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 7구간 덕곡재에서 수리치재까지 산행후기

2014. 5. 15. 21:05★ 9 정맥/- 3. 금북[완료]

 

금북정맥 7구간(덕고개(머그네미)~수리치재)

 

산 행 지 : 충남 공주시 유구읍, 예산군 대술면, 신양면, 청양군 운곡면,국사봉. 서반봉. 천종산.

              장학산. 명우산. 극정봉(489M)금북정맥 7구간

산행일시 : 2014년 5월17일(토요 당일산행)

산행코스 : 머그네미-덕곡재-354봉-극정봉-400봉- 명우산- 절대봉-불운리고개-340봉-서재-불모골고

               개-서남당고개-벌목지대-260봉-292봉-차동고개-330봉-353봉-361봉-고재사거리-342봉-

               374봉-장혁산-성황당고개-천종산-400봉-야광고개-349봉-서반봉-388봉-415봉-사점미

               재-국사봉-440봉(십자가)-수리치재-수리치성지-주차장=============(6시간30분)

산행시간 : 09:45~17:05(7시간20 분, 식사 및 휴식포함)

산행거리 : 약 23.6Km(정맥 19.3Km, 접속구간 4.3Km), GPS 25.2Km

산행날씨 : 맑음

산행인원 : 40명

산행코스 및 구간거리 : 덕곡리 덕곡교-2.2/2.7km(40분)-오지재(소거리재)-1/1.1km(30분)-극정봉-

                                2.35/2.7km(40분)-절대봉-3.65/4.1km(1시간10분)-차령고개-4.2/4.8km(1시간

                                10분)-장학산-1.45/1.6km(30분)-천종산-3.45/3.9km(1시간10분)-국사봉-

                                0.85/0.9km(20분)-수리치-1.45/1.8km(30분)-주차장=20.52/23.6km(시간40분)

구간

거리 (km)

출발시간

소요시간

비고

   덕곡리 

-

  09:45

충남 공주시 정안면 유구읍 덕곡리마을 입구 버스 정류장, 39번 국도,표지석

  오지재

2.7

  10:22

37분

소거리재, 머그네미마을에서 소거리마을로 잇는 고개

  극정봉

  1.1

  10:44

22분

해발421m,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과 예산군 대술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

  절대봉

  2.7

  11:27

 43분 

해발353m 

  차동고개

  4.1

  12:35

 1시간8분

해발215m, 32번 국도, 충남 예산군 신양면과 공주시 유구읍 경계에 있는 고개

  장학산

  4.8

  14:19

43분

해발381m

  천종산

  1.6

  14:52

33분

해발409m,  천종산은 공주시 유구읍과 신풍면 그리고 청양군 운곡면의 경계

  국사봉

  3.9

  16:19

1시간27분

해발489m, 충청남도 신풍면 조평리에 전해 내려오는 국사봉에 깃든 지명

  수리치

  0.9

  16:46

27분 

나무의자 두개, 수리치골 갈림길 

마루금 거리

19.3

 

7시간4분 

 

접속 거리

  4.3

 

 

 

총 거리

23.6

 

 

 

GPS거리

25.5

 

 

 

 

 [금북정맥]

백두산에서 지리산을 향하여 줄기차게 달려가던 백두대간이 속리산 천왕봉에서 가지를 쳐 안성의 칠장산까지 한강과 금강의 물줄기를 가르며 이어간 한남금북정맥이 안성 칠장산에서 다시 가지를 쳐 금북정맥과 한남정맥으로 가른다. 금북정맥은 경기도 안성의 칠장산(491.2m)에서 충남 태안의 태안반도 안흥진까지 금강의 윗쪽에서 물길을 모으는 산줄기로 거리는 약 267km에 달한다. 산경표에서는 칠현산에서 분기한다고 되어 있지만 칠현산군에 칠장산도 포함되고 실제 도상거리도 2km밖에 되지 않은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에 산경표와 현대의 지리가 맞아 떨어지는 곳이다.

 

금북정맥은 분기점 칠장산에서 칠현산 - 서운산 - 성거산 - 국사봉- 광덕산 - 백월산에서 방향을 전환하여 오서산 - 보개산 - 수덕산 - 가야산 - 성왕산 - 백화산 - 안흥진으로 약 267km를 이어간다. 금북정맥이 금강 북쪽의 분수령이 되려면 금강하구로 향하여야 하는데 백월산에서 방향을 틀어 태안 앞바다 안흥진으로 향하는 바람에 금남정맥이 금강하구로 향하지 않고 부여 구드레나루로 향한 것 같이 금강을 수계로 하는 남북의 산줄기 명칭에 논란이 있다. 산경표 원작자의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이는 여러 정맥 중에서 특이한 정맥에 속한다. 하여 산자분수령의 원리를 적용하여 정확하게 물길의 흐름을 구분하려 하는 사람들은 이 맥의 이름을 새로 지어 부르려 하지만 그것보다는 산경표상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것이 옳지 않을까.

 

백두대간은 험한 산줄기가 굳건한 성이되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각 나라의 경계선이었던데 비해 한남금북정맥의 주변은 백제, 고구려, 신라의 각축장이되었다. 한편 금북정맥은 금강의 수계를 형성하면서 조선시대에 차령을 중심으로 그 문화적 교류가 남북으로 나누어 지다 호서지방으로 접어들면서 해양문화와 육지문화가 서로 교류하고 외국의 문물까지 교역하는 길이 된다. 서산 마애삼존불과 태안 마애삼존불은 중국 불교 문화의 영향을 받아 그 길목에 형성된 문화들이다. 또한 천주교의 유입이 이곳 안흥진을 경유하여 들어왔기 때문에 금북정맥 인근에는 순교지가 많다.

 

 

* 종주에 필요한 지형도 도엽명;

- 1:50,000 지도 : 근흥, 만리포, 서산, 당진, 홍성, 청양, 보령, 예산, 전의, 평택, 진천, 안성 (12매)
- 1:25,000 지도 : 근흥, 소원, 태안, 서산, 운산, 해미, 덕산, 홍성, 라원, 청양, 대흥, 유구, 대술, 광덕,

전의, 의당, 천안, 병천, 서운, 만승, 죽산 (21매)

 

* 금북정맥 대표 산 (도상거리 : 약 267km)

* 칠장산-칠현산-덕성산-무이산-서운산-성거산-태조산-경암산-고려산-국사봉-봉수산-천방산-극정봉-장학산-국사봉-금자봉-문박산-천마봉-오봉산-백월산-오서산-남산-일월산-홍동산-수덕산-뒷산-가야산-일락산-상왕산-동암산-은봉산-간대산-성상산-금강산-장군산-물래산-오석산-백화산-퇴비산-구수산-전막산-지령산-안흥진

 

금북정맥 개략도

 

금북정맥

한남 금북정맥의 끝인 경기도 안성시 칠장산(491m)에서 태안반도의 안흥진(安興鎭)까지 금강의 서북쪽을 지나는 산줄기로 칠장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칠현산(516m), 덕성산,서운산, 성거산(579m), 태조산, 국사봉, 봉수산 등 충남을 가로질러 청양의 백월산(395m)에 이르고 여기에서 다시 서북으로 뻗어 오서산(791m)·보개산(274m), 일월산(395m), 수덕산(495m), 가야산(678m)에 이르러 다시 서쪽으로 뻗어 성왕산 오석산, 백화산, 오석산, 지령산을 거친 뒤 태안반도의 끝인 안흥진에서 그 맥을 다 하는 약 280km에 달하 는 산줄기이다.

  

 

 

 

금북정맥 7구간[덕곡재-오치재-차동고개-천종산-수리치] 고도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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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어김없이 금북정맥 7구간을 이어가기 위해 상일동 집결지로 나간다. 아침날씨는 상쾌하지만 산행시 날씨가 어떠할지가 걱정이다. 상일동 육교에서 먼저온 대원들이랑 인사을 나누고는 도착하는 버스에 올라 목적지로 출발한다.

 

버스는 상일동 육교에서 중부고속도로을 거쳐 외곽순환도로상 복정역 상부 하남순환도로에서일부 대원들을 태우고는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한다. 버스는 고속도로상에 있는 휴게소에서 휴식을  하지 않고 천안논산고속도로 남천안IC에서  빠져나와 21번 국도 장존교차로에서 39번 구도를 따라 남진하다가 송악저수지옆 현대송남주유소가 있는 궁평관관농원휴게소에서 아침식사 겸 휴식을 한다.

 

궁평관관농원휴게소에서 휴식을 취하고는 39번 국도을 달려 유수읍 추계리 추계보건진료소앞 덕곡리입구의 덕곡교앞에서 하차한다. 지난번 구간에서는 이지점에서 약600m 버스로 진행하여 덕곡리 마을회관에서 하차하였지만 이번에는 이곳에서 내려 도로 따라 진행한다. 덕곡리마을회관에서 버스가 회차할수 없는 관계로 걸어서 마루금 접속지점인 유치재까지 진행한다. 

 

 

 들머리지점

지난구간에는 들머리지점을 덕곡리마을회관에서 하차하여 마루금으로 진행했지만 이번 구간에는 덕곡리마을회관앞에서 버스 회차가 불가하여 충남 공주시 정안면 유구읍 덕곡리마을 버스 정류장앞 39번 국도에서 하차 한다.39번 국도 덕곡리마을 정류장에서 덕곡리마을회관까지는 약600m  떨어져 있고 마루금 접속까지는 약2.7km이며 소요시간은 40분 예상된다.

 

 

버스에서 내려 베낭을 챙겨고 개인적으로 준비운동을 하고는 덕곡리 표지석 옆 포장도로 따라 진행한다. 포장도로 우측편으로 덕곡천이 흐르고, 잘 포장된 도로로 올라가면 우측편으로 축사가 나오고 조금 진행하면 지난구간 하차한 장소인 덕곡리 마을회관 앞에 도착한다.

 

덕곡리 마을회관에서  정면에 보이는 교량을 지나 첫번째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임도 삼거리가 나오고  다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좌측편으로 작은 계곡이 나온다.  그옆 시멘트 임도길로 진행하다가 숲속으로 들어간다.

 

덕곡리마을은 농번기라서 그런지 무척 분주해 보였다. 여기저기 논에서 묘내기가 한창이고 다른 논에서는 묘내기을 위해 논에 물을 대고 논을 깔아엎는 곳도있었다. 이런 시절에 마루금 이어간다고 이곳을 지나면 산객의 마음이 조금은 미안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숲속 들머리입구 나무에는 산악회 표지기가 몇개 달려있고 등로길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들머리을 지나니 희미하게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 버리고 좌측방향으로 급경사 능선을 한차례 밀어 올리니 사거리 안부인 마루금에 접속된다. 지난 구간에 이어 두번에 이지점을 진행하니 처음보다는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진행할수있어 좋았다.

 

39번 국도 덕곡리마을 정류장 앞에서 소거리재(사거리 안부)까지 약40여분(후미기준)이 소요 되었고. 머그네미(소거리재)에 올라서면 직진방향은 소거리로 가는 방면이고, 우측방향은 지난번 진행한 천방산방면이고, 좌측방향은 이번에진행할 극정봉구간이다.

 

소거리재예산군 대술면 이티리의 소거리마을과 공주시 유구읍 덕곡리의 머그네미마을로 잇는 고개이다. 소거리재에서 물한모금 마시고는 방향을 좌측방향으로 전환하여 진행하니 완만하게 오르막이 시작되고 경사지을 올라서면 극정봉에 도착한다.

 

 유구읍 덕곡리마을 입구의 모습

위치 : 충남 공주시 유구읍 추계리 593-6

덕곡리 마을입구 좌측편으로 마을표지석이 설치되어 있었고, 우측편에는 버스정류장도 있었다. 포장되어 있는 도로 따라 직진으로 진행하면 마루금에 접속할수있다. 덕곡리마을입구에서 마루금까지는 약2.7km이며 40분 소요된다.

 

 

덕곡리마을 표지석의 모습

 

산행시작지점인 덕곡리 버스 정류장에서 오치재까지 루트

 덕곡리마을 진입로의 모습

마을 진입로 도로 포장이 잘되어 있고 좌측편으로 작은 계곡이 있어 시원함을 느끼게 한다.

 

 축사농장을 좌측편에 두고 진행

 

 덕곡리마을회관 통과

 

 인삼재배농장 통과

덕곡리마을입구에서 진행하면 축사을 지나고 마을회관을 통과하면 우측편으로 인산재배농장이 나온다. 이곳에서 포장도로 따라 직진으로 계속하여 진행한다.

 

 덕곡리마을 논의 모습

덕곡리마을 논에는 묘내기가 한창이었고, 여기 저기에서 논에 물을 담수하느랴 열심이었다. 이곳을 지날때 조금은 미안한 마음이 들어온다. 한쪽에서 농번기에 묘내기에 열정하고 있는데 또 다른 한쪽에서는 여유로운 산행을 하고 있어니 말이다. 마을주민과 가벼운 인사을 나누고는 발걸음을 재촉하여 이곳을 벗어난다.

 

삼거리 좌측편 파란색 농가주택[덕골길 154]으로 통과

덕곡리 마을회관에서 약10여분 진행하면 삼거리가 나오고 직진방향 버리고 좌측방향 파란색 농가주택건물방면으로 진행하면 된다.

 

삼거리 좌측편 농가주택[덕골길 154번지]의 모습

 

삼거리 좌측방향으로 진행

첫번째[덕골길 154번지]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전환하고 나면 다시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다시 좌측방향으로 전환하여 계속하여 직진으로 시멘트 도로로 진행하면 숲속으로 이어진다.

 

삼거리 통과

두번째 삼거리을 통과하여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전원주택이 나오고 전원주택지을 지나면 약간 굽은다리을 지나 진행하면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들머리지점 통과

세번째 삼거리을 통과하여 진행하면 다시 갈림길이 나오고 직진으로 진행하면 시멘트도로가 끝나고 숲속길이 나온다. 숲속길로 진행하니 지난번 올라던 들머리지점이 나오고 한차례 밀어 올리니 소거리재에 도착한다.

 

소거리재

39번 국도 덕곡리마을입구 버스 정류장에서  소거리재까지 약40여분(후미기준)이 소요되었다. 머그네미에서 올라서면 직진으로 소거리로 가는 방면이고, 우측방향은 지난구간인 천방산방면이다. 오늘 진행할 구간은 좌측방향 극정봉방면이다.

 

소거리재 이정표 : 천방산 2.9km, 극정봉 1.0km, 머그네미 1.2km, 소거리 1.2km

 

소거리재(오지재)

소고리재에서 극정봉으로 오름길 좌측편으로 아크릴로 만든 이정표가 있어 사진에 담아본다. 머그네미는 오동나무가 많은 골짜기라 하여 유래된 지명이며, 과거에는 오동나무를 머그나무라고도 했다 한다.

 

완만하게 진행하는 등로길의 모습

 

극정봉 정상부

극정봉 정상에는 정상석은 없고 삼각점 안내판 아래에 준,희님의 시그널이 부착되어 있었다.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 덕곡리 에 있는 산.
옛날에 홍길동이 이 부근에서 무술을 익힐 때 금계산에서 활을 쏘고 그 화살보다 빨리 말을 달려 서쪽에 있는 두루봉에서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찾다가 앞산 봉우리에 올라와서도 화살이 안 보여 걱정을 하였다하여
걱정봉이라 불렀다고 한다. 현재는 극정봉
이라 부른다.
또 다른 설은 홍길동과 홍길동 누이에 관한 이야기로, 홍길동과 홍길동 누이가 목숨을 건 내기를 하였는 데 홍길동은 쇠신을 신고 소를 몰고 한양을 다녀오는 것이었고 누이는 홍길동이 돌아오기 전에 금계산에 산성을 쌓는 내기였다. 홍길동의 어머니는 딸이 성을 다 쌓도록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극정봉에 올라 걱정을 하였다고 하여 걱정봉
이라 하였다고 한다.
극정봉은 높이가 424m이며, 북으로는 천방산[465m], 봉수산[535.2m]과 연결되며 남으로는 설대봉, 차령고개와 연결되어 있다. 이 봉우리 및 산들이 예산군 대술면과 공주시 유구읍의 경계를 이루는데 이곳은 예산군 남부 지역과 공주시 일부 지역에 나타나는 호상편마암계열의 암질이 주를 이루고 있다. 동쪽 계곡에서 흐르는 하천들은 유구천
으로 유입되며, 서쪽 계곡으로 흐르는 하천은 화산천으로 흘러든다.

 

극정봉 삼각점(예산 24, 1991 복구)

 

극정봉(極頂峰, 해발 424.0m)

충청남도 공주시 유구읍과 예산군 대술면의 경계에 위치한 산으로 북으로 천방산과 봉수산과 연결되며 남으로는 설대봉과 차동고개와 연결되어 있다. 이곳은 예산 남부지역과 공주일부 지역에서 나타나는 호상편마암 계열의 암질이 주로 이루고 있으며 동쪽계곡으로  흐르는 물은 유구천으로 흘러들며 서쪽 계곡의 물은 화산천으로 흘러든다. 

 

옛날에 홍길동이 이 부근에서 무술을 익힐 때 금계산에서 활을 쏘고 그 화살보다 빨리 말을 달려 서쪽에 있는 두루봉에서 화살이 날아오는 것을 찾다가 앞산 봉우리에 올라와서도 화살이 안보여 걱정을 하였다하여 걱정봉이라 불렸다고 하는데 세월이 흘러 변음이 되어 지금은 극정봉이라 부른다.

 

또 다른 설은 홍길동과 홍길동 누이에 관한 이야기로 홍길동과 홍길동 누이가 목숨을건 내기를 하였는데 홍길동은 쇠신을 신고 소를 몰고 한양으로 다녀오는 것이었고,누이는 홍길동이 돌아오기 전에 금계산에 산성을 쌓는 내기였다.  홍길동의 어머니는 딸이 성을 다 쌓도록 아들이 돌아오지 않자 극정봉에 올라 걱정을 하였다고 하여 걱정보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

극정봉 출발하면서 뒤돌아본 모습     
극정봉에서 우측방향 급경사지을 내려서면 편안한 마루금 능선이 나오고, 무명봉 몇개을 넘어서면 명우산 정상에 도착한다. 명우산 정상부에는 정상석은 없고 표지기가 나무에 붙혀있었다. 

 

명우산에서 완만하게 진행하몀ㄴ 절대봉에 도착하고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절대봉 바로 아래에 동굴이 있었다. 동굴을 관람하고는 급경사지을 내려섰다 오르니 340봉에 도착하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니 벌목지대가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우회하여 진행하니 임도길에 도착한다.

 

좌측편 임도 끝부분에 하얀 시설물이 보여 찾아보니 성모마리아상이 있는 소규모 개인 공원묘지가 있었고
마루금은 임도길에서 우측편 능선으로 오르면 묘지가 나온다. 완만하게 마루금을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방향 버리고 우측편으로 진행하면 하면 294.2봉 삼각점이 있는곳에 도착한다.

 

294.2봉 삼각점이 있는곳에서 내려서면 저멀리 차량소리가 들려오고 차동고개에 다왔다는 안도감도 잠시 차동고개로 내려서는 등로길이 위험하게도 급경사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차동고개에 내려서니 회장님이 막걸리와 식수 그리고 덕을 제공해 주신다. 이곳에서 간단하게 음식을 먹고는 출발한다.

급경사 내림길의 모습

극정봉에서 우측방향으로 전환하여 내려서면 급경사지가 나오고 조심하여 진행하면 명우산에 도착한다.

 

편안한 등로길의 모습

극정봉에서 내려서면 편안한 등로길이 이어지고 무명봉을 넘어서면 명우산에 도착한다.

 

무명봉 통과

 

명우산(鳴牛山, 해발368m )

공주 유구읍과 예산군 대술면의 경계를 타던 마루금이 예산군 신양면으로 넘어가는 3면 경계봉이다. 공주시 유구읍 명곡리에 있는 산으로 소가 우는 모습을 한 형상처럼 보이는 산이라고 하여 鳴牛山으로 부른다. 명우산의 남쪽으로는 절대봉과 국사봉이 있으며, 북쪽은 극정봉과 이어지고 있다. 동쪽으로는 유구천이 흐르고 있으며,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좁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다. 동쪽의 유구천을 따라 39번 국도가 지나가고 있다.

 

명우산 정상에서 인증샷

명우산공주시 유구읍과 예산군 신양면·대술면의 경계에 위치해 있는 산이다.

명우산의 동쪽으로 명곡리가 위치해 있는데, 공주시의 북부, 금강의 이북 지역 대부분과 같이 산지로 둘러싸여 있어 폐쇄적이며 평야의 발달이 미약하다.

유구천의 소지류에 의한 충적지에서 일부 논농사가 이루어지고 있다. 동쪽 유구천을 따라 국도 39호선이 지나고 있다.

 

마루금에서 유구읍 명곡리 명곡저수지와 동대말마을이 보인다

무명봉 통과

절대봉(해발353m)

명우산에서 완만하게 무명봉 두개을 넘어서면 절대봉에 도착한다. 왜 이곳을 절대봉으로 지명했는지 알수가 없다.

 

절대봉에서 인증샷

 

동굴의 모습

절대봉 바로 아래에 있는 동굴인데 비바람을 피할수 있을 정도가 넓은 굴이었다. 절대봉에서 경사지을 내려섰다가 오르면 340봉에 도착한다.

 

편안한 등로길의 모습

절대봉에서 내려서면 편안한 등로길이 이어진다.

 

340봉 통과

 

340봉 이정표

 

우측편으로 저수지 조망

 

벌목지대 우측편으로 진행

 

임도길 통과

벌목지대에서 우회하여 진행하면 임도길이 나오고 좌측편으로 성모마리아상이 보인다. 마루금은 임도 우측편 능선으로 진행하면 잘 정돈된 묘지가 나오고 조금더 진행하면 294.2봉에 도착한다.

 

묘지 통과

 

안부 통과

 

저수지 조망

 

갈림길 통과

 

294.2봉의 모습

 

294.2봉 삼각점(예산 427)

 

294.2봉 시그널

 

묘지통과

294.2봉에서 내려서면 차례로 묘지가 나오고 바로 아래에 차령고개인데 등로길이 급경사지라 조심하여 내려서야 한다.

 

 차동고개

충남 예산군 신양면과 공주시 유구읍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예산 남동쪽 11km, 공주 북서쪽 22km 지점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차유령(車瑜岺)으로 기록되어 있고 현지에서는 차동고개라 부른다. 남금강(南錦江)의 지류인 유구천과 북서류하는 무한천이 이곳에서 발원하는 두 하천의 분수령이다.

차동고개의 휴계소도 한 때는 번창했을 것 같은데..이 고개 아래도 30번 대전-당진간 고속국도가 뚫리는 바람에 지금은 차량통행도 줄어들어 한적하기만 하다.

차동고개의 전설

옛 공주군과 예산군의 경계지에 차동고개가 있다.

아주 먼 옛날 이 고개의 불왕골에 차서방이 살았다.

그는 홀어머니를 정성껏 모시고 사는 효자였다. 하루는 멀쩡하던 어머니가 병이 들어 눕게 되었다.

가난한 차서방은 어머니의 약값을 마련하기 위해 지금의 차동고개에 가서 나무를 하였다.

 그는 열심히 나무를 해서 장에 가지고 가서 팔았다. 매일 같이 나무를 해서 팔았지만 약값을 마련하기엔 까마득하였다.

그러던 중 나무를 하던 차서방은 산 속에서 지쳐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진 채 잠이 든 차서방의 꿈에 할아버지가 나타나 “네가 지금 있는 곳에서 동쪽으로 열 걸음을 가면 산삼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달여 어머니에게 드리면 나을 것이다.”라고 말하였다. 꿈에서 깬 차서방은 노인이 알려준 곳에서 산삼을 캐어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정성을 다해 산삼을 달인 뒤 그것을 어머니에게 먹였다. 산삼을 먹은 어머니는 병이 씻은 듯이 나아 건강을 되찾았다.

이후 이 고개를 차서방이 동쪽에서 산삼을 얻은 고개라 하여 ‘차동고개’라고 부른다.

차동고개(해발215m)

위치 : 충남 예산군 신양면 차동리 42-4

충남 예산군 신양면과 공주시 유구읍 경계에 있는 고개로 예산 남동쪽 11km, 공주 북서쪽 22km 지점으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차유령(車瑜岺)으로 기록되어 있고 현지에서는 차동고개라 부른다.
남금강(南錦江)의 지류인 유구천과 북서류하는 무한천이 이곳에서 발원하는 두 하천의 분수령이다.

 

차동고개에는 옛날부터 전해오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아주 먼 옛날에 이 곳 불왕골에 차서방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가난하여 늙으신 홀어머니를 편안하게 모시지는 못했지만 효성이 지극하여 어머님이 원하는 일이라면 무엇이든지 해드리는 효자였다.

하루는 건강한 어머님이 갑자기 몸져눕게 되어 차서방은 마치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았다.

그도 그럴 것이 차서방은 돈이 없어서 남들처럼 약을 쓸 수도 없는 처지였기 때문이다. 이 일을 어떻게 해야 할까 고민하던 끝에 별다른 도리가 없어 이튿날부터 지금 차동고개에 가서 나무를 하여 장에서 팔아 어머님 약을 살 돈을 마련하기 시작했다. 차서방은 매일 자기 몸이 지치는 줄도 모르고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무를 해 팔았다. 그러나 사람의 역량에는 한도가 있는지라, 어느 날 어머님을 낫게 해 드려야겠다는 집념에 지친 몸을 끌고 산에 올라가 나무를 하다가 그만 쓰러지고 말았다. 쓰러져 꿈을 꾸니 하얀 할아버지가 나타나 `지금 네가 있는 곳에서 동쪽으로 열 발자국을 가면 산삼이 있을 것이니, 그것을 캐다 어머님께 달여 드리면 나을 것이다` 라고 노인이 말하는 것이었다. 그는 깜짝 놀라 꿈에서 깨어나 꿈속에서 본 할아버지가 말한 대로 발자국을 세어 동쪽으로 가 보니 정말 커다란 산삼이 있는 것이었다.

산삼을 캐 가지고 집에 돌아와 정성껏 달여 어머님께 드리니 언제 아팠느냐는 듯이 병환이 나았다 한다. 이 일이 있은 뒤 이 고개를 차서방이 산삼을 얻은 고개라 하여 차동 고개라 부른다 한다.

 

차동고개 휴게소에 있는 이정석의 모습

차동고개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하고는 32번 국도을 무단으로 횡단하여 공주시 유구읍 입간판이곳에서 들머리을 잡아 진행한다. 차령고개에서 약5여분 진행하니 우측편으로 대전-당진 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계속하여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곳을 올라서니 330봉에 도착한다.

 

330봉에서 완만하게 무명봉 몇개을 넘어 내려서면 고재고개에 도착하고 시 임도길을 지나니 곧 벌목지대가 나타나고 벌목지대 정상부에 오르면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정맥길은 좌측 임도로 진행을 한다.

 
임도길 좌측편으로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고 갈림길에서 우측편 경사지을 오르면 장학사 삼거리에 도착한다. 장학산 정상부는 이곳에서 좌측방향으로 조금 들어가면 표지기가 설치되어 있는곳에 도착한다.
장학산 삼거리로 복귀하여 숲속길을 걸어 내려섰다가 오르면 벌목지대가 보이고 우측편으로 노동리마을이 조망된다, 잠시후 성황당 고개에 도착하며 고개에는 성황당의 흔적은 없고 나무 한그루가 성황당고개을 지키고 있었다. 성황당고개을 통과하여 약18여분 짐행하니 천종산정상에 도착한다. 

천종산에서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직진 등로길이 선명하여 알바하기 쉬운 지점이다. 마루금은 곳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된다. 갈림길에서 완만하게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추광리마을이 조망되고 야광고개에 도착한다. 야광고개에서 경사지을 올라서면 서반봉에 도착한다.

 

서반봉에는 표지기만 설치되어 있고 정상석과 조망능 없었다. 서방봉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암릉지대가 나오고 올랐다가 내려서면 사점이고개에 도착한다.

 

사점이고개에서 직진으로 진행하여 오르면  헬기장이 나오고 잠시후 오늘 산행에서 최고봉인 국사봉정상에 토착하게 된다.  국사봉(489.5m)정상에는 삼각점과 준희님의 표지기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국사봉에서 우측방향 경사지을 내려섰다 오르면  십자가 탑봉에 도착한다.

 

십자가가 설치되어 있다 봉우리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버리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급경사지가 나온다. 급경사을 지나면 완만한 등로가 이어지는데 좌측편으로 또 하나의 동굴이 나오고 계속하여 진행하면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수리치에 도착한다. 수리치에서 금북정맥 7구간 산행을 마치고 수리치골성지방향으로 하산하여 산악회 본부가 설치되어 있는 주차장에서

산행을 종료한다.


 

차동고개(해발215m)

충남 예산군 신양면과 공주시 유구읍의 경계에 있는 높이 215m의 고개로 동국여지승람에는 차유령으로 기록되어 있으며 금강의 지류인 유구천과 무한천이 이곳에서 발원하여 두 하천의 분수령이 된다.

 

차령고개에서 바라본 들머리

공주시 유구읍(維鳩邑)은 임진왜란때 명나라 구원병의 장수 이여송이 이 땅에 진군했다가 유구의 지세가 큰나라도 위협할 장군출생형임을 알고 이를 막기위해 유구리 뒷산을 끊었는데 이때 땅속에서 세 마리의 금빛 비둘기가 피를 흘리며 날아갔다. 이후 전염병이 퍼져 수많은 군졸들이 죽어가 인근 고승을 찾아가 치유방법을 묻자 이곳 지명을 유구라 고쳐부르라 해서 바 유(維) 비둘기 구(鳩)라고지명을 고쳤더니  모두 말끔히 나았다는 유래를 가지고 있다.

 

유구읍은.. 동쪽은 정안면,사곡면, 북쪽은 아산시, 서쪽은 예산군, 남쪽은 신풍면에 접한다. 1995년 3월 면에서 읍으로 승격되었다.
금북정맥의 영향으로 대부분의 지역이 해발고도 100∼500m의 산지를 이루며, 읍의 중앙을 유구천이 흐른다. 이러한 지형조건 때문에 유구천 유역에 협소한 평야지대가 발달하였으며, 읍의 대부분이 임야지대로 남아 있다.
면적은 101㎢, 인구 10,078명에 택시가 13대나 된다고 한다.

주요 농산물은 쌀·보리 외에 고랭지 수박·마늘·고추 등이며, 예산군과 인접하여 사과재배 농가가 많다. 공주∼예산 간 국도가 지나며, 유구∼온양으로 연결되는 39번국도가 교차한다. 문화재로는 고간원지(叩諫院址:충남기념물 51), 신영리 사지, 입석리 선돌 등이 있다.

 

차동고개에 있는 이정판의 모습

 

 대전~당진간 고속도로

차령고개에서 약5여분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대전~당진간 고속도로을 조망할수 있고 차동터널 상부 마루금을  지난다.

당진영덕고속도로(唐津盈德高速道路, 고속국도 제30호선)는 충청남도 당진시를 기점으로, 경상북도 영덕군을 종점으로 하여 동서를 잇는 대한민국의 고속도로이다.

2009년 5월 28일 충청남도 당진시 ~ 대전광역시를 1시간으로 연결하는 당진대전고속도로가 개통되었고, 충청북도 청원군 ~ 경상북도 상주시를 연결하는 청주상주고속도로는 2007년 11월 28일 개통되었으며, 경상북도 상주시 ~ 영덕군 구간의 상주영덕고속도로는 현재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구간은 2015년 12월에 완공될 예정이다.

급경사지의 모습

계속하여 급경사지가 나오고 등로 옆으로 팟줄이 설치되어 있었다.

 

무명봉 통과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등로길의 모습

차령고개에서 올라서면 등로길이 계단식으로 되어있다.  대전-당진간 고속도로 상부을 통과하면 그때 부터는 급경사지가 나오고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곳을 지나면 무명봉이 나오고 다시 오르면 두번째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곳이 나온다. 무명봉 올라다가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측방향으로 전환하여 진행하면 고재고개에 도착한다.

 

길주의]직진길이 선명하여 잘못하면 알바하기 쉬운 지점이다. 마루금은 이지점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고재고개에 도착하게 된다.

 

 고재고개

공주시 유구읍 녹천리(鹿川里) 2구 고재마을과 예산군 신양면 여래미리(如來味里) 고재동마을 사람들이 왕래하던 뚜렷한 고갯길이 금북정맥 주능선을 가로지르고 있는 곳으로 고갯마루에는 옛 서낭당 돌무더기 흔적이 있다.

 

이곳 능선분기점은 공주시, 예산군, 청양군 등 충청남도의 3개 시군이 접하고 있는 곳으로 이곳에서 북쪽(북북동쪽)방향으로 뻗어있는 금북정맥 주능선(지금까지 지나온 능선)을 경계로하여 공주시와 예산군이 접하고 있고, 서쪽방향으로 318m봉을 이으며 뻗어나간 지능선을 경계로 하여서는 예산군과 청양군이 접하고 있으며 남쪽방향으로 뻗어있는 금북정맥 주능선(앞으로 가야할 능선)을 경계로 하여서는 청양군과 공주시가 접하고 있다. 따라서 이곳에서부터는 금북정맥 주능선의 오른쪽(서쪽)은 청양군 운곡면(雲谷面)이고

왼쪽(동쪽)은 공주시 유구읍(維鳩邑)이다.

 

벌목되어 있는 능선길 진행

 

 임도길 통과

고재 고개에서 벌목지대 통과하여 진행하면  임도길을 만난다. 임도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다가  갈림길을 만나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장학산정상부에 도착한다.

길주의]갈림길 통과

임도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약9여분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고 직진방향 등로길이 선명하여 알바하기 쉬운지점이다. 마루금은 우측방향으로 오르면장학산 정상에 도착한다.

 

 마루금 우측편으로 십승지의 마을 조망

공주시에서 북서쪽으로 바라보면 남북으로 10km에 걸쳐 산줄기가 뻗어있는 무성산은 마치 한 마리의 누에가 기어가는 듯이 보인다.

 

예로부터 병란, 질병, 기근등 삼재가 들지 않는 지역 열 군데를 십승지라 했는데 그중 한곳이 바로 공주시 유구 마곡 일대다. 십승지를 감싸고 있는 무성산 일대는 태화산, 국사봉등 산줄기가 겹겹이 둘러싸여 태극 모양을 이루는 특이한 지형이다.

십승지란 천지 대개벽이 일어날 때 재앙을 피하기 좋은 10군데의 지역을 말한다.‘정감록’이나‘격암유록’에 따르면 가까운 미래에 엄청난 천재지변이 일어나인간은 끔찍한 질병과 굼줄미, 추위와 더위, 공포에 시달리게 되고 대다수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함으로서 인류는 절멸의 위기에 처하게 될 것이라고 예언하고 있다.

 

그러나 십승지에 들어가는 사람은 이러한 끔찍한 재앙으로 부터 목숨을 보전하고 안락한 생활을누릴 수 있으며 자손이 끊기지 않고 후세에 까지 보존될 것이라고 하여 재난을 피하는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십승지의 정확한 위치는 책에 따라 조금씩 다르다.

십승지를 언급한 책은 (정감록), (남서고 비결), (남격암 산수 십승보길지지) , (감결), (징비록)(운기구책), (유산록) 등 60여종이 있으며 이 예언서 등은 파자(破字) 등으로 기록하여 이해하기어렵고 표현 또한 직설법이 아니 우회적으로 하여 해설하는데 어려움이 많다.

또한 이 책을 쓴 저자들의 시기가 불분명한데 당시에는 이러한 책들이 금서(禁書)였기 때문이다.

또 이러한 인쇄술이 발달하지 못한 시기에 일일이 손으로 배껴 필사본이기 때문에 쓰는 사람에 따라 실수든 의도적이든 내용을 누락 삭제하거나 첨가하여 보충하였기 때문에 똑같은 책이라도 내용이 다른 것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십승지에는 공통적인 특성이 있다. 십승지를 삼재불입지지(三災不入之地)라 하여 흉년, 전염병, 전쟁이 들어 올 수 없는 곳이라고 한다.
십승지가 위치하고 있는 지역은 태백산, 소백산, 덕유산, 가야산, 지리산 등 명산에 자리잡고
있으며, 산이 높고 험하여 외부와의 교류가 차단되어 있는 곳이다. 십승지는 외부 세계와 연결하는 통로가 대개 한 곳 밖에 없는데 물이 빠져나가는 곳으로 험한 계곡과 협곡으로 되어 있다.
또 산이 사방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가운데 공간에 수량이 풍부한 평야가 있어서 식량의
자급자족이 가능하여 1년 농사지어 3년을 먹고산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대개 십승지는 정치, 경제, 사회, 군사적으로 가치가 별로 없는 곳으로 발전이 없으며 전쟁이
 일어나도 적들의 접근이 전혀 없다.
결론적으로 십승지는 발전보다는 미래에 다가올 재앙을 피할 수 있는 최적의 장소로 피난과
자손 보존의 땅이다. 따라서 한때 난리를 피하기는 좋은 곳일지는 모르지만 여러 대를 살면서 번창하기에는 적합하지 못한 곳이다.

이러한 십승지가 있다고 하는 곳은 다음 열 곳이다.

1. 영월 정동 상류 (강원도 영월군 상동읍 연하리 일대)
2. 봉화 춘양 일대 (경북 봉화군 춘양면 석현리 일대)
3. 보은 속리 난증항 일대 (충북 보은군 내속리면과 경북 상주군 화북면 화남리 일대)
4. 공주 유구 마곡 두 강 사이 (충남 공주시 유구읍 사곡면 일대)
5. 풍기 차암 금계촌 (경북 영주시 풍기읍 금계리 일대)
6. 예천 금당동 북쪽 (경북 예천군 용궁면 일대)
7. 합천 가야산 남쪽 만수동 일대 (경북 합천군 가야면 일대)
8. 무주 무풍 북쪽 덕유산 아래 방음 (전북 무주군 무풍면 일대)
9. 부안 변산 동쪽 호암 아래 (전북 부안군 변산면 일대)
10. 남원 운봉 두류산 아래 동점촌 (전북 남원시 운봉읍 일대)

장학산 삼거리

장학산 정상부는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약5m 근거리에 있으면 마루금은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된다.

 

장학산(長鶴山, 해발381m)

장학산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조금 들어서면 소나무에 준,희님의 표지기가 설치되어 있고. 이곳에 ‘장학산’이란 이크릴판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칠수 밖에 없는 지형이었다.

길주의지점이다 삼거리 복귀하여 직진으로 내려서야 하지만 장학산정상부에서 바로 직진 등로길이 선명하여 알바하기 쉬운 지점이다.

 

장학산 정상부에서 인증샷

 

 장학산에서 성항당 가는 길의 모습

장학산을 지나 다시 편안한 길을 걷는다. 저 아래 노동리 마을이 보인다.노씨가 살았던 마을이라 하여 노동(盧洞)이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호랑이가 턱을 괴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유래된 버미터골이라 하며 마을에 불당이있다고 하여 불당골, 씀바귀가 많이나는 골짜기라 하여 유래된 씀배나무골, 안개가 많이 낀다하여 유래된 작은 앵개골과 큰 앵개골이 있으며, 발아래 보이는 마을이 옛날 노씨중에서 천석꾼이 이 마을에 살았다하여 부른다는 천석동 같다.

 

마루금 능선의 모습

장학산 삼거리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다가 한차례 밀어올리면 등로길 양옆으로 잡목이 키높이 만큼 자라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무명봉을 지나 좌측방향으로 완만하게 진행하면 서낭당고개에 도착한다.

 

서낭당에 있는 나무

 

 서낭당고개

 공주시 유구읍 노동리(蘆洞里)와 청양군 운곡면 추광리(秋光里)의 들광이마을을 연결하는 뚜렷한 고갯길이 금북정맥 주능선을 가로지르고 있는 곳으로 옛날 추광리 사람들이 유구장(유구시장)을 보기 위해 넘어 다니던 고개라고 한다.

서낭당고개을 통과후 뒤돌아본 마루금

저멀리 지나온 장학산이 조망된다.

 

무명봉 통과

 

 천종산(해발409m)

천종산은 공주시 유구읍과 신풍면 그리고 청양군 운곡면의 경계상의 천봉으로 갈라지는 봉이다. 정맥길은  좌측방향으로 방향전환하여 진행한다. 천봉산(千鳳山)이라고 부르는 천봉은 봉우리가 수없이 많은 산이라 하여 천봉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전해오는 설에 의하면 옛날에 홍길동이 무예를 익혔던 산이라고 하는데, 조선시대 때의도적 안수(安壽)가 여기에서 은거하였던 것이 그리 전해오는 것이라는 설이 있다.

 

천종산에서 인증샷

 

길주의]갈림길 통과

천종산에서 완만하게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직진방향이 완만하여 잘못하면 알바하기 쉬운지점이다. 서반봉방향은 우측방향으로 90도 전환하여 내려서면 된다.

 

안부통과

 

야광고개

공주시 신풍면 조평리 구분실 마을과 청양군 운곡면 추광리 들광이 마을을 잇는 고갯길로 공주시 신풍면 조평리에서 예산으로 이어지는 옛날에는 중요한 통행로였다 야광고개에서 완만하게 진행하면 서반봉에 도착한다. 

 

 현대에 들어서는 들광이라 불리고 있다

 마루금 안부에서 바라본 추광리의 모습

경주김씨와 나주임씨가 주류를 이루고 살고 있는 평온한 마을로 양지말, 야광, 중뜸, 갈개울 등으로 자연마을을 이루고 있으며 담배재배를 많이하고 있으며 농한기에는 삼베가공을 하여 농외소득을 올리고 있다고 한다. 

 

서반봉으로 오르는 경사지의 모습

 현대에 들어서는 들광이라 불리고 있다.

 

서반봉정상부의 모습

 

서반봉(해발 392m)

서반봉공주시 서쪽 끝에 있는 산으로 충청남도 청양군 운곡면 추광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고, 서반봉의 남쪽은 골짜기와 바로 이어지는데, 이곳에는 조선동이 자리 잡고 있다. 옥백산·억복산이라고도 불리며, 전국에서도 유명한 활석광산이 있던 산이다. 서반봉 꼭대기에는 돌로 만든 간결한 제단이 있는데,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외지 사람들이 와서 가끔 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서반봉의 남쪽 산릉에 변질수성암으로 이루어진 사점미재가 있는데, 차별침식에 의해 형성된 고개로 추측된다.

공주시 북부의 대부분은 산지로 둘러싸인 패쇄적인 지형으로 금강의 작은 지류에 의해 좁은 곡저 충적지가 형성되어 있으며, 서반봉 또한 금강이북 대부분의 산지와 같은 형태를 띠고 있다.

 

서반봉에서 인증샷

서반봉은 공주시 서쪽 끝에 있는 산으로 충청남도 청양군 운곡면 추광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서반봉의 남쪽은 골짜기와 바로 이어지는데, 이곳에는 조선동이 자리 잡고 있다.

조선동은 조평리 서북쪽 끝 마을로 산지로 둘러싸여 평지가 발달하지 못했지만 좁은 골짜기에서 논농사가 행해지고 있다.

조선동의 두 골짜기에는 전국에서도 유명한 활석광산이 있다. 지금은 휴광하고 있으나 아직도 매장량이 많다고 알려져 있다.
옥백산·억복산이라고도 불리며, 전국에서도 유명한 활석광산이 있던 산이다.

서반봉 꼭대기에는 돌로 만든 간결한 제단이 있는데, 주민들의 말에 의하면 외지 사람들이 와서 가끔 산제를 지낸다고 한다.

 

서반봉 통과후 뒤돌아본 모습

 

갈림길 통과

서반봉에서 국사봉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암릉지가 나오고 암릉지을 지나 내려서면 사점미고개가 나오고 조금더 진행하면 국사봉 직진에 있는 헬기장에 도착한다.  갈림길에서 무명봉을 통과하여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도 가능하나 대부분 마루금 이어가는 산객들은 우측방향 너덜지대을 관통하는것 같았다. 너덜지대을 통과하면 암릉지대가 나오고 암릉지 올랐다 내려서면 사점미고개에 도착한다.

 

암릉지대 통과

 

편안한 등로길

 

 사점미 고개

청양군 운곡면 광암리와 공주시 신풍면 조평리를 잇는 임도 우측으로는 삼광 광업소 가는 길이다. 사람이 잘 다니지 않는지 길에는 잡초만 무성하다

 헬기장 통과

사점미재에서 힘들게 오르니 지도상에는 나타나지 않은 관리가 잘 된 헬기장이 나온다. 잠시후면 오늘 구간중에 가장 높은 봉우리인 국사봉이 나타난다

 

  국사봉(國師峰, 해발489m)

충청남도 신풍면 조평리에 전해 내려오는 국사봉에 깃든 지명 이야기.이다.「국사봉 전설은 국사(國師)가 왕에게 하사받은 금잎을 국사봉 자락에 묻고 칩거하여 30여년을 살다가, “금이 지금도 자란다”는 말을 하고서 운명을 했기에 그가 쓰러진 곳의 산봉우리를 국사봉이라고 불렀다는 지명유래담이다.

아주 옛날 왕궁 안에서 왕자를 가르치던 국사가 있었다. 그는 세 살 난 어린 왕자를 15세가 되도록 가르쳤다. 그런데 그 해 여름에 왕자에게 병이 나 해를 넘기지 못하고 숨졌다. 왕자가 죽자 국사는 왕궁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왕에게 하직을 고했다. 왕이 만류하였으나 듣지 않자 왕은 국사에게 금 한 잎을 주었다. 국사는 전국 방방곡곡을 떠돌다 지금의 신풍면 조평리 국사봉 자리에 걸음을 멈추었다. 그리고는 봉오리 주변에 금 한 잎을 묻었다.

 

국사는 봉우리 옆에 움막을 치고 살았다. 오랜 세월이 흐른 뒤 어느 날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와서 국사와 마주쳤다. 국사는 나무꾼에게, “내가 여기에서 산짐승과 벗을 하며 살아온 지가 30년이 넘었다. 임금에게 받은 금을 이 산에 묻었는데 지금도 크고 있을 것이다.” 이 말을 마치고 국사는 이내 쓰러져 숨졌다. 이후로 사람들은 국사가 쓰러진 곳의 산봉우리를 국사봉이라고 불렀다.

나무꾼에 의해 국사봉에 금이 자란다는 말이 풍문으로 돌자 사람들이 금을 찾기 위해 
국사봉 주위를 파헤쳤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금을 찾지 못하였다. 그러다가 일제강점기에 일본인들이 이곳에 금광을 개설하고 많은 금을 캐갔다고 한다.

 

 

 국사봉 삼각점(△예산 319 198 재설)

 

 국사봉(해발489m)
옛날 아주 옛날 왕자를 정성껏 가르치던 국사(國師)가 있었다. 그는 학문이 깊을 뿐 아니라 풍수지리에도 밝아 존경을 많이 받았는데 왕궁에 초청되어 왕자를 세 살 때부터 시중들며 가르치기 시작하였다. 그런데 왕자가 15세 되던 해 갑자기 병을 얻어 왕자는 눈을 감고 말았다. 국사가 왕궁을 떠나겠다고 하자 왕은 국사에게 금덩이 하나를 쥐어 주었다. 왕궁을 나온 국사는 전국 방방곡곡을 10년 동안 두루 떠돌아 다니다가 지금의 국사봉에 자리를 잡고 사람들을 피하기 위해 산중 냇가에 땟집을 짓고 살았다.

그는 짐승을 벗삼아 살았으며 궁중에서 떠나올 때 왕이 쥐어준 금을 땅 속에 묻었다. 먹고살기 위해서 감자를 심었으며 곡식이라곤 그것 하나만으로 충당했다. 그는 산중에 살면서도 낮에는 일을 하고 밤에는 책을 읽었다. 책이 필요할 때만 잠시 집을 떠나서 책을 구해왔으며 그의 벗은 오직 산짐승들이었다. 그리곤 명상에 잠겨 하늘을 바라보며 몇날 며칠이고 바위 위에 앉아있곤 했다. 그도 그럭저럭 산으로 들어온 지 30년이 지났다. 이제 머리털은 백발로 변했다. 또한 건강하던 그의 몸도 이제는 힘이 없어져서 허리를 구부리고 다니게 되었다.

바람이 부는 어느 날 잠깐 냇가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쓰러졌다. 그는 한 번 쓰러졌는데 이상하게도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아랫마을 나무꾼이 나무를 하러 산에 왔다가 국사를 발견했다.국사는 나무꾼에게 여기에 와서 혼자서 산짐승과 친구하며 산지가 30년이 넘었으며 왕에게서 받은 금을 이 산에 묻어 놓았는데 지금도 새끼를 치고있다는 말을 하고는 그 자리에 쓰러져 죽었다.

나무꾼은 그가 죽자 그의 집 근처에 무덤을 만들어 주었다. 그를 묻어주기 위하여 땅을 팔 때 땅 속에서 단지가 나왔다.그 단지를 열어보니 그 속엔 여러 개의 금알이 있었다. 그러나 그 나무꾼은 그의 시체와 함께 단지를 묻어 주었다. 그 후 욕심이 없던 나무꾼도 죽었다.나무꾼이 죽을 때 유언으로 국사와 금알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그 말을 전해들은 사람들은 그 산을 국사봉이라고 불렀으며 금이 들어있는 단지를 캐기 위해서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금은 발견되지 않았다.

훗날 국사봉에서 금맥이 발견되어 많은 금을 캐기 시작했다. 훗날 사람들은 국사봉에서 금이 많이 나오는 것은 옛날 국사가 금을 묻은 것이 새끼를 쳐서 금맥이 조성되었다고 말한다. 국사봉은 금을 캐느라고 땅 속이 파헤쳐져서 해빙기에는 땅이 무너질까봐 등산을 꺼린다고 한다. 모두가 국사와 그가 묻은 금과 연유된 전설이다.

국사봉 수리치골 천주교 성지 이정표 : 수리치성지 4.6km,
공주시 신풍면 봉갑리의 수리치골에는 천주교 성지가 자리잡고 있다. 조선말 천주교 박해시대때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 살았던 곳으로 성 김대건 신부에게 서품을 주고 김대건 신부를 지팡이 삼아 한국에 입국한 페레올 주교와 성 다블뤼 안 신부가 김대건 신부가 순교하고 안장될 무렵인 1846년 11월 2일, 박해받는 한국 교회와 민족을 위해 한국과 한국 교회를 봉헌하고 신심단체를 조직하였던 발상지로써 한국 천주교회의 의미 깊은 사적지이다.

  국사봉 정상부의 모습

 

국사봉에서 인증샷

 

급경사 내림길의 모습

국사봉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급경사지가 나오고 안부에서 한차례 밀어 올리면 십자가 탑을이 있는 탑봉에 도착하게 된다.

 

 

440봉(십자가 철탑)

440(탑봉)정상에는  커다란 십자가 철탑이 설치되어 있었다. 아마도 아래마을에  수리치골성지가 있어 이곳에 십자가를 세운 모양이다. 정상에 있는 삼각점은 심하게 마모되어 내용을 알아 볼 수가 없을 정도이다.

[수리치골 천주교 성지]

공주시 신풍면 봉갑리의 수리치골에는 천주교 성지가 자리잡고 있다. 조선말 천주교 박해시대때 천주교 신자들이 숨어 살았던 곳으로 성 김대건 신부에게 서품을 주고 김대건 신부를 지팡이 삼아 한국에 입국한 페레올 주교와 성 다블뤼 안 신부가 김대건 신부가 순교하고 안장될 무렵인 1846년 11월 2일, 박해받는 한국 교회와 민족을 위해

한국과 한국 교회를 봉헌하고 신심단체를 조직하였던 발상지로써 한국 천주교회의 의미 깊은 사적지이다.

 

탑봉(해발440m)

십자가가 설치되어 있는 440봉에 서래야 박건식이 탑봉이라는 지며을 붙혀 표지기을 설치해 두었다.

 

청양군 운곡면일대 조망

탑봉에서 내려서면서 바라본 청양군 운곡면 신대리 방면 조망 수리치골 천주교성지방면은 이지점에서 좌측방향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곳으로 내려서면 된다.

 

길주의] 삼거리 방향전환

이 갈림길에서 좌측 11시 방향으로 내려서야 정맥길이다.

 

마루금 등로길 이정표 : 수리치골 성지 3.9km, 국사봉 0.7km

탑봉에서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우측편에 설치되어 있는데 잡풀에 가려있었다.

 

급경사지의 모습

440봉[탑봉]에서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로프가 설치된 급경사지가 나논다. 조심히 내려서면 절대봉에서본 동굴이 이곳에서도 볼수 있었다.

 

440봉[탑봉]에서 수리치 내림길에 있는 동굴의 모습

 

수리치 도착

금북정맥 7구간 산행에는 이곳에서 종료하고 좌측방향 수리치골성지방향으로 내려서면 산악회 본부가 있는곳에 도착한다.

 

수리치 이정표 : 수리치골성지 2.9km, 국사봉 1.7km

 

수리치 이정표의 모습

위치 : 충남 공주시 신풍면 봉갑리 389

 

갈림길 이정표 : 수리치골 성지 2km, 국사봉 2.6km

 

수리치골 사방댐의 모습

 

수리치골 성지 주차장 이정표 : 국사봉 4km, 수리치골 성지 0.6km

수리치골 聖地   / 충청남도 공주시 신풍면 봉갑리 산116

수리치골 성지는 천주교 박해기인 1846년 11월 2일 프랑스 선교사 다블뤼(Daveluy)와 신부, 신자 들이 모여 성모성심회(聖母聖心會)라는 신심 단체를 설립한 일을 기리는 성지이다. 이 단체는 프랑스 파리에 있는 승리의성모성당 신부 데주네트(Desgenettes)에 의해 창설된 것으로, 수리치골의 성모성심회도 여기에 등록되었다. 이후 수리치골은 정기적으로 천주교 신자들이 모여 기도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러나 이 교우촌과 성모성심회가 언제까지 존속되었는지는 알 수 없다.
수리치골에 의미가 부여되고, 그 위치가 확인된 시기는 한국천주교회가 창설 200주년을 맞이하는 1984년을 전후해서였다. 이때 박해기의 성모성심회와 같은 종교적 의미를 갖는 미리내(현 경기도 안성시 양성면 미산리)의 성모성심수녀회에서 특히 수리치골 성지에 관심을 기울였으며, 1986년부터 본격적으로 성지 개발을 위해 인근 부지를 매입하기 시작하였다. 그 결과 1990년 8월 22일에는 봉쇄수도원과 피정의 집이 완공되었고, 인근 여러 곳에 기도의 장소가 마련되었다. 수리치골의 수도원은 1997년 5월 19일 성모성심수녀회 모원이 되었다.

 

수리치골 성지 주차장의 모습

수리치에서 마루금 산행을 마치고는 좌측방향 수리치골로 내려서면 ㅏㄹ림길이 나오고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시멘트 도로가 나온다.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우측편으로 사방댐이 나오고 조금더 내려서면 좌측편으로 수녀원이 나오면서 산악회 본부가 있는 주차장에 도착한다.

 

본부에서 준비한 음식과 막걸리 한잔 마시고는 계곡에서 간단하게 알탕을 하고는 피곤한 몸을 버스에 싣고 깊은 꿈나라 여행을 떠난다. 버스는 복정역에 대원들을 내리고는 상일동 육교에서 몇분의 대원들과 함께 뒤풀이을 간단하게 하고는 집으로 귀가한다.

 

오늘도 아무런 사고없이 금북정맥 7구간을 마칠수 있게 도움을 주신 모든님께 감사의 말씀 전하며 다음 구간에 반가운 마음으로 뵙길 기대합니다.

 

 

[덕곡리 정류장앞(39번 국도변)~극정봉] 

지난구간에는 들머리지점을 덕곡리마을회관에서 하차하여 마루금으로 진행했지만 이번 구간에는 덕곡리마을회관앞에서 버스 회차가 불가하여 충남 공주시 정안면 유구읍 덕곡리마을 버스 정류장앞 39번 국도에서 하차 한다.39번 국도 덕곡리마을 정류장에서 덕곡리마을회관까지는 약600m  떨어져 있고 마루금 접속까지는 약2.7km이며 소요시간은 40분 예상된다.

 

 

버스에서 내려 베낭을 챙겨고 개인적으로 준비운동을 하고는 덕곡리 표지석 옆 포장도로 따라 진행한다. 포장도로 우측편으로 덕곡천이 흐르고, 잘 포장된 도로로 올라가면 우측편으로 축사가 나오고 조금 진행하면 지난구간 하차한 장소인 덕곡리 마을회관 앞에 도착한다.

 

덕곡리 마을회관에서  정면에 보이는 교량을 지나 첫번째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임도 삼거리가 나오고  다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좌측편으로 작은 계곡이 나온다.  그옆 시멘트 임도길로 진행하다가 숲속으로 들어간다.

 

덕곡리마을은 농번기라서 그런지 무척 분주해 보였다. 여기저기 논에서 묘내기가 한창이고 다른 논에서는 묘내기을 위해 논에 물을 대고 논을 깔아엎는 곳도있었다. 이런 시절에 마루금 이어간다고 이곳을 지나면 산객의 마음이 조금은 미안하고 죄송할 따름이다.

 

숲속 들머리입구 나무에는 산악회 표지기가 몇개 달려있고 등로길이 선명하게 나타나 있었다. 들머리을 지나니 희미하게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 버리고 좌측방향으로 급경사 능선을 한차례 밀어 올리니 사거리 안부인 마루금에 접속된다. 지난 구간에 이어 두번에 이지점을 진행하니 처음보다는 한결 편안한 마음으로 진행할수있어 좋았다.

 

39번 국도 덕곡리마을 정류장 앞에서 소거리재(사거리 안부)까지 약40여분(후미기준)이 소요 되었고. 머그네미(소거리재)에 올라서면 직진방향은 소거리로 가는 방면이고, 우측방향은 지난번 진행한 천방산방면이고, 좌측방향은 이번에진행할 극정봉구간이다.

 

소거리재예산군 대술면 이티리의 소거리마을과 공주시 유구읍 덕곡리의 머그네미마을로 잇는 고개이다. 소거리재에서 물한모금 마시고는 방향을 좌측방향으로 전환하여 진행하니 완만하게 오르막이 시작되고 경사지을 올라서면 극정봉에 도착한다.

 

[극정봉~차동고개]

극정봉에서 우측방향 급경사지을 내려서면 편안한 마루금 능선이 나오고, 무명봉 몇개을 넘어서면 명우산 정상에 도착한다. 명우산 정상부에는 정상석은 없고 표지기가 나무에 붙혀있었다. 

 

명우산에서 완만하게 진행하몀ㄴ 절대봉에 도착하고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절대봉 바로 아래에 동굴이 있었다. 동굴을 관람하고는 급경사지을 내려섰다 오르니 340봉에 도착하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니 벌목지대가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우회하여 진행하니 임도길에 도착한다.

 

좌측편 임도 끝부분에 하얀 시설물이 보여 찾아보니 성모마리아상이 있는 소규모 개인 공원묘지가 있었고
마루금은 임도길에서 우측편 능선으로 오르면 묘지가 나온다. 완만하게 마루금을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방향 버리고 우측편으로 진행하면 하면 294.2봉 삼각점이 있는곳에 도착한다.

 

294.2봉 삼각점이 있는곳에서 내려서면 저멀리 차량소리가 들려오고 차동고개에 다왔다는 안도감도 잠시 차동고개로 내려서는 등로길이 위험하게도 급경사지로 이루어져 있었다. 차동고개에 내려서니 회장님이 막걸리와 식수 그리고 덕을 제공해 주신다. 이곳에서 간단하게 음식을 먹고는 출발한다.

[차동고개~수리치]

 

차동고개에서 간단하게 점심을 하고는 32번 국도을 무단으로 횡단하여 공주시 유구읍 입간판이곳에서 들머리을 잡아 진행한다. 차령고개에서 약5여분 진행하니 우측편으로 대전-당진 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이고 계속하여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곳을 올라서니 330봉에 도착한다.

 

330봉에서 완만하게 무명봉 몇개을 넘어 내려서면 고재고개에 도착하고 시 임도길을 지나니 곧 벌목지대가 나타나고 벌목지대 정상부에 오르면 삼거리가 나타나는데 정맥길은 좌측 임도로 진행을 한다.

 
임도길 좌측편으로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고 갈림길에서 우측편 경사지을 오르면 장학사 삼거리에 도착한다. 장학산 정상부는 이곳에서 좌측방향으로 조금 들어가면 표지기가 설치되어 있는곳에 도착한다.
장학산 삼거리로 복귀하여 숲속길을 걸어 내려섰다가 오르면 벌목지대가 보이고 우측편으로 노동리마을이 조망된다, 잠시후 성황당 고개에 도착하며 고개에는 성황당의 흔적은 없고 나무 한그루가 성황당고개을 지키고 있었다. 성황당고개을 통과하여 약18여분 짐행하니 천종산정상에 도착한다. 

천종산에서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직진 등로길이 선명하여 알바하기 쉬운 지점이다. 마루금은 곳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된다. 갈림길에서 완만하게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추광리마을이 조망되고 야광고개에 도착한다. 야광고개에서 경사지을 올라서면 서반봉에 도착한다.

 

서반봉에는 표지기만 설치되어 있고 정상석과 조망능 없었다. 서방봉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암릉지대가 나오고 올랐다가 내려서면 사점이고개에 도착한다.

 

사점이고개에서 직진으로 진행하여 오르면  헬기장이 나오고 잠시후 오늘 산행에서 최고봉인 국사봉정상에 토착하게 된다.  국사봉(489.5m)정상에는 삼각점과 준희님의 표지기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국사봉에서 우측방향 경사지을 내려섰다 오르면  십자가 탑봉에 도착한다.

 

십자가가 설치되어 있다 봉우리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버리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급경사지가 나온다. 급경사을 지나면 완만한 등로가 이어지는데 좌측편으로 또 하나의 동굴이 나오고 계속하여 진행하면 오늘 산행의 종착지인 수리치에 도착한다. 수리치에서 금북정맥 7구간 산행을 마치고 수리치골성지방향으로 하산하여 산악회 본부가 설치되어 있는 주차장에서

산행을 종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