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 13구간 나본들고개에서 358.8봉(보원사지)까지 산행후기

2014. 9. 18. 08:42★ 9 정맥/- 3. 금북[완료]

금북정맥 13구간(나본들고개~보원사지)

 

 

산 행 지 :  충남 예산군 덕산면, 서산시 해미면, 운산면, 북정맥 13구간

산행일시 : 2014년 9월20일(토요 당일산행)

산행코스 : 나본들고개-뒷산-402봉-385봉-한티고개-411.2봉-헬기장-한서대학교갈림길-427봉-470봉

               485봉-643봉-649봉-가야봉(678m)-원효봉갈림길-삼거리안부-609(암봉)-612(암봉)-삼거리

               석문봉(653m)-604(암봉)-사잇고개-516봉-일락산(521m)-전망대-412봉-삼거리-402(팔각

               정)-개심사삼거리-350봉-358.8봉-보원사삼거리-보원사지==============(5시간30분)

산행시간 : 10:10~15:50(5시간40분, 식사 및 휴식포함, 후미기준)

산행거리 : 약 14.8Km(정맥 13.3Km, 접속구간 1.5Km), GPS 17.2Km

산행날씨 : 맑음

산행인원 : 42명

산행코스 및 구간거리 : 나본들고개-2/2.3km(60분)-한티고개-3.4/3.9km(1시간40분)-가야봉-1.65/1.9

                                km(60분)-석문봉-1/1.2km(30분)-사잇고개-0.7/0.8km(20분)-일락산-1.5/1.7

                                km(30분)-402봉(팔각정)-1.3/1.5km(30분)-358.8봉(삼각점) 산행종료-1.3/1.5

                                km(30분)-용현2리 보원사지터====12.85/14.8km(6시간)

구간

거리(km)

출발시간

소요시간

비고

나볼들고개

-

10:10

-

해발160m, 45번 국도, 정류장

한티고개

2.3

10:57

47

 해발307m,넓은 공터, 해미순교성지길, 성지물품, 팔각정,서산 아라메길 안내판,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음 

가야봉

3.9

12:50

1시간53

해발678m, KT중계탑과  KBS 송신소 그리고 대전방송국 송신소 설치되어 있음

석문봉

1.9

13:51

1시간 1

해발 653m, 정상석, 돌탑,이정표 ,석문지맥분기점 

사잇고개

1.2

14:24

33

해발430m, 넓은 공터,이정표, 장독대와 솟대,안전기원비,김승재 시인의 '山' 시비 '아라메길'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음

일락산

0.8

14:42

12

 

해발521m, 이정표, 정자, 의자가 설치되어 있음 

 

전망대

1.7

15:13

31

해발402m, 팔각정, 삼거리, 넓은임도길 좌측방향 마루금 

 

358.8

1.5

15:30

17

삼각점, 능선안부, 조망없음 

 

보원사지

1.5

15:50

20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48 

 

마루금거리

13.3

 

5시간40분 

 

접속 거리

1.5

 

 

 

총 거리

14.8

 

 

 

GPS거리

17.2 

 

 

 

 

 

백두산에서 지리산을 향하여 줄기차게 달려가던 백두대간이 속리산 천왕봉에서 가지를 쳐 안성의 칠장산까지 한강과 금강의 물줄기를 가르며 이어간 한남금북정맥이 안성 칠장산에서 다시 가지를 쳐 금북정맥과 한남정맥으로 가른다. 금북정맥은 경기도 안성의 칠장산(491.2m)에서 충남 태안의 태안반도 안흥진까지 금강의 윗쪽에서 물길을 모으는 산줄기로 거리는 약 267km에 달한다. 산경표에서는 칠현산에서 분기한다고 되어 있지만 칠현산군에 칠장산도 포함되고 실제 도상거리도 2km밖에 되지 않은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에 산경표와 현대의 지리가 맞아 떨어지는 곳이다.

 

금북정맥은 분기점 칠장산에서 칠현산 - 서운산 - 성거산 - 국사봉- 광덕산 - 백월산에서 방향을 전환하여 오서산 - 보개산 - 수덕산 - 가야산 - 성왕산 - 백화산 - 안흥진으로 약 267km를 이어간다. 금북정맥이 금강 북쪽의 분수령이 되려면 금강하구로 향하여야 하는데 백월산에서 방향을 틀어 태안 앞바다 안흥진으로 향하는 바람에 금남정맥이 금강하구로 향하지 않고 부여 구드레나루로 향한 것 같이 금강을 수계로 하는 남북의 산줄기 명칭에 논란이 있다. 산경표 원작자의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이는 여러 정맥 중에서 특이한 정맥에 속한다. 하여 산자분수령의 원리를 적용하여 정확하게 물길의 흐름을 구분하려 하는 사람들은 이 맥의 이름을 새로 지어 부르려 하지만 그것보다는 산경표상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것이 옳지 않을까.

 

백두대간은 험한 산줄기가 굳건한 성이되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각 나라의 경계선이었던데 비해 한남금북정맥의 주변은 백제, 고구려, 신라의 각축장이되었다. 한편 금북정맥은 금강의 수계를 형성하면서 조선시대에 차령을 중심으로 그 문화적 교류가 남북으로 나누어 지다 호서지방으로 접어들면서 해양문화와 육지문화가 서로 교류하고 외국의 문물까지 교역하는 길이 된다. 서산 마애삼존불과 태안 마애삼존불은 중국 불교 문화의 영향을 받아 그 길목에 형성된 문화들이다. 또한 천주교의 유입이 이곳 안흥진을 경유하여 들어왔기 때문에 금북정맥 인근에는 순교지가 많다.

  

* 종주에 필요한 지형도 도엽명;

- 1:50,000 지도 : 근흥, 만리포, 서산, 당진, 홍성, 청양, 보령, 예산, 전의, 평택, 진천, 안성 (12매)
- 1:25,000 지도 : 근흥, 소원, 태안, 서산, 운산, 해미, 덕산, 홍성, 라원, 청양, 대흥, 유구, 대술, 광덕,

전의, 의당, 천안, 병천, 서운, 만승, 죽산 (21매)

 

* 금북정맥 대표 산 (도상거리 : 약 267km)

* 칠장산-칠현산-덕성산-무이산-서운산-성거산-태조산-경암산-고려산-국사봉-봉수산-천방산-극정봉-장학산-국사봉-금자봉-문박산-천마봉-오봉산-백월산-오서산-남산-일월산-홍동산-수덕산-뒷산-가야산-일락산-상왕산-동암산-은봉산-간대산-성상산-금강산-장군산-물래산-오석산-백화산-퇴비산-구수산-전막산-지령산-안흥진

 

금북정맥 개략도

 

금북정맥

한남 금북정맥의 끝인 경기도 안성시 칠장산(491m)에서 태안반도의 안흥진(安興鎭)까지 금강의 서북쪽을 지나는 산줄기로 칠장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칠현산(516m), 덕성산,서운산, 성거산(579m), 태조산, 국사봉, 봉수산 등 충남을 가로질러 청양의 백월산(395m)에 이르고 여기에서 다시 서북으로 뻗어 오서산(791m)·보개산(274m), 일월산(395m), 수덕산(495m), 가야산(678m)에 이르러 다시 서쪽으로 뻗어 성왕산 오석산, 백화산, 오석산, 지령산을 거친 뒤 태안반도의 끝인 안흥진에서 그 맥을 다 하는 약 280km에 달하 는 산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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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행 상세안내>

나본들고개(해발160m),45번 4차선 도로옆 구도로 2차선 산장모텔 앞 공터에서 산행준비   

좌측으로 나본들 마을이 보이고, 대추나무 묘목을 심은 밭 통과

마을 임도 삼거리 좌틀 후 다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여 밤나무밭 통과

컨테이너 옆으로 신축한 황토집이 있는곳 통과

대나무 군락지 통과 후 오름길 시작

경주이공묘역을 지나 좌측방향으로 통과

바위지대 및 암릉지대 통과

뒷산 갈림길(해발419m),좌측편에 '갈산지맥' 괜차뉴님의 아크릴 이정표, 마루금은 우측방향 급경사지

뒷산(해발427m),낡은 정상 간이코팅표지,'뒷산 427 m' 표지판 ,조망좋고 바로앞 낭떠러지

뒷산갈림길 복귀, 좌측방향 내리막으로 진행

한티고개(해발315m), 넓은 공터, 좌측 해미순교성지길과 성지물품, 팔각정과 많은 의자있는 쉼터, 서산 아라메길 안내판, 간이 화장실

간이화장실 우측편 능선으로 진행

조망지, 지나온 뒷산과 한치고개가 내려다 보이는 전망바위 

페헬기장(해발40 m), 잡목과 잡풀이 무성함 

411.2봉, 파손된 삼각점과 지적지근점 표지점

'한서대학교 1시간' 안내목 통과

조망지, 좌측편으로 한서대학교와 서산 해미읍이 보이고, 우측편으로는 전망바위 이후 덕숭산 조망

427봉 통과  

등산로 우측의 전망암에서 본 옥양봉

산불난지역 통과, 우측편으로 고사목 있음

산불 난 흔적이 있는 지역을 통과

470봉, 잡풀이 있지만 사방으로 탁 터진 조망 

485봉, 조망이 일품, 지나온 마루금과 앞으로 이어갈 마루금이 시원하게 보이는 봉우리 

암봉을 넘어 소나무있는 안부 통과

활공장(해발653), 땅 바닥에 파란색과 검정 그물망 있음

가야봉 앞(해발 678m), 금북정맥 마루금 좌측방향으로 우회

철조망 옆으로 계속진행

철조망이 쓰러진 암봉 통과

갈림길 우측방향으로 진행, 좌측방향은 한서대방향

가야봉전망대(해발 668m), 조망이 좋음, 나무계단테크, 석문봉과 일락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옴.

나무계단으로 내려 진행

나무의자있는 쉼터

상가리 주차장  삼거리이정표 통과

로프지대 통과

609봉(암봉,해발615m), 의자 2개있는 쉼터

나무계단으로 내려 다시 암릉지 올라 진행

암봉(해발 612 m)

의자 3개있는 쉼터

쉼터 삼거리이정표 통과

우측으로 옥양봉 우회길있는 지점 통과

석문봉(해발653 m), 정상석과 국기게양대,돌탑,가야산 안내탑, 의자, 01-07 119

대곡리 삼거리 통과

평상있는 쉼터 지나고

등나무 아래 식탁의자 있는곳 통과

사잇고개해발439m),넓은 공터,이정표(일락산 정상 0.5 km),장독대와 솟대 안전기원비,김승재 시인의 '山' 시비,의자 모양으로 만든 '아라메길, 직진 능선으로

01-12 119 입석이정표를 지나   

01-11 119 입석이정표를 지나자          

516봉(해발518 m)

일락산(해발521m), 정자와 의자, 평상,돌탑,이정표(용현계곡(개심사)대로 직진

01-18 119 입석이정표를 지나자 개심사 입구 갈림길까지완만한 등로길.  

철탑 통과(해발403 m)

01-22 119 입석이정표(이전의 01-21 입석이정표가 있는 갈림길에서 힘들면, 능선을 피해 우틀해도 무방)

황락리삼거리 임도 우측방향으로 진행

차단막이 있는 삼거리 좌측방향으로 통과  

전망대삼거리(해발 385 m) 좌측방향 임도로 진행

01-24 119 입석이정표를 지나자

개심사 입구 갈림길(해발338 m), 많은 통나무 의자와 의자, 아라메길과 내포문화숲길 안내판, 버섯모양의 의자,우측방향 넓은 임도길로 진행

01-26 119 입석이정표 통과     

01-27 119 입석이정표 통과

01-28 119 입석이정표 통과   

358.8봉 삼각점(임도에서 좌측방향 능선에 위치하고 있음)

2-4 쉼터 이정목에서 금북정맥 13구간 종료(마루금은 이정목 뒤편으로 이어진다)

쉼터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우측방향 넓은 임도길로 용현2리 보원사지터로 하산)

 

나무계단 통과

보원사지터 도착 (산행종료)    

산악회에서 준비해준 등산지도

 

오늘도 어김없이 금북정맥 마루금 산행을 위해 집결지인 상일동 육교로 나가지 않고 잠실로 발걸음을 옴겨본다. 친구을 맞이하는 배려심이라고나 할까... 백두대간 및 정맥길 함께하고자 하여 그럼 내가 진행하고 있는 금북정맥부터 함께하자고 제의하여 이렇게 어려운 구간을 함께하니 미안한 마음이 한구석에 자리하지만 한편으로는 편안한 마음도 들어온다.

 

연속으로 한달에 한번씩 마루금 산행이 이어지며 지난달에는 하계휴가기간이라 한달만에 마루금 산행이 이어졌는데 이번에도 추석 명절이 포함되어 한달만에 마루금 산행길에 오른다. 집결지로 이동하는 발걸음이 무겁기만하고 몇칠전 처음으로 온라인 산악회에 가입하여 그곳에서 많이 친구들이랑 산행 지식을 익혀오던중 불미스러운 일로 인하여 그 산악회을 탈퇴하고 본격적으로 나홀로 산행에 전념하다 얼마전 지인을 만나 다시 산방에 들어와 함께하자는 제의에 다른 생각을 하지않고 가입을 하여 땅끝기맥과 호남정맥을 함께하기로 하였지만 예전의 서운한 마음이 아직까지 남았는지...

 

잠실역에서 간단하게 요기을 하고는 점심에 필요한 간식을 준비하고는 도착하는 친구와 함께 기다리고 있는 버스에 오른다. 반겨주시는 대원분들과 인사을 나누고는 마지막으로 도착하는 대원부능ㄹ 태우고는 버스는 천호동, 상일동 육교을 경유하여 중부고속도로, 외곽순환도로상 복정역 상부에서 남파님을 태우고는 목적지인 나본들고개로 달려간다.

 

외곽순환도로에서 서해고속도로로 진입을 하였는데 이상하게도 차량이 많이 막혀 행담도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지 않고 서산휴게소에서 아침식사 및 휴식을 취한다. 이상하리 만큼 고속도로에 차량들이 많고 출발하는 버스에서 산행 설명이 이어지고 이번 산행은 도상거리는 짧지만 암릉구간을 지나므로 산행시간은 길어진다는 말씀에 긴장을 하며 서해고속도로에서 내려 45번 국도을 이용하여 지난구간에 도착한 나본들고개에 도착한다.

 

가을의 날씨답게 하늘은 화창하고 기온은 여름날씨을 방불케하는 무더운 날씨라 마루금 이어가는데 어려움이 예상되는 시점이다. 베낭을 챙기고 개인적으로 준비운도을 하고는 우측편 식당 주차장 맞은편 능선을 이용하여 선두팀이 진행을 시작한다. 오늘도 후미 봉사을 위해 모두 출발 후  선두대장께 무전으로 알리고는 나도 서둘려 출발을 한다.

 

나본들고개(해발165m)들머리지점

현위치 : 충남 예산군 덕산면 광천리 186-4

지난구간에 이어 다시 구45번 국도 2차선 산장모텔앞 공터에 도착하여 산행준비 및 몇장의 사진을 찍고는 좌측편 능선으로 진행한다. 

초반부터 잡풀과 잡목으로 인하여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고, 잡풀이 무성한곳을 통과하니 임도길과 민가가 정면으로 나온다. 임도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약간 이동하다가 임도길 버리고 좌측방향 밤나무 밭으로 진행한다.

 

밤나무밭을 통과하면 좌측편으로 향토집과 콘테이너가 나오고 콘테이너 옆으로 올라 한차례 밀어 올리면 능선 갈림길에 도착하고 능선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다시 한번더 진행하면  갈산지맥이 분기하는 뒷산에 도착한다., 뒷산정상부에는 조망이 좋고 지난 구간을 조망하고는 다시 뒤산갈림길에 도착하여 좌측방향 급경사 내림길을 내려서면  넓은 공터 안부에 정자, 화장실, 천주교 순교의 고개길인 한티고개에 도착한다.

 

 

나본들 들머리지점의 모습

나본들 식당(예전에는 이곳이 고려부페, 지금은 식당영업 안하는 상태)주차장 앞에서 산행 준비을 하고는 식당 좌측편 임도길로 진행하다가 좌측편 능선으로 올라 진행한다.

 

들머리지점

식당 주차장 좌측편 나무에 시그널이 많이 붙혀 있고 예전에는 나무 뒤편으로 올라지만 지금은 잡풀로 인하여 등로길이 희미하여 식당 뒤편 능선으로 진행한다.

 

임도길 통과

식당옆 임도길 버리고 좌측 능선으로 오른다. 급경사지로 등로길이 미끄러워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올라서면 잡풀이 무성이 밮이 나온다.

 

나본들고개(해발160m) 조망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광천리에 있는 고개로 해미와 예산을 잇는 45번 국도가 지나가는 곳으로 ‘남은들 고개’ 라는 말에서 유래되어 변음된 이름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곳사람들은 '풍구고개'라고 부른다. 이곳이 '바람이 아주 강하게 불어 그렇게 불렀다'고 한다. 최근에는 '해미로 넘어가는 고개'라 하여 주민들은 '해미고개'로 통용된다고 한다.

 

 

 

잡풀이 무성한 임도길 통과

나본들 고개 식당 주차장에서 올라서면 잡풀이 무성한 임도길이 나오고 직진으로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온다. 가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전환하여 진행하면 다시 갈림길에 나오고 임도길 버리고 좌측편 밤나무밭으로 진행한다.

 

갈림길 통과

잡풀이 무성한 임도길을 통과하면 갈림길이 나오고 우틀하여 진행

 

임도길 탈출

임도길 버리고 좌측편 밤나무밭으로 진행

 

밤나무밭 통과

컨테이너와 황토로 만든 민가집 통과

밤나무밭을 통과하여 진행하니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조금 올라서니 컨테이너가 하나 보인다. 그 옆으로 황토로 지은 신축집이 한채 나오고  은행나무를 끼고 밭가운데를 지난다.

 

 

대나무 군락지 통과

컨테이너가 설치되어 있는곳을 지나면 본격적으로 산행이 시작되는 능선길이 나온다. 우측편 대나무 사이를 지나 경사지을 오르면 우측편으로 경주이씨와 청주한씨 합장묘가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방향 전환하여 진행하면 능선 안부에 도착한다. 초반부터 힘든 산행길이 시작되고  뒤산 이후부터는 완만한 산행길과 암릉길이 기다리고 있다.

뒤산갈림길로 이어지는 등로길의 모습

오늘 산행중 제일 힘든 구간이라 생각된다. 초반부터 약300고도을 높혀 올라야 하므로 무더운 날씨속에 등줄기에서는 땀방울이 쏫구쳐 흐르고 있다. 가을이지만 여름날씨 같은 기온에 바람 한점이 없어 무척이나 힘든 산행길 예상해보며 뒤산갈림길로 올라선다.

 

능선 안부 통과후 뒤돌아본 모습

 

암릉지대 통과

능선 안부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너덜지대 비슷한 암릉구간이 나타나고 한차례 밀어 올리면 뒷산갈림길에 도착한다.

 

뒷산 갈림길

뒷산 갈림길에서 금북정맥 마루금은 우측방향으로 90도를 꺽어져 내려서면 한티고개에 도착하고, 뒷산 정상부는 좌측방향으로 약간 올라서면 있다. 그곳에서 바라보는 조망권이 일품이다.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해미면 경계가 되는 뒷산능선으로 여기서 만난 해미면은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운산면을 접하며 일락산까지 이어간다.

 

 

뒷산(해발427m)

충남 서산시 해미면 대곡리 뒤에 있는 산으로 지도상에는 뒷산으로 표기되어 있다.

 

 

뒷산 갈림길에서 바라본 뒷산방면의 등로길의 모습

뒤산은 마루금에서 약간 좌측편으로 벗어나 있다.

 

뒷산 갈림길(해발427 m)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갈산지맥' 아크릴로 만든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고 마루금은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며 뒷산정상은 좌측방향으로 올라야 한다. 뒷산에서 갈라져 갈산면 방향으로 뻗어 연장이고개-삼준산-계봉산-갈산초등학교까지의 마루금인듯 하다

 

급경사 내림길의 모습

뒷산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는 등로길의 모습. 한티고개까지는 고도을 약100m 고도을 낯추어야 한다.

 

한티고개(해발307 m)

뒷산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급경사지을 내려서면 402봉과 385봉으로 고도를 낮추니 한티고개가 나타난다. 한티고개 주변에는 넓은 공터와 해미순교성지길, 성지물품, 팔각정,서산 아라메길 안내판,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고 마루금은 화장실 우측편 능선으로 진행한다.

한티고개에서 오늘의 최고봉인 가야봉 오름길 좌측편으로 산 하나을 완전히 뭉개버리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업체는 채석장을 운영하는 태양석산이며  아름다운 가야산 줄기을 두동강을 내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이 산객이 어떻게 하겠는가. 마루금을 이어 가면서 종종 이런 모습을 보았지만 오늘도 안타까운 마음을 달려 보면 가야봉으로 이어간다.

채석장을 떠나면서 지나온 마루금가 저멀리 서산시 해미면, 예산군 덕산면을 조망하고는 411.2봉으로 진행한다.  한티재에서 가파른 암봉을 올라 억새가 무성한 폐헬기장을 지나니 파손된 411.2봉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에 도착한다.

 

저멀리 삼준산과 연암산 이 우뚝 솟아나 멋드러지게 조망되고 약20여분 더 진행하니 한서대학교 갈림길에 도착한다, 한서대학교로 진행하는 등로길은 잡풀과 잡목으로 희미하여 보이질 않는다. 427봉으로 진행하는 등로길 중간 중간에는 지난해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들이 등로길을 가로막고 있었고 산불이 났는지 고사목들이 간간이 등로길에 있었다.

 

470봉을 지나 485봉에 올라서니 좌측편 바로 아래에는 한서대학교가 내려다 저멀리 서산시 해미읍과 앞으로 이어 가야할 가야봉, 석문봉, 일락산이 연이어 조망되었다.  485봉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니 산불이 발생했던 지역이라 큰 소나무는 보이지 않고 등로길에 잡목이 우거져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시원한 조망 때문에 어려움을 이겨내고는 가야봉으로 올라선다. 643봉에서 지나온 마루금과 덕숭산, 서산 해미방면을 조망하고는649m봉을 지나 방향을 전환하여 완만하게 오르는데 출입금지 가야산 산양삼재배 영농조합의 안내판이 보이고 잠시 후 통신시설이 있는 가야산 전위봉에 도착한다.

 

좌측방향은 천주교 해미순례성지 도보길의 모습

 

한티고개(해발307m)

충남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해미면을 잇는 고개로 예전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꽤나 많았으며  넓고 커다란 고개라고 한다. 신유, 기해, 병오, 병인년 박해 등 조선 후기에 천주교 박해기간 동안에 이곳 내포지역에서 체포된 천주교 신자들을 해미고을 포졸들이 압송해가던 고개로 천주교의 성지순례의 고개이기도 하다. 천주교 신자의 입장에서 보면 넓고 큰 고개가 아닌 한이 맺힌 고개라고나 할까. 넓은 공터엔 나무 십자가가 있고 화장실과 정자가 설치되어 있고 곳곳에 천주교의 기념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으며 서산아라메길 안내도도 있다.

 

한티고개에 있는 아라메길의 안내판

한티고개는 서산 아라메길이 지나는 곳으로 바다와 접해있는 곳으로 바다의 고유어인 '아라'와 산의 우리말인 '메'가 합쳐져 만들어진 산지역의 특색을 살린 산책길인 아라메길이 연결되는 통로이다.

한티고개(해발307m)

충남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해미면을 잇는 고개로 예전에는 사람들의 왕래가 꽤나 많았으며, 넓고 커다란 고개라고 한다. 신유, 기해, 병오, 병인년 박해 등 조선 후기에 천주교 박해기간 동안에 이곳 내포지역에서 체포된 천주교 신자들을 해미고을 포졸들이 압송해가던 고개로 천주교의 성지순례의 고개이기도 하다. 천주교 신자의 입장에서 보면, 넓고 큰 고개가 아닌 한이 맺힌 고개라고나 할까. 넓은 공터엔 나무 십자가가 있고, 화장실과 정자가 설치되어 있고, 곳곳에 천주교의 기념 시설물이 설치되어 있으며, 서산아라메길 안내도도 있다.

 

지나온 마루금 조망

한티고개에서 화장실 뒤편으로 올라서면 조망이 좋은 조망지가 나오고, 잠시 휴식을 취하면서 지나온 마루금을 조망해 본다.

 

산이 허물어지는 광경

가야산 오르는 등로길 좌측편으로 산 하나을 뭉개버리는 공사가 한창인데 태양석산과 대일석산이라는 2개의 업체가 이렇게 엄청난 사항을 만들고 있었다. 마루금을 이어 오면서 종종 이런 모습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을 달려 보았지만 이순간도 어느 한구석이 불편할 따름이다. 저렇게 산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으면 앞으로 후손들에게 무얼 남겨줄것인지...

 

411.2 m봉 파손된 삼각점과 지적지근점 표지점

억새가 무성한 폐헬기장을 지나니 파손된 411.2봉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에 도착한다.

 

폐허가된 헬기장 통과

이곳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361봉, 상왕봉을 지나 한서대학교로 연결되는데 잡풀이 많아 등로길 찾기가 어려웠다.

45번국도 조망

마루금 우측방향으로 예산군 덕산면과 지나온 덕숭산이 조망되고 시원하게 뚤린 45번 국도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오며, 한서대학 갈림길에 있는 한서대학교 푯말을 보지 못하고 지났는데 우측편으로 아름다운 광경이 한눈에 펼쳐진다.좌측편으로는 361m봉-상왕산으로 이어지는 능선길이 있다. 금북정맥마루금은 우측방향으로 진행한다.

 

한서대학교와 산수저수지 조망

 

한서대학교와 서산시 해미읍일대 조망

 

427봉 조망

 

485봉 조망

 

485봉

봉우리에 올라 지나온 마루금과 앞으로 이어갈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오며 저멀리 서산시 해미면일대의 모습이 파노라마 처럼 보인다.

 

앞으로 이어 가야할 석문봉과 일락산 방향 조망

 

바로 아래 한서대학교 컴퍼스와산수저수지가 보이고  저 멀리 해미면 소재지도 조망

 

지나온 마루금의 모습

 

출입금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는 안부

485봉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 한차례 밀어 올리면 안부에 도착하는데 주변에 팟줄로 출입을 금지한다는 푯말과 함께 설치되었다.

 

출입금지 안내판

가야산 정상 직진에 출입금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고 주변에 팟줄로 이어져 있었다. 이 아래에는 산삼을 심어놨다는 표시와 함께 경고문도 붙어있다.맥을 이어가는 진정한 산꾼들은 그런데 관심도 없고 산만 바라보고 갈 뿐인데..

 

 

가야산(伽倻山, 해발678m)

가야산 정상은 KT중계탑과  KBS 송신소 그리고 대전방송국 송신소가 가야산 정상을 점령하고 있어 원효봉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송신탑 철조망을 끼고 정맥 마루금을 이어간다.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운산면, 해미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서, 방송시설과 통신사가 점령하고 있는 주봉인 가야봉을 중심으로 원효봉(元曉峰:605m), 석문봉(石門峰:653m), 옥양봉(玉洋峰:593m) 등의 봉우리가 있으며, 신라시대에는 가야사를 짓고, 중사(中祀:나라에서 지내는 제사)를 지냈으며, 조선시대까지 덕산 현감이 봄, 가을로 고을 관원을 시켜 제사를 올렸던 곳으로 능선을 따라 피어있는 진달래와 억새의 경치가 수려하다. 덕숭산(德崇山)과 함께 1973년 3월에 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백제때는 상왕산(象王山)이라 불렀는데 신라가 삼국통일 이후에 이 산 밑에 가야사를 창건한 뒤에 가야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가양봉에서 바라본 원효봉의 모습

 

지나온 마루금

 

지나온 마루금

 

서산시 해미면 일대 조망

 

앞으로 이어갈 마루금

 

가야봉 직진에서 인증샷

한여름 같은 날씨속에 진행하는 마루금이 무척 힘들고 지쳐오지만 그래도 마루금 이어가야 하길래 참고 인내하며 석문봉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가야산정상부는 통신시설물이 설치되어 진행하지 못하는 관계로 암봉을 우회하면서 가야산 정상 좌측편의 시설물 철조망 옆으로하여 이어간다.
 
통신 시설물의 울타리가 끝나갈 무렵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너덜지대인 바위길을 올라서면 시설물이 끝나는 지점의 암름에 오르게 되고 바위틈에 현위치 가야01-10 표지목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암릉에 누군가 가야산 정상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고 앞으로 이어가야할  석문봉이 시원하게 조망되었다. 이곳에 도착하니까 지금까지 만나지 못한 등산객을 마주하고 나무테크에서 주변의 경치을 조망하는고 단풍이 물든 가을에  다시 한번더 오리라 생각하고는 계단을 내려선다.

 

나무계단을 내려서니 쉼터가 나오고 잠시후 상가리 주차장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에 도착한다. 지나온 등로이 비포장도로라고 생각하면 지금부터는 암릉지대 이지만 고속도로 수준으로 바뀌고 흥선 대원군의 부친인 남연군 이구의 묘가 있는 상가리주차장 갈림길을 두번이나 지나게 된다. 로프구간을 만나 암봉위에 올라 지나온 마루금을 바라보니 저멀리 가야산 정상과 좌측으로 원효봉이 멋지게 조망되었다.

 

암봉을 우회하여 태극기가 펄럭이느 석문봉에 도착에 도착하니 많은 등산객으로 인하여 자리을 잡고 앉을수가 없어 빨리 인증샷을 남기고는 일락산으로 진행한다. 일릭사 이정표를 따라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니 나무평상이 설치되어 있는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동료 대원들을 만나고 오늘 처음오신분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에 먼저 보내고는 한참이나 이곳에서 기다려보지만 오시지 않는다. 다시 석문봉으로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여유로게 내려오시는 것을 보고는 함께 일락산으로 진행한다.

 

쉼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관계로 시간을 단축할 요량으로 발걸음을 재촉해 보지만 함께하는 대원들께서 힘들어 하시는 바람에 천천히 진행하기로 한다.  등로가 너무 편안하고 좋아 이게 정맥길인지 아니면 둘레길이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대곡리 갈림길을 지나 계속 일락사 이정표를 따라 진행을 하고 쉼터의자를 지나 조금더 내려서니 넓은 임도길인 사잇고개에 도착한다.

 

우측방향은 용현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며 바리게이트가 설치되어 있고 정맥길은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이곳에서 부터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389봉까지는 제주올래길이나 지리산 둘레길같은 느낌인 서산 아라메길이다. 우측으로는 여태껏 같이해온 예산군 덕산면과 이별을 하고 서산시 운산면으로 접어들면서 정맥길도 서산시로 접어든다.


사잇고개에는 솟대와 김승재 시인의 '山' 이라는 시비도 세워져 있고, 그 옆으로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다. 완만하게 진행하니 수나무숲이 나오고 이곳에서 누워 삼림욕이나 하면서 지내서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지나간다. 516봉을 지나 다시 오르니 정자가 설치되어 있는 일락산 정상에 도착한다. 주변에는 정상석은 없고 이정표와 휴식을 취할수 있는 의자 그리고 중앙부에 정자가 설치되어 있었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해미면, 운산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 가야산을 중심으로 한  덕산도립공원에 속하며 석문봉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의 산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고 정상에도 정자하나 달랑 있는것 외는 별 특징이 없는 산으로 석문봉으로 오르는 중간지점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산의 북쪽에는 백제의 마지막 임금인 의자왕 8년(648년)에 혜감대사가 창건한 개심사가 있고 서쪽 계곡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한 일락사라는 비구니 도량이 자리를 잡고있다. 문화재로는 개심사대웅보전(보물 143호)과 주변에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서산마애삼존불상, 보원사지, 보원사 5층석탑이 있다일락산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떡한조각 먹고는 다시 359봉 삼각점이 있는곳으로 진행한다.

 

일락산에서 우측방향으로 평탄한 등로길로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고 직진으로 올라 내려 진행하면 황락리방면 삼거리인 넓은 임도길이 나온다. 이곳까지는 차량의 통행이 가능하여 이정목 옆에 미니승합차량을 주차되어 있었다. 황락리 삼거리 임도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었고 마루금은 좌측방향 직진으로 진행한다.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는곳에서 직진으로 진행하면 전망대 삼거리에 도착한다. 전망대는 마루금에서 50m 정도 떨어진능선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망대는 육각정자로 되어 있다.전망대에 올라서면 조망이 있을것 같은데 주변 나무에 가려 조망이 전혀없다.  다시 삼거리로 내려와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니 등로길이 너무 잘 정비되어 있어 편안하게 개심사입구에 도착한다.

 

개심사입구 주변에는 표지목이 세워져 있으며,  버섯모양의 쉼터가 있고, 아라메길 안내판과 내포문화숲길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개심사입구 갈림길에서 우측방향 넓은 임도길로 진행하면 좌측편으로 삼각점이 잇는데 유심히 관찰하지 못하면 그냥 지나칠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358.8봉 삼각점을 확인하고는 다시 임도길로 내려 쉼터삼거리에서 금북정맥 13구간 마루금을 종료한다. 다음 구간(쉼터 이정표 뒤편으로 진행)을 확인하고는 우측방향 임도길로 내려서면 용현2리 보원사지터 입구에 도착한다.

 

 

가야봉 직진에서 인증샷 1

 

가야봉 직진에서 원효봉 배경으로 인증샷 1

 

가야봉 직진에서 원효봉 배경으로 인증샷 2

 

가야산정상를 시설물에 빼앗긴 가야산(伽倻山, 해발678m)의 모습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운산면, 해미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서 방송시설과통신사가 점령하고 있는 주봉인 가야봉을 중심으로 원효봉(元曉峰:605m), 석문봉(石門峰:653m), 옥양봉(玉洋峰:593m) 등의 봉우리가 있으며 신라시대에는 가야사를 짓고 중사(中祀:나라에서 지내는제사)를 지냈으며 조선시대까지 덕산 현감이 봄, 가을로 고을 관원을 시켜 제사를 올렸던 곳으로 능선을 따라 피어있는 진달래와 억새의 경치가 수려하다. 덕숭산(德崇山)과 함께 1973년 3월에 덕산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백제때는 상왕산(象王山)이라 불렀는데 신라가 삼국통일 이후에이 산밑에 가야사를 창건한 뒤에 가야산이라 불렀다고 한다. 가야산이라고 하면 대게 합천 해인사에 있는 가야산을 먼저 떠올리지만 서산에 있는 가야산도 규모가 그리 크지는 않지만 유난히 불교유적을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이다. 국보급 문화재인 일명 ‘백제의 미소’라고도 불리는 서산마애삼존불상을 비롯해 보원사지, 명암사지,명종대왕태실, 개심사, 일락사, 문수사, 송덕암 등 명사찰과 명소들이 모두

이곳 가야산을 중심으로 위치해 있다.

쓰러진 철조망 통과

가야봉을 우회하여 철조망 옆으로 진행하면 철조망이 쓰러져 있는곳을 통과한다. 진행할때 점선이 있는곳에 발을 딛고 내려서면 한결 수월하다.

 

갈림길 통과

쓰러져 있는 철조망을 통과하면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석문봉으로 이어진다.

 

멋진 암릉의 모습

한편으로는 사람의 얼굴 같고 또 다른편으로는 동물의 형생 같은 바위 위에 이름모를 산꾼이 이곳을 가야산 정상이라고 적어 놓았다. 가야산정상부을 통신시설물에 배앗긴채 발아보지도 못하고 우회하는 이 산객의 마음이 허전해 진다.

 

 정상을 빼앗긴 채 정상석 하나없이 산꾼들이 설치한 가야산

내포(內浦)는, 충남 아산에서 태안까지의 평야 지대를 일컫는 지명으로, 삽교천(揷橋川)과 무한천(無限川)의 물줄기가 흐르는 충남 중서부 지역을 총칭한다. 내포는 이중환의 '택리지'에 언급된 용어로 서산, 당진, 홍성, 예산, 아산, 청양 지역을 말하며 이 지역에서 태동한 문화를 '내포문화'라고 하는데, 조선후기의 서경덕 이지함 홍가신 등 많은 실학자를 배출했고, 천주교 성지 또한 이곳에 집중된 것 또한 이 지역 사람들의 경직되지 않고 진취적인 사상을 말하는 것이라 한다.

 

테크목에서 바라본 앞으로 이어 가야할 칼날능선인 석문봉과 저 멀리 일락산 조망

 

나무테크에서 서산시 해미면 방면으로 인증샷

 

데크목에서 내포지역을 배경으로 인증샷

내포(內浦)는 ‘내륙 깊숙이 들어앉은 포구’를 말한다. 오늘날 태안, 서산, 당진, 홍성, 예산, 아산 등 가야산을 중심으로 열 고을이 바로 그곳이다. 아산만, 가로림만, 천수만에 연결된 하천을 통해 내륙 깊숙이까지 뱃길이 닿았다. 중국의 불교문화가 이곳을 통해 곧바로 백제에 밀려들었다. 태안마애삼존불, 서산마애삼존불, 예산화전리 사면석불 등이 바로 그 흔적이다. 당시 내포지역은 한반도의 불교문화 선진지역이었던 것이다.  이곳을 통해 백제의 불교가 일본으로 건너갔고  천주교가 이곳 내포지역으로 들어왔던 곳이다. 그리고 내포지방은 일본 천황가의 뿌리나라(根國)라고 한다. 백제가 망하자 백제의 왕족들이 이곳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황실을 건설했다고 한다.

 

나무테크옆 암릉에서 서산시 해미면 방면으로 인증샷

 

가야산 데크목앞 암릉지에서  예산군 덕산면 상가리방면으로 인증샷

충남 예산군 덕산면 가야산 동쪽 기슭 상가리 오얏골에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라는 흥선 대원군의 부친인 남연군 이구의 묘가 있다. 대원군이 부친의 묘를 경기도 연천에서 곳으로 이장한 후 두 아들이 왕이 되었다는 이야기인즉, 흥선 대원군은 무너져 가는 왕권을 회복시키기 위한 방법을 명당에서 찾기로 하고, 10여 년간 전국의 명산을 찾아다니다가 지관인 정만인을 만나게 되고, 정만인에게 명당자리를 부탁하니 그가 "덕산 가야산 동쪽에 2대에 걸쳐 왕이 나오는 자리가 있으니 이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이고, 광천 오서산에

만대에 걸친  영화를 누리는 만대영화지지(萬代榮華之地)가 있으니 어느 쪽을 선택하시겠느냐" 하니 흥선은 이대천자지지를 선택한다.
흥선은 경기도 연천에 있는 남연군의 묘를 이장하기에 이르러 연천에서 상여가 운구되어 오는데
상여가 도착하는 마을마다 주민들이 동원되었고 마지막으로 상여를 내린 마을이 광천리 남은들 마을이다. 대천자지지(二代天子之地)라는 명당에 남연군의 묘까지 이장한 후 고종의 뒤를 이어 순종까지 보위에 오르게 되니 남연군의 묘터가 예언대로 이대천자지지임에는 확실하게 맞은 셈이다 

 

 

 

테크에서 앞으로 이어갈 마루금의 모습

 

쉼터 통과

테크에서 내려서면 나무의자가 있는 쉼터가 나오고 잠시후 갈림길 삼거리가 나온다.

 

상가리주차장방향 삼거리의 모습

 

상가리주차장 삼거리 이정표: 가양봉 0.42km, 석문봉 1.21km, 주차장 3.12km

가야산 상봉의 아쉬움을 뒤로한체 문봉으로 향한다. 우측편으로 덕산면이 나오는데 저 지역은 추사 김정희 선생이 태어난 곳이기도 하다. 몇해전 추사고택을 다녀온 적이 있다.

 

김정희영정 (金正喜影幀)

한국사에서 19세기 최고의 인물을 꼽으라면 단연 추사 김정희(金正喜, 1786~1856)를 꼽지 않을 수 없다.

김정희는 추사체라는 고유명사로 불리는 최고의 글씨는 물론이고 세한도로 대표되는 그림과시와 산문에 이르기까지 학자로서, 또는 예술가로서 최고의 경지에 이른 인물이다.

금석학 연구에서도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업적을 남겼으며 전각(篆刻) 또한 최고의 기술을 가져 천재 예술가로서 그의 이름을 능가할 인물은 거의 없다고 평가받고 있다.

 

추사의 고택의 전경 

김정희는 1786년(정조 10) 6월 3일 충남 예산군 신암면 용궁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경주이며 어릴 적 이름은 원춘(元春)이다. 김정희만큼 호가 많은 인물이 또 있을까.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진 추사(秋史)와 완당(阮堂) 외에도 승설도인(勝雪道人), 노과(老果), 천축고(天竺古先生) 등 생전에 100여 가지가 넘는 호를 바꿔가며 사용했다.

천재의 출생이니만큼 탄생 일화가 없을 리 없다. 어머니 뱃속에서 10달이 아닌 24개월 만에 세상에 태어났다는 이야기도 있고 태어날 무렵 시들어가는 뒷산 나무들이 아기 김정희의 생기를 받아 다시 살아났다는 이야기도 전한다. 탄생일화는 천재를 포장해주는 이야기일 뿐이고, 어려서부터 뛰어난 자질을 보였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김정희 집안은 안동 김씨, 풍양 조씨와 더불어 조선후기 양반가를 대표하는 명문 가문이었다. 증조부 김한진은 영조의 둘째딸인 화순옹주와 결혼하여 월성위에 봉해진 인물이다.

 

김정희의 학문세계는 한마디로 ‘실사구시’로 요약할 수 있다. 실사구시(實事求是)는 청나라 고증학자 고염무가 주창한 것으로 ‘사실에 의거하여 사물의 진리를 찾는다.’는 뜻이다. 김정희는 실사구시 정신에 입각하여 학문 세계를 완성해 나갔다. 많이 알려져 있지 않지만 천문학에 대한 식견도 괄목할 만한 정도였다. 일식과 월식 현상 등 관측에 근거하여 서양천문학의 지식을 받아들였다.

 

김정희는 제주도에서 9년간 귀양살이를 했다. 이 시기 동안 많은 편지를 통해 육지에 있는 지인과 후학들에게 자신의 학문세계를 전했다. 제주도 유배기간을 통해서도 그는 쉬지 않고 붓을 잡아 그리고 쓰는 일에 매진하였다. 최고의 걸작품인 ‘세한도’도 이 시기에 그려졌고, 흔히 추사체라 불리는 그의 독창적인 서체도 이때 완성되었다. 유배 중에 그린 세한도는 김정희의 최고 걸작이자 우리나라 문인화의 최고봉이라 평가받는 그림이다.

 

긴급구조 119 이정표 : 가야산 01-09

 

쉄터 통과

상가리 주차장에서 직진으로 진행하면 쉄터가 나오고 조금더 진행하면 암릉지을 우회하는 등로길이 나온다.

 

암봉(609m) 우회로의 모습

암봉은 위험하여 우측편으로 우회로을 만들어 철구조물을 만들어 놓아 진행하는데 편리하였다.

 

609봉 암릉지에서 가야봉 배경으로 인증샷 1

 

609봉 암릉지에서 가야봉 배경으로 인증샷 2

 

609봉 우회하여 다시 돌계단을 올라서면 바로앞에 612봉 암릉이 보인다.

 

609봉 암릉지을 통과후 가야봉 배경으로 인증샷

 

612 암릉봉 쉄터

 

612봉 우회하는 나무계단의 모습

 

612봉 우회하는 돌계단의 모습

612봉 암릉지 앞에서 우측방향으로 나무계단을 내려 완만하게 진행하다가 급경사지가 나오고 돌계단으로 만들어진곳을 올라서면 석문봉 직전에 있는 상가리 주차장 삼거리에 도착한다.

무명봉 통과

 

무명봉에 설치되어 있는 등로안내판의 모습

 

암릉구간 통과

 

석문봉 방면의 등로길 모습

상가리주차장 방면의 삼거리 모습

 

쉄터삼거리 이정표 : 쉄터 1.0km, 가야봉 1.07km, 석문봉 0.5km

 

긴급구조 119 이정표 : 가야산 01-08

 

석문봉 직전에 있는 암릉지의 모습

암릉지 경사도가 있어 팟줄로 올라가야 하며 정상에 올라서면 조망이 일품이다.

 

석문봉 직전에 있는 암릉지의 모습

등로길에 설치되어 있는 안내도의 모습

 

석문봉 적진에 있는 나무계단의 모습

 

가야봉 조망

 

서산시 해미면일대 조망

 

석문봉 조망

 

석문봉 배경으로 인증샷 1

 

석문봉 배경으로 인증샷 2

 

지나온 마루금의 모습

 

석문봉(石門峰, 해발653m)정상

 '석문이 열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혀진 봉우리는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해미면과 운산면과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인근의 가야산을 중심으로 한 덕산도립공원에 속해있는 암릉의 산이다.

 

 가야봉으로부터 북쪽으로 1.7km정도 떨어져 있고, 일락산과 가깝다.  석문봉을 정점으로 옥양봉과 일락산 사이로 길게 형성되어 있는 용현계곡에는 산림욕장이 조성되어 있다. 역내(驛川)는 이곳 석문봉에서 발원하여 서산시로 흘러 당진읍, 고대면, 정미면을 걸쳐 퇴적평야를 이루며, 기름진 평야지대가 형성되었다.

전망이 매우 좋아 남쪽으로는 가야봉과 옥양봉, 북서쪽으로는 일락산이 있고, 서쪽인 해미로는 서해바다가

펼쳐진다. 동쪽 아래의 넓게 형성된 골짜기에는 예산 가야사지(伽倻寺址:충남기념물 150호)가 있다.

 

 

석문봉에 설치되어 있는 가야산 안내도

석문지맥은 안성 칠장산에서 태안의 안흥진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이 충남 서부의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해미면과 운산면 등 3개면이 만나는 석문동에서 북동쪽으로 기수를 돌려 당진시 신평면 매산리의 아산만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말한다.

도상거리는 약 48.3km이고, 석문봉(石門峰:653m), 옥양봉(玉洋峰:621.4m), 서원산(書院山:472.7m), 오봉산(五峰山:225.3m), 몽산(夢山:290m), 135.2봉, 국사봉(國師峰:148m), 오룡산(五龍山:114m), 철마산(鐵馬山:91.8m), 망객산(望客山:64m), 아굴산(42.1m), 석화산(石花山:46.4m) 등을 지난다.

산줄기의 동쪽이나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덕산천, 효교천, 대천천, 남원천으로 흘러들어 결국 삽교천으로 흘러들어 아산만에 이르고, 북쪽이나 서쪽의 물은 대방들천, 백석천, 서원천이 되어 황해로 스며들거나, 일부는 아산만으로 흐른다.

 

석문봉에 설치되어 있는 돌탑의 모습

 석문봉(石門峰, 해발653m)

석문이 열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이름 붙혀진 봉우리는 충남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해미면과 운산면과 경계를 이루는 산으로 인근의 가야산을 중심으로 한 덕산도립공원에 속해있는 암릉의 산이다. 가야봉으로 부터 북쪽으로 1.7km정도 떨어져 있고 일락산과 가깝다.  석문봉을 정점으로 옥양봉과 일락산 사이로 길게 형성되어 있는 용현계곡에는 산림욕장이 조성되어 있다.

역내(驛川)는 이곳 석문봉에서 발원하여 서산시로 흘러 당진읍,고대면, 정미면을 걸쳐 퇴적평야를 이루며 기름진 평야지대가 형성되었다. 전망이 매우좋아 남쪽으로는 가야봉과 옥양봉, 북서쪽으로는 일락산이 있고, 서쪽인 해미로는 서해바다가 펼쳐진다. 동쪽 아래의 넓게 형성된 골짜기에는 예산 가야사지(伽倻寺址:충남기념물 150호)가 있다. 정상석 뒷면에는 "내포의 정기 이곳에서 발원하다"가 새겨져 있다.

 

석문봉 정상석에서 인증샷

석문봉 돌탑

석문봉 정상부 좌측편으로 서산 해미산악회가 백두대간 종주를 기념하는 돌탑이 있고 우측으로 석문지맥이 시작되는 분기봉이기도 한다

석문봉 돌탑에서 인증샷

 

석문지맥 분기점

석문지맥은 안성 칠장산에서 태안의 안흥진으로 이어지는 금북정맥이 충남 서부의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해미면과 운산면 등 3개면이 만나는 석문동에서 북동쪽으로 기수를 돌려 당진시 신평면 매산리의 아산만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말한다. 도상거리는 약 48.3km이고 석문봉(石門峰:653m),옥양봉(玉洋峰:621.4m), 서원산(書院山:472.7m), 오봉산(五峰山:225.3m), 몽산(夢山:290m), 135.2봉, 국사봉(國師峰:148m), 오룡산(五龍山:114m),철마산(鐵馬山:91.8m), 망객산(望客山:64m), 아굴산(42.1m), 석화산(石花山:46.4m) 등을 지난다. 산줄기의 동쪽이나 남쪽으로 흐르는 물은 덕산천, 효교천, 대천천, 남원천으로 흘러들어 결국 삽교천으로 흘러들어 아산만에 이르고 북쪽이나 서쪽의 물은 대방들천, 백석천, 서원천이 되어

황해로 스며 들거나 일부는 아산만으로 흐른다.

 

석문봉 이정표 : 옥양봉, 일락사

마루금은 일락사방향으로 진행

 

긴급구조 119 이정표 : 가야산 01-07

 

대곡리 삼거리 이정표 : 일락사, 석문봉, 대곡리

 

현위치 번호 : 서산 01-15

완만한 등로길의 모습

현위치 번호 : 서산 01-14

이정표 : 석문봉 0.5km, 보원사지 5.3km

 

서산아라메길이 모습

 

현위치 번호 : 서산 01-13

 

로프지역 통과

 

쉼터통과

 

정자가 있는 쉄터 통과

 

쉼터의 모습

 

사잇고개(해발439 m)

사잇고개는 넓은 공터,이정표( → 일락산 정상 0.5 km),장독대와 솟대,안전기원비,김승재 시인의 '山' 시비,의자 모양으로 만든 '아라메길'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하여 직진 능선으로 오른다.

 

사잇고개 이정표 : 용현계곡, 일락산, 주차장

우측방향은 용현계곡 및 자연휴양림으로 내려가는 길이며 임도에 바리게이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정맥길은 좌측방향으로 전환하여 직진으로 이어진다.이곳에서 부터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389봉까지는 제주올래길이나 지리산 둘레길같은 느낌인 서산 아라메길이다. 우측으로는 여태껏 같이해온 예산군 덕산면과 이별을 하고 서산시 운산면으로 접어들면서 정맥길도 서산시로 접어든다.

 

사잇고개

충남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해미면을 잇는 고개로 이곳까지 아마 차량이 올라오는 모양이다. 좌측으로 일락사 가는 방향이고 우측은 용현계곡 휴양림 내려가는 곳이다. 이곳은 산에서는 보기힘든 솟대가 설치되어 있고 시를 쓴 비석도 보이며 간이의자도 있다.

 

산림유전자원보호구역 안내도

 

사잇고개 이정표 (서산아라메길) : 일락사 1.8km, 일락산정상 0.5km

사잇고개에 설치되어 있는 솟대와 시비

 

현위치 번호 : 서산 01-12

 

현위치 번호 : 서산 01-11

 

현위치 번호 : 서산 01-10

 

일락산(해발521 m)

사잇고개에서 직진으로 오르면 소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완만하게 한차례 밀어올리면 일락산 정상부에 도착한다.  일락산정상부에는 정자와 의자, 평상, 돌탑,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지만 정상석은 보이지 않았다. 이곳에서 물과 과일 한조각을 먹고는 마루금 이어간다.

 

 

일락산(日樂山, 해발521m)

충남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해미면, 운산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 가야산을 중심으로 한  덕산도립공원에 속하며 석문봉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의 산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고 정상에도 정자하나 달랑 있는것 외는 별 특징이 없는 산으로 석문봉으로 오르는 중간지점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산의 북쪽에는 백제의 마지막 임금인 의자왕 8년(648년)에 혜감대사가 창건한 개심사가 있고 서쪽 계곡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한 일락사라는 비구니 도량이 자리를 잡고있다. 문화재로는 개심사대웅보전(보물 143호)과 주변에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서산마애삼존불상, 보원사지, 보원사 5층석탑이 있다.

 

 

일락산 정상 이정표 : 일락사 1.2km

 

 

일락산정상부에서 인증샷

 

현위치 번호 : 서산 01-17

 

현위치 번호 : 서산 01-18

현위치 번호 : 서산 01-19

 

현위치 번호 : 서산 01-20

 

철탑 통과

 

현위치 번호 : 서산 01-21

 

 

갈림길 통과

 

 

무명봉 통과

현위치 번호 : 서산 01-22

 

 

서산 아라메길

 

삼거리 갈림길

 마루금은 보원사지방향의 표시가 있는 우측임도를 따라간다.좌측은 해미면 황락리 방향으로 내려가는 콘크리트 포장도로가 있다.

 

황락리삼거리 이정표 : 보원사지 2.8km, 일락산 1.2km

 

임도삼거리 통과

 황락리 삼거리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니 마루금은 좌측편으로  바리케이트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곳으로 진행하면 용현자연휴양림으로 내려서는 임도길 같았다. 마루금은 좌측편 임도길로 진행한다.

 

이정표 : 일락산 1.6km,보원사지터2.6km

보원사지 가는길

서산 보원사(普願寺) 터는 서산마애삼존불과 가깝다. 산에 빙 둘러싸인 강당계곡 ‘너른 우묵 땅’이다. 장대한 당간지주와 5층 석탑이 남아 있다. 통일신라 때 화엄 10찰의 하나였다. 의상대사가 이끄는 화엄종은 통일신라의 통치이념이다. 수준 높은 내포지역의 백제 유민들은 웬만한 불교 종파에는 코웃음을 쳤을 것이다. 통일신라로선 우선 내포지역 백제 유민들의 마음부터 사로잡아야 했으리라.

 

보원사는 서산마애삼존석불 개심사 가야사 사이에 놓여 있다.백제 사람들의 사랑을 받던 절집과 마애석불 사이에 통일신라가 새 절을 지은 것이다.스님이 한때 1000명이 넘었다니 통일신라의 관심이 어땠는지 알 수 있다.

 

아라메길 3-2 이정표 : 전망대입구 3거리 1.1km, 개심사입구 0.4km, 마애여래삼존불상 3.6km

 

전망대

 마루금에서 100m 정도 떨어진 앞쪽에 전망대 육각정자가 있어서 올라갔더니 전망대 육각정자를 만들어 놨지만 주변 나무를 정리를 안한 탓에 조망은 전혀없고 실망만 하고 다시 내려온다.

 

이정표 : 전망대 0.1km, 자연휴양림 2.7km, 보원사지 2.0km, 개심사임구 0.3km

 

서산 아라메길의 모습

 

현위치 번호 : 서산 01-23

 

현위치 번호 : 서산 01-24

 

현위치 번호 : 서산 01-25

 

개심사 입구 삼거리

 

개심사(開心寺)

예산 수덕사, 공주 마곡사, 부여의 무량사와 함께 충남의 4대사찰로 꼽히는 개심사는 대한 불교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로서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신검당과 무량수각이 있고 정면에 안양루가 있는 표준형으로 지으진 아주 소박하고 단아한 사찰이다. 654년(백제 의자왕 14년)에 혜감(惠鑑)가 절을짓고 개원사(開元寺)라 하다가 고려 충정왕 2년(1350년)에 처능(處能)스님이 중건하면서 개심사로 불렀다고 한다

개심사(開心寺)는 ‘마음의 문을 여는 절집’이다. 소박하다. 심검당의 ‘구불퉁한 기둥’이 자연스럽다.

경허와 만공선사도 이곳 개심사에 자주 머물렀다고 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인 수덕사(修德寺)의 말사

〈사적기 事蹟記〉에 의하면 654년(무열왕 1) 혜감국사(慧鑑國師)가 창건할 당시에는 개원사(開元寺)라 했는데, 1350년(충정왕 2) 처능대사(處能大師)가 중건하면서 개심사라 했다고 한다.

1484년(성종 15)에 대웅전을 중창했으며 1740년 중수하고 1955년 전면 보수하여 현재에 이르고 있다. 전체적으로 구릉형을 따르면서도 산지형(山地形)으로 변천한 일탑형(一塔型) 가람배치를 보인다. 평탄한 지역에서 북으로 자연계단을 오르면 3단 가량으로 조성된 평탄한 사지(寺址)가 보이며 2단에 안양루(安養樓)가 남면(南面)하여 서 있고 중정(中庭)으로의 입구는 안양루와 무량수전(無量壽殿) 사이의 협소한 가설문으로 되어 있다.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심검당(尋劍堂)과 무량수전이 있고 정면에 안양루가 있는 표준형이다. 이외에도 명부전(冥府殿)과 팔상전(八相殿) 등의 당우가 남아 있다

서산 아라메길 안내도

 

 내포문화(內浦文化)란?  

내포(內浦)는 ‘내륙 깊숙이 들어앉은 포구’를 말한다. 오늘날 태안, 서산, 당진, 홍성, 예산, 아산 등 가야산을 중심으로 열 고을이 바로 그곳이다. 아산만, 가로림만, 천수만에 연결된 하천을 통해 내륙 깊숙이까지 뱃길이 닿았다.

중국의 불교문화가 이곳을 통해 곧바로 백제에 밀려들었다. 태안마애삼존불, 서산마애삼존불, 예산화전리 사면석불 등이 바로 그 흔적이다. 당시 내포지역은 한반도의 불교문화 선진지역이었던 것이다. 

이곳을 통해 백제의 불교가 일본으로 건너갔고, 천주교가 이곳 내포지역으로 들어왔던 곳이다. 그리고 내포지방은 일본 천황가의 뿌리나라(根國)라고 한다.

백제가 망하자 백제의 왕족들이 이곳을 통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 황실을 건설했다고 한다.

 

내포(內浦)는, 충남 아산에서 태안까지의 평야 지대를 일컫는 지명으로, 삽교천(揷橋川)과 무한천(無限川)의 물줄기가 흐르는 충남 중서부 지역을 총칭한다.

내포는 이중환의 '택리지'에 언급된 용어로 서산, 당진, 홍성, 예산, 아산, 청양 지역을 말하며,이 지역에서 태동한 문화를 '내포문화'라고 하는데, 조선후기의 서경덕 이지함 홍가신 등 많은 실학자를 배출했고, 천주교 성지 또한 이곳에 집중된 것 또한 이 지역 사람들의 경직되지 않고,진취적인 사상을 말하는 것이라 한다.

 

개심사(開心寺)

예산 수덕사, 공주 마곡사, 부여의 무량사와 함께 충남의 4대사찰로 꼽히는 개심사는 대한 불교조계종 제7교구 수덕사의 말사로서 대웅전을 중심으로 좌우에 신검당과 무량수각이 있고, 정면에 안양루가 있는 표준형으로 지으진 아주 소박하고, 단아한 사찰이다. 654년(백제 의자왕 14년)에 혜감(惠鑑)가 절을 짓고, 개원사(開元寺)라 하다가 고려 충정왕 2년(1350년)에 처능(處能)스님이 중건하면서 개심사로 불렀다고 한다. 개심사(開心寺)는 ‘마음의 문을 여는 절집’이다.

 

현위치 번호 : 서산 01-26

 

현위치 번호 : 서산 01-27

 

이정표 : 전망대 0.8km, 보원사지 2km

 

현위치 번호 : 서산 01-28

 

현위치 번호 : 서산 01-29

 

현위치 번호 : 서산 01-30

 

358.8봉 삼각점이 있는곳

임도길에서 탈출하여 좌측편 능선으로 올라서면 삼각점이 나온다.

 

358.8m봉

 편안한 등로를 지나는 좌측에 자리하고 있어 관심을 갖지 않은 산꾼들은 모두 다 그냥 지나쳐 버린다.  관심을 갖고 올라가니 4등 삼각점(당진 447)이 있고  국립지리원의 삼각점 표시판이 붙어있다. 다시 되돌아 와 편안길을 내려온다.

 

삼각점 안내도

 

금북정맥 마루금 이지점에서 종료

이정목과 통나무의자 4개가 설치되어 있고 마루금은 좌측방향으로 진행하여야 하지만 이지점에서 종료하고 우측편 임도기을 이용하여 용현2리 보원사지로 하산한다.

 

쉼터 안부 이정표 : 개심사입구 0.7km, 전망대 1.0km, 보우너사지 1.0km, 마애여래삼존상 2.5Km 

금북정맥 마루금은 이지점에서 좌측방향으로 90도를 꺽어서  좌측 임도방향으로 내려서야 하지만 이지점에서 금북정맥 마루금 13구간을 마무리하고는 보원사지로 하산한다.

 

 

보원사지방향의 나무계단의 모습

 

현위치 :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48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龍賢里)에 위치하며 백제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법통을 이어왔던 절의 터. 사적 제316호. 절에 대한 역사는 없다.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

보물 제105호. 높이 470㎝. 8각원당형의 부도로 기단부가 좁고 높아 전체적으로 세장(細長)한 구성을 보여준다. 기단부의 하대석은 8각이며 안상(眼象) 안에 다양한 자세의 사자상이 양각되어 있다. 중대석의 받침은 원형으로 구름에 싸여 있는 용이 조각되어 있는데 도식적인 표현이 보인다. 중대석은 장식이 없는 8각기둥이며, 상대석에는 앙련(仰蓮)이 양각되어 있다. 8각의 탑신석은 중대석처럼 좁고 높으며, 사천왕상·문비(門扉)·인물상이 돌아가며 얕은 부조로 양각되어 있다. 옥개석은 큰 편으로 귀꽃이 장식되어 있다. 탄문은 900년(효공왕 4)에 출생하고 975년(광종 26)에 입적한 화엄종 계통의 승려이다. 부도는 탑비(보물 제106호)의 건립이 978년인 것으로 보아 법인국사가 입적한 975~978년 사이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비슷한 시기에 조성된 경기도 여주 고달사지원종대사혜진탑(977)에 비해 전체적인 조형이 섬약하다

 

서산 보은사지 5층석탑

보물 제104호. 높이 900㎝. 기단은 2중기단으로 하층에는 사자상이, 상층에는 팔부중상(八部衆像)이 얕은 부조로 조각되어 있다. 상층기단 위에는 별석(別石)을 끼워 5층의 탑신부(塔身部)를 받치고 있으며, 초층(初層) 탑신에는 우주(隅柱)와 문비가 모각되어 있다. 2층 이상의 탑신은 체감이 완만하며, 옥개석은 넓고 끝이 반전되어 백제석탑의 단면을 볼 수 있다. 상륜부에는 찰주(擦柱)가 남아 있으나 부재는 노반(露盤)만 남아 있다. 탑의 형식으로 보아 고려 초기에 보원사가 중건될 때 세워진 것으로 추정된다.

 

 

보원사지출토철불좌상

높이 257㎝. 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거불(巨佛)로 두 손이 결실되었으나 항마촉지인을 취했던 것으로 보인다. 머리는 나발(螺髮)이고, 넓적한 얼굴에 눈이 가늘고 길며 코와 입이 유난히 작고, 아래턱을 안으로 당기고 앉은 표정이 인상적이다. 법의는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입었는데, 얇고 몸에 밀착되어 몸의 굴곡이 드러나 보인다. 옷주름은 선각(線刻)에 가까운 얕은 층단형으로 도식적으로 처리되어 있다. 석굴암 본존상 계통을 이은 것으로 고려불상의 특징이 보이는 상이다. 이 상과 매우 흡사한 철불 2구가 국립중앙박물관에 진열되어 있는데, 강원도 원주시 소초면(所草面) 출토로 같은 장인(匠人)이나 공방(工房)의 솜씨로 보인다. 법인국사보승탑비에는 949년(광종 1)에 법인국사가 발원한 석가삼존상의 내용이 보이는데, 이 철불은 그 삼존상의 본존상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고려초의 조각사 연구에서 중요한 상이다.

 

높이 150㎝. 다른 철불들과 달리 석굴암 본존상과 양식적으로 깊은 관련을 보여 주목되는 상이다. 머리는 소발이며, 얼굴은 원만한 타원형으로 양감이 있고 자연스럽다. 눈썹 부분을 층단 위에 다시 음각선을 그어 표현한 것과 옆으로 길게 치켜올라간 눈매는 통일신라 8세기 불상에서 전형적으로 볼 수 있는 표현이다. 불신(佛身)의 비례가 알맞으며 팽만감이 넘쳐서 건장해 보인다. 우견편단의 법의는 얇고 몸에 밀착되었는데, 옷주름선이 유려하며 크고 작은 2중의 주름으로 된 번파식(翻波式) 표현이 건장한 몸을 더욱 잘 드러내 보인다. 항마촉지인을 취했던 두 손은 파손되었다. 이 상의 제작시기는 이제까지 철불의 조성을 선종(禪宗)의 전개와 관련지어 9세기 이후로 생각한다든가 고려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광주춘궁리철불좌상 (廣州春宮里鐵佛坐像) 등과 비교되어 고려초의 작품으로 추정되어왔다. 그러나 양식적으로 통일신라 최성기 불상의 특징을 보여주고 있어 8세기 후반경의 상으로 추정되며 따라서 철불 조성의 시작도 8세기로 올라감을 시사해주는 중요한 불상이다.

 

보원사지 날머리지점

 

보원사지 절터의 모습

 

현 위치 :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 105번지  

서산 보원사지(瑞山 普願寺址) 사역 내에 있는 서산 보원사지 석조(瑞山普願寺址 石槽, 보물 제102호), 서산 보원사지 당간지주(瑞山 普願寺址 幢竿支柱, 보물 제103호), 서산 보원사지 오층석탑(瑞山 普願寺址 五層石塔, 보물 제104호),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탑(瑞山 普願寺址 法印國師塔, 보물 제105호) 및 서산 보원사지 법인국사 탑비(瑞山 普願寺址 法印國師 塔碑, 보물 제106호)로 인해 보원사(普願寺)는 통일 신라 말에 창건되어 고려 시대 융성하였던 사찰로 인식되어 왔다.

그런데 1968년 사역 내에서 6세기 중반 백제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보원사지 출토 금동여래입상(普願寺址 出土 金銅如來立像)이 수습되어 보원사의 창건 연대가 백제 시대일 수도 있다는 가능성이 제기되었다.

 

문헌상에서 확인되는 보원사에 관한 최초 기록은 장흥 보림사(長興寶林寺)의 보조선사 체징(體澄)의 탑비에 나타나는데, 827(흥덕왕 2) 체징이 보원사에서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고 적혀 있다.

 

904(효공왕 8) 최치원(崔致遠)[857~?]법장화상전(法藏和尙傳)의 주에서는 웅주가야협 보원사를 화엄 10(華嚴十刹)에 포함하고 있다. 고려 시대에는 975(광종 26)에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이 입적하였고, 보원사 계단에서 경율 시험을 봤다는 1036(정종 2) 기록이 전한다.

 

1530(중종 25)에 편찬된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보원사가 상왕산에 있다고 기록되어 있어 조선 시대까지 사세가 계속 유지된 듯하며, 당시 만들어진 경판이 인근 개심사(開心寺)에 소장되어 있다. 임진왜란 이후에는 보원사가 강당사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보원사의 법당은 2층 고각에 부도전과 나한전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후 19세기 후반에 사세가 기울게 되었고, 일제 강점기에 폐사지로 남게 되었다.

 

국보 제84호인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瑞山 龍賢里 磨崖如來三尊像)으로부터 용현계곡을 따라 남쪽으로 약 1.2가면 서산 보원사지에 이르게 된다. 사역은 계곡 사이의 평탄 대지에 해당된다.

 

2005년 사적지 정비를 위한 조사를 실시하여 보원사지 종합 정비 기본 계획을 수립하고, 2006년부터 2017년까지 12년에 걸쳐 발굴 조사를 실시하게 되었다. 1~5차 발굴 조사를 통해 고려 시대~조선 시대의 건물 터와 유물들이 확인되었으며, 현재는 서산시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에서 6차 발굴 조사를 실시하고 있다.

보원사지 석조 안내판의 모습

 

보원사지 석조

사적 제316호. 절에 대한 역사는 전혀 전하지 않으며 현재 넓은 절터만이 있다. 북위(北魏) 양식을 띤 6세기 중엽경의 금동불입상과 8세기 후반으로 추정되는 금동불입상이 출토되었다. 현재 절터에는 5층석탑(보물 제104호)·당간지주(보물 제103호)·석조(石槽:보물 제102호)·법인국사보승탑(法印國師寶乘塔:보물 제105호)·법인국사보승탑비(法印國師寶乘塔碑:보물 제106호)가 남아 있다. 또한 일제강점기에 철불 1구가 이곳에서 박물관으로 옮겨졌고, 현재 국립중앙박물관에 있는, 통일신라 8세기로 추정되고 있는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의 철불좌상도 충청남도 서산시 운산면 절터에서 옮겨온 것으로 전하고 있어 이곳에서 출토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국보 제84호 서산마애삼존불상 표시석

 

서산마애삼존불상

 

서산마애삼존불상

 

서산마애삼존불상

 

서산마애삼존불상

충남 서산시 운산면 용현리에 자리잡고 있는 서산마애삼존불상은 중앙에 석가여래 입상을 기준으로 왼쪽에 제화갈라보살 입상, 오른쪽에 미륵반가사유상이 조각되어 있는 백제 후기의 마애불이다. 마애불은 자연 암석에 선을 새겨 넣거나 도톰하게 솟아오르도록 다듬어 만든 불상을 말한다. 삼존불은 6~7세기 동북 아시아에서 유행한 보편적 형식이지만 보주(寶珠)를 들고 있는 입상 보살과 반가 보살이 함께 새겨진 것은 중국이나 일본, 고구려, 신라에서도 볼 수 없는 독특한 형식이다. 이 불상은 '백제의 미소'라 불리는 2.8미터의 거대한 불상으로 단정하고 유연하게 조각된 솜씨에서 더하지도 덜하지도 않은 중용의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다. 서산마애삼존불상이 자리하고 있는 이곳 충남 서산시 운산면은 중국의 불교 문화가 태안반도를 거쳐 백제의 수도인 부여로 가던 길목이었다. 6세기 당시 불교 문화가 크게 융성하던 곳으로 서산마애삼존불상이 그 증거라고 볼 수 있다. 보통 백제의 불상은 균형미가 뛰어나고 단아한 느낌이 드는 귀족 성향의 불상과 온화하면서도 위엄을 잃지 않는 서민적인 불상으로 나눌 수 있는데, 서민적인 불상의 대표적인 예가 서산마애삼존불상이라고 하겠다. (서산마애삼존불상 안내문 내용 인용)

 

 석가여래가 미소

내포 땅엔 어디에나 돌미륵부처가 널려 있다. 길가에 배시시 웃으며 서 있다.

낡은 민가 귀퉁이에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헌헌대장부 얼굴로 우뚝 서 있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다. 누가 말 걸어주지 않아도 괜찮다.

그렇게 천년만년 산처럼 바다처럼 서 있다. 

 

일연 스님은 삼국유사에서 경주남산을 ‘절집들이 하늘의 별처럼 널려 있고, 탑들은 기러기

떼가 날아가는 것 같이 줄지어 있다(寺寺星張 塔塔雁行)’고 표현했다. 경주남산 40여 골짜기엔

 절터 122곳, 돌부처 57개, 돌탑 64개, 왕릉 13곳, 고분 37곳이 남아 있다.

내포 가야산 주변의 절집과 탑들도 경주남산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

하지만 대부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하나같이 무성한 잡초와 나무에 묻혀 있다.

망한 나라 백제의 운명과 닮았다. ‘목 없는 불상’이나 무너진 탑조차 찾아볼 수 없다.

주춧돌 등 땅바닥의 흔적만 겨우 남아 있을 뿐이다.

 

[나본들고개~한티고개]

지난구간에 이어 다시 구45번 국도 2차선 산장모텔앞 공터에 도착하여 산행준비 및 몇장의 사진을 찍고는 좌측편 능선으로 진행한다. 

초반부터 잡풀과 잡목으로 인하여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고, 잡풀이 무성한곳을 통과하니 임도길과 민가가 정면으로 나온다. 임도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약간 이동하다가 임도길 버리고 좌측방향 밤나무 밭으로 진행한다.

 

밤나무밭을 통과하면 좌측편으로 향토집과 콘테이너가 나오고 콘테이너 옆으로 올라 한차례 밀어 올리면 능선 갈림길에 도착하고 능선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다시 한번더 진행하면  갈산지맥이 분기하는 뒷산에 도착한다., 뒷산정상부에는 조망이 좋고 지난 구간을 조망하고는 다시 뒤산갈림길에 도착하여 좌측방향 급경사 내림길을 내려서면  넓은 공터 안부에 정자, 화장실, 천주교 순교의 고개길인 한티고개에 도착한다.

 

[한티고개~가야봉]

뒷산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급경사지을 내려서면 402봉과 385봉으로 고도를 낮추니 한티고개가 나타난다. 한티고개 주변에는 넓은 공터와 해미순교성지길, 성지물품, 팔각정,서산 아라메길 안내판, 화장실이 설치되어 있고 마루금은 화장실 우측편 능선으로 진행한다.

한티고개에서 오늘의 최고봉인 가야봉 오름길 좌측편으로 산 하나을 완전히 뭉개버리는 공사가 한창이었다. 이업체는 채석장을 운영하는 태양석산이며  아름다운 가야산 줄기을 두동강을 내고 있는 모습이 안타까운 마음이지만 이 산객이 어떻게 하겠는가. 마루금을 이어 가면서 종종 이런 모습을 보았지만 오늘도 안타까운 마음을 달려 보면 가야봉으로 이어간다.

채석장을 떠나면서 지나온 마루금가 저멀리 서산시 해미면, 예산군 덕산면을 조망하고는 411.2봉으로 진행한다.  한티재에서 가파른 암봉을 올라 억새가 무성한 폐헬기장을 지나니 파손된 411.2봉 삼각점이 있는 봉우리에 도착한다.

 

저멀리 삼준산과 연암산 이 우뚝 솟아나 멋드러지게 조망되고 약20여분 더 진행하니 한서대학교 갈림길에 도착한다, 한서대학교로 진행하는 등로길은 잡풀과 잡목으로 희미하여 보이질 않는다. 427봉으로 진행하는 등로길 중간 중간에는 지난해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들이 등로길을 가로막고 있었고 산불이 났는지 고사목들이 간간이 등로길에 있었다.

 

470봉을 지나 485봉에 올라서니 좌측편 바로 아래에는 한서대학교가 내려다 저멀리 서산시 해미읍과 앞으로 이어 가야할 가야봉, 석문봉, 일락산이 연이어 조망되었다.  485봉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니 산불이 발생했던 지역이라 큰 소나무는 보이지 않고 등로길에 잡목이 우거져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지만 시원한 조망 때문에 어려움을 이겨내고는 가야봉으로 올라선다. 643봉에서 지나온 마루금과 덕숭산, 서산 해미방면을 조망하고는649m봉을 지나 방향을 전환하여 완만하게 오르는데 출입금지 가야산 산양삼재배 영농조합의 안내판이 보이고 잠시 후 통신시설이 있는 가야산 전위봉에 도착한다.

[가야봉~358.8삼각점]

한여름 같은 날씨속에 진행하는 마루금이 무척 힘들고 지쳐오지만 그래도 마루금 이어가야 하길래 참고 인내하며 석문봉으로 발걸음을 재촉한다. 가야산정상부는 통신시설물이 설치되어 진행하지 못하는 관계로 암봉을 우회하면서 가야산 정상 좌측편의 시설물 철조망 옆으로하여 이어간다.
 
통신 시설물의 울타리가 끝나갈 무렵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너덜지대인 바위길을 올라서면 시설물이 끝나는 지점의 암름에 오르게 되고 바위틈에 현위치 가야01-10 표지목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 암릉에 누군가 가야산 정상이라는 문구가 새겨져 있었고 앞으로 이어가야할  석문봉이 시원하게 조망되었다. 이곳에 도착하니까 지금까지 만나지 못한 등산객을 마주하고 나무테크에서 주변의 경치을 조망하는고 단풍이 물든 가을에  다시 한번더 오리라 생각하고는 계단을 내려선다.

 

나무계단을 내려서니 쉼터가 나오고 잠시후 상가리 주차장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에 도착한다. 지나온 등로이 비포장도로라고 생각하면 지금부터는 암릉지대 이지만 고속도로 수준으로 바뀌고 흥선 대원군의 부친인 남연군 이구의 묘가 있는 상가리주차장 갈림길을 두번이나 지나게 된다. 로프구간을 만나 암봉위에 올라 지나온 마루금을 바라보니 저멀리 가야산 정상과 좌측으로 원효봉이 멋지게 조망되었다.

 

암봉을 우회하여 태극기가 펄럭이느 석문봉에 도착에 도착하니 많은 등산객으로 인하여 자리을 잡고 앉을수가 없어 빨리 인증샷을 남기고는 일락산으로 진행한다. 일릭사 이정표를 따라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니 나무평상이 설치되어 있는 쉼터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는 동료 대원들을 만나고 오늘 처음오신분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씀에 먼저 보내고는 한참이나 이곳에서 기다려보지만 오시지 않는다. 다시 석문봉으로 올라가야겠다는 생각을 하는데 여유로게 내려오시는 것을 보고는 함께 일락산으로 진행한다.

 

쉼터에서 많은 시간을 보낸 관계로 시간을 단축할 요량으로 발걸음을 재촉해 보지만 함께하는 대원들께서 힘들어 하시는 바람에 천천히 진행하기로 한다.  등로가 너무 편안하고 좋아 이게 정맥길인지 아니면 둘레길이지 헷갈릴 정도입니다. 대곡리 갈림길을 지나 계속 일락사 이정표를 따라 진행을 하고 쉼터의자를 지나 조금더 내려서니 넓은 임도길인 사잇고개에 도착한다.

 

우측방향은 용현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며 바리게이트가 설치되어 있고 정맥길은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이곳에서 부터 오늘 산행의 날머리인 389봉까지는 제주올래길이나 지리산 둘레길같은 느낌인 서산 아라메길이다. 우측으로는 여태껏 같이해온 예산군 덕산면과 이별을 하고 서산시 운산면으로 접어들면서 정맥길도 서산시로 접어든다.


사잇고개에는 솟대와 김승재 시인의 '山' 이라는 시비도 세워져 있고, 그 옆으로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다. 완만하게 진행하니 수나무숲이 나오고 이곳에서 누워 삼림욕이나 하면서 지내서면 좋겠다는 생각이 문득 스쳐지나간다. 516봉을 지나 다시 오르니 정자가 설치되어 있는 일락산 정상에 도착한다. 주변에는 정상석은 없고 이정표와 휴식을 취할수 있는 의자 그리고 중앙부에 정자가 설치되어 있었다.

충남 예산군 덕산면과 서산시 해미면, 운산면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 가야산을 중심으로 한  덕산도립공원에 속하며 석문봉의 북쪽에 위치하고 있다. 주변의 산에 비해 널리 알려지지 않고 정상에도 정자하나 달랑 있는것 외는 별 특징이 없는 산으로 석문봉으로 오르는 중간지점으로 알려져 있을 뿐이다.

 

산의 북쪽에는 백제의 마지막 임금인 의자왕 8년(648년)에 혜감대사가 창건한 개심사가 있고 서쪽 계곡에는 통일신라시대에 창건한 일락사라는 비구니 도량이 자리를 잡고있다. 문화재로는 개심사대웅보전(보물 143호)과 주변에 백제의 미소로 알려진 서산마애삼존불상, 보원사지, 보원사 5층석탑이 있다일락산 정상에서 휴식을 취하면서 떡한조각 먹고는 다시 359봉 삼각점이 있는곳으로 진행한다.

 

일락산에서 우측방향으로 평탄한 등로길로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고 직진으로 올라 내려 진행하면 황락리방면 삼거리인 넓은 임도길이 나온다. 이곳까지는 차량의 통행이 가능하여 이정목 옆에 미니승합차량을 주차되어 있었다. 황락리 삼거리 임도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었고 마루금은 좌측방향 직진으로 진행한다.

 

차단기가 설치되어 있는곳에서 직진으로 진행하면 전망대 삼거리에 도착한다. 전망대는 마루금에서 50m 정도 떨어진능선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망대는 육각정자로 되어 있다.전망대에 올라서면 조망이 있을것 같은데 주변 나무에 가려 조망이 전혀없다.  다시 삼거리로 내려와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니 등로길이 너무 잘 정비되어 있어 편안하게 개심사입구에 도착한다.

 

개심사입구 주변에는 표지목이 세워져 있으며,  버섯모양의 쉼터가 있고, 아라메길 안내판과 내포문화숲길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개심사입구 갈림길에서 우측방향 넓은 임도길로 진행하면 좌측편으로 삼각점이 잇는데 유심히 관찰하지 못하면 그냥 지나칠수밖에 없는 위치에 있다. 358.8봉 삼각점을 확인하고는 다시 임도길로 내려 쉼터삼거리에서 금북정맥 13구간 마루금을 종료한다. 다음 구간(쉼터 이정표 뒤편으로 진행)을 확인하고는 우측방향 임도길로 내려서면 용현2리 보원사지터 입구에 도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