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지맥 1구간 각동리 중말마을에서 사지원계곡삼거리까지 산행

2016. 6. 1. 09:09★ 기맥,지맥/영춘영월지맥[완료]

영춘지맥 1구간 각동리 중말에서 사지원계곡삼거리까지 산행



산 행 지  :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 / 강원도 영월군 하동면, 영월읍, 김삿갓면, 남면

                     태화산(해발1027m).국지산(해발1.031m) (영춘지맥 출정)


◈  산행일시 : 2016년 6월4일(토요일, 당일산행)


산행코스 : 각동리 중말마을(남한강/옥동천)-620봉-711봉-715봉-괴목골 삼거리-고시굴삼거리-산성터-

                     915봉-헬기장-전망대- 절골삼거리-전망대(도경계)-980봉-1.025봉-밧줄-태화산주봉(1.027봉/

                     정상석 2개)-절고개-태화산(상봉/1.031봉)-지맥갈림길-영춘지맥-흥교마을 상단-포장도로-

                     흰깃재-임도-561봉-사지원계곡길삼거리(임도)-단양군 영춘면 사지원2리


◈  산행시간 : 12시35분~17시45분(5시간10분, 식사 및 휴식시간 포함)


산행거리 : 약 14.9km(지맥 12.7km, 접속구간 2.2km), GPS거리 13.57km 


◈  산행인원 : 42명


◈  산행날씨 : 무더운 여름날씨(영상27도)


◈  산행코스 및 소요시간 : 도상거리(13km), 실제거리(14.9km), 소요시간( 5시간30분), GPS거리(13.57km)

     각동리 황토민박(각동리 경로당)-3.9km/4.3km(2시간)-산성터삼거리(고씨동굴삼거리)-2.7km/3.1km

     (1시간10분)-태화산정상-0.7km/0.9km(20분)-태화산상봉-2.5km/3.0km(1시간)-흥교삼거리(흰깃재)-

     0.8km/1.0km(20분)-산불감시초소(570봉)-2.4km/2.6km(40분)사지원2리


◈  교통 : 경진관광

 


◈  산행 상세안내

지명

거리

(km)

출발시간

소요시간

비 고

각동 중말마을

-

12:35

-

해발180m, 595지방도로, 영월군 김삿갓면(예전엔 하동면)에 속한 마을로서 예전에 나루터가 있었다고 해서 뱃나드리라 불렀던 곳

산성터 갈림길


14:22

1시간47분

해발885m, 지맥 마루금 좌측방향, 산성흔적, 송전철탑 철거흔적, 이정표

태화산 정상


15:35

1시간7분

해발1027m, 정상석 2개, 삼각점(△영월23 / 1995 복구), 강원도 영월군 남면 ·김삿갓면과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 조망없음

태화산 상봉


15:47

12분

해발1031m,

흥교 삼거리


16:50

1시간3분

해발530m, 흰깃재,강원도 영월군 남면 조전리 산 8-1,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흥월리와  충북 단양군 영춘면 사지원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

산불감시초소


17:01

11분

해발570m, 지맥마루금 우측 경사지로 진행

사지원2리


17:45

44분

해발530m, 충북 단양군 영춘면 사지원2리 버스정류장앞
















마루금거리



4시간30분


접속거리



40분


총거리



5시간10분


GPS거리





영월군 김삿갓면(예전에는 하동면) 각동리 중말마을, 각동마을 표지석,각동리경로당 건너편 황토민박 도착

595번 지방도로 건너 각동리 경로당 옆 시멘트 포장도로를 따라 산행 시작

삼거리 통과 묘지가 있는 곳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원 마루금은 묘지삼거리에서 우측방향 도로로 진행 - 순천박공과  영월신씨의 부부 합장 묘를 좌측편에 두고 진행-시멘트 임도 접속-)시멘트 임도길 버리고 좌측방향으로 진행-다시 밭 가운데를 가로 지른 다음에 묘지를 지나 포장임도 접속-안동막가님의 시그널 통과후 시멘트 포장도로 계속 진행)

 밤나무 농장 끝부분  임도에 반사경이 설치되어 있는 지점에서 임도를 버리고 좌측으로 전환 본격적인 영월지맥 능선으로 진행

완만하게 진행

갈림길 우측방향 숲속으로 진행, 좌측편으로 밭이 있음

자연석으로 묘지 담장을 만들어 놓은 무명묘지 통과

봉분이 거의 없는 무명묘지을 통과하면 고도가 높아지면서 힘든 산행이 시작

급경사 오름길 등로길TV안테나가 있는 지점 통과

묘지통과

620.8봉, 각동봉 통과, 620.8봉 삼각점(△예미 441 / 2004 재설)

콘크리트 구조물 통과, 620.8봉에서 급경지를 내려서면 안부에 콘크리트 말뚝이 있고 ‘山’이란 표시

711봉 통과,

715봉 통과

괴목골 갈림길 통과, 직진으로 진행 

고씨동굴 갈림길(산성터 갈림길),  이정표 : 고씨굴 3.0km, 큰골 4.3km, 태화산정상 2.7km, 마루금 좌측방향으로 진행

송전탑이 철거된 흔적터 통과

폐기된 전신주 통과

915봉 통과, 이정표 : 팔괴리 1.7km, 태화산 2.4km, 큰골 4.0km, 고씨골 3.3km

태화산성 갈림길 통과

이정표 : 큰골 3.94km, 태화산정상 2.34km, 고씨굴 3.36km

초지지대 통과

헬기장 통과

암릉지의 이정표 : 큰골 3.27km, 태화산정상 1.67km, 고씨골 4.03km

제1전망대, 각동리 마을과 남한강을 조망

이정표 : 큰골 2.7km, 태화산정상 1.1km, 고씨굴 4.6km

안부 이정표 : 큰골 2.57km, 태화산정상 0.97km, 고씨굴 4.73km

이정표 : 큰골 2.50km, 태화산정상 0.9km, 고씨굴 4.8km

1,025봉, 두번째 만나는 전망대 통과

로프가 설치된 암릉구간 통과

큰골 갈림길 통과, 이정표 : 고시굴 5.1km, 큰골 2.2km, 태화산정상 0.6km

나무다리 통과

로프지대 통과

암릉지 이정표 : 큰골 2.4kkm, 태화산정상 0.4km,

이정표 : 태화산정상 100m, 큰골 2.8km

태화산(太華山:1,027m) 정상, 태화산 정상 삼각점(△영월23 / 1995 복구), 강원도 영월군 남면 ·김삿갓면과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

달곳 갈림길 통과

단양, 영춘갈림길 통과, 우측방향으로 진행

벌목지대 통과

등산로 표지판이 있는곳 직진으로 진행

묘지을 내려서면 시멘트 임도길이 나오고 우측방향 도로 따라 진행

원형 스텐레스 저장탱크가 있는 삼거리에서 우측방향으로 밭을 우회하여 숲길로 진행

묘지가 있는곳 통과

당집 통과

도로 접속, 우측방향으로 진행

흰깃재(흥교재),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흥월리와  충북 단양군 영춘면 사지원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

흥교재나그네 쉼터 삼거리에서 좌측 임도로 진행

임도 버리고 우측방향 숲길로 진행

570m봉, 산불감시초소

임도길 접속

영춘지맥 1구간 산행종료

좌측편 임도길로 하산

사지원2리 버스 정류장, 강원도와 충청북도 경계지점

산행종료





 





◈  산행지도


 

영춘지맥 1-2지도(각동리-태화산-흥교마을-606.8m봉-사지원2리)

□ 고도표

 

 

 

 








영춘지맥[寧春枝脈]



 영춘지맥이란 백두산에서 지리산으로 이어지던 백두대간이 오대산의 두로봉에서 서쪽으로 가지를 쳐 한강기맥을 일구고, 한강기맥을 일군 산줄기는 불발현과 구목령 부근에서 또 다른 산줄기를 만들어 북한강과 남한강으로 이어진다.

북쪽으로 가지를 친 산줄기는 응봉산, 백암산, 가마봉, 소뿔산, 매봉, 가리산, 대룡산, 연엽산, 봉화산, 새덕산 등을 일군 다음 춘천의 서천리에 있는 춘성대교에서 그 맥을 북한강에 넘기고 있고, 남쪽으로 가지를 친 산줄기는 태기산, 덕고산, 봉화산, 풍취산, 매화산, 치악산, 감악봉, 용두산, 가창산, 삼태산, 국지산, 태화산을 일군 다음 영월의 각동리 중말에서 그 맥을 남한강에 넘겨주고 있다.

따라서 영춘지맥은 영월에서 춘천을 이어주는 산줄기라 하여 이렇게 명명하였으며 도중에 한강기맥과 그 맥을 함께 한다.
아울러 영춘지맥은 남한강과 북한강 및 남한강과 북한강의 지류인 평창강, 섬강, 소양강, 홍천강 등의 경계를 이루고 있으며 그 품안에 용암천, 유동천, 흥정천, 내촌천, 장남천 등이 흐르고 있다.

이 산줄기를 처음 답사한 박성태씨에 따르면 " 영월의 태화산에서 춘천의 춘성대교에 이르는 영춘지맥은 한강기맥의 구간 11km를 포함하여 총 272km에 이른다.
이 산줄기는 남한강과 북한강의 5대 지류 중 남한강 남쪽의 달천을 제외한 남한강의 평창강과 섬강 그리고 북한강의 소양강과 홍천강의 경계를 이루고 있다.
즉 영월의 국지산에서부터 평창강의 서쪽 벽을 이루는 이 지맥은 치악산 남대봉에 이르러 평창강과 섬강의 경계를 이루면서 남한강과 북한강의 경계인 한강기맥에 이르고 한강기맥을 벗어나 북한강 수계로 들어서면서부터 소양강과 홍천강의 경계를 이루다가 춘천의 대룡산에서 소양강을 작별한다.
이어 춘천의 봉화산을 지나 한치고개 위까지 홍천강의 북쪽 벽이 된다."  

한강기맥 상에 있는 삼계봉(1,065m)에서 남동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태기산(1,261m), 덕고산(705m), 봉화산(670 m), 풍취산(699m), 매화산(1,085m), 치악산 비로봉(1,288m), 향로봉(1,043m), 남대봉(1,182m), 감악산(954m), 감악봉(886m),석기암(906m), 용두산(871m), 왕박산(598m), 가창산(820m), 삼태산(876m), 국지산(626m), 영월의 태화산(1,027m)을 거쳐 남한강에서 가라 앉는 산줄기를 말한다

 

신산경표(저자 박성태님)에는 영월지맥, 춘천지맥이 따로 이면서도 일반적으로는 ‘영춘지맥’으로 더 알려져 있다. ‘영춘지맥’은 십수년전 남한 100지맥의 원조(?)이신 박성태님이 한강기맥에서 남과 북으로 가지를 친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을 보태 ‘영춘지맥’으로 월간지에 소개하면서 일반에 알려졌다.

 

박성태님의 고견을 요약해 보면,한강을 가두는 큰 울타리는 한북정맥-백두대간-한남정맥이다.남한강과 북한강이 합하여 본류를 이루는 팔당댐 이후는 한강하류로 따로 두고, 그 윗부분을 한강기맥이 횡으로 남과 북으로 나누고, 영춘지맥이 종으로 상류와 중류로 나눈다고 봤다.즉, 횡으로 나누는 한강기맥은 북한강과 남한강을 구분짓고, 종으로 나누는 영춘지맥은 한강의 중, 상류를 구분 지으면서 위쪽(춘천)은 강원도와 경기도를,아래쪽(영월)은 강원도와 충청도를 나누는 큰 줄기로 보았다.


박성태님이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을 종주한 후 지맥이 갈리는 한강기맥의청량봉~장곡현~구목령~삼계봉 구간 11km를 합하여 약 272여km를 "영춘지맥"이라고 불렀다는데 한강기맥을 걸으면서 느낀 것은 엄연히

춘천지맥과 영월지맥이 확연히 구분이 되어 있는데 영춘지맥으로 부르는 것에 대하여 난 그 부분에 조금은 동의하기어려운 부분이 있는 것 같아서 영월지맥으로 부르기로 한다


영춘지맥[寧春枝脈] 구간별 거리 (도상거리 272km)
1구간]각동리 중말 2.2km -620.8m봉 2.0km -911m봉 2.3km -태화산(1,027m) 2.4km -절터 도로 1.9km -606.8m봉 2.1km -국지산 3.3km - 조전리 도로(봉불사 입구) 3.9km - 해고개(59번 국도)2.1km - 삼태산(875.7m) 2.5km →무두리 마을 1.9km →519지방도 2.3km →참나무재(군도) 1.4km →550.5m봉 3.1km →가창산(819.5m) 3.0km →567.8m봉 1.6km →왕박산 갈림길 1.1km → 서문리 도로 1.4km →배재(38국도) 2.4km →개나리 공원묘지 입구 2.8km→ 도화동에서 의림지로 이어지는 도로 2.6km →용두산(871.0m) 2.2km →오미재(못재) 2.9km →석기암봉(905.7m) 3.2km → 감악산(945m) 4km →싸리치(88번 국지도) 2.6km →응봉산 갈림길 3.2km →999.0m봉 1.9km →963.6m봉 3.5km →남대봉(1180.0m) 3.5km →향로봉(1041.4m) 1.1km →곧은치 4.1km → 치악산 비로봉(1288m) 4.6km →천지봉(1085.7m) 3.0km →매화산(1083.1m) 3.8km →전재(42번 국도) →풍취산(697.2m) 1.9km →651.4m봉 1.6km →688.0m봉 3.3km →영동고속도로 0.6km → 봉화산(667.8m) 1.0km→영동고속도로 1.0km →영동고속도로 0.9km →영동고속도로1.2km → 덕고산(702.8m)2.2km →황재(6번 국도) 2.3km →칠송고개 4.3km →719.6m봉 1.7km →임도0.8km →2차선 아스팔트 도로0.8 km →2차선 아스팔트 도로 1.4km →652.6m봉 2.1km →651.3m봉 1.1km → 방가곡 안부 1.3km → 임도→두번째 임도 2.3km →태기산 도로 3.0km →1149m봉 3.3km → 한강기맥 분기점 3.5km →구목령 2.1km→ 1191.8m봉 2.9km → 장곡현(임도) 1.5km →1052.0m봉 1.9km →922.5m봉 3.6km →하뱃재(56번 국도) 1.7km →1075.2m봉 1.8km→1081m봉 4.1km→1005m봉 1.1km → 응봉산 안부 0.6km→응봉산(1096.5m) 4.3km →444지방도(물넘이재) 1.1km →444지방도(행치령)→ 451지방도 2.1km →931.2m봉 갈림길 2.9km →백암산 갈림길 1.3km →문내치 2.7km →가마봉 갈림길1.4km →황방고개(임도) 2.3km →소뿔산(1118m) 2.0km →1044.0m봉 1.5km →838m봉 1.1km →가마봉(924.7m봉) 2.6km →거니고개(44번 국도) 2.2km →593.9m봉 3.9km →777.3m봉 2.0km →매봉(800.3m) 4.2km →홍천고개(군도) 1.8km →833.9m봉 3.4km →가리산(1050.7m) 4.2km →늘목고개 5.1km →754.9m봉 2.2km →가락재 터널 상단부 1.6km →709.4m봉 4.0km →대룡산(899.3m봉) 1.7km →853m봉→공군부대 정문 6.3km(우회로) →738m봉 3.9km → 연엽산(850.1m) 1.8km →임도 3.2km→ 406.7m봉 갈림길 2.6km →모래재(5번 국도) 3.1km → 군자리 도로 2.0km → 70번 국지도 3.9km → 나가지고개 1.6km →꼬깔봉(420.5m) 2.2km → 추곡고개 2.5km→소주고개(403지방도) 1.5km →489.1m봉 1.9km →봉화산(486.8m) 3.2km → 한치고개 3.0km →새덕산(490m) 1.8km →비포장도로 3.8km→서천초교 1.0km→춘성대교(46번 국도)



영춘지맥이란
영춘지맥이란 영월지맥과 춘천지맥 두 지맥을 합하여 영춘지맥이라고 한다.
춘천지맥이란 한강기맥 상에 있는 청량봉(1,052m)에서 북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하뱃재로 고도를 낮추다가 다시 솟구쳐 응봉산(1,103 m), 백암산(1,099m), 가마봉(1,192m), 소뿔산(1,118m), 가마봉(925m), 매봉(800m), 가리산(1,051m), 대룡산(899m), 응봉(759m), 연엽산(850m), 꼬깔봉(421m), 봉화산(515m), 새덕봉(488m)을 거쳐 춘천의 경강역 뒤편 북한강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125km의 산줄기를 말한다.(청량봉(1,052m)은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님이 종주한 후 이 무명봉을 청량봉으로 명명했기에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

춘천지맥 도상거리(127.4km) : 청량봉분기점(1052m)~5.9~하뱃재~10.2~응봉산(1096.5)~5.5~행치령~6.6~백암산(1099.1)~4.4~가마봉(1191.5/-0.4)~5.0~소뿔산(1108)~4.8~가마봉(924.7)~2.7~거니고개~8.5~매봉(800.3)~4.5~홍천고개~4.4~가삽고개~1.3~가리산(1050.9)~4.3~늘목고개~7.1~가락재~6.0~대룡산(899.3)~5.1~응봉(759-1.0)~1.6~연엽산(850.1)~5.1~수용골안부~2.7~모래재~9.4~나가지고개~1.7~꼬깔봉(420.5)~2.3~추곡고개~2.4~소주고개~3.5~봉화산(480.8)~3.2~한치고개~3.1~깃대봉(487.5)~6.1~춘성대교


영월지맥이란 한강기맥 상에 있는 삼계봉(1,065m)에서 남동쪽으로 분기한 산줄기가 태기산(1,261m), 덕고산(705m), 봉화산(670 m), 풍취산(699m), 매화산(1,085m), 치악산 비로봉(1,288m), 향로봉(1,043m), 남대봉(1,182m), 감악산(954m), 감악봉(886m), 석기암(906m), 용두산(871m), 왕박산(598m), 가창산(820m), 삼태산(876m), 국지산(626m), 영월의 태화산(1,027m)을 거쳐 남한강에서 가라 앉는 약 136km의 산줄기를 말한다.(삼계봉(1,065m)은 홍천군, 평창군, 횡성군 등 3개 군이 만나고 홍천강, 평창강, 섬강 등 세 강이 갈리는 곳이나 이름이 없어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님이 종주한 후 셋의 경계가 되는 봉우리란 뜻으로 "삼계봉"으로 부르기로 했다고 한다.

영월지맥 도상거리(134.5km) : 삼계봉분기점~5.1~태기산(1258.8)~8.5~깎은재~6.1~검두재~9.0~고들고개~1.4~덕고산(702.8)~4.7~봉화산(667.8)~7.4~풍취산(697.2)~4.7~매화산(1084.1)~8.1~치악산비로봉(1282)~5.6~향로봉(1041.4)~3.2~남대봉(1180)~3.1~대치~9.1~싸리치~4.4~감악봉(885.9)~2.5~석기암(905.7)~5.5~용두산(871)~7.4~배재~2.4~왕박산(597.5/-0.6)~4.6~가창산(819.5)~11.1~삼태산(875.8)~2.7~해고개~7.3~국지산(625.6)~7.0~태화산(1027)~3.6~샘골


신산경표 저자 박성태님이 영월지맥과 춘천지맥을 종주한후 지맥이 갈리는 한강기맥의 청량봉~장곡현~구목령~삼계봉 구간 11km를 합하여 약 272여km를 "영춘지맥"이라고 불렀다. 영춘지맥은 지맥중에서 가장 긴 지맥이다.



■  단양군 영춘에서 오면 각동리의 마지막 마을로 각동교에서 오른쪽으로 가면 대야리(大野里) 맛밭과 옥동으로해서 상동 황지로 이어지고 좌로는 진별리 정양으로 해서 영월과 정선으로 이어지고 아래로는 오사리를 거처 영춘 단양 충주를 거처 서울로 이어지는 각동의 나루터이다.

이곳은 1950년전만해도 정선과 임계 등지에서 베어낸 통나무로 만들어진 뗏목과
영월 지방 특산물인 담배 콩 옥수수 등 잡곡을 실은 돛단배가 남한강 500리 뱃길을 따라 서울 광나루에 도착하는 데는 열흘 이상이 걸렸다. 깎아지른 듯한 기암절벽 계곡 사이로흐르는 남한강 물줄기에 돛단배를 띄어놓고 구성진 정선 아라리를 부르는 뱃사공들의 모습은 한 폭의 그림이었다고 한다.

뱃사공들은 소금 광목(옷감) 석유 등의 생필품을 사 가지고 돌아왔다 여울목에서는 줄로 끌어올리고 물이 많은 곳은 노를 저어 올라오며 곳곳에 있는 작은 포구에서 물건을 팔았으며 1960∼70년 전만 해도 상선이 드나들며 어물 소금 등의 생활필수품과 곡식을 물물 교환하던 곳으로 보부상이나 도부꾼 뱃사공들이 배를 정박시키던 곳이다 한강과 옥동천의 합수지점으로 수심이 깊어 배가 드나들기에 좋다. 강물이 굽어 도는 곳으로 배가 드나들었으므로 '뱃나드리'라 하였다.





고씨동굴(高氏洞窟:천연기념물 제219호)

고씨'는 조선시대의 선비 '고종원'으로1538년 5월에 태어났다. 1592년 일본이 한국으로 처들어와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우 고종경을 도와 식량과 무기를 모으고 일반 사람들을 모아서 일본군과 싸웠다. 하지만 왜군에 밀려 병사들이 도망가는 것을 막지 못하였으며 하여 동생은 사형을 당했다.

 

고종원은 일본군이 이 영월지역으로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을 데리고 지금 이 동굴속으로 피신을 하였는데 적이 동굴에 불을 지펴 산채로 잡으려고 하자 부인은 남편을 도망갈 수 있도록 해주려고 동굴 속 연못에 뛰어들어 자살하였고 그 후 또 다른 아우 고종길과 함께 적군에 잡혀 있다가 탈출하였지만 아우는 적군에 잡혀 죽음을 당하였다.

 

전쟁을 치르면서 부인과 두 아우를 잃은 고종원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직후인 1592년 4월 20일부터 9월 6일까지의 사건을 모두 기록하였다. 고종원의 가족이 동굴 속으로 피했다고 하여 이 굴을 고씨굴이라 부른다고 한다

 

1969년 6월 4일 천연기념물 제219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 48만 762m2, 길이 약 6km의 동굴로 약4억년 전부터 형성된 것이라고 하는데 굴 안에는 4개의 호수를 비롯하여 3개의 폭포, 10개의 광장 등이 있으며,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종유석, 석순, 석주들이 조화있게 배치되어 장관을 이룬다.

동굴 안의 가온은 항상 16도씨를 유지하며, 박쥐, 흰새우, 흰지네 등 동굴동물이 서식하고 그 밖에 신속1, 신종7, 신아종7의 동물이 새로 판명되었다







태화산성

태화산성은 강원도 영월  태화산에 있는 토성(土城)으로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영월에 있는 대야성, 정양산성, 영춘산성과 동일한 시기(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으로 다른 산성들이 돌로 추조된 석성(石城)으로 실전에 사용된 반면, 4개 산성중에 가장 높은곳에 위치해 있었던 태화산성은 토성으로 적정을 감사히고 그 상황을 우군에게 전하는 사령탑 역할을 했던 산성으로 태화산 능선 해발 900m에 자리잡고 있으며 길이가 약 400m, 둘레가 1,200m의 포곡식산성(包谷式山城: 성 내무에 골짜기를 포용하고 있는 형태로 능선을 따라 축조한 산성)이다



태화산(太華山, 해발1,027m)

강원도 영월군 남면 ·김삿갓면과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대화산(大華山)이라는 기록이 있다. 영월 사람들은 화산이라고도 부른다. 강원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서 백두대간 줄기인 내지산맥(內地山脈)에 속한다. 산세는 대체로 완만한 편이며,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능선 끝에는 남한강이 U자형으로 곡류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군의 남쪽 16리에 있다."고 쓰고 있다.

 

『영월군읍지』에는 "군의 남쪽 15리에 있다. 읍의 안산(案山)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영월부읍지』와 『여지도서』에는 "부의 남서쪽 16리에 있다. 원주 사자산 동쪽으로부터 뻗어 나온 읍치의 안산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태화산에는 고려 시대의 돌과 흙의 혼합축성법으로 쌓은 태화산성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어느 집안에 남매 장수가 있었다. 그 어머니는 성(城) 쌓는 내기를 시켜서 이기는 자식을 키우기로 하였다. 아들인 왕검에게는 정양리에 돌성을 쌓게 하고 딸은 태화산의 흙성을 쌓게 했는데 어머니가 보니 딸이 아들보다 먼저 완성할 것 같으므로 흙성을 무너뜨리자 딸은 흙더미에 깔려 죽고 말았다. 그래서 왕검성은 지금도 완벽한 상태로 남아 있으나 태화산성은 무너졌다는 전설이 이 지방에 전해 온다.

 

『해동지도』, 『여지도』, 『광여도』, 『지승』에 태화산이 표시되어 있다. 산의 기슭에는 문짝처럼 생겼다 하여 '문바위'라 부르는 큰 바위가 있고 그 뒤에는 둥글고 넓은 너럭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대여섯 사람이 비를 피할 수 있는 방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잘바우'라 한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안산(案山)으로 나오고, 군내면 상송리에 있는 것으로 쓰고 있다.


흥교재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흥월리와  충북 단양군 영춘면 사지원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Y자형 삼거리로 고개에는 ‘흥교재 나그네 쉼터’라는 정자 하나가 산꾼을 반긴다. 이곳 우측 아래에 있는 흥교리(행정지명 흥월리) 흰깃마을 있어서 흰깃재라고 부른다

 

영월의 흥교사(興敎寺)를 신라 때는 세달사(世達寺)라 했는데, 후고구려를 세운 신라 47대 헌안왕의 아들인 궁예(弓裔)가 이곳에서 중이 되었다고 「삼국사기열전(列傳)」에 기록되어 있다.『弓裔 便去世達寺 之興敎寺是也 祝髮爲僧自號善宗, 궁예는 세달사로 갔으니, 지금의 흥교사가 있는 곳이다. 머리를 깎고 승려가되어 스스로 이름을 선종이라 하였다.』

 

또한 흥교사가 세달사임을 밝혀주는 내용이 삼국유사 卷三에 있다. 『昔新羅爲京帥時 有世達寺(今興敎寺也)之莊舍 在溟州奈 李郡 按地理志 溟州無奈李郡唯有柰城郡 本奈生郡 今寧越, 옛날 서라벌이 서울이었을 때

세달사(지금의 흥교사)의 莊舍(농장)가 명주 내리군에 있었다. 지리에 의하면 명주에 내리군은 없고 다만 내성군이 있었는데 본래는 내성군으로 지금의 영월이다.』

 

그후, 궁예는 환속하여 892년에 원주의 도적 양길(梁吉)의 부하가 되어 치악산의 석남사(石南寺)를 중심으로 진(陳)을 치고 내성(奈城, 영월), 주천(酒泉), 울오(鬱烏, 평창), 어진(御珍, 진부)등을 공격하여 항복을 받았다. 주천에 있는 법흥산성, 도원산성 그리고 북면의 공기산성이 그 당시에 쌓았던 성(城)으로 추정된다

 

흥교사는 아홉 개의 암자를 가지고 있었고 공양미를 씻을 때는 뿌연 쌀뜨물이 영춘의 군관 모랭이까지 흘러갈 정도로 큰 절집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스님들의 부패가 심해져, 돈 많은 상인들이 물건을 팔러오면 돈과 물건을 빼앗은 뒤 마을 뒤에 있는 사굿구덩이에 처박아 죽였다고 한다. 그후부터 이곳 흥교사는 빈대가 많이꼬여서 결국은 절에다가 불을 질렀는데 절집이 보름간을 탔다는 얘기가 전하고 있으며 얼마전 객토를 위해 땅을 팔 때 절터에 타다 남은 기둥과 숯이 나왔었고  그 절터인 흥교분교 운동장에서 1984년 높이가 6.5cm,

둘레가 2.5cm인 석가여래입상이 발굴되어 문화재관리국에서 보관하고 있다.

 

또한 흥교사의 규모가 크고 화려했음을 알 수 잇는 것은 이곳 절터에서 영월 지방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개와(蓋瓦)가 발견되었는데, 불교의 상징인 연꽃 무늬가 새겨진 수막새와 귀면와(鬼面瓦), 그리고 용 두 마리가 좌우에 서로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고 테두리에는 구슬띠무늬(蓮侏文)가 그려진 암막새(암키와 끝에 드림새를 붙이는 개와)가 발굴되기도 하였다. 지금도 마을 곳곳에는 부도나 고려 청자 파편, 석탑조각들이 그 흔적을 남긴 채 널려있다.


영춘지맥(영월지맥+춘천지맥)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각동마을에서 시작하며...

한남정맥 마루금을 마치고 한달이라는 시간적 여유가 생겨 예전부터 생각하며서 걸어보지 못한 수도권에 있는 하남환종주(검단산-용마산-남한산성 벌봉-금암산-이성산-하남 덕풍동)와 청광종주 또는 광청종주(경기대-광교산-백운산-바라산-우담산-청계산-양재동 화물터미널)을 함께한 대원 한분과 함께 완주하고는 영춘지맥 산행길에 접한다.


아침부터 기상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리고 음식을 베낭을 챙겨 집결지로 나가니 아무도 보이지 않는다. 잠시후 대원들과 회장님이 오시고 서로 반갑게 인사을 나누고는 도착하는 버스에 오른다. 오래동안 함께한 정맥 대원들이 대다수이며 몇분의 신입 대원들도 보인다


3일 연휴라 고속도로나 국도는 차량이 몰려 주차장인 상태다. 보통이면 영춘지맥 각동리 들머리지점까지 2시간30분이면 도착하는데 오늘은 5시간이 걸려 목적지에 도착하고 산행 일정도 조정하여 진행한다. 각동리에 내려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는 태화산정상으로 영춘지맥 출정을 시작한다.


각동마을 표지석[12:35]

위치 :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 각동리 126-3

황토민박 주차장에 하차하여 595번 지방도로을 건너 각동리 경로당옆에 설치되어 있는 정자와 각동마을 표지석을 확인하고는 각동리 경로당옆 시멘트 도로 따라 진행한다.


각동리 중말마을 황토민박집의 모습

강원도 영월군 김삿갓면(예전엔 하동면)에 속한 마을로서 예전에 나루터가 있었다고 해서 뱃나드리라 불렀던 곳이라고 한다.


각동리 황토민박과 각동리경로당의 모습

버스에서 내려 산행준비를 각자 하고는 태화산으로 영춘지맥 마루금 시작해 본다.


황토민박 주차장에서 바라본 각동리 경로당의 모습

각동리 경로당 옆 시멘트 도로 따라 진행후 묘지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각동리 황토민박집에서 바라본 595번 단양방면의 모습


각동리 황토민박집에서 바라본 595번 영월방면의 모습


각동리 경로당 옆 시멘트 도로로 진행


묘지 삼거리 통과[12:40]

원 지맥 마루금은 우측방향으로 진행하여야 하지만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좌측편으로 순천박공과  영월신씨의 부부 합장 묘가 나오고 잠시후 시멘트 임도에 접속한다. 시멘트 임도로 진행하다가 시멘트 임도길 버리고 좌측방향으로 진행 다시 밭 가운데를 가로 지른 다음에 묘지를 지나 시멘트 임도 접속하면 안동막가님의 시그널이 있는곳에서 진행하면시멘트 포잔도로가 나오고 시멘트 포장도로 계속 진행후 후사경이 설치되어 있는곳에서 좌측편으로 진행한다)


묘지 통과

원 영춘지맥 마루금을 버리고 좌측편 시멘트 임도길 따라 도로 후사경이 있는지점까지 계속하여 진행한다.


시멘트 포장도로 진행

묘지을 통과후 얼마 안되어 GPS기기에서 경로를 잘못 되었다는 알람이 계속하여 울려 펴진다. 묘지에서 우측편으로 진행하여야 하지만 번거롭고 등로길이 없는 관계로 시멘트 임도길로 진행한다.


시멘트 임도길 탈출[12:54]

각동리경로당에서 이곳까지 약15여분이 소요되었다. 도로 후사경이 설치되어 있는 삼거리에서 좌측편 밤나무 농장 끝부분방면 시멘트 임도길 버리고 방향전환하여 오르면 본격적인 영월지맥 능선으로 접어든다.


자연석으로 묘지 담장을 설친한 무명묘지 통과

시멘트 포장 임도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약50m 오르면 좌측편으로 밭이 나오고 우측편 숲속으로 진행하면 바로 앞에 자연석으로 담장을 만든 무명묘지가 나온다. 묘지 관리가 되지않아 잡풀이 무성하고 묘지을 좌측편에 두고 직진으로 오른다.


묘지 통과

이곳의 묘지들은 자연석으로 담장을 만들어 놓아다. 아마도 짐승들을 방어하기 위함이 아닐까 생각하면 완만하게 진행한다.


무명봉 통과


묘지통과

이 묘지을 통과하면 본격적인 오르막 등로길이 나오고 오늘 산행에서 제일 힘든구간이라 생각한다.


급경사 오름길의 모습

이지점에서 각동봉까지 오르는 등로길이 제일 난이도가 크고 힘든 구간이며 초반이라 더욱더 힘들어 오른다.


등로길에 설치되어 있는 안테나의 모습[13:26]

힘들게 한차례 밀어 올리면 등로길에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는 안부에 도착하고 그곳을 지나 오르면 삼각점이 잇는 각동봉에 도착한다.


암릉지대 통과


무명봉 통과


묘지 통과


각동봉 직전의 모습


620.8봉(각동봉)의 모습[13:33]

각동리경로당에서 각동봉정상까지 약55분이 소요되었다. 여기까지 오르는 등로길이 오늘 산행에서 제일 힘든구간인것 같다. 그러나 날씨의 도움으로 그나마 편하게 오를수 있었다. 각동봉 정상부근에는 정상 시그널과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었고 오갈피 나무들이 보이지만 전망은 전혀 없었다.


620.8봉(각동봉)

지도상에 620.8봉이라 표기되어 있는 정상에 오르니 좌측편 나무에 각동봉이라 표시한 코팅지가 붙어있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620.8봉 삼각점(△예미 441 / 2004 재설)

각동리 경로당앞에서이곳까지 오르는데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소요되었고 엄청 급경사에 힘든 산행길 이었다. 지금부터는 경사지는 있지만 완만하게 고씨동굴 갈림길까지 진행한다.


안부통과


등로길의 있는 멋진 나무의 모습


711봉 통과


715봉 통과


괴목골 갈림길

좌측으로 희미한 등로가 보이는데 각동리 괴목마을 내려가는 길이다. 마을에 큰 괴목(槐木)이 있었으므로 붙여진 이름이라는데 확실하지는 않고 마을 앞에는 커다란 거북바위(龜岩)가 있어 구암이라고도 한다.


고씨굴갈림길 오르는 급경사 등로길의 모습


고씨굴 갈림길(14:22, 산성터 갈림길)

각동리 경로당에서 이지점까지는 약1시간40여분이 소요되었고, 영춘지맥 마루금은 좌측방향이며 고씨굴방향은 우측방향이다. 이곳에서 선두그룹들이 점심식사을 하여 후미그룹도 이곳에서 간단하게 10여분간 점심식사을 마치고는 태화산 정상으로 출발한다.


고씨굴 갈림길(산성터 갈림길) 이정표 : 고씨굴 3.0km, 큰골 4.3km, 태화산정상 2.7km


고씨동굴(高氏洞窟: 천연기념물 제219호)

고씨'는 조선시대의 선비 '고종원'으로1538년 5월에 태어났다. 1592년 일본이 한국으로 처들어와서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우 고종경을 도와 식량과 무기를 모으고 일반 사람들을 모아서 일본군과 싸웠다. 하지만 왜군에 밀려 병사들이 도망가는 것을 막지 못하였으며 하여 동생은 사형을 당했다.

 

고종원은 일본군이 이 영월지역으로 쳐들어 온다는 소식을 듣고 가족을 데리고 지금 이 동굴속으로 피신을 하였는데 적이 동굴에 불을 지펴 산채로 잡으려고 하자 부인은 남편을 도망갈 수 있도록 해주려고 동굴 속 연못에 뛰어들어 자살하였고그 후 또 다른 아우 고종길과 함께 적군에 잡혀 있다가 탈출하였지만 아우는 적군에 잡혀 죽음을 당하였다.

 

전쟁을 치르면서 부인과 두 아우를 잃은 고종원은 임진왜란이 일어난 직후인 1592년 4월 20일부터 9월 6일까지의 사건을 모두 기록하였다. 고종원의 가족이 동굴 속으로 피했다고 하여 이 굴을 고씨굴이라 부른다고 한다

 

1969년 6월 4일 천연기념물 제219호로 지정되었으며  면적 48만 762m2, 길이 약 6km의 동굴로 약4억년 전부터 형성된 것이라고 하는데 굴 안에는 4개의 호수를 비롯하여 3개의 폭포, 10개의 광장 등이 있으며, 여러가지 이름으로 불리는 종유석, 석순, 석주들이 조화있게 배치되어 장관을 이룬다.

동굴 안의 가온은 항상 16도씨를 유지하며, 박쥐, 흰새우, 흰지네 등 동굴동물이 서식하고

그 밖에 신속1, 신종7, 신아종7의 동물이 새로 판명되었다


산성터의 흔적

고씨굴방향으로 조금가면 산성터 흔적이 나오고 확인하고는 갈림길로 복귀하여 태화산 전망대방향으로 진행한다.


송전철탑 철거의 흔적

점심을 간단하게 먹고 고씨굴 갈림길에서 좌측편으로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송전철탑 철거된 흔적이 남아 있고 완만하고 편안한 초지를 걸어 간다.


등로길에 있는 상처입은 나무의 모습

마루금 등로길 중앙에 두동강이가 나서 와이자형태로 갈라져 있는 지점을 통과한다.


폐허가된 전신주 통과


915봉 정상부 오르는 우회등로길


915봉의 모습

915봉을 우회하여 오르면 915봉정상부에는 돌뿐이고 우측편으로 태화산성과 팔괴리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915봉 이정표 : 팔괴리 1.7km, 태화산 2.4km, 큰골 4.0km, 고씨골 3.3km

태화산성은 강원도 영월  태화산에 있는 토성(土城)으로 삼국시대에 축성된 것으로 추정되며 영월에 있는 대야성, 정양산성, 영춘산성과 동일한 시기(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추정되는 산성으로 다른 산성들이 돌로 추조된 석성(石城)으로 실전에 사용된 반면, 4개 산성중에 가장 높은곳에 위치해 있었던 태화산성은 토성으로 적정을 감사히고 그 상황을 우군에게 전하는 사령탑 역할을 했던 산성으로 태화산 능선 해발 900m에 자리잡고 있으며 길이가 약 400m, 둘레가 1,200m의 포곡식산성(包谷式山城: 성 내무에 골짜기를 포용하고 있는 형태로 능선을 따라 축조한 산성)이다.


이정표 : 큰골 3.94km, 태화산정상 2.34km, 고씨굴 3.36km

915봉에서 내려서면 안부에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고 잠시후 넓은 초지을 만나고 초지를 감상하면서 내려서면 헬기장에 도착한다.



등로길 초지의 모습

저 푸른 초지에 누워 아무런 생각없이 한숨자고 싶은 충동감이 흐려지만 마루금 이어가야 함으로 태화산정상을 향해 발걸음 옮겨본다.


헬기장 통과[14:49]

넓은 초지지대를 통과하여 내려서면 헬기장이 나오고 암릉지를 오르면 제1전망대에 도착한다.


암릉지 통과


암릉지의 이정표 : 큰골 3.27km, 태화산정상 1.67km, 고씨골 4.03km


제1전망대의 모습[15:03]

각동리 경로당에서 제1전망대까지 점심식사시간 10여분을 포함하여 2시간20분이 소요되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한폭의 그림 같아 보이고 바라아래 굽이굽이 돌고 돌아가는 한강(남한강) 물줄기와 단양군 영춘면 산하과 시원하게 들어온다. 인증샷과 물한모금 마시고는 제2전망대로 향한다.



제1전망대의 조망

저 너머가 두위지맥이 있고 그 너머로 백두대간 능선의 태백산이다. 이곳 영월이 단종이 유배된 곳이고 태백산에는 단종비각이 있고, 소백산 고치령에는 금성대군을 모신 山靈閣이 있어서 흔히들 兩白之間이라 한다

삼촌인 세조에게 이곳 영월땅으로 유배당해 와 있을때 역시 삼촌이었던 세조의 동생 금성대군이 단종의 복위를 정축지변(순흥땅의 단종 복위사건)을 도모하다 사전에 발각되어 참형된 두 사람의 혼백의 아쉬움을 이 산꾼에게말하려는지 태백산에 떠있는 시시각각으로 변화무쌍 하기만하다.



제1전망대에서 인증샷



이정표 : 큰골 2.7km, 태화산정상 1.1km, 고씨굴 4.6km


안부 이정표의 모습


안부 이정표 : 큰골 2.57km, 태화산정상 0.97km, 고씨굴 4.73km


이정표 : 큰골 2.50km, 태화산정상 0.9km, 고씨굴 4.8km


제2 전망대[15:17,1,025봉]

제1 전망대에서 약15분정도 소요되었고 각동리 경로당 들머리지점에서 여기가지는 약2시간35분이 소요되었다. 제1전망대에서 완만하게 진행하여 오르면 또다시 전망대가 나오는데 제2전망대정상에는 전망대란 시그널은 없고 나무 의자 2개가 놓여있다. 제1 전망대와 마찬가지로 앞이 확트인 조망이 아름다웠고 한폭의 그림을 보는뜻한 풍광이 펼처진다. 능선 아래로 천길 낭떠러지이고 협곡을 이루며 도도히 흘러가는 한강(남한강)이 보인다.


제2전망대의 조망

단양군 김싯갓면은 예전에는 하동면으로 불리웠던 곳으로 지금은 김삿갓면으로 불리는 각동리 생곡마을이다. 강폭이 좁은 한강(남한강)은 마치 굽이 굽이 흐르는 모습이 뱀을 영상 시키며 그 모습이 정말 환상적이다.


영월군 지도

영월군은 예전의 지명과 바뀐곳이 참으로 많다. 지금 이곳은 예전에 하동면으로 불리웠던 곳이고, 서면은 남한강이 흐르면서 생긴 지형이 마치 한반도의 지도처럼 보인다고해서 지금은 서면에서 한반도면으로 지명이 바뀌었다. 이곳이 김삿갓면이니 김삿갓을 한번 알아보고 가봐야겠다.


 김삿갓의 호는 난고(蘭皐)였고 본명은 김병연(金炳淵)으로 조부인 김익순(金益淳)은 당시 관직이 높은 선천 방어사로 그는 군비가 부족하고 대세는 이미 기울어져 있음을 낙심하다가, 날씨가 추워서 술을 마시고 취하여 자고 있던 중에 습격한 반란군에게 잡혀서 항복을 하게 되고이듬해 반란이 평정되자 김익순은 사형을 당하게 된다. 그때 김익순이 데리고 있던 종복중 김성수(金聖秀)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황해도 곡산에 있는 자기 집으로 병하, 병연 형제를 피신시키고 글공부도 시켜 주었으며 이후 조정의 벌은 멸족이 아닌 김익순 한 사람에게만 한하게 되어 김병연의 가족은 서울을 떠나 부친이 세상을 떠난 후 홀어머니 함평 이씨가 형제를 데리고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삼옥리로 이주하게 되는김병연이 스무 살이 되던 1826(순조 32), 영월 읍내의 동헌 뜰에서

백일장 대회에서 '논정가산 충절사 탄김익순 죄통우천' (論鄭嘉山 忠節死 嘆金益淳 罪通于天). 시제(詩題)

김익순의 죄에 대하여 망군(忘君), 망친(忘親)의 벌로 만 번 죽어도 마땅하다고 추상같은 탄핵을 하여 장원을

하게 되는데 난고가 이 백일장에서 장원을 한 날 모친이 그 동안 숨겨왓던 내력을 들려준다 

 

난고는 너무나 기막힌 사실과 고민 끝에 자신이 조부를 다시 죽인 천륜을 어긴 죄인이라고 스스로 단죄하고,

뛰어난 학식에도 불구하고 조상을 욕되게 한 죄인이라는 자책감과 폐문한 집안의 자손이라는 멸시로 인해

20세 무렵 처자식을 둔 채 방랑의 길을 시작하였고  이때부터 난고 김병연은 죄인의식으로 푸른 하늘을

바로 볼 수 없다 하여 삿갓에 죽장(竹杖) 짚은 채 방랑생활을 시작하였던 것이다


김삿갓의 묘

금강산 유람으로 방랑의 생활을 시작하여 서울, 함경도, 강원도, 황해도, 충청도,경상도, 전라도, 평안도, 제주도를 돌았으며 도산서원 아랫마을과 황해도 곡산 등지에서 몇 해 동안 훈장생활을 였으며 전라도 동복땅에서 한 많은 삶을 마감하였다

 

난고 김병연 선생은 원래 전라도 동복(지금의 전라도 화순군)에서 돌아가셨지만 아버지를 찾아 전국을 떠돌던 둘째 아들 익균이 주거지인 김삿갓면면 노루목 바로 이 곳 골짜기에 묻어 주었으며, 그의 묘소는 1982년 영월의 향토사학자 정암 박영국선생의 노력으로 처음으로 발견되었다



漂浪一生嘆 (표랑일생탄)
鳥巢獸穴皆有居 顧我平生我自傷 (조소수혈개유거 고아평생아자상)

새도 집이 있고 짐승도 집이 있어 모두 거처가 있건만 거처도 없는 내 평생을 회고해보니
芒鞋竹杖路千里 水性雲心家四方 (망혜죽장로천리 수성운심가사방)

이내 마음 한 없이 서글프구나 짚신신고 죽장 짚고 가는 초라한 나의 인생여정 천리길 머나 먼데

큰골갈림길의 모습

이곳은 영월읍 흥교리 큰골 갈림길이다. 큰골은 흥월리 남동쪽에 있는 조그만 마을로 차고 깨끗한 물이 솟아나는 곳이라 한다


큰골 갈림길 이정표 : 고시굴 5.1km, 큰골 2.2km, 태화산정상 0.6km


큰골 갈림길 통과후 뒤돌아본 모습

여기까지 진행하면서 초입에서는 등로 안내판이 없어 약간 혼돈 되었지만 산에 진입하고 부터는 이정표가 잘 정돈되어 있어 마루금 이어가는데는 큰 어려움이 없었다. 그러나 태화산을 지나고 부터는 흥교삼거리, 흰갓재를 지나면서 이정표가 없어 어려움이 있었다.

 

나무다리 통과

산정상부에 어울리지 않는 다리가 있어 조금은 이상하면 주변의 조화에는 어울리지 않는 모습이다. 그러나 산객들이 진행하기에는 불편함이 없어 좋다.


로프지대 통과

나무로 만든 다리를 통과하면 로프가 설치된 암릉지가 나오고 완만하게 한차례 밀어 올리면 태화산정상부에 도착한다.


암릉지 이정표의 모습


암릉지 이정표 : 큰골 2.4kkm, 태화산정상 0.4km,



이정표 : 태화산정상 100m, 큰골 2.8km


등로길 좌측편으로 귀한하게 생긴 나무옆으로 진행



태화산(15:35, 太華山, 해발1,027m)

강원도 영월군 남면 ·김삿갓면과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대화산(大華山)이라는 기록이 있다. 영월 사람들은 화산이라고도 부른다. 강원도와 충청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서 백두대간 줄기인 내지산맥(內地山脈)에 속한다. 산세는 대체로 완만한 편이며, 정상에서 북서쪽으로 뻗은 능선 끝에는 남한강이 U자형으로 곡류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군의 남쪽 16리에 있다."고 쓰고 있다.

 

『영월군읍지』에는 "군의 남쪽 15리에 있다. 읍의 안산(案山)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영월부읍지』와 『여지도서』에는 "부의 남서쪽 16리에 있다. 원주 사자산 동쪽으로부터 뻗어 나온 읍치의 안산이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태화산에는 고려 시대의 돌과 흙의 혼합축성법으로 쌓은 태화산성이 있는데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 어느 집안에 남매 장수가 있었다. 그 어머니는 성(城) 쌓는 내기를 시켜서 이기는 자식을 키우기로 하였다. 아들인 왕검에게는 정양리에 돌성을 쌓게 하고 딸은 태화산의 흙성을 쌓게 했는데 어머니가 보니 딸이 아들보다 먼저 완성할 것 같으므로 흙성을 무너뜨리자 딸은 흙더미에 깔려 죽고 말았다. 그래서 왕검성은 지금도 완벽한 상태로 남아 있으나 태화산성은 무너졌다는 전설이 이 지방에 전해 온다.

 

『해동지도』, 『여지도』, 『광여도』, 『지승』에 태화산이 표시되어 있다. 산의 기슭에는 문짝처럼 생겼다 하여 '문바위'라 부르는 큰 바위가 있고 그 뒤에는 둥글고 넓은 너럭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대여섯 사람이 비를 피할 수 있는 방 모양으로 되어 있어서 '잘바우'라 한다. 『조선지지자료』에는 안산(案山)으로 나오고, 군내면 상송리에 있는 것으로 쓰고 있다.

태화산(太華山, 해발1,027m)  정상석에서 인증샷


태화산 정상 삼각점(△영월23 / 1995 복구)


태화산정상 안내판의 모습

산림청 지정 100대 명산으로 강원도 영월궁 김삿갓면, 충북 단양군 영춘면의 경계에있는산으로 남한강이 산자락을 휘감아 흐르고 4억년의 신비를 지닌 고시동굴(천영기념물 제219호)을 품에 안고 있으며 부드러운 능선길을 사계절 변화 무상한 아름다운 비경을 보여준다.

달곳 갈림길 흥월리의 중심 마을로 산을 뜻하는 옛말인 '달'이 변하여 형성된 달곳, 다리,다릿말이라 부르기도 한다. 태화산 끝자락에 위치한 흥월리는 마을의 지형이 반달모양이므로 월곡이라 했다는 얘기도 있으며 고려시대의 대사찰인 '흥교사()'가 있었으므로 '흥교'라 하였다. 이 두 마을을 합하여 흥월이라 하였다.

자연부락으로는 큰골, 아랫말, 작은골, 뒷뒤실, 점골, 달골, 다릿말, 흥교 등이 있다. 이곳 흥월리는후고구려( 태봉)을 창건한 궁예가 승려로 있었다는 세달사(世達寺)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단양,영춘/ 영월,흥교 갈림길[15:47]

달곳갈림길에서 내려섰다가 오르면 능선갈림길에 도착하고 좌측편으로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는데 ‘태화산 등산로 정상까지 10분’이 비스듬히 서있고 우측의 이정표에 ‘←단양.영춘 ↑영월.흥교’가 서있는데 원 지맥길은 좌측 단양.영춘쪽으로 올랐다가 능선을 타고 우측으로 꺽어져야 하는데 나는 영월, 흥교방향으로 진행한다.


단양,영춘/ 영월,흥교 갈림길 이정표의 모습

이지점에서 선답자의 후기글을 보면은 단양, 영춘방향으로 진행후 우측편 능선을 내려서는데 우리는 편리하게영월,흥교방향으로 바로 내려선다.


벌목지대 통과(15:55)

단양,영춘/ 영월,흥교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완만하게 내려서면 우측편으로 벌목지대가 나오고 계속하여 내려선다.


벌목지대에서 바라본 앞으로 이어갈 마루금의 모습


완만한 등로길의 모습

단양,영춘/ 영월,흥교 갈림길에서 이곳까지는 완만하게 진행하지만 지금부터는 급경사지을 내려서야 한다.


등로 갈림길[16:14]

벌목지대을 지나 급경사지을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나무에 ‘→ 등산로’라는 표지판이 붙혀있는 갈림길이 나온다.원 지맥길은 직진이나 우측으로 등산로를 표시해놨고 대다수의 선답자들이 우측으로 향했는지 시그널이 그쪽으로 붙어 있지만 난 원 지맥길을 고집하여 우측이 아닌 직진방향 희미한 등로를 따라서 내려선다. 직진으로 내려서면 묘지가 나오고 바로 시멘트 포장임도길에 도착한다. 포장 임도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여 저장탱크앞에서 우측방향 밭으로 진행한다.


무명묘지 통과


시멘트 임도 접속[16:20]

등로 갈림길에서 직진으로 내려서면 묘지가 나오고 묘지를 지나면 시멘트 임도길에 도착한다. 마루금은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되는데 포장도로 입구에 출입을 금지하는지 차단을 하고 있었는 무슨 이유인지 잘 모르겠다.

시멘트 포장도로 임도에 접속후 뒤돌아본 모습


통과후 뒤돌아본 모습

우측편으로 상수원 보호구역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고 마루금은 좌측편 능선에서 내려선다.


임도길에서 바라본 마루금의 모습

시멘트 포장 임도길로 진행하면 삼거리가 나오고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저장하는 큰 탱크 두개가 설치된 곳에 도착한다. 저장탱크앞에서 시멘트 포장도로 버리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좌측편 밭에 돌탑이 설치되어 있는곳으로 밭을 우회하여 진행한다.


시멘트 포장도로 탈출[16:23]

저장 탱크가 두개가 설치되어 있는 지점에서 우측방향으로 방향 전환하여 진행후 전신주 앞 돌탑이 있는곳에서 좌측방향 밭을 우회하여 진행후 우측편 능선으로 진행한다.

시멘트 도로 임도 탈출후에 나오는 임도길의 모습


전신주앞에서 화살표방면으로 진행


밭을 우회하여 진행후 화살표방향으로 진행


밭 탈출[16:27]

밭을 우회하여 이지점까지 왔다가 우측편 숲속으로 진행후 바로 좌측편으로 올라서야 한다. 지금부터는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구간이라 등로길을 만들면 진행하여야 한다. 등로길은 희미하게 보이지만 잡목과 잡풀로 인하여 갈려져 있어 등로길 찾는데 어려움이 많았던 구간중 한구간이라 말할수 있다. 선답자의 후기글을 보면 저장탱크에서 이지점으로 진행하지 않고 바로 시멘트 임도길로 진행하여 마을을 거쳐 흰깃재(흥교삼거리)로 바로 이동하는분들도 있었다.

마루금을 고집하는 한 산객으로써 조금이라도 마루금의 그 발자취를 찾고자 어려움을 무렵서고 고행길에 임한다. 나무풀속을 헤치며 진행하면 소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무명봉 안부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당집앞에 도착한다.

당집에서 직진으로 진행하여 내려섰다 오르면 다시 무명봉 안부에 도착하고 시그널은 직진으로 되어있는데 우리 일행들은 좌측편 사면으로 내려서 좌측편에 보이는 포장도로에 접속하여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니 흰깃재(흥교삼거리)에 도착한다.

16:35 당집

당집이란 마을공동체의 안녕과 풍요를 빌기 위해 음력으로 정월에 제를 지내는 곳이다.


소나무군락지 통과


무명봉 안부 갈림길[16:40] 통과


도로 접속[16:48]

능선에서 내려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흰깃재에 도착한다.

도로통과 후 뒤돌아본 모습


16:50 흰깃재(흥교삼거리)

        위치 : 강원도 영월군 남면 조전리 산 8-1



흥교재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 흥월리와  충북 단양군 영춘면 사지원리의 경계에 있는 고개로 Y자형 삼거리로 고개에는 ‘흥교재 나그네 쉼터’라는 정자 하나가 산꾼을 반긴다. 이곳 우측 아래에 있는 흥교리(행정지명 흥월리) 흰깃마을 있어서 흰깃재라고 부른다

 

영월의 흥교사(興敎寺)를 신라 때는 세달사(世達寺)라 했는데, 후고구려를 세운 신라 47대 헌안왕의 아들인 궁예(弓裔)가 이곳에서 중이 되었다고 「삼국사기열전(列傳)」에 기록되어 있다.『弓裔 便去世達寺 之興敎寺是也 祝髮爲僧自號善宗, 궁예는 세달사로 갔으니, 지금의 흥교사가 있는 곳이다. 머리를 깎고 승려가되어 스스로 이름을 선종이라 하였다.』

 

또한 흥교사가 세달사임을 밝혀주는 내용이 삼국유사 卷三에 있다. 『昔新羅爲京帥時 有世達寺(今興敎寺也)之莊舍 在溟州奈 李郡 按地理志 溟州無奈李郡唯有柰城郡 本奈生郡 今寧越, 옛날 서라벌이 서울이었을 때

세달사(지금의 흥교사)의 莊舍(농장)가 명주 내리군에 있었다. 지리에 의하면 명주에 내리군은 없고 다만 내성군이 있었는데 본래는 내성군으로 지금의 영월이다.』

 

그후, 궁예는 환속하여 892년에 원주의 도적 양길(梁吉)의 부하가 되어 치악산의 석남사(石南寺)를 중심으로 진(陳)을 치고 내성(奈城, 영월), 주천(酒泉), 울오(鬱烏, 평창), 어진(御珍, 진부)등을 공격하여 항복을 받았다. 주천에 있는 법흥산성, 도원산성 그리고 북면의 공기산성이 그 당시에 쌓았던 성(城)으로 추정된다

 

흥교사는 아홉 개의 암자를 가지고 있었고 공양미를 씻을 때는 뿌연 쌀뜨물이 영춘의 군관 모랭이까지 흘러갈 정도로 큰 절집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스님들의 부패가 심해져, 돈 많은 상인들이 물건을 팔러오면 돈과 물건을 빼앗은 뒤 마을 뒤에 있는 사굿구덩이에 처박아 죽였다고 한다. 그후부터 이곳 흥교사는 빈대가 많이꼬여서 결국은 절에다가 불을 질렀는데 절집이 보름간을 탔다는 얘기가 전하고 있으며 얼마전 객토를 위해 땅을 팔 때 절터에 타다 남은 기둥과 숯이 나왔었고  그 절터인 흥교분교 운동장에서 1984년 높이가 6.5cm,

둘레가 2.5cm인 석가여래입상이 발굴되어 문화재관리국에서 보관하고 있다.

 

또한 흥교사의 규모가 크고 화려했음을 알 수 잇는 것은 이곳 절터에서 영월 지방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개와(蓋瓦)가 발견되었는데, 불교의 상징인 연꽃 무늬가 새겨진 수막새와 귀면와(鬼面瓦), 그리고 용 두 마리가 좌우에 서로 대칭으로 배치되어 있고 테두리에는 구슬띠무늬(蓮侏文)가 그려진 암막새(암키와 끝에 드림새를 붙이는 개와)가 발굴되기도 하였다. 지금도 마을 곳곳에는 부도나 고려 청자 파편, 석탑조각들이 그 흔적을 남긴 채 널려있다.



흥교재 나그네 쉼터

영월지맥 등로길은 이곳 정자 뒤편으로 올라서야 하지만 난 좌측편 임도 따라 진행한다.


살기좋은마을 흥월2리 안내판


16:55 임도 탈출

흰깃재에서 임도로 약5분 정도 진행하다가 좌측편 능선으로 올라선다.


570봉 오름길의 모습


17:01 산불감시초소(570봉)

임도에서 좌측방향 능선으로 오르면 급경사지가 나오고 한차례 밀어 올리면 산불감시초소와 멋진 소나무가 있는 570봉에 도착한다. 국지산방향은 산불감시초소 앞에서 우측방향으로 방향전환하여 경사지을 내려서면 된다.


17:07 사지원리방향 임도

국지산방향은 직진으로 진행하지만 오늘 지맥 산행은 이곳에서 종료하고 좌측편 임도로 내려선다.


570봉에서 내려서면 임도길이 나오고 임도길 통과후 뒤돌아본 모습


다음구간 들머리지점 확인


사지원 2리로 내려서는 임도길의 모습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과 강원도 영월군 남면 경계지점[17:42]


세계문화유산 장릉이 있는 영월입니다 안내판의 모습


충청북도 단양군 영춘면방면


강원도 영월군 남면 방면


사지원2리 표지석과 정류장



사지원2리 마을 자랑비




송백산악회 영춘지맥 종주대 출정식[17:43]

단양군 영춘면각동리에서 출정식을 하고 첫산행을 올려야 했지만 도로가 많이 막혀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출정 기념식도 생략하고는 산행 이후 모두모여 기념사진 찍고는 서울로 귀경한다.

오늘도 아무런 사고없이 영춘지맥 출정을 마칠수 있게 도움을 주신 모든분들께 감사의 말씀 전하며 다음 지맥길에서 뵙길...


[각동리 중말마을~각동봉]

각동리 595번 지방도로 황토민박 주차장에 도착하니 벌써 12시30분을 알리고 있다. 3일의 연휴 첫날이라 국도와 고속도로에 차량이 몰리는 바람에 영춘지맥 출정이 차질을 빗고 조전고개까지 산행을 접고 예전 처음 목표했던 흰깃재에서 하산 계획을 잡고는 각동리 경로당옆 도로를 따라 영춘지맥 산행이 시작된다.


각동리 경로당옆 시멘트 포장도로를 오르면 묘지 삼거리가 나오고 원 영춘지맥 마루금은 우측방향이지만 무의미하여 좌측방향으로 시멘트 포장도로로 진행한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약15여분 오르면 도로가 굽어지는곳에 후사경이 설치되어 있고 좌측편에 나무주사 표지판이 있는 곳으로 진행하면 본격적인 영춘지맥 산행이 시작된다.


시멘트 포장도로를 버리고 좌측방향 임도길로 약50m 오르면 좌측편으로 밭이 나오고 우측편 숲속으로 진행하면 바로 앞에 자연석으로 담장을 만든 무명묘지가 나온다. 묘지 관리가 되지않아 잡풀이 무성하고 묘지을 좌측편에 두고 직진으로 오른다. 다시 무명묘지을 지나면 무명봉에 도착하고 내려섰다 오르면 넓은공터에 잘 정돈된 묘지앞에 도착한다.


각동봉까지는 급경사지라 이곳에서 물한모금 마시고는 한차례 밀어올리니 안부에 안테나가 설치되어 있는 안부에 도착하고 그곳을 지나 오르면 암릉지대와 무명봉, 무명묘지을 지나면 삼각점이 있는 620.8m 각동봉에 도착한다.


[각동봉(620.8m)~태화산] 
각동리경로당에서 각동봉정상까지 약55분이 소요되었다. 여기까지 오르는 등로길이 오늘 산행에서 제일 힘든구간 인것 같다. 그러나 날씨의 도움으로 그나마 편하게 오를수 있었다. 각동봉 정상부근에는 정상 시그널과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었고 오갈피 나무들이 보이지만 전망은 전혀 없었다. 지도상에 620.8봉이라 표기되어 있는 정상에 오르니 좌측편 나무에 각동봉이라 표시한 코팅지가 붙어있고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각동봉 삼각점이 있는 620.8m봉에서 내려서면 안부와 멋진나무옆을 지나게 되고 각동봉까지 오르는 급경사지 없지만 고씨동굴 갈림길까지 등로길도 제법 힘든구간이다. 711봉과 715봉을 차례로 오르고 잠시 내려서면 괴목골 갈림길에 도착한다. 급경사지을 한차례 밀어 올리면 고씨동굴(산성터갈림길)갈림길에 도착한다.


각동리 경로당에서 고씨동굴 갈림길까지는 약1시간40여분이 소요되었고, 영춘지맥 마루금은 좌측방향이며 고씨굴방향은 우측방향이다. 이곳에서 간단하게 점심식사을 하고는 태화산 정상으로 출발한다. 고씨굴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약20m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송전철탑 철거 흔적이 나오고 직진으로 완만하게 진행하면 915봉에 도착하고 내려섰다 오르면 저 푸른 초지에 도착하고 또 다시 내려서면 헬기장에 도착한다.


헬기장에서 완만하게 오르면 암릉지가 나오고 잠시후 제1전망대앞에 도착한다. 각동리 경로당에서 제1전망대까지 점심식사시간 10여분을 포함하여 2시간20분이 소요되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한폭의 그림 같아 보이고 바라아래 굽이굽이 돌고 돌아가는 한강(남한강) 물줄기와 단양군 영춘면 산하과 시원하게 들어온다. 인증샷과 물한모금 마시고는 제2전망대로 향한다.


저 너머가 두위지맥이 있고 그 너머로 백두대간 능선의 태백산이다. 이곳 영월이 단종이 유배된 곳이고 태백산에는 단종비각이 있고, 소백산 고치령에는 금성대군을 모신 山靈閣이 있어서 흔히들 兩白之間이라 한다

삼촌인 세조에게 이곳 영월땅으로 유배당해 와 있을때 역시 삼촌이었던 세조의 동생 금성대군이 단종의 복위를 정축지변(순흥땅의 단종 복위사건)을 도모하다 사전에 발각되어 참형된 두 사람의 혼백의 아쉬움을 이 산꾼에게말하려는지 태백산에 떠있는 시시각각으로 변화무쌍 하기만하다.


제1 전망대에서 약15분정도 진행하면 쉼터 나무의자 2개가 있는 제2전망대에 도착한다.  각동리 경로당 들머리지점에서 여기까지는 약2시간35분이 소요되었다. 제1전망대에서 완만하게 진행하여 오르면 또다시 전망대가 나오는데 제2전망대정상에는 전망대란 시그널은 없고 나무 의자 2개가 놓여있다. 제1 전망대와 마찬가지로 앞이 확트인 조망이 아름다웠고 한폭의 그림을 보는뜻한 풍광이 펼처진다. 능선 아래로 천길 낭떠러지이고 협곡을 이루며 도도히 흘러가는 한강(남한강)이 보인다.


제2 전망대에서 내려서면 큰골갈림길이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나무다리가 나오고 잠시후 로프가 설치된 위험한구간을 지나 좌측방향으로 우회하여 오르면 정상석이 두개 설치된 태화산 정상에 도착한다. 정상주변에는 정상석 2개와 삼각점이 있고 조망은 없다.


[태화산~흰깃재] 
태화산은 산림청이 지정한 100대 명산중의 한곳이다. 정상을 출발하니 달곶 갈림길 이정표가 나타나고 10여분 더 진행을 하다보면 영월흥교 갈림길 이정표가 나타나는데 흥교 이정표를 따라 우측방향으로 진행한다. 잠시후 벌목지역이 나타나고 벌목지역이 조망되고 완만하게 하산 하다가 갑자기 급경사지 돌변하고 벌목 지대에서 약20여분 내려서면 갈림길에 등산로 표지판이 나타나는데 우측방향은 일반 등로길이고 마루금은 직진으로 내려 묘지을 지나고 내려서면 시멘트 포장도로에 도착한다. 시멘트 포장도로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되는데 포장도로 입구에 출입을 금지하는지 차단을 하고 있었는 무슨 이유인지 잘 모르겠다. 


시멘트 포장 임도길로 진행하면 삼거리가 나오고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저장하는 큰 탱크 두개가 설치된 곳에 도착한다. 밭을 우회하여 우측편 숲속으로 진행후 바로 좌측편으로 올라서야 한다. 지금부터는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구간이라 등로길을 만들면 진행하여야 한다. 등로길은 희미하게 보이지만 잡목과 잡풀로 인하여 갈려져 있어 등로길 찾는데 어려움이 많았던 구간중 한구간이라 말할수 있다. 선답자의 후기글을 보면 저장탱크에서 이지점으로 진행하지 않고 바로 시멘트 임도길로 진행하여 마을을 거쳐 흰깃재(흥교삼거리)로 바로 이동하는분들도 있었다.

마루금을 고집하는 한 산객으로써 조금이라도 마루금의 그 발자취를 찾고자 어려움을 무렵서고 고행길에 임한다. 나무풀속을 헤치며 진행하면 소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무명봉 안부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당집앞에 도착한다. 당집에서 직진으로 진행하여 내려섰다 오르면 다시 무명봉 안부에 도착하고 시그널은 직진으로 되어있는데 우리 일행들은 좌측편 사면으로 내려서 좌측편에 보이는 포장도로에 접속하여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니 흥교재나그네 쉼터가 있는 흰깃재(흥교삼거리)에 도착한다.


영월지맥 등로길은 이곳 흥교재나그네 쉼터 뒤편으로 올라서야 하지만 난 좌측편 임도 따라 진행한다. 흰깃재에서 임도로 약5분 정도 진행하다가 좌측편 능선으로 오르니 산불감시초소가 있는 570m봉에 도착하고 우측방향 급경사지을 내려서면 사지원계곡 삼거리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영춘지맥 1구간을 종료하고는 좌측편 사지원2리 마을로 하산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