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0. 13. 00:37ㆍ★ 9 정맥/- 8. 한남금북[완료]
한남금북정맥 5구간(현암삼거리~분젓치)
산 행 지 : 충북 청원군 남성면, 미원면,내수읍/청주시 상당구/증평군 증평읍 한남금북정맥 5구간
산행일시 : 2013년 11월2 일(토요 당일산행)
산행코스 : 현암삼거리-목련공원-512번국도-것대산-봉수대-상동재-산성고개(출렁다리)-산성남문-서문-
상당산성-상당산-동암문-고목나무(임도)-487봉-이티봉-이티재-구녀성-구녀산-분젓치
산행시간 : 09:33~14:53 (5시간20분, 식사 및 휴식포함)
산행거리 : 약18.5Km(정맥18.5Km, 접속구간0Km), GPS21.5Km
산행날씨 : 흐림(안개가 자욱하며 오후에는 가랑비가 내리는 하루)
산행인원 : 40명
산행코스 및 구간거리 : 현암삼거리-2.65/3km(1시간10분)-것대봉(봉수대)-1.35/1.5km(20분)-산성고개(출
렁다리)-2.45/2.7km(50분)-상당산-4.35/5km(1시간50분)-500봉-2.5/2.9km(1시간)-
이티재(배나무재)-1/1.1km(20분)-구녀산-2/2.3km(40분)==16.3/18.5km(5시간20분)
구간 |
거리 (km) |
출발시간 |
소요시간 |
비고 |
현암 삼거리 |
- |
09:33 |
- |
해발320m, 수레너미재, 512번 국도, 현암묵밥식당 |
것대산 |
3 |
10:28 |
55분 |
해발433m, 봉수대, 이정표, 안내판 |
산성고개 |
1.5 |
10:46 |
18분 |
출렁다리, 512번 2차선 지방도 |
상당산 |
2.7 |
11:28 |
42분 |
해발471m, 정상석, 삼각점 |
500봉 |
5 |
12:25 |
57분 |
안내판, 인경산갈림길 |
이티재 |
2.9 |
14:00 |
1시간35분 |
해발360m, 511번 지방도, 음식점 |
구녀산 |
1.1 |
14:23 |
23분 |
해발484m, 정상석, 돌탑 |
분젓치 |
2.3 |
14:53 |
30분 |
해발m, 좌구정, 쉼터 |
마루금 거리 |
18.5 |
|
5시간20분 |
|
접속 거리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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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 거리 |
18.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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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PS거리 |
21.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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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
속리산의 천황봉(千皇峰)에서 서북으로 뻗어 충북의 북부 내륙을 동서로 가르며 경기 안성군 칠장산(七長山)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종착지의 칠장산에서는 다시 서북쪽으로 김포 문수산(文殊山)까지의 한남정맥(漢南正脈)으로 이어지고, 남서쪽으로는 태안반도(泰安半島)에 있는 안흥(安興)까지의 금북정맥(錦北正脈)으로 이어진다.
이 산줄기의 산들은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천황봉에서 갈라져 말태재 ·구치(九峙) ·시루산 ·구봉산(九峰山) ·국사봉(國師峰) ·선두산(先頭山) ·선도산(先到山) ·상봉재 ·상당산성(上黨山城) ·좌구산(坐龜山) ·칠보산 ·보광산(普光山) ·행태고개 ·보현산(普賢山) ·소속리산 ·마이산 ·차현(車峴) ·황색골산 ·걸미고개 ·칠장산 등으로 이어진다.
한남금북정맥 5구간[상당산-구녀산-분젓치] 산행지도
한남금북정맥 5구간[상당산-구녀산-분젓치] 고도표
한남금북정맥 5구간[현암삼거리-상당산-구녀산-분젓치] 트렉도
2주 연속으로 업무와 과음으로 몸과 마음이 지친 지금 내일이면 한남금북정맥 5구간을 이어가야 하는데 몸이 엉망이라 큰일이다. 기상벨 소리에 아침일찍 일어나 베낭에 아내가 준비해준 음식물을 챙겨 집결지인 상일동 육교로 나간다. 집결지에 도착하여 식당에서 아침식사을 간단하게 하고는 대원들과 인사을 나누고는 도착하는 버스에 올라 다시 대원들과 반갑게 인사을하고는 자리에 착석한다.
버스는 중부고속도로을 달려 음성휴게소에서 아침식사겸 휴식을 취하고 중부고속도로을 달려 청주IC을 빠져나와 512번 지방도로을 이용하여 산성터널을 지나 B코스[상당산성 둘레길코스]산행자가 내리고는 버스는 지난번에 도착한 현암삼거리에 도착한다.
현안삼거리에서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는 현암삼거리을 지나 우측편 능선으로 올라 한남금북정맥 5구간[현암삼거리-상당산성-이티재-구녀산-분젓치]산행이 시작된다.
현암삼거리(해발320m, 수레너미 고개) 이정판의 모습
현암삼거리에서 512번 지방도를 따라 청주방향으로 가는 길이다. 수레너미[원래는 '수루네미'이다. 수루네미는 산 너머가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란 수레가 다니던 마을이라고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현암묵집식당의 모습
위치 : 충북 청원군 남성면 현암리 334
512번 국도 우측편에 있는 현암묵집식당의 모습
현암리 묵밥집
현암리 512번 국도의 모습
현암삼거리 50m 직전 우측편 현암묵집 앞 512번 국도에서 바라본 미원, 보은방향의 모습
현암삼거리 들머리지점의 모습
주변위치 :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산성로 840-1 (현암리 57-4 )
선도산방면 들머리 이정표 : 것대산2.5km, 상당산성4.7km, 선도산,한남금북정맥2.3km
지난구간 현암삼거리 들머리지점을 지날때만 해도 이정표가 세워져 있었는데...
지금은 흉칙한 모습으로 길가 옆에 쓰러져 있었다. 누가 이렇게 만들었단 말인가 오늘 진행하는 마루금은 현암삼거리에서 청주방면[512번도로]으로 현암삼거리[청주<-현암리->낭성] 버스 정거장을 지나 약300m 지점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512번 도로에서 우측편 능선을 올라서면 묘지가 나오고, 묘지을 우측편에 두고 오르면 송전철탑이 나온다. 송전철탑 능선안부에서 우측방향 버리고 좌측방향으로 전환하여 내려서면 다시 512번 도로가 나오고 도로 직전에 급경사지로 이루어져 있어 조심하여 진행해여 내려선다. 내려서면 낙석방지 철조망이 나오고 그 사이로 내려서면 512번 국도에 도착한다. 일부 대원들은 현암삼거리에서 이곳까지 512번 도로 따라 진행하여 어느새 저멀리 도망쳐 버렸다.
512번 도로을 횡단하여 약50m 진행하면 홍고개에 도착하고 좌측편에 한남금북정맥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고 좌측편으로 진행하면 묘지가 잘 정돈된 은행장성주이씨묘지에 도착한다. 묘지비석의 내용을 읽어보고는 마루금 이어간다. 묘지을 통과하면 경사지가 나오고 경사지을 한차례 밀어 올리면 능선 안부에 도착하며 능선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다가 갈림길에서 직진방향 버리고 좌측편 내림길로 내려서면 청주목련공원묘지가 나오고 저멀리 것대산 활공장이 조망되었다.
청주목련공원에서 완만하게 진행하면 무명묘지가 나오고 내려서면 1차선도로가 나온다. 도로에서 직진으로 나무계단을 오르면 송신중계기가 나오고 고도를 높여 진행하니 활공장이 있는 것대봉에 도착한다.
활공장 주변에는 정자와 이정표 그리고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고 안개로 인하여 희미하지만 청주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였다. 우측편 임도을 내려서면 주차장이 나오고 직진으로 진행하니 봉수대에 도착한다.
봉수대를 좌측편에 두고 완만하게 진행하면 상봉재를 직진으로 지나고 공원에서 우측편으로 방향전환하여 산성고개 이정표를 따라 진행하니 출렁다리가 있는 산성고개에 도착한다.
512번 국도 좌측편에 설치되어 있는 한남금북정맥 안내도의 모습
이정표 : 것대산 2.5km, 상당산성 4.7km, 선도산 2.3km
현암삼거리(해발320m) 들머리지점
위치 : 충북 청원군 남성면 현암리 55-4
한남금북정맥 마루금은 현암삼거리에서 512번 국도 청주방면으로 조금 진행하여 현안삼거리을 직진으로 통과하여 우측편 능선으로 진행한다.
현안삼거리 정류장의 모습
현암삼거리 횡단보도 통과
현암삼거리방향의 모습
버스에서 하차하여 현암삼거리 통과 후 뒤돌아본 모습 저멀리 산악회 버스가 보인다.
들머리지점
현암삼거리를 통과 후 약50m지점에서 우측편 능선으로 올라서면 묘지가 나오고, 송전철탑 지나 능선안부에서 좌측방향으로 방향전환하여 내려서면 급경사지 나온다. 일부 대원들은 우측능선을 오르지 않고 도로 따라 단축코스로 진행한다.
무명묘지 통과
무명봉의 36번 송전탑
송전철탑 번호[154kv 청주초정T/L, No. 36]
능선안부 방향전환
송전탑을 통과 후 약10m 전방에서 좌측방향으로 방향전환하여 내려서면 512번 국도에 도착한다.
512번 국도 내려서기 직전의 경사진 등로길의 모습
현암삼거리와 연결된 512번도로 홍고개
512번국도 통과후 뒤돌아본 모습
낙석방지 철조망 사이로 내려 도로 횡단하여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는곳 까지 진행한다.
512번국도 횡단후 도로 따라 진행하는 모습
홍고개 이정표 : 선도산2.9km, 것대산1.9km
홍고개 이정표에서 뒤돌아본 모습
은행장성주이공묘 통과
홍고개에서 좌측편으로 한차례 밀어 올리면 능선 안부에 도착하고 편안한 등로길 따라 진행하다보면 정리가 잘된 묘지을 만나게된다. 5공화국 시절에 은행장을 했것 같은데 왕의 무덤 같아보였다.
은행장성주이공묘 비석
은행장성주이공 비석뒤편의 모습
은행장 성주이씨 묘비 뒷면에 새겨놓은 도연명의 유명한 의만가사(擬輓歌辭)를 적어놨다
“삶이 있으면 반드시 죽음이 있으니 일찍 죽는다고 명 짧은 건 아니로다.
어제 저녁 다 같이 사람이다가 오늘 아침에 귀록의 명단에 올라있네.
혼은 흩어져 어디로 가버리고 메마른 신체 빈 나무관에 부치고 있나
아이들은 아비찾아 부르짖고 친구들은 나를 잡고서 곡하누나.
이해득실을 다시는 알지 못하고 시시비비인들 어찌 깨달을 수 있겠는가.
천년 만년 지난 후에는 그 누가 명예와 치욕을 알리오 다만 한스러운 건
살아 생전에 술 흡족하게 마시지 못했음이라. ”
도 연명의 ‘죽은이를 위한 노래’중에서
경사지 통과
은행장성주이공묘 통과하면 경사지가 나오고 한차례 밀어올리면 능선안부에 도착한다. 안부에서 물한모금 마시고는 우측편으로 진행하다가 다시 좌측편 경사지을 내려서면 은행장성주이공묘지 앞에 도착한다. 좌측편으로 목련공원이 조망되고 저멀리 것대봉이 보인다.
능선안부 통과
우측방향으로 진행하여 약50m 갈림길에서 직진방향 버리고 좌측편 경사지을 내려선다.
능선안부 이정표 : 선도산3.2km, 것대산1.6km
갈림길 통과
길주의] 주의하지 않으면 직진으로 알바할수 있는지점이다 마루금은 좌측편으로 내려서야 한다.
청주목련공원의 모습
위치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월오동일대
그 후 1992년에 급격한 묘지 수용증가에 대처하고 국토의 효율적인 이용을 도모하기 위해 상당구 월오동 산 2-1번지 일대의 1,613,520㎡(48만8090평)을 새로운 묘지공원으로 조성하였다.
월오공원의 당시 시설물로는 도로40개(총 노선장 51,819㎡), 광장 2개소(총 면적 11,699㎡), 화단 등의 조경시설(총면적 9,391㎡), 잔디광장 외 휴양시설(총 면적 6,454㎡) 편익 및 공원관리시설(총 면적 28,999㎡) 등이 들어서 있었으며, 그 후 청주시는 월오공원의 명칭을 목련공원으로 바꾸어 조성하고 있다.
목련공원의 면적은 410,130㎡(12만4064평)에 분묘 7,390기 목련원(납골묘)470기, 목련당(납골당)5,320기의 총 13,450기를 수용할 수 있게 조성되어 있다. 주요 시설물로는 관리사업소 1동과 주차장(400대 동시주차), 식당 및 매점(125평), 휴게시설(25개소), 석물처리장 1동, 납골당 1동 등의 시설물이 있다.
청주목련공원의 모습
은행장 성주이씨 묘지를 지나 봉우리를 올라 내려서니 좌측에 그리 크지않은 목련공원이 나온다.
상당산성 조망
청주목련공원을 지나 등로길 우측편으로 상당산성이 조망되어 사진을 찍어본다. 이곳에서 상당산성까지는 유턴[U]씨 방향으로 진행한다.
무명묘지 통과
무명묘지통과
묘지통과
묘지통과
청주목련공원을 지나 오르면 묘지군이 나오고 한차례 더 밀어올리면 443봉에 도착한다.
443봉의 모습
443봉 삼각점
나무가 무성하여 조망권 없는 봉우리를 통과 후 내림길이다.
묘지통과
443봉을 내려서면 1차선 도로가 나오고 도로 건너 나무계단을 오르면 것대산으로 이어진다.
1차선 도로통과
도로 건너 나무계단을 오르면 중계송신기가 나오고 한차례 밀어 올리면 것대산 활공장에 도착한다.
1차선 도로에 있는 이정표 : 선도산 3.5km, 것대산(봉수대) 1.2km
이동통신 송신기 통과
것대산(해발484m) 정상의 팔각정
것대산 활공장 주변에는 팔각정과 활공장 그리고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고 청주시내가 한눈에 들어온다. 것대산은 옛 문헌에 거차대산(居次大山) 또는 거질대산(居叱大山)등으로 차자되어 나온다. 즉 ‘居次大’나 ‘居叱大’는 모두 ‘것대’로 재구성되어 불린 것이다. ‘거질대산’은 ‘거질대(居叱大)’의 ‘질(叱)’이 차자표기에서 ‘ㅅ’의 표기인 줄을 모르고 음으로 읽은 지명이다.
것대봉 활공장 이정표 : 선도산4.8km, 낙가산 정상1.4km, 상봉재1.3km
것대산(484m)은 청주시 상당구 용정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거질대산, 상령산이라고도 한다.
것대산에는 조선시대에 봉수가 있어 남쪽으로는 문의현의 소이산, 북쪽으로는 진천현의 소을산 봉수와 연계되었다. 것대산은 옛 문헌에 "居次大山" 또는 "居叱大山" 등으로 차차되어 나온다.
것대산에서 바라본 청주시내와 우암산의 모습
것대산 정상은 활공장이 자리하고 있었고, 흐린날씨에 청주시내가 희미하게 조망되었다
우암산(해발338m)
청주시를 지켜온 산으로서 그 모양이 소가 누워있는 형상과 비슷하다고 하여 일명 와우산이라고도 부르며,청주시 명암동·내덕동·우암동·수동·대성동·문화동·용암동에 걸쳐 있다. 정상 부근에 삼국시대 것으로 보이는 와우산성(臥牛山城)이 있다. 와우산성은 《동국여지승람》에는 둘레가 1.587km로 되어 있으나 실제로는 내성 2km, 외성 1,800km로 총 3.8km에 이른다. 지금은 성 주변으로 민가와 농경지가 늘어나 크게 훼손된 상태이다. 한남금북정맥은 우암산을 비겨 상당산에서 동북진하게 된다
것대산 활공장의 경고문
것대산 활공장의 모습
활공장 안내판의 모습
것대산 주차장
활공장에서 우측편 임도길로 내려서면 주차장이 나오는데 아마도 것대산 활공장을 이용하기 위해 만들어 놓은 주차장인것 같았 고 주차장에서 직진으로 진행하면 것대산 봉수지가 나온다.
것대산 봉수지(403m) 의 모습
것대산 봉수지 안내도
이곳은 고려와 조선시대에 봉화를 올렸던 것대산 봉수지로서 낮에는 연기를 올리고 밤에는 횃불을 올려 지방의 소식을 중앙에 알리는 통신시설이었다.
평산시에는 1홰. 적군이 나타나면 2홰, 국경에 접근하면 3홰, 국경을 침범하면 4홰, 전투가 벌어지면 5홰를 올렸는데, 이 것대산 봉수는 전국의 5개 봉수노선 가운데 경남 남해에서 출발하여 서울 남산에 이르는 두 번째 노선에 속하였으며, 문의 소이산 봉수에서 신호를 받아 진천 소을산 봉수로 전달하였다.
1894년에 봉수제도가 폐지된 후 방치되어 없어젔던 굴뚝과 방호벽을 2009년에 복원하였다.
것대산 봉수대의 모습
이 봉수대는 긴급한 소식을 알리기 위하여 축조된 봉수대로써 고려시대때 만들어 졌다고 한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봉수지의 하나로 경남 남해에서 출발하여 서울 남산으로 이어지는 국내 2번째의 것대산 봉수리라고 한다. 1894년 봉수제도가 페지된 후 방치되었다가 1993년 1차발굴에서 봉수터 흔적을 발견했고, 97년에 일부발굴을 통해 도지정문화재까지 지정됐다고 한다
것대산 봉수대의 모습
현위치 번호 : 11-02
임도길의 모습
것대산 봉수지에서 상봉재로 내려서면 우측편으로 임도길이 보이는데 것대산 활공장 주차장으로 연결되는 임도길이다.
상봉재(해발386m)
것대산 봉수지에서 완만하게 약7여분 정도 내려서면 상봉재에 도착한다. 상봉재는 청원군 낭성면 현암리와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을 잇는 고개마루다.
상봉재
충청북도 청주시의 상당구 산성동과 명암동 사이에 있는 고개이며, 것대고개 또는 상봉고개라고도 하며, 상당구 산성동 것대에서 것대산을 끼고 명암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다.
상봉재 아래는 중봉으로 명암지 위에 해당되며, 그 위가 상봉에 해당된다. 고개는 험하며, 이를 지나면 것대골이 나오고 산성고개와 만나 청원군 낭성면 현암리와 연결된다. 상봉 지명은 그 주변에서 가장 높은 산봉우리의 산이라는 뜻으로 전국의 곳곳에 산이나 고개에 흔히 쓰인다. 명암동에는 '상봉' 아래에 있는 산을 가리키는 '중봉'이 있다. 고개에는 김해월이 영장 남정년의 주선으로 비장 홍림의 애첩이 되었다는 "상봉재에 얽힌 이야기"가 있다.
[참고] 상봉재옹달샘
상봉재에서 약100m 거리에 상봉재 옹달샘이 있어 한여름 이곳을 지날때 맥을 잇는 정맥꾼들이 이용할수 있는 약수터이다.
상봉재(386m) 이정표: 옹달샘 0.1km, 낙가산2.4km, 산성1.1km
우암어린이회관 갈림길 통과
상봉재에서 올라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전환하여 진행하면 산성고개 출렁다리에 도착한다.
우암어린이회관 갈림길 이정표: 상봉재70m, 낙가산정상2.5km,우암어린이회관2.7km,상당산성1.1km
우암어린이회관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잘 정돈된 묘지가 나오고 그옆으로 방지목들이 설치되어 있는 옆으로 진행하면 산성고개에 도착한다.
현위치 번호 : 11-01
산성입구(출렁다리)
위치 : 충북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 218-10
산성고개는 청주시 상당구 명암동,산성동과 청원군 낭성면을 연결하는 2차선 512번도로의 고개이다.
현재는 남쪽으로 산성제1터널과 2터널이 개통된 상태이다. ‘산성재’는 ‘산성’과 ‘재’로 분석된다. ‘산성’은 ‘상당산성’을 가리키고, ‘재’는 ‘고개’를 뜻한다. 따라서 ‘산성재’는 ‘상당산성으로 넘어가는 고개’로 해석된다.
이 고개는 달리 ‘산성고개’로도 불리는데, 이는 ‘산성재’에서 ‘재’가 같은 뜻인 ‘고개’로 바뀐 결과이다.
이 고개는 달리 ‘약수터고개’로도 불리는데, 이는 ‘명암약수터 위에 있는 고개’로 해석된다. 명암약수터는 1920년대 초기에 발견되었는데, 탄산천으로 철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다. 정리하여 말하면, ‘산성재’나 ‘산성고개’는 고개 너머에 있는 ‘산성’이 중심이 되어 붙은 이름이요 ‘약수터고개’는 현 위치가 중심이 되어 붙은 이름이다.
출렁다리 안내판의 모습
산성고개[출렁다리]를 건너 평안한 산책로를 따라 진행하니 어느새 상당산성 남암문 앞에 도착하고 암문을 통과하여 성곽에 올라 청주시내을 조망하고는 우측편 성곽을 따라 진행하다가 다시 우측능선으로 진행한다..
주말이라 상당산성내에는 청주시민들이 휴식을 취하기 위해 찾아들어 인산인해라고 말할수 있었다. 성곽을 따라 진행하는것을 포기하고 성곽 우측편 숲속으로 진행하니 사람도 없고 등로길도 한결 부드러웠다.
청주동물원 갈림길을 지나고 서문에 도착하니 지방에서 상당산성을 찾은 산악인들이 무리을 지어 있었고, 서문 좌측 바로 아래에는 약수터도 있었다.
상당산성 서문에서 오창과학단지와 청주공항이조망되었고 내수읍과 증평읍도 희미하지만 눈에 들어왔다. 서문을 통과하여 성곽 따라 진행하다가 우측편 숲속으로 올라서니 상당산[해발471m] 정상이 나오고 정상석에서 인증샷을 남기고는 이티재로 출발한다.
상당산정상에는 삼각점과 정상석이 설치되어 있었고 우측편으로 내려서면 상당산성 동암문이 나오는데 자세히 보지 못하면 그냥 지나칠수 있는곳에 위치하고 있었다. 산길로 내려서면 좌측편에 있지만 성곽길로 내려서면 우측편 아래 모퉁이에 있어 그냥 지나칠수 있어 조심히 잘 살펴야 한다.이곳에서 상당산성과 이별을 하고는 이티재방향으로 진행한다. 동암문을 통과하면 좌측편으로 조금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고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을 틀어 진행하면 이티재로 연결된다.
완만하게 오르 내림을 약15분 진행하면 상당산성휴양림 길림길 이정표가 있는곳에 도착하며[119현위치 구조목: 산성-이티재 03] 이지점에서 우측방향으로 방향전환하여 내려섰다가 갈림길에서 직진방향 버리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이지점에서 알바하기 쉬운구간이었다. 직진길이 선명하고 잘나있어 잘못하면 대형 알바할수 있는지점이다.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청원군에서 설치한 등산로 안내판이 나오는데 이티재까지 8km이며 소요시간이 5시간 걸린다고 적혀있었다 어떻게 계산을 한것인지는 몰라도 너무 여유롭게 시간을 계산한것 같았다. 등산로 안내판을 통과하여 내려서면 돌탑이 있는 안부에 도착하고 완만하게 진행하면 415봉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먼저온 대원들이 식사을 하고 있어 후미조도 이곳에서 점심식사을 하고는 이티재로 출발한다.
415봉에서 내려섰다가 오르니 475봉에 도착하고 오르고 내림을 반복하여 오르면 500봉인 인경산 갈림봉에 도착한다. 500봉을 지나 좌측으로 우회하여 고도를 낮추니 임도와 축사가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니 커다란 느티나무에 도착한다.
느티나무을 지나 오르면 우측편으로 정리가 잘된 묘지가 있었고 한차례 밀어올리면 이티봉인 삼각점에 도착하고 방향을 우측방향으로 전환하여 내려서면 이티재에 도착한다.
남암문
상당산성 접속 직전 이정표: 것대산2.7km, 산성서문1.2km, 산성남문0.6km
청주는 옛부터 주성(舟城)이라고 했다. 청주의 지세가 무심천위에 뜬 배의형상이라는 것이다.
청주는 삼한시대에 마한의 땅으로 백제 시대에 이르러 상당현(낭비성 또는 낭자곡)이라 칭하고 군사적 요충지로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자 지리적 중요성으로 인해 5소경중의 하나인 서원경으로 승격, 지방행정의 중심지가 되었다. 고려 태조 23년(940년)에 청주로 지명을 개칭. 조선시대에 들어 수운이 발달한 충주가 교통의 요지로 부상함에 따라 청주는 상대적으로 발전이 정체되었으나 1905년 경부선철도 개통과 함께 발전의 전기를 맞게 되었으며, 1908년에는 관찰사가 충주에서 청주로 이전되었다. 1920년 충북선개통은 지역발전을 획기적으로 앞당기는 계기가 되었으며 1946년에 청주부와 청원군이 분리되었고 1949년에 청주시로 승격되었다.
그후 행정동 분동, 청원군 편입 등에 거쳐 1989년 7월에 2개의 출장소(동부·서부)가 설치되었고 1995년 1월에 출장소가 구(동부 -상당, 서부-흥덕)로 승격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高麗史” 지리지에는 “淸州牧은 본래 백제의 上黨縣이다 신라 신문왕 5년에 처음으로 西原小京이 설치되고
경덕왕때 西原京으로 승격하였고, 고려 태조 23년에 淸州로 고쳤다”라고 청주의 연역을 설명하고 있듯이 지금도 백제의 지명이 상당산성에 남아있고 고려이래의 청주가 남아있는 역사와 전통의 고장이다.
조선시대에는 忠淸兵使가 있던 병영이 이곳 청주였다.
한남금북정맥 안내판
상당산성은 청주에서 동쪽으로 7.5km에 위치한 청주와 청원군의 경계를 이루는 상당산(옛 이름 상령산, 해발 491.2m)위에 쌓인 포곡식 石城으로서, 그 성제(城制)가 훌륭하여 사적 제212호로 지정 보호 되고 있습니다.
백제시대에 처음 세워진 것이란 견해도 있고, 김유신의 아들인 김서현이 쌓았다는 견해도 있나 봅니다. 조선조 숙종년간에 개축을 하였고 이후 여러차례의 개보수를 거쳐 지금의 형태는 광복 이후에 이뤄진 것이라 합니다.
또, 이 상당산성에는 민족의 성웅으로 추앙받는 이순신장군과 대비되어 늘 패장으로 지탄받는 원균과도 관련이 있다 합니다. 원균이 이순신과의 불화로 사실상 좌천격인 충청병마절도사로 부임을 하게 되었는데, 이때 나름 전란의 대비를 위해 상당산성 보수 작업을 진행하였습니다.
이 때 예하 고을의 빈부를 따지지 않고 이삼백명씩 부역을 동원하여 혹독하게 산성개축작업을 하는 바람에 백성들의 원성이 자자했고 이것이 나중에 그가 포악했다는 증거로 사용되어지곤 합니다.
하지만 그당시 원균은 공사현장에 움막을 짓고 기거하면서 직접 공사를 열정적으로 감독하였다하니 나름 자신의 임무에 충실하고 우직하게 열정적으로 업무를 추진하는 불도저형 장수였다 할 수 있겠습니다.
원균의 역사적 평가에 대해서는 논외로 하고, 원균이 백성들의 원성을 한 몸에 받으면서도 불도저처럼 상당산성의 보수에 매진한 것은 상당산성의 전략적 가치가 그만큼 높았기 때문이겠지요.
이런 유구한 역사를 가진 상당산성은 청주의 방위를 대비하기 위해 그 뒷산인 상당산에 쌓아져서 청주읍성에서 籠城이 불가능할 경우 읍성의 관민이 이곳에서 장기전을 치루던 군사적 요충이자 청주의 수호성입니다.
상당산성 남문[공남문]
남문을 공남문이라 하는데 控南은 남쪽을 제아한다는 뜻이라고 한다. 성 안쪽으로 성벽을 쌓아 내옹성을 만들어 적군이 성 안으로 들어 온 후 성벽 뒤에 숨어 공격하기 위해 만든 성문이다.
상당산성 남문
산성고개 출렁다리를 지나 완만하게 진행하면 상당산성[남문]에 도착하여 산성 안으로 들어간다. 산성내부에는 청주시민들이 휴식을 위해 많이 나와 있었고, 좌측방향 성곽 따라 진행하다가 우측편 숲속으로 이어간다. 상당산성내부 근방에 김 시습 詩碑가 있다는데 찾지 못하고 그냥 지나간다.
상당산성 남문 김 시습(金時習) 詩碑
생육신의 한 사람인 김 시습은 세조가 어린 조카 단종을 몰아내고 왕위를 찬탈하자. 책을 불살라버리고 전국을 유랑하며 때로는 세상을 조롱하며 미치광이처럼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수많은 시인 묵객들이
이곳 상당산성 남문에서 시를 남겼으나 그 중에 김 시습의 시유산성(遊山城)이 가장 유명하다.
꽃다운 풀이 헤진 짚신에 파고드는데 날 개이니 풍경이 청량하여라
들꽃에는 벌이와서 꽃잎에 입맞추고 살찐 고사리에 비내려 향기를 더하네
멀리 바라보니 산하는 웅장하고 높이 오르니 의기는 드높아라.
사양말고 저녁내 바라보시게. 내일이면 바로 남방으로 떠나갈 것일
상당산성[남암문] 통과
산성내부을 들어와 좌측편으로 진입하여 서문 방면으로 진행한다
상당산 둘레를 따라 그림 같은 모습으로 연결되는 산성은 조선 중, 후기 석성의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는 문화유산이다. 동문, 서문, 남문 3개의 성문과 2개의 암문인 동암문, 남양문, 치성과 수구 등 산성의 모습은 현재도 굳건하고 다부진 모습을 보여준다. 삼국시대 백제가 세운 산성이 그 시작이 되었다는 상당산성은 통일신라 이후 군사적 가치를 인정받았고 조선 임진왜란 이후 한양 방어를 위한 석성으로 대대적으로 보수되었다. 둘레가 4.2㎞에 이르는 산성은 내부 면적이 73㏊에 이른다.
상당산성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산성동(山城洞)에 구축된 조선시대의 산성. 사적 제212호. 상당산성이 처음 축성된 것은 백제시대 때 토성으로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상당산성이라는 이름은 백제의 상당현에서 유래한 것으로 보는 견해도 있고, 통일신라 때 행정구역인 서원소경이 청주에 설치되는데 이때 김유신의 셋째 아들 김서현(원정공)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전하기도 한다. 이후 조선시대 선조 29년 임진왜란 당시 개축되었다가 숙종 때 석성으로 개축하였다. 산성의 면적은 2.6ha, 성 둘레 4,400m이며 크기가 일정하지 않은 석재로 수직에 가까운 성벽을 구축하고 그 안쪽은 토사로 쌓아올리는 내탁공법(內托工法)으로 축조하였으며 높이는 4.7m이다.
동·서·남방 3개소에 성문을 두었는데, 남문은 무사석(武砂石)으로 홍예문을 만들고 그 위에 목조 문루(門樓)를 세웠다. 지금은 석축 부분만 남아 있고, 성문의 높이는 3.5m, 너비는 4.2m이다. 동문과 서문도 역시 문루가 있었으며 성문은 무사석으로 네모지게 축조하였는데 높이 2.7m, 너비 2.8m이다. 동문과 남문 부근에 1개소씩의 암문(暗門)이 있고 동남방에 수구(水口)가 있었으나 지금은 여기에 저수지가 만들어져 있다. 성내에는 동장대(東將臺)와 서장대(西將臺)의 터가 남아 있다. 1996년 현재 이 성내에는 50여 가구가 살고 있다. 읍지(邑誌)에 따르면 이 산성은 1716년(숙종 42) 고지(古址)에 의거하여 석축으로 개수하였다고 하며, 남문 등의 성문·성벽에 당시의 공사관계자들의 이름과 관직명 등이 새겨져 있다. 남문의 문루는 1977년 복원되었다.
상당산성
상당산 계곡을 둘러 돌로 쌓아 만든 산성으로 백제 때 부터 이미 이곳에 토성이 있었던 것으로 짐작되는 곳이다. 삼국사기에 통일신라 초기에 김유신의 셋째 아들이 서원술성을 쌓았다는 기록이 남아 있는데, 이때 쌓여진 것이 아닌가 추측 되기도 한다. 상당이란 이름은 백제 때 청주목을 상당현이라 부르던 것에서 유래한 것이다.
지금의 성은 숙종 42년(1716)에 돌성으로 다시 쌓은 것이라고 하는데, 정상에 오르면 서쪽으로 청주, 청원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여 서쪽 방어를 위해 쌓여진 곳이었음을 알 수 있다. 상당산 정상 바로 아래 서문을 통과하면서 부터 그동안 상당산성 주변에서는 찾아볼 수 없던 시그널들이 매달려 있는 모습이다. 고도차가 별로없는 부드러운 능선길을 따르다가 등산로라고 씌여진 표지판을 보고 오른쪽 아래로 임도를 따라 내려서자마자 삼거리 좌측길로 이티재 산행안내판이 서 있다. 이곳에서 길을 제대로 찾으면 이티재까지는 어려운 곳은 없다. 이곳 갈림길에서 임도를 따라 계속 내려서면 낭성면 삼산리 골짜기인 막거리가 나온다.
막거리는 옛날 막장이 있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서문(弭虎門 미호문) 앞 통과
상당산성 [上黨山城]에는 동문(진동문 鎭東門), 서문(미호문 弭虎門), 남문(공남문 控南門)의 3개 문과 동암문 남암문의 2개 암문, 치성 3개소, 수구 3개소가 있다. 공남문이 홍예식 성문을 하고 있는 달리 서문은 평거식 성문을 하고 있다. 성문 양쪽 성벽을 바깥쪽으로 돌출시켜 웅성과 비슷한 기능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