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7. 16. 23:00ㆍ★ 백두대간/- ★ 백두대간 후기글
◈ 산 행 지 :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 양양군 서면 / 홍천군 내면
◈ 산행일시 : 2022년 7월23일(금) ~ 24(토) 토요무박산행
◈ 산행코스 : 진동삼거리-조침령-756봉-옛조침령(쇠나들이 고개)-황이리 갈림길-1,061봉-
연가리골 갈림길-1,020봉-968봉-왕승골 갈림길-1,016봉-갈전곡봉-갈전약수 갈림길-
구룡령 옛길-1,066봉-1,121봉-1,100봉-구룡령
◈ 산행시간 : 시간분(점심 및 휴식시간 포함)
◈ 산행거리 : 약 22.8km(마루금 21.3km + 접속구간 1.5km), (GPS 25.73km)
◈ 산행인원 : 32명
◈ 산행날씨 : 구름이 많고 보슬비 내리는 날씨
◈ 상세안내
조침령터널 사무소 주차장 도착
산행시작
임도길 따라 진행(접속고간 1.5km)
조침령 이정석(단체 인증샷)
철조망 열고 잘 정돈된 등로길 따라 진행
796봉
802봉
쇠나드리고개(옛 조침령, 길주의-우측 민박촌 하산길 버리고 좌측이 대간길)
암봉 및 전망대
830봉
황이리 갈림길(길주의-좌측 황이리 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바람불이 삼거리(산행팁-우측에 샘물 및 야영장)
080봉 및 전망대
1059봉(길주의-우측 연가리골 및 좌측의 연내골 길 버리고 직진이 대간길)
연가리골 갈림 삼거리(산행팁-우측에 샘물, 길주의-우측 연가리골 길 버리고 좌측이 대간길)
951봉 및 헬기장
연가리골 샘터(산행팁-우측에 샘물, 길주의-우측 연가리골 하산길 버리고 좌측이 대간길)
1020봉 및 헬기장
968봉 및 전망대
968봉
948봉
왕승골안부(산행팁-우측에 샘물, 길주의-좌측 갈천리 왕승골 길 버리고 우측이 대간길)
1016봉
1107.4봉
11063봉
명지리 갈림길(길주의-우측 명지리쪽 길 버리고 좌측이 대간길)
샘물 (산행팁-1100.3봉과 1121봉 사이의 우측에 식수 구할 수 있는 샘물)
갈전곡산(해발1,240m/직진 가칠봉방향 버리고 좌측이 대간길)
갈천약수터 삼거리(좌측 갈천약수터방향 버리고 직진이 대간길)
구룡령옛길정상
안부에서 좌측방향 나무계단으로 내려서면 56번 국도에 도착
구룡령 도착(해발1,013m/구룡령이정석/동물이동통로/산림박물관/삼각점)
산행종료
◈ 에필로그
지난주 4산 종주(불암산, 수락산, 사패산, 도봉산) 후 맞이하는 백두대간길...
베낭을 메고 문밖을 나오니 장마비가 하염없이 내리고 우중산행을 위해 마음을 단단히 먹고 나왔지만
왠지 모르게 약해지는 이내 마음...
사당역애 도착하여 버스에 탑승하니 먼저 오신 산우님께서 반겨주시고 잠시후 한분, 두분 출발시간에 맞추어
버스에 오른다. 인원점검과 동시에 버스는 출발하고 복정역에서 일부 대원을 태우고는 조침령으로 향한다.
갈수록 빗줄기가 굵어지고 잠을 청해 보지만 설잠을 자고는 내리천휴게소에 도착한다. 약30여분 휴식을 취하고는 조침령으로 향하는 버스안에서 대장님께서 산행설명과 주의사항을 말씀하시고 버스는 약40여분을 달려
오늘 날머리지점인 조침령터널 사무소 공터에 정차한다.
베낭과 장비를 챙겨 버스에서 내려서니 서울에서 내렸던 빗줄기와는 다르게 보슬비가 내린다.
정말 다행이다는 혼자의 말을 하고는 접속구간 임도길을 걸어 조침령이정석까지 올라 단체 인증샷을
남기고는 조침령에서 구룡령까지 산행이 시작된다.
오늘 진행할 구간은 약 23km를 넘는 구간이지만 산 정상 이름이 하나도 없는 곳이며 봉우리 명칭이 붙혀 있는 것은 갈전곡봉이 오늘 산행에서 유일하다.
백두대간길에 만나는 가장 오지구간으로 삼둔(살둔(생둔), 월둔(달둔), 귀둔), 사가리(아침가리,명지가리,연가리,곁가리)가 있는 인제 기리면과 홍천군 내면을 거치는 이 구간은 하늘을 볼 수 없을 정도로 숲이 우거져 있어 힐링구간이지만 봉우리가 많아 그리 만만한 코스는 아니다.
조침령에서 구룡령까지 구간은 크고 작은 봉우리만 대략 40여개 있으며 롤러코스트 처럼 봉우리를 오르 내려야만 날머리인 56번 국도가 지나가는 구룡령에 도착 할수가 있다.
오늘 진행하는 산행은 우중산행으로 조망이 하나도 없으며 다행이도 작은 산죽이 등로길옆으로 이어져 슬픈마음을 조금이나마 위로를 해주는것 같다
조침령터널(해발 616m/418도로) → (1.2km) → 조침령(鳥寢嶺 해발770m) → (2.2km) → 쇠나드리고개
(해발 713m)→ (2.8km) → 바람불이삼거리(해발 750m) → (4.8km) → 연가리골안부(해발 940m) →
(3.5km) → 왕승골삼거리(해발 930m)→ (3.4km) → 갈전곡봉(葛田谷峰/해발 1,204m) → (2.9km) → 구룡령
옛길정상(해발 1,121m) → (1.3km) → 구룡령(九龍嶺/해발 1,013m/56국도)
조침령터널방향의 모습
조침령터널은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조침령 5520)에 위치하고 있으며 좌측편으로 곰배령과 단목령으로 가는
설피밮길이며 조침령터널은 직진으로 진행하면 된다.
강원도 인제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한다
강원 인제(麟蹄)는 한자로 ‘기린발굽’이란 뜻이다. 왜 하필 기린발굽일까.인제군의 모양이 기린발굽을 닮아서일까? 하기야 고구려 땐 ‘돼지족발’을 뜻하는 저족현(猪足縣)이었으니 그럴지도 모른다. 어쨌든 인제는 초식동물 발굽처럼 폭에 비해
남북이 길쭉한(72.1km) 장방형이다.
인제는 1000m 넘는 산이 무려 96개나 된다. 사방에 우뚝우뚝 기둥처럼 서 있다. 설악산 향로봉 점봉산 방태산 소뿔산
주억봉 구룡덕봉 가칠봉 한석산 매봉 안산 가리봉 가마봉….그 아래로 800m 이상 봉우리 200여 개가 첩첩이 틈새를
메우고 있다. 마치 호리병 속에 꽉 갇혀 있는 모양이다.
밖으로 한 번 나가려 해도 진부령(529m) 미시령(826m) 한계령(935m) 곰배령(1164m) 단목령(760m) 북암령(925m) 조침령(770m) 같은 큰 고개를 넘어야 한다. ‘하늘이 3000평’이라는 말이 실감난다. 산이 높으니 하늘이 손바닥만 하게 보일 수밖에 없다. 인제는 전국에서 두 번째(1위 홍천군)로 넓지만, 인구밀도는 km²당 20명으로 가장 낮다.
조침령터널사무소 앞의 모습
조침령터널사무소 주차장에서 조침령으로 이어지는 임도길의 모습
구 조침령(鳥寢嶺 해발 770m) 정상석의 모습
옛 조침령에는 우마차가 지날 정도로 넓었던 길의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1.산경표나 중보문헌비고에 나타나는 조침령(曺寢嶺)은 무리조(曺), 잘침(寢)재령(嶺)이다.(무리지어 자고 넘는 다는 뜻이고)
2.고지도에 나타나는 조침령(阻沈嶺)은 막힐조(阻),베개침(沈)재(嶺)이다.(험한 고개가 가로막고 있으니 하룻 밤 유숙하여 넘어가는 고개라는 뜻 일게다.)
3.이정석에 쓰여 있는 조침령(鳥寢嶺)은 새조(鳥)잘침(寢) 재령(嶺)이다.(고개가 험하여 새(鳥)들도 자고 넘는 다는 뜻이고 보면 뜻은 같으나) 1과 2는 같은 곳에 위치하고 3의 위치는 다른 곳에 위치한다. 1과 2는 쇠나드리에서 윗서림으로 넘어가던 길이었고(이 길은 현재의 조침령에서 구룡령방향1.5km지점에 위치한다) 3은(김재규의 사단장 재직시 3공수부대원들에 의해 개설되었다고 마을사람들은 증언한다)현재의 조침령을 말하는 것으로 원래지명은 "반편고개" 또는 "반부득고개(서림에서 조침령으로 넘어가는 중턱에 대략 5만여평 되는 소반처럼 넓은 평지가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라 하였다. 현재의 조침령은 역사가 20여년 밖에 되지 안했지만 그 당시 군인들의 힘들었던 고난에서 병사들을 새(鳥)로 비유한 것 같고 옛 조침령은 九折羊腸 먼 길이라 서림이나 쇠나들이에서 하룻 밤 유숙하여 이른 새벽길 나서야 해질 녁 목적지에 도착했을 험하고도 먼 길이었을 것이다. 쇠나들이 살고 있는 원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쇠나들이” 에 마방이 있었고 소금을 싫은 우마차가 조침령을 넘나들었다고 하니 “쇠나들이”는 소(소를 “쇠”로 발음함)가 넘나들던 고개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어떤 이는 조침령의 바람이 소도 날려버릴만큼 거센 분다하여 "쇠나들이"라 한다.
※ 조침령은 所冬羅嶺(曺枕嶺兄弟峴)소동라령과 함께 성종24년 미시령길이 열리기 전 서울로 가던 중요역할을 하였으나 미시령이 개통되면서 오색령(所冬羅嶺寒溪嶺)과 함께 폐쇄되었다.
조침령(鳥寢嶺 해발 770m)
같은 고개를 曺沈嶺-阻沈嶺-鳥寢嶺(曺沈嶺-阻沈嶺은 옛 조침령을 말하고 鳥寢嶺은 군부대가 개설한 도로를 말 하나 그 아래 터널이 뜷려 鳥寢嶺도 옛길이 되고 말았다)등 시대마다 다르게 표기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는데 깊이 있게 들어가 보면 국어로는 해석할 수 없는 부분이 있으나 뜻이 전하는 것이 같은 것 같으면서 전혀 다르다.
산경표에 “曺寢嶺”으로 표기되어 있고 해동지도와 대동여지도 등, 고지도에는 阻沈嶺으로, 현재의 이정표에는 새조(鳥)자를 써 鳥寢嶺으로 표기하고 있다. 이 고개는 예로부터 영서와 영동을 이어주는 중요한 구실을 하던 고개로 한계령(산경표에는 오색령으로 표기되어 있음)과 함께 중요한 길목으로 여겨 형제현(兄弟峴)이라 하였다. 오색령을 넘어왔던 사람들과 흘리령을 넘어 온 사람들이 만나 내림천을 따라 한양으로 넘나들이 하던 길이었으니 당시 사람들에게는 중요한 루트였던 것이다.
옛 조침령에는 우마차가 지날 정도로 넓었던 길의 흔적이 아직까지 남아 있다.
1.산경표나 중보문헌비고에 나타나는 조침령(曺寢嶺)은 무리조(曺), 잘침(寢)재령(嶺)이다.(무리지어 자고 넘는 다는 뜻이고)
2.고지도에 나타나는 조침령(阻沈嶺)은 막힐조(阻), 베개침(沈)재(嶺)이다.(험한 고개가 가로막고 있으니 하룻 밤 유숙하여 넘어가는 고개라는 뜻 일게다.)
3.이정석에 쓰여 있는 조침령(鳥寢嶺)은 새조(鳥)잘침(寢) 재령(嶺)이다.(고개가 험하여 새(鳥)들도 자고 넘는 다는 뜻이고 보면 뜻은 같으나) 1과 2는 같은 곳에 위치하고 3의 위치는 다른 곳에 위치한다. 1과 2는 쇠나드리에서 윗서림으로 넘어가던 길이었고(이 길은 현재의 조침령에서 구룡령방향1.5km지점에 위치한다) 3은(김재규의 사단장 재직시 3공수부대원들에 의해 개설되었다고 마을사람들은 증언한다)현재의 조침령을 말하는 것으로 원래지명은 "반편고개" 또는 "반부득고개(서림에서 조침령으로 넘어가는 중턱에 대략 5만여평 되는 소반처럼 넓은 평지가 있어서 붙여진 지명이라 한다)"라 하였다. 현재의 조침령은 역사가 20여년 밖에 되지 안했지만 그 당시 군인들의 힘들었던 고난에서 병사들을 새(鳥)로 비유한 것 같고 옛 조침령은 九折羊腸 먼 길이라 서림이나 쇠나들이에서 하룻 밤 유숙하여 이른 새벽길 나서야 해질 녁 목적지에 도착했을 험하고도 먼 길이었을 것이다. 쇠나들이 살고 있는 원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쇠나들이” 에 마방이 있었고 소금을 싫은 우마차가 조침령을 넘나들었다고 하니 “쇠나들이”는 소(소를 “쇠”로 발음함)가 넘나들던 고개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어떤 이는 조침령의 바람이 소도 날려버릴만큼 거센 분다하여 "쇠나들이"라 한다.
※ 조침령은 所冬羅嶺(曺枕嶺兄弟峴)소동라령과 함께 성종24년 미시령길이 열리기 전 서울로 가던 중요역할을 하였으나 미시령이 개통되면서 오색령(所冬羅嶺寒溪嶺)과 함께 폐쇄되었다.
조침령지억석에서 선두조 인증샷
조침령(鳥寢嶺 해발 770m) 안내도
삼거리에서 양양군 서면으로 넘어가는 령으로 하도 높아서 새도 하루에 넘지 못하고 넘는다 하여 지은 이름이다.
조침령 이정표
조침령에서 구룡령으로 가는 입구 철조망 앞에 설치되어 있는 이정표이다
등로길 이정표
부드러운 등로길 진행
철조망을 지나 봉우리 몇개를 넘어서 진행한다.
바람불이(해발 750m)
바람이 심하게 불어 붙여진 이름으로 풍취동이라고도 한다.
쇠나드리 고개
강원도 양양군 서면 서림리와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이곳을 요즘은 옛 조침령(鳥寢嶺)이라 부르는데
이곳이 오리지널 조침령이다
옛 조침령은 九折羊腸 먼 길이라 서림이나 쇠나들이에서 하룻 밤 유숙하여 이른 새벽길 나서야 해질 녁 목적지에 도착했을 험하고도 먼 길이었을 것이다.
쇠나들이 살고 있는 원주민의 증언에 의하면 “쇠나들이” 에 마방이 있었고 소금을 실은 우마차가 조침령을 넘나들었다고 하니 “쇠나들이”는 소(소를 “쇠”로 발음함)가 넘나들던 고개로 이해하면 될 것 같다.
"소 풀이 많아서 그 풀을 뜯어먹기 위해 소가 나들이 나간다"는 뜻에서 ‘쇠나들이’로 부른다"고도 하며, “높고 깊은 골짜기를 넘는 바람소리가 쇳소리가 나서 쇠나드리라고 한다” 하며, “강풍에 먼나들이를 떠나듯 황소(牛)도 바람에 날아 간다”는 뜻의 쇠나드리. 또는 새나드리, 바람불이, 우탄동(牛灘洞)으로도 불리는 쇠나드리는 가을날의 억새가 장관
쇠나드리(해발 713m) 갈림길 이정표
쇠나드리 갈림길에서 우측편으로 등길이 있는데 등로 아래에 있는 쇠나드리 마을로 내려서는 길이며 마루금은 좌측 2시방향으로 오르막을 치고 오르면 되는데 어둠속에 어디가 어딘지 구분 할수가 없다
① 진흙리 동쪽 냇가에 있는 마을로 마을 안에 있는 내(川)의 여울이 급하고 바람이 세어서 소가 건너다니기 힘들었다 한다. ② 소 풀이 많아서 그 풀을 뜯어 먹기 위해서 소가 나들이 간다라는 뜻에서 쇠나드리라 했고, 또 강풍에 먼 나들이 떠나듯 소도 바람에 날아간다고 해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한다.
등로길 이정표
등로길 이정표
등로길 이정표
백두대간 안내도
등로길 이정표
951.6m봉 삼각점
산죽으로 이루어져 있는 등로길의 모습
등로길 이정표
조침령에서 구룡령으로 이어지는 구간에서 유명세를 한몸에 찾이하는 나무의 모습
아름다운 산죽 군락지의 모습
등로길 이정표
등로길 이정표
등로길 이정표
연가리골 갈림길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가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지인 연가리골로 내려서는 등로길이며 연가리는 아침가리에 이어 연이어 있는 골짜기라 붙혀진 이름으로 담배를 만드는 연초를 많이 재배하였다고 해서 붙혀진 이름이라고 한다
삼둔사갈(三屯四耕)이란 조선시대의 예언서인 정감록에 “난리를 피해 숨을 만한 비장의 피난처로 지칭한 ‘삼둔사가리’를 일컫는 말로, 둔이란 강(江)이나 내(川)등 물이 있는 곳의 가장자리, 물가의 둔덕진 곳(둔치)을 말하며, 가리(갈)란 사람이
살만한 터, 다시 말해 밭을 일굴 만한 평평한 산기슭의 터를 의미한다.
정감록에는 살둔이 삼재불입지처(三災不入之處). 즉 물, 불, 바람. 달리 표현하면 흉년, 전염병, 전쟁의 삼재(三災)가 들지 않는 복된 땅이라고 한다. 산이 높으면 골이 깊듯이 높고 깊은 산세처럼 울창한 숲에서 깨끗한 물과 맑은 공기를 만들어주니 전염병이 돌리 없고, 깊은 골짜기로 끊이지 않고 흐르는 물은 가뭄을 없애며, 산은 첩첩하고 골은 겹겹하여 들머리는 좁고 그 안은 넓어져 외부의 접근도 어려우니 피병지(避病地)라 아니 할 수가 없을 것이다. 하지만 좋게 말해 삼재가 들지 않는 복된 땅이라고는 하지만 한번 들어가면 쉽게 돌아 나올 수 없는 곳이기도 하다.
삼둔이 홍천군 내면 쪽에 위치해 있는 반면 사갈은 인제군 기린면에 위치해 있다. 사갈 가운데 연가리는 진동리에 있고, 적가리와 아침가리, 명지가리는 모두 방동리에 속한다. 이 가운데 현재 사람이 사는 마을은 살둔, 월둔, 연가리, 아침가리 정도다.
연가리 이정표
삼둔 사가리의 전해오는 유래
강원 인제 땅에는 독특한 지명이 있는데 기린(麒麟)면이다. 기린이 우리 땅에 들어온 것은 일제시대 때 창경궁을 동물원인 창경원으로 만들면서이다. 그런데 어떻게 지명이 기린일까. 현지 향토사학자들은 진짜 기린이 아니라 사슴을 형용한 지명이라고 풀이한다.
지금은 찾을 수 없지만 인제에는 사슴이 많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사람의 흉한 손길을 피해 사슴들이 몸을 피한 곳이다. 워낙 골이 깊고 산이 험하기 때문이다.사슴 뿐 아니라 사람도 피했다. 기린면 인근의 방태산, 구룡덕봉 등에는 삼둔 오가리라는 땅이 있다. 정감록에는 나라에 난리가 나도 생명을 부지할 수 있는 곳으로 기록돼있다. 예로부터 왕을 저버렸거나, 왕으로부터 버림을 받은 사람들이 숨어 들어 살았다.
삼둔: 살둔(생둔), 월둔(달둔), 귀둔.
사가리: 아침가리,명지가리,연가리,곁가리.
4가리
아침가리 :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조경동(朝耕洞)
명지가리 :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구룡덕봉 남동쪽 기슭이며 아침가리 물길 최상단부다.
적가리 : 인제군 기린면 방동리 방태산 자연휴양림이 있는 곳. 곁가리라 하기도 한다.
연가리 : 인제군 기린면 진동리
등로길 우측편으로 벌목이 환창인 현장의 모습
무슨 사유로 벌목을 하는지 모르겠으나 송전철탑을 세우기 위해 이런짓을 하는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구룡령으로 진행한다.
등로길 이정표
968.3m 봉 삼각점
등로길 이정표
등로길 이정표
등로길 이정표
연가리방향의 모습
잠시 비가 그치고 햇살이 나오면서 하늘이 맑아지는데 나무숲속이라 주변의경취를 볼수가 없다.
등로에서 바라본 홍천군 내면의 산그리메
삼둔사가리중에 사가리는 인제군 기린면에 있지만 삼둔(三屯)은 홍천군 내면에 있는데 이곳 내면의 면적은 어찌나 큰지
왠만한 郡의 전체 면적과 맞먹는다.
'삼둔'은 홍천군 내면의 살(생)둔, 월둔, 달둔으로
살둔(生屯) : 홍천군 내면 율전2리. 원당초등학교 생둔분교(폐교 후 수련원)
월둔(月屯) : 홍천군 내면 광원2리. 내린천 상류와 자운천 하류가 만나는 합수부
달둔(達屯) : 홍천군 내면 광원1리. (계방산 북쪽 소대산에서 내려온 계곡)
‘살둔’이란 이름은 “이곳에 오면 산다”라는 뜻으로 임진왜란과 한국전쟁 당시에도 난리를 겪지 않을 정도로 오지(奧地)여서 단 한사람의 희생자도 없었다는데서 유래했으며 조선시대 세조집권을 반대하며 단종 복위에 가담했던 사람의 일부가 훗날을 기약하면서내린천을 거슬러 올라 이곳에 머물렀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왕승골 갈림길(해발 930m)
“왕승골갈림길”은 양양군 서면 갈천리 왕승골과 인제군 기린면 조경동을 잇는 고갯마루이다. 조경동(아침가리골)은 대간마루금 좌측에 있는 계곡으로 여름계곡트래킹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정표에는 조경동이라 표기하고 있다. 조경동(아침가리골)은 강원도 인제에 위치해 있는 계곡으로 구룡덕봉(1,388m) 기슭에서 발원하여 20㎞를 흘러 방태천으로 들어간다. 상류는 월둔·명지거리·방동약수를 잇는 도로와 인접해 있지만 하류로 갈수록 한적하며 원시림을 느끼게 하는 골짜기를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 사람의 손때가 묻지 않아 맑은 물에서는 열목어가 살고 있고, 수달(천연기념물 330)·족제비·하늘다람쥐(천연기념물 328) 등 희귀동물을 볼 수 있다. 조경동의 원명은 아침가리로, 한자로 표기하여 아침 조(朝), 밭갈 경(耕) 자를 써서 조경동(朝耕洞)이 되었다. 아침가리란 산이 높고 험해서 아침에 잠시 밭을 갈 정도의 해만 비치고 금새 져버릴 만큼 첩첩산중이라 해서 지어졌다. 수만평에 이르는 지역이 야생화 천국이다.
난을 피하고 화를 면할 수 있는 땅, 삼둔사가리의 중심으로 손바닥을도 하늘이 가려질 만큼 작은 공간, 20여㎞에 이르는 계곡에는 팔뚝만한 열목어가 노닐고 인적이 드문 탓에 동물들의 천국이 되는 곳, 아침가리는 우리 땅의 진정한 참 멋이 살아 숨쉬는 그런 곳이다. 한때 화전민들이 살았지만 지금은 폐고된 방동초등학교 조경분교와 텅빈 마을만이 옛 흔적을 보여주고 있다.
왕승골 사거리 이정표
왕승골사거리는 강원도 양양군 서면 갈천리 왕승골과 인제군 기린면 조경동을 잇는 고개이며 왕승골은 밭농사를 주로
하는 농촌지역으로 농촌경제가 향상되지 못하였을 때 화전민의 생활이란 극히 궁한면을 면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춘궁기에는 갈근(칡뿌리)으로 근근이 호구하여 오는 실정에서 전천이 갈분일색이었다고 하는데서 갈천 또는
속칭 “치래”라고도 한다
이곳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왕승골이 나오고 우측으론 조경동이 나온다. 인제에서 경작지는 “100평 200평…” 식으로 세지 않는다. 보통 ‘가리’나 ‘둔(屯)’을 쓴다. ‘가리’는 골짜기 곳곳의 ‘밭갈이할 만한 땅’을 말한다. 아침가리라는 이름은 높은 산봉우리에 묻혀 아침나절 잠깐 비치는 햇살에 밭을 간다고 해서 라기도 하고, 밭이 적어서 아침나절이면 다 갈수 있다 해서 붙은 이름이란다. 한자로는 ‘朝耕洞(조경동)’이라고 한다. 연가리는 옛날 담배농사(연초)를 많이 했던 밭이다. 적가리는 가을에 단풍이 붉게 드는 곳이다.
왕승골사거리에 설치되어 있는 백두대간 안내도
1,022.6m 삼각점(△현리426 2005 재설)
벌목된 등로길의 모습
등로길 이정표
등로길 이정표
등로길 이정표
아름다운 등로길의 모습
갈전곡봉 안내판
정상에는 갈전곡봉 안내판 이정목이 서있고 그 옆으로 나무로 만든 의자가 설치되어 있어 산꾼에게 쉼터를 제공 하고 있다.
우측편 능선으로 진행하면 가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나오고 그 끝에는 방태산이 있다.
조침령에서부터 갈전곡봉까지 진행해온 인제군 기린면과 이별을 하고 홍천군 내면으로 접어든다.
이곳에서 우측편으로 가면 가칠봉을 거쳐 방태산이 나오는데 방태산보다는 그 아래로 흐르는 내린천(內麟川)이 더 유명하다. 남한 지역에 오염되지 않은 청정계곡 제1순위로 꼽히면서 여름철에는 가히 북새통을 이룬다. 점봉산에서 시작한 방태천이 북에서 내려오고, 오대산에서 발원한 계방천과 자운천이 남쪽을 휘감으며 서로 합하여 북류하다가 마침내 소양강이 된다.
“내린천”이란 이름은 홍천군 내면의 내(內)자와 인제군 기린면의 린(麟)자를 합쳐 지어졌으며, 옛날 이 물길로 벌목된 나무들이 뗏목으로 만들어져 한양 마포나루까지 운반되었다고 하는데 그 물길은 우리같은 마루금파들에게는 어렵지않게 그려진다. 내린천 물은 소양강이 되고, 소양강은 북한강이 되었다가 양수리 두물머리에서 비로소 한강이 된다
갈전곡봉(葛田谷峰 해발 1,204m)
구룡령(九龍嶺)과 조침령(鳥寢嶺)을 잇는 백두대간의 능선에 위치한 갈전곡봉(葛田谷峰/1204m)은 강원도 인제군 기린면과 홍천군 내면에 걸쳐 있다. 서북 방향을 뻗고 있는 능선은 가칠봉, 응복산, 구룡덕봉 등의 준봉들을 이루면서 방태산과 연결된다. 산자락에는 방동약수, 개인약수 등 유명약수가 많고, 왕승골, 아침가리골, 연가리골, 조경동계곡 등의 깊은 골짜기도 많이 형성되어 있다. 가칠봉(柯七峰 /1,240m)·사삼봉(私參峰/1,322m)·응봉산(應峰山/1,016m) 등과 함께 태백산맥의 일부를 이룬다. 또한 소양강의 지류인 방대천(芳臺川)을 비롯하여 계방천(桂芳川)·내린천(內麟川) 등의 발원지를 이루고 있다.
갈전곡봉(葛田谷峯 해발1,240m)
강원도 양양군 서면과 인제군 기린면 그리고 홍천군 내면에 3郡과 3面이 만나는 봉우리로 원래 지명은 “치밭골봉“이며
"치밭“은 ”칡밭”의 변음으로 이두문자인 갈전(葛田)으로 표기하고 “谷“은 골짜기를 말하고 ”溪”로 나타낸다
소양강의 지류인 방대천(芳臺川)을 비롯하여 계방천(桂芳川), 내린천(內麟川) 등의 발원지이기도 한 봉우리로 이 지역사람들은 ‘치밭골’이라 부르는데 아마도 예전에 이곳에 칡이 많이 있었던 모양이다 오늘 산행 코스중 가장 높은 봉우리이면서 유일하게 이름이 붙은 봉우리이다.그리고 산 이름이 하나도 없는 코스가 오늘 대간길이다.
갈전곡봉(葛田谷峯 해발1,240m) 정상석에서 인증샷
갈전곡봉(葛田谷峯 해발1,240m) 정상석에서 인증샷
갈전약수터 갈림길 이정표
갈전곡봉에서 좌측편으로 약10여분 진행하면 갈천약수터 갈림길에 도착하고 이지점에서 좌측편으로 2.3km 내려서면
갈전약수가 나온다 마루금은 직진으로 진행하면 된다.
갈천약수에서 흘러내린 물은 동해바다로 들어가지만 삼봉약수와 방동약수에서 흘러내린 물은 내린천을 거쳐 한강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러니까 서울에 사는 사람이나 홍천 ․ 인제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물(氵)을 같이(同) 사용하는 한동(洞)네 이웃이라 할 수 있다. 아마도 행정단위의 洞 또한 여기서 유래하지 않았을까하는 추측을 해본다.
양양삼거리 이정표
양양삼거리 이정표
구룡령 옛길 이정목의 모습
구룡령 옛길은 백두대간의 영서와 영동을 연결하는 옛길 가운데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전돼 있는 길로 꼽힌다.
구룡령의 옛길이 문헌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872년경으로 임산물과 자철광을 운반하기 위해 개통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영동과 영서 사람들이 설악산·점봉산·오대산 등 백두대간 장벽으로 나뉘어 산지와 해안 지역을 오가는 것이 힘들었던 시절 두 지역을 연결해주는 거의 유일한 통로였다.
대부분이 구룡령 하면 지금 차가 다니는 56번 국도가 넘나드는 고개를 원래의 구룡령길이라 생각한다. 이 도로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자원 수탈 목적으로 구룡령 고개에서 1km가량 떨어진 곳에 개설한 비포장도로가 지난 1994년 포장된 것이다. 일제 당시 일본인들이 지도에 원래의 구룡령의 위치가 아닌, 차가 다니는 비포장도로를 구룡령으로 표기하면서 사람들은 구룡령의 위치를 잘못 알기 시작했다.
더욱이 1994년 이후에는 모든 지도와 행정 표기에서 구룡령의 위치가 현재 차가 다니는 지점으로 정리됐다. 백두대간을 연구하고 관리하는 정부나 민간단체, 학자들조차 구룡령길을 잘못 알고 있었던 것이다.
구룡령 옛길정상
구룡령 옛길에는 조상들이 어떻게 길을 다녔는지를 보여주는 원형이 남아 있다고 한다.
요즈음 사람들은 영서와 영동을 차로 넘으면서 차창 밖으로 보이는 백두대간의 험한 지형을 실감한다.
그래서 이런 급경사의 산지에서 말이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을 상상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길을 걸어보면 구룡령 옛길에서 노새와 조랑말 등이 큰 등짐을 지고 다녔다는 사실을 믿을 수 있게 된다.
그만큼 옛길은 힘겨운 고개를 가장 힘이 덜 드는 형태로 만들어놓았다.
비탈길이어도 최대한 경사를 누인 길이 자연스럽게 형성된 것은 누군지도 모를 옛사람들의
지혜가 세월과 함께 쌓인 덕분이다. 어떤 빼어난 등산로도 따라올 수 없을 만큼 자연 속에
파고드는 절묘한 흐름이 길 구석구석에 배어 있다.
옛사람들은 요즘 일부 등산꾼들처럼 싸우는 듯이 산길을 걷지는 않았던 것 같다.
어차피 갈 길이니 최대한 여유 있고 천천히 걸음이 이어지도록 길을 냈던 셈이다.
그러다 보니 숲의 원형이 훼손되지 않으면서도 다니기에 편안한 길이 되었다.
선조의 경험과학이 녹록지 않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구룡령옛길정상 이정판
구룡령 옛길에는 굽이굽이 민중들의 꿈과 희망, 아픔과 좌절도 녹아 있다. 특히 일제시대 때 숯을 구웠던 재탄장과 함께 철광의 흔적이 남아 있다. 농경사회의 시작과 함께 철기문화가 열리면서 양양 일원으로 공급한 철로 만들어진 농기구의 원재료를 구룡령의 옛길 한쪽에서 생산해냈던 것이다. 그래서 지금도 철을 캐던 동굴이 그대로 남아 있다. 광산이 일제 강제수탈의 현장이었던 점도 흔적을 통해 확인된다.
숲으로 펼쳐진 구룡령 옛길의 또 다른 상징은 금강소나무다. 1980년대 말 경복궁 복원 과정에서 많은 금강소나무가 베어진 뒤 국내에는 금강소나무가 찾아보기 힘들 정도로 드물다. 무리를 이룬 200~300년 된 금강소나무들의 붉은 기운이 하늘로 뻗어 있다. 굵은 금강소나무의 표본인 곳이라 해 ‘솔반쟁이’라는 지명이 남아 있다. 젊은 청년 죽은 터는 ‘묘반쟁이’, 장례식의 하관 때 회다짐을 하기 위해 쓰던 횟가루를 생산한 곳이라는 뜻의 ‘횟돌반쟁이’ 등의 지명도 남아 있다.
구룡령옛길정상 이정판에서 인증샷
1,101.4m 삼각점
1122봉
구룡령 바로 위 능선의 모습
구룡령 내려서는 나무계단의 모습
구룡령(九龍嶺: 해발1,013m)
강원도 양양군 서면에서 홍천군 내면의 경계 능선에 있는 고개로 강원도를 있는 5개의 嶺(진부령, 미시령,한계령, 구룡령, 대관령)중에 가장 높은곳에 위치한 고개로 56번 국도가 지나는데 원래 지명은 장구목이다.
구룡령(九龍嶺/해발 1,013m, 56국도)
구룡령은 명개리와 갈천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아흔아홉 고개가 용이 승천하는 형상이라 하여 붙여진 지명이고 구룡령의 옛길이 문헌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872년경으로 임산물과 자철광을 운반하기 위해 개통한 것으로 기록하고 있다. 1994년에 아스팔트 포장된 현재의 구룡령은 일제 강점기에 자원찬탈을 목적으로 개설 된 도로를 확포장 한 것으로 옛날 사람들이 넘나들던 옛 구룡령은 현재 샛령으로 불리는 곳이다. 신구룡령에는 동물 이동통로가 있고 휴게소가 있었으나, 운영이 되지 않아 산림청에서 인수하여 "산림박물관"으로 사용하고 있다.
구룡령 동물이동통로의 모습
도로가 나기 전 강원도 홍천에서 속초로 넘어가던 고개이며 일만 골짜기와 일천 봉우리가 일백 이십 여리 고길을 이룬 모습이 마치 아홉 마리 용이 지난듯하다 하여 구룡령이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우리가 지금 구룡령이라고 알고 있는 56번 국도가 지나는 고개는 원래의 구룡령이 아니다. 이 도로는 일제 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자원 수탈 목적으로 원래의 구룡령 고개에서 1km 가량 떨어진 곳에 개설한 비포장도로이다. 그 후 1994년 이 도로를 포장하여 오늘에 이르는 것이다.
일제 당시 일본인들이 지도에 원래 구룡령의 위치를 표기하지 않고 자신들이 만든 비포장도로를 구룡령으로 표기하면서 위치가 잘못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다. 더욱이 1994년 이후에는 모든 지도와 행정 표기에서 구룡령의 위치가 현재의 고개로 표시되었으니 원래의 구룡령을 찾지 않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 아니할 수 없다.
구룡령 56번 국도의 모습
구룡령 옛 이정석의 모습
구룡령 옛 이정석 뒷편의 모습
구룡령 수준점 안내판
구룡령 수준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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