공장이 자리잡고 있다.
대진환경산업 삼거리 통과
비포장도로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금강레미콘 공장의 모습(10:42)
좌측편으로는 제천시 쓰레기매립장이 있고 비포장도로 우측편으로 레미콘 공장이 자리잡고 있었다. 마루금 직진으로 진행하여 82번 지방도로을 건너 다랑고개까지 진행한다.
제천시 쓰레기매립장 정문 통과
다랑고개(82번 국도, 10:44)
금강레미콘공장과 제천시 쓰레기매립장 지나 도로로 내려서면 4차선도로인 82번 국도를 만나고 좌측방향 대각선으로 무단횡단하여 다량고개로 진행한다.
다랑고개 통과후 뒤돌아본 모습
4차선 도로를 무단횡단시 사방을 주시하며 건너야 할것이다. 교통량이 많아 잘못하면 생명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곳이다.
다랑고개의 모습
다랑고개는 제천시 고암동에서 송학면 도화리를 넘어가는 고개로 고개 정상에는 제천변전소 버스 정류장과 우측으로 농약 제조공장인 인바이오믹스(주)가 있고 원 지맥길은 제천변전소 정류장 뒤편 능선으로로 올라서야 하나 제천변전소가 자리잡고 있어 도화동과 개나리추모공원으로 우회하여 마루금 접속한다.
제천변전소 버스 정류장의 모습
제천변전소 버스 정류장에 있는 관광지도
농약 제조공장인 인바이오믹스(주)의 모습(10:46)
제천변전소 버스 정류장 뒤편능선길이 원래 영월지맥길이나 철조망으로 가로막혀 어쩔수 없이 농약 제조공장인 인바이오믹스 회사옆 도로로 우회하여 진행한다.
마을 통과(10:48)
거화 ENG 통과(10:49)
한국전력공사 제천변전소의 모습(10:50)
저멀리 영월지맥 마루금이 보이고 그앞에 제천변전소가 자리잡고 있다. 도화동마을을 지나 개나리공원으로 진입하여 마루금에 접속할 예정이다.
도화동 표지석 통과(10:53)
도화동 마을 표지석을 지나면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으로 도로를 따라 계속 진행하면 개나리공원묘지앞에 도착한다.
도화동 표지석
도화동 슈퍼 통과(10:54)
영월지맥 마루금 이번구간은 슈퍼도 있고 식당도 있어 베낭을 가볍게하여 진행하여도 무방하리라 생각된다.
도화1리 버스정류장 통과
한계영당(韓溪影堂, 10:56)
도화동 표지서를 지나 도로를 따라 올라가니 좌측편으로 한계영당(韓溪影堂) 이정표가 나온다. 조선시대 선조임금의 어의(御醫)를 지낸 한계군 이공기(李公沂) 선생의 옥축(玉軸)과 영정이 모셔진 사당이리고 한다
목은 이색 선생의 6대손인 이공기 선생은 조선 선조 때(1567~1608)의 인물로 침술에 능하였으며 왕비의 인후증을 치료한 공을 인증받아 동반(東班)의 직을 받으면서 허준과 함께 선조의 내의(內醫)가 되어 1593년(선조26년) 임진왜란 당시 명나라에서 우리나라에 원병으로 온 명나라 군사들을 치료한 공으로1595년 가선대부(嘉
버스정류장 통과(10:59)
개나리추모공원 입구
개나리추모공원 입구에서 도로 좌측으로 개나리 추모공원으로 진행하여 첫번째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개나리공원묘지 표지석(10:59)
개나리공원묘지 진입로 통과(11:00)
개나리공원묘지 첫번째 삼거리 통과(11:03)
개나리공원묘지 진입하면 첫번째 삼거리가 나오고 직진으로 진행하면 관리사무실동이 나온다. 단축로는 관리사무실동에서 직진으로 진행후 좌측편 송정철탑이 있는 능선을 오르면 되지만 조금 이라도 마루금에 근접하여 진행하고픈 대원들의 마음을 헤아려 선두대장님이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개나리공원 묘지 경내의 모습(11:04)
송전철탑이 있는 방향으로 진행한다. 도로로 계속 진행해도 되지만 단축로로 이어간다.
마루금 접속(11:10)
제천변전소에서 이어지는 마루금을 만나고 직진으로 바로앞에 보이는 능선으로 진행한다.
개나리공원 묘지 경내의 모습(11:11)
공원묘지 도로에서 관리사무실동을 바라보면 사진에 담아보고 도로을 버리고 좌측편 능선으로 진행하지만 등로길이 보이지 않고 잡풀로 인하여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일부 대원들은 공원묘지 옆으로 이동하여 능선으로 올라 진행한다.
개나리공원 묘지 경내의 모습(11:13)
잡풀이 무성한 묘지 통과(11:21)
개나리공원 묘지 뒤편능선에 묘지가 있는데 잡풀이 무성하여 묘지인지 분간하기가 어렵다. 추석한가위도 얼마남지 않았는데 후손들이 와서 깔끔하게 벌초를 해야겠다. 등로길을 만들어 올라서면 군부대 진지가 나오고 내려서면 송전철탑 4번을 지나게 된다.
407봉(11:23)
407봉 정상에는 군진지 벙커가 설치되어 있고 마루금은 직진으로 넘어 내려선다.
능선에서 바라본 공원묘지의 모습(11:26)
송전철탑 4번 통과(11:28)
묘지 통과(11:30)
송전철탑 7번 통과(11:31)
428봉(11:48)
428봉에서 좌측방향으로 전환후 다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직진방향이 선명하여 잘못하면 알바하기 쉬운지점이다.
알바하기 쉬운지점
428봉에서 좌측방향으로 약10m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직진길이 선명하다. 무심코 지나가면 대형 알바지점이다, 마루금은 좌측방향으로 내려섰다 오르면 다시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직진방향으로 진행한다.
갈림길 통과(11:55)
이지점에서는 90도 좌측으로 방향전환하여 내려서면 모산재에 도착하고 직등으로 올라서 진행한다.
모산재(茅山峙, 11:57)
모산재는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에서 고암동으로 통하는 조그만 고개로 이곳은 예전에 모산동(茅山洞)이었는데 행정개편으로 인해 고암동에 편입된 곳으로 모산재의 지명 유래는 의림지의 안쪽이라는 뜻에서 못안이라고 불리다가 발음하기 쉬운 모산으로 바뀌었다고 전한다. 즉 모산(茅山)은 못 안의 이두식 지명이다.
마을로 이어지는 포장된 조그만 小路로 우측으로는 의림지로 통하는 마을 도로처럼 보이는 고개가 나오는데 이곳이 모산재란다 고개를 가로질러 능선으로 올라선다
모산제 통과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방면의 모습
제천시 송학면 고암동방면의 모습
안부 통과(12:01)
모산재에서 올라 진행하면 작은 안부가 나오고 내려섰다 오르면 경주최씨묘지앞에 도착한다.
안부통과(12:06)
경주이씨&원주원씨 묘지(12:07)
경주최씨 묘지를 지나 바로앞 또다른 묘지를 보면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과수원이 나오고 좌측편 과수원 건물이 나온다. 과수원 건물을 지나 지나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동막고개에 도착한다.
과수원 통과(12:08)
과수원 사과의 모습
한가위 추석 명절이 얼마남지 않았는데 사과가 아직까지 상품성이 되지 않아 농부의 아픈마음 어찌 하노...
과수원 건물 통과(12:09)
우측편으로 수도물이 있어 물공급 할수 있는곳이다. 마루금은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과수원의 사과의 모습
동막고개(12:15)
동막고개는 제천시 고암동에서 송학면 도화리 넘어가는 고개로 2차선의 도로로 고개 좌측에는 세명대학교와 솔밭공원, 의림지가 있는 곳이다.
동막고개(東幕峙)
충청북도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에 있는 고개로 동쪽에 막을 친 것처럼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곳이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하나 '동막'은 다른 지역에도 흔히 보이는 지명이므로 한자 지명에 맞춘 인위적 설명에 불과하다. 동막마을에「효자 박전(朴瀍)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마을이다
효자 박전 이야기의 전반부는 효박전(朴澱)이 손가락을 잘라 피를 내어 병환이 든 아버지를 살리고, 후반부는 아버지가 음력 6월에 배를 드시고 싶다 하자 죽음을 무릅쓴 지극 정성으로 배가 든 작은 상자 궤짝을 구하여 드렸다는 효행담이다. 세명대학교에서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로 넘어가는 길을 따라 고개를 넘으면
동막마을이 있고, 이 마을을 지나는 길옆에 박전효자문이 위치하고 있다.
동막고개 루트(12:16)
동막고개에서 원 영월지맥 마루금은 도로을 건너 직등으로 올라 진행하여야 하지만 등로길이 희미하고 잡풀이 무성하여 고개 바로 아래에 있는 록수가든으로 우회하여 진행한다.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후 록수가든으로 진입하여 좌측편 임도길로 올라 능선으로 진행한다.
우회하는 마루금의 모습
록수가든 통과(12:19)
음식점으로 진입하여 식수대에서 물을 보충하고는 좌측편 족구장방면 임도길로 올라 직등으로 능선을 진행한다.
록수가든 통과(12:20)
록수가든 건물 좌측편으로 진행하여 송전철탑방면으로 등로길 잡아 진행하면 된다.
전원주택 통과(12:34)
록수가든에서 올라서면 전원주택지가 나오고 송전철탑을 보고 직진으로 진행하면 멋진 전원주택지옆으로 진행한다.
송전철탑 12번 통과(12:40)
갈림길 통과(12:42)
송전철탑 11번 통과(12:43)
갈림길 통과(12:44)
송전철탑 11번을 통과하여 약50m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고 희미한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이지점에서 직진으로 진행해도 무방하지만 등로길이 희미하고 잡풀이 무성하여 우회하여 진행한다.
밀양박씨&안동권씨 합장묘지 통과
임도 갈림길 통과(12:45)
밀양박씨&안동권씨 합장묘지옆 임도길로 완만하게 진행하면 임도 삼거리가 나오고 삼거리에서 우측편 방향으로 진행한다.
나무계단 통과(12:53)
용두산 이정표(13:07) : 용두산정상 1.5km, 제2의림지(비룡담) 1km
송전철탑 8번 통과(13:08)
쉼터 통과(13:10)
송전철탑 7번 통과(13:22)
나무계단 통과(13:26)
쉼터 안부 통과(13:27)
국가지점번호 : 라사 6362 1108(용두산-04)
소나무 군락지 통과(13:28)
쉼터 안부 통과(13:34)
용두산정상 직전 계단 모습(14:10)
용두산 정상(14:12)
무덥고 잡풀로 인하여 등로길이 없어 루트를 새롭게 만들며 드디어 제천의 진산이라는 용두산 정상에 올라선다. 정상에는 넓은 헬기장과 휴식용 벤치, 전망테크과 설치되어 있고 뒤편으로 용두산 정상석과 삼각점이 설치 되어 있다.
용두산(龍頭山, 해발873m,14:12)
충북 제천시 모산동과 송학면 포전리,도화리, 오미리에 걸쳐있는 산으로 용두산이라는 명칭은 산 모양이 용의 머리 형국을 띠고 있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으로, 용 신앙과 관련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용두산이 현의 북쪽 20리에 있으며 진산이다.”라고 기록되어 있고,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용두산은 감악산의 줄기이다. 현의 북쪽 12리에 있다. 산 정상에는 작은 연못이 있다. 동쪽으로 가라곡현(加羅谷峴)·이치(梨峙)·삽현(揷峴)·조흘치(助屹峙)가 되며 동남쪽으로 솟아나 오작산(烏鵲山)이 된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북서쪽으로 석기암, 감악산과 이어지고 용두산에서 발원한 물이 용두천을 이룬 뒤 의림지로 흘러든다.용두산 서쪽 862m 봉우리는 황소가 드러누운 형상을 하고 있으며, 그 너머로 석기암과 감악산, 멀리 치악산 남대봉 줄기가 보인다
용두산은 의림지로 흘러드는 수원의 발원지로 제천시의 상징적 진산으로 따라서 시민들이 즐겨 찾고 있다.의림지를 지나 제2의림지 오른쪽 길을 따라 약 20분 정도 오르면 용담사 대웅전 앞에 이르고, 용담사에서 약 100m 올라가면 동릉과 서릉으로 갈리는 갈림길이 나타난다. 서릉 코스는 경사가 완만하고, 동릉 코스는 경사가 가파라서 용두산 깔딱고개로 불린다. 정상에는 330.58㎡ 남짓한 공터 북쪽 끝머리에 삼각점이 박혀 있다.
용두산 정상 삼각점(△307 / 건설부)
용두산(龍頭山, 해발873m)정상에서 인증샷
용두산 정상에서 바라본 제천시내
조선조 영조 때 택리지(擇里志)를 저술한 이종환은 제천땅에 대한 기록을 저술하기를 “만첩 산중에 있는 깊은 산골이므로 참으로 난리를 피하고 속세를 피할 만하다”라고 하였는데, 『동사강목』을 지은 조선 후기의 실학자 안정복이 제천에서 태어났고, 생육신의 한 사람인 원호가 기거했던 곳이기도 한 곳이며 직제학을 지냈던 원호는 단종이 강원도 영월에서 연금 생활을 하고 있는 것을 알고서 벼슬을 내놓고 제천시 송학면 장곡리 번자리에 살면서 관란정(觀瀾亭)이라는 정자를 지었다.
원호는 날마다 이 정자에 올라 단종이 있는 곳을 바라보면서 한숨을 짓고 탄식하다가 날이 저물면 비로소 돌아가고는 하였으며, 철 따라 나는 과물(果物)을 나무 상자에 넣어 정자 밑을 흐르는 시냇물에 띄워서 단종에게 보냈다고 한다
제천시 지도(위키백과 인용)
제천시는 본래 고구려사열이현(沙熱伊縣)이었는데 757년(경덕왕 16)청풍으로 고쳐 내제군(奈提郡)의 영현이 되었다. 1018년(현종 9)충주에 속하였다가 뒤에 감무를 두었고 1317년(충숙왕 4) 이 고을의 중 청공(淸恭)이
왕사(王師)가 되었으므로 지군사(知郡事)로 승격하였다.1660년(현종 1) 부(府)로 승격되었으며, 1895년(고종 32)에 군이 되었다. 1914년 행정구역개편 때 제천군에 병합시켜 읍내면(邑內面)이라 하였다가 1917년에 청풍면으로 고쳤다.지명의 유래는 이곳의 산천경개가 빼어나 남도의 으뜸으로 쳐, 이에 따라 청풍명월(淸風明月)이라 한 데에서 따온 것이며 조선시대에는 진산(鎭山)인 인지산(因地山) 부근의 남한강유역에 한벽루(寒碧樓)가 있어 많은 시인 묵객이 즐겨 찾았던 곳이다.
군사적으로는 오현봉수(吾峴烽燧)가 있어 동쪽으로 단양군 소이산봉수(所伊山烽燧)와 서쪽의 충주 심항산봉수(心項山烽燧)에 연결되었다.
용두산정상 전망대에서 바라본 지나온 마루금과 앞으로 이어갈 마루금 조망
용두산정상 이정표(14:17) : 용담사 1.96km, 수련원 2.1km,감악산 10km, 송한재 0.8km
나무계단 통과(14:20)
용두산정상에서 좌측 감악산, 송한재방향으로 내려서면 나무계단이 나오고 완만하게 진행하면 다시 나무계단이 나온다.
편안한 등로길의 모습(14:23)
나무계단 통과(14:25)
계단을 내려서면 송한재에 도착한다.
송한재(松寒峙, 해발725m, 14:31)
제천시 송학면 송한리와 모산동 물한이 마을 갈림길로 지명은 송한리에서 따온듯 하다. 정상에는 이정표(←물한이 1.9km ↑송한리 4km ↓용두산 0.8km →피재점 3.2km)와 휴게용 벤취가 있으며 지맥길은 피재점 방향으로 이어진다
송한재에 있는 용두산 등산안내도
송한재 이정표 : 물안이 1.9km, 피재점 3.2km, 송한리 4km
송한리의 지명유래는 송학면에서 가장 넓은 지역인 송한리(松寒里)의 송학산(松鶴山)의 명칭을 따서 지었다
송한리에는 절골과 관련하여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있다.
고려 고종 때 몽고군이 우리나라에 대거 침입하여 조정에서 강화도로 천도할 무렵, 서울에서 난을 피하여 이곳에 온 아름다운 부인이 있었다. 부인은 낮이고 밤이고 부처님 앞에 나가 불공을 드렸다. 그러던 중 절 근처에 살던 젊은 머슴이 이 아름다운 부인을 사모하게 되었다. 날마다 불공드리는 부인을 멀리서 엿보며 가슴의 연정을 달래었다.
그러던 어느 달 밝은 밤, 부인이 불공을 마치고 절 뒤편으로 잠시 나온 것을 보고 뒤를 따라가 부인에게 달려들어 부인을 숲 속으로 끌고 들어갔다. 얼마 후 절로 돌아온 부인은 자기가 기거하는 방에 들어가 조용히 자진(自盡)을 하였다. 부인이 스스로 목숨을 끊자, 절은 갑자기 온데간데없이 사람의 눈에서 사라졌다. 그리고 부인이 기거하는 방이 있던 자리에서 바위가 하나 솟아 나왔다. 사람들은 부인의 한이 사무쳐 바위가 되었다고 하였다. 그 바위를 ‘설통바위’라고 불렀는데, 부인의 화신(化身)이라고 믿었다.
영월신씨 5대조 묘지 통과 (14:38)
송한재에서 직진으로 한차례 밀어 올리면 등로길 우측편으로 묘지가 있는데 비석에는 영월신씨 5대조 묘지라고 적혀 있다. 경사지을 한차례 더 밀어 올리면 867봉에 도착한다.
영월신씨 5대조 비석(14:42)
현위치 : 용두산-02, 쉼터
국가지점번호‘라사 6208 1217’ 구조 표지판
867봉(14:50)
정상석은 없고 이정목에는 누군가 용두산 서봉이라 적어 놓았다.
867봉(용두산 서봉) 이정표 : 석기암 3.8km, 오미재 1.2km, 용두산 1.7km
국가지점번호‘라사 6181 1205’ 구조 표지판 (용두산-01)
전망 쉼터(14:55)
867봉에서 내려서면 조망이 좋은 전망대 쉼터에 도착하고 쉼터에 올라서니 바로 아래로는 모산동과 의림지, 제2의림지와 세명대학교 캠퍼스가 보이고 좌측으로 눈을 돌리니 지난 구간 걸었던 왕박산 시루봉과 그 너머로 삼태산(누에머리봉)이 보인다.
전망 쉼터에서 바라본 의림지(義林池)의 모습
의림지는 김제 벽골제와 밀양 수산제와 함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저수지로서, 우리나라 수리 역사 연구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농경 관련 유적이다. 충청도를 호수의 서쪽이라 하여 호서 지방(湖西地方)이라고도 불렀는데, 바로 이 의림지가 기준이 되었다. 의림지가 언제 축조되었는지는 확실치 않으며 삼한 시대에 축조되었다는 설도 있고, 신라 진흥왕 때 악성 우륵이 개울물을 막아 둑을 쌓았다고도 전하며 그로부터 700년 뒤 이곳에 온 현감 박의림(朴義林)이 쌓았다는 설도 있으나, 제천이 고구려 때 이름이 ‘내토군(奈吐郡)’인 것으로 보아 삼국 시대에 축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저수는 2곳에 있으며 주민들은 큰 의림지와 작은 의림지 혹은 제1 의림지와 제2 의림지로 구분해서 부르기도 한다. 『세종실록지리지』(제천)에 "큰방죽(大堤)이 한곳 있으니, 현의 북쪽 6리에 있다. 의림제(義林堤)라 한다. 길이가 5백 30척이며, 논 4백 결에 물을 댄다."고 수록되어 있다. 이곳에 '의림제'라는 지명이 처음 나타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제천)에 "의림지가 현의 북쪽 10리에 있다. 그 깊이가 헤아릴 수 없고, 관개하는 것이 대단히 넓다." 그리고 "순채(蓴)가 의림지에서 난다."라고 수록되어 있다. 대부분의 옛 지도에 용두산 남쪽에 의림지가 그 형세와 함께 크고 뚜렷하게 표기되어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의림지를 중심으로 연자암 · 폭포 · 영조정 · 우륵대가 그 형세와 함께 표기되어 있다. 대부분의 지도에는 하나의 의림지만 표기되어 있지만, 특히 『조선지도』에는 의림지 남쪽에 제2 의림지가 함께 표기되어 있다. 『여지도서』(제천)에는 현좌면과 현우면 · 남면에 9개의 제언이 뚜렷하게 표기되어 있는데 의림지만 그 지명이 표기되어 있다. 이 문헌에서는 "의림지 제언의 둘레는 5천8백 5척이고, 깊이는 헤아릴 수 없다."는 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지명 유래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의림지가 생기기 전에 부잣집이 있었는데, 어느 날 찾아온 스님에게 탐욕스럽고 심술 사나운 집주인이 거름 한 삽을 스님에게 주었다고 한다. 그것을 본 며느리가 쌀을 한 바가지 퍼서 스님에게 주며 시아버지의 잘못을 빌었다고 한다. 그러자 스님은 조금 있으면 천둥과 비바람이 칠 터이니 빨리 산속으로 피하고 뒤돌아보지 말라고 했다. 집에 있는 아이들 생각에 뒤를 돌아본 며느리의 몸은 돌로 변했다. 집이 있던 자리는 땅속으로 꺼져 버렸는데 그곳에 물이 고여 의림지가 되다."는 것이다. 며느리가 돌이 된 바위는 우륵이 가야금을 타던 제비바위(연자암)라고 한다. 의림지를 중심으로 경호루 · 와소정 · 의림정 · 영호정 · 용폭포 · 임폭정 · 홍류정 · 청폭정 · 후선정터 등이 있다.
MTB모노레일(15:01)
조망이 좋은 전망대에서 휴시글 취하고 우측방향으로 경사지 내려서면 우측편으로 산에 모노레일이 설치되어 있어 무엇에 사용하는것인지 몰랐는데 현수막을 보니까 알수가 있었다. MTB자전거를 정상까지 운반하여
이곳에서 출발하는곳이라 적혀있었다. 등산하는것도 힘들고 위험한데 자전거로 산길을 내려간다니 엄청 위험할것 같은데...
MTB자전거 출발봉
영월지맥 마루봉은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등로길 중앙에 S자로된 멋진 소나무가 나오고 완만하게 내려서면 오늘 산행의 종착지점인 오미재에 도착한다.
S라인 소나무의 모습(15:04)
오미재(五味峴, 해발696m, 15:12)
오미재는 제천시 송학면 오미리에서 모산동 용두산 산림욕장으로 내려서는 고개로 오미리의 지명을 따서 오미재라 부르며 의림지 윗쪽의 고개라 하여 못제라고도 불린다. 오미리의 지명유래는 야생 오미자가 많이 자생해서 오미라는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이 있고 또 다섯 골의 물맛이 골마다 달라 다섯 가지 맛이 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자연마을로 나랭이, 나막신골, 선바우, 소바우, 우암, 일오곡 등이 있다. 특산물로는 고추, 담배가 있다.
오미재의 이정표 : 피재점 1.1km, 용두산 2.9km, 점골(오미) 1.5km, 산림욕장 1.3km
넓은 공터같은 고개 정상에는 이정표와 휴식용 벤치가 있고, 죽은채 누워있는 고목 한그루가 있는데 영월지맥길은 피재점으로 진행한다. 원래 오늘 산행은 피재점에서 마쳐 피재로 하산하는건데 하산지점에 물이 없는 관계로 오미재에서 용두산 산림욕장방향으로 내려선다. 이 고개 북쪽으로 흐르는 물이 오미리(점골)에서 오미천을 만들고 다시 오미저수지를 지나 황둔천이 되고 다시 서만이강이 되고 서만이강은 주천강이 되었다가 다시 평창강이 되고 드디어는 남한강으로 들어가는 水界를 이루고 있다.
용두산 산림욕장(15:40)
위치 : 충북 제천시 송학면 도화리
제천시 송학면의 용두산에 조성된 산림욕장이다. 1998년 부터 2001년까지 4년에 걸쳐 시민들의 휴식공간으로 산림장이 조성되었다. 도시 근교에 자리하고 있으며 바쁜 일상 중에도 자연을 만끽하며 몸과 마음을 치유할 수 있는 곳이다. 용두산 산림욕장은 30~40년생의 소나무 군락지로 조성이 되었으며 충북 최초의 자연환경명소로 지정되기도 했다. 용두산 산림욕장 옆으로는 한방생태숲이 조성되어 있으며, 용두산의 등산로 및 야생화 단지와 농구대와 산책로 등의 시설물들을 갖추고 있다. 가까운 곳에 제천10경의 하나인 의림지가 있으며 오미저수지, 송학역 등 가볼만한 곳이 많이 있다.
오미재에서 좌측방향 용두산산림욕장으로 내려서면 우측편으로 사방댐이 나오고 계곡에는 물이 없었다. 임도길 따라 내려서니 산림욕장앞에 도착하고 산악회에서 준비한 음식과 막걸리 한잔 마시고는 계곡에서 간단하게 씻고는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 영월지맥 5구간 산행을 마무리한다.
무더운 날씨속에서는 아무런 사고없이 무사히 영월지맥 마루금 한구간을 마칠수 있게 도움을 주신 모든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하며 특히 선두에서 등로길 만들며 진행하신 이대장님 감사의 말씀 지면으로 대신한다.
함께하신 대원 여러분!
수고 많았습니다
이젠 무더워던 여름날씨가 어디론가 사라지고 싸늘하게 가을바람이 불어 등산하기 좋은 계절이 왔습니다.
건강관리 잘하시고 영월지맥 6구간에서 반갑게 뵙겠습니다.
감사합니다.
'★ 기맥,지맥 > 영춘영월지맥[완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월지맥 7구간 싸리재에서 치악산 남대봉까지 산행후기 (0) | 2016.10.01 |
---|---|
영월지맥 6구간 싸리재에서 오미재까지 산행 (0) | 2016.09.01 |
영월지맥 4구간 중산재(도득골재)에서 뱃재(구38번국도)까지 산행후기 (0) | 2016.07.11 |
영월지맥 3구간 해고개에서 중산재까지 (0) | 2016.06.28 |
영월지맥 2구간 사지원계곡삼거리에서 해고개까지 산행 (0) | 2016.06.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