낙동정맥 27구간 만덕고개에서 다대포 몰운대까지 산행후기

2012. 11. 14. 21:04★ 9 정맥/- 2. 낙동[완료]

 

낙동정맥 27구간(만덕고개~몰운대)

 

산 행 지 : 부산광역시 북구,사상구, 동래구,진구,서구, 사하구 괴정동 구평동 장림동<낙동정맥 27구간>

산행일시 : 2012년 월일(토요일, 산행)

산행코스 : 만덕재-쇠미산-불웅령-백양산-애진봉-유두봉-삼각봉-갓봉-개금고개-엄광산-구덕령-구덕산-

               시약산-대치고개-사치고개-226봉-우정탑-감천고개-구평고개-봉화산-구평가구단지-아미산-홍

               티고개-몰운대-다대포해수욕장

산행시간 : 05:22~16:05(10시간43분. 식사 및 휴식시간 포함)

산행거리 : 약 30.4Km (정맥 28.9Km, 접속구간 1.5Km) GPS 34.5Km

산행인원 : 그랜드산악회 44명

운행차량 : 관광버스 1대

산행날씨 : 눈이 내린 등로길 차가운 칼바람속 진행

산행코스 및 구간거리 : 만덕고개(도로)-4.1km-불응령-0.8km-백양산-1.5km-삼각봉-2.2km-개금역-

                                  2.8km-엄광산-1.7km-구덕령-1.1km-구덕산-2km-대티고개-3.2km-괴정고개-

                                  2.8km-봉화산-3.7km-아미산-3km-다대포 몰안대

구간 거리(Km) 출발시간 소요시간 비고
만덕터널-05:22

만덕제1터널

만덕고개1.505:4018분해발270m,터널,정자,계단
불응령4.106:561시간16분해발611m,정상석,돌탑
백양산0.807:1923분해발641.5m,정상석,돌탑,삼각점
개금역3.708:501시간31분4번출구에서5번출구로 나와서 국민은행,대성예식장,백병원입구좌회전,주차장좌
엄광산2.810:071시간17분해발503.9, 삼각점, 정상석,정자
구덕령1.710:3225분해발230m
구덕산111:1846분해발565m,정상석
대티고개212:0648분해발100m
괴정고개3.213:121시간6분해발30m
봉화산2.813:5846분해발149.6m, 삼각점2개
아미산3.715:211시간23분해발233.7m,봉화대
몰안대316:0544분정상석,군부대시설물

접속거리  1.5    10시간43분   
정맥거리  28.9      
         총거리  30.4      
        GPS거리  34.5      

 

 

 

준 비 물 : 중식, 식수, 행동식, 방풍방한복, 여벌옷, 스틱, 렌턴, 카메라, 상비약등

* 스틱은 사용법을 잘 익혀 사용하면 체중을 분산시켜 무릎에 부담을 덜어줍니다

** 무릅보호대는 관절과 인대를 보호하므로 장거리 산행에 도움이됩니다

낙동정맥이란

낙동강의 동쪽을 따르는 산줄기로 동해바다를 가르는 한반도 동해안 지방의 담장이다.

백두산에서 남으로 힘차게 뻗어내려 금강산과 설악산을 거쳐 지리산으로 내려가는 백두대간 마루금이 천의봉(매봉산,1303봉)으로 솟아 오르기 전 1145봉 직전에서 남동쪽으로 분기하여 태백 백병산(1259봉), 통고산(1067봉), 울진 백암산(1004봉), 청송 주왕산(720봉), 경주 덕석산(829봉), 울산 가지산(1240봉), 신불산(1209봉), 부산 금정산(802봉)을 지나 백양산(642봉)을 넘어 낙동간 하구인 다대포 몰운대에서 끝나는 약 397 Km의 산줄기를 낙동정맥이라 한다.

낙동정맥 중에서 최고봉은 태백의 백병산으로 그 높이는 1259미터이다

 

 

 

 

 

 

낙동정맥 전체구간 지도 참고.


낙동정맥(洛東正脈) 이란

백두산에서 남으로 뻗어내려 지리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이 태백시의 피재에 이르러 양분되면서 대간은 서쪽으로 꺽어지며 함백산(1573m)으로 맥을 잇고, 또 한가닥은 피재와 매봉산(1303m) 중간 지점 1,129.6m 에서 백두대간과 낙동정맥으로 양분되어진다. 낙동정맥은 매봉산에서 발원하여 동남쪽으로 뻗어 백병산(1259m)으로 이어나가는데 바로 이 줄기가 동해와 나란히 달려 다대포 몰운대 낙동강 하구까지 뻗어 나가며 낙동정맥을 일구게 된다. 낙동정맥은 국내 제일의 오지를 포함하고 있으며, 낙동강의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의 황지연못과 한 몸이 되어 남쪽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산줄기다. 낙동강의 수계를 형성하는 유역권 전체가 낙동강 물줄기를 중심으로 한쪽은 백두대간이고 한쪽은 낙동정맥이 된다. 낙동정맥은 경상도 전체를 가로 지르는 거대한 산줄기로 아직까지 제대로 조사나 연구된 바 없는 산줄기로 우리의 인식에서도 '미지의 세계' 로 남아있는 자연의 보고다.

일명 태백산맥으로도 불리는 낙동정맥은 도상거리411.9 km이고, 실제거리는 약 700km가 넘는다.

정맥 내에는 백병산(1259m), 면산(124 5m) , 가지산(1240m), 신불산(1209m), 묘봉(1168m), 삿갓봉(1119m), 고헌산/간월산(1083 m), 영축산(1062m), 통고산(1061m) 등 1000m 를 넘는 산들과 고도는 낮지만 유명한 산들이 수없이 많이 발달되어 있어 빼어난 자연경관을 자랑하며 많은 등산객들이 즐겨 찾는 정맥이다.

 

마루금을 이루는 주요 산은 다음과 같다.

천의봉, 유령산, 우보산, 백병산, 구랄산, 면산, 묘봉, 용인등봉, 삿갓봉, 진조산, 통고산, 칠보산, 검마산, 백암산, 독경산, 맹동산, 봉화산, 명동산, 대둔산, 주왕산, 침곡산, 운주산, 봉좌산, 도덕산, 삼성산, 어림산, 남사봉, 관산, 사룡산, 백운산, 고헌산, 가지산, 능동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정족산, 천성산, 원효산, 운봉산, 계명산, 금정산, 백양산, 엄광산, 구덕산, 봉화산, 아미산, 몰온대 그 중 최고봉은 태백의 백병산(1259.3m)이다.

 

 

백두산에서 이 땅의 등뼈를 이루며 힘차게 남진하던 백두대간이 태백에 이르러 매봉산 북동쪽 해발 1145봉에서 곁가지를 내어 피재에서 빗물의 운명을 한강, 낙동강, 오십천으로 갈라 놓고는 대간의 기백을 이어 받았다.

 

매봉산은 산지조종(山之祖宗)의 산인 태백산(1567m)의 영향권이라서 크게 볼 때는 태백산을 낙동정맥의 분기점이라고도 볼 수 있다. 매봉산 천의봉에서 시작해서 거침없이 백병산(1259m)을 일궈내고 남으로 남으로 달려 내려가며 저마다 걸출한 이름을 가진 산봉을 엮어가며 낙동강의 동쪽 수계를 형성하고 교통과 문화를 가르며 때론 마을 가까이 내려와 민초들의 고달픈 삶을 아우르던 산줄기. 줄곧 동해를 가까이 두고 강원도와 경상도의 산간오지를 가르다 울산에 이르러 영남알프스란 거대한 산군을 일구었다가 마침내 부산 다대포 몰운대에서 바다로 스며들어 그 맥을 다하는 산줄기 낙동정맥

국내 제일의 오지를 포함하고 있으며 낙동강의 발원지인 강원도 태백의 황지연못과 한 몸이 되어 남쪽으로 이어지는 장대한 산줄기로 낙동강의 수계를 형성하는 유역권 전체가 낙동강 물줄기를 중심으로 한쪽은 백두대간, 한쪽은 낙동정맥.도상 거리만도 약 415여km에 이르는 강원의 태백, 삼척, 경북의 봉화, 울진, 영양, 청송, 영덕, 포항, 영천, 경주, 청도, 울산광역시의 울주, 경남의 밀양, 양산,김해, 부산광역시의 금정구, 북구, 동래구, 진구, 사상구, 서구, 사하구 등 3개도, 2개 광역시, 7개 시, 7개 군, 7개 구 걸쳐있는 낙동정맥.

그동안 백병산, 면산, 삿갓산, 통고산, 칠보산, 검마산, 백암산, 명동산, 대둔산, 주왕산, 운주산, 어림산, 사룡산, 단석산, 백운산, 고헌산, 가지산, 능동산, 간월산, 신불산, 영취산, 정족산, 천성산, 금정산, 백양산, 엄광산, 구덕산, 아미산을 넘고 동해안과 내륙을 잇는 수 많은 고개를 지났다.

낙동정맥은 낙남정맥,백두대간 일부와 어울러 영남의 울타리를 만들었고 낙동강을 탄생시켰다.

낙동정맥의 뜻은 낙동강 동쪽에 있는 큰뫼줄기를 말함이며, 낙남정맥 역시 낙동강 남녘 산줄기를 가리키지만 실제 지형상으로는 서쪽에 위치하고 있다. 백두대간은 거의 북쪽을 가로막고 있다.

 

삼수령 피재에 내린 빗방울 중 남쪽으로 흐른 것이 낙동강의 연원이다. 낙동강은 낙동정맥에서 그 최초의 물줄기를 모은 뒤 남으로 흐름을 재촉하면서 백두대간과 낙남정맥, 낙동정맥의 물을 받아들여 우리나라 두번째 큰 강을 만들고 비옥한 유역을 펼쳤다.

낙동강은 이땅에 그 첫모습을 드러 낼 때부터 낙동정맥과 때려야 뗄 수 없는 운명적 만남을 가지고 있다. 낙동정맥, 낙남정맥과 백두대간 일부 구간이 감싼 지방이 바로 영남지방이며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이 땅 이었기에 걸으면서 정이 든 그곳을 마무리 하는 뿌듯한 마음이 부담으로 이어지는 순간이다

 

낙동정맥 부산시내 통과지역 지도

 

우정탑에서 감천고대 해동고등학교까지 세부 지도

 

예배군 훈련장에서 봉화산 입구까지 세부지도

봉화산에서 구평가구대단지 통과 세부지도

 

다대고개에서 응봉봉수대구간 세부지도

 

 

 

<상세안내>

만덕고개

쇠미산 (구민의숲)
불응령
백양산

애진봉
유두봉
삼각봉
깃봉
헬기장

1139 (503.9m봉을 거쳐 하산)개금역(지하철)

엄광산 *구덕령 공원정자의 우측(내원정사)으로 가
                   된비알을 오르면 1.5km, 30분이면 될 것을
                 - 좌측 시멘트길로가 중계소를 거쳐 정상가니
                    3.0km 1시간 가까이 걸리는 우회 잘못산행.

구덕령고개
구덕산 정상(표지석)

기상레이더관측소 정문 (안개속에 헤매다)

시약산 (또다시 알바로 내려갔다 올라옴)

시약정 (헤아릴 수없는 부산사람들은 여기가 시약산정상이라고도)

대티고개 (대덕터널 위 바팔로앞 네거리)

까치고개(그림담장 위 고개)서 괴정공동묘지로 된비알 오름길

우정탑

괴정고개(=감천고개 : 옥천초등교 지나)

군부대후문

장림고개 (태광기전 거너 공사장 지나 밭터)

봉화산 (체육시설과 벤치쉼터, 전망대)

구평 가구단지

다대고개 (신다대아파트앞 좁은육교위)

아미산(응봉봉수대)

홍티고개 (롯데캐슬앞 삼거리이정표)

몰운대성당과 하구전망대

몰운대 표지석 <여기까지 중휴식과 알바포함 7시간35분>

몰운대시비 지나 다대포객사

 

 

제1만덕터널(第一萬德터널)은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에서 동래구 온천1동까지의 터널이다. 부산에서 3번째로 만들어진 터널이다.

산세가 높고 길이 험해 이동이 힘들었던 북구와 동래구를 이어주던 산성고개, 만덕고개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총길이는 1.630m 편도 2차선 쌍굴이다.

사실 제1만덕터널도 진입하기 위해서는 고개를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고개를 거치지 않고 바로 산을 관통하는 제2만덕터널1988년에 만들어졌다.

지리적 위치는 가까우나 산세가 높고 길이 험하여 이동이 불편하였던 북구와 동래구를 연결하는 기존의 산성고개, 만덕고개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터널이다.

제2만덕터널이 완공되기 전에는 유일한 터널이었으며 현재는 상습정체구간인 제2만덕터널구간을 우회하는 도로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제2만덕터널은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에서 북구 만덕동까지의 터널이다.

1973년 개통한 제1만덕터널을 대체 및 보완하기 위해 1984년 7월 착공하여 1988년 4월 완공하였다.

총 길이는 3,084m이며 세부사항은 아래와 같다

  • 만덕동에서 터널로 진입하는 길이 640m, 폭 32.7m ~ 42.6m의 8차선 도로, 길이 1,740m, 폭 9.4m 쌍굴식 2차선 터널
  • 터널에서 미남로터리로 가는 길이 704.48m, 폭 32.7m의 8차선 도로
  •  

    쇠미산(釗尾山 해발365.9m)

    금정산의 수려한 봉우리가 깊숙이 서남으로 뻗어내려 낙동강을 두르다 이내 기특한 한 봉우리로 솟아 올랐으니 쇠미산(釗尾山)이라 이름하였다.

    쇠미산은 금정산맥의 한 줄기로 서쪽으로 성지곡수원지를 동쪽으로 아시아드 주경기장이 위치하고 있다.

    쇠미산의 ‘쇠’는 순수 우리말 쇠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 산에서 예로부터 쇳물이 많이 나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쇠미산 자락인 사직동에서 판석 4장으로 형성된 석관 안에 청동기와 철기시대의 무문토기와 석검이 출토되었다고 하니 지명과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쇠미산을 금용산(金湧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백양산

    부산광역시 부산진구와 사상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642m. 태백산맥 말단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 금정봉(397m)·불웅령(611m) 등이 있다. 북서쪽 사면을 제외하면 비교적 완경사를 이룬다. 북동쪽과 서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하천은 각각 성지곡지(聖池谷池)와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삼나무·젓나무 등 수목이 울창하며, 남쪽 기슭에는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선암사와 운수사·용문사 등이 있다. 북동쪽 산록에 위치한 성지곡지는 1910년 일본인에 의해 부산 시민의 식수확보를 위한 상수도원으로 개발된 수원지였으나, 낙동강 상수도 공사가 이루어져 1972년부터 용도를 변경해 유원지로 이용하게 되었다. 1974년 이곳에 어린이회관 등의 건물을 지어 1978년 부산 어린이대공원으로 개칭했다. 부산 어린이대공원은 면적 4.62㎢에 실내수영장·반공전시관·과학전시실·우주산업전시실 등이 있는 어린이회관을 비롯해 각종 놀이시설·동물원·휴식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다. 어린이들의 꿈을 키우는 정서교육과 자연·과학 등의 산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시민들에게는 좋은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백양산 경관림조성

    1990년12월14일 일어난 산불로 민둥산이 되었다는 백양산에1996년부터 산철쭉과 10여종의 나무를 심어 환경림을 조성하였다는 표지판이 있다.

     

    애진봉(愛鎭峰)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의 구민들이 부산진구를 사랑한다는 의미로 백양산 중턱에 만든 공원이다.

    부산진구청에서 2007년부터 애진봉 주변의 옛 산철쭉 군락지에 철쭉 5만 그루를 심고,2009년 봄 1만3천 그루를 추가로 심어 대규모 철쭉꽃밭을 만들었다.
    국비 5억원을 들여 애진봉 주변 등산로 1㎞를 정비하고, 길이 195m 규모의 계단식 목재 데크와 망원경을 갖춘 전망대 4개를 설치해 철쭉꽃밭은 물론 부산시내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부산진구청은 이와 함께 산책로 0.8㎞ 구간에는 굵은 모래를 깔아 걷기 좋은 환경을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애진봉까지 임도 12㎞가 조성돼 있어 접근성이 좋은데다 애진봉에 오르면 부산시내 전역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등 경관이 뛰어나 부산의 대표적인 도심 테마숲으로 곷쭉공원이 되었다.

     

     

    꽃마을(위키백과)

    • 위 치 : 현재 부산 서구 서대신4동 10통ㆍ11통 지역으로 서대신4동과 사상구를 연결하는 해발 220m의 고개에 소재

    옛날 이 곳에는 조그마한 주막집이 몇 채 있었는데, 6.25동란 전후 피란민이 몰려와 집단으로 거주하기 시작하여 당시 마을 주민 대부분이 꽃재배를 생업으로 삼고 국화카네이션 등을 시내 꽃가게에 내다 팔거나 학교 졸업식이나 입학식 때 학교 앞에서 직접 팔아서 생활을 영위하면서부터 ‘꽃마을’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서구의 발전 잠재력을 지닌 꽃마을은 2003년 마을 진입도로가 확장되고 현대식 건물들이 새로 들어서면서 현재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특히, 최근에는 구덕산자락 꽃마을 주변에 조성중인 구덕골청소년수련원 등 이 일대는 지역주민과 청소년을 위한 문화요람으로 크게 변화하고 있다.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조성된 수목원과 함께 2004년 11월에 개관한 교육역사관과 민속생활관에 이어 2005년에는 목석원예관과 민속박물관이 개관하게 되며, 더불어 구덕야영장 인근에는 구덕청소년수련관의 개관(2005년 5월말)으로 서부산권 청소년들의 심신수련 및 체험활동의 장으로써 크게 호응을 얻고 있다. 또한, 이 곳에는 1981년 서구청에서 설치하여 직영하는 2,000여평 규모의 양묘장이 있고, 서구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내원정사(內院精寺)라는 사찰이 소재하고 있다. 현재 472세대 1,344명이 거주하는 꽃마을은 꽃재배를 하는 주민은 거의 없고 공휴일이면 외래에서 구덕산승학산을 찾는 많은 등산객들을 상대로 오리고기와 막걸리와 시래기 해장국 등을 파는 음식점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

     

    부산대교 [釜山大橋]:부산광역시 영도구 봉래동1가와 중구 중앙동7가를 연결하는 다리

    한국의 관문인 부산의 개항 100주년 기념행사에 맞춰 1976년 10월 착공하여 1980년 1월 준공했다. 길이 260m, 너비 20m(차도 16m, 보도 4m)의 4차선 도로교량으로, 다리 양쪽은 고가교(高架橋)에 의해 접속도로와 연결된다. 교량의 상부구조는 50m+160m+50m의 3경간 연속 아치교이며, 하부구조는 우물통기초 8기와 π형 교각 4기로 이루어져 있다. 고가교는 영도 쪽이 박스거더 79m, PC빔 165m, 램프 58m로 총 302m, 중앙동 쪽이 박스거더 100m, PC빔 90m, 램프 89m로 총 279m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부구조는 영도 쪽이 T형 교각 8기, 중앙동 쪽이 T형교각 4기로 되어 있다. 고도의 건축기술이 요구되는 이 교량은 우리 기술로 건설되었다. 부산대교가 건설되기 전까지는 1934년 건설된 부산영도대교가 영도와 부산시내를 연결하는 유일한 교량이었으나, 날로 증가하는 영도의 교통량을 분산 처리하기 위해 그 옆에 나란히 부산대교를 건설했다. 부산대교의 건설로 영도는 조선·기계 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중공업지역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부산의 대표적인 임해 위락관광지인 태종대 개발에 한몫하고 있다.

     

    영도대교(影島大橋, Yeongdo bridge)는 1934년 3월에 길이 약 214.63m, 너비 약 18 m준공된 다리로서, 부산광역시 중구영도구를 연결하는 다리이며 일제시대와 전쟁의 수탈과 애환 그리고 이산과 실향의 역사가 담겨있는 다리이다.

    영도대교는 부산 최초로 건설된 연륙교이며 한국 최초의 '일엽식 도개교'형식의 다리이다.

    다리가 개통될당시 육지쪽(중앙동) 다리 31.30m를 하루 2~7차례 들어 올렸었다.

    공사비는 착공 당시 360만원이 소요되었다.

    1931년 착공 / 1934년 11월 개통 / 1966년 9월 영도대교 도개 중단, 전차운행 폐지

     

    구) 영도대교는 재난 위험 등급판정을 받아 대형 트럭과 승합차의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 현재 부산롯데타운 건설과 함께 영도대교를 해체 복원공사를 할 예정이다. 복원이 완료되면 왕복 4차로의 도로가 왕복 6차로, 그리고 다리의 높이도 약간 올라간다. 40여년전 도개기능도 하루에 1번정도 할 예정이다.

    2009년 8월 27일부터 영도대교 진입차량이 임시교량으로 우회한다.

    2010년 1월 구 영도대교를 폭파 해체 예정으로 되어 있었다.

    영도대교 복원공사는 2012년 6월에 복원이 완료될 예정이다, 또한 공사가 완료되면 연면적 1752㎡ 지상 2층규모의 전시관을 개관할 계획이다

     

    남항대교는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과 서구 암남동을 잇는 총연장 1.8km의 다리이다. 기존 영도대교 노후에 따른 대체 교량의 건설의 필요성과 영도 동삼지구 택지개발 및 항만확충에 따른 물동량 처리를 위해 건설되었다. 2008년 7월에 개통한 남항대교는 서구 암남동과 영도구 영선동을 연결하는 길이 1,925m, 폭 26m(왕복 6차로)로 준공된 해상교량으로, 3,55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1997년부터 약 10년간 공사를 추진했다. 남항대교의 개통으로 21세기 동북아 국제 물류 중심 항으로 떠오르고 있는 부산신항과 녹산공단, 명지대교, 남항, 북항, 광안대로, 수영대로를 거쳐 경부고속도로까지 연결되는 항만배후도로를 완성하여 물류의 원활한 흐름이 가능해졌을 뿐 아니라 서구와 영도를 가깝게 잇는 길이 뚫림으로서 서구와 영도를 동일 생활권으로 묶어주었다. 그리고 ‘신세기를 열어가는 관문’을 주제로 한 경관조명은 남항의 밤바다를 아름답게 수놓고 있으며, 내항쪽에는 폭 3m의 산책로가 설치돼 시민들이 자유롭게 왕복하면서 남항일원의 풍광과 부산의 해안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부산(釜山)의 유래

    부산이란 이름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정확한 시기는 알 수 없으나, 1402년(태종 2) 1월 28일'태종실록'에 富山이라는 명칭이 처음 보이며, 1470년(성종 1년) 12월 15일자의 '성종실록'에 釜山이라는 명칭이 처음 나타난 이후 한동안 富山과 釜山을 혼용하여 쓰여졌다. 1481년(성종 12)에 편찬된『동국여지승람』산천조에 보면, "釜山은 동평현(오늘날 당감동지역이 중심지였음)에 있으며 산 모양이 가마꼴과 같아 부산(釜山)이라고 하였다.

    그러면 가마꼴과 같이 생겼다는 산은 어느 산을 말하는 것일까? 그 산은 아마 좌천동의 증산(甑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고로(古老)들은 증산을 시루산이라고 하는데 시루(甑)와 가마(釜)는 같은 취기(炊器)로 금속성의 가마가 나오기 전에는 동일한 구실을 하였던 것이다. "산이 가마꼴(釜形)과 같다"라고 한 가마꼴의 산은 오늘날 동구 좌천동 뒤에 있는 증산(甑山)을 말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덕터널 도착

    지난구간(만덕고개~남락고개)에는 버스가 만덕터널에서 만덕고개까지 올라가서 산행하는데 시간적으로 도움이 되었는데 이번에는 만덕터널 지나 "반갑습니다 동래구 입니다" 이정판 앞에서 하차한다.

    버스가 올라가기 어려운 도로를 올라갔다가 내려올때 고생을 많이하셨다며 이번에는 이곳에서 하차하여 간단하게 준비운동을 하고는 도로 건너편으로 이동한다.

    만덕고개까지 이동 루트

    1. 만덕터널 앞 동래구 이정판에서  4차선 도로를 횡단하여 우측방향으로 약50여미터 내려선다

    2. 좌측편으로 금강대 옥불사 입간판이 나오는 방향으로 직진으로 능선으로 오르면 동명사가 나오고 조금

       더 진행하면 도로가 나온다

    3. 도로에서 좌측방향으로 30여미터 진행하다가 좌측방향 초가집방면으로 오르면 식당집을 통과하여 우측

        방면으로 진행

    4. 나무계단이 나오고 다시 도로에 도착한다 도로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만덕고개 터널 앞에 도착하

       게된다.

     

    만덕고개의 모습

    대저분기점에서 제2낙동대교를 지나 북구 만덕에서 터널을 지나 동래구 사직동 동래구를 알리는 이정판 앞에서 바라본 만덕고개의 모습.

     

    제1만덕터널(第一萬德터널)

    부산광역시 북구 만덕1동에서 동래구 온천1동까지의 터널이다. 부산에서 3번째로 만들어진 터널이다.

    산세가 높고 길이 험해 이동이 힘들었던 북구와 동래구를 이어주던 산성고개, 만덕고개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졌다. 총길이는 1.630m 편도 2차선 쌍굴이다.

    사실 제1만덕터널도 진입하기 위해서는 고개를 올라가야 했기 때문에 이런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고개를 거치지 않고 바로 산을 관통하는 제2만덕터널1988년에 만들어졌다.

    지리적 위치는 가까우나 산세가 높고 길이 험하여 이동이 불편하였던 북구와 동래구를 연결하는 기존의 산성고개, 만덕고개를 대체하기 위해 만들어진 터널이다.

    제2만덕터널이 완공되기 전에는 유일한 터널이었으며 현재는 상습정체구간인 제2만덕터널구간을 우회하는 도로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제2만덕터널

    부산광역시 동래구 온천동에서 북구 만덕동까지의 터널이다.

    1973년 개통한 제1만덕터널을 대체 및 보완하기 위해 1984년 7월 착공하여 1988년 4월 완공하였다.

    총 길이는 3,084m이며 세부사항은 아래와 같다

  • 만덕동에서 터널로 진입하는 길이 640m, 폭 32.7m ~ 42.6m의 8차선 도로, 길이 1,740m, 폭 9.4m 쌍굴식 2차선 터널
  • 터널에서 미남로터리로 가는 길이 704.48m, 폭 32.7m의 8차선 도로
  • 만덕터널 도착

    만덕터널 통과후 황전요양원 입간판 앞에서 하차하여 간단하게 준비 운동을 마치고는 터널 반대방향 도로 건너 약50m 내려섰다가 좌측편에 금강대 옥불사 입간판이 있는곳에서 방향전환하여 능선으로 오르면 동명사가 나오고 도로 로 진행하다가 우측능선으로 오른다.

     

    동래구 및 황전요양원 입간판 앞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는 모습

     

    4차선 도로 무단횡단

     

    대한불교조계종 금강대 옥불사 입간판 앞에서 좌측방향으로 전환하여 직진으로 능선길 오르면 좌측에 등산안내도가 있고 완만하게 진행하면 동명사 절이 나온다.

     

    계단통과

    좌측방향 대한불교조계종 금강대 옥불사 입간판에서 직진으로 진행하면 계단이 있고 통과하면 금정산 제14등산로 안내도가 나온다

     

    금정산 제14등산로 안내도

    금정산[金井山] 

    금정산은 부산광역시 금정구와 경상남도 양산시 동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801m이다. 태백산맥이 남으로 뻗다가 한반도 동남단 바닷가에 이르러 부산 북쪽에 솟은 명산으로, 부산의 진산이기도 하다. 최고봉은 북쪽의 고당봉(801.5m)이며, 북으로 장군봉(727m)·계명봉(602m), 남으로는 원효봉(687m)·의상봉·파리봉·상계봉(638m) 등 600m 내외의 봉우리들이 백양산(白陽山, 642m)으로 이어진다. 낙동강과 수영강(水營江)의 분수계가 되며, 낙동강의 지류인 화명천(華明川)을 바라보고 ㄷ자형을 하고 있다. 산정부는 각섬석화강암(角閃石花崗岩)으로 되어 있으나, 그 남동부는 마산암류(馬山岩類), 북부는 안산암질암류(安山岩質岩類)로 구성되어 있다. 산정의 능선상에는 암반이 노출된 첨봉이 많으며, 대체로 동쪽과 남쪽은 급사면이고 북쪽은 완사면을 이룬다. 급사면상에는 주빙하환경(周氷河環境)의 산물로 보이는 암괴류(岩塊流)와 사력(砂礫)이 덮여져 있고 이들 사이에 송림이 우거져 있다. 이 산은 주릉 북동쪽에 있는 범어사로 인하여 더욱 잘 알려져 있다. 범어사 서쪽에는 주봉인 고당봉이 솟아 있고, 북쪽으로 장군봉 동쪽에는 계명봉 능선이 에워싸서 동래온천장과 항도(港都) 부산을 발 아래로 한다.


    양산과 동래 단층 사이에 남북으로 길게 이어진 천성산~금정산~백양산~구덕산~승악산~몰운대 능선을 금정산의 이름을 따서 금정산맥이라 부른다. 금정산은 금정산맥을 이루는 산지 중에서 가장 높은 산지로서 부산의 동래구, 금정구, 북구, 부산 진구에 걸쳐 있으며 산록이 가파르고 사면에는 거대한 자갈들이 깔려 있다. 산정과 산능은 치밀한 절리에 의하여 파쇄된 기반암의 노출로 인해 경관이 성채와 성곽처럼 보이며, 그 가운데 비교적 넓은 산간 분지가 발달하였다.
    ≪삼국유사≫에는‘금정범어(金井梵魚)’로 기록되어 있어, 신라시대부터 널리 알려졌고 항상 금정산과 범어사를 연결지어 왔음을 짐작할 수 있다.


    ≪동국여지승람≫ : 동국여지승람에는 산이름 유래에 대해,“동래현 북쪽 20리에 금정산이 있고, 산꼭대기에 세 길 정도 높이의 돌이 있는데 그 위에 우물이 있다. 둘레가 10여 척이며 깊이는 일곱 치쯤 된다. 물은 마르지 않고 빛은 황금색이다. 전설로는 한 마리의 금빛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그 속에서 놀았다고 하여, 금정이라는 산이름을 지었다고 한다. 이로 인하여 절을 짓고 범어사라 이름지었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세종실록≫ : 동국여지승람보다 앞서 편찬된 세종실록 지리지에도 이와 거의 같은 내용이 적혀 있다.
    즉, 금정은 금어(金魚)가 사는 바위 우물에서 유래된 것이다. 범어사는 678년(문무왕 18)에 의상이 창건한 화엄십찰의 하나로, 경상남도의 통도사·해인사와 더불어 3대 사찰의 하나이다. 20여 동의 가람과 신라 때의 석탑(보물 제250호)은 금정산과 더불어 부산 시민의 등산·야외 생활과 관광 명소로써 이름이 높다. 이 절 부근에 계명암을 비롯한 여섯 암자가 있어, 범어사 둘레의 명소를 이룬다. 이 밖에도 금정산성과 미륵암·정수암·국청사가 있고, 상계봉 남쪽엔 석불사가 있다. 금정산성은 사적 제215호로 되어 있고, 원래 동래읍의 외성으로 축성되어 동래산성이었으나 금정산성으로 개칭되었다. 산성은 임진왜란 후 당시 경상 감사의 진언으로 1703년(숙종 29)에 축성했고, 그 뒤 다시 증축하였으나 일제 강점기에 파괴, 훼손되었다가 1972년부터 2년간에 걸쳐 동·서·남 3문과 성곽 및 4개의 망루를 복원함으로써, 둘레 1만 7336m, 높이 1.5∼6m의 우리 나라 최대 산성이 되었다. 금정산 주변에는 양산군 동면의 높이 12m가 되는 음각의 마애여래입상, 장군봉에 있는 자연굴인 은동굴, 임진왜란 당시의 전몰호국무신을 모신 충렬사 등의 명소가 있다. 이 밖에도 케이블카 시설·동식물원·민속관 등이 있는 금강공원(金剛公園), 산성마을·동래온천이 있어 부산 시민들이 즐겨 찾는다.

     

    대한불교조계종 동명사 통과

     

    초가집방향 진행

    대한불교조계종 동명사 통과하면 도로가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도로 굽은 좌측편으로 초가집 이정표가 있는곳으로 진행하면 만덕고개에 도착할수 있다.

     

    암석위에 붙혀져 있는 초가집 안내판의 모습

     

    초가집 통과후 우측방향으로 진행

    운동시설물이 좌측편으로 희미하게 보이고 나무계단으로 올라 만덕고개에 도착.

     

    만덕고개터널 내부의 모습

    만덕고개에 도착하니 부산에 계시는 현오님의 친구분이 길 도우미를 위하여 이른 새벽부터 먼저 와서 우리 일행을 맞이하신다. 후미를 기다리며 우측편 데크목 나무계단을 올라 쇠미산으로 진행한다.

    덕고개 

    만덕고개는 일명 만등작, 만등재, 만덕재, 동래곡 등 여러 이름으로 불렸다. 상학산에 백양산으로 이어지는 낮은 능선에 속하는 만덕고개는 장타령에도 그 사연이 나오고 있다. <꾸벅 꾸벅 구포장 허리가 아파 못 보고>, <고개 너머 동래장 다리가 아파 못 보고>...이처럼 옛날 구포 강변 쪽에서 동래로 가기 위해 고개를 넘어야 했는데 고갯길이 워낙 가파르고 비탈져서 다리가 아프다는 표현이 나오게 된 것이다. 그리고 고갯길이 하도 험하니까 도적들이 끓어 장꾼들의 물품을 털어갔다. 구포장에서 장을 보고 사는 사람들이 고개 아래 만덕사 절터가 있는 곳에서 많이 모였다가 떼를 지어 넘어가던 고개로 만등고개라고 했다.

    만덕고개에 대한 전해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임진왜란 때에 금정산 기슭인 이곳에 1만여의 피난민이 피난와서 모두 화를 면했었는데, 이에 따라 1만여명이 덕을 입었다고 하여 이 마을 이름이 만덕동이 되었다고 한다. 만덕고개의 옛 이름은 기비현(其比峴) = 사비현(射比峴)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낙동강연안에서 동래로 통하는 이 고개는 동래지역과 서부경남지역을 연결하는 중요한 고개로서 사람들이 많이 이용하였으나 길이 워낙 높고 험하고 숲도 많이 우거진 곳이었다. 이에 따라 이곳은 장꾼들을 노리는 도적떼가 자주 출몰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조선시대 동래부 관내에서 도둑이 심하기로는 만덕고개가 으뜸이고, 다음은 모너머고개(송상현공 동상이 있는 고개)였다고 하며 당시의 사람들은 혼자 만덕고개를 넘는 것을 겁내었다고 한다. 구설에 의하면 만명의 사람이 떼를 지어 고개를 넘어가야 온전하기 때문에''만등고개''라고 하였다 한다. 이 만등에서 만덕이란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고려사』에는 충혜왕의 서자 석기(釋器)의 머리를 깎아 만덕사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그 만덕사는 만덕동에 지금 남아 있는 寺地를 그 만덕사 텃자리로 본다. 그 만덕사로 인해 만덕고개란 이름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지금은 만덕 1,2 터널이 개통돼 경부고속도로와 남해고속도로를 연결하여 복잡한 부산시내를 거치지 않고 경남지역으로 가는 통로 역할을 하고 있다.

     

    만덕고개 개통비(1965.2.6, 부산시장)

    만덕고개 나무계단 좌측편에 쇠미산 등산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고 등산로 나무계단은 산림자원 보호와 시민의 안전산행을 위하여 2009년도에 동래구에서 희망그로 프로젝트사업으로 설치하였다.

     

    쇠미산 산어귀 전망대로 출발

    만덕고개에서 나무계단으로 오르면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은 금정산성방면이고, 직진 나무계단은 쇠미산방향이므로 계속 직진으로 오른다. 안부에 도착하면 우측편으로 KBS중계탑이 보이고 좌측편으로 산불감시초소와 산어귀 전망대가 나온다. 부산시내 야경을 조망하고는 완만한 등로길이지만  등로에 눈이 만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순간이며 어둠으로 한치 앞이 보이지 안는다. 산어귀 전망대를 지나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고,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는 등로길로 내려서면 또 다시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만남의 광장'이란 이름표를 단 넓은 쉼터(구민의숲)가 나옵니다

     

    만덕고개에서 쇠미산 산어귀전망대 오르는 나무계단 갈림길 이정표 : 우/남문, 뒤/만덕고개, 직/어린이대공원, 사직종합운동장

     

    KBS중계탑의 모습

    산어귀전망대 우측편에 설치되어 있는 KBS중계탑

     

    쇠미산(釗尾山,해발360m)

    만덕고개에서 나무계단으로 오르면 좌측편으로 산어귀전망대와 산불감시초소 보이고 부산시내 야경이 일품이다

    쇠미산(釗尾山 해발365.9m)

    금정산의 수려한 봉우리가 깊숙이 서남으로 뻗어내려 낙동강을 두르다 이내 기특한  한 봉우리로 솟아 올랐으니 쇠미산(釗尾山)이라 이름하였다.

    쇠미산은 금정산맥의 한 줄기로 서쪽으로 성지곡수원지를 동쪽으로 아시아드 주경기장이 위치하고 있다.

    쇠미산의 ‘쇠’는 순수 우리말 쇠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 산에서 예로부터 쇳물이 많이 나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쇠미산 자락인 사직동에서 판석 4장으로 형성된 석관 안에 청동기와 철기시대의 무문토기와 석검이 출토되었다고 하니 지명과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쇠미산을 금용산(金湧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쇠미산 산어귀 전망대에서 본 시가지를 설명하고 있는 안내문

    쇠미산 산어귀 전망대에 올라 부산 시내를 바라보니 야경은 멋있지만 어둠고 깜깜한 밤이라 자세히 볼수가 없어 안타까운 마음이 스쳐지나간다.

     

    쇠미산 산어귀 전망대에서 바라본 부산시 동래구 사직동일대 야경의 모습

     

    쇠미산 산어귀 전망대(해발360) 안내판

     

    쇠미산 통과

    산어귀 전망대에서 완만한 오름길을 올라 내려서면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는곳이 나오고 내려섰는데 눈으로 인하여 매우 미끄러운 상태라 아이젠을 착용하고는 진행한다.

    쇠미산(釗尾山 해발365.9m)

    어둠속에 쇠미산 산어귀 전망대에서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금정산 철학로350m, 구민의 숲 1km 이정표가 나오고 소나무가 많은 지역을 통과하면  다시 이정표가 나오고 금정산 철학로700m, 구민의 숲 500m "금정산 철학로"란 만덕고개의 도로지점을 뜻하는 을 통과하면 내림길이 나오는데 눈길로 인하여 상당히 미그러워 아이젠을 착용하고 진행한다. 금정산의 수려한 봉우리가 깊숙이 서남으로 뻗어내려 낙동강을 두르다 이내 기특한 한 봉우리로 솟아 올랐으니 쇠미산(釗尾山)이라 이름하였다.

    쇠미산은 금정산맥의 한 줄기로 서쪽으로 성지곡수원지를 동쪽으로 아시아드 주경기장이 위치하고 있다.

    쇠미산의 ‘쇠’는 순수 우리말 쇠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 산에서 예로부터 쇳물이 많이 나왔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쇠미산 자락인 사직동에서 판석 4장으로 형성된 석관 안에 청동기와 철기시대의 무문토기와 석검이 출토되었다고 하니 지명과 무관하지만은 않을 것 같다.

    쇠미산을 금용산(金湧山)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정표 : 뒤/ 남문, 직/ 암석원 학습장

    백양산 경관림조성

    1990년12월14일 일어난 산불로 민둥산이 되었다는 백양산에1996년부터 산철쭉과 10여종의 나무를 심어 환경림을 조성하였다는 표지판이 있다.

     

    계단 오름길의 모습

     

    만남의 숲(해발284m) 통과

    만남의 숲 이정표 :  ↓남문 ←어린이대공원. ↗당감  →만덕 ↑백양산3.0km

    향토순례코스 이정표가 있는 곳에서 진행하면 만남의 광장이 나오고 주변에 소나무 많았고 이곳이 "만남의 숲" 쉼터이다. 지나온 이정표에 "구민의 숲"을 뜻하는 이곳에는 "만남의 숲"이라는 표지판이 있다.

    쇠미산에서 백양산 구간의 등산로를 중심으로 동쪽은 동래구 서쪽은 북구를 나누는 돌담이 산성 같아 보이는데 산불방화 경계를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남동쪽 금정봉(397m)을 걸처 어린이대공원으로 이어지는 등산로의 요충지이다.

     

    백양산 등산안내도의 모습

     

    운동시설물 있는 좌측 능선으로 진행

    만남의숲은 부산시 동래구와 북구 경계능선에 있으며  좌측능선으로 불응령 오름길이 나오고 우측편에는 운동시설물이 설치되어 있었고 이른 새벽부터 운동하려 나오신 주민이 있어 사진에 담아본다

     

    먼동이 터오르기 전의 모습

     

    백양산방면 불응령까지 경사지 오름길과 암릉길의 모습

     

    안부 조망지에서 바라본 지나온 등로길과 만덕터널방향의 모습

     

    불응령전에 있는 돌탑이 설치되어 있는 산불감시초소로 오르는 등로길의 모습

     

    산불감시초소 통과

     

    산불 감시초소가 있는 돌탑봉우리 611봉 뒤돌아본 모습

     

    산불 감시초소가 있는 돌탑봉우리 611봉에서 바라본 불응령 방향의 모습

     

    돌탑 통과

    만남의숲에서 좌측방향으로 오르면 급경사지인 암릉지가 나오고 한차례 밀어 올리면 돌탑이 있는 611봉에 도착한다.

     

    금정산 조망

    산불 감시초소가 있는 돌탑봉우리 611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마루금과 부산시 북구 만덕동의 모습

    만덕고개에서 쇠미산을 걸처 지나온 능선의 모습

    능선의 좌측(서쪽)방향은 부산시 북구 만덕동이며, 우측(동쪽)방향은 부산시 동래구 사직동과 온천동이다

     

    불응령에서 바라본 해운대방면의 조망

     

    불응령에서 바라본 부산진구일대 조망

     

    불응령에서 바라본 백양산 조망

     

    불응령에서 바라본 부산시 사상구일대와 서낙동대교 조망

     

    불웅령에서 바라본 서쪽방향의 주지봉(585m)과 낙동강의 제2낙동대교의 모습

     

    불웅령(해발611m)이정석과 돌탑

    불웅령에 오르니 먼동이 터오르고 부산시내의 아침을 감상할수 있어 크나큰 행운이라 생각한다.

    불웅령은 해발611m이며 민둥산 모습의 봉우리에 돌탑이 설치되어 있고 주변에는 나무가 없고 조망이 좋아부산일대를 거의다 조망할수 있는 좋은 위치이다.

    서쪽방향으로 구포대교와 구포역을 중심으로 낙동강과 북쪽으로 금정산이 잘 조망된다.

     

    불웅령(佛熊嶺,·해발616m)

    백양산 정상(642m) 동쪽에 있는 봉우리(616m)이다. 이곳에 오르면 북쪽 금정산, 동쪽 장산과 황령산, 남쪽으로 영도 봉래산, 구봉산, 구덕산, 엄광산 및 서쪽으로는 낙동강과 김해까지 모두 시야에 들어온다. 돌무더기가 탑처럼 쌓인 정상에 선 정상석에는 불웅령이란 이름 외에 '불태령'이란 이름이 덧붙여져 있다. 정상석 옆의 이정표에도 불웅령 옆에 불태령이 괄호 안에 적혀 있다. 불웅령이란 이름이 고개를 갸우뚱거리게 하는 것은 고개에 붙어야 할 '령'이란 이름이 봉우리에 붙어 있기 때문이다. 또 불웅령과 불태령은 '웅'과 '태' 두 글자의 한자 모양이 비슷한 데서 붙은 제각각의 이름이리란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불웅령에서 내려가 만남의 광장에 가면 북구청과 북구 낙동문화원이 세운 안내판에서 이름의 내력을 알 수 있다. 안내판에 따르면 원래 이름은 불태령(佛態嶺) 또는 부태고개로, 위치도 정상석이 서 있는 봉우리가 아니라 만덕과 초읍을 연결하는 만남의 광장이 바로 그곳이다. 성지곡에서 올라오면 만덕사의 부처님 모습을 볼 수 있다고 해서 붙여진 지명으로 전해진다고 적었다. 이처럼 뚜렷한 유래가 있는데도 엉뚱한 곳에 엉뚱한 이름이 붙어있는 것이다.

    불웅령 이정표 : 만남의숲 1.35km, 주지봉, 백양산1.3km

     

    백양산 조망

    불웅령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암릉지가 나오고 암릉지를 내려서면 완만한 등로가 백양산정상까지 이어진다

    백양산으로 내려서면서 뒤돌아본 불웅령의 모습

     

    백양산정상에서 바라본 앞으로 이어갈 마루금의 모습

     

    백양산정상 바로 아래에 부산 어린이 대공원과 성지곡 수원지가 보이고 저멀리 사직구장이 보인다

    고 최동원선수가 활동할때는 부산갈매기를 부르며 열광했던 롯데 자이안트팬이 많았는데 지금은 조금 예전보다는 시들하다

     

     

     

    백양산정상부에서 바라본 부산 진구, 수영구일대가 조망되고, 부산항이 희미하게 보인다

     

    백양산정상부에서 바라본 바로 아래에 있는 애진봉의 모습이 조망된다.

     

    백양산정상부에서 바라본 부산시 북구 사상구일대와 낙동대교 저멀리 김해평야 조망

     

    백양산(白楊山,·해발642m)

    부산광역시 부산진구와 사상구 경계에 있는 산.

    높이 642m. 태백산맥 말단에 솟아 있으며, 주위에 금정봉(397m)·불웅령(611m) 등이 있다. 북서쪽 사면을 제외하면 비교적 완경사를 이룬다. 북동쪽과 서쪽 사면에서 발원하는 하천은 각각 성지곡지(聖池谷池)와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삼나무·젓나무 등 수목이 울창하며, 남쪽 기슭에는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선암사와 운수사·용문사 등이 있다. 북동쪽 산록에 위치한 성지곡지는 1910년 일본인에 의해 부산 시민의 식수확보를 위한 상수도원으로 개발된 수원지였으나, 낙동강 상수도 공사가 이루어져 1972년부터 용도를 변경해 유원지로 이용하게 되었다. 1974년 이곳에 어린이회관 등의 건물을 지어 1978년 부산 어린이대공원으로 개칭했다. 부산 어린이대공원은 면적 4.62㎢에 실내수영장·반공전시관·과학전시실·우주산업전시실 등이 있는 어린이회관을 비롯해 각종 놀이시설·동물원·휴식시설 등이 갖추어져 있다. 어린이들의 꿈을 키우는 정서교육과 자연·과학 등의 산교육장으로 활용되고 있으며, 시민들에게는 좋은 휴식처를 제공하고 있다

    백양산(白楊山,·해발642m)

    백양산 삼각점 부산301 : 동경129도01'27" 북위35도10'49" 높이 641m

    119현위치번호 1-7 : 만덕고개4.9km ,개림초등학교4.3km 

    옛부터 이산에 흰빛이 나는 수양버드나무가 있어 인근 주민들이 백양산(白楊山, 삼각점:641.5m)이라 하였다. 부산 부산진구(釜山鎭區)와 북구(北區) 사이에 있는 산으로 다대포(多大浦)에서 끝나는 낙동정맥(태백산맥) 말단 부에 솟아 있는 산으로 동쪽 기슭의 성지곡(聖池谷)을 끼고 금정산(金井山:801.5m)과 마주한다. 성지곡 일대는 어린이대공원으로 개발되어 조림에 의한 삼나무 ·전나무를 비롯한 수림이 울창하고, 남쪽 기슭에 가까운 산허리에는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했다고 전해지는 선암사(仙岩寺)가 있다. 산록 저지대는 개발이 되어 시가지 화한 곳이 많다.
    백양산은 부산의 등줄기를 이루는 낙동정맥의 주능선에 솟은 산이다. 부산을 가로지르는 낙동정맥은 금정산(801.5m), 상계봉(638m),백양산(642m), 엄광산(503m), 구덕산(562m), 시약산(509m), 승학산(495m)을 거쳐 다대포 몰운대에 이르러 대한해협에 잠겨든다. 백양산은 이 정맥의 중심에 자리잡고 있어 부산의 심장부라 할 만하다. 지리적인 위치로는 부산진구와 북구, 사상구의 경계를 이룬다. 산의 유래는 <동래부지>(1740년)에 백양사라는 절 이름이 나온다. 그러나 '백양산은 금용산에 있다'고 전한다. 금용산(149.6m)은 부산진구 초읍에서 연제구 거제동에 걸쳐있는 산이다. 전형적인 노년기 산지로 완만한 산세인데 서쪽 방향에서 백양산과 만난다.
    기록으로 볼 때 백양산은 1740년 이후 금용산에서 분리된 듯하다. 이후 이름을 가지지 못한 산은 절 이름으로 산 이름을 대신했던 것 같다. 동쪽 자락에 선암사가 있어 선암산이라 불리기도 하고, 서쪽 자락에는 운수사가 있어 운수산이라고도 불렸다. 백양사에서 따온 백양산이란 이름도 함께 쓰다가 점차 백양산으로 정착된 듯하다.

    백양산(해발 642m) 이정표 : 예진봉 0.75km, 불웅령 1.3km, 바람고개 1.5km
    백양산은 부산의 등줄산맥인 금정산맥의 주 능선에 솟은 산. 백양산은 버드나무의 일종인 흰 사시나무가 많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북쪽으로는 금정산과 이어지며 부산진구와 사상구의 경계를 이룬다.

    부산 도심의 주요 하천이자 우리나라 상수도의 시초가 된 성지곡 수원지가 있다.

    성지곡 일대는 어린이 대공원으로 개발되어 울창한 숲 덕에 삼림욕을 즐기기에는 안성맞춤이다.
    부산 사람 치고 어린이 대공원에 관한 추억 하나 없는 사람이 없다고
    할 만큼, 가장 부산의 모습이 잘 남아있는 산이 백양산이 아닐까 싶다. 남쪽에는 원효대사가 창건했다고 알려지는 선암사가 있다.

    일출 조망

    백양산정상부에서 애진봉으로 내려서면서 일출 조망

     

    낙동강/洛東江

    낙동강(洛東江)은 ‘가락국(또는 가야)의 동쪽을 흐르는 강’을 의미한다. 옛날 가야의 터전이었던 경북의 고령과 상주, 선산, 경남의 합천, 의령, 함안, 고성 지방은 모두 낙동강의 서쪽 지역에 자리를 잡았다. 이들 지역에서 보면 낙동강은 동쪽편에 위치한다.   고려시대 때 편찬된 <삼국유사>에는 낙동강을 ‘황산진’ 또는 ‘가야진’으로 표기했다. 그러나 조선 초기의 역사지리지인 <동국여지승람>에는 낙동강을 ‘낙수(洛水)’ 혹은 ‘낙동강’이라고 썼다.이 책에는 ‘낙동강은 상주의 동쪽 36리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18세기 이긍익이 지은 <연려실기술>에도 ‘낙동강은 상주의 동쪽을 말함이다’라고 적고 있고, 이후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낙동강’이란 이름이 표시되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과 같은 낙동강의 이름은 조선 초기부터 사용됐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낙동강의 첫 글자인 ‘낙(洛)’은 오늘날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  경상북도 지명 유래집에는 ‘상주의 옛이름은 낙양(洛陽)이고, 낙양의 동쪽은 낙동, 서쪽은 낙서, 남쪽은 낙평, 북쪽은 낙원(처음엔 나원으로 불리다가 오늘날 낙상면이 됨)이다’라고 밝히고 있다.   다시 말하면 ‘낙양’이라는 곳이 ‘낙’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낙양은 상주시가지의 서쪽 지역에 있는 작은 마을이다. 이곳에는 ‘사직단터’라는 비석 하나가 세워져 있다. 사직단터는 조선 선조 10년(1577년)에 세워진 것으로, 당시 지신(땅의 신)과 곡신(곡식의 신)에게 풍년을 기원하며 제사를 지내던 자리이다. 학자들은 낙양에 있는 이 비석이 바로 ‘낙’의 뿌리를 확인시켜 주고 있다고 말한다. 낙양이 바로 낙동강이란 이름의 고향이라는 것이다.

     

    낙동강(洛東江)은 길이 506.17km, 유역면적 2만 3384.21㎢로 압록강(鴨綠江) 다음 가는 우리나라 제 2의 강입니다.

     

    강원도 태백의 천의봉 기슭에서 발원하여 상류부에서는 안동을 중심으로 반변천(半邊川)을 비롯한 여러 지류를 합치면서 서쪽으로 굽어 흐르다가 함창 부근에서 다시 내성천(乃城川)·영강(嶺江) 등 여러 지류를 구심상(求心狀)으로 받아들이고, 그 흐르는 길을 남쪽으로 돌려 상주 남쪽에서 위천(渭川)을, 선산 부근에서 감천(甘川), 대구 부근에서 금호강(琴湖江), 창녕 남지 부근에서 남강(南江)을 합친 뒤 동쪽으로 유로를 바꾸어 삼랑진(三浪津) 부근에서 밀양강(密陽江)을 합치고 나서 다시 남쪽으로 흘러 남해로 들어갑니다.

     

    태백시 가운데에 있는 황지연못가에는 "낙동강 천삼백리 예서 시작되다."란 글귀가 새겨져 있습니다. (태백문화원에서 이곳 황지연못을 낙동강 발원지로 발표하면서 일반에게 황지연못이 발원지로 알려져 있으나, 몇몇 전문가들이 측정한 결과 백두대간 '천의봉의 너덜샘'이 정확한 낙동강의 발원지라고 합니다.)

     

    정확한 발원이 황지이든 천의봉이든 길이가 500여km이니 천삼백리가 조금 못되는 군요. 반면 낙동정맥은 산줄기만 따라 흘러 내리니 400km로 꼭 천리길이 됩니다.

     

    강원도땅 태백에서 같이 출발한 강과 정맥은, 물은 낮은 곳을 찾아 천삼백리를 흘러 흘러 내리고, 정맥은 산줄기의 氣가 내뻗는대로 천리길을 남으로 남으로 내려갑니다. 그렇게 서로의 길따라 내려가면서 만났다 헤어졌다를 반복하다가 드디어 부산땅 다대포 몰운대에서 바다로 합쳐지며 山과 江이 合一하게 됩니다.

     始와 終이 함께 하니 始終이 如一하고 首尾가 雙關입니다. 이래저래 낙동은 그 시사점이 큰 강이고 정맥입니다

     

    애진봉의 모습

    애진봉에는 부산시 사상구 모라동 산100번지 일원에 2008년12월31일 "포스팜"이란 솔껍질깍지벌레 나무주사를 놓아서 유해하므로 2년간 2010년12월까지 솔잎 채취를 금한다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었고 우측편으로 쉼터와 전망대가 있었고 헬기장은 눈으로 인하여 형태를 볼수가 없었다

    애진봉에서 바라본 일출

     

    애진봉에서 카메라줌을 댕겨 부산항을 조망해 본다

     

    애진봉(愛鎭峰) 돌탑(부산진사랑 구민한마음동산)

    1990년12월14일 일어난 산불로 민둥산이 되었다는 백양산에1996년부터 산철쭉과 10여종의 나무를 심어 환경림을 조성하였다는 표지판이 있다애진봉(愛鎭峰)은 부산광역시 부산진구의 구민들이 부산진구를 사랑한다는 의미로 백양산 중턱에 만든 공원이다.

    부산진구청에서 2007년부터 애진봉 주변의 옛 산철쭉 군락지에 철쭉 5만 그루를 심고,2009년 봄 1만3천 그루를 추가로 심어 대규모 철쭉꽃밭을 만들었다.
    국비 5억원을 들여 애진봉 주변 등산로 1㎞를 정비하고, 길이 195m 규모의 계단식 목재 데크와 망원경을 갖춘 전망대 4개를 설치해 철쭉꽃밭은 물론 부산시내 전경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도록 했다. 부산진구청은 이와 함께 산책로 0.8㎞ 구간에는 굵은 모래를 깔아 걷기 좋은 환경을 조성했다고 설명했다.
    애진봉까지 임도 12㎞가 조성돼 있어 접근성이 좋은데다 애진봉에 오르면 부산시내 전역을 한눈에 감상할 수 있는 등 경관이 뛰어나 부산의 대표적인 도심 테마숲으로 곷쭉공원이 되었다.

    애진봉(愛鎭峰)

    부산진구를 사랑하는 봉우리’라는 의미가 담겨 있는' 애진봉은 부산진구가 16년 전(2012년 현재) 내무부의 상사업비 1억 원을 받아 백양산 정상아래 지점에 조성한 공원이다. 부산진구는 16년 전부터 애진봉 주위에 표지석을 세우고 식목일마다 산철쭉을 심어왔다. 이후 2007년부터 본격적인 철쭉심기 작업을 펼쳐 5년 만에 무려 20만 포기에 달하는 대규모 철쭉 군락지를 조성하여 5월 초에 접어들면서 철쭉이 만개해 ‘붉은 꽃의 바다’를 연출하고 있다.

    갈림길 통과

    애진봉에서 내려서면 사거리가 나오고 좌,우방향 버리고 직진으로 진행하면 유두봉에 도착한다

     

    백양산 사상그린웨이 안내도의 모습

     

    애진봉 사거리 이정표 : 좌/선암사 3.5km, 우/운수사 0.7km, 직/ 유두봉, 뒤/ 애진봉정상 0.5km

     

    사거리 우측방향은 운수사방면이며 급경사 내리막 등로가 나온다

     

    이정표 : 삼각봉 1.2km, 운주사 0.7km, 백양산정상 0.5km

     

    무명봉 이정표 : 개림초등학교 4.1km

     

    유두봉 오름길의 모습

     

    유두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마루금의 모습

     

    백양산 유두봉(乳頭峰, 해발589.1m)의 표지석에서 인증샷

    유두봉은 멀리서 바라보면 여인의 젖꼭지처럼 생겼다해서 유두봉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유두봉 정상석 뒷면은 "사단법인 대한산악연맹 부산광역시 연맹 산용산악회"라 표기되어 있었고, 2009년7월19일 "산용산악회"에서 표지석을 설치하었다고 적혀있다. 유두봉 바로 아래에 사상구 모라동에서 부산진구 당감동 방면으로 백양산터널이 관통 되어 있다.

    .

    유두봉의 모습

    유두봉은 지도상에는 없는 무명봉인데 이곳에 돌탑이 설치되어 있고 유두봉이라고 사단법인 대한산악연맹 부산광역시 연맹 산용산악회에서 2007년도에 설치하였다.

     

    유두봉에서 바라본 앞으로 이어갈 마루금의 모습

     

    유두봉에서 바라본 낙동강과 김해평애의 모습 조망

     

    낙동강 하구언 조망

    저멀리 희미하게 김해공항과 철새도래지인 을숙도가 보인다.

     

    유두봉에서 바라본 엄광산과 구덕산이 조망된다

     

    유두봉과 삼각봉 중간에 있는 돌탑 통과

     

    삼각봉 사거리 이정표가 있는 지점 직진으로 통과

     

    삼각봉 사거리 이정표 : 삼각봉/전망쉼터 0.2km, 부산 진구 선암사 1.8km, 신라대 1.4km/사상도서관 2km

                                      백양산정상 1.0km

     

    삼각봉 앞에 있는 쉼터 전망대의 모습

     

    삼각봉(해발454m)

    암봉에 사상산악회서 세운 정상석이 서 있으며 삼각봉과 백양산을 소개하는 안내판이 세워져 있었고 이곳에서 우측 골짜기로 급하게 내려서면 신라대학교가 나온다.

    삼각봉(해발454m)에서 인증샷

     

    삼각봉 전망쉼터 조망도의 모습

     

    삼각봉에서 바라본 앞으로 이어갈 마루금의 모습이 조망되고, 그 아래로 개금동이 보인다

     

    삼각봉에서 바라본 낙동강 하구언과 바로 아래에 있는 신라대학의 조망

     

    삼각봉에서 바라본 김해평야 조망

     

    삼각봉에 있는 물개바위 조망

     

    물개바위를 카메라 줌으로 댕겨본 모습

     

    삼각봉 전망쉼터의 모습

     

    삼각봉일대에 있는 암석들의 모습

     

    신라대학을 카메라 줌으로 댕겨본 모습

     

    현위치 1-4 : 삼각봉 전망쉼터 0.15km, 백양산정상 1.7km, 한효APT 2.5km

     

    낙동정맥 개금고개 시가지 통과구간 루트

     

    갓봉에서 내려가며 개금고개 시가지와 엄광산 위치를 확인한다.

    개금고개 부분은 LG아파트가 자리하고 있기때문에 시내에 접어들면 시민들께 개금역을 물어서 진행한다.

    개금역 5번출구로 나와서 백병원을 바라보며 오르다가 백병원갈림길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을 한다. 

    삼각봉에서 급경사지를 내려서면 사거리가 나오고 좌,우방향 버리고 직진으로 진행한다

     

    개림초등학교 사거리 이정표 : 애진봉 5.6km, 선암사 3.0km, 개림초등학교 0.8km, 정상부 0.3km, 꽃동산

                                               0.3km

    개림초등학교 사거리에서 직진 능선으로 오르면 넓은 공터인지 아니면 헬기장인지 눈이 쌓여 분간할수 있지만 통과하면 꽃동산 쉼터가 나온다.

     

    넓은공터? 헬기장?? 통과

     

    꽃동산 쉼터 통과

     

    꽃동산 쉼터 이정표 : 임도 0.2km, 개금동 체육시설 0.3km, 개금 우드빌아파트 0.9km

     

     

    산불감시초소 이후 헬기장부터 통과 순서

    사진1  헬기장을 통과하여 철탑이 있는 봉우리를 오르지 않고 우측으로 우회한다.

    사진2  임도를 내려와 우측으로 돌면 바로 진입 등산로가 있다.

    사진3  임도를 따라 내려가거나 .능선으로 진입하면 송전철탑 No14번 우측으로 내려간다. 사진은 능선에

              진입하여 촬영한 모습이다.

    사진4  6339부대 예비군 훈련장을 관통한다.

    사진5  반도아파트 우측에 개화초교가 보인다.

    사진6 개화초교 우측옆으로 내려가거나, 밭을 따라 백양산 수도사 방면으로 진행한다.. 개화초교 바로 옆으

             로 내려가기를 권한다.

    사진7 수도사 방면으로 진행하고 있는 모습

    자진8 수도사 앞으로 내려온다....이곳에서 부터는 시내 구간으로 지하철 개금역을 시민들께 물어서 진행하

             면 된다. 

     

    수도사 아래의 골목과 개금고개 구간 통과  

    사진1 : 좌측길은 수도사에서 내려운 방면이고, 사진의 우측길은 개화초교옆으로 내려 온 길이다.

    사진2  : 개화문구 우측으로 넓은길로 진행한다.

    사진3  : 고가가 있는 큰 대로가 나오면 청록탕옆길로 우회 청록탕옆에서 고가밑 육교를 바라본 모습이다. 

                대각선 방면으로 육교를 건너 개금역방면으로 진행한다.

    사진4  : 개금고개구간의 육교를 건너오면 개금초등학교앞에서 진행방면 "백병원"이 보인다. 백병원 좌측으

                로 오를 예정이다.

     

    개금역 4번출구에서 5번출구로 나와서 지나면 국민은행이 나오고 계속 직진으로 진행 후 개금역 시내구간 뒤돌아 본 루트의 모습 

    개금(開琴) 고개

    모양이 꼭 거문고와 길게 늘어져 있는 형상이라 하여 개금이라 했다고 한다. 또 임진왜란 당시 백성들이 토착지를 등지고 하염없이 피난길을 헤매던 어느날 푸른 산림이 우거지고 맑은 냇물이 흐르는 아늑한 계곡이 뻗어 있는 이곳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은은한 가야금 소리를 듣고, 바로 이곳이 장차 평화의 뿌리가 뻗어날 삶의 터전이라고 생각되어 전란의 시름을 달래면서 처음으로 마음놓고 거문고로 한 곡조를 타고 이곳에 정착하기로 결심하였다고 한다. 그리하여 거문고로 말미암아 이곳에 살게 되었으므로 개금이란 지명이 붙었다고 한다. 이 마을에 오랫동안 거주했던 성씨는 최씨, 배씨, 송씨 등이며, 가장 오래된 경주 최씨도 18∼19대 밖에 되지 않은 것으로 보아 임진왜란을 전후해서 생긴 것으로 보여진다.

     

    개금역 5번출구로 나와서 백병원 방면으로 오른다. 

     

    백병원앞 삼거리에서 부터 진행모습  

    사진1 : 백병원앞 삼거리에서 백병원으로 진행하지 않고 좌측길로 오른다.

    사진2 : 백병원 삼거리에서 유림열쇠 옆길로 계속 직진하여 오른다.

    사진3 : 인제독서실,하성약국 좌측골목으로 직진한다.

    사진4 : 고원아파트 우측을 통과하며 직진한다

    사진5 : 산밑에 있는 주차장앞에서 좌측으로 우회한다. 백병원삼거리에서 주차장앞까지 직진구간이다.

    사진6 : 등산로에 진입하여 주차장 건물 옆 라인에서 능선방면으로 경사지를 오르므로 시내구간 통과를 종

               료한다.

     

    엄광산 루트

    개금역4번출구에서 5번출구로 나오면 국민은행이 나오고 계속 직진으로 쭉 진행하면 한국전력, 대성예식장, 백병원 입구에서 좌측방향으로 오르면 고원아파트가 나오고 백병원 주차장 좌측편으로 오르면 엄광산으로 이어진다.

     

    rmadur

    대성 예식장 통과

     

    백병원 입구 삼거리

    백병원 입구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하성약국 통과

     

    좌측편으로 고원아파트가 나오고 그 옆으로 오르면 백병원 주차장이 나온다

     

    고원아파트 우측편에 있는 글로벌 오피스텔의 모습

     

    정면에 보이는 백병원 주차장 좌측편으로 진행하면 된다

     

    백병원 주차장 계단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엄광산방면이다

    백병원 주차장에서 아침식사를 하고는 마루금을 오른다.

     

    엄광산 방향의 등로길

     

    엄광산 나들숲길

     

    엄광산 오르면서 뒤돌아본 낙동정맥길 마루금의 모스

     

    엄광산 오름길의 모습

    인재대학교 백병원 주차장에서 좌측방향으로 오르면 개금배수지가 갈림에 도착하면 직진으로 오르면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었다.

     

    개금배수지 갈림길 이정표 : 동의대학교 1.9km, 인제대학교(백병원 주차장) 0.4km, 개금배수지 0.4km,

                                             임도 0.27km

     

    약수터와 쉼터의 모습

     

    계속되는 오름길의 모습

    나무계단으로 오르면 임도길에 도착한다

     

    임도 통과

    엄광산정상은 임도에서 직진으로 올라야 하지만 눈으로 인하여 급경사지가 미끄러워 우회하여 진행하여 오른다.

     

    이정표 : 부산 진구 종합복지관 1.3km, 동의대 1.7km, 벽산아파트 0.8km

     

    이정표 : 고원아파트 0.75km, 동의대학교 1.85km, 개금배수지 1.25km

     

    임도에서 급경사로 오르면 안부에 도착하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엄광산정상부에 도착할수 있다.

     

    돌탑(해발504m) 통과

     

    낙동정맥 마루금과 몰온대 조망

     

    부산항 조망

    수정터널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부산진구 가야동을 연결하는 제3도시고속도로(관문대로)의 일부 구간으로서 30분거리를 3분이내로 단축시켰으며,

    원활한 항만 물류 수송을 위해 건설되어 물류비용 절감 효과가 큰 터널이다.

     

    삼각점 안내

    위치 : 부산22

    동경 : 129도01'25"

    북위 : 35도08'01"

    높이 : 504m)

    부산항이 조망되고, 전면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수정산이며 그아래로 수정터널이 관통하고 있다.

    수정터널

    위치 :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부산진구 가야동을 연결하는 제3도시고속도로(관문대로)의 일부 구간으로서 30분거리를 3분이내로 단축시켰으며,원활한 항만 물류 수송을 위해 건설되어 물류비용 절감 효과가 큰 터널이다.

    준,희님의 이정표

    엄광산 가기전에 있는 돌탑의 무명봉

     

    504봉에서 바라본 엄광산과 구덕산정상부 조망

     

    503.9봉에서 인증샷

     

    북항조망

     

    부산 사상구와 서낙동대교와 김해공항 그리고 김해 조망

     

    지나온 마루금과 개금동일대 조망

     

    돌탑 통과

     

    돌탑에서 인증샷

     

    503.9봉에서 엄광산정상 가는 등로길 중간에 설치되어 있었다.

     

    부산항 도등 설치공사 안내판의 모습

     

    엄광산 정상부에 설치하는 부산 도등 현장의 모습

     

    현위치 1-7 이정표 : 엄광산 0.7km, 대원정사 1km, 개금 2.1km, 봉수대체육공원 1.6km

     

    엄광산 정상부의 모습

    엄광산정상부에는 정상석과 정자가 설치되어 있었다.

    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 부산광역시진구 개금동 엄광산은 높이 503.9m로 제법 높은 산에 속하며, 동남으로 구봉산에 이어져 있는 산이다.

    이 산은 고원견산이라 불리기도 하는데 이 명칭은 ""산이 높아 멀리까지 볼 수 있다."는 뜻으로 일제시대부터 불려진 이름이다. 엄광산은 얼마 전까지 고원견산으로 불리던 산인데 ""부산광역시을 가꾸는 모임""이 지난 95년 4월에 엄광산(嚴光山)이라는이름을 찾아주고 정상표지석을 세웠다. 이 산의 정상조망 역시 뛰어나다. 東來府誌 산천조에 보면 엄광산의 산봉이라는 기록으로 보아 엄광산으로 통해졌던 것이라 보아진다.

     

    엄광산(嚴光山·504m)

    부산 서구 동대신동의 북쪽에 위치하여 서구와 부산진구(개금동), 동구(좌천동)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엄광산은 1995년 그 이름을 되찾기 전까지는 고원견산(高遠見山)으로 불렸다. 고원견산이란 명칭은 일본인에 의해서 만들어졌을 가능성이 높으며 그 시기는 일본 막부 말기인 18세기 초ㆍ중엽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이 산의 명칭에 관한 최초의 기록은 일본 에도 막부시대 말기 외교사절의 일원으로 조선을 다녀간 우삼방주(雨森芳州)가 귀국 후 저술한 교린제성(交隣提醒)에 원견악(遠見嶽)이라는 기록이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지금의 고원견산(高遠見山)으로 부산부사원고(釜山府史原稿, 1938년 간행)에서 확인된다. 이 산의 정상에 올라서면 대한해협을 지나 멀리 일본의 쓰시마 까지 바라 볼 수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것은 아닌가 싶다. 한국측 자료중 《동래부지(東萊府誌), 동래군지(東萊郡誌)》등을 검토한 결과 고원견산의 이전 명칭은 엄광산(嚴光山)일 가능성이 높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엄광산의 이전 명칭으로 불리는 고원견산은 18세기 초ㆍ중엽 일본인들에 의해 붙여진 원견악이 고원견산이란 명칭으로 정리되어 그대로 사용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산이 높아 멀리까지 볼 수 있다’는 뜻의 고원견산으로 불렀으나, 1995년 4월 ‘부산을 가꾸는 모임’의 ‘옛 이름 찾기 운동’으로 엄광산이란 이름을 되찾았다. 금정산맥 말단부에 속하며 구덕산, 구봉산과 이어져 있고 주로 안산암질의 암석으로 구성되었다. 엄광산은 주위에서 고도가 가장 높아 동구, 서구, 사하구, 북구, 해운대구 일부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 부산이 항구도시임을 실감하게 한다. 높이는 504m이다.

     

    엄광산/嚴光山

     부산광역시 서구 동대신동과 부산진구 개금동 사이에 걸쳐 있는 산. 높이는  504m 이다. 일제강점기부터 ‘산이 높아 멀리까지 볼 수 있다’는 뜻의 고원견산으로 불렀으나, 1995년 4월 ‘부산을 가꾸는 모임’의 ‘옛 이름 찾기 운동’으로 엄광산이란 이름을 되찾았다. 금정산맥 말단부에 속하며 구덕산, 구봉산과 이어져 있고 주로 안산암질의 암석으로 구성되었다. 엄광산은 주위에서 고도가 가장 높아 동구, 서구, 사하구, 북구, 해운대구 일부가 한눈에 내려다 보여 부산이 항구도시임을 실감하게 한다.  능선길의 갈림길이 너무 많아 길 선택의 어려움으로 계곡으로 빠지기가 쉽다. 만약 계곡길로 들어섰다면 다시 원점으로 가서 산길을 살피거나 주위를 지나는 인근 주민들에게 물어서 가면 된다. 

     

    구덕산 조망

    엄광산에서 바라본 구덕산이 조망된다.

     

    엄광산에서 내려서면 완만한 등로길이 나오고 좌측편으로는 대신공원과 동아대학교 구더캠프서가 있고 우측편으로는 주례공동묘지와 경남정보대학이 있다.

     

    꽃마을 진입 

    위치 : 현재 부산 서구 서대신4동 10통ㆍ11통 지역으로 서대신4동과 사상구를 연결하는 해발 220m의 고개에 소재

    옛날 이 곳에는 조그마한 주막집이 몇 채 있었는데, 6.25동란 전후 피란민이 몰려와 집단으로 거주하기 시작하여 당시 마을 주민 대부분이 꽃재배를 생업으로 삼고 국화카네이션 등을 시내 꽃가게에 내다 팔거나 학교 졸업식이나 입학식 때 학교 앞에서 직접 팔아서 생활을 영위하면서부터 ‘꽃마을’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서구의 발전 잠재력을 지닌 꽃마을은 2003년 마을 진입도로가 확장되고 현대식 건물들이 새로 들어서면서 현재는 많이 달라진 모습이다. 특히, 최근에는 구덕산자락 꽃마을 주변에 조성중인 구덕골청소년수련원 등 이 일대는 지역주민과 청소년을 위한 문화요람으로 크게 변화하고 있다. 자연환경과 조화를 이루며 조성된 수목원과 함께 2004년 11월에 개관한 교육역사관과 민속생활관에 이어 2005년에는 목석원예관과 민속박물관이 개관하게 되며, 더불어 구덕야영장 인근에는 구덕청소년수련관의 개관(2005년 5월말)으로 서부산권 청소년들의 심신수련 및 체험활동의 장으로써 크게 호응을 얻고 있다. 또한, 이 곳에는 1981년 서구청에서 설치하여 직영하는 2,000여평 규모의 양묘장이 있고, 서구에서는 규모가 가장 큰 내원정사(內院精寺)라는 사찰이 소재하고 있다. 현재 472세대 1,344명이 거주하는 꽃마을은 꽃재배를 하는 주민은 거의 없고 공휴일이면 외래에서 구덕산승학산을 찾는 많은 등산객들을 상대로 오리고기와 막걸리와 시래기 해장국 등을 파는 음식점이 성업을 이루고 있다.

     

    꽃마을 입구에서 엄광산방면의 뒤돌아본 모습

     

    꽃마을 입구 통과 

    엄광산에서 꽃마을입구로 내려서면 대각선으로 산마루식당 간판이 보이고 추어탕집 입간판이 있는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구덕령이 나온다.

     

    꽃마을 입구에서 바라본 구덕령과 구덕산 조망

     

    구덕령(해발220m)

    구덕령은 구덕기재,구덕재로 불리며 구덕산과 엄광산 사이의 안부로 현재는 시가지가 되었다.

    부산의 물류거점 도시인 서대신동과 북구 주례동을 잇는 구덕령은 옛날 부산에서 구포, 양산, 밀양으로 이어지는 지름길이었다.

    남쪽 해변의 부산장과 북쪽의 구포장을 왕래하며 무역의 통로 역활을 하였던 고개이다.   

    현재 구덕터널과 도로가 있어 왕래가 쉽지만 예전에는 시내버스도 한시간 이상 소요되는 멀고도 가까운 이웃이었다.

    전면의 도로는 엄광산 방면의 진입로이다

     

    구덕문화공원 안내판의 모습

     

    대한불교본조계종 팔금사 800m  이정판에서 조금 진행하면 해뜨는집이 나오고 구덕문화공원 입구에 도착한다.

    구덕문화공원지역 통과

    구덕산 등로길은 이지점에서 좌측 등로로 진행하면 되고, 도로 따라 진행해도 무방하다.

     

    사진1. "구덕문화공원"간판을 통과하여 계단을 올라도 되는데 "부산조경공원"이라는 입석 좌측으로 우회한다. 

    사진2  "구덕운동장1500m /편백숲 명상의 길 80m" 이정표와 관련이 없는 우측으로 경사지를 오른다. 

    사진3  ←편백숲 명상의 길 250m / →구덕문화공원 / †구덕산정상 ... 교육역사관을 바라보며 오른다

    사진4  임도를 따라 구덕산 정상의 "부산항공무선표지소"까지 임도따라 오른다

    구덕문화공원 주차장의 모습

     

    편백숲 명상의 길 안내도

     

    이정표 : 구덕산정상 400m, 구덕문화공원, 편백숲 명상의 숲 250m

     

    이정표에서 우측 계단으로 오르면 임도가 나오고 임도에서 좌측방향으로 오르면 급경사지가 나오고 전망이 좋은 조망지가 나온다.

     

    임도 통과

    한국공항공사 부산항공무선표지소 1.6km 입간판에서 직진 능선으로 오르면 정맥길이고 도로 따라 돌고 돌아 올라가도 가능하다.

     

    구덕상기상레이더 1.7km

     

    구덕산 오름길 조망이 좋은곳에서 바라본 꽃마을, 부산시 동구 대신동 동아대학교 구덕캠퍼스, 엄광산정상부가

    구덕산 오름길 조망이 좋은곳에서 바라본 지나온 마루금의 모습 저멀리 금정산이 조망된다.

     

    북구 낙동강쪽의 구덕터널방면

    낙동강 낙동대교-감전동-학장동-구덕산 아래로 구덕터널을 지나 남쪽 대신동,영도 방면으로 이어진다.

     

    한국공항공사 부산항공무선표지소

     

    구덕산 "한국공항공사 부산항공무선표지소" 에서 서쪽방향으로 승학산(해발496.3m)이 조망되고,  능선이 완만한 초원같아 보인다. 승학산 넘어로 낙동강과 김해가 조망된다.

    가을에는 승학산일대가 억새로 유명하다고 한다. 다음에 시간을 만들어 가을에 한번 다녀올가 한다.

     

    한국공항공사 부산항공무선표지소에서 바라본 꽃마을 조망

     

    한국공항공사 부산항공무선표지소에서 바라본 구덕운동장과 영도구가 조망된다

     

    한국공항공사 부산항공무선표지소에서 바라본 부산항 조망

     

    한국공항공사 부산항공무선표지소 루트

    구덕문화공원에서 급경사지로 오르면 한국공항공사 부산항공무선표지소가 나오고 철조망이 설치되어 있어 좌측방향으로 철조망 따라 진행하면 구덕산이 나온다.

     

    구덕산(九德山·해발565m) :

    부산광역시 서구 서대신동과 사하구 당리동 및 북구 학장동에 걸쳐 있는 산으로 높이는 565m이며, 일명 사병산(四屛山)이라고도 한다. 이 일대는 부산광역시의 척량산지에 해당되는 지역으로, 북쪽의 금정산(金井山, 801m)·백양산(白楊山, 642m)·고원견산(高遠見山, 504m)·구덕산·천마산(天馬山)으로 이어져 다대포(多大浦)의 몰운대(沒雲臺)에서 끝난다.

     

    구덕산(九德山, 해발565m)

    구덕산은 부산서구서대신동북구 학장동, 사하구 당리동경계에 솟아 산이고 높이는 해발 565m이며 서구를 감싸고 있는 산중의 산이다

    부산의 등줄인 금정산맥의 말단부에 위치하고 있으며 북동쪽으로는 엄광산에, 남서쪽으로는 시약산에 이어져 있고 남동쪽 산록에서는 보수천이 발원한다.

    구덕산의 산명은 근래에 붙여진 이름으로 ‘九’나 ‘德’이 불교와 관계 깊은 글자이므로 불교계통에서 나온 이름인 듯하며, 여기에서 시작된 하천에도 구덕천, 보수천 등의 불교적인 이름이 붙은 듯 하다. 또한 구덕산에는 구덕사라는 절이 있었다고 하니 이를 미루어 볼 만하다. 19세기 경에 사병산이라고 하였음을 일본인들이 쓴 조선부호여록(朝鮮婦好余錄)의 기록으로 알 수 있으니 구덕산이라는 산명은 그 훨씬 뒤에 나온 것이다. 사병산이란 병풍처럼 둘러진 산이라는 데서 나온 이름인 듯하다.

    전형적인 노년산지의 모습을 지니고 있으며, 짙은 산림과 깊은 계곡이 발달되어 있다.

    보수천의 발원지인 동쪽 산록에는 부산 최초의 급수원인 구덕수원지자리 잡고 있으며, 풍치가 빼어나고 등산로 및 산책로로 크게 각광받고 있다

    구덕산에서 남쪽의 영도 봉래산 중심의 조망

     

    구덕산 삼거리에서 바라본 시약산(523m) 기상레이더 관측소

    구덕산에서 내려서면 도로 삼거리가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승학산갈림길과 구덕문화공원으로 가는 도로며, 낙동정맥 몰운대방면은 좌측방면인  구덕산 기상레이더가 있는곳으로 진행한다.

     

    구덕산기상레이더 250m 지점

     

    쇠약정 조망

    구덕산기상레이더 좌측편에 위치하여 있고 조망이 일품이며 여름에 이곳에서 한숨쉬고 가면 좋을것 같았다.

     

    시약산(해발509m)

    부산의 서구에 위치하고 있으며, 구덕산의 남서쪽에 있다. 이 산 밑으로 대티터널이 뚫려있고 산 정상에는 '기상관측소'가 있고 아름다운 '시약정'이란 정자가 있다. 이곳에서는 부산항이 한눈에 들어온다.시약산에서 바라본 낙동정맥 몰운대까지의 길

    이지점에서 대티고개방면은 좌측편으로 내려서면 된다.

    좌측편으로 철책가로막이 설치되어 있고 그옆으로 내려섰다가 우측능선으로 내려서면 대티고개 갈림길이 나옥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묘지, 무명봉, 급경사 내리막길, 주태지를 통과하면 대티고개에 도착한다.

     

    구덕산기상레이더에서 바라본 몰온대가지의 마루금

     

     

    대티고개 갈림길 이정표 : 시약산정상 0.9km, 꽃마을 3.4km, 대티고개

    이지점에서 대티고개는 직진으로 올라 무명봉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되지만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우회하여 묘지 앞에서 만난다.

     

    산불감시초소와 묘지 통과

     

    저멀리 오륙도 조망

     

    남항대교와 오륙도 조망 

    부산대교 [釜山大橋]

    위치 : 부산광역시 영도구 봉래동1가와 중구 중앙동7가를 연결하는 다리

    한국의 관문인 부산의 개항 100주년 기념행사에 맞춰 1976년 10월 착공하여 1980년 1월 준공했다. 길이 260m, 너비 20m(차도 16m, 보도 4m)의 4차선 도로교량으로, 다리 양쪽은 고가교(高架橋)에 의해 접속도로와 연결된다. 교량의 상부구조는 50m+160m+50m의 3경간 연속 아치교이며, 하부구조는 우물통기초 8기와 π형 교각 4기로 이루어져 있다. 고가교는 영도 쪽이 박스거더 79m, PC빔 165m, 램프 58m로 총 302m, 중앙동 쪽이 박스거더 100m, PC빔 90m, 램프 89m로 총 279m로 구성되어 있으며, 하부구조는 영도 쪽이 T형 교각 8기, 중앙동 쪽이 T형교각 4기로 되어 있다. 고도의 건축기술이 요구되는 이 교량은 우리 기술로 건설되었다. 부산대교가 건설되기 전까지는 1934년 건설된 부산영도대교가 영도와 부산시내를 연결하는 유일한 교량이었으나, 날로 증가하는 영도의 교통량을 분산 처리하기 위해 그 옆에 나란히 부산대교를 건설했다. 부산대교의 건설로 영도는 조선·기계 공업을 중심으로 하는 중공업지역으로 발전하고 있으며, 부산의 대표적인 임해 위락관광지인 태종대 개발에 한몫하고 있다.

     

    영도대교(影島大橋, Yeongdo bridge)

     1934년 3월에 길이 약 214.63m, 너비 약 18 m준공된 다리로서, 부산광역시 중구영도구를 연결하는 다리이며 일제시대와 전쟁의 수탈과 애환 그리고 이산과 실향의 역사가 담겨있는 다리이다. 영도대교는 부산 최초로 건설된 연륙교이며 한국 최초의 '일엽식 도개교'형식의 대교이며, 대교가 개통될당시 육지쪽(중앙동) 다리 31.30m를 하루 2~7차례 들어 올렸었다.공사비는 착공 당시 360만원이 소요되었다.

    1931년 착공 / 1934년 11월 개통 / 1966년 9월 영도대교 도개 중단, 전차운행 폐지 구) 영도대교는 재난 위험 등급판정을 받아 대형 트럭과 승합차의 통행이 금지되어 있다. 현재 부산롯데타운 건설과 함께 영도대교를 해체 복원공사를 할 예정이다. 복원이 완료되면 왕복 4차로의 도로가 왕복 6차로, 그리고 다리의 높이도 약간 올라간다. 40여년전 도개기능도 하루에 1번정도 할 예정이다. 2009년 8월 27일부터 영도대교 진입차량이 임시교량으로 우회한다.2010년 1월 구 영도대교를 폭파 해체 예정으로 되어 있었다.

    영도대교 복원공사는 2012년 6월에 복원이 완료될 예정이다, 또한 공사가 완료되면 연면적 1752㎡ 지상 2층규모의 전시관을 개관할 계획이다

     

    남항대교

    위치 : 부산광역시 영도구 영선동과 서구 암남동을 잇는 총연장 1.8km의 다리이다.

    기존 영도대교 노후에 따른 대체 교량의 건설의 필요성과 영도 동삼지구 택지개발 및 항만확충에 따른 물동량 처리를 위해 건설되었다. 2008년 7월에 개통한 남항대교는 서구 암남동과 영도구 영선동을 연결하는 길이 1,925m, 폭 26m(왕복 6차로)로 준공된 해상교량으로, 3,550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1997년부터 약 10년간 공사를 추진했다. 남항대교의 개통으로 21세기 동북아 국제 물류 중심 항으로 떠오르고 있는 부산신항과 녹산공단, 명지대교, 남항, 북항, 광안대로, 수영대로를 거쳐 경부고속도로까지 연결되는 항만배후도로를 완성하여 물류의 원활한 흐름이 가능해졌을 뿐 아니라 서구와 영도를 가깝게 잇는 길이 뚫림으로서 서구와 영도를 동일 생활권으로 묶어주었다. 그리고 ‘신세기를 열어가는 관문’을 주제로 한 경관조명은 남항의 밤바다를 아름답게 수놓고 있으며, 내항쪽에는 폭 3m의 산책로가 설치돼 시민들이 자유롭게 왕복하면서 남항일원의 풍광과 부산의 해안을 한 눈에 볼 수 있다

     

    내리막길 뒤돌아본 모습

    산불감시초소와 묘지를 통과하면 무명봉이 나오고 무명봉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급경사 내리막이 시작된다

     

    서구 12초소 앞 이정표 : 대티고개 0.3km, 시약산정상 2.1km, 꽃마을 4.6km

     

    서구 12초소 통과

    급경사지를 내려서면 초소가 나오고 이지점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 주택지를 통과하면 대티고개에 도착한다.

     

    서구12초소 이정표 : 시약산정상 2.1km, 대티고개, 꽃마을(구덕문화공원) 2.7km/50분

     

    구덕산 천마산 등산 안내도(서구 그린웨이 등산안내)

     

    대티고개로 내려가며 정맥길 방면 조망 

     

    대티고개에서 공동묘지 루트

     

    서구12초소 통과후 뒤돌아본 모습

     

    주택지 직진으로 통과(우측편에 대티로107번길-61)

     

    부산시 서구일대와 대신공원 조망

     

    골목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행

     

    골목 두번째 좌측으로 진행

     

    대티고개(대치고개)의 모습

    대티고개는 부산시 서구와 사하구의 경계지점에 있는 고개이며  도로 건너편 시내버스 정류장 우측 골목으로 진행하면 된다

     

    대티고개 부산시 서구방면의 도로의 모습

     

    대티고개 삼거리의 모습(대티로81번길 1-38)

    횡담보도 건너 좌측 좁은골목으로 진행하면 된다.

     

    대티고개 정류장의 모습

     

    대티고개 무단횡단

    전붓대가 있는 강서할인마트 옆 좁은골목으로 진행한다.

     

    대티고개 삼거리의 강서할임마트와 우체통옆 좁은 골목 대티마을4길로 들어선다

    부산의 주택은 경사지 언덕에 좁은 골목이 특색이며. 두사람이 비겨가기에는 어려울 정도로 좁은 골목을 통과한다.골목에 들어서니 낙동정맥 시그널이 담벽에 붙혀있었다.

      

    대티고개 통과후 뒤돌아본 모습

    건물 옆 전붓대로 사이길로 오르면 구덕산으로 오르는 등로길이다.

     

    좁은골목으로 진행하면 우측편에 오작로184번지 7-1 주소판이 나온다.

     

    대티고개에서 오르면 첫번째 골목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

     

    두번째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우측편에 우작로184번지 14란 이정표가 나온다

     

    우작로184번지 14

     

    세번째갈림길 골목에서 좌측방향으로 오르면 좌측편으로 밭과 아파트가 나오고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무명봉이나오고 체뉵시설을 지나면 까치고개에 도착한다.

     

    피오니파크아파트 102동 앞 갈림길

    좁은골목을 빠져나오면 밭과 피오니파크 102동 아파트가 나오고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피오니파크 102동의 모습

     

    등로 좌측편으로 체육시설물이 나오고 직진으로 무명봉 통과

     

    무명봉 갈림길

    피오니파크 102동 앞에서 좌측방향으로 오르면 무명봉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까치고개가 나온다.

    무명봉을 넘어 피오니파크 101동 옆 철재 가이드 라인을 따라 내려오다 우측방향으로 우회하면 까치고개에 도착한다.

     

    아미전원빌라 앞으로 진행한다

     

    정면으로 보이는 무명이 공동묘지가 있는곳이며 조금더 진행하면 우정탑이 나온다

     

    까치고개

    까치고개는  서구 아미동과 사하구 괴정동을 경계하고 있으며 고개 우측방향에는 피오니파크105동이 있고위치하고 도로 사거리 대각선 방면에 주차장이 있다 정면길은 주차장 옆으로 돌아 우회하여 능선으로 오르면된다

     

    까치고개 우측방향에 있는 까치마을 행복센터의 모습

     

    까치고개에서 도로를 건너면 아미까치공영주차장이 나오고 우측편 주차장 옆 임도길로오르면 괴정공동묘지가 나온다 

     

    아미까치공영주차장 옆 임도길과 우측편으로 삼안그린빌라가 보인다

     

    괴정공동묘지 오르면서 뒤돌아 본 까치고개 낙동정맥 마루금의 모습

     

    사진의 좌측방향은 부산시 사하구 괴정동이며 우측방향은 서구 아미동이다. 뒤쪽으로 구덕산과 먼거리 산은 엄광산이다.

     

    아미까치공영주차장 옆 임도길을 지나면 경사지가 나오고 오르면 괴정공동묘지가 나온다.

     

    괴정공동묘지의 모습

     

    괴정공동묘지에서 바라본 부산항, 용두산공원, 영도대교, 자갈치시장이 한눈에 조망된다.

     

    괴정공동묘지에서 바라본 감천만의 모습이 조망

     

    우정탑 통과

     

    우정탑(해발246.7m)

    괴정공동묘지 구역을 지나 247봉에 올라서면 돌로 쌓은 탑이 나오고 돌탑 정상에는 "우정탑"이란 이정석이 설치되어 있었다.

    우정탑을 통과하여 내림막길 30m앞에서 우측 경사지로 내려간다.

     

    우정탑에서 감천고대 해동고등학교까지 세부 지도 

    갈림길 통과

    우정탑정상에서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갈림길에서 직진방향 버리고 우측방향으로 경사지를 내려선다.

     

    극락암위 임도 통과

    우정탑에서 내려섰다가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전환하여 경사지를 내려서면 극락암위 임도에 도착하고 임도 좌측방향 철문이 있는 사이길로 진행하면 된다. 우측방향 아래에는 "대한불교조계종 천마산 극락암"이란 적은 규모의 암자가 있다

     

    극락암위 임도에서 우측방향 큰나무와 철문이 있는 사이길로 진행

     

    부산시 사하구 괴정동일대와, 동주여자대학교, 구덕산에 있는 기상레이더관측소가 조망된다

     

    부산시 시히구 구평동에 있는 감천만 조망

     

    산불감시초소 통과

     

    오작로8번길 - 79 주택지 직진으로 내려서면 성불사가 나오고 정면으로 부영백산아파트와  괴정배수지가 나온다.

     

    부영벽산 블루밍106동을 지나지 않고 우측으로 우회하여 시내구간을 통과한다. 사진의 우측은 괴정배수지가 있는 지역이다

     

    좌측에 "대한불교 법화종 성불사"가 붉은 벽도건물로 되어 있다.

     

    우측편으로 동민월드빌라B동이 나오고 진진으로 내려선다

     

    성불사 아래 시내구간 통과

     

    사진1 :  성불사앞에서 내려와 우회한다. 전면에 "성불사 30m"라는 안내판이 있는데 실제 50m 정도의 거리

    사진2 / 사진3 : 1번사진 위치에서 180m 정도 내려와 삼경수퍼가 있는 골목으로 진입하여 큰 도로가 나올때까지 150m 직진이다.

    사진4 : 6차선 큰 도로 수림약국앞에서 좌측으로 진행하면 진행하면 감천고개 육교가 보인다  

     

    괴정고개

     

    괴정고개 육교 통과후 SK주유소 앞 좌측골목으로 진행하여 오르면 등로상에 건물이 있어 진행하지 못하고 구평동방향으로 진행하다가 능선으로 오른다

     

    괴정 감천고개 육교를 넘어 SK주유소앞 골목으로 진행하면 되지만 건물들어 들어서 등로가 막혀 다시 SK주유소 앞에서 구평동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우측방향으로 오른다.

    능선에 오른후 예비군훈련장, 헬기장, 군부대울타리, 자유아파트 103동,쉼터를 지나면 대동중고등학교 정문 앞에 도착한다.

     

    6339부대 철조망옆 통과

    대동중고등학교 정문 앞에서 뒤돌아본 모습 우측편에 자유아파트 103동이 보이고 좌측편으로 부대가 보인다.

     

    사진1,2 : 부대앞 통과및 부대 철조망옆길 진행

    사진3 : 부대와 관련이 있는지 아파트 건물 이름이 "자유"라 되어 있다. 사진의 녹색띠 건물.

    사진4: 대동 중 고등학교 정문앞을 지나 부산海사랑쪽으로 진행하면 장림 구평고개 4거리가 나온다    

     

    모교앞에서 인증샷

    대동고등학교를 졸업후 처음으로 찾은 모교  감회가 새롭다. 예전에는 대신동 구덕운동장 뒤편에 있었는데 학교터에는 아파트가 들어서고 이곳으로 이전하였다. 해동고등학교도 영도에서 이곳으로 이전하여 지나온 등로상에서 바라보았다.

     

    부일냉동 통과

    대동중고등학교 정문앞에서 내려서면 우측편으로 부일냉동이 보이고 정면으로 장림고개가 나온다.

    장림고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SK주유소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우측능선으로 오르면 된다.

     

    장림고개 도로 건너편에 있는 동양낸장이 보이고 뒤편에 보이는 능선길을 오르면 봉화산정상부가 나온다.

     

     

     

    장림고개 루트

    위치 : 부산시 사하구 구평동과 신평동을 잇는 고개

    장림고개는 왕복 6차선 도로가 지나고 낙동정맥 몰운대 등로길은 횡단보도를 건너 SK주유소 앞에서 좌측방향으로 약150m쯤진행하면 우측편에 리본이 보이는데 그곳은 한창 공원 공사중이라 우측편 능선으로 밀어 올리면 임도가 나오고 다시 오르면 철조망이 나온다 철조망 따라 진행하면 체육시설이 있는 쉼터 안부가 나오고 이곳에서 휴식을 취한뒤 봉화산으로 이어간다.

    장림고개에서 봉화산으로 이어지는 등로길

     

    장림고개 횡단보도를 건넌 후 뒤돌아본 모습

    부일냉동괴 대동고등학교가 보이고 언덕을 올라 군부대 예비군훈련장을 지나 내려서면 괴정고개에 도착하는 코스다.

     

    공원공사중...

    마루금 리본이 있고 공원 건너편으로 태광기전건물 있는  맞은편 능선으로 오르면 되는데 공원에는 공사자제와 미완공중인 도로로 인하여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봉화산 오르면서 바라본 도로 건너편에 있는 태광기전 건물의 모습

     

    공원도로 공사중인 등산로에서 바라 본 감천항의 모습

    바로 아래 동쪽 절개지 아래에 용도를 알수 없는 부지 조성공사중이다 .

     

    공원을 통과하면 철문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경사길 오르면 봉화산 안부 쉼터가 나오고 체육시설물이 있는곳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봉화산 정상부에 삼각점 두개가 있다.

    봉화산 오름길의 모습

     

    체육시설이 있는 안부 쉼터의 모습

    봉화산(408m) 정상 직진에 있는 체육시설물과 쉼터 이곳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봉화산 삼각점이 나오고 삼각점 두개를 찍고 되돌아 와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봉화산(408m)

    두송산이라고 부르는 봉화산(408m) 선사시대 경남지역의 직봉로(直烽路)로서 다대포 두송산에서 받아 황령산(荒嶺山)으로 전달한 봉수였다.

    속칭 봉화산이라고 불리는 해발 408m 의 고지에 흔적뿐이던 것을 1976년에 복원하였다.
    조선시대 부산진(釜山鎭)에서 관할했고 도별장(都別將) 1인, 별장(別將)6인, 봉군(烽軍)100명을 두었다고 한다. 지금은 이곳에다 운동시설물이 설치되어 있고 쉼터에서 바라보면 조망이 좋은곳이 없다.

    봉화산 삼각점

    삼각점에서 다시 체육시설물이 있는곳으로 진행하여 좌측편으로 내려서면 장림고개방면이며 우측편으로 진행하면 구평가구공단이 나온다.

    봉화산에서 구평가구대단지 통과 세부지도

     

    구평가구대단지 진입및 통과

    사진1 : 봉화산에서 내려서면 농지가 나오고 농지사이로 붉은 글씨의 가구단지 글씨를 보고 진행한다. 

    사진2 : 구평가구단지 입구에서 우측방향으로 전환하여 직진으로 진행한다.

    사진3,4 : 구평산마트 입구까지 직진으로 진행하여 구평산마트 사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사진5 : 구평산가구마트 앞에서 좌측으로 우회한다

    사진6 : 가나안 종합포장이란 간판이 있는 붉은 건물쪽으로 우회진입 한다

    사진7  : 4거리 철문전기재료 가게와 동서식당 사이의 골목으로 내려간다

    사진8 : 가구단지를 통과하여 고층의 국제그린아파트를 바라보며 내려간다.    

     

    구평가구대단디 입구 앞

    좌측방향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한다.

     

    구평농장 가구단지 안내도

     

    구평산마트 앞까지 직진으로 진행한다.

     

    구평산마트 앞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

     

    구평산마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맛나식당과 좌측편으로 태광장식이 나오고 내려서면 우측편 코너에 제세산업전기가 있고 삼거리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한다.

     

    제세산업전기 앞 삼거리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동서식당이 나오고 진행하면 좌측편으로 성진산업 입간판이 보이는곳으로 내려서면 된다.

     

    동서식당 통과

     

    성진산업방향으로 진행

     

    유진부엌가구공장으로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계속 우측방햐으로 내려선다.

     

    등로길 내려서면 좌측편으로 조원공업사가 나오고 직진으로 계속 내려서면삼환2차 102동 아파트가 나온다.

     

    내려서면서 뒤돌아본 모습

     

    삼거리 직진으로 내려선다.

     

    삼환2차 102동아파트앞에서 내려서면  도로가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진입하여 내려가면 다송초등학교 입국 나오고 계속 진행하면  다대고개에 도착한다.

     

    삼환2차 102동아파트 도로 건너편에 있는 다대온천의 모습

     

    버스정류장 통과

     

    사하구 도로명주소 안내도 통과

     

    다송초등학교입구 통과

     

    신다대아파트105동 조망

     

    어린이집 통과

     

    도원정형외과 통과

    다대고개(정밀고개) 통과 

    사진1 : 도원교회앞에서 육교를 진입하여 신다대아파트105동 방향으로 이어간다

    사진2: 신다대아파트105동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도로가 나오고 도로 따라 오른다

    사진3 : 도로 우측편으로 한국전력공사가 있는곳 우측편 계단으로 올라서면 서림사 방면 으로 이어진다.

    사진4 : 서림사 사찰건물이 보이는 입구에서 서림사로 들어가지 않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돌탑이 나온다  

     

    다대고개에서 응봉봉수대구간 세부지도

     

    육교위에서 바라본 부산시 사하구 구평동 방면의 모습

     

    육교위에서 바라본 부산시 사하구 장림동과 몰운대방면

     

    육교를 진행하면 뒤돌아본 모습

     

    한국전력공사 통과

    육교를 내려 도로 따라 진행하면 좌측편으로 한국전력공사 건물이 보이고 도로 건너 우측 계단으로 오르면 아미산 서림사가 나오고 서림사 입구 앞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대한불교조계종 아미산 서림사 입간판의 모습

    한국전력공사 우측편으로 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계단을 이용하여 오르면 서림사 입구가 나오고 임구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돌탑이 나온다.

    돌탑을 통과하여 진행하면 안부가 나오고 안부에서 완만하게 오르내림을 하면 등로 가운데 돌무덤 돌탑이 나오고 한차례 치고 오르면 좌측편으로 아미산정상 봉화대가 나온다.

     

    서림사 입구 통과

    좌측방향 해동정사입간판이 있는곳으로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고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돌탑지역 통과

     

    돌탑 통과

    서림사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돌탑이 있는곳을 통과하여 오르면 안부에 도착한다. 안부에서 솔밭 경사지를 오른 후 약간의 안부에 접어들면 돌무더기가 있고 돌무더기 옆으로 진행하여 한차례 치고 오르면 아미산정상 봉화대에 도착한다.

     

    아미산(해발233.7m)

    아미산정상부에 응봉봉수대탑이 설치되어 있고 응봉봉수대의 모형을 2010년1월1일 설치하였다고 적혀있었다,

    응봉 봉수대의 유래

    "봉수대(烽燧臺)는 지금의 다대동 북쪽의 아미산에 있으며 고려시대부터 사용되었던 통신시설(通信施設)이다.봉수는 변경지방(邊境地方)에서 일어난 긴급한 정황(情況)을 중앙 또는 인근의 군사기지에 알리는 군사상의 목적으로 설치 사용된 것이다.
    대략 2∼30리의 거리를 두고 후망(侯望)의 요지가 되는 산봉우리에 봉수대(烽燧臺 : 烽火臺, 煙臺)를

    두어 밤에는 횃불을 밝히고, 낮에는 연기를 내어 인근의 봉수대에 연락했다.
    평시에는 일거(一炬, 낮 : 一煙), 적이 나타나면 2炬(二煙), 적이 경계에 접근하면 3炬(三煙), 경계를

    침범하면 4炬(四煙), 적과 접전(接戰)하면 5炬(五煙)로 차례로 서울까지 연락하였다.
    영남은 다대포가 출발점이 되어 동래 황령산(荒嶺山)을 거쳐 영천, 안동, 충주를 경유 광주(廣州)를 통하여 최종점인 서울 남산까지 이 신호는 전해졌다. 그리고, 이 봉수대를 관할하는 기관은 다대진(多大鎭) 이었다.
    다대포 응봉봉수대를 비롯 황령산(荒嶺山), 계명산(鷄鳴山), 간비오산(干飛烏山), 구봉(龜烽), 오해야(吾海也), 석성(石城) 등 7개의 봉수대는 임진왜란때 왜군(倭軍)의 침입시에 그 기능을 발휘한 바도 있어서 이 유지(遺址)는 국방의식의 앙양(昻揚)이란 점에서 중요시되는 문화유산이다. 다대포 봉수대는 1977년 수축(修築)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아미산 응봉봉수대 삼각점

     

    아미산에서 바라본 조망 안내도의 모습

     

    아미산 봉수대에서 몰운대 방면 조망  

    몰운대/沒雲臺

    부산광역시 중심가에서 남서쪽으로 16km 떨어진, 다대곶 동편에 있다. 다대곶 일대는 해류의 영향으로 짙은 안개가 끼어 시야가 자주 가려지기 때문에 몰운대라 하였다고 한다. 16세기 이전 몰운대는 섬이었다가 점차 낙동강에서 밀려온 토사가 쌓여 육지와 연결된 것으로 추측한다. 이곳은 대마도와 가까워 일본과 교역하는 주요 해상로로 이용되었으며 왜구들이 자주 출몰하여 해상 노략질을 일삼던 곳이기도 하였다. 임진왜란 때 이순신 장군의 선봉장으로서 이곳 앞바다에서 전사한 녹도만호(鹿島萬戶) 충장공(忠壯公) 정운(鄭運)이 이곳 지명을 듣고 운(雲)과 운(運)이 같은 음인 것을 따라 “내가 이 대에서 죽을 것이다(我沒此臺)”라고 하였다는 고사가 있으며, 정운의 순절을 기리는 유적비가 있다. 1983년 북한의 무장간첩선이 이곳으로 침투하다 괴멸되기도 하였다. 최근에도 몰운대 최남단은 군사보호지역으로 일반인 출입이 금지된다. 언덕 전체에 소나무가 숲을 이루고 있지만 예전에는 동백나무가 울창했던 곳이다.

    몰운대조망

     

    아미산정상(해발234m)

     

    아미산(峨嵋山, 해발234m)

    천마산의 연맥에 해당되는 아미산은 부산 서구 아미동 일대에 넓게 자리 잡고 있는 구릉성 산지로 부산 서구 아미동과 부산 사하구(감천동)와 경계를 이루며, 높이는 162.4m이다. 산록이 완만하여 산정의 일부를 제외하면 도시화에 따른 주택지대로 변모하였다. 아미산이란 이름은 본래 이곳의 마을을 '아미골' 이라 부른데서 비롯되나 아미골의 정확한 어원은 알 수 없다. 속설에 의하면 아미골은 움막집이란 의미의 옛말인 애막이 바뀐 것으로 이를 한자식 峨眉로 표기한데서 비롯된다. 또, 이 산의 모습이 마치 미인의 아름다운 눈썹과 같다하여 아미산으로 표기된 것으로 전해지기도 한다. 아미산은 부산항 개항 이후 일본인들에 의해 설치된 공동묘지의 산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아미산은 전부터 잘 알려져 있는 산이기는 하나 문헌에 기록된 바가 없는 작은 산이라서 한자로 어떻게 표기해야 할지 몰라 峨媚山, 峨眉山 혹은 娥眉山, 娥媚山, 蛾眉山 등으로 혼기되어 왔는데, 요즈음은 峨嵋山으로 통일되어 사용되고 있다.

    몰운대 조망

    몰운대는 낙동강 하구의 가장 남쪽에서 바다와 맞닿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16세기까지는 몰운대라는 섬이 있었으나, 그후 낙동강에서 내려오는 흙과 모래가 쌓여 다대포와 연결되어 육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 일대는 지형상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안개와 구름에 잠겨서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몰운대(沒雲臺)라는 이름이 생겨나게 되었다. 다대포와 몰운대는 조선시대 국방의 요충지로서 임진왜란(1592) 때에는 격전이 벌어졌으며, 이순신의 선봉장이었던 충장공 정운도 이 앞 바다에서 500여 척의 왜선을 맞아 힘껏 싸우다가 순국하는 등 역사의 한 장면이 연출된 곳이기도 하다. 정운의 순국을 기리기 위한 사당과 비석이 있는 이 곳은 기암괴석과 울창한 나무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경승지이다.

    응봉봉수대(鷹峰烽燧臺)

    봉수대는 전기통신이 시작되기 이전의 군사통신시설로서 1898(고종35년)까지 사용되었다. 이곳의 봉수대는 1530년(중종 25년)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나 처음으로 사용된 시기는 알 수 없다. 낮에는 짐승 똥으로 연기를 올렸고, 밤에는 횃불을 올려 서울까지 연락되었으며, 평상시에는 1번(一燔, 낮: 一煙) 적이 나타나면 2번, 국경에 근접하면 3번, 국경을 침범하면 4번, 적과 접전하면 5번을 올려 그때그때의 상황을 알렸다. 우리조상들이 외적들의 침략을 당할 때마다 지폈을 이곳 봉수대를 우리가 오늘 복원함은 연연이 이어진 우리민족의 향토 수호정신과 국토방위 정신을 다시 한 번 되새기고, 이를 우리 후손에게 길이 알리고자 함이다.

    1976년 10월 1일 부산광역시장

    아미산 응봉봉수대 앞에서 인증샷

    응봉봉수대 이정석

    아미산 헬기장에서 몰운대 방면 아파트 단지 통과 루트

    아미산 헬기장에서 바라 본 응봉봉수대..

    응봉봉수대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간다

     

    봉수대에서 내려서면 임도 직진에 있는 이정표 : 응봉봉수대 0.9km, 체육공원 1.8km, 대건아파트 0.3km

    홍티고개에서 롯데캐슬 아파트 단지 통과 순서 

    홍티고개에서 다대포해수욕장까지는 고층아파트 단지로 이루어져 있고 왕래하는 주민에게 다대포해수욕장을 물어서 진행하는 것이 더 편하다.

    사진1: 롯데캐슬 아파트 입구 관리사무소와 여인상을 통과한다.

    사진2 :  좁은길로 직진한 후 좌측으로 우회한다

    사진3 : 단지내 상가지역 통과

    사진4 : 버스정거장을 통과하면 몰운대그린비치114동이 보인다.

    사진5 : 도로를 건너 다대포해수욕장 방면으로 진행. 원모텔앞을 지나간다

    사진6 : 도로의 "몰운대" 이정표를 보고 삼거리에서 좌회전 진입  

    홍티고개 입구 진입

    홍치고개

    홍치고개라 불리는 이곳 정맥길은 완전히 아파트 단지로 변했다. 12만평에 달하는 롯데 캐슬 아파트 단지가 맥길을 완전히 끊어버렸다. 할 수없이 아파트 단지를 통과하고 상가를 거쳐 계단을 내려 온 후에 몰운대 성당을 지나 다대포 해수욕장 앞 도로까지 진행한다.

    다대포항 조망

    롯데캐슬 아파트 사이 도로를 따라 게속진행하면 삼거리가 나오고 삼거리에서 대각선방향 몰운대그린비치 109동 아파트 앞 도로로 진행한다.

    몰운대그린비치 109동 아파트에서 진행하면 다시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방향 114동 앞으로 이어간다.

     

    몰운대그린비치 안내판(관리사무소 200m)

    도로 건너편에 있는 안내판을 사진에 담아보며 우측방향으로 진행한다.

    좌측편으로 상가건물이 보이고 직진으로 진행한다.

    삼거리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대우아파트가 나오고 계속 진행하면 해수욕장이 펼쳐진다.

    몰운대아파트 단지 배치도

     

    다대 대우아파트 통과

    좌측편으로 맘모스사우나가 보이고 계속하여 직진으로 내려서면 몰운대해수욕장이 나온다.

    몰운대 다대포해수욕장 도착

    부산 몰운대는 부산에서 알아주는 비경중의 하나이다. 부산 최남단 끝에 위치하며 낙동강의 하류에 위치하여 삼각주를이룬 곳입니다. 몰운대의 총면적은 506천㎡로1972년 6월 26일 지방문화재 기념물 제27호로 지정되었다. 다대포 해수욕장을 지나 외딴섬인 몰운대는 부산의 3대(臺)라 하면 태종대,해운대,몰운대 중의 하나이다. 이 3대는 먼저 울창한 숲이 있고, 기암괴석이 있으며, 하늘과 바다를 만리까지 볼수 있다고 한다.

    몰운대는 원래 섬이었다. 1863년 일본 통신사 조엄이 해상일기에 해운대와 몰운대를 구경한 뒤 비교하여 이르기를 [몰운대는 신라 이전에는 조그마한 섬으로 고요하고 조용한 가운데 아름다워 아리따운 여자가 꽃속에서 치장을 한 것 같다]고 했다. 다대포 몰운대 해넘이 낙조는 전국에서 유명하다.
    남해에서 일출과 일몰을 한 지역에서 볼 수 있는 곳 이기도하다.
    천혜의 몰운대 해안은 그야말로 말이 필요 없는 바로 선경(仙境)이다.
    기기묘묘한 바위와 돌, 모래와 바다 그리고 은빛 파도....
    바람, 구름, 안개, 태양....
    이런 자연의 모체들이 만들 낸 조화와 신비로움....
    그래서 몰운대는 부산팔경 자연유산으로 지정되어있다.

    다대포해수욕장 연안정비사업 안내판의 모습

    몰운대 조망

    다대포 상징 마크

    몰운대(沒雲臺) :

    몰운대는 낙동강 하구의 가장 남쪽에서 바다와 맞닿는 곳에 자리잡고 있다. 16세기까지는 몰운대라는 섬이 있었으나, 그후 낙동강에서 내려오는 흙과 모래가 쌓여 다대포와 연결되어 육지가 되었다고 한다. 이 일대는 지형상 안개와 구름이 자주 끼어 앞이 잘 보이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안개와 구름에 잠겨서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몰운대(沒雲臺)라는 이름이 생겨나게 되었다. 다대포와 몰운대는 조선시대 국방의 요충지로서 임진왜란(1592) 때에는 격전이 벌어졌으며, 이순신의 선봉장이었던 충장공 정운도 이 앞 바다에서 500여 척의 왜선을 맞아 힘껏 싸우다가 순국하는 등 역사의 한 장면이 연출된 곳이기도 하다. 정운의 순국을 기리기 위한 사당과 비석이 있는 이 곳은 기암괴석과 울창한 나무들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경승지이다.

    몰운대 이정석에 입맞춤

    태백 천의봉에서 다대포 물운대까지 먼나먼 마루금을 1년1개월 이라는 기간을 소비하면서  이제야 몰운대 바다 밑으로 내려선다 山自分水領이라 하였던가 이제는 틀린말이다 난공사로 인하여 절개지가 생겨 물을 건너야 하고 등로가 없어 임도로 걸어야하는 지금 세월이 흐르면 낙동정맥 맥도 온전하지 못할것 같다 그래도 낙동정맥은 외진곳에 있어 그나마 다행이지만 한남정맥과 한북정맥은 수도권에 있어 조만간 세월이 지나면 마루금이 없어질것 같다

     

    몰운대 안내도

    몰운대(沒雲臺)

    부산광역시 지정기념물 제27호

    몰운대는 16세기까지 몰운도(沒雲島)라는 섬이 있었으나, 그 후 낙동강에서 내려오는 흙과 모래가 퇴적되어 다대포와 연결된 부산의 전형적인 육계도(陸繫島)이다.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에는 그 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몰운대라고 하였다.

    이곳의 남단에는 파도의 침식으로 형성된 해식동(海蝕洞)이 발달되어 있고, 배후인 육지 쪽에는 수려한 모래해안이 있어 해수욕장으로 유명하다. 예로부터 몰운대는 우거진 숲, 기암괴석, 파도와 수려한 모래밭으로 빼어난 경승지로 이름이 나 있었다. 이곳의 대표적인 수종은 해송인데, 그 사이에는 활엽수 등 약90여 종이 자라고 있다. 그리고 삼광조, 갈매기 등 많은 종류의 새들을 볼 수 있는데 이들 가운데 상당수는 철새들이다.

    몰운대에는 다대포 객사(客舍)와 임진왜란 때 이순신(李舜臣) 장군이 부산포 해전에서 승전을 거둘 때 큰 공을 세우고 순절한 정운공 순의비(鄭運公殉義碑)가 있다.

    -SANY0031.JPG

    몰운대 입구에 들어서서 조금 가면 몰운대를 노래한 시비가 하나 있다.

     

    -SANY0032.JPG

    시비의 구체적 내용은 사진과 같다. 내용설명은 아래 사진에 있다.

    임진왜란에서 공을 세운 정운장군은 이순신 장군의 우부장이었습니다. 1592년 부산포해전에서 일본 군함

    500척과 싸워 큰 승리를 거두고 본인은 정작 장렬하게 전사했습니다. 이후 200여년이 흘러 1798년 정조

    22년에 8대손 정혁이 다대첨사로 왔을 때 그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정운공순의비’를 세운 것입니다.

      浩蕩風濤千萬里(호탕풍도천만리) 호탕한 바람과 파도가 천만리 이어지는데,

      白雲天半沒孤臺(백운천반몰고대) 하늘가 몰운대는 흰구름에 묻혔네.

      扶桑曉日車輪赤(부상효일차륜적) 새벽바다 돋는 해는 붉은 수레바퀴 이니

      常見仙人賀鶴來(상견선인하학래) 언제나 신선이 학을 타고 오는구나

    -SANY0033.JPG

    시의 내용이 부산 끝 바다를 암시하고 있다.

    정운공순의비 조금 못 미쳐 문화재가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다대포객사죠. 객사는 조선시대 관아의 하

    나로,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보관하고, 고을의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하여 망배를 드리던

    곳입니다. 사신의 숙소로도 사용했던 곳이기도 하죠. 이곳은 개방되어 있습니다.

     

    다대포객사(多大浦客舍)

    부산시 사하고 다대동 산 144. 부산시 지정유형문화재 3호 

    조선 후기 다대첨절제사영(多大僉節制使營)에 있었던 객사. 첨사는 정3품의 당상관.다대포는 옛부터 왜구를 막기위한 군사적요충지, 객사는 조선시대 관아건물의 하나로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를 보관하고,고을 수령이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해 망배를 드리던 곳이며 사신의 숙소로 쓰이기도 했다함.

    객사는 고려·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설치하였던 것으로 관사 또는 객관이라고도 한다. 객사는 고려 전기부터 있었으며 외국 사신이 방문했을 때 객사에 묵으면서 연회도 가졌다. 조선시대에는 객사에 위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예(망궐례)를 올리기도 하였으며 사신의 숙소로도 이용하였다. 이 객사를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조선 순조 25년(1825)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다대초등학교 안에 있던 것을 1970년 현 위치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벽이 없이 기둥으로만 이루어진 이 객사는 일반적으로 중앙의 정당과 좌우 익실로 이루어진 다른 객사들과는 달리 정당만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1980년 기둥과 마루를 보수하고 단청공사와 현판을 설치하였다. 옛부터 다대포는 왜구를 막기 위한 군사요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임진왜란 이후 부산진과 함께 다른 진보다 더욱 중요시되었다. 다대포 객사는 이 지역에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은 조선시대 객사건축물이다

    부산광역시 지정 유형문화재 제3호

     

    객사는 조선시대 지방 관아건물의 하나로 각 지방의 행정중심지에 있었으며, 수령

    부임할 때 의식을 치르고 또 임금의 상징인 전패(殿牌)를 안치하여 초하루와 보름에 대궐을 향하여 망배(望拜, 임금이 있는 대궐을 향해 절하는 것)를 드리던 곳 이며, 사신의 숙소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현재 다대포 몰운대 내에 있는 객사는 조선후기 다대포 일원의 방어를 담당하던 다대첨절제사영(多大僉節制使營)의 건물 중 하나이다.

    다대포를 비롯한 남해안은 예로부터 왜적들의 침략이 심하였던 곳이다.
    조선 세종때 삼포의 개항으로 남해안의 방어가 중요시되어 부산포와 제포(薺浦)에 첨절제사영을 두고, 경상좌도에는 다대포 등 10포(十浦)에 만호영(萬戶營)을 두었다.
    이때 영은 장림포(長林浦)에 있었으나 언제 다대포로 옮겨졌는지는 알 수 없다.

    명종 이후 수군제도의 변경에 따라 진(鎭)?보제(堡制)가 실시되자 부산포와 다대포는 방어의 중요성이 인정되어 진이 되었다.

    임진왜란 이후 다시 군제의 개혁으로 다대진은 부산진, 두모진(豆毛鎭), 개운진(開雲鎭), 포이진(包伊鎭), 서생진(西生鎭), 서평진(西平鎭)과 함께 경상좌도의 7진의 하나가 되었다.

    다대진은 부산진과 함께 중요시 되어 다른 진보다 2배의 병선을 보유하였을 뿐만 아니라, 첨사는 정3품 당상관의 높은 벼슬이 주어졌다.

    다대포객사는 언제 창건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으나 다대진이 설치된 임진왜란 이후로 추정되며, 건립 이후 여러 차례 고쳤다가 1825년(순조 25)에 마지 막으로 중수한 것이다.

    정면 5칸, 측면 2칸 규모의 홑처마, 팔작지붕 건물로서 벽체가 없이 기둥만 남아 마치 누각 건물처럼 보인다.

    객사 건물에는 가운데 정당과 좌우에 날개처럼 익실(翼室)을 두는 것이 일반적인 경우임을 볼 때 현재 남아 있는 정당 외에 좌우에 익실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대부분의 관청 건물이 그러하듯이 다대첨사영 역시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초등학교로 전용되면서 다대포객사도 학교 건물로 사용되었으며, 1970년 현재의 자리에 이전?복원하였다.

    그러나 이 객사를 원 자리인 다대초등학교에 그대로 두었더라면 교육적인 효과가 보다 컷을 것으로 생각된다.

    객사 안내문

    객사는 고려·조선시대에 각 고을에 설치하였던 것으로 관사 또는 객관이라고도 한다. 객사는 고려 전기부터 있었으며 외국 사신이 방문했을 때 객사에 묵으면서 연회도 가졌다. 조선시대에는 객사에 위패를 모시고, 초하루와 보름에 궁궐을 향해 예(망궐례)를 올리기도 하였으며 사신의 숙소로도 이용하였다.

    이 객사를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하게 알 수 없으나, 조선 순조 25년(1825)에 다시 지었다고 한다. 현재 남아있는 건물은 다대초등학교 안에 있던 것을 1970년 현 위치로 옮겨 복원한 것이다.

     

    앞면 5칸·옆면 2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벽이 없이 기둥으로만 이루어진 이 객사는 일반적으로 중앙의 정당과 좌우 익실로 이루어진 다른 객사들과는 달리 정당만이 남아있는 것으로 보인다. 1980년 기둥과 마루를 보수하고 단청공사와 현판을 설치하였다.

    옛부터 다대포는 왜구를 막기 위한 군사요지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으며, 임진왜란 이후 부산진과 함께 다른 진보다 더욱 중요시되었다.

    다대포 객사는 이 지역에 하나밖에 남아 있지 않은 조선시대 객사건축물이다.

     

    다대포 몰운대 자갈마당

    몰운대 자갈마당에서 바라 본 쥐섬

    시인 정일근님 '몰운대 저녁노을'에서 이렇게 노래했다.

    몰운대 저녁노을이 다대포를 덮을 때 강과 산의 작별을 가슴 치며 바라보다
    바다가 먼저 붉게 울어, 하늘의 눈시울이 덩달아 붉어지는 것도 보지 못한다면 그런 어둔 눈으로 내게 묻지도 마라

     

    몰운대는 유래에서 보듯이 육지에서 돌출된 섬으로 육지로 들어오는 모든 배들을 관찰하기 좋은 지역이어서, 군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지역입니다. 그래서 군사통제지역으로 오랫동안 민간출입이 금지됐던 곳입니다. 지금도 전체를 개방한 것은 아닙니다. 입구에서 절반정도는 공원으로 조성, 많은 사람들이 출입하며 전경을 즐기지만 절반 정도 들어가면 군 부대 철조망이 쳐져 있어 출입을 제한하고 있습니다. 군부대 안에 임진왜란에 큰 공을 세운 정운장군비석이 있습니다. 아쉽게도 일반인들은 아직 자유롭게 볼 수 없죠.

    몰운대 동쪽 경도

     

    몰운대라는 이름이 유래한 돌출한 지형. 산자락이 바다 속으로 급격히 스며들어간다  
    몰운대의 유래는 16세기까지 몰운도라는 섬이 하나 있었으나, 그 후 낙동강에서 내려오는 흙과 모래가 퇴적되어 다대포와 연결된 부산의 전형적인 육계도입니다.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에는 그 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몰운대라고 합니다. 옛날에는 이 섬도 전부 산 능선과 연결됐다. 지금은 다 잘렸지만. 이곳의 남단에는 파도의 침식으로 형성된 해식동이 발달되어 있고, 배후인 육지쪽에는 수려한 모래해안이 있어 해수욕장으로 유명합니다. 예로부터 몰운대는 우거진 숲, 기암괴석, 파도와 수려한 모래밭으로 빼어난 경승지였습니다. 이곳의 대표적인 수종은 해송입니다. 그리고 삼광조, 갈매기 등 많은 종류의 텃새와 철새가 서식하고 있습니다.

    몰운대 쥐섬 배경으로 인증샷

    낙동정맥 마루금을 이곳에서 최종 마무리 한다.

    1년1개월 한달에 두번 토요일 산행으로 진행하여 청명한 부산 다대포 몰운대 해변가에서 자축하면, 오늘까지 아무런 사고 없이 이곳까지 인도해 주신 모든님께 감사의 말씀 전하며 함께하신 대원들에게 고마운 마음 보냅니다

    건강하시고 다음 어느산에서 만날지 모르지만 안녕을 기원하며 함께한 그랜드산악회 임원진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지면으로 전하며 후기을 종료합니다.

     

    낙동정맥 구간 모습

     

    백두산에서 남으로 뻗어내린 백두대간이 피재에 이르러 나뉘어지면서 대간은 서쪽으로 꺾어지며

    함백산(1573m)으로 맥을 잇고, 또 한 줄기는 동남쪽으로 갈라져 나가면서 백병산(1259m)으로 맥을

    이어나간다. 낙동강과 동해바다의 사이에 있는 이 마루금은 다대포 몰운대 낙동강 하구까지 뻗어 나가

    는데 낙동강을 기준하여 동쪽에 있는 줄기가 낙동정맥이다.

     

    낙동정맥...

    “경주와 상주”앞 글자를 따와서 경상도가 되었고  상주의 옛 이름인 “가락(駕洛)“이라 불리었고 흐르는

    물의 동쪽에 있는 산줄기라 하여 불리어진”洛東正脈“ 우리 조상들의 한 많은 삶과 哀歡이 교차하는 그 산줄기 이제 沒雲臺에서 1년1개월 이라는 세월과 노고를 마무리 하는 순간이다.

    일명 태백산맥으로도 불리는 낙동정맥은 도상거리411.9 km이고, 실제거리는 약 700km가 넘는다.

    매봉산 천의봉 북쪽에서 시작하여, 유령산, 우보산, 백병산, 구랄산, 면산, 묘봉, 용인등봉, 삿갓봉, 진조산,

    통고산, 칠보산, 검마산, 백암산, 독경산, 맹동산, 봉화산, 명동산, 대둔산, 주왕산, 침곡산, 운주산,

    봉좌산, 도덕산, 삼성산, 어림산, 남사봉, 관산, 사룡산, 백운산, 고헌산, 가지산, 능동산, 간월산,

    신불산, 영축산, 정족산, 천성산, 원효산, 운봉산, 계명산, 금정산, 백양산, 엄광산, 구덕산, 봉화산,

    아미산, 몰운대 등이며 그 중 최고봉은 태백의 백병산(1259.3m)이다.

     

    정녕 낙동정맥 마루금이 마지막이란 말인가...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온몸이 갈기 갈기 찢기고 거동조차 할 수 없는 고사목이 되어 간다.

    그래도 한줄기 정신만큼은 또렷이 남아 태백 천의봉에서 시작하여 삼승령 눈길에서 중간 포기하고 내려오던일...부산 백양산 애진봉 내려서면서 봤던 환상의 일출 그리고 다대포 몰운대까지 고통속 환희가 떠오르며 사계절의 변화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간다.

     

    201112 백두대간 천의봉(매봉산 1303m) 동쪽줄기 1145봉에서 출발하여  1년1개월만에  부산 다대포 몰운대에 도착 낙동정맥을 마무리 하는 순간 지나온 시간을 뒤돌아보면 낙동정맥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 소중한 감동의 연속 낙동정맥에는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이름없이 쓰러져간 민초들의 한이 담겨있고 고단한 살림살이를 정직하게 일궈나가는 일꾼들의 땀이 묻혀있는곳이다.

    산은 삶의 일부이고, 죽어서 묻히는곳이다.

    또한 산은 수많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려놓은 현장이었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山自分水領의 이치를 몸으로 느끼며 걸어온 마루금 그러나 내가 만난 산은 높은산과 낮은산이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저 홀로 우뚝하지 않은 높은산, 거기에 주눅들지 않은 낮은산이 보이지 않은 손으로 감싸주고 있었고 낮은산이 몸을 낮취 높은산을 오르는 길을 안내하고, 높은 산마루가 허리를 낮춰 길을 열어주면서 산객을 맞이한다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는 산의 모습을 닮고 싶고 비바람 속에서도 함부로 자리를 옮기지 않은 나무처럼 살고 싶다.

     

    낙동정맥을
    진행하면서 많은 도움을 주신 고마운 분들이 여러분 계신다

    그랜드산악회총대장님 지금은 회장으로 활동하시는 스텔라님, 원더우먼총무님, 후미대장님 등등

    처음부터 표지기로 길을 안내하여 주었던 많은 선답자들, 수많은 후기글에 도움을 주신 범여님,하쿠나마타타님, 남파님등 고마운분들이 너무나 많다

     

    이분들이 천의봉에서 몰운대까지 완주하면서 많은 도움을 주신분들 중 한분들이다

    함께 진행한 대원들 중 어려울때 동료처럼 감싸주신님, 힘들고 지칠때 함께 고난을 이겨내주신님, 새로운 출발을 위해 도움을 주신님, 이곳까지 무사히 진행할수 있게 도움을 주신님등 서면으로나마 고마운의 마음을 표시해본다.

    다시 한번더 낙동정맥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물신양면으로 도움을 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고난과 역경 그리고 동료애 살아가면서 많은 도움이 될것같다

    잊지못하고 그리워질 낙동정맥 대원들 그대들의 앞길에 무궁한 영광이 있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낙동정맥 완주를 하면서...

     

    아름(아르미)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