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금북정맥 7구간 삼실고개에서 모래재까지 역방향산행 후기글

2013. 11. 22. 12:27★ 9 정맥/- 8. 한남금북[완료]

 

한남금북정맥 7구간(삼실고개~모래재)

 

 

산 행 지 : 충북 음성군 음성읍 원남면/괴산군 소수면, 사리면  한남금북정맥 7구간

산행일시 : 2013년 12월7일(토요 당일산행)

산행코스 : 삼실고개-290봉-517봉-큰산-반기문생가-행치재-가정자고개-378.5봉-오대산삼거리-보천고개-

                445봉-377.9봉-395봉-내동고개-백마산삼거리-370봉-고리티재-395.4봉-봉광산삼거리-봉광산-

               보광사-수암낚시터-모래재

산행시간 : 09:05~14:19 (5시14간분, 식사 및 휴식포함)

산행거리 : 약18Km(정맥17Km, 접속구간1Km), GPS20.6Km

산행날씨 : 맑음

산행인원 : 44명

산행코스 및 구간거리 : 삼실고개-2.4/2.7km(1시간10분)-큰산-1.5/1.5km(40분)-행치고개-1.5/1.7km(30분)

                                  -가정자고개-1.9/2.1km(50분)-보천고개-3.0/3.3km(1시간10분)-백마산삼거리-

                                  1.4/1.5km(고리티고개)-1.9/2.1km(40분)-보광산-1.0km(20분)-주차장

 

구간

거리 (km)

출발시간

소요시간

비고

삼실고개

-

09:05

-

해발270m, 충북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 588-2, 음성읍 초천리 21-3

큰산

2.7

09:57

52분

해발509.9m, 감시카메라, 정자, 정상석, 안내판, 조망좋음

행치고개

1.5

10:24

27분

반기문유엔사무총장생가, 36번국도, 지하차도통과

가정자고개

1.7

10:50

26분

묘지지대을 내려 가정자 삼거리에서 직진으로 능선으로 진행

보천고개

2.1

11:47

57분

해발230m, 2차선 515번 지방도, 느티나무 보홋

백마산삼거리

3.3

12:44

57분

우)백마산, 좌)보광산방면

고리티고개

1.5

13:12

28분

해발350m 돌탑흔적 직진으로 통과

보광산

2.1

13:44

32분

해발531m, 마루금에서 약간 우측편에 있음

모래재

2.1

14:19

35분

해발228m, 구43번 2차선국도, 보광산관광농원, 모래재의병격전유적비

주차장

1.0

-

 

모래재 보광산관광농원에서 좌측방향으로 약500m 진행, 계곡

마루금 거리

17

 

 

 

접속 거리

1.0

 

 

 

총 거리

18

 

 

 

GPS거리

20.6

 

 

 

 

 

 한남 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 

한남 금북정맥(총 도상거리 158.1km)은 백두대간의 속리산 천왕봉(天王峯-1057.7m)에서 분기하여 북으로는 한강(총길이 494.5km)과 남으로는 금강(총길이 401km)의 분수계를 이루며, 충청북도를 북서방향으로 연결하고 경기도 안성의 칠장산까지 백두대간에서 남한의 정중앙을 잇는 큰 산줄기이다.

 

속리산 천왕봉에서 내려온 한남금북정맥은 충북 보은의 구봉산등 500m급의 많은 봉우리를 넘으며 이어지다 청주의 선도산과 백제시대의 유명한 상당산성을 지나 괴산의 좌구산을 넘고, 음성의 보현산과 소속리산을 넘으면서 9구간정도 꾸준히 500m~600m급의 정맥 길로 줄기차게 이어오다 음성의 금왕읍을 통과하면서 표고 150m 이하의 구릉지대(도상거리 20여km)를 지나면서 끈질기게 이어지게 되고, 다시 이천의 마이산을 넘으면서 안성의 칠장산(七長山)에 올라 한남금북정맥은 분기된다.

 

 한남 정맥(漢南正脈-총 도상거리 178.5km)은 칠장산에서 북서쪽으로 경기도 용인과 수원의 산줄기를 거쳐 부천과 인천을 지나 김포의 문수봉에서 한강하구로 그 맥을 가라앉히고, 남서방향으로 뻗는 금북 정맥(錦北正脈-총 도상거리 282.4km)은 금강의 북쪽울타리이며, 안성 땅을 지나 충남의 천안과 예산의 산줄기를 거처 홍성과 당진, 서산을 지나 태안의 지령산에서 서해바다(안홍진)로 그 맥을 가라앉히는 큰 산줄기이다.

 

 

한남금북정맥(漢南錦北正脈)

 

속리산의 천황봉(千皇峰)에서 서북으로 뻗어 충북의 북부 내륙을 동서로 가르며 경기 안성군 칠장산(七長山)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종착지의 칠장산에서는 다시 서북쪽으로 김포 문수산(文殊山)까지의 한남정맥(漢南正脈)으로 이어지고, 남서쪽으로는 태안반도(泰安半島)에 있는 안흥(安興)까지의 금북정맥(錦北正脈)으로 이어진다.

 

이 산줄기의 산들은 백두대간(白頭大幹)의 천황봉에서 갈라져 말태재 ·구치(九峙) ·시루산 ·구봉산(九峰山) ·국사봉(國師峰) ·선두산(先頭山) ·선도산(先到山) ·상봉재 ·상당산성(上黨山城) ·좌구산(坐龜山) ·칠보산 ·보광산(普光山) ·행태고개 ·보현산(普賢山) ·소속리산 ·마이산 ·차현(車峴) ·황색골산 ·걸미고개 ·칠장산 등으로 이어진다.

 

한남금북정맥은 수계의 경계상으로는 "백두대간" 속리산 천왕봉에서 분기되어 수 많은 지맥과 단맥을 분기 시키며 3정맥 분기점인 칠장산 분기점까지 이어진 정맥이다,

 

3정맥분기점에서 한강의 남쪽유역을 울타리로 서북으로 문수산까지 이어진 한남정맥과. 금강 북쪽유역을 울타리로 백월산 분기점에서 남으로는 금강하구둑까지 이어진 수계상 금북정맥과 백월산 분기점에서 서북쪽으로 안흥까지 연결된 산경표상 금북정맥이 있다.

 

 

  

한남금북정맥 7구간[삼실고개~모래재] 고도표 

 

한남금북정맥7구간[삼실고개~ 모래재]트렉도 

 

 산악회에서 준비해준 등산지도

 

 

2013년 새해를 알리는 보신각 종소리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달력 한장만이 남아 2013년을 떠나보낼 준비을 하고있다. 2014년도에는 얼마나 어려움이 있을지 2013년 보다는 2014년도에는 경제도 활발하고 모두 사람들의 소비가 활성화 되어서면 한다.

 

연일 계속되는 송년회 관계로 몸이 피곤에 찌들어 있는 이때 한남금북정맥 마루금 맥잇기을 위해 어느때와 마찬가지로 기상과 동시에 집결지인 상일동으로 출발한다.

 

먼저 도착하신 회장님과 대원들이 반겨주시고 도착하는 버스에 올라 목적지로 출발한다. 중부고속도로상에 있는 음성휴게소에서 휴식을 한 후 증평톨게이트로 빠져나와 510번도로와 36번도로를 진행하여 하초로 삼실고개에 도착한다.

 

오늘 산행은 모래재에서 삼실고개로 진행해야 하지만 삼실고개 부근에 세면물이 없는 관계로 역방향으로 산행을 한다. 베낭을 챙겨 삼실고개에서 몇장의 사진을 찍고는 우측편 이정표와 건물이 있는 능선으로 올라 한남금북정맥 7구간이 시작된다.

 

삼실고개(해발270m) 

주변위치 : 충북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 588-2, 음성읍 초천리 21-3

삼실고개는 동쪽방면으로 원남면 하당리 36번도로와 서쪽방면의 음성읍 초천리의 덕생로와 사이를 연결하는 하초로의 고갯마루에 있다. 삼실고개  우측편에는 농가 주택한채가 있고, 큰산과 모래재 방면은 우측방향 능선 큰산등산로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는곳으로 완만하게 진행한다.

 

삼실고개 주변의 모습

 

삼실고개 들머리의 모습

 

 

삼실고개 들머리 이정표 : 신천리 하당리, 초천리, 큰산(보덕산)정상 3.6km

 

삼실고개(밤나무재)

삼실고개는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와 초전리를 잇는 1차선 도로 고개 마루에 있으며, 이곳은 밤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밤나무재라고 부르면 길가에는 밤나무 체험농장과 복분자를 파는 농장이 있다. 큰산방향은 우측편 건물을 끼고 완만하게 진행한다.

 

삼실고개에서 완만하게 진행하면 첫번째 무명봉이가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전환하여 진행하면  벌목지대가 나온다. 급경사지을 한차례 밀어 올리면 517봉에 도착하고 좌측방향으로 전환하여  내려서면 임도길이 나오는데 이길이 반기문 비채길이다.

 

임도길을 통과한후 우측능선으로 올라 다시 내려서면 임도길이 나오고 임도길로 큰산가지 올라도 가능하지만 잠시후 다시 우측능선으로 올라 큰산에 도착한다.

 

큰산은 원남면 보룡리, 하당리, 덕정리에 걸쳐있는 산으로서 일명 보덕산이라고 한다. 큰산의 서남쪽으로 꽃절이 있으며 바위가 움푹 패여 10여평이 되는데 특이하게 바위아래 불상이 있으며 꽃절 바위에서 나오는 약수가 유명하다.등산을 하다보면 임도가 잘 닦여 있어 등산하기가 매우 편리 하며 천연림이 울창하게 생육하고 있다. 산 정상에는 페러글라이딩 출발 장소가 조성되어 있어 많은 회원들이 이용하고 있다.

 

큰산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일품이고 발아래에는 행치재가 보이는데 그옆으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생가가 자리잡고 있어 세인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 행치마을로 광주반씨 집성촌이다. 집성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 듯 마을 뒤편 산에는 종중묘역이 조성돼 있다음성군에서는 세계적인 인물이 탄생한  이곳에 생가를 복원하고 관광자원화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사원이 완료되면 이 곳은 아마도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바로 반기문 생가가 있는 마을을 품고 있는 산이 큰 산이다. 큰 산은 일명 보덕산이라고도 불린다. 큰 산이 품고 있는 마을에서 반기문이라는 큰 인물이 태어났다는 것이 이채롭다. 반기문 생가을 방문하고는 모래재로 진행한다.

 

 

삼실고개에서 진행하다가 뒤돌아본 모습

바로 아래 삼실고개가 보이고 그 뒤편으로 다음구간이 보인다.

 

517봉 조망

삼실고개에서 완만하게 진행하면 첫번째 무명봉 오른 후 좌측방향 벌목지대가 나오고 경사지을 올라서면 517봉에 도착한다. 

 

517봉 진행하는 모습

 

하당저수지 조망

517봉 오름길에 우측편으로 하당저수지가 근거리에 조망된다.

 

삼실고개에서 지나온 마루금을 뒤돌아본 모습

 

517봉 오름길의 모습

삼실고개에서 첫번째 무명봉과 벌목지대을 지난 후 두번째 봉우리는 가파른 오름길에 암능지가 있어 좌측으로 우회하며 경사지을 오르는데 낙엽이 많고 그 아래에 얼어붙어 미끄러워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517봉 통과

미끄러운 경사지을 올라 517봉에서 좌측방향으로 방향전환 후 내려서면 반기문 비채길 임도가 나온다.

임도 통과(반기문 비채길)

임도 서쪽방면 덕정리와 동북쪽방면 하당리를 연결하는 임도길이며 정상부의 반기문 비채길을 직진으로 통과한다.

 

반기문 비채길 안내문의 모습

 

반기문 비채길 임도 이정표: 하당저수지(반기문비채길:하늘길)3.23km, 덕정리 임도(반기문 비채길:땅길), 큰산(보덕산)정상0.43km  

반기문 비채길 임도길 통과후 뒤돌아본 모습

 

임도길 통과

반기문 비채길 임도 통과하여 진행하다가 우측편 능선으로 진행하지만 임도길로 진행해도 가능하다 무명봉을 올라 내려서면 다시 임도길을 만난다.

 

무명봉 통과후 다시 임도길 연결되고 잠시후 큰산에 도착한다.

 

 

임도길 통과

임도길에서 다시 우측능선으로 진행하면 큰산정상부에 도착한다.

 

 

큰산(보덕산509.9m) 정상의 모습

 

큰산[해발 509m]

큰산은 원남면 보룡리, 하당리, 덕정리에 걸쳐있는 산으로서 일명 보덕산이라고 한다. 큰산의 서남쪽으로 꽃절이 있으며 바위가 움푹 패여 10여평이 되는데 특이하게 바위아래 불상이 있으며 꽃절 바위에서 나오는 약수가 유명하다.등산을 하다보면 임도가 잘 닦여 있어 등산하기가 매우 편리 하며 천연림이 울창하게 생육하고 있다. 산 정상에는 페러글라이딩 출발 장소가 조성되어 있어 많은 회원들이 이용하고 있다.

 

큰산 정상부에 설치되어 있는 정자의 모습

큰산[일명 : 보덕산]정상부에는 감시카메라와 정자, 안내문, 정상석이 설치되어 있었고 조망이 일품이다.

 

큰산(해발 509m, 일명 보덕산)

원남면 보룡리, 하당리, 덕정리에 걸쳐있는 산으로서 일명 보덕산이라고 하며 큰산의 서남쪽으로 꽃절이 있으며 바위가 움푹 패여 10여평이 되는데 특이하게 바위아래 불상이 있으며 꽃절 바위에서 나오는 약수가 유명하다.등산을 하다보면 임도가 잘 닦여 있어 등산하기가매우 편리 하며 천연림이 울창하게 생육하고 있다.  '큰산'은 백두대간이 속리산에서 갈래쳐 충북내륙지방을 모두 아우르다 안성 칠장산에서 다시 한남과 금북으로 가지를 쳐 서해바다를 향해 뻗어나가게 만드는 한남금북정맥 상에 위치해 있다.

한남금북엔 시루산, 국사봉, 구봉산 등등 높은 산들이 즐비하지만 '큰산'은 보은,청주, 청원, 괴산을 거쳐 오며 점점 고도를 낮춰가던 한남금북정맥의 산맥이 음성지방에 들어서며 한번 불끈 솟아 오르는 지점에 위치해 있다. 

산의 높이가 낮아지며 평야가 넓어지는 곳에 우뚝 솟아올라 주변을 호령하니 비록 작은 산이지만 큰 산으로서의 역할과 명성을 얻게 되었던 모양이다.

 

보덕산(普德山)

보덕산은 한반도의 큰 산줄기인 백두대간에서 갈라진 1정간 13정맥 가운데 한강의 남쪽과 금강의 북쪽을 가르는 한남금북정맥에 속한 산으로 높이는 509.9m이다.

보덕산에 대하여 조선환여승람에 "보덕산 재군남이십리(普德山 在郡南二十里)" 라고 기록하여 "보덕산은 군 남쪽 20리에 있다." 라고 하였으며 서쪽으로 큰 산과 접하고 있어 큰 산이라고 부르기도 하였다. 많은 풍수사들은 산의 형세가 고아한 학이 많은 사람을 등에 태우고 비상하는 선학인가형(善鶴引駕形)으로 표현하고 있으며, 산 아래 행치마을은 이 산 정상봉우리 중심으로 좌청룡 우백호의 산줄기가 감싸고 있어 그 지기(地氣)가 행치마을의 연못에 모아져 예로부터 큰 인물이 나올 것이라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

 

큰산(보덕산)의 유래

보덕은 클보(普)자와 큰덕(德)자의 이름으로 마을에는 보덕노인정이 있고 정자 이름도 보덕정으로 정하엿다. 30-40년전 4-H 활동 당시 보덕4-H 이름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므로 보덕은 큰산으로 불리는 것은 당연한 이름이다. 덕이 많은 산으로 마을에서는 토속신앙을 믿어 왔다.

 

 

큰산에 설치되어 있는 반기문 비채길 안내문의 모습

 

큰산에서 바라본 행치고개와 반기문생가 조망

 

큰산(보덕산)정상 이정표 : 하당저수지3.66km 하당~덕정임도0.43km, 반기문생가1.21km 윗행치마을1.21km

큰산(보덕산)정상부에는 정자와 정상석, 반기문 비채길 안내도,보덕산 안내도및 무인산불감시탑이 있었고

반기문 생가가 조성된 이후 최근에 정자가 만들어 졌다.

 

반기문 생가와 큰산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 행치재는 한남금북정맥 가운데 주요 포인트가 되는 곳이다. 더욱이 이곳은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생가가 자리잡고 있어 세인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 행치마을로 광주반씨 집성촌이다. 집성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 듯 마을 뒤편 산에는 종중묘역이 조성돼 있다.

음성군에서는 세계적인 인물이 탄생한  이곳에 생가를 복원하고 관광자원화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사원이 완료되면 이 곳은 아마도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바로 반기문 생가가 있는 마을을 품고 있는 산이 큰 산이다. 큰 산은 일명 보덕산이라고도 불린다. 큰 산이 품고 있는 마을에서 반기문이라는 큰 인물이 태어났다는 것이 이채롭다.

 

정상에서 바라본 가섭산(迦葉山: 709m)

저 건너에 음성읍을 외호하는 가섭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음성의 진산임에 분명하지만 정상에는 흉물스럽게 한개도 아닌 여러개의 송신탑이 서있고 산 중간에는 석산개발이라는 명분아래 산이 잘려나간

자국이 이 정맥 산꾼에게 아련한 가슴앓이로 돌아온다.

가섭산이 명명된 유래에 대해 음성과 충주 문화원 자료를 찾아 보니 음성 쪽에서는 가섭산이라고 부르고 있는 반면 충주 신니면 사람들은 가엽산으로 호칭하고 있다.  한자의 음을 해석이 달라 그렇게 한 것으로 보인다.

가섭존자의 가섭(迦葉)이라는 한자를 보면 가(迦, 막을 가)와 섭(葉, 잎 섭)으로 되어 있는데 대개 사람이름에서는 잎 섭으로 사용하고 낙엽에서와 같이 사물에 씌일때에는 같은 한자라도 엽(葉, 잎 엽)으로 사용하는 것으로 되어있으니 나는 불자라서 그런건 아니지만 개인적으로 가섭산이 옳을듯 하다.

 

큰산정상 아래 휴식터에 있는 이정표 : 반기문생가 0.95km, 상당2리마을 2.45km, 하당저수지 3.1km

 

 

큰산 정상부의 모습

행치재로 내려서면서 뒤돌아본 큰산의 설치되어 있는 정자와 감시카메라가 조망된다.

 

행치재 내림의 모습

큰산에서 내려서면 휴식처가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급경사 나무계단이 나오고 계속하여 내려서면 행치재에 도착한다.

 

큰산에서 행치재로 내려서는 등로길의 모습

 

 

큰산에서 바라본 행치재의 모습(파노라마 촬영)

 

행치마을 반기문생가의 모습

 

행치마을 갈림길 통과

 

모래봉 쉼터 이정표 : 큰산 0.41km , 반기문 생가0.8km

 

반기문 비채길 이정표 : 큰산0.84km, 반기문 생가0.17km, 반기문피크닉장0.1km

 

윗행치마을 광주반씨 씨족 마을

이곳은 반 기문 U.N 사무총장을 배출한 곳으로 현재는 광주 반씨 14가구가 살고있는 호젓한 시골마을이다.조선시대 팔도감사(관찰사)를 다 역임하고  육조판서와 한성판윤(지금의 서울시장)을 역임하는 등 조선 전기에 행정의 달인이라고 불렸던 반석평(1472~1540)이 이곳 출신이다.

그러니 반 기문 총장의 선대가 되는 셈이다. 음성군 원남면 하노리에 그 분의 묘가 있다. 그 분은 '서얼'(庶孼) 출신이면서 양반, 쌍놈을 엄청나게 따지는 조선시대에 성공한 대표적인 분이라고나 할까. 정말 우리나라에서 배출한 U.N 사무총장이 성공하길 기원한다.

 

'서얼'(庶孼)

조선시대에는 양반과 첩 사이에서 난 자식을 '서얼'(庶孼)이라고 불렀다. 그러나 '서'와 '얼'에는 구별이 있다. 서자는 양반 아버지와 평민 어머니 사이에서, 얼자는 양반과 노비 사이에서 난 자식을 일컫는 표현이었다. 고려시대에는 서얼을 차별하지 않았으나 주자학을 수용한 조선은 달랐다. 서얼은 가정에서도 천하게 여겨졌고 관직에 등용되기도 어려웠다.

 

 

 

 

 

마루금 이정표 : 큰산(보덕산)정상 0.75km, 반기문 평화랜드0.25km, 검도연수원

반기문 비채길:빛의길

마루금 행치재는 직진이며 좌측방향 마을이 반기문 생가가 있는 행치마을이다.

 

행치재의 위성사진

반기문생가와 지하통로 마루금 위치

 

행치마을의 반기문 생가의 모습

 

 

반기문 기념관 및 유엔 사무총장 취임 선서 연설비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은 1944년 6월 13일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1리 행치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행치마을은 약 500년 전 광주 반씨 장절공파에 의해 형성되었고, 광주반씨 장절공파 행치 종친 15가구가 거주하고 있다 합니다. 이 마을은 한남금북정맥의 큰산이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고, 마을 앞으로 36번 국도가 지나고 있는 전형적인 농촌마을입니다.

 

백과사전의 인물 프로필에 의하면, 그는 1944년 충청북도 음성에서 태어나 1963년  충주고등학교를 졸업하였고,충주고 2학년 때 '외국학생의 미국 방문 프로그램(VISTA)'에 선발되어, 3학년 때 미국을 방문하였으며 이때 케네디 대통령을 만나보고  외교관의 꿈을 키워 서울대학교 외교학과에 진학하였습니다.

 

1970년 2월 대학을 졸업함과 동시에 외무고시에 합격했고 외교관 시절을 거쳐 외교통상부 차관과 노무현 정부 시절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냈고,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재직중인 2006년 2월 유엔 사무총장직에 출마해서 단독 후보로 추대되었으며, UN 총회에서 제8대 유엔 사무총장으로 공식 임명되었습니다. 이로써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2007년 1월 1일부터 유엔 사무총장으로서 업무를 수행하고 있지요.

 

그가 유엔총장이 되고 나서 풍수가들은 그의 생가터가 龍脈이 흘러 내리는 명당이라 그가 사무총장이 되었다고 하고, 변설가들은 그의 삶의 이력을 찾아내어 그의 생을 '미쳐라!' '겸손하라!' '꿈을 잃지 마라!'는 말들로 압축해 떠들고 있습니다.

 

확실히 그는 자신이 하고자 하는 일에 미쳐 있었고, 크게 남 앞에 나서는 법 없이 겸손한 성품을 가지고 있으며, 자신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꿈을 잃지 않고 있었던 사람입니다.

 

게다가 그의 생가가 있는 행치마을은 한남금북정맥의 주요 산 중 하나인 '큰산'이 감싸고 있으니 명당임에도 틀림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가 처음 유엔 사무총장에 나간다하고 발표했을때 사람들은 모두들  반기문이 누구야? 라고 반문했다.  외무장관인 줄은 알겠는데 그가 뭘 하던 사람인지 어떤 사람인지도 잘 몰랐기 때문이죠.

 

사실 UN사무총장 자리는 그에 앞서 메이저신문 중 하나인 J일보 회장이던 홍모씨가 공공연히 도전을 하고 있던 자리입니다. 노무현 정부의 출범 이후 홍씨는 자신의 꿈인 UN사무총장 자리를 위해 국민적인 지지 기반이 취약한데다 특히나 언론과 대척점에 있던 노대통령을 지원했고 그 댓가로  주미대사 자리에 오르며 UN 사무총장의 꿈을 향해 착착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UN 사무총장 자리는 그간 미묘한 국제 역학관계에 기초한 `대륙별 안배 원칙`이 불문율처럼 지켜져 왔습니다. 초기에는 지역순환 원칙이 없었지만 3대 미얀마의 우탄트 사무총장부터 아시아(3대)→구주(4대)→미주(5대)→아프리카(6,7대) 등 지역 별 교대 수임(受任) 원칙이 지켜져 온 것입니다.

 

7대 코피 아난 사무총장이 아프리카 가나 출신이니 이제 다음은 아시아 대륙이 사무총장을 배출할 차례이고 그동안 역대 사무총장들이 모두 강대국이 아닌 약소국 출신이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홍씨의 꿈은 거의 기정사실화되는  분위기 였습니다. 그러나 역시 萬人之上의 자리는 하늘이 내는 것이라 홍씨는 안기부 도청사건으로 촉발된 대선자금 스캔들때문에 사법처리되면서 UN사무총장을 향한 꿈을 접어야 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天時, 地理의 조건 아래 人和로 자기관리를 해 왔고, 마침 아시아, 그 중에서도 세계 유일의 분단국 대한민국의 외교장관을 하고 있던 반기문이 UN사무총장으로 낙점이 된 것입니다.

 

저는 반기문의 이런 천시, 지리의 조건 완성을 그가 태어난 행치마을을 둘러 싸고 있는 '큰산'에서 찾고 싶습니다.

'큰산'은 이름은 거창하지만 사실 높이가 509m에 불과한 작은 산입니다. 우리나라 4,400여개 山들 중 1,000m가 넘는 山만도 수백개에 이르고 큰산보다 높은 산은 셀 수 조차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큰산'이 그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큰산'이란 이름을 갖고 있고 龍脈으로 칭송를 받고 있는 이유는 適時性과 稀少性에 그 이유가 있다 할 것입니다.

 

'큰산'은 백두대간이 속리산에서 갈래쳐 중원지방을 모두 아우르다 안성 칠장산에서 다시 한남정맥과 금북정맥으로 가지를 쳐 서해바다를 향해 뻗어나가게 만드는 한남금북정맥 상에 위치해 있습니다.

 

한남금북엔 시루산, 국사봉, 구봉산 등등 높은 산들이 즐비하지만 '큰산'은 보은, 청주, 청원, 괴산을 거쳐 오며 점점 고도를 낮춰가던 한남금북정맥의 산맥이 음성지방에 들어서며 한번 불끈 솟아 오르는 지점에 위치해 있습니다.  산의 높이가 낮아지며 평야가 넓어지는 곳에 우뚝 솟아올라 주변을 호령하니 비록 작은 산이지만 큰 산으로서의 역할과 명성을 얻게 되는 것이지요.

 

이 땅엔 반기문보다 똑똑하고 경력이 더 화려하고 대중적 인지도가 높은 사람이 수두룩합니다. 그러나 반기문은 외교관이라는 큰 맥(한남금북정맥)에서 한발짝도 벗어 나지 않고 깊이를 쌓았고, 필요할 때 꼭 있어야 할 자리(큰산)에 있음으로써 UN사무총장이란 영예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이렇게 '큰산'과 '반기문'이 같은 연결고리로 이어짐을 볼때 반기문 사무총장은 큰산의 정기를 받았음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天時와 地理의 도움을 받았음에 앞서 겸손한 인격을 바탕으로 한 人和로 평생을 살아왔음이 그가 유엔 사무총장이란 전세계적인 인물로 성장하는 가장 큰 이유일 것입니다.

 

반기문 생가앞 반기문 동상에서 인증샷

 

장수바위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 생가앞 정자(普德亭) 좌측에 "장수바위"가 있다.

 

장수바위의 전설

태고로 부터 원서(원남)땅에서 백마를 탄 장수가 태어나 천하를 통치할 것이라는 전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었다. 달이 참에 삼산산에선 삼신의 정기를 받아 삼신의 장수가 태어났고, 시루산에 시루산의 정기를 받아 시루의 장수가 태어나 자라고 있었다. 이에 본 장수바위는 삼신산의 장수가 태어난지 3일만에 뒷동산에 놀러왔다가 살구꽃향기에 취해 넓적한 바위에 누워 낮잠을자는데 그 장수의 체온으로 인해 바위가 녹아 장수의 몸체가 찍힘으로 이 바위를 장수바위라 부르게 되었다. 때가 이름에 천지를 진동하는 굉음소리와 함께 백마산 중턱에서 백마가 치솟아 하늘을 나는데 두 장수가 서로 자기말이라고 다투기 시작, 서로 바위를 던져 산심산과 시루산 중턱에 꽂혀 박혔고 백마는 주이니이 빨리 타주기를 바라며 하늘을 날다 지쳐 행치마을에 두번(장승맹이,부모골) 마송리에 두번(장승뱅이,진설미) 내려앉아 자기 주인을 기다렸지만 타지않차 백마는 슬피 울며 하늘로 올라갔다. 예나 지금이나 큰일을 앞에 놓고 서로 다투면 모두 잃는다는 교훈을 삼고자 뒷동산에 있던 장수바위를 도로확포장공사로 인하여 이 곳으로 옮기노라. /2011년7월 행치종중세움

 

반 기문 UN 사무총장 생가

위치 :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 602-2 (행치길17-1).

"문지방위에는 "반기문 유엔사무통장이 당선이후 네번째 고향을 방문했습니다. 복원된 생가에서 기념촬영을 한 뒤 반기문 기념관을 둘러보고 행사장에 참석한 주민,학생,아이의 손을 일일이 잡으며 고마움을 표했습니다" 라는 사진이 걸려있었다.

 

반기문(潘基文, 1944년 6월 13일 ~ )은 국제 연합(UN)의 사무총장이다.

본관은 거제(巨濟)이다. 2004년부터 2006년까지 제 33대 대한민국 외교통상부 장관을 지냈고, 2006년 말 국제 연합 사무총장에 당선되어 2007년부터 업무를 시작, 현재 재임중이다. 2011년 192개국의 만장일치로, 2012년 1월 1일부터 5년간 연임하게 되었다.

 

반기문 생가와 방문사진의 모습

 

광주반씨 종대의 모습

 

삼신산과 행치마을의 유래비의 모습

 

행치마을 앞 36번도로 지하통로 진입

 

반기문 생가을 관람하고는 행치마을 앞 36번도로 지하통로[암거]을 지나 우측방향으로 올라서면 좌측편에 달성석재 공장이 있고 우측편 능선으로 올라 임도길로 진행하다가 우측능선으로 진입한다.

 

달성석재 안부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무명봉에 도착하고 무명봉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임도길이 나온다. 임도길에서 직,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등로길 좌측편으로 커다란 산 하나를 깍아 뭉개서 원남산업단지 조성공사장이 보이고 조금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묘지 지대가 나오고 중앙으로 내려서면 임도길에 도착한다.

 

임도길에서 직진으로 능선길 접어들어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가정재에 도착한다. 가정재[바랑골재]는 북쪽방면은 음성군 원남면 상노리와 남서쪽방면은 원남면 마송리를 접하고 있는 농로이다. 시멘트 포장 농로를 통과 후 잡나무 지대는 낙엽이 진 후 등로가 보이지 않았다. 직진 방면으로 오른 후 마루금상에서 좌측으로 방향전환하며 내림길에 길주의 바란다.

 

행치재 마루금 루트

화살표 방향으로 마루금을 이어가야 하지만 36번 국도가 신설되어 이어가지 못하고  행치마을 지하통로로 진행한다.

 

 

행치마을 이정석

 

지하통로의 모습

행치고개 행치마을은 반씨 집성촌이며. 반기문 유엔 사무총장의 고향으로 안내 표지판부터 비석이며

초가집으로 생가가 꾸며져 있다. 유엔(the United Nations).  연못과 생가, 기념관을 둘러보고 정자에서

옷을 정리한다,

 

지하통로 통과 후 우측방향으로 진행하여 공터에서 다시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화살표 방향으로 진행

 

행치재 통과 루트

행치재 지하통로 통과 후 좌측방향으로 진행후 공터에서 우측방향 다시 좌측방향 임도길 오르다가 좌측편으로 올라서면 달성석재 안부에 도착한다.

달성석재 우측으로 오른 후 행치마을과 큰산 조망

 

달성석재 안부 임도길로 진행

 

행치마을(반 기문 UN 사무총장 생가 전경)조망

달성석재 안부를 올라 진행하면서 행치마을 뒤돌아본 모습 저멀리 큰산과 그아래 UN 사무총장을 배출한 윗행치 마을이 보인다.  

 

달성석재 안부에서 진행하다가 우측편 능선으로 진행하면 가정자삼거리에 도착한다.

 

 

무명봉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임도길이 나오고 좌측편으로 진행한다.

 

 원남산단단지 조성공사

등로길 좌측편으로 커다란 산 하나를 깍아 뭉개서 원남산업단지 조성공사가한창이다.

 

갈림길 통과

 

 

완만한 등로길의 모습

 

임도길 통과

 

임도길 통과후 뒤돌아본 모습

가족묘지가 있는곳 뒤편에서 이곳으로 진행

가정재 삼거리[바랑골재]

등로길이 어수선하여 잘못하면 알바하기 쉬운구간이다.

 

가정재[바랑골재]

가정재[바랑골재]는 북쪽방면은 음성군 원남면 상노리와 남서쪽방면은 원남면 마송리를 접하고 있는 농로이다. 시멘트 포장 농로를 통과 후 잡나무 지대는 낙엽이 진 후 등로가 보이지 않았다. 직진 방면으로 오른 후 마루금상에서 좌측으로 방향전환하며 내림길에 길주의 바란다.   

 

가정재[바랑골재] 통과후 뒤돌아본 모습

현위치 지면밑에 "충북선" 철로가 지나고 있는 지점이다.

가정재에서 직진으로 능선을 올라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는 이곳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임도에 도착한다 임도길에서 다시 좌측능선으로 올라 진행하면 무명봉이 나오고 내려서면 안부에 도착한다.

안부에서 오르면 급경사지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무명봉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378.5봉 삼각점이 나온다.

 

378.5봉 삼각점이 있는곳에서 한차례 완만하게 오르면 오대산 갈림길이 나오고 이곳에서 좌측방향[직진방면] 약 500m 거리에 오대산이 위치하고 있다.  마루금은 우측으로 방향전환하며 내려서면 묘지가 나오고  급경사지을 내려서면 515번 지방도로인 보천고개에 도착한다.

 

충북선 [忠北線] 

충청남도 연기군 조치원읍에서 충청북도 청주시, 괴산군 증평읍, 음성군 음성읍, 충주시를 경유해 제천시 봉양읍에 이르는 복선철도.총연장 129.2㎞, 영업구간 115.0㎞이다.

본래 이 노선의 조치원-충주 간 94.0㎞의 광궤선은 조선중앙철도회사의 사설철도로 1920년 3월에 착공하여 1921년 11월에 조치원-청주 간이 개통되었고, 1923년 9월 조선철도회사로 이관되어 1928년 12월에 조치원-충주 간이 개통되었다.

1946년 5월에 국유화되어 충주-봉양 간 35.2㎞ 중 1차로 충주-목행 간(6.1㎞)이 1956년 4월에, 목행-봉양 간(29.1㎞)이 1958년 5월에 각각 개통됨에 따라 충북선의 전구간이 완성되었다.

이 노선의 개통으로 충주비료공장에 공급할 무연탄과 유류를 비롯한 여러 자원을 종래의 영암선·영월선·함백선에서 중앙선을 경유해 청량리-용산-조치원으로 우회하여 수송하던 것을 봉양-목행 간 29.1㎞로 단축할 수 있게 되어 국토의 동-서를 연결하는 철도망으로서의 중요성을 더하게 되었다.

그후 수송수요의 증가에 따라 1975년 10월에 조치원-봉양 간 113.2㎞의 복선공사를 실시하여 1980년 10월에 완공했다. 소백산맥의 천등산 준령을 넘는 이 노선에는 길이 1,000m의 백악 터널을 비롯하여 8개의 터널이 연이어져 있어 총연장 3,229m의 인등 터널을 이루고 있다. 교량은 154개소가 설치되어 있으며, 16개역을 포함하고 있다. 연간 여객수송은 126만 7,000명이며, 화물수송은 발송이 24만 3,000t, 도착이 143만 3,000t에 이르고 있다(1991).

 

갈림길 통과

가정재에서 능선을 넘어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는 이곳에서 우측방향 버리고 좌측방향으로 내려 임도에서 다시 좌측능선으로 진행한다.

 

 

임도길 통과

갈림길 능선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임도길이 나오고 20m 진행후 다시 좌측편 능선으로 진행한다.

 

오대산갈림길로 이어지는 오름길의 모습

 

무명봉 좌측으로 통과

 

안무통과

무명봉에서 좌측편으로 통과하여 내려서면 안부가 나오며, 한차례 경사지을 오른다.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경사지 통과

급경사지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무명봉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378.5봉 삼각점이 나온다.

 

378.5봉의 모습

 

378.5봉 삼각점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무명봉을 우측으로 방향전환하여 진행하면 삼각점이 있는 378.5봉에 도착하며,육산에 많은 잡나무가 우거져 있었다.

 

오대산삼거리

378.5봉 삼각점이 있는곳에서 한차례 완만하게 오르면 오대산 갈림길이 나오고 이곳에서 좌측방향[직진방면] 약 500m 거리에 오대산이 위치하고 있다.  마루금은 우측으로 방향전환하며 내려서면 묘지가 나오고  급경사지을 내려서면 보천고개에 도착한다.

 

오대산갈림길에서 보천고개로 내려서는 경사길의 모습

낙엽이 많이 쌓여있어 등로길이 미끄러워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묘지지대에서 점심식사

보천고개 직전에 있는 묘지에서 이른 점심식사을 간단하게 하고는 보광산으로 진행한다.

 

보천고개[해발230m]

보천고개에서 서쪽방면은 음성군 원남면 주봉리방향이고 동쪽방면은 괴산군 소수면 옥현리를 있는 2차선 515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으며 도로명은 원소로 되어 있었다.

보천고개 주변에는  괴산군 보호수 85호로 지정된 큰 느티나무(높이12m,둘레4.3m 수령450년 지정일자82.11.16) 한 그루가 우측편에 있었다.

 

보천고개에서 2차선 도로 건너 우측편 임도길로 올라 갈림길에서 다시 좌측편 능선으로 완만하게 진행하면

377.9봉 삼각점[437 복구, 건설부 7410]에 도착한다. 봉우리 같지 않은 완만한 등로길 중앙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었고, 낙엽이 많아 그냥 지나칠수 있는 지점이었다.

 

377.9봉에서 완만하게 진행하면 무명봉이 나오고 무명봉을 통과하고 내려서면 내동고개에 도착한다. 내동고개는 북쪽방향으로 원남면 주봉리이고 동쪽방향은 소수면 몽촌리,소암리로 이어지는 고개이다. 고개 안부에 흔적만이 남아있고  주변 마을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고개는 아닌것 같았다.

 

내동고개에서 오르면 우측편으로 경주김씨 묘지가 나오고  잠시 후 백마산 갈림길에 도착한다. 백마산 갈림길 우측편 나무에 백마산 안내판이 있었고, 백마산갈림길 이정표는 없었다. 이곳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백마산(460m)정상으로 이어지는데  왕복 한시간 정도 소요된다.

 

보천고개(해발230m)

보천고개는 토골고개라고 부르기도 하며, 515번 지방도 2차선 우측편에 수령이 450년이나 되는 큰 느티나무 한그루가 괴산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일부 대원들이 식사을 하고 있었고 오뎅국에 소주한장을 권하여 반갑게 받아 마시고는 2차선 도로 건너 우측편 임도길로 이어간다.

  

보천고개[해발230m, 토골고개]

2차선 515번 지방도가 지나며 음성군 원남면 주봉리와 괴산군 소수면 옥현리의 경계지점이기도 하다.

 

보천고개 통과

느티나무 반대편방향 도로을 횡단하여 우측편 임도길로 올라 임도갈림길에서 임도길 버리고 좌측편 능선으로 진행하면 보광산 갈림길에 도착한다.

 

 

임도갈림길 통과

보천고개에서 우측방향 임도로 오르면 임도갈림길이 나오고 직진방향 임도길 버리고 좌측방향 능선으로 진행한다.

 

등로길에서 채취한 토복령의 모습 

보천고개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여 임도갈림길에서 좌측능선으로 조금 진행하니 남파님께서 무언가을 채취하고 계신다 한참을 구경하고는 등로길 걸어가면 어디에 사용하는 약제인지 여쮜어 보니 통풍 및 관절에 도움이 된다고 하시며, 약제명은 토복령[청미래덩쿨 뿌리] 이라고 하신다 약제을  채취하느라 식사도 제대로 못하신지 이동하시면서 행동식을 먹어면서 진행하신다. 여기서부터는 남파님께 동행하면서 보광산까지 진행한다.

 

445봉 통과

 

낙엽이 많은 완만한 등로길의 모습

 

377.9봉 삼각점의 모습

 

 

377.9봉 삼각점[437 복구, 건설부 7410]

봉우리 같지 않은 완만한 등로길 중앙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었고, 낙엽이 많아 그냥 지나칠수 있는 지점이었다.

 

 

바위가 있는 등로길 통과

 

무명봉 통과

넓은 공간에 잡나무가 있는 무명봉인데 이곳에서 야영하기 좋은곳 같았다.

 

내동고개 통과

북쪽방면은 원남면 주봉리이고 동쪽방면은 소수면 몽촌리,소암리로 이어지는 고개이다. 고개 안부에 흔적만이 남아있고  주변 마을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고개는 아닌것 같았다.

 

 

경주김씨묘

백마산갈림길 직전에 잇는 묘지

 

 

백마산 갈림길의 모습

마루금 우측 나무에 백마산 안내판이 있었고, 백마산갈림길 이정표는 없었다. 이곳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백마산(460m)정상으로 이어지는데  왕복 한시간 정도 소요된다.

 

산악회에서 등로길에 표시한 표지기의 모습

 

백마산 갈림길 나무에 있는 표지기의 모습

 

백마산 갈림길

백마산 갈림길은 괴산군에 있지만 잠시 후 괴산군의 경계와 함께 이어간다. 백마산(465m)은 산세가 이름다워 소금강이라 부르며, 백마산 중턱에는 백마굴이 있고 산의 서쪽 5㎞ 정도 떨어진 곳에 백마령이 있는데 백마령은 예로부터 교통로의 몫을 해왔으며  현재는 충북선 철도와 청주∼충주 간 국도가 지난다.

 

백마산갈림길에서 우측방향 백마산방향 버리고 직진으로 완만하게 진행하면 고리티고개에 도착한다. 고리티고개는 충북 괴산군 사리면 소암리와 소매리를 잇는 고개이다. 고리티고개에서 올라서면 무명봉이 나오고 조금더 진행하면 임도에 도착한다.

 

산림관리용 임도로써 서쪽방면은 음성군 원만면 소매리방향이고 동쪽방면은 괴산군 소수면 소암리 일대의 산지를 연결하는 임도길이다. 임도길에서 직진으로 오르면 395.4봉에 도착하고 그곳에는 삼각점이 있었다.

 

395.4봉 삼각점이 있는곳에서 진행하면 소암마을 갈림길이 나오고 직진으로 오르면 보광산 갈림길에 도착한다.  보광산 갈림길 바로 아래에는 괴산 봉학사지오층석탑과 김참판묘가 있었고 조금더 계곡으로 내려서면 보광사가 자리잡고 있다. 보광산 정상은 정맥길에서 약200m 벗어나 있지만 보광산 정상을 방문 후 모래재 방면을 진행한다.

 

보광산정상을 직고는 다시 갈림길로 복귀하여 능선으로 진행하지 않고 괴산 봉학사지오층석탑과 보광사을 관람하고는  보광사 임도 삼거리에서 우측방향으로 전환하면  계단이 나오고 계단을 이용하여 내려서면 시동마을 갈림길에 도착한다.

 

시동마을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묘지지대가 나오고 방향을 좌측으로 전환하여 내려서면 저멀리 모래재와 수암낚시터가 조망된다. 마루금은 묘지지대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는것이 맞는데 신34번 국도가 개설되어 진행하지 못하고 좌측편에 있는 지하통로을 이용하여 수암낚시터에서 우회하여 모래재에 도착한다. 모래재에서 본부가 설치되어 있는곳 까지는 약1km 그곳 계곡에서 세면을 하고는 귀경길에 오른다

 

 

안부 통과

 

완만한 등로길 진행

 

고리티고개 통과

고리티고개는 충북 괴산군 사리면 소암리와 소매리를 잇는 고개이다.

 

무명봉 통과

 

임도 통과

서쪽방면은 음성군 원만면 소매리방향이고 동쪽방면은 괴산군 소수면 소암리 일대의 산지를 연결하는 산림관리용 임도이다.

 

 

395.4봉의 모습

 

 

395.4봉 삼각점의 모습

 

395.4봉 삼각점 안내판의 모습

 

소암마을 갈림길 이정표 : 백마산[40분], 소암[30분], 둔터골[30분], 보광산[40분]

 

 

보광산 갈림길의 모습

모래재방면은 좌측방향으로 진행하고 보광산 정상부는 우측방향으로 이어가면 된다. 보광산 정상은 이곳에서 약200m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보광산삼거리 이정표 : 고리티재[30분], 보광산[5분], 모래재[50분]

보광산 갈림길 아래에는 괴산 봉학사지오층석탑과 김참판묘가 있었고 조금더 아래에는 보광사가 자리잡고 있다. 보광산 정상은 정맥길에서 약200m 벗어나 있지만 보광산 정상을 방문 후 모래재 방면을 진행한다.

 

보광산[해발539m]

보광산 삼거리와 보광산 정상 사이의 남쪽에 김참판묘와 봉학사지 오층석탑이 위치하고 있다.

 

보광산

원래 이름은 봉학산이었으나 조선 중기 이후 보광산이라고 부른다. 정상에는 봉학사터가 있으며, 사찰 건물은 남아 있지 않으나, 괴산 봉학사지오층석탑 (충북유형문화재 29)이 현존해 있다.

고려 때의 작품으로 추정되며, 일제강점기때 무너졌던 것을 1967년 복원하였다.

산 아래에는 봉학사의 후신인 보광사가 자리잡고 있다.보광사 대웅전 에는 봉학사지석조여래상을 주존불로 모시고 있다. 대웅전 오른쪽의 바위 아래에서는 석간수가 솟아난다. 아무리 가물어도 마르지 않는다고 한다. 산이 높지 않고 험하지 않아 가족 등반 코스로 좋다.

 

보광산[寶光山, 해발539]

 

보광산[寶光山, 해발539m]

원래 이름은 봉학산이었다가, 조선 중기부터 보광산이라고 부른다. 정상 바로 아래에는 봉학사 터가 있다.

사찰 건물은 남아 있지 않으나, 괴산봉학사지오층석탑(충북유형문화재 29)이 전해진다.

 

괴산 봉학사지오층석탑과 김참판묘.

 

괴산 봉학사지 오층석탑 안내문

보광사 200m 위쪽에 위치한 봉학사지 5층석탑은 충북유형문화재 29호다기단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채 평평한 돌로 5층의 탑신이 올려져 있다.

탑신의 1층 몸돌은 2개의 돌로 이뤄졌고 나머지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1층 몸돌은 큰편이고 2층 몸돌에서 급격히 낮아지다가 5층까지는 비슷한 크기를 유지한다각 층 지붕돌은 두꺼운 편이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전체적으로 비례가 좋지 않고 지붕돌이 두꺼워진 점등으로 보아 고려시대 작품으로 짐작된다

 

 

[괴산 봉학사지 오층석탑]

이 탑은 보광사 뒤편의 옛 절터에 남아 있다.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4매의 지대석 위에 기단부가 없어진 채 탑 몸돌 부분이 올라가 있다.

상륜부에는 노반과 복발이 남아 있다.

초층을 제외하고 2층부터는 탑 몸돌과 지붕돌이 1매의 돌로 이루어져 있다.

체감 비율이 약해서 경쾌한 맛이 없다.

1966년에 2층 지붕돌의 사리공에서 청동사리함과 청동불상이 발견되었는데, 불상에서 "봉학산 봉학사(鳳鶴山鳳鶴寺)"라는 시주문이 발결되었다. 봉학사지에서 계곡쪽으로 200m 거리에 보광사가 있으나, 정맥길 마루금 방면으로 진행한다.

 

괴산 봉학사지 오층석탑 아래에 있는 우물터

보광사 대웅전

보광산 중턱에 자리잡은 사찰이다. 고려 28대 충혜왕 1년에 창건됐다 조선 현종때 폐사된 봉학사 터 아래에 건립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충청북도지에 의하면 1925년 폐사지에 권봉주 스님이 초막을  세우고 김봉삼 스님이 1936년부터 폐사지에 있던 봉학사지 석조여래좌상을 아래쪽에 새로 지은 대웅전에 봉안해 주존볼로 모시면서 보광사로 건립한 것이라고 적혀있다.

1967년 사찰 위쪽에 있는 봉학사지를 발굴조사한 기록에 따르면 봉학사지 5층 석탑 2층 옥개석 사리공에서 조선 세조때 탑을 보수한 기록문이  나왔다고 하며 폐사지에서 수습한 암막새에 음각된 당초문이 고려 중기 이후인 것으로 밝혀져 봉학사의 창건과 중수연대를 가늠할 수 있게 됐다. 보광사는 크게 대웅전, 삼성각, 요사건물로 이뤄진 작은 가람으로 이 곳에는 구례 손씨와 깊은 인연이 있는 설화가 전해져 오고 있다.

 

보광사 설화

설화에 따르면 대웅전에 봉안된 석조여래좌상은 본래 봉학사의 법당에 있었는데, 조선 현종때 충청도 관찰사였던 김소의 자손들이 이 절터가 풍수지리설에서 금계포란형의 명장자리로 소문났기 때문에 김소의 묘를 법당자리에

쓰면서 불상을 근처에 파묻어 버렸다는 것이다. 그러던 어느날 한 스님이 찾아와 명당을 더 복되게 하려면 계곡아래

물을 막아 복이 새나가는 것을 막으라고 일러주었고, 자손들이 그 말대로 하자 집안이 망했다.금계포란형은 금닭이 알을 품은 형국인데, 물이 흐르지 못하여 알이 썩는 바람에 집안이 망했다는 것이다. 그 뒤 19세기 중엽 보광사 아래 하도마을에 사는 손씨의 꿈에 노승이 나타나서 옛날에 파묻은 불상의 위치를 알려주고는 이제 때가 됐으니 보광사 남쪽 언덕에 있는 땅속에서 불상을 파내어 봉안하라고 했다. 이에 손 씨는 마을사람들과 산에 올라가 불상을 파내고 봉안했는데 그후로 손씨 집안은 크게 번창했다고 한다.

 

보광사에 들어서니 일주문도 없고 달랑 새로 단청을 한듯 대웅전만 깔끔하다. 입구에 등나무의 보라색꽃이 산꾼을 반긴다. 입구에서 대웅전을 향해 저두 삼배로 부처님께 예를 올리고 대웅전과 옆에 건물의 문을 여니 다 문이 굳게 잠겨있다.

 

보광사 대웅전의 모습

 

괴산 봉학사지 석조여래상 안내문의 모습

 

 

보광사의 모습

 

보광사 갈림길 임도 통과

 

갈림길 이정표 : 보광사[1분] 보광산[15분]

 

 

갈림길의 모습[뒤돌아본 모습]

보광산에서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임도길은 보광사방면이고 우측능선길은 보광산으로 이어지는 등로길이다.

 

편안한 임도길의 모습

 

 

보광사 삼거리 임도의 모습

 

보광사 삼거리 이정표 : 괴산의 명산 보광산 1.5km

 

보광사삼거리통과[길주의]

보광사에서 내려서면 임도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방향 버리고 우측방향으로 방향 전환하여 나무계단을 올라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시동마을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 임도는 서쪽방면 괴산구 사리면 사담리와 남동쪽방면 수암리로 연결된다. 잘못하면 알바하기 쉬운지점이다. 

 

보광사 삼거리 우측편에 있는 계단 이용 

 

시동마을 갈림길 통과

보광사 임도 삼거리에서 우측편 계단을 이용하여 내려서면 이곳에 도착한다. 좌측방향 시동마을 버리고 우측편으로 내려서면 가족묘지가 나오고 그 옆으로 내려서면 34번 신국도 나온다.

 

시동마을 갈림길 이정표 : 보광산 20분, 시동마을 40분, 모래재 30분

 

시동갈림길에서 내려서면 10여기의 묘지가 있는곳에 도착하고 좌측편으로 내려서면 신34번국도에 도착하게된다.

 

봉성군 구례손씨 묘소에서 바라본 수암저수지의 모습

묘지 지대에서 바라본 수암저수지와 마루금은 현위치에서 우측으로 있으나 신34번 구도 개설되어 진행하지 못하고 좌측편에 있는 지하통로을 이용하여 수암낚시터를 우회하여 임도길 따라 내려간다.

 

봉성군 구례손씨 묘소에서 바라본 마루금 괴산군의 모습

 

한남금북정맥이 통과하는 괴산군은 삼국시대에는 백제의 영역이었다가 고구려의 잉근내현, 상모현, 도서현이 되었고, 다시 신라에 속해 괴양현과 도서현이 되었다고 한다.
이후 995년(고려 성종 14) 충주, 청주 등 13주 45현으로 구성된 중원도에 속했다가, 1018년(현종 9) 괴주지역이 괴주군, 장연현, 장풍현, 청천현, 청당현, 청안현이 되었고 1413년(태종 13)부터 괴산군이라 불리었다고 한다. 현재는 1읍 10면으로 이루어져 있다.

경북과 경계를 이루면서 솟아오른 백두대간이 동남쪽으로 가로막고 있어 충북에서도 가장 오지인 괴산 괴산읍의 동쪽으로 흐르는 달천을 괴강이라고 부르며 괴산읍 대덕리에는 괴탄(槐灘)이라는 느티여울도 있다. 이 지역 지명에 유난히 홰나무 괴(槐)字가 많이 들어가 있다. 신라 진평왕 28년(606년) 가잠성을 지키던 신라장수 찬덕은 백제의 대군에게 포위되어 석달 열흘을 버티다가 끝내 항복을 거부하고 느티나무에 머리를 받아 자결을 하였다.

후에 왕위에 오른 태종무열왕은 찬덕을 기리기 위해 이 지역 고을이름에 “槐”字를 넣었다고 전해진다.

충북의 지형이 그믐달 모양이다. 그 그믐달의 오목한곳 가운데가 괴산군이다.

한남정맥길은 괴산군을 빙돌아 지나가지만 괴산군 명산 35개나 있는 백두대간에 비할바는 아니다.

 

임도 통과

묘지지대에서 내려서면 임도길링 나오고 그 옆으로 보광산 등산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다.

 

 

보광산 등산 안내도

 

봉성군 구례손씨 묘소

시동마을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가족묘지가 나오고 이곳에서 부터는 화살표 방향으로 내려서면 된다.

 

신34번 구도 지하통로 통과

 

지하통로의 모습

봉성군 구례손씨 묘소 안내판에서 직진으로 진행하면 신34번국도지하통로가 나오고 통로 통과하여 내려서면 모래재에 도착한다.

 

수암낚시터 통과

신34번 국도 지하통로 통과하면 좌측편으로 수암낚시터가 나오고, 마루금 모래재방향은 우측편 임도길로 우회하여 내려서면 된다.

 

수암낚시터의 모습

수암낚시터에서 보광산 방면으로 뒤돌아 본 모습

 

모래재 도착

수암낚시터 통과하여 임도길 내려서면 모래재[구34번국도]가 나오고 그 뒷편으로 지난번 하산한 보광산관광농원이 한눈에 들어온다.

 

모래재 들머리지점

주변위치 : 충북 괴산군 사리면 수암리 798-1

구34번 국도 좌측편에는 보광관광농원 입구가 있고 그 옆으로 의병장 한봉수를 주축으로 모래재에서 일어난 항일구국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괴산군에서 세운 "모래재의병격전유적비"가 있다.

마루금은 구34번국도을 건너 수암낚시터 입간판 임도길로 진행하여 지하통로 통과후 좌측방향 묘지가 많은곳으로 이어가면 마루금에서 약간 비껴있는 보광산에 도착한다.

 

구34번 국도에서 바라본 증평방면의 모습

 

구34번국도에서 바라본 괴산방면의 모습

 

모래재 의병격전 유적비의 모습

 

모래재의병격전 유적비

모래재의병격전유적비(모래재義兵激戰遺蹟碑)

이 유적비는 의병장 한봉수(韓鳳洙)를 주축으로 모래재에서 일어난 항일구국운동을 기념하기 위하여 괴산군에서 건립한 것이다. 항일구국(抗日救國)의 뜻을 품은 의병장 한봉수는 이정구 등 9명의 의병을 지휘하여 1908년 5월 이곳 모래재를 지나가는 일본군 우편물 호송대를 습격하여 이들을 사살하고 총기, 탄약, 우편물 등을 노획하는 성과를 올렸다.

한봉수 선생은 1883년 4월18일 충청북도 청원군에서 태어나 대한제국군 진위대 상등병으로 복무하다가 1907년 군대가 강제 해산되자, 동년 8월(음)에 의병장 김규환(金奎煥) 의진(義陣)에 가담하여 일군 수비대 및 헌병대를 습격하는 등 맹활약 하였다.

가을에는 해산 군인 100여명을 규합하여 왜적구축대(倭敵驅逐隊)를 조직하였으며 대장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오근장(梧根場) 부근에서 일 헌병대위 도기선치(島崎善治)를 사살하고 강원도로 수송되는 세금수송대를 습격하여 군자금을 확보하였으며 이후 일군과 33회의 격전을 치렀다. 1919년에는 고종황제의 국장(國葬)에 즈음하여 홍명희.손병희 등과 독립운동의 방략을 논의하였으며 독립선언서를 가지고 귀향하여 3월7일 청주의 서문장터 입구 마차 위에서 선언서를 살포하고 장군들과 함께 대한독립만세를 주도 하였고 4월1일에는 묵일면 세교리 구시장에서 다시 면민을 동원하여 만세시위를 벌였으며 다음 날에 다시 내수보통학교 학생 80여명과 같이 만세시위를 전개하다가 일경에게 체포되어 1919년 5월 6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징역 1년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63년에 전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하였으며 괴산군에서는 국권회복과 민족의 정통성을 이으려는 선열의 우국충정을 길이 전하고자 높이 3M 넓이 2.5M 크기의 이 유적비를 1984년도에 건립하였다.

 

모래재 들머리지점

보광산수련원 입간판에서 구34번 국도을 건너 수암 낚시터 방향으로 진행하면 보광산으로 이어진다. 오늘 산행은 모래재에서 시작해야 했는데 삼실고개에 물이 없어 역방향으로 진행했다.

 

모래재[해발228m]

위치 : 충북 괴산군 사리면 수암리 796-1[모래재646-8]

모래재는 구34번 국도서쪽방면의 증평군과 동쪽방면의 괴산을 연결하는 2차선 도로에 위치하고 있다

모래재 주변에는 보광산수련원과 의병격전유적비가 있었고. 의병장 한봉수(韓鳳洙)가 이정구등 9명의 의병대로 1908.5월 모래재를 지나던 일본군 우편물 호송대를 습격, 전과를 올린 항일구국운동을 기념하기 위하 괴산군에서 건립하였다.

 

 모래재[해발228m]

모래재는 구34번 국도상의 고개마루에 위치하고 있으며 증평군과 괴산군 중간지점에 있다. 모래재인 이곳에 정맥길이 있어야 하는데 옹벽과 낙석방지펜스가 설치되어 있어 통과하지 못하고 신34번도로 지하통로을 지나 수암낚시터를 연결하는 우회로를 이용하고 있다.


모래재에서 정맥길을 종료하고 서쪽 증평방면 약900m 거리에 있는 집결지에서 산악회에서 준비한 음식을 먹고 계곡에서 간단하게 목욕을 하고는 귀경길에 오른다.

 

 

[삼실고개~행치재]

삼실고개는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와 초전리를 잇는 1차선 도로 고개 마루에 있으며, 이곳은 밤나무가 많아서 그런지 밤나무재라고 부르면 길가에는 밤나무 체험농장과 복분자를 파는 농장이 있다. 큰산방향은 우측편 건물을 끼고 완만하게 진행한다.

 

삼실고개에서 완만하게 진행하면 첫번째 무명봉이가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전환하여 진행하면  벌목지대가 나온다. 급경사지을 한차례 밀어 올리면 517봉에 도착하고 좌측방향으로 전환하여  내려서면 임도길이 나오는데 이길이 반기문 비채길이다.

 

임도길을 통과한후 우측능선으로 올라 다시 내려서면 임도길이 나오고 임도길로 큰산가지 올라도 가능하지만 잠시후 다시 우측능선으로 올라 큰산에 도착한다.

 

큰산은 원남면 보룡리, 하당리, 덕정리에 걸쳐있는 산으로서 일명 보덕산이라고 한다. 큰산의 서남쪽으로 꽃절이 있으며 바위가 움푹 패여 10여평이 되는데 특이하게 바위아래 불상이 있으며 꽃절 바위에서 나오는 약수가 유명하다.등산을 하다보면 임도가 잘 닦여 있어 등산하기가 매우 편리 하며 천연림이 울창하게 생육하고 있다. 산 정상에는 페러글라이딩 출발 장소가 조성되어 있어 많은 회원들이 이용하고 있다.

 

큰산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일품이고 발아래에는 행치재가 보이는데 그옆으로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의 생가가 자리잡고 있어 세인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음성군 원남면 상당리 행치마을로 광주반씨 집성촌이다. 집성촌이라는 사실을 증명하 듯 마을 뒤편 산에는 종중묘역이 조성돼 있다음성군에서는 세계적인 인물이 탄생한  이곳에 생가를 복원하고 관광자원화 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 이러한 사원이 완료되면 이 곳은 아마도 전국적으로 유명한 관광지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바로 반기문 생가가 있는 마을을 품고 있는 산이 큰 산이다. 큰 산은 일명 보덕산이라고도 불린다. 큰 산이 품고 있는 마을에서 반기문이라는 큰 인물이 태어났다는 것이 이채롭다. 반기문 생가을 방문하고는 모래재로 진행한다.

 

[행치재~가정재]

반기문 생가을 관람하고는 행치마을 앞 36번도로 지하통로[암거]을 지나 우측방향으로 올라서면 좌측편에 달성석재 공장이 있고 우측편 능선으로 올라 임도길로 진행하다가 우측능선으로 진입한다.

 

달성석재 안부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무명봉에 도착하고 무명봉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임도길이 나온다. 임도길에서 직,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등로길 좌측편으로 커다란 산 하나를 깍아 뭉개서 원남산업단지 조성공사장이 보이고 조금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묘지 지대가 나오고 중앙으로 내려서면 임도길에 도착한다.

 

임도길에서 직진으로 능선길 접어들어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가정재에 도착한다. 가정재[바랑골재]는 북쪽방면은 음성군 원남면 상노리와 남서쪽방면은 원남면 마송리를 접하고 있는 농로이다. 시멘트 포장 농로를 통과 후 잡나무 지대는 낙엽이 진 후 등로가 보이지 않았다. 직진 방면으로 오른 후 마루금상에서 좌측으로 방향전환하며 내림길에 길주의 바란다.

 

[가정재~보천고개]

가정재에서 직진으로 능선을 올라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는 이곳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임도에 도착한다 임도길에서 다시 좌측능선으로 올라 진행하면 무명봉이 나오고 내려서면 안부에 도착한다.

안부에서 오르면 급경사지에 로프가 설치되어 있고 무명봉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378.5봉 삼각점이 나온다.

 

378.5봉 삼각점이 있는곳에서 한차례 완만하게 오르면 오대산 갈림길이 나오고 이곳에서 좌측방향[직진방면] 약 500m 거리에 오대산이 위치하고 있다.  마루금은 우측으로 방향전환하며 내려서면 묘지가 나오고  급경사지을 내려서면 515번 지방도로인 보천고개에 도착한다.

 

[보천고개~백마산 삼거리]

보천고개에서 서쪽방면은 음성군 원남면 주봉리방향이고 동쪽방면은 괴산군 소수면 옥현리를 있는 2차선 515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으며 도로명은 원소로 되어 있었다.

보천고개 주변에는  괴산군 보호수 85호로 지정된 큰 느티나무(높이12m,둘레4.3m 수령450년 지정일자82.11.16) 한 그루가 우측편에 있었다.

 

보천고개에서 2차선 도로 건너 우측편 임도길로 올라 갈림길에서 다시 좌측편 능선으로 완만하게 진행하면

377.9봉 삼각점[437 복구, 건설부 7410]에 도착한다. 봉우리 같지 않은 완만한 등로길 중앙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었고, 낙엽이 많아 그냥 지나칠수 있는 지점이었다.

 

377.9봉에서 완만하게 진행하면 무명봉이 나오고 무명봉을 통과하고 내려서면 내동고개에 도착한다. 내동고개는 북쪽방향으로 원남면 주봉리이고 동쪽방향은 소수면 몽촌리,소암리로 이어지는 고개이다. 고개 안부에 흔적만이 남아있고  주변 마을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는 고개는 아닌것 같았다.

 

내동고개에서 오르면 우측편으로 경주김씨 묘지가 나오고  잠시 후 백마산 갈림길에 도착한다. 백마산 갈림길 우측편 나무에 백마산 안내판이 있었고, 백마산갈림길 이정표는 없었다. 이곳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백마산(460m)정상으로 이어지는데  왕복 한시간 정도 소요된다.

 

[백마산삼거리~모래재]

백마산갈림길에서 우측방향 백마산방향 버리고 직진으로 완만하게 진행하면 고리티고개에 도착한다. 고리티고개는 충북 괴산군 사리면 소암리와 소매리를 잇는 고개이다. 고리티고개에서 올라서면 무명봉이 나오고 조금더 진행하면 임도에 도착한다.

 

산림관리용 임도로써 서쪽방면은 음성군 원만면 소매리방향이고 동쪽방면은 괴산군 소수면 소암리 일대의 산지를 연결하는 임도길이다. 임도길에서 직진으로 오르면 395.4봉에 도착하고 그곳에는 삼각점이 있었다.

 

395.4봉 삼각점이 있는곳에서 진행하면 소암마을 갈림길이 나오고 직진으로 오르면 보광산 갈림길에 도착한다.  보광산 갈림길 바로 아래에는 괴산 봉학사지오층석탑과 김참판묘가 있었고 조금더 계곡으로 내려서면 보광사가 자리잡고 있다. 보광산 정상은 정맥길에서 약200m 벗어나 있지만 보광산 정상을 방문 후 모래재 방면을 진행한다.

 

보광산정상을 직고는 다시 갈림길로 복귀하여 능선으로 진행하지 않고 괴산 봉학사지오층석탑과 보광사을 관람하고는  보광사 임도 삼거리에서 우측방향으로 전환하면  계단이 나오고 계단을 이용하여 내려서면 시동마을 갈림길에 도착한다.

 

시동마을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묘지지대가 나오고 방향을 좌측으로 전환하여 내려서면 저멀리 모래재와 수암낚시터가 조망된다. 마루금은 묘지지대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는것이 맞는데 신34번 국도가 개설되어 진행하지 못하고 좌측편에 있는 지하통로을 이용하여 수암낚시터에서 우회하여 모래재에 도착한다. 모래재에서 본부가 설치되어 있는곳 까지는 약1km 그곳 계곡에서 세면을 하고는 귀경길에 오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