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 12구간 하고개에서 나본들고개까지 산행후기

2014. 8. 13. 13:11★ 9 정맥/- 3. 금북[완료]

금북정맥 12구간(하고개~나본들고개)

 

 

산 행 지 : 충남 홍성군  홍성읍 구항면 홍성읍, 홍북면, 예산군 덕산면 북정맥 12구간

산행일시 : 2014년 8월16일(토요 당일산행)

산행코스 : 하고개-해태상-홍주병오의병 주둔지 기념비-136.2봉-철탑-살포쟁이고개-281봉-330봉-헬기

               장-임도-헬기장-백월산(일월산)-산신각-팔각정-전망암-까치고개- 홍성군 폐기물 매립장-125

               봉-190봉-전망암-300봉-홍동산-290봉-250봉-용봉산갈림길-수덕고개(육괴정)-300봉-덕숭산

              (수덕산)-415봉-394봉-나본들고개

산행시간 : 09:55~16:05(6시간10분, 식사 및 휴식포함, 후미기준)

산행거리 : 약 14.8Km(정맥 14.8Km, 접속구간 0Km), GPS 15.8Km

산행날씨 : 맑음

산행인원 : 42명

산행코스 및 구간거리 : 하고개-2.65/3.3km(1시간10분)-백월산(일월산)-1.25/1.4km(30분)-까치고개-3.

                                4/3.9km(1시간20분)-홍동산-2.35/2.7km(50분)-수덕고개-1.6/1.8km(50분)-덕

                               숭산(수덕산)-1.5/1.7km(30분)=====12.75/14.8km

               * 참고자료 : 하고개-1.3km-살포쟁이재-1.3km-일월산-1.7km-까치고개-3.4km-홍동산-2.5km

                                  -수덕고개-1.3km-수덕산-1.4km-나본들고개====12.9km

구간

거리(km)

출발시간

소요시간

비고

하고개

 09:55

해발90m, 29번 국도해태상, 충남 홍성군 홍성읍 옥암리와 구항면 황곡리 잇는 고개

백월산

3.3 

 11:14

1시간19분 

해발393.6m, 일월산, 돌탑, 산불감시카메라, 삼각점(홍성 23), 쉼 의자, 조망좋음

까치고개

    1.4

 

  11:52

  38분

해발110m, 고개쉼터, 홍성군 폐기물처리장, 2차선 지방군도

홍동산

    3.9

  13:14 

  1시간22분

해발309m, 이정목, 조망좋음, 주변 산불로 벌목된 상태

수덕고개

    2.7

 

  13:57

  43분

해발120m, 육괴정, 40번 지방도, 큰 느띠나무, 식당, 물공급 가능

덕숭산

   1.8

 

 15:17

  1시간20분

해발495m, 수덕산, 정상석, 119 이정목

나볼들고개

   1.7

 

  16:05 

  48분

해발160m, 45번 국도, 정류장

마루금거리

  14.8

 

 

  6시간10분

 

접속 거리

 

 

 

총 거리

14.8 

 

 

 

GPS거리

15.8 

 

 

 

 

 

 

백두산에서 지리산을 향하여 줄기차게 달려가던 백두대간이 속리산 천왕봉에서 가지를 쳐 안성의 칠장산까지 한강과 금강의 물줄기를 가르며 이어간 한남금북정맥이 안성 칠장산에서 다시 가지를 쳐 금북정맥과 한남정맥으로 가른다. 금북정맥은 경기도 안성의 칠장산(491.2m)에서 충남 태안의 태안반도 안흥진까지 금강의 윗쪽에서 물길을 모으는 산줄기로 거리는 약 267km에 달한다. 산경표에서는 칠현산에서 분기한다고 되어 있지만 칠현산군에 칠장산도 포함되고 실제 도상거리도 2km밖에 되지 않은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에 산경표와 현대의 지리가 맞아 떨어지는 곳이다.

 

금북정맥은 분기점 칠장산에서 칠현산 - 서운산 - 성거산 - 국사봉- 광덕산 - 백월산에서 방향을 전환하여 오서산 - 보개산 - 수덕산 - 가야산 - 성왕산 - 백화산 - 안흥진으로 약 267km를 이어간다. 금북정맥이 금강 북쪽의 분수령이 되려면 금강하구로 향하여야 하는데 백월산에서 방향을 틀어 태안 앞바다 안흥진으로 향하는 바람에 금남정맥이 금강하구로 향하지 않고 부여 구드레나루로 향한 것 같이 금강을 수계로 하는 남북의 산줄기 명칭에 논란이 있다. 산경표 원작자의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이는 여러 정맥 중에서 특이한 정맥에 속한다. 하여 산자분수령의 원리를 적용하여 정확하게 물길의 흐름을 구분하려 하는 사람들은 이 맥의 이름을 새로 지어 부르려 하지만 그것보다는 산경표상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것이 옳지 않을까.

 

백두대간은 험한 산줄기가 굳건한 성이되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각 나라의 경계선이었던데 비해 한남금북정맥의 주변은 백제, 고구려, 신라의 각축장이되었다. 한편 금북정맥은 금강의 수계를 형성하면서 조선시대에 차령을 중심으로 그 문화적 교류가 남북으로 나누어 지다 호서지방으로 접어들면서 해양문화와 육지문화가 서로 교류하고 외국의 문물까지 교역하는 길이 된다. 서산 마애삼존불과 태안 마애삼존불은 중국 불교 문화의 영향을 받아 그 길목에 형성된 문화들이다. 또한 천주교의 유입이 이곳 안흥진을 경유하여 들어왔기 때문에 금북정맥 인근에는 순교지가 많다.

  

* 종주에 필요한 지형도 도엽명;

- 1:50,000 지도 : 근흥, 만리포, 서산, 당진, 홍성, 청양, 보령, 예산, 전의, 평택, 진천, 안성 (12매)
- 1:25,000 지도 : 근흥, 소원, 태안, 서산, 운산, 해미, 덕산, 홍성, 라원, 청양, 대흥, 유구, 대술, 광덕,

전의, 의당, 천안, 병천, 서운, 만승, 죽산 (21매)

 

* 금북정맥 대표 산 (도상거리 : 약 267km)

* 칠장산-칠현산-덕성산-무이산-서운산-성거산-태조산-경암산-고려산-국사봉-봉수산-천방산-극정봉-장학산-국사봉-금자봉-문박산-천마봉-오봉산-백월산-오서산-남산-일월산-홍동산-수덕산-뒷산-가야산-일락산-상왕산-동암산-은봉산-간대산-성상산-금강산-장군산-물래산-오석산-백화산-퇴비산-구수산-전막산-지령산-안흥진

 

금북정맥 개략도

 

금북정맥

한남 금북정맥의 끝인 경기도 안성시 칠장산(491m)에서 태안반도의 안흥진(安興鎭)까지 금강의 서북쪽을 지나는 산줄기로 칠장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칠현산(516m), 덕성산,서운산, 성거산(579m), 태조산, 국사봉, 봉수산 등 충남을 가로질러 청양의 백월산(395m)에 이르고 여기에서 다시 서북으로 뻗어 오서산(791m)·보개산(274m), 일월산(395m), 수덕산(495m), 가야산(678m)에 이르러 다시 서쪽으로 뻗어 성왕산 오석산, 백화산, 오석산, 지령산을 거친 뒤 태안반도의 끝인 안흥진에서 그 맥을 다 하는 약 280km에 달하 는 산줄기이다.

 

[상세안내]

하고개/6차선 29번국도/해태상

29번국도 아래 황곡교차로에서 좌측방향으로 고가 아래로 진행

홍주병오의병주둔유지비 안내판과 비석/평상이 있음/좌측방향으로 진행

갈림길(직좌틀)

136 m봉/삼각점과 삼각점안내판

 #32번 송전탑

쉼터(의자 3개) 봉우리

살포쟁이고개/이정표/고개 표지판과 직전에 평상 있음

330봉/'내포문화숲길' 표지판

이정표(백월산정상 0.4 km)와 백월산 구항 - 8 입석표지판/의자 헬기장이 옆에 있다.

포장도로/이정표(백월산정상 0.3 km)/평상과 의자

우측 등산로로/이 도로는 백월산을 지나 산림단속순찰대 초소앞에서 다시 만난다.

백월산(394 m)돌탑위 태양열 산불감시탑/정상석과 백월산 구항 - 23 입석표지판/직진

강아지바위/바로 산림단속순찰대 초소가 있는 시멘트도로와 이정표(팔각정 0.2 km)

산신각/좌측에는 옛 홍주목사 홍가신의 비석이 보인다.

팔각정/이정표(월산리)는 무시하고, 좋은 직진길 두고, 팔각정 뒤로 진행

큰바위/좌나 우로 돌아 큰바위 뒤에서 눈쌓인 급한 내리막이 시작된다.

평탄한 넓은길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진행

 하산길에 조심하다 좋은길에 도착해 지도와 gps 확인하다 또 스틱을 놓쳐버려 돌아가서 찾아와

폐 건물/방치한 건물과 녹슨 종각옆을 지나   

까치고개/21번 2차선지방도/고개쉼터(오리탕, 보신탕) 식당/갈오리 표지석/교통표지판

생활폐기물종합처리장 정문앞/좌틀 등산로로

125봉/특징없는 야산의 봉이라 무심코 그냥 지나친다.

옛고개(119 m)/골 깊은 사거리 안부

190봉/직우틀 하며, 전망대가 보인다. 

전망대(224 m)/지나온 백월산과 우측으로 용봉산과 소향리가 미세먼지로 희미하게 보인다.

 300봉/최근에 산불난 흔적이 뚜렷한 봉우리

홍동산(309 m)/정상표지목과 표지판/좌측으로 10여 m 가면, 덕숭산과 수덕사가 조망되는 바위있음

 250봉/시산제및 중식/직우틀 내리막으로

이정표(육괴정 0.34 km)/삼거리/직진하나 좌틀하나 잠시후에 만난다.

수덕고개(육괴정, 130 m)/도로를 건너 개인 사유지라 철조망이 막혀 있어 우측으로 철조망을 따라 진행

 철조망 끝부분/좌틀하여 조금 오르면, 임도를 만나 좌틀하여 가면, 시야 터지며, 수덕고개식당이 보이기 직전에우틀을 해야 되는데

 1. 주차장에서 도로를 건너 우틀하여 철조망을 크게 우회하거나 

 2. 주차장에서 좌틀하여 수덕고개식당 맞은편 전봇대 옆으로 진행하여 철조망을 통과

 3. 육괴정 도로 건너 철조망을 지난 조금 위에 뚫려 있는 철조망을 지나 우측 능선으로 가는 길

수덕고개식당이 보이는 지점

낡은 철조망을 통과하여

탁터진 바위능선을 지나서

300봉/보이는 묘지를 지나 잠시 평탄길로 숨을 돌리고,

01-08 119 입석표지판/수덕사에서 오는길과 만나는 삼거리/좌측에 전망바위/우틀 진행

 좌측에 덕숭산 직전 큰 바위

덕숭산(495m)/정상석과  01-07 119 입석표지판/탁월한 조망/좌측 능선으로 진행

산불감시탑을 지나

 01-06 119 입석표지판과 철조망을 지나

삼거리/능선길로

 415봉

394봉(바위봉)

등산로 우측 옆에서 가야산과 능선이 뚜렷하다.

배수구 만나 좌틀

지하통로(157 m)

광천리 버스정류소

나본들고개(161 m)/45번 4차선 국도옆 2차선 지방도의 산장모텔 앞에서 산행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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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회 하계 휴가기간이라 금북정맥 첫주는 휴식일 취하고 오래간만에 마루금을 잇기 위해 미리 베낭을 꾸려본다. 금북정맥 마루금 전날 일본에서 친척분이 부산으로 오시는 바람에 오전에 KTX편으로 내려가서 새벽에 올라와 3시간 자고 집결지인 상일동 육교로 나가야 하지만 오늘은 잠실로 간다.

 

계속되는 장마비로 인하여 주말이면 비가 내린다. 오늘도 비가 내린다는 일기 예보가 있지만 예상을 빗나가고 한여름 날씨을 영상케 한다. 잠실로 이동하는 시간도 만만하지 않았다.오늘은 타 산악회에서 함께하는 친구가 백두대간이나 정맥길 이어 보고싶다는말에 이번 구간은 짧은 관계로 함께 동참하는 친구을 위해 잠실로 배웅을 나간다.

 

잠실역에서 대원들을 만나고 의아해 하시는 분들께 설명을 하고는 대기하고 있는 버스에 올라 천호동, 길동,상일동육교에서 일부 대원들이 타고는 중부고속도로을 올라 외곽순환도로상 복정역 상부에서 마지막으로 대원을 태우고는 목적지로 달려간다.

 

외곽순환도로에서 서해안 고속도로을 접속하여 서해안대교을 지나 행담도에서 아침식사 및 휴식을 취하고는 다시 서해안고속도로을 달려 홍성IC에서 내려 29번 국도 홍성방향으로 진행하다가 황곡교차로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여 홍주병오의병 주둔 유지비 앞에서 하차한다.

 

베낭을 챙겨 하차하니 우측편으로 하고개 해태상이 보이고 좌측편으로 홍주병오의병 주둔 유지비와 안내판이 보였다. 대원들 모두 베낭을 준비하여 홍주병오의병 주둔 유지비 좌측편으로 오르기 시작한다. 날씨는 운무가 약간 있지만 습하여 아무래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을것 같았다.

 

홍주병오의병 주둔 유지비 앞에서 바라본 하고개

지난구간 하고개에서 역방향으로 진행하기 위해 29번 국도 아래에 있는 황곡교차로에서 내려 신풍고개로 진행 하였지만 오늘 금북정맥 마루금은 하고개 라이온스클럽에서 설치한 해태상에서 29번 국도을 횡단하여 이곳(홍주병오의병 주둔 유지비 앞)으로 이어가야 하지만 산악회 버스로 황곡교차로에서 홍주병오의병 주둔 유지비 앞까지 이동하였다.

 

[하고개]

하우고개, 황우고개라고도 부르는데 옛날에 홍성의 옛 이름인 홍주(洪州) 목사(牧使)가 홍주읍내(洪州邑內)를 바라보기 위해 자주 올랐던 고개이며, 홍주를 지나 서산으로 가는 행인들이 쉬면서 말과 소에게 풀을 먹이고, 사람은 한숨 돌리던 고개라 하여 하고개, 하우고개, 황우고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현재는 홍성읍에서 서산시 해미면으로 이어지는 29번 국도가 지난다.

조선 말기에 국권을 회복하려는 의병의 봉화가 하우고개에서 맨 처음 올랐음을 기념하기 위하여 의병 기념비와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다.

 

내포문화숲길 이정표 : 내포역사인물길 33

[하고개]
황우고개라고 부르는데 옛날에 洪州牧使가 홍주읍내를 바라보기 위해 자주 올랐던 고개이며 홍주를 지나 서산으로 가는 행인들이 쉬면서 말과 소에게 풀을 먹이고 사람은 한숨 돌리는 고개라 하고개, 하우고개, 황우고개라고 부른다.

내포[內浦]

조선후기 실학자 이종환의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다. 공주에서 서북쪽으로 200여리쯤에 가야산이 있다. 서쪽은 큰바다이고 북쪽은 경기도 바닷가 고을과 큰 못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동쪽은 큰 들판이고 남쪽은 오서산에 가려져 있는데 가야산에서부터 이어져 온 맥으로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10고을을 내포라 한다” 고 언급되어 있다. 가야산 앞뒤의 10고을은 홍주, 결성, 해미, 서산, 태안, 덕산, 예산, 신창, 면천, 당진 등이라 한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서는 내포지역을 홍주목(지금의 홍성군)이 관활하던 충남 서천에서 경기도 평택까지의 20여 고을을 지칭하기도 했다. 이런 기록들에 의하면 내포지역은 충청도 지역중에서 서해안을 끼고 있는 대부분의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들머리지점의 모습

하고개에서 진행하는것이 맞지만 하고개 직진인 29번 국도 아래인 황곡교차로에서 좌측방향으로 지방군도을 이용하여  홍주병오의병 주둔 유지비 들머리지점에서 하차하여 산행준비을 한다. 하고개에서 시작한다면 해태상이 있는 지점인29번 국도을 무단횡단 하던지 아니면 황곡교차로을 돌아서 진행하영야 한다. 홍주병오의병 주둔 유지비 주변에는 안내판과 비석 그리고 뒤편에는 평상이 있었고 마루금은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홍주병오의병주둔지(하우령고개)

홍주의병은 1906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된 다음 해에 결성되었으며, 당시 국권을 회복하려는 의병의 봉화가 홍주의 하우고개에서 맨 처음 올라, 의병들이 홍산, 서천, 남포, 보령을 거쳐 광천에 와서 대부대가 되었으며, 이 주력부대가 광천에서 구항 마을과 신당곡을 거쳐 하우고개에 당도하였고, 천북, 결성, 서부에서 궐기한 의병들도 서산도로를 따라 하우고개에 집결하였다.
그리하여 이곳에서 홍주성 탈환의 진군나팔이 울리어 1906년의 병오의병 거사가 발화되었다고 한다.

 

 

 

홍주병오의병 주둔 유지비의 모습

하고개에서  29번 국도 아래인 황곡교차로에서 좌측방향으로 지방군도을 이용하여 홍주병오의병주둔유지비앞에서 좌측방향으로 완만하게 진행하면 잡풀이 무성한 136.2봉 삼각점에 도착한다. 136.2봉 삼각점을 지나내려서니 앞으로 올라야 할 백월산 정상부가 조망되고, 등로길에 낙엽송과 잣나무 단지가 있는 무명봉을 넘어 진행하니 32번 송전탑이 나타나고 잡목과 잡풀이 무성한 등로길을 진행하니 임도길이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완만하게 진행하니 살포쟁이고개에 도착한다.

 

살포쟁이고개는 홍성군 홍성읍  월산리와 구항면 황곡리를 넘나드는 고개로 옛날에 이 고개에서 죄인이나 짐승들을 죽였던 곳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당산나무가 있고 허물어진 돌탑 흔적이 있었다. 고개에서 완만하게 진행하면 암릉지가 좌측편으로 나오고 조금더 진행하면 백월산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헬기장이 나오고 잘 정돈된 묘지을 지나 오르면 시멘트 도로가 나타난다. 시멘트 도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다시 우측편으로 헬기장이 나오고 시멘트도로로 조금 진행하다가 우측편 숲속으로 진행한다. 

 

우측편 능선으로 진입하여 완만하게 진행하면 등로 좌측으로 바위 전망대가 나오고 잠시 그곳에서 조망하면서 휴식을 취해본다. 조망지에서 바라본 구항쪽 마을들이 시원하게 보이고 서쪽으로는 나즈막한 들판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민가가 보이고 그 한가운데에 큰 저수지가 보이지만 무슨 저수지인지 알 수 없었다.

 

전망바위에서  진행하니 백월산정상의 돌탑이 보이고, 정상부 주변에는 돌탑과 산불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뒤편으로 정상석과 삼각점이 있었다. 백월산정상에서 바라본 홍성읍내는 제법 넓어 보였고 저 멀리 예산의 산군들도 병풍처럼 보이고 ,새로 들어 설 충청남도 도청 소재지로 선정된 곳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정상에서 후미을 기다리며 주위 조망을 즐기고 후미가 도착하는것을 보고는 경사지을 내려 저 멀리 보이는 산신각과 팔각정로 진행한다.

 

진행하면서 뒤돌아본 모습

 

일월산(백월산으로 진행하는 모습

 

현위치 번호이정표 : 백월산 민속촌

 

136봉의 모습

136봉 주변에는 삼각점과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고 잡풀로 인하여 조망은 없었다. 마루금은 직진으로 진행한다.

 

136봉 삼각점(홍성 439)

 

136봉 삼각점 안내도의 모습

 

136봉 내림길 우측편으로 편백나무가 심어져 있었고 완만하게 진행한다.

 

내포문화숲길 이정표 : 내포역사인물길 31

 

송전철탑 통과(154kv은하-홍성T/L, NO.32)

 

내포문화숲길 이정표 (내포역사인물길 29)가 있는 무명봉 좌틀

 

내포문화숲길 이정표 : 내포역사인물길 29

 

현위치 번호이정표 : 백월산 민속촌 - 26

 

임도길 접속

철탑을 지나 내려서면 넓은 임도길이 나오고 계속하여 임도길로 진행하면 살포쟁이고개에 도착한다.

 

임도 갈림길 직진

 

내포문화숲길 이정표 : 내포역사인물길 27

 

살포쟁이고개

홍성군 홍성읍  월산리와 구항면 황곡리를 넘나드는 고개로 옛날에 이 고개에서 죄인이나 짐승들을 죽였던 곳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당산나무가 있고 허물어진 돌탑 흔적이 있다.

 

살포쟁이고개 이정목의 모습

 

내포문화숲길 이정표 : 내포역사인물길 26

 

현위치 번호이정표 : 백월산 민속촌 - 27

 

완만하게 진행하는 등로길의 모습

 

현위치 번호이정표 : 백월산 민속촌 - 28

 

현위치 번호이정표 : 백월산 민속촌 - 29

 

암릉의 모습

 

내포문화(內浦文化)

내포(內浦)는 ‘내륙 깊숙이 들어앉은 포구’를 말하며, 태안, 서산, 당진, 홍성, 예산, 아산 등 가야산을 중심으로 열 고을이 바로 그곳이다. 아산만, 가로림만, 천수만에 연결된 하천을 통해 내륙 깊숙이까지 뱃길이 연결되어, 중국의 불교문화가 이곳을 통해 곧바로 백제에 유입되어 태안마애삼존불, 서산마애삼존불, 예산화전리 사면석불 등이 바로 그 흔적이라 말할수있다.

내포지역은 한반도의 불교문화 선진지역이었던 지역이며, 이곳을 통해 백제의 불교가 일본으로 건너갔고, 천주교가 이곳 내포지역으로 들어왔던 곳이다. 그리고 내포지방은 일본 천황가의 뿌리나라(根國)라고 한다. 백제가 망하자 백제의 왕족들이 이곳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황실을 건설했다고 한다.

내포(內浦)는, 충남 아산에서 태안까지의 평야 지대를 일컫는 지명으로, 삽교천(揷橋川)과 무한천(無限川)의 물줄기가 흐르는 충남 중서부 지역을 총칭한다.

내포는 이중환의 '택리지'에 언급된 용어로 서산, 당진, 홍성, 예산, 아산, 청양 지역을 말하며,이 지역에서 태동한 문화를 '내포문화'라고 하는데, 조선후기의 서경덕, 이지함, 홍가신 등 많은 실학자를 배출했고, 천주교 성지 또한 이곳에 집중된 것 또한, 이 지역 사람들의 경직되지 않고, 진취적인 사상을 말하는 것이라 하겠다.

 

진행하면서 뒤돌아본 마루금의 모습

 

현위치 번호이정표 : 백월산 민속촌 - 30

 

무명봉 통과

 

백월산 갈림길

백월산 갈림길 주변으로는 이정표, 이정목, 쉼터의자가 설치되어 있고 마루금은 우측방향으로 진행한다.

 

국가지점번호 이정표 : 다 바 2167 4528(구항-8)

 

백월산 갈림길 이정표 : 구항면사무소 2.2km, 백월산정상 0.4km

내포문화숲길 이정표 : 내포역사인물길 25

 

헬기장 통과

백월산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잡풀이 무성하여 폐허가된 헬기장이 나오고 그 조금더 진행하면 임도길 우측편에 또 다른 헬기장이 나온다.

 

국가지점번호 이정표 : 다 바 21676 4538(구항-9)

 

임도길 접속

주변에는 이정표와 안내판 그리고 쉼터 평상이 설치되어 있었다. 평상에서 한숨자고 진행하면 좋을것 같았다. 임도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또 다른 헬기장이 나오고 헬기장을 지나 우측편 숲속으로 오르면 백월산 정상에 도착한다.

 

이정표 : 구항면사무소 2.3km, 백월산정상 0.3km

 

긴급신고 및 구조요청 안내판의 모습

 

헬기장 통과

 

헬기장 임도길에서 뒤돌아본 모습

 

임도 탈출

헬기장을 지나 임도길로 오르다가 우측편으로 보이는 나무계단으로 진행하면 백월산정상부에 도착한다.

 

국가지점번호 이정표 : 다 바 2162 4562(구항-10)

 

백월산으로 오르는 등로길의 모습

 

백월산 정상에서 내포(內浦) 문화의 중심 홍성(洪城)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다라고 적혀있다. 공주에서 서북쪽방향 200여리쯤에 가야산이 있고, 서쪽방향으로  서해바다가 있으며, 북쪽방향으로 경기도 바닷가 고을과 큰 못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동쪽은 큰 들판이고 남쪽은 오서산에 가려져 있는데 가야산에서부터 이어져 온 맥으로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10고을을 내포라 한다."고 언급되어있다.

가야산 앞뒤의 10고을은 홍주, 결성, 해미, 서산, 태안, 덕산, 예산 신창, 면천, 당진 등이라 한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서는 내포지역을 홍주목(洪州牧, 지금의 홍성군)이 관할하던 충남 서천에서 경기도 평택까지의 20여 고을을 지칭하기도 했다. 이런 기록들에 의하면 내포지역은 충청도 지역중에서 서해안을 끼고 있는 대부분의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홍주와 결성을 합쳐서 홍성이된 뒤 내포지방에서 가장 큰 고을이 만들어 졌고, 우리나라 어패류의 최고 산란지로 꼽혀온 천수만을 서쪽에 거느리고 옹암포와 광천, 동산포 등의 작은 포구들이 결성으로 연결되어 풍부한 해산물이 올라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홍주는 호서의 가장 큰 고을이다.  그 땅이 기름지고 넓으며,그 백성이 번성하고 많아서 난치의 고장으로 일컬어왔다’ 고 기록되어 있는데 홍성읍내 가운데 있는 홍주성이 그것을 대변해 준다. 배산임수형인 홍주성은 홍동산~백월산~오서산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이 적의 침입을 막는 1차적인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반타원형의 평지성(平地城)으로 옛부터 내포지방 방어에 핵심 역할을 해왔다.

 

백월산(白月山 : 394.3m)정상부의 모습

백월산정상부에는 중앙부에 돌탑으로 만들어진 산불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고 그 뒤편으로 정상석과 삼각점이 있었다. 정상에서 바라보는 홍성의 조망이 일품이었고, 시원한 바람을 맞으며 까치고개로 이어간다.

 

백월산(白月山 : 394.3m)

국가지점번호 이정표 : 다 바 2167 4574(구항-23)

홍성의 진산으로 홍성읍 월산리, 구항면 오봉리, 홍북면 중게리에 걸쳐있는 산이며, 정상에는 기암괴석에 ‘누어백월산기암벽상(樓於白月山奇岩璧上)’라고 써 놓은 비가 있다.

백월산은 이조 말엽에 홍주 이방으로 있던 명필이며, 문장가인 이 종근의 시에 나오는 '백월산하(白月山下) 라는 구절을 따서  백월산이라 한다’ 는데 여암 선생의 산경표와 고산자 선생의 대동여지도에는 백월산도 일월산도 아닌 월산(月山)이고, 국립지리원의 고시 지명에는 일월산으로 되어있다.

 

백월산(白月山 : 394.3m )정상부에서 인증샷

일부 지도에는 '日月山'이라 표기가 되어 있는데, 아마도 '흰 白'자를 '날 日'자로 잘못 읽은 탓이라 생각하며, 홍성 백월산은 해발 393.6m로 그다지 높지 않은 산이지만, 평야지대에 우뚝 솟아 있어 그 위용이 결코 만만하지 않고, 나란히 마주보고 있는 용봉산과 더불어 홍성의 鎭山이라 할 수 있다.

 

백월산(白月山 : 394.3m )정상부에서 인증샷

백월산정상에서 홍성읍(내포)의 모습을 조망하고는 정상석 옆으로 내려서니 산신각 가는 길에 우측편으로 강아지 모양으로된 강아지바위가 나온다. 잠시후 시멘트 도로가 나오고 직진으로 오르니 갈림길이 나타난다. 우측방향의 임도길은 전망대로 바로 가는 단축코스이며, 산신각으로 가는 방향은 이곳에서 직진으로 올라서야 한다.

 

산신각을 거쳐 내려서니 좌측편으로 전망대와 천재단이 자리하고 있었고 정면으로는 체육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전망대에 올라 홍성읍을 조망하지만 운무로 인하여 조망이 없고 전망대 뒤편으로 이어지는 등로길로 진행하니 또다른 큰 바위가 맞아준다.

 

코끼리 모양으로 한 바위에서 인증샷을 남기고는 나무계단으로 내려서니 전망이 좋은 암릉지에 도착한다. 바로 아래로 홍성군 홍북면과 갈산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저멀리 앞으로 올라야할 덕숭산과 가야산이 조망된다. 이곳에서 고도을 낮추어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급경사지를 내려서면 잠시 후 임도길을 만나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폐허가된 교회 옆을 지나 내려서면 까치고개에 도착한다.

 

 

백월산 삼각점(홍성 23)

 

삼각점 안내판

 

일월산(백월산) 삼각점 안내판과 국가지점번호 이정표(다 바 2167 4574(구항-23))의 모습

 

 

백월산 정상에서 내포(內浦) 문화의 중심 홍성(洪城)

조선후기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에서 "충청도에서는 내포가 가장 좋다라고 적혀있다. 공주에서 서북쪽방향 200여리쯤에 가야산이 있고, 서쪽방향으로  서해바다가 있으며, 북쪽방향으로 경기도 바닷가 고을과 큰 못이 하나를 사이에 두고 있다. 동쪽은 큰 들판이고 남쪽은 오서산에 가려져 있는데 가야산에서부터 이어져 온 맥으로 가야산의 앞뒤에 있는 10고을을 내포라 한다."고 언급되어있다.

 

가야산 앞뒤의 10고을은 홍주, 결성, 해미, 서산, 태안, 덕산, 예산 신창, 면천, 당진 등이라 한다.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에서는 내포지역을 홍주목(洪州牧, 지금의 홍성군)이 관할하던 충남 서천에서 경기도 평택까지의 20여 고을을 지칭하기도 했다. 이런 기록들에 의하면 내포지역은 충청도 지역중에서 서해안을 끼고 있는 대부분의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홍주와 결성을 합쳐서 홍성이된 뒤 내포지방에서 가장 큰 고을이 되었다. 그것은 우리나라 어패류의 최고 산란지로 꼽혀온 천수만을 서쪽에 거느리고 옹암포와 광천, 동산포 등의 작은 포구들이 결성으로 연결되어 풍부한 해산물이 올라왔기 때문이라고 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홍주는 호서의 가장 큰 고을이다.  그 땅이 기름지고 넓으며,그 백성이 번성하고 많아서 난치의 고장으로 일컬어왔다’ 고 기록되어 있는데 홍성읍내 가운데 있는 홍주성이 그것을 대변해 준다. 배산임수형인 홍주성은 홍동산~백월산~오서산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이 적의 침입을 막는 1차적인 방어선을 구축하고 있는 반타원형의 평지성(平地城)으로 옛부터 내포지방 방어에 핵심 역할을 해왔다.

 

 

백월산 정상부에서 바라본 산식각과 팔각정 조망

백월산 정상에서 주위의 탁트인 홍성의 모습을 감상하고  인증샷을 남기고는 산신각 및 팔각정이 보이는곳으로 이동한다.

천수만의 서쪽을 제외하곤 삼면이 대부분 구릉지대로 둘러쳐진 백월산 정상에선 앞쪽으로 홍동산(308.9m) 좌측의 앞편에는 삼준산(490m),  우측의 앞쪽엔 용봉산(381m), 그리고 지나온 오서산(791m)이 아련히  조망이 된다.  이곳은 역사적으로 많은 유적지를 품고 있는 구간이다.

 

특히 전국의 유명한 무당들이 성지순례하듯이 이곳을 다녀간다는데 그 연유는 이곳이 기도빨이 가장 효험이 있고 강신 하나만큼은 확실한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나무계단을 따라 내려간다.

 

 

 

 

강아지 바위의 전설

백월산 정상 바로 아래 안부 정맥길 옆에는 강아지 바위가 있는데, 여기에 얽힌 전설이 있다.

백월산 북동쪽으로 가까운 거리에 용봉산이 있고, 백월산과 용봉산 사이에 소향리라는 마을이 있는데, 소향리 마을의 이름은 소향이라는 아가씨에서 유래한다.

소향이라는 아리따운 처자를 차지하기 위해 백월산 장수와 용봉산 장수가 서로 싸웠는데, 이 때 자기 산에 있던 바위들을 던지기 시작한 것. 암산인 용봉산에 비해 육산으로 이루어진 백월산에는 바위가 거의 없는데, 조금 있던 바위들을 다 던지고 난 백월산 장수가 던질 바위가 없자 키우던 강아지 마저 바위로 만들어

던지려는 순간, 용봉산 장수가 "나 졌소"하고 포기했다고 한.

백월산 장수는 키우던 강아지가 바위로 변해 버렸지만, 소향이라는 아가씨를 얻었기에 만족했다하는데, 그 때 바위로 변해버린 강아지바위가 정상 바로 밑에 있다.

 

강아지 바위의 모습

[용봉산과 백월산 장수의 싸움의 유래]
우리 고장에 용봉산과 백월산이 있잖어. 저기 저 산 말여. 저 두 산이 서로 마주보고 서 있잖어. 저기 저 산 좀 봐. 두 산에 크고 재미있게 생긴 돌들이 참 많잖어.특히 용봉산에는 온통 돌이 뒤덮이다시피 했단 말여. 그리고 이 두 산 사이에 소향리라고 하는 마을이 있단 말여. 소향리는 백월산이 있는 홍성읍 소속이구 말여. 여기에 재미있는 얘기가 있어. 옛날에 저 용봉산과 백월산에 장수가 각각 살고 있었다는구먼. 그런데 용봉산과 백월산 사이에 소향이라고 하는 아주 예쁜 아가씨가 살고 있었다는 거여. 이 두 장수가 소향 아가씨를 짝사랑했었대. 그런데 건너편 산에 있는 장수가 눈에 가시란 말여. '저놈만 없으면 소향 아가씨는 내 차지가 될 텐데!' 하고 말여. 두 장수는 서로 상대편 산에 있는 장수를 경계하며 눈치만 살피고 있었어.그러다가 마침내 큰 싸움을 벌이게 되었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었어.자기 쪽 산에 있는 돌을 집어서 상대편 산 쪽으로 던지기 시작했어. "에잇 받아라 이놈아!" 두 장수는 상대편 장수를 쓰러뜨리기 위해 쉬지 않고 돌을 던졌어.힘 센 장수들이 던지는 돌이니께 얼마나 정신없이 날아갔겠어? 아마도 쌩쌩 소리를 내며 포탄처럼 날아갔겠지. 그렇게 치열한 싸움을 벌인 것이 얼마나 지났는지 몰러. 한 일주일 쯤은 싸운 모양이여.점점 두 산에서 던지는 돌이 용봉산 쪽에 많이 쌓이기 시작했어. 백월산 장수가 돌을 더 많이 던졌기 때문이지. 마침내 치열하던 싸움이 끝났어.백월산 장수가 싸움에서 이긴 거여. 그 덕분에 백월산에는 그 많던 돌들이 얼마 남지 않게 되었다는 거여.하지만 용봉산에는 백월산 장수가 던진 돌들이 많이 쌓여서 기암괴석이 많게 되었다는구먼. 결국 두 산의 가운데 살았던 소향 아가씨는 백월산 장수의 차지가 된 거지. 그 바람에 홍성군 홍성읍과 홍성군 홍북면의 가운데에 위치해 있던 소향리도 백월산이 있는 홍성읍의 차지가 되었구 말여.

 

강아지 바위 아래 제단의 모습

무속인들이 강아지 바위 아래에서 제사을 올리는것 같았다.

 

강아지바위 이정표 : 팔각정 0.2km, 백월산 정상 0.1km, 산혜암주차장 1.6km

 

임도 탈출

백월산에서 계단으로 내려서면 강아지 바위가 나오고, 좌측편으로 임도길 옆으로 산림환경 단속 순찰대 건물과 멋진 소나무 한그루가 보인다. 마루금은 산신각과 전망대가 있는 우측방향으로 진행한다.

 

갈림길 통과

임도길에서 탈출하여 오르면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은 전망대로 바로 진행하는 단축코스이며, 직진방향은 산식각을 거쳐 전망대로 이어지는 코스이다.

 

산신각 직진에 있는 암릉의 모습

 

산신각

산신각 내에 들어서니'홍주청난사중수비'와 산신각이 있고, 산신각 안에는 백월산신과 '홍가신(洪可臣)'의 위패가 모셔져 있다. '홍가신'은 임진왜란 이후 계속되는 흉년으로 민심이 동요되자 선조 30년 이몽학이 반란을 일으켜 홍주성으로 쳐들어 왔을 때 홍주목사로 있던 홍가신이 난을 평정하여 그 공으로 청난공신(淸難功臣) 1등에 봉해진 인물이라고 한다.

좌측에는 옛 홍주목사 홍가신의 비석이 보이며 이곳의 산신각에는 백월산 산신을 모시고 있으며, 이 지역 토속신앙의 중심지이고, 전국의 무당들이 이곳을 많이 다녀 간다는데 그 연유는 이곳의 기도빨이 가장 효험이 있고, 강신 하나만큼은 확실하다고 합니다.

[홍가신의 비석]

 '홍가신'은 임진왜란 이후 계속되는 흉년으로 민심이 동요되자 선조 30년 이몽학이 반란을 일으켜 홍주성으로 쳐들어 왔을 때 홍주목사로 있던 홍가신이 난을 평정하여 그 공으로 청난공신(淸難功臣) 1등에 봉해진 인물이라고 한다.

산신각 내 마당에 있는 홍주청난사중수비

 

백월산 산신각 전망대에서 바라본 홍성읍내 홍주성

홍주성은 풍수지리에서는 앉음새가 ‘천둥이 땅에 떨어지는 형국’이라고 하는데 그래서 그런지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는 많은 사건을 겪게된다.

변산반도의 개암사(전북 부안소재)의 울금산성과 함께 백제 부흥운동의 주요 거점으로 추정되는 홍주성은 고려이후 무려 열여섯 차례나 왜구의 침략을 받았고 근세에는 동학농민항쟁이 벌어졌을 당시 동학군은 내포지방 행정의 중심지인 홍주성인 이곳으로 집결하여 관군과 대규모 전투를 벌여 많은

동학군들이 희생되었다.

 

또 구한말에는 홍주성에서 민종식이 이끄는 의병과 일본군 사이에  큰 전투가 벌어진 곳이다. 이조참판이었던 민 종식은 1906년 의병을 이끌고  홍주성을 공격하는 일본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는데 당시에 발행된 대한매일신보 기사에는 약 1000여명이 사망한 것으로 보도되었다.

홍주의병이 비록 실패하긴 했으나 우리 의병사에 차지하는 비중은 매우커다. 홍주의병은 민종식 이하 유생들이 주도했지만 당시 농민과 보부상 등 강제 해산 당한 병사들이 참여해 민중의병 성격이 강했던 것이다.

국가지점번호 이정표 : 다 바 21657 4598(산혜암-22)

 

백월산 전망대의 모습

전망대는 백월산에서 약300m 떨어진곳에 설치되어 있었다. 앞에는 제단이 잇고, 그 옆으로 운동 시설물들이 있었다. 마루금은 전망대 뒤편으로 이어진다. 이곳에서 알바하기 쉬운지점임으로 주위하여야 한다. 잘못하면 직진으로 내려서면 월산리로 이어진다.

 

전망대 옆에 설치되어 있는 운동 시설물의 모습

 

백월산(白月山) 고천제단(告天祭壇)의 모습

 

코불소 바위

꼭 모습이 코불소 같아 칭해본다

 

금북정맥 이정목 : 좌)보개산방향, 우)수덕산방향

 

까치고개로 내려서는 내림길의 모습

코불소바위 우측편으로 내림길이 나오는데 미끄러움을 조심하기 위해 등로길에 나무로 계단을 만들어 놓았는 오래되어 실용성이 적어 보였다. 조금만 내려서면 조망이 확터이는 조망지에 도착한다.

 

내림길의 모습

 

전망바위에서 조망

팔각정에서 뒤편으로 내려서면 조망이 좋은 암릉에 도착하고 조망지에서 바라보면 바로 아래로 홍성군 홍북면과 갈산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망지에서 내려서면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급경사지가 나오고 잠시 후 임도길을 만나 진행하면 폐허가된 교회 옆을 지나 내려서면 까치고개에 도착한다.

 

넓은 임도길 통과

 

폐허가 되버린 교회

팔각정에서 급경사지을 약25여분 내려서니 다시 편안한 임도가 나타나고 우측에는 주택 몇채와 과수원 농가가 보인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꺽어져 내려가지말고 탱자나무 울타리가 있는 폐허가 되버린 교회종과 건물뒤로 지나간다.

 

까치고개 날머리지점의 모습

 

까치고개(해발110m)

까치고개는 예산군 덕산면과 홍성군 구항면 갈오리와 홍성읍으로 통하는 홍북면 미력골 마을을 지나는 지방도가 있고 고개 우측에 있는 '고개쉼터'식당  마당으로 내려서 좌측방향에 있는 홍성군 폐기물처리장 앞으로 정맥길이 이어진다.

까치고개 삼거리의 모습

이 지역 사람들은 까치고개라는 용어는 잘 모르고 그저 휴게소 고개라고 부른다.

까치고개는 예산군 덕산면과 홍성군 구항면, 홍북면의 경계로 낙상리에서 홍성으로 통하는 고개인데 한자

이름으로 작현(鵲峴)이라고도 한다. 까치고개를 지나면서부터 이제는 홍성과 예산의 군계를 따라 진행한다.까치고개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홍성군 쓰레기 매립장 정문 앞에 도착하며 좌측방향 숲속으로 이어간다. 우측에 홍성환경사업소 정문에서  좌측으로 휀스를 따라 한동안 걸어간다

 

완만하게 진행하면 수리고개에 도착하고, 수리고개는 낙상리와 홍복면 중계리을 잇는 고개마루다. 고개에서 직진으로 오르면 125봉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여 오르면 홍동산 정상에 도착한다. 주변에는 산불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민둥산으로 변하여 흉칙하지만 조망은 일품이었다. 

190봉을 치고 오르니 바로 지나온 125봉과 낙상리 저수지가 보이고 저멀리 백월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금만 암릉위를 지나니 다시 소나무 사이로 편안한 안부를 걷는다. 오서산 아래에서 부터 시작한 금북정맥 마루금은 이곳 능선에서 부터 홍성군과 이별을 고하고 예산군 덕산면으로 접어든다. 여기서도 고도편차없이 능선길을 빠른속도로 걷는다.

 

홍등산은 홍성군 홍북면에 있는 산으로 "서쪽으로는 산이 첩첩으로 쌓여 있고, 이 산에서부터 동편이 열려 있다"라는 의미라 한다. 정상에는 정상석은 없고 나무목이 정상을 알려주고 있었다. 홍등산 정상에서 우측방향으로 완만하게 내려서면 용봉산갈림길에 도착한다. 마루금에서 1.5km 가량 벗어나 있는 용봉산(龍鳳山 381m)은 산이 크고 험하지는 않으나 산 전체가 기묘한 바위 봉우리로 이루어져 '남한의 금강산'이라 불릴만큼 아름답다. 산 이름은 용의 몸집에 봉황의 머리를 얹은듯한 형상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용봉산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무명봉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다시 갈림길 삼거리가 나온다. 또 다시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넓은 육괴정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넓은 임도길로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마루금은 직진으로 내려서면 수덕고개 주변 식당앞에 떨어지는데 좌측편 육괴정으로 가는 등로길이 잘 정돈되어 잘못하면 알바하기 쉬운 지점이다.

 

용봉산갈림길을 통과 후에는 계속하여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수덕식당이 있는 수덕고개에 도착한다. 수덕사고개 주변으로는 몇개의 식당들이 영업중이고,그 옆으로 큰 느티나무와 육괴정(六槐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수덕고개의 도로를 건너 개인 사유지라 철조망에 막혀있어 느티나무가 있는곳에서 40번 지방도을 횡단하여 철조망 따라 진행하면 조릿대(대나무)가 무성한 곳에서 우측방향으로 턴하여 다시 철조망을 우측편에 두고 진행하면 수덕산(덕숭산)으로 진행할수 있다   

덕숭산은 백제 때의 명 사찰인 수덕사를 품고 있는 산이라 수덕산으로 불리기도 한다.덕숭산을 내려오는 길은 세 군데의 갈림길을 지나는데, 그때 마다 다소 주의가 필요하다. 정상 바로 아래 50m 지점에서 수덕사 방향 좌측길로 진행한 후 다음 갈림길 부터는 우측 로 접어들어 내려오면, 45번 국도와 만나는 나본들고개가 조망이 된다.

 

홍성 쓰레기매립장 입구에서 뒤돌아본 모습

 

홍성군 쓰레기 매립장

까치고개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홍성군 쓰레기 매립장 정문 앞에 도착하며 좌측방향 숲속으로 이어간다. 우측에 홍성환경사업소 정문에서  좌측으로 휀스를 따라 한동안 걸어간다.

홍성환경사업소 정문 우측편에 두고 통과

 

홍성환경사업소 철조망 통과

철조망 펜스를 따라 진행하니 방화선 같은 넓은 임도가 나오고 등로길이 마사토길이라  미끄러워 조심해서 완만하게 진행한다.

 

 

철조망 사이로 바라본 홍성 환경 사업소의 모습

 

마루금에서 바라본 용봉산의 모습

용봉산(해발381m)은 서원산에서 수덕산에 이르는 산지능선의 동측에 북북동-남남서 방향으로 6.5km의 길이와 2km의 폭으로 뻗어 있다. 용봉산지역은 수암산(260m)에서 용봉산에 이르는 곳으로서 평야지역에 솟아있는 고립구릉을 이루고 있다. 이 지역은 중립지혹운모화강암으로 구성되어 화강암지역에 나타나는 이반적인 암석미지형들이 분포하고 있다. 용봉산의 고립구릉의 능선은 양측 끝의 암봉을 중심으로 중앙부가 안부(鞍部)를 이루고 있는 암석구릉으로서 토르, 암주, 암봉 등 암석미지형이 가장 대표적인 자연경관을 이루고 있다. 용봉산능선에서 대부분의 암석미지형들이 분포하고 있는 곳은 300m 이상의 지역으로서 악귀봉을 중심으로 집중되어 있으며 150m 부근에 암주와 토르들이 분포하고 있다.

 

수리고개 통과

수리고개는 낙상리와 홍복면 중계리을 잇는 고개마루에 위치하고 있다.

 

수리고개 이정목

 

수리고개 통과후 뒤돌아본 모습

 

125봉 통과

수리고개에서 완만하게 진행하면 125봉 갈림길이 나오고 홍동산방면은 우측방향으로 진행한다.

 

금북정맥 이정표 : 아래)백월산방향, 우)수덕산방향

 

지나온 마루금 조망

저멀리 일월산(백월산)이 조망된다

 

지나온 마루금 조망

190봉을 치고 오르니 바로 지나온 125봉과 낙상리 저수지가 보이고 저멀리 백월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금만 암릉위를 지나니 다시 소나무 사이로 편안한 안부를 걷는다. 오서산 아래에서 부터 시작한 금북정맥 마루금은 이곳 능선에서 부터 홍성군과 이별을 고하고 예산군 덕산면으로 접어든다. 여기서도 고도편차없이 능선길을 빠른속도로 걷는다.

 

홍동산 정상부 조망

홍동산 주변에는 산불의 흔적이 많아 벌목을 하여 민둥산이 되어 있었고 무더운 날씨속에 정상부에 오르니 시원한 한줄기 바람이 불어온다.

 

산불로 인하여 폐허가된 민둥산의 모습

 

홍동산 정상의 모습

 

홍동산(弘東山, 해발 309m)

홍성군 홍북면에 있는 홍동산은 "서쪽으로는 산이 첩첩으로 쌓여 있고, 이 산에서부터 동편이 열려 있다"라는 의미라 한다.

 

홍동산(弘東山, 해발309m) 정상부에서 인증샷

 

홍동산(弘東山, 해발309m) 정상부에서 인증샷

 

금북정맥 이정표 : 아래)백월산방향, 우)수덕산방향

 

용봉산 갈림길

용봉산방향은 우측방향이며, 마루금 수덕고개방향은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된다.

 

용봉산 갈림길

홍성군을 관통하며 북진하던 금북정맥 마루금은 말미고개에서 홍성군과 작별하는데 옛 홍주군과 결성군을 합한 군으로 홍주는 본래 고려의 운주를 지주사로 고쳤다가 홍주로 다시 고쳤다.
조선시대에는 여러 차례의 변혁을 거쳐 군이 되었고, 1914년 옛 결성군을 합쳐 홍성군이 되었다. 홍성은 홍주성(洪州城)의 줄임말로 산경표나 대동여지도에는 모두 홍주로 기재되어 있다.
호서지방의 주요 읍성이었고 이 고을을 중심으로 발전한 홍주는 서쪽에 일월산, 북쪽에 용봉산이 홍주를 호위하는 형국이란다
.


마루금에서 1.5km 가량 벗어나 있는 용봉산(龍鳳山 381m)은 산이 크고 험하지는 않으나 산 전체가 기묘한 바위 봉우리로 이루어져 '남한의 금강산'이라 불릴만큼 아름답다. 산 이름은 용의 몸집에 봉황의 머리를 얹은듯한 형상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갈림길 통과

용봉산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다시 갈림길이 나오고, 이곳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된다.

 

임도길 통과(우틀)

 

임도길 탈출(우틀)

임도길로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마루금은 직진으로 내려서면 수덕고개 주변 식당앞에 떨어지는데 좌측편 육괴정으로 가는 등로길이 잘 정돈되어 잘못하면 알바하기 쉬운 지점이다.

 

이정표 : 육괴정 0.34km, 둔리2리(용봉저수지) 1.76km

 

임도 갈림길(우틀)

 

수덕고개 주차장의 모습

 

수덕고개 이정표 : 육괴정 0.13km, 둔리2리(용봉저수지) 1.97km

 

수덕고개 식당의 모습

수덕사고개 주변으로는 몇개의 식당들이 영업중이고,그 옆으로 큰 느티나무와 육괴정(六槐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수덕고개의 도로를 건너 개인 사유지라 철조망에 막혀있어 느티나무가 있는곳에서 40번 지방도을 횡단하여 철조망 따라 진행하면 조릿대(대나무)가 무성한 곳에서 우측방향으로 턴하여 다시 철조망을 우측편에 두고 진행하면 수덕산(덕숭산)으로 진행할수 있다   

덕숭산은 백제 때의 명 사찰인 수덕사를 품고 있는 산이라 수덕산으로 불리기도 한다.덕숭산을 내려오는 길은 세 군데의 갈림길을 지나는데, 그때 마다 다소 주의가 필요하다. 정상 바로 아래 50m 지점에서 수덕사 방향 좌측길로 진행한 후 다음 갈림길 부터는 우측 로 접어들어 내려오면, 45번 국도와 만나는 나본들고개가 조망이 된다.

 

수덕고개(육괴정)에서 바라본 덕산방면의 40번 지방도의 모습

도로 건너편 철조망 우측편으로 산악회 리본들이 붙혀있지만 우리는 좌측편 철조망 밖에서 진행하여 철조망이 끝나는 부분에서 유턴하여 철조망 안쪽으로 진행한다

 

육괴정(六槐亭, 해발132 m)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고개로 수덕사를 넘나드던 고개라고 하여 이 지역사람들은 수덕고개라고 하며,

해미에서 예산을 잇는 40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다.

육괴정이란 조선 중종 14년(1519)에 기묘사화로 중심으로 지차주의와 현상정치를 추구하던 신진사류들이

몰락하고, 이때 난을 피해 낙향한 남당 엄용순이 건립했다는 정자이다. 

 육괴정이란 이름은 당대의 명현인 모재 김안국을 비롯 규정 강은, 계산 오경, 퇴유 임내신, 두문 성담령,

남당 엄용순 등 6명의 선비가 모여 시회와 학문을 강론하며, 우의를 기리는 뜻에서 정자 아래에 못을 파서

연을 심고, 각자 한그루씩 6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는데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연못은 매워지고, 6그루의 느티나무 중에 3그루가 또한 고사하여 후손들이 다시 심어

지금도 그 푸르름을 자랑한다.

 

육괴정(六槐亭 :132m)

충남 예산군 덕산면에 있는 고개로 수덕사를 넘나드던 고개라고 하여 이 지역사람들은 수덕고개라고 하며 해미에서 예산을 잇는 40번 국도가 지나는 곳이다.

육괴정이란 조선 중종 14년(1519)에 기묘사화로 중심으로 지차주의와 현상정치를 추구하던 신진사류들이 몰락하고 이때 난을 피해 낙향한 남당 엄용순이 건립했다는 정자이다. 

육괴정이란 이름은 당대의 명현인 모재 김안국을 비롯 규정 강은, 계산 오경, 퇴유 임내신,두문 성담령, 남당 엄용순 등 6명의 선비가 모여 시회와 학문을 강론하며 우의를 기리는 뜻에서 정자 아래에 못을 파서 연을 심고 각자 한그루씩 6그루의 느티나무를 심었다는데서 유래되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 연못은 매워지고 6그루의 느티나무중에 3그루가 또한 고사하여 후손들이 다시 심어 지금도 그 푸르름을 자랑한다.

 옛날 내포지역에서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갈 때 이곳을  거쳐야만 했는데 바로 이곳에 주막이 있었고 사람들은 주막에서 쉬어가곤 했다. 지금의 식당과 여관 역할을 한 곳이다.

 

수덕고개에 있는 자연식당의 메뉴판의 모습

 

자연식당의 모습

자연식당에서 먼저가 대원들이 후미을 위해 맥주을 준비하여 맥주 한잔과 시원한 식수을 마시고는 뒤에서 오는 후미을 기다려 보지만 오지 않고, 휴식을 취하고는 덕숭산으로 진행한다. 마루금 이어가면서 자연식당에서 식사도하고 물공급도 하면 좋을것 같았다. 주인의 인심이 후덕하여 3덕에 하나더 덕을 추가해 본다.

"3덕(德)"+1덕(德) 추가 

1덕 : 산 이름 "덕숭(德崇)"

2덕 : 절 이름 "수덕(修德)"

3덕 : 마을 이름 "덕산(德山)" 바로 三德이다.

추가 1덕 : 사람의 마음 " 후덕"

 

수덕사(修德寺)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에 있는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의 본사이다.

창건이나 그 이후 역사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어 절의 연혁을 알 수 없다.〈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말 숭제법사(崇濟法師)가 창건하고, 고려 공민왕 때 나옹(懶翁)이 중수했다고 하며, 일설에는 백제 599년(법왕 1)에 지명법사(智命法師)가 창건하고 원효가 중수했다고도 한다. 조선시대말에 경허(鏡虛)선사가 선풍(禪風)을 일으킨 뒤 1898년(고종 35) 그의 제자인 만공(滿空) 선사의 중창으로 번성하여 현재 36개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5대총림(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의 한 곳이다. 백제 말에 창건된 수덕사는 근·현대에 들어서서 경허 성우(鏡虛 惺牛) 스님을 비롯해 만공 월면(滿空 月面),수월, 금오 태전(金烏 太田), 벽초 경선(碧超 鏡禪), 대의(大義), 청담 순호(靑潭 淳浩), 묘리 법희(妙理 法喜), 일엽 하엽(一葉 荷葉) 스님 등의 고승이 주석, 선(禪)의 중흥지로 뿌리내려져  있다.  1984년에 덕숭총림(德崇叢林)을 개설한 수덕사는 종합수도도량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혜암 현문(惠庵 玄門), 벽초스님이 있었다. 수덕사의 산내암자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선원인 견성암을 비롯하여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이 선풍을 휘날리던 정혜사와 금선대 등이 있다. 수선도량으로서 수덕사는 선(禪)의 생활화와 선풍진작의 계승을 위해 선실천(禪實踐) 수련대회를 갖는 등 일반인들에게 우뚝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경선(碧超 鏡禪)· 원담 진성(圓潭 眞性)스님 등이 방장으로 주석하면서 수선도량으로서의 면모를 이어오고 있다. 또한 1996년에는 승가대학을 개설해 총림의 위상 제고에 힘쓰고 있으며, 일주문 밖의 상가 등을 정비하여 수행환경 정화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덕고개 통과후 뒤돌아본 모습

 

철조망을 우측편에 두고 통과

수덕고개에서 40번 지방도을 무단으로 횡단하여 철조망을 우측편에 두고 진행하다가 철조망 끝나는 부분에 조릿대 나무가 있고 이곳에서 턴하여 철조망을 따라 진행하면 계곡이 나오고 잠시후 철조망이 열려있는곳을 통과하여 올라서면 조망이 좋은 암릉지에 도착한다.

 

저 멀리 예산군 덕산면에 소재한 용봉 저수지와 수암산이 보인다.이곳에 있는 삽교와 덕산은 삽교는 읍이고 덕산은 면인데도 불구하고 삽교가 덕산의 절반밖에 되질 않는다고 한다. 덕산은 유명한 덕산온천이 있어

유동인구가 많고 삽교는 마땅한 시설이 없어 자꾸만 사람이 준다고 한다.

이곳인 삽교와 홍성의 경계지역에 아마 충남도청이 이곳으로 이전해올 모양이라 거기에 많은 기대를 건다고 한다.

 

암릉지에서 올라서면 수덕사 갈림길이 나오고, 마루금인 덕숭산 정상은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되지만 좌측방향은 수덕사에서 올라오는 등로길이다. 우측방향으로 올라서면 덕숭산정상부에 도착한다.

 

덕숭산 바로 아래에 수덕사가 자리잡고 있어 일명 수덕산(修德山)이라고도 불리며, 금북정맥 줄기로 예산읍에서 서쪽으로 약 20㎞ 떨어진 지점에 있다. 산이 높지는 않으나 아름다운 계곡과 각양각색의 기암괴석이 많아 예로부터 湖西의 금강산이라 불려 왔다.

 

 문화재로는 한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수덕사대웅전(국보 49)과 수덕사노사나불괘불탱

(修德寺盧舍那佛掛佛幀:보물 1263)이 유명하다. 수덕사에서 동쪽으로 4㎞ 떨어진 산 아래에는 덕산온천이 있어 산행을 마친 등산객들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그 밖에 유명한 비구니스님인 김일엽(金一葉)이 기거하다 입적했다는 비구니 도량 견성암(見性庵)이 있고, 산 정상에는 수덕사와 1,020개의 돌층계로 이어지는 정혜사(定慧寺)가 있으며, 1973년 3월 덕숭산과 인근 가야산(伽倻山:678m) 일대가 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덕숭산 자락엔  1308년에 창건되어 700년이 넘는 천년고찰 수덕사(修德寺)가 자리하고 있으며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이고, 조계종  5개총림 중 하나인 덕숭총림이 자리하고 있다.

 

수덕사는 우리나라 불교의 큰 산맥인 경허, 만공선사의 禪脈이 흐르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3德'이 모인 곳이라고 부른다. 산 이름 '德崇'과 절 이름 '修德', 마을 이름 '德山'이 바로 三德이다. 덕을 숭상하여 천년을 한결같이 덕을 닦아 덕이 넘치는 곳이다.

 

덕숭산은 "홍주 고을에 수덕이라는 도령이 살았는데, 어느 날 노루 사냥을 하는 도중에 멀리서 덕숭 낭자를 보고, 좋아하게 되었다. 수덕 도령이 덕숭 낭자를 찾아가 혼인을 하자고 졸라대자, 덕숭 낭자는 절을 세워주면, 혼인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이리하여 수덕 도령은 절을 지었으나 부처님을 생각하지 않은 탐욕 때문에 절이 불타 버렸다.

 

그 뒤 부처님만 생각하고, 절을 다시 지어 결혼할 수 있었으나, 덕숭 낭자는 자신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이를 참지 못한 수덕 도령이 강제로 덕숭 낭자를 안는 순간 사람은 사라지고, 낭자의 버선 한쪽만 남았다. 그 자리는 바로 바위로 변했고, 하얀 버선꽃이 피었다고 한다.

관음보살의 화신인 덕숭 낭자의 이름에서 유래하여 ‘덕숭산’이라 하였고, 수덕 도령의 이름을 따서 사찰을 ‘수덕사’라 불렀다고 전해온다."

 

덕숭산 정상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정상부 근처에 왠?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었고 선답자들에 의해 철조망이 훼손된 등로길로 진행하면 조망이 좋은 암릉지에 도착한다. 수덕사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직진하여 내려서면 조망이 좋은 암릉지역에 도착한다. 바로아래에 보이는 45번 국도는 서산시 해미와 예산을 연결하는 국도다.

 

암릉길에서 내려서면 좌측편으로 묘지가 나오고 잡풀로 인하여 등로길이 보이지 않는다. 지그째그로 등로을 만들어가며 진행하다보면 등로길이 나오지 않아 묘지가 있는곳에서 직진으로 내려서면 희미하게 등로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45번 국도 지하통로에 도착한다. 지하통로을 통과하여 우측편으로 올라서면 구45번 국도가 나오고 우측편으로 약50m 내려서면 오늘 산행이 종착지에 도착한다.

 

나본들고개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광천리에 있는 고개로 해미와 예산을 잇는 45번국도가 지나가는 곳으로 ‘남은들 고개’ 라는  말에서 유래되어 변음된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곳사람들은 풍구고개라고 부른다.  이곳이 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어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철조망 안쪽으로 진행하는 모습

 

갈림길 통과(우틀)

 

진행하면서 뒤돌아본 모습

바로 앞에 수덕고개 식당들이 보이고 그 뒤편으로 지나온 마루금이 눈에 들어온다.

 

철조망 통과

 

암릉구간의 모습

 

암릉지에서 인증샷

 

저 멀리 예산군 덕산면에 소재한 용봉 저수지와 수암산이 보인다.이곳에 있는 삽교와 덕산은 삽교는 읍이고 덕산은 면인데도 불구하고 삽교가 덕산의 절반밖에 되질 않는다고 한다. 덕산은 유명한 덕산온천이 있어

유동인구가 많고 삽교는 마땅한 시설이 없어 자꾸만 사람이 준다고 한다.

이곳인 삽교와 홍성의 경계지역에 아마 충남도청이 이곳으로 이전해올 모양이라 거기에 많은 기대를 건다고 한다.

 

지난번 구간을 지나온 저 멀리 홍성 백월산과 홍동산이 보인다.

저 멀리 홍성읍이 손에 잡힐 듯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상왕산(개심사)-가야산(가야사)-덕숭산(수덕사)으로

이어지는 내포지역 덕숭산과 가야산 일대는 한때 절집이 100개를 넘었을 정도로 ‘부처의 꽃심땅’이었다.

일제강점기 경허, 만공선사가 선풍을 일으킨 곳도 역시 이곳 내포 땅이었다.

스승인 경허선사는 활달하여 거침이 없었다. 만공은 따뜻하고 소탈했다. 경허는 끝내 이름을 바꾸고 저잣거리에 몸을 숨겼다. ‘어촌이나 주막집/어찌 숨을 곳이야 없으랴마는/감출수록 그 이름 더 새롭게 알려질까/다만 그것을 두려워하노라.’ 만공은 스승의 시신을 거두고 덕숭산에서 묵묵히 제자를 길렀다.

 

암릉지에서 바라본 수덕고개와 마루금 능선의 모습

 

완만하게 수덕산으로 오르는 등로길의 모습

 

암릉지 통과

 

수덕사 갈림길

암릉지에서 올라서면 수덕사 갈림길이 나오고, 마루금인 덕숭산 정상은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되지만 좌측방향은 수덕사에서 올라오는 등로길이다.

 

긴급구조 119 이정표 : 덕숭산 01-08

 

가야산 조망

 

덕숭산(德崇山, 해발495m)

덕숭산 바로 아래에 수덕사가 자리잡고 있어 일명 수덕산(修德山)이라고도 불리며, 금북정맥 줄기로 예산읍에서 서쪽으로 약 20㎞ 떨어진 지점에 있다. 산이 높지는 않으나 아름다운 계곡과 각양각색의 기암괴석이 많아 예로부터 湖西의 금강산이라 불려 왔다.

 문화재로는 한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수덕사대웅전(국보 49)과 수덕사노사나불괘불탱

(修德寺盧舍那佛掛佛幀:보물 1263)이 유명하다. 수덕사에서 동쪽으로 4㎞ 떨어진 산 아래에는 덕산온천이 있어 산행을 마친 등산객들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그 밖에 유명한 비구니스님인 김일엽(金一葉)이 기거하다 입적했다는 비구니 도량 견성암(見性庵)이 있고,

산 정상에는 수덕사와 1,020개의 돌층계로 이어지는 정혜사(定慧寺)가 있으며, 1973년 3월 덕숭산과 인근 가야산(伽倻山:678m) 일대가 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덕숭산 자락엔  1308년에 창건되어 700년이 넘는 천년고찰 수덕사(修德寺)가 자리하고 있으며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이고, 조계종  5개총림 중 하나인 덕숭총림이 자리하고 있다.

수덕사는 우리나라 불교의 큰 산맥인 경허, 만공선사의 禪脈이 흐르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3德'이 모인 곳이라고 부른다. 산 이름 '德崇'과 절 이름 '修德', 마을 이름 '德山'이

바로 三德이다. 덕을 숭상하여 천년을 한결같이 덕을 닦아 덕이 넘치는 곳이다.

 

덕숭산과 수덕산의 유래

홍주 고을에 수덕이라는 도령이 살았는데, 어느 날 노루 사냥을 하는 도중에 멀리서 덕숭 낭자를 보고, 좋아하게 되었다.

수덕 도령이 덕숭 낭자를 찾아가 혼인을 하자고 졸라대자, 덕숭 낭자는 절을 세워주면, 혼인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이리하여 수덕 도령은 절을 지었으나 부처님을 생각하지 않은 탐욕 때문에 절이 불타 버렸다.

그 뒤 부처님만 생각하고, 절을 다시 지어 결혼할 수 있었으나, 덕숭 낭자는 자신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이를 참지 못한 수덕 도령이 강제로 덕숭 낭자를 안는 순간 사람은 사라지고, 낭자의 버선 한쪽만 남았다. 그 자리는 바로 바위로 변했고, 하얀 버선꽃이 피었다고 한다.

관음보살의 화신인 덕숭 낭자의 이름에서 유래하여 ‘덕숭산’이라 하였고, 수덕 도령의 이름을 따서 사찰을 ‘수덕사’라 불렀다고 전해온다.

 

덕숭산(德崇山, 해발 495m)

수덕산(修德山)이라고도 한다. 금북정맥 줄기로 예산읍에서 서쪽으로 약 20㎞ 떨어진 지점에 있다. 높지는 않으나 아름다운 계곡과 각양각색의 기암괴석이 많아 예로부터 湖西의 금강산이라 불려 왔다. 문화재로는 한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수덕사대웅전(국보 49)과 수덕사노사나불괘불탱(修德寺盧舍那佛掛佛幀:보물 1263)이 유명하다. 수덕사에서 동쪽으로 4㎞ 떨어진 산 아래에는 덕산온천이 있어 산행을 마친 등산객들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그 밖에 승려 김일엽(金一葉)이 기거하다 입적했다는 비구니 도량 견성암(見性庵)이 있고, 산 정상에는 수덕사와 1,020개의 돌층계로 이어지는 정혜사(定慧寺)가 있다.1973년 3월 덕숭산과 인근 가야산(伽倻山:678m) 일대가 덕숭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홍주 고을에 수덕이라는 도령이 살았는데, 어느 날 노루 사냥을 하는 도중에 멀리서 덕숭 낭자를 보고 좋아하게 되었다. 수덕 도령이 덕숭 낭자를 찾아가 혼인을 하자고 졸라대자, 덕숭 낭자는 절을 세워주면 혼인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이리하여 수덕 도령은 절을 지었으나 부처님을 생각하지 않은 탐욕 때문에 절이 불타 버렸다. 그 뒤 부처님만 생각하고 절을 다시 지어 결혼할 수 있었으나, 덕숭 낭자는 자신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이를 참지 못한 수덕 도령이 강제로 덕숭 낭자를 안는 순간 사람은 사라지고 낭자의 버선 한쪽만 남았다. 그 자리는 바로 바위로 변했고 하얀 버선꽃이 피었다고 한다. 관음보살의 화신인 덕숭 낭자의 이름에서 유래하여 ‘덕숭산’이라 하였고, 수덕 도령의 이름을 따서 사찰을 '수덕사’라 불렀다고 전해온다.

 

덕숭산(德崇山:495m)

이번에 진행하는 구간은 금북정맥 최고의 구간이라 말할수있다. 왜냐하면 충청도의 홍성, 예산, 서산 3개의 시군을 지나는 이 구간에 합천에 있는 유명한 해인사 뒤편에 자리잡은 가야산과 이름뿐만 아니라 그 기상마저 비슷한 '가야산'이 넓은 평야 한 가운데에 우뚝하고, 무엇보다 湖西의 금강산이라 불리는 '덕숭산'이 자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唐宋八大家 중 한 사람인 당나라 시인 유우석은, "산이 높다고 다가 아니요, 仙風이 있어야 명산"이라고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덕숭산은 선풍을 갖춘 명산이라 할 수 있다.

덕숭산은 비록 해발 495m의 나즈막한 산이지만 그 높이와는 달리 힘차고 빼어난 산세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또 인근의 수암산, 용봉산, 홍동산, 뒷산, 가야산 등의 여러 산들에 빙 둘러싸인 한 가운데에 바위산으로 우뚝 솟아  꽃 한송이 피어 올린 것과 같은 형상을 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덕숭산 자락엔 천년고찰 修德寺가 자리하고 있으며, 1308년에 창건되었으니 그 역사가 700년이 넘은 수덕사는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이고, 불교 4대 총림 중 하나인 덕숭총림이 자리하고 있다. 수덕사는 우리나라 불교의 큰 산맥인 경허, 만공선사의 禪脈이 흐르는 곳이기도 하며, 이 모든 것이 덕숭산을 仙風, 禪脈이 흐르는 명산으로 만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3德'이 모인 곳이라고 부릅니다. 산 이름 '德崇'과 절 이름 '修德', 마을 이름 '德山'이 바로 三德입니다. 덕을 숭상하여 천년을 한결같이 덕을 닦아 덕이 넘치는 곳이지요.

수덕사 조망

덕숭산 자락엔 천년고찰 修德寺가 자리하고 있다. 1308년에 창건되었의 그 역사가 700년이 넘는 수덕사는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이고, 조계종  5개총림 중 하나인 덕숭총림이 자리하고 있다.수덕사는 우리나라 불교의 큰 산맥인 경허, 만공선사의 禪脈이 흐르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3德'이 모인 곳이라고 부른다. 산 이름 '德崇'과 절 이름 '修德', 마을 이름 '德山'이 바로 三德이다. 덕을 숭상하여 천년을 한결같이 덕을 닦아 덕이 넘치는 곳...

 

수덕사(修德寺)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사천리 덕숭산에 있는 사찰로서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의 본사이다. 창건이나 그 이후 역사에 대한 자세한 기록이 없어 절의 연혁을 알 수 없다.〈삼국사기〉에 의하면 백제말 숭제법사(崇濟法師)가 창건하고 고려 공민왕 때 나옹(懶翁)이 중수했다고 하며, 일설에는 백제 599년(법왕 1)에 지명법사(智命法師)가 창건하고 원효가 중수했다고도 한다. 조선시대말에 경허(鏡虛)선사가 선풍(禪風)을 일으킨 뒤 1898년(고종 35) 그의 제자인 만공(滿空) 선사의 중창으로 번성하여 현재 36개 말사를 관장하고 있다.

 

대한불교조계종 5대총림(해인사, 통도사, 송광사, 수덕사, 백양사)의 한 곳이다. 백제 말에 창건된 수덕사는 근·현대에 들어서서 경허 성우(鏡虛 惺牛) 스님을 비롯해 만공 월면(滿空 月面)·수월· 금오 태전(金烏 太田) · 벽초 경선(碧超 鏡禪)· 대의(大義)· 청담 순호(靑潭 淳浩)· 묘리 법희(妙理 法喜)·일엽 하엽(一葉 荷葉) 스님 등의 고승이 주석, 선(禪)의 중흥지로 뿌리내려져  있다.

1984년에 덕숭총림(德崇叢林)을 개설한 수덕사는 종합수도도량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혜암 현문(惠庵 玄門)· 벽초스님이 었있다. 수덕사의 산내암자로는 우리나라 최초의 비구니선원인 견성암을 비롯하여 경허스님과 만공스님이 선풍을 휘날리던 정혜사와 금선대 등이 있다. 수선도량으로서 수덕사는 선(禪)의 생활화와 선풍진작의 계승을 위해 선실천(禪實踐) 수련대회를 갖는 등 일반인들에게 우뚝 다가서고 있는 것이다.

경선(碧超 鏡禪)· 원담 진성(圓潭 眞性)스님 등이 방장으로 주석하면서 수선도량으로서의 면모를 이어오고 있다. 또한 1996년에는 승가대학을 개설해 총림의 위상 제고에 힘쓰고 있으며 일주문 밖의 상가 등을 정비하여 수행환경 정화에도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수덕사 대웅전은 안동 봉정사 극락전과 영주 부석사 무량수전(1376년) 조사당(1377년) 강릉 객사문과

함께 고려시대를 대표하며 현존하는 건축물로 건축사연구는 물론 미술사 연구에도 매우 귀중한 자료로서 평가받는다.

수덕사 대웅전은 일제강점기 1937년에도 한번의 수리공사가 있었다. 대웅전 전각건물이 퇴락하여 일본인들에 위해 해체수리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이 과정에서 도리를 받치는 장여(長舌)와 화반(花盤)의 밑둥에서 발견된 '지대 원년 무신 4월 17일에 기둥을 세웠다(至大元年戊申四月十七日立柱)'는 묵서명을 통해 수덕사 대웅전은 1308년(고려 충렬왕 34)에 건립되었고 조선시대에는 1528년(중종 23)과 1688년(숙종 14), 1751년(영조 27), 1803년(순조 3)에 각각 몇번의 보수공사가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대웅전 삼존불

수덕사 대웅전에 봉안된 삼존불은 만행산(萬行山) 풍국사에서 조성된 불상을 1938년 남원 귀정사(歸政寺)에서  만공스님이 이운해왔다고 전한다. 풍곡사는 현존하지 않고, 귀정사는 화재로 소실되었으나 현재는 복원되었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약사불, 왼쪽에는 아미타불이 자리하고 있다. 삼세여래를 협시하고 있는 보살입상은 문수와 보현보살이다.

 

배흘림 기둥의 모습

수덕사 대웅전의 기둥들은 고대 그리스나 로마신전건축물의 기둥에서 보이는 엔타시스기법(고전건축에 사용된 기둥)과 그 맥을 같이한다. 기둥의 아랫부분에서 위로 올라갈수록 기둥의 지름이 커지다가 기둥높이의 1/3지점에서 다시 기둥의 지름은 좁아진 형태를 띠는데, 이를 일러 배흘림기둥(위와 아래는 좁고 가운데 부분이 볼록한 기둥형태)이라고 한다. 건물을 보다 안정감있게 보이게 하려는 시각적 효과를 고려한 것이다.

 

 

만공 스님 존영

만공스님의 법문 중에 ‘저 산의 딱따구리는 생나무 구멍도 잘뚫는데 우리집 멍텅리는 뚫린 구멍도 못 뚫는구나라는 법문으로 유명하다. 무슨 의미일까? 잘 생각해 보세요.

 

 

 

수덕사 갈림길

수덕산정상에서 경사지을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방향 내리막길은 수덕사방향이고 정맥 마루금은 직진으로 진행한다.

 

 

 

긴급구조 현위치 : 덕숭산 01-06

 

철조망 통과

덕숭산 정상부 바로 아래에 철조망이 가로막고 있었고 선답자에 의해 철조망이 훼손된 등로길로 진행하면 조망이 좋은 암릉지에 도착한다.

 

암릉지에서 바라본 45번 국도의 모습

수덕사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직진하여 내려서면 조망이 좋은 암릉지역에 도착한다. 바로아래에 보이는 45번 국도는 서산시 해미와 예산을 연결하는 국도다.

 

숲속에서 등로길로..

암릉길에서 내려서면 좌측편으로 묘지가 나오고 잡풀로 인하여 등로길이 보이지 않는다. 지그째그로 등로을 만들어가며 진행한다.

 

묘지통과

등로길이 보이지 않아 묘지가 있는곳에서 직진으로 내려서면 희미하게 등로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45번 국도 지하통로에 도착한다.

 

나본들 고개(165m)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광천리에 있는 고개로 해미와 예산을 잇는 45번국도가 지나가는 곳으로 ‘남은들 고개’ 라는  말에서 유래되어 변음된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곳사람들은 풍구고개라고 부른다.  이곳이 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어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시멘트임도길 접속

숲속에서 등로길을 찾으며 내려서면 임도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45번 국도 지하통로에 도착한다.

 

시멘트 임도길에서 뒤돌아본 모습

 

45번국도 지하통로 삼거리 통과

 

지하통로 통과

45번국도 지하통로 통과 후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구45번 국도앞에 도착하고, 다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좌측편으로 나들본고개 들머리지점이 나온다.

 

45번국도 지하통로 앞에서 뒤돌아본 모습

45번 국도

나본들 고개는 '남은들 고개'란 말에서 유래되어 변형된 이름이다. 그러나 실상 이곳의 옛사람들은 '풍구고개 라고 부르는데 아마도 바람이 아주 강하게 부는 곳이라 그렇게 불려지는것 같다.

해미,서산방면의 45번 국도 옛날길의 모습

우측편으로 광천리 버스 정류장이 있으며 마루금 좌측방향으로 내려선다.

 

광천리 정류장의 모습

 

45번 국도 좌측방향으로 진행

 

나본들고개 들머리지점(해발165m)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광천리에 있는 고개로 해미와 예산을 잇는 45번 국도가 지나가는 곳으로

‘남은들 고개’ 라는 말에서 유래되어 변음된 이름이며  이 지역 주민들은 이곳을 '풍구고개'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지역이 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어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이곳에서 금북정맥 12구간을 종료하고는 산악회에서 준비한 음식과 막걸리를 마시고는 주변 모텔에서 샤워을 하고 서울로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 오늘 산행을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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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개~백월산]

하고개에서  29번 국도 아래인 황곡교차로에서 좌측방향으로 지방군도을 이용하여 홍주병오의병주둔유지비앞에서 좌측방향으로 완만하게 진행하면 잡풀이 무성한 136.2봉 삼각점에 도착한다. 136.2봉 삼각점을 지나내려서니 앞으로 올라야 할 백월산 정상부가 조망되고, 등로길에 낙엽송과 잣나무 단지가 있는 무명봉을 넘어 진행하니 32번 송전탑이 나타나고 잡목과 잡풀이 무성한 등로길을 진행하니 임도길이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완만하게 진행하니 살포쟁이고개에 도착한다.

 

살포쟁이고개는 홍성군 홍성읍  월산리와 구항면 황곡리를 넘나드는 고개로 옛날에 이 고개에서 죄인이나 짐승들을 죽였던 곳이라 한다. 그래서인지 당산나무가 있고 허물어진 돌탑 흔적이 있었다. 고개에서 완만하게 진행하면 암릉지가 좌측편으로 나오고 조금더 진행하면 백월산 갈림길이 나온다. 이곳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헬기장이 나오고 잘 정돈된 묘지을 지나 오르면 시멘트 도로가 나타난다. 시멘트 도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다시 우측편으로 헬기장이 나오고 시멘트도로로 조금 진행하다가 우측편 숲속으로 진행한다. 

 

우측편 능선으로 진입하여 완만하게 진행하면 등로 좌측으로 바위 전망대가 나오고 잠시 그곳에서 조망하면서 휴식을 취해본다. 조망지에서 바라본 구항쪽 마을들이 시원하게 보이고 서쪽으로는 나즈막한 들판에 옹기종기  모여있는 민가가 보이고 그 한가운데에 큰 저수지가 보이지만 무슨 저수지인지 알 수 없었다.

 

전망바위에서  진행하니 백월산정상의 돌탑이 보이고, 정상부 주변에는 돌탑과 산불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뒤편으로 정상석과 삼각점이 있었다. 백월산정상에서 바라본 홍성읍내는 제법 넓어 보였고 저 멀리 예산의 산군들도 병풍처럼 보이고 ,새로 들어 설 충청남도 도청 소재지로 선정된 곳에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정상에서 후미을 기다리며 주위 조망을 즐기고 후미가 도착하는것을 보고는 경사지을 내려 저 멀리 보이는 산신각과 팔각정로 진행한다.

 

[백월산~까지고개]

백월산정상에서 홍성읍(내포)의 모습을 조망하고는 정상석 옆으로 내려서니 산신각 가는 길에 우측편으로 강아지 모양으로된 강아지바위가 나온다. 잠시후 시멘트 도로가 나오고 직진으로 오르니 갈림길이 나타난다. 우측방향의 임도길은 전망대로 바로 가는 단축코스이며, 산신각으로 가는 방향은 이곳에서 직진으로 올라서야 한다.

 

산신각을 거쳐 내려서니 좌측편으로 전망대와 천재단이 자리하고 있었고 정면으로는 체육시설물들이 설치되어 있었다. 전망대에 올라 홍성읍을 조망하지만 운무로 인하여 조망이 없고 전망대 뒤편으로 이어지는 등로길로 진행하니 또다른 큰 바위가 맞아준다.

 

코끼리 모양으로 한 바위에서 인증샷을 남기고는 나무계단으로 내려서니 전망이 좋은 암릉지에 도착한다. 바로 아래로 홍성군 홍북면과 갈산면의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고 저멀리 앞으로 올라야할 덕숭산과 가야산이 조망된다. 이곳에서 고도을 낮추어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급경사지를 내려서면 잠시 후 임도길을 만나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폐허가된 교회 옆을 지나 내려서면 까치고개에 도착한다.

 

[까치고개~수덕고개]

까치고개는 예산군 덕산면과 홍성군 구항면, 홍북면의 경계로 낙상리에서 홍성으로 통하는 고개인데 한자

이름으로 작현(鵲峴)이라고도 한다. 까치고개를 지나면서부터 이제는 홍성과 예산의 군계를 따라 진행한다.까치고개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홍성군 쓰레기 매립장 정문 앞에 도착하며 좌측방향 숲속으로 이어간다. 우측에 홍성환경사업소 정문에서  좌측으로 휀스를 따라 한동안 걸어간다

 

완만하게 진행하면 수리고개에 도착하고, 수리고개는 낙상리와 홍복면 중계리을 잇는 고개마루다. 고개에서 직진으로 오르면 125봉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여 오르면 홍동산 정상에 도착한다. 주변에는 산불의 흔적이 남아있었고 민둥산으로 변하여 흉칙하지만 조망은 일품이었다. 

190봉을 치고 오르니 바로 지나온 125봉과 낙상리 저수지가 보이고 저멀리 백월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조금만 암릉위를 지나니 다시 소나무 사이로 편안한 안부를 걷는다. 오서산 아래에서 부터 시작한 금북정맥 마루금은 이곳 능선에서 부터 홍성군과 이별을 고하고 예산군 덕산면으로 접어든다. 여기서도 고도편차없이 능선길을 빠른속도로 걷는다.

 

홍등산은 홍성군 홍북면에 있는 산으로 "서쪽으로는 산이 첩첩으로 쌓여 있고, 이 산에서부터 동편이 열려 있다"라는 의미라 한다. 정상에는 정상석은 없고 나무목이 정상을 알려주고 있었다. 홍등산 정상에서 우측방향으로 완만하게 내려서면 용봉산갈림길에 도착한다. 마루금에서 1.5km 가량 벗어나 있는 용봉산(龍鳳山 381m)은 산이 크고 험하지는 않으나 산 전체가 기묘한 바위 봉우리로 이루어져 '남한의 금강산'이라 불릴만큼 아름답다. 산 이름은 용의 몸집에 봉황의 머리를 얹은듯한 형상에서 유래한다고 한다.

 

용봉산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무명봉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다시 갈림길 삼거리가 나온다. 또 다시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넓은 육괴정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넓은 임도길로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마루금은 직진으로 내려서면 수덕고개 주변 식당앞에 떨어지는데 좌측편 육괴정으로 가는 등로길이 잘 정돈되어 잘못하면 알바하기 쉬운 지점이다.

 

용봉산갈림길을 통과 후에는 계속하여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수덕식당이 있는 수덕고개에 도착한다. 수덕사고개 주변으로는 몇개의 식당들이 영업중이고,그 옆으로 큰 느티나무와 육괴정(六槐亭)이라는 정자가 있었다. 수덕고개의 도로를 건너 개인 사유지라 철조망에 막혀있어 느티나무가 있는곳에서 40번 지방도을 횡단하여 철조망 따라 진행하면 조릿대(대나무)가 무성한 곳에서 우측방향으로 턴하여 다시 철조망을 우측편에 두고 진행하면 수덕산(덕숭산)으로 진행할수 있다   

덕숭산은 백제 때의 명 사찰인 수덕사를 품고 있는 산이라 수덕산으로 불리기도 한다.덕숭산을 내려오는 길은 세 군데의 갈림길을 지나는데, 그때 마다 다소 주의가 필요하다. 정상 바로 아래 50m 지점에서 수덕사 방향 좌측길로 진행한 후 다음 갈림길 부터는 우측 로 접어들어 내려오면, 45번 국도와 만나는 나본들고개가 조망이 된다.

[수덕고개~나본들고개]

수덕고개에서 40번 지방도을 무단으로 횡단하여 철조망을 우측편에 두고 진행하다가 철조망 끝나는 부분에 조릿대 나무가 있고 이곳에서 턴하여 철조망을 따라 진행하면 계곡이 나오고 잠시후 철조망이 열려있는곳을 통과하여 올라서면 조망이 좋은 암릉지에 도착한다.

 

저 멀리 예산군 덕산면에 소재한 용봉 저수지와 수암산이 보인다.이곳에 있는 삽교와 덕산은 삽교는 읍이고 덕산은 면인데도 불구하고 삽교가 덕산의 절반밖에 되질 않는다고 한다. 덕산은 유명한 덕산온천이 있어

유동인구가 많고 삽교는 마땅한 시설이 없어 자꾸만 사람이 준다고 한다.

이곳인 삽교와 홍성의 경계지역에 아마 충남도청이 이곳으로 이전해올 모양이라 거기에 많은 기대를 건다고 한다.

 

암릉지에서 올라서면 수덕사 갈림길이 나오고, 마루금인 덕숭산 정상은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되지만 좌측방향은 수덕사에서 올라오는 등로길이다. 우측방향으로 올라서면 덕숭산정상부에 도착한다.

 

덕숭산 바로 아래에 수덕사가 자리잡고 있어 일명 수덕산(修德山)이라고도 불리며, 금북정맥 줄기로 예산읍에서 서쪽으로 약 20㎞ 떨어진 지점에 있다. 산이 높지는 않으나 아름다운 계곡과 각양각색의 기암괴석이 많아 예로부터 湖西의 금강산이라 불려 왔다.

 

 문화재로는 한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조건물인 수덕사대웅전(국보 49)과 수덕사노사나불괘불탱

(修德寺盧舍那佛掛佛幀:보물 1263)이 유명하다. 수덕사에서 동쪽으로 4㎞ 떨어진 산 아래에는 덕산온천이 있어 산행을 마친 등산객들과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다. 그 밖에 유명한 비구니스님인 김일엽(金一葉)이 기거하다 입적했다는 비구니 도량 견성암(見性庵)이 있고, 산 정상에는 수덕사와 1,020개의 돌층계로 이어지는 정혜사(定慧寺)가 있으며, 1973년 3월 덕숭산과 인근 가야산(伽倻山:678m) 일대가 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덕숭산 자락엔  1308년에 창건되어 700년이 넘는 천년고찰 수덕사(修德寺)가 자리하고 있으며 조계종 제7교구 본사이고, 조계종  5개총림 중 하나인 덕숭총림이 자리하고 있다.

 

수덕사는 우리나라 불교의 큰 산맥인 경허, 만공선사의 禪脈이 흐르는 곳이기도 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곳을 '3德'이 모인 곳이라고 부른다. 산 이름 '德崇'과 절 이름 '修德', 마을 이름 '德山'이 바로 三德이다. 덕을 숭상하여 천년을 한결같이 덕을 닦아 덕이 넘치는 곳이다.

 

덕숭산은 "홍주 고을에 수덕이라는 도령이 살았는데, 어느 날 노루 사냥을 하는 도중에 멀리서 덕숭 낭자를 보고, 좋아하게 되었다. 수덕 도령이 덕숭 낭자를 찾아가 혼인을 하자고 졸라대자, 덕숭 낭자는 절을 세워주면, 혼인하겠다고 약속을 했다. 이리하여 수덕 도령은 절을 지었으나 부처님을 생각하지 않은 탐욕 때문에 절이 불타 버렸다.

 

그 뒤 부처님만 생각하고, 절을 다시 지어 결혼할 수 있었으나, 덕숭 낭자는 자신의 몸에 손을 대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이를 참지 못한 수덕 도령이 강제로 덕숭 낭자를 안는 순간 사람은 사라지고, 낭자의 버선 한쪽만 남았다. 그 자리는 바로 바위로 변했고, 하얀 버선꽃이 피었다고 한다.

관음보살의 화신인 덕숭 낭자의 이름에서 유래하여 ‘덕숭산’이라 하였고, 수덕 도령의 이름을 따서 사찰을 ‘수덕사’라 불렀다고 전해온다."

 

 

덕숭산 정상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정상부 근처에 왠?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었고 선답자들에 의해 철조망이 훼손된 등로길로 진행하면 조망이 좋은 암릉지에 도착한다. 수덕사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직진하여 내려서면 조망이 좋은 암릉지역에 도착한다. 바로아래에 보이는 45번 국도는 서산시 해미와 예산을 연결하는 국도다.

 

암릉길에서 내려서면 좌측편으로 묘지가 나오고 잡풀로 인하여 등로길이 보이지 않는다. 지그째그로 등로을 만들어가며 진행하다보면 등로길이 나오지 않아 묘지가 있는곳에서 직진으로 내려서면 희미하게 등로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45번 국도 지하통로에 도착한다. 지하통로을 통과하여 우측편으로 올라서면 구45번 국도가 나오고 우측편으로 약50m 내려서면 오늘 산행이 종착지에 도착한다.

 

나본들고개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광천리에 있는 고개로 해미와 예산을 잇는 45번국도가 지나가는 곳으로 ‘남은들 고개’ 라는  말에서 유래되어 변음된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곳사람들은 풍구고개라고 부른다.  이곳이 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어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