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10. 31. 13:06ㆍ★ 9 정맥/- 3. 금북[완료]
금북정맥 16구간(금강산~모래기재)
산 행 지 : 충남 서산시 인지면, 팔봉면 / 태안군 태안읍 금강산(316m), 장군산(200m), 오석산(169m)
금북정맥 16구간
산행일시 : 2014년 11월1일(토요 당일산행)
산행코스 : 쥐뿔이고개(서각재)-295봉-금강산-팔봉지맥분기봉-장군봉-200봉-서산시 예비군훈련소-
수랑재-갈림길-물래산-100봉-140봉-우회차도 (지하차도)-팔봉중고교-공동묘지-이동통신
기지국-삼원농장-굴포운하지-하창마을-정맥길 우회로 도로길(중말-도루재-소한말-북창)-
붉은재-오석산-130봉-시멘트도로-241.7봉-백화산-태을암-모래기재(태안여고)====(6시간)
산행시간 : 10:05~16:05 (6시간, 식사 및 휴식포함, 후미기준)
산행거리 : 약 19.2Km(정맥 18.1Km, 접속구간 1.1Km), GPS 21.6Km
산행날씨 : 맑음
산행인원 : 44명
산행코스 및 구간거 : 쥐뿔이고개-0.9/1.1(20분)-금강산-2.15-2.5(40분)-수랑재-3.2/3.7(60분)-팔봉
중학교-3.7/4(60분)-붉은재-1.1/1.2(30분)-오석산-3.1/3.5(1시간20분)-241.7봉
(전망대)-1.2/1.4(40분)-백화산-1.6-1.8(40분)-모래기재(태안여고)===========
17/19.2km(6시간10분)
구간 |
거리(km) |
출발시간 |
소요시간 |
비고 |
쥐뿔이재 |
- |
10:05 |
- |
해발160m, 시멘트임도, 느티나무 |
금강산 |
1.1 |
10:25 |
20분 |
해발316m, 정상석, 삼각점(서산 27), 삼각점안내판 |
수랑재 |
2.5 |
11:09 |
44분 |
해발60m, 예비군훈련장입구,서산시 팔봉면과 인지면의 경계,77번 구도로와 32번 국도 |
팔봉중학교 |
3.7 |
12:14 |
1시간5분 |
해발39m, 중식(15분), 중학교 관통하여 건물 뒤편으로 이동통신탑을 보고진행 |
붉은재 |
4 |
13:17 |
1시간3분 |
해발51m, 우측편 도일목장이 있고 20m 진행후 좌측편 능선으로 진행 |
오석산 |
1.2 |
13:45 |
28분 |
해발169m(일명:흑석산), 산불감시초소, 삼각점(서산 311), 삼각점안내판 |
흥주산 |
3.5 |
14:54 |
1시간9분 |
해발241.7m, 전망대와 이정표,의자 4개,삼각점(서산 26), 삼각점안내판,백화산솔바람길구간안내판 |
백화산 |
1.4 |
15:26 |
32분 |
해발275m, 정상석과 烽火臺址,백화산관광안내판, 이정표, 쌍괴대(雙槐臺), 산불감시초소 |
모래기재 |
1.8 |
16:05 |
39분 |
해발60m, 충남 태안읍 삭선리와 남문리를 잇는 603번 도로, 태안종합학습센터, 태안여고 |
마루금거리 |
18.1 |
|
6시간 |
|
접속 거리 |
1.1 |
|
|
|
총 거리 |
19.2 |
|
|
|
GPS거리 |
21.6 |
|
|
|
백화산-모래기재 고도표
금북정맥16구간[금강산-장군산-수랑재-오석산-백화산-모래기재] 고도표
백두산에서 지리산을 향하여 줄기차게 달려가던 백두대간이 속리산 천왕봉에서 가지를 쳐 안성의 칠장산까지 한강과 금강의 물줄기를 가르며 이어간 한남금북정맥이 안성 칠장산에서 다시 가지를 쳐 금북정맥과 한남정맥으로 가른다. 금북정맥은 경기도 안성의 칠장산(491.2m)에서 충남 태안의 태안반도 안흥진까지 금강의 윗쪽에서 물길을 모으는 산줄기로 거리는 약 267km에 달한다. 산경표에서는 칠현산에서 분기한다고 되어 있지만 칠현산군에 칠장산도 포함되고 실제 도상거리도 2km밖에 되지 않은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에 산경표와 현대의 지리가 맞아 떨어지는 곳이다.
금북정맥은 분기점 칠장산에서 칠현산 - 서운산 - 성거산 - 국사봉- 광덕산 - 백월산에서 방향을 전환하여 오서산 - 보개산 - 수덕산 - 가야산 - 성왕산 - 백화산 - 안흥진으로 약 267km를 이어간다. 금북정맥이 금강 북쪽의 분수령이 되려면 금강하구로 향하여야 하는데 백월산에서 방향을 틀어 태안 앞바다 안흥진으로 향하는 바람에 금남정맥이 금강하구로 향하지 않고 부여 구드레나루로 향한 것 같이 금강을 수계로 하는 남북의 산줄기 명칭에 논란이 있다. 산경표 원작자의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이는 여러 정맥 중에서 특이한 정맥에 속한다. 하여 산자분수령의 원리를 적용하여 정확하게 물길의 흐름을 구분하려 하는 사람들은 이 맥의 이름을 새로 지어 부르려 하지만 그것보다는 산경표상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것이 옳지 않을까.
백두대간은 험한 산줄기가 굳건한 성이되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각 나라의 경계선이었던데 비해 한남금북정맥의 주변은 백제, 고구려, 신라의 각축장이되었다. 한편 금북정맥은 금강의 수계를 형성하면서 조선시대에 차령을 중심으로 그 문화적 교류가 남북으로 나누어 지다 호서지방으로 접어들면서 해양문화와 육지문화가 서로 교류하고 외국의 문물까지 교역하는 길이 된다. 서산 마애삼존불과 태안 마애삼존불은 중국 불교 문화의 영향을 받아 그 길목에 형성된 문화들이다. 또한 천주교의 유입이 이곳 안흥진을 경유하여 들어왔기 때문에 금북정맥 인근에는 순교지가 많다.
* 종주에 필요한 지형도 도엽명;
- 1:50,000 지도 : 근흥, 만리포, 서산, 당진, 홍성, 청양, 보령, 예산, 전의, 평택, 진천, 안성 (12매)
- 1:25,000 지도 : 근흥, 소원, 태안, 서산, 운산, 해미, 덕산, 홍성, 라원, 청양, 대흥, 유구, 대술, 광덕,
전의, 의당, 천안, 병천, 서운, 만승, 죽산 (21매)
* 금북정맥 대표 산 (도상거리 : 약 267km)
* 칠장산-칠현산-덕성산-무이산-서운산-성거산-태조산-경암산-고려산-국사봉-봉수산-천방산-극정봉-장학산-국사봉-금자봉-문박산-천마봉-오봉산-백월산-오서산-남산-일월산-홍동산-수덕산-뒷산-가야산-일락산-상왕산-동암산-은봉산-간대산-성상산-금강산-장군산-물래산-오석산-백화산-퇴비산-구수산-전막산-지령산-안흥진
금북정맥 개략도
[금북정맥]
한남 금북정맥의 끝인 경기도 안성시 칠장산(491m)에서 태안반도의 안흥진(安興鎭)까지 금강의 서북쪽을 지나는 산줄기로 칠장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칠현산(516m), 덕성산,서운산, 성거산(579m), 태조산, 국사봉, 봉수산 등 충남을 가로질러 청양의 백월산(395m)에 이르고 여기에서 다시 서북으로 뻗어 오서산(791m)·보개산(274m), 일월산(395m), 수덕산(495m), 가야산(678m)에 이르러 다시 서쪽으로 뻗어 성왕산 오석산, 백화산, 오석산, 지령산을 거친 뒤 태안반도의 끝인 안흥진에서 그 맥을 다 하는 약 280km에 달하 는 산줄기이다.
[산행상세안내]
쥐뿔이재(해발160 m) , 시멘트 도로
성황당 느티나무(여체(女體)모습)
갈림길, 우측방향으로 진행
거북바위 통과
295봉 갈림봉 통과, 이정표(팔봉산(8봉), 우측방향으로 진행
금강산(해발316 m}정상석,삼각점(서산 27), 삼각점안내판
갈림길, 암봉앞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
팔봉지맥분기점, 좌측 희미한 등로길 진행(우측방향을 팔봉산 방향)
장군산(해발200m),'금북정맥을 종주하시는 산님들 힘내세요' 바랑산님 표, '장군산' 낡은 코팅표지
하마바위(암봉),수량재가 있는 32번 국도 조망,좌측방향 급경사 내리막으로 진행
서산종합훈련소 입구
2차선도로 만나 좌측방향으로 진행
홍성중기 건물방향로 진행
32번 4차선도로의 지하차도로 통과후 우측방향으로 진행
차리 버스정류소
수량재(해발60 m),송림씽크 입간판
송림씽크 입간판 조금 진행후 전붓대 좌측 방향으로 진행
민가에서 우측방향밭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
임도길 좌측방향으로 진행
임도 갈림길에서 좌측방향, 다시 임도 갈림길에서 우측방향 후 다시 좌측방향으로 진행(옆에 축사가 있음)
차리배수지(철조망 옆으로 진행)
멋진 암봉(벌목지대 통과, 산불지대 통과)
물래산(해발140 m), 우측방향으로 진행
100봉 통과 암봉 옆에 나무로 묶어놓는 간이 나무의자
140봉,암릉 옆 나무에 한현우님의 '진산' 낡은 소형간이코팅지
임도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
32번도로의 지하차도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
팔봉중학교 정문을 통과(팔봉중학교 뒤편으로 진행)
시멘트도로로 계속 진행
공동묘지 통과
이동통신중계탑(해발39 m) 통과
시멘트도로 삼거리 우측방향으로 진행
배 과수원 통과
인평3리 버스정류소 삼거리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
글포운하지 안내판, 굴포운하마을 안내도판,이후 서산시에서 태안군으로 진입
느티나무 쉼터, 구세군 진장교회 통과
인평3리 다목적회관, 인평3리버스정류소(하창)
도내1리(도루째)버스정류소, 오거리에서 좌측 10시방면 축사가 있는 길로 진행
도내1리(소한말)버스정류소에서 직진, 소한말의 '말'은 마을의 방언
도내1리(종말)버스정류소에서 직진
계수농원 통과
다리앞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
도내2리(북창)버스정류소에서 좌측 11시방향으로 진행
우측편으로 벧엘목장과 목장간판을 통과
우측편으로 도일목장 간판을 통과
붉은재(해발 51m),'황토가 많아 붉게 보인다'고 지어진 이름, 좌측방향으로 진행
임도길 궁덩이 지역 통과후 우측편 숲속으로 진행
능선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
태풍으로 나무가 쓰러진 지역 통과
좌측으로 제주고씨묘지 통과
129봉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통과
170봉 통과
좌측편 김해김씨 합장묘 통과 임도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
오석산(해발169m),산불감시초소, 삼각점(서산 311), 삼각점안내판,준희님의 정상표지,직좌측방향 진행
새로 조성된 묘지을 지나 임도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
등로길 주변으로 고사리밭 통과
옥녀봉(해발14 m), 한현우님의 '옥녀봉' 소형간이코팅지,좌측방향 내리막길 진행
강실고개,해발76 m, 시멘트도로, 직진으로 진행
농작물있는 밭 통과(단호박 재배)
갈대지역 통과(벌목지대)
흥주산갈림봉,나무의자,한현우님의 '흥주산' 소형간이코팅표지,좌측방향으로 내림길 진행
흥주산(해발1.247m),전망대와 이정,/의자 4개,삼각점(서산 26),삼각점안내판,백화산솔바람길구간안내판
흥주산갈림봉 복귀, 좌측방향 내리막으로 진행
등로 이정표(백화산정상 0.7 km)
시멘트도로(해발155m),이정표 2개(백화산(정상) 0.6 km),야생동물표지판과 돌탑,도로건너 계단위로
백화산 갈림길,01-05 119, 112 입석안내판,
백화산 갈림길능선 이정표(태을암 0.6 km),좌측방향으로 진행(우측방향은 군부대 주둔
백화산(해발284 m),정상석과 烽火臺址,백화산관광안내판, 이정표 2개(태을암 0.5 km, 0.4 km)
쌍괴대(雙槐臺),바로 아래 산불감시초소,나무계단으로 진행
갈림길이정표(대림아파트, 태안초등학교 1 km),우측방향 계단으로 진행,
시멘트도로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
태을암 관람
태을암 경내, 일소계(一笑溪)와 태을동천(太乙洞天) 바위에 음각되어 있고, 마애삼존불과 그 안내판
태을암(해발209 m),대웅전, 삼성각(三聖閣), 태안 마애삼존불
우측편으로 백조암 통과
우측편으로 백화산 솔바람길 구간 안내도가 있는 우측편으로 진행
갈림길 등로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
낙조봉(해발188m),안내판, 자연석에 동경대(同慶臺) 음각
등로길에서 우측편 숲속으로 진행
2차선 도로 진행
태안종합학습센터
모래기재(해50m), 태안여고 앞에서 산행종료
억새가 만발한 등로길과 서해바다가 보이는 태안반도...
금북정맥 마루금 맥 잇는날 하늘에서 가을비가 내린다는 일기예보에 긴장을 하면서 날씨을 주시한다. 마루금도 이제 얼마남지 않고 이번에 진행하는 등로길은 잡풀과 잡목이 많이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구간인데 가을비까지 내리면 어려움이 한층더 심해진다. 걱정을 하면서도 일기예보을 주시하는데 산행하는 서산일대는 오전 9시까지 비가 내리고 그 이후부터는 한창하다는 주간예보을 보고는 퇴근후 베낭을 챙겨 거실에 두고 일찍 잠을 청해본다.
버스는 잠실에서 출발하여 천호, 강동, 상일에서 대원들을 태우고는 중부고속도로을 잠시 탔다가 외곽순환도로상 복정역 상부에서 마지막 대원을 태우고는 경부고속도로을 거쳐 봉담-동탄간고속도로상 오산휴게소에서 아침식사 및 휴식을 취한다.
아침식사 및 휴식을 마치고 버스에서 회장님으로부터 산행 설명이 이어지고 버스는 다시 서오산JC에서 평택-화성간고속도로로 변경하여 다시 평택JC에서 평택-제천간 고속도로로 전환한다. 평택방향으로 가다가 평택JC에서 서해고속도로에 접속하고는 서산IC을 빠져 32번, 29번 국도을 이용하다가 634번 지방국도상에 있는(팔봉면 금학3리 버스 정거장 부분에서 남쪽으로 분기하는 서각산길 1차선 도로를 따라 금학리 산291번지 ) 쥐뿔이고개에 도착한다.
쥐뿔이고개는 지난구간에 지나간 구간이라 생소하지가 않고 고개 바로 위에 있는 희귀한 느티나무가 인상에 남는다. 오늘 산행은 금강산 팔봉지맥 분기봉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만 들머리지점이 마땅하지 않아 다시 이곳 지뿔이재에서부터 금강산 정상까지는 복습하면서 걷고 금강산에서 장군산-수랑재-몰래산-팔봉중-붉은재-오석산-백화산-태음산을 거쳐 모래기재가 있는 태안여고앞에서 종료하게된다.
쥐뿔이고개에 내려 오늘 진행할 들머리 지점을 확인하고는 베낭을 챙겨 대원들가 함께 기나긴 여정길에 접한다.
집뿌리재(해발160m)
위치: 충남 서산시 인지면 성리 612-13
서산시 팔봉면 금학리 마전마을에서 인지면 성리 용암마을을 잇는 고갯마루에 있으며 시멘트 포장도로로 되어 있어 대형버스도 올라올수가 있다. 고개마루 바로위에는 성황당에서나 볼수있는 수령이 오래된 느티나무한그루가 자리잡고 있는데 모습이 마치 여체의 형상을 하고 있었다. 집뿌리재의 명칭은 이 지역(서산, 태안)의 산꾼인 괜차뉴님이 지역 노인들의 口傳을 통해 이 고개의 이름을 발굴했다고 한다. 지도상에는 나타나지 않는 이름이다.
산불조심 표지석(금학리 임도 4km)
지난구간에 이어 쥐뿔이재에 다시 한번더 발걸음을 하게된다. 지난구간은 팔봉산 명산 연계 산행으로 서산 금강산 팔봉지맥 분기봉에서 종료하는 관계로 마당한 접속구간이 없어 쥐뿔재에서 시작하게 된다.
쥐뿔재 명칭은 이 지역(서산, 태안)의 산꾼인 괜차뉴님이 지역 노인들의 口傳을 통해 이 고개의 이름을 발취하여 알리게 되었다고 한다. 지도상에는 나타나지 지명이다. 시멘트 포장도로에서 올라서면 성황당에서나 볼수있는 커다란 당산나무 한그루가 자리잡고 있고 그 형체가 여신의 모습 같았다.
느티나무에서 사진을 찍고는 임도길로 완만하게 올라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여 올랐다 내려서면 좌측편으로 묘지가 보이고 우측편으로 한차례 밀어올리면 멋진바위들이 나오고 잠시후 거북이 형상한 바위 앞을 지나게 된다.
거북바위을 지나면 295봉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한차례 밀어올리면 서산의 금강산에 도착한다. 금강산 주변에는 정상석과 삼각점 그리고 삼각점 안내판이 있지만 조망은 없었다.
금강산에서 내려서면 큰 암릉이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하여 내려서면 팔봉지맥 분기점에 도착한다. 지난번에는 이지점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여 팔봉산을 찍고 주차장을 하산 하였지만 이번에는 등로길이 희미한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팔봉지맥 분기점을 통과하면서 부터 진짜 산행이 시작되는데 잡풀이 무성하고 등로길에 태풍으로 쓰러져 있는 나무들을 오리조리로 피해가면서 진행하는것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무명봉 두개을 넘어 급경사지을 올라서면 장군봉이란 표지기가 있는작은 바위 봉우리에 도착하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며 하마바위가 나온다. 이곳에서 내려서면 급경사 등로길이 나오고 조심하여 내려서면 서산예비군 훈련소 입구에 도착하며 잠시후 32번 국도가 보이는 수량재에 도착을 한다.
느티나무의 모습
집뿌리재 시멘트 도로 위에 올라서면 커다란 느티나무 한그루가 위치하고 있고 마치 모양새가 여체의 형상을 갖추고 있었다.
느티나무 뒷모습
주변위치 : 충남 서산시 팔봉면 금학리 산 291
쥐뿌리재는 서산시 인지면 성리와 서산시 팔봉면 금학리를 접하고 있는 임도이며 차량 통행이 가능한 1차선으로 시멘트 포장 도로이다. 쥐뿌리재 바로 위에는 성황당 느티나무가 있는데 여성의 형색을 갖추고 있었다.
갈림길 통과
성황당 느티나무가 있는곳에서 임도길로 올라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임도길 버리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한다.
완만한 오름길의 등로의 모습
멋진 바위의 모습
바위지대 통과
느티나무를 지나 임도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오르면 좌측편으로 묘지가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올라서면 멋진 바위들이 좌,우로 여러군데가 보인다.
거북바위 통과
295m봉 갈림길 통과
거북바위에서 완만하게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고 마루금은 팔봉산(팔봉)방향 우측방향으로 진행한다. 좌측방면은 장군바위가 있는 또다른 산줄기로 이어져 내려가는 길이다
295봉 갈림길 이정표 : 쥐뿌리재(죽사), 장군바위(인지면 주민자치위원회), 팔봉산(8봉)
금강산정상부 조망
295봉에서 우측방향으로 전환하여 내려서면 좌측편으로 묘지가 보이고 우측방향으로 경사지을 한차례 밀어 올리면 금강산 정상에 도착한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금강산 이북에 있는데 금북정맥상 금강산은 서산에 위치하고 있다.
금강산(金剛山, 해발316.1m)
충남 서산시 팔봉면과 인지면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 오늘 산행중에 제일 높은 산이다. 산 정상에는 2등 삼각점이 있고 준.희님의 ㅣ그널이 반갑게 맞이한다. 이곳은 전망이나 산의 형태로 봐서 그저 밋밋한 산이건만 왜 이곳이 금강산으로 불리는지 아무리 찾아봐도 이곳에 대한 자료는 없다.
금강산(金剛山, 해발316.1m) 삼각점(서산 27 1985 복귀)
금강산(金剛山, 해발316.1m) 삼각점(서산 27 1985 복귀) 안내판의 모습
금강산(金剛山, 해발316.1m) 정상석의 모습
금강산(金剛山, 해발316.1m) 정상석에서 인증샷
팔봉지맥 분기점
금강산에서 내려서면 팔봉산으로 이어지는 팔봉지맥 갈림길이 나오고, 지난 구간에는 이 지점에서 우측방향팔봉산을 연결하여 명산코스 산행을 하였고 이번에는 이지점에서 시작해야 하지만 등로길 편의상 쥐뿌리재에서 금강산까지 접속구간으로 하고 이지점에서 다시 시작하게 된다. 참고로 쥐뿌리재에서 팔봉지맥 분기점까지는 실제거리 1.41km의 거리가 나왔다.
팔봉지맥 시그널
금강산 정상부에서 내려서면 암릉지 앞에서 좌측편으로 우회하여 내려서면 팔봉지맥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우측방향 팔봉산방면 등로길 버리고 좌측 희미한 등로길로 진행한다.
장군산 조망
팔봉지 분기점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태풍으로 인하여 나무들이 등로길을 가로막고 있어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구간이었다. 나무을 피해 요리조리 진행하다가 우측방향으로 전환하여 완만한 봉우리 두개을 넘어 한차례 경사지을 오르면 장군산 정상부에 도착하는데 이정표나 정상석이 없어 그냥 지날치수 있는 지점이다. 그곳에서 조금 진행하면 하마 모양의 바위가 나온다.
장군봉 올림길의 모습
급경사지을 오르면 정상부 근처에 큰나무 한나가 스러져 있고 우측편 바위에 장군봉이란 표지기가 있었다.
팔봉산(八峰山, 해발362m)의 모습
충남 서산시 팔봉면에 위치한 산으로서 금북정맥에서 갈라진 팔봉지맥의 주산으로《호산록》에 따르면 8개의 봉우리가 줄지어 서있는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원래는 9개의 봉우리인데 가장 작은 봉우리는 제외하고 보통 8개의 봉우리를 칭해서 팔봉산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이 때문에 제외된 작은 봉우리가 자기를 포함시키지 않았다고 하여 매년 12월말이면 운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옛날에 이 산에는 이문(李文)이라는 도적이 많은 무리를 이끌고 와 살인을 일삼아 관군이 이들을 토벌하려고 삼면을 포위하였으나 뒷편의 절벽을 이용하여 도망쳤다는 일화가 있고 조선조에 임오년과 을미년에 심한 한해(旱害)때에 이 산에서 기우제를 지내자 비가와서 위기를 면했다고 하여 그 후로 한해가 심할때마다 이곳에서 기우제를 지냈다고 한다.
지나온 마루금의 모습
쓰러져 있는 나무에 금북정맥을 종주하시는 산님들 힘내세요란 문구가 적힌 시그널이 있었다.
장군산(將軍山, 해발200m)
위치 : 충청남도 서산시 팔봉면 어송리와 인지면 차리의 경계에 걸쳐 있는 산.
장군산은 금북정맥에서 분기한 지선의 한 줄기가 금강산에서 남서로 뻗어 이루어진 산이다. 장군산 일대를 구성하고 있는 암석은 원생대의 태안층이며, 태안층은 서산층군에 속하는 편암류 및 편마암류 위에 부정합으로 놓여 있다. 팔봉산에 비해 부드러운 자태를 보이고 있다. 장군산 남쪽 계곡에서 발원한 하천은 계곡의 남북 방향으로 흘러 팔봉면 솔감저수지에서 만나 가로림만으로 흘러 들어간다.
아무 볼품없는 봉우리가 장군산이라니... 그래서 이 산 아래에 있는 예비군 훈련장이 이 장군산 때문에 생긴것 아닐까? 장군산에서 급경사를 내려온다. 소나무 숲을 내려오니 예비군 훈련장 들어가는 도로가 나오고 민가들도 보인다.
하마바위의 모습
하마바위의 모습
하마바위의 모습에서 인증샷
서산 종합 예비군 훈련소의 모습
급경사 내림길의 모습
하마바위에서 좌측방향으로 급경사지을 내려서면 이곳에도 태풍에 쓰러져 있는 나무들이 무성하게 있었다.
서산 종합 예비군 훈련소 진입로
서산 종합 예비군 훈련소방향의 모습
수랑재방향의 모습
수랑재 통과 루트
1. 장군봉에서 좌측방향으로 급경사지을 내려서면 서산 종합예비군훈련장 입구에 내려선다
2. 2차선 도로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수랑재에 도착하고 좌측방향으로 진행
3. 홍성중기공장을 지나 32번국도 지하차도을 통과 하여 우측편으로 진행하면 좌측에 차리버스정류장
4. 차리버스 정류장에서 직진으로 진행하면 송림싱크 입간판이 있고 잠시후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
5. 좌측 임도길로 진행하면 민가주택이 나오고 그 옆으로 진행
6. 민가주택 뒤 밭에서 좌측방향 또는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넓은 임도길이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진행
7. 넓은 임도길 진행후 축사가 보이는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 후 다시 갈림길에서 우측전환후 좌측
능선으로 진행하면 배수지에 도착한다
수량재(해발60m)
서산예비군훈련장 입구 도로 따라 내려서면 2차선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방향 홍성중기공업사 건물이 있는 방향으로 진행하여 32번 국도 지하차도을 통과하여 우측방향으로 조금 진행하면 좌측편으로 차리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차리버스 정류장에서 물한모금 마시고는 직진으로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32번 국도가 보이고 송림씽크 입간판이 나온다. 송림싱크 입간판을 조금 지나 좌측편 전붓대 뒤편 갈림길로 진행하면 민가주택 한채가(차리 수량재길 2-7) 나오고 민가 주택 옆 밭을 통과하며 넓은 임도길이 나오고 임도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넓은 임도길로 진행하면 정면으로 파란지붕으로 되어있는 건물 앞 삼걸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다가 갈림길에서 우측방향 전환하여 다시 좌측방향 능선으로 진행하면 물탱크가 설치되어 있는 차리배수지(한국 수자원공사 서산수도 관리단)에 도착한다.
차리배수지 철조망 옆으로 지나 멋진 바위가 있는 능선에 올라 서산시 인지면 일대와 지나온 마루금을 조망하고는 산불로 인하여 간벌이 되어 있는 곳을 완만하게 오르면 물래산에 도착한다. 물래산 정상에는 정상석은 보이지 않고 준,희님의 표지기가 소나무에 설치되어 있었다.
수량재 통과후 뒤돌아본 모습
서산시 팔봉면과 인지면의 경계인 수량재 서산 예비군 훈련소 입간판이 있는곳 도로로 내려와서 좌측방향으로 전환하여 진행한다. 이곳은 서산과 태안을 잇는 77번 구도로와 32번의 국도가 지나가는 곳이다.
홍성중기정비공장 앞 통과
서산 예비군훈련장 입구에서 2차선 도로 건너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홍성 중기정비공장이 나오고 조금더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32번 국도 지하차도가 나온다. 지하차도을 통과하여 우측편으로 진행하면 좌측편에 차리 버스 정류소가 나오고 직진으로 진행하면 송림씽크 입간판이 앞에 도착한다. 우측편으로 32번 국도가 지나고 좌측편 대각선으로 전붓대가 보이는 뒤편 갈림길로 진행하면 된다.
홍성중기공장 입간판과 등로길에 있는 갈대의 모습
32번 국도 지하차도의 모습
32번 지하차도 통과
지하차도 통과 후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좌측편에 차리버스정류장 앞에 도착한다.
좌측편으로 차리버스정류장이 보이고 뒤편을호 보이는 능선으로 진행
차리(車里) 버스정류장
차리(車里)라는 마을 이름은 동리(洞里)이름으로서 최초의 기록인 조선조때 여지도서에서는 찾아볼 수가 없다. 다만 1895년의 구한말 행정구역 개편때에 비로소 노지면(盧旨面) 차리(車里)라 는 이름이 나오고 일제 강점기인 1914년 행정구역 개편때에 노지면(盧旨面), 차리(車里), 임서리(林棲里), 용연동(龍淵洞)의 3 개 마을이 합쳐져서 차리(車里)라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32번 국도의 모습
송림씽크 입간판 앞 통과 좌측편으로 송림씽크공장이 있다.
시멘트임도길 탈출
송림씽크 공장을 지나면 전붓대가 나오고 전붓대 뒤편 좌측 임도길로 진행하면 민가가 나오고 민가 우측편 밭으로 직진으로 진행하여 임도길에서 좌측길로 진행한다.
차리수량재길(2-7) 민가집 통과
임도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민가주택이 나오고 우측편으로 진행하면 밭이 나오는데 두갈래길에서 좌측방향 또는 우측방향으로 가도 무방하다. 통과하면 넓은 임도길을 만나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차리수량재길(2-7) 민가집 주소
민가 뒤편에 있는 밭 통과
일부는 좌측편으로 일부는 우측편으로 진행 후 넓은 임도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
넓은 임도길 좌측방향으로 진행
임도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
임도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통과 후 다시 좌측방향 능선으로 진행
임도 갈림길 우측방향으로 통과 후 다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차리배수지에 도착
완만한 등로길의 모습
차리배수지의 모습
차리배수지
서산시민들에게 먹을 물을 공급하는 배수지이며 한국수자원공사 서산수도관리단에서 설치하였다.
차리배수지 철조망 옆 통과
차리배수지 통과하는 모습
서산시 인지면의 모습
차리마을 및 바로 아래에 있는 수도물 공급하는 배수장의 모습
벌목지대의 모습
차리배수장을 지나면 산불지대가 나오고 완만하게 진행하면 물래산 정상에 도착한다.
산불지역에 있는 암릉 위에 있는 심삿갓님의 멋진 모습
임도길 통과
벌목지대 암릉길에서 완만하게 오르면 임도길이 나오고 임도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여 오르면 몰래산에 도착한다.
몰래산 정상부에서 바라본 서산시 인지면 일대의 모습들
물래산(해발 145m)
충남 서산시 인지면과 팔봉면의 경계에 있는 산으로 산이라기 보다는 조그만 봉우리에 불과하다. 그저 밋밋하고 아무 특색도 없어 ‘준.희’님이 붙여놓은 시그널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치기 조흥지점이다.
물래산 시그널의 모습
물래산에서 우측방향으로 전환하여 급경사지을 내려서면 태풍으로 인하여 쓰러진 나무들로 인해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100봉을 통과하고 진산을 지나 내려서면 임도길이 나오고 임도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주변에 밭과 농장이 나오고 직진으로 진행한다.
물래산 표지기의 모습
물래산에서 우측방향으로 전환하여 진행하니 태풍에 쓰려진 잡목들로 인하여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무명봉을 두개정도 넘어서니 나무로 만등 의자에 도착하는데 이곳이 지도상에 있는 100봉이다.
100봉에서 내려섰다가 경사지을 올라서면 커다란 바위가 나오고 나무에 진산이라는 표지기가 보인다. 표지기가 없었다면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칠수 있는 지점이다. 진산에서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갈림길에서 좌측 진장리방향으로 내려서니 넓은 임도길이 나온다. 좌측편으로 축사가 나타나고 우측방향으로 비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32번국도 아래지하도에 도착한다. 지하도를 빠져 나오면 우측편으로 팔봉중학교가 보이고 팔봉 중학교 교내에서 점심식사을 한다.
팔봉중학교에서 식사을 간단하게 마치고는 교내 건물 뒤편으로 이어진 마루금을 따라 시멘트도로로 진행하다 보면 공동묘지가 나오고 저멀리 이동통신 통신탑이 보이는데 그곳까지 이어가야 한다.
이동통신 통신탑을 지나면 삼거리가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전환하여 진행하면 등로길에 과수원이 나온다. 도로를 따라 계속 진행하면 주택앞을 지나고 우측방향에 배 과수원도 나타난다. 배과수원을 지나면 삼거리가 나오고 삼거리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우측편에 굴포운하지의 유래 안내판이 나타난다.
굴포운하지에서 직진으로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정자가 나오고 잠시후우측편으로 구세군교회와 인평3리 다목적회관이 나온다. 도로로 계속진행하면 도내1리(도루재) 버스정류장이 나오고 갈림길에서 좌측편 10시방향으로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축사가 나오고 잠시후 도내1리(소하말) 정류소에 도착한다.
계수농원을 우측편에 두고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방향 전환하여 진행하면 북창마을 버스 정류소앞에 도착한다. 도로을 직진으로 건너 진행하면 벧엘목장이 나오고 잠시후 도일목장이 나타나고 조금 더 진행하면 붉은재 들머리에 도착한다.
물래산에서 바라본 서산시 인지면의 모습
100봉 통과
진산(해발155m) 통과
100봉에서 내려섰다 오르면 우측편에 암릉바위가 있고 바위 옆 나무에 진산이라는 시그널이 있었다.
진산 시그널의 모습
임도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
진산에서 일과 물한모금 마시고 내려서면 임도길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 좋은 등로길 버리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임도길 통과
진산에서 내려서면 임도길에 도착하고 임도 우측방향으로 계속 진행하면 32번 국도 지하차도 에 도착한다.
임도 갈림길 통과
과수원 옆으로 진행
32번 국도 지하차도 통과 후 우측방향으로 진행
32번 국도 지하차도 통과 후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팔봉중학교 앞에 도착
팔봉중학교(충남 서산시 팔봉면 소재)
팔봉중학교 입구
팔봉 중학교에서 점심식사을 약15여분 하고는 중학교 건물 뒤편 마루금으로 진행한다.
팔봉 중학교 뒤편으로 진행
팔봉 중학교 뒤편 마루금의 모습
우측편 생각밭 옆으로 진행
3개 통신사 팔봉 중계소 통과
갈림길 통과
이동 통신탑 통과후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
이지역에는 흙이 좋아서인지는 몰라도 생강밭이 많았다.
마을 임도길을 돌고 돌아 진행
32번도에서 팔봉중학교를 걸처 굴포 운하지까지 위성사진
팔봉중학교 통과 루트
1. 진산에서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넓은 임도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
2. 임도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과수원이 등로 옆으로 나오고 잠시후 32번국도 지하차도통과
3. 지하차도 통과 후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팔봉 중학교가 나오고 팔봉 중학교 운동장 통과후 건물 뒤편
시멘트 임도길로 진행
4. 이동통신탑 지나 삼거리에서 우측방향으로 시멘트 돌로 계속 진행하면 배수원이 나오고 갈림길에서 우측
방향으로 진행하면 굴포운하지안내판에 도착
5. 굴포지운하지 안내판에서 직진으로 통과하면 큰 느티나무가 나오고 잠시후 군세군 진장교회가 나오고
인평3리 다목적 회관 앞에 도착한다.
갈림길 우측방향으로 진행
굴포운하지(堀捕運河址)의 유래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운하로 알려진 굴포운하는 천수만으로 흘러드는 흥인천과 가로림만과의 약 3km에 달하는 지역을 연결하는 운하로 삼남지방의 세곡미를 서울로 운송할 때 배가 태안반도의 안흥량 관장항을 반드시 통과해야 했는데 안흥량은 해중에 암초가 있고, 급격한 조류로 인해 빈번히 배가 전복되거나 파손되어 국가적인 손실이 컸다 하여 세곡미의 안전수송과 운송기간 단축을 위해 이 곳 굴포에 운하를 만들 필요가 있었다.
고려 인종 때(1123~46)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임진왜란 직전까지 비록 단속적이기는 하였지만 400여 년간 수많은 인부를 동원하여 운하공사를 계속하였으나 운하 건설지의 지질이 화강암층이라 당시의 기술로는 암석을 뚫는데 어려움을 겪은 데다 높은 간조의 차를 극복하지 못해 성공치 못했다.
이후로도 국가의 재원이 되는 세곡미 운송을 위해 조선 현종 때에는 운하 건설지 주변에 많은 조창(漕倉)들을 설치하였으나 그 마저도 행정상의 문제들로 인해 결국 폐창되고,운하건설은 실패하고 만다.
그러나 조창과 관련하여 천수만과 가로림만의 해로를 따라 많은 촌락이 형성되고 발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굴포운하지(堀捕運河址)
'굴포마을안내도'와 '굴포운하지'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으며, 마루금은 바로 북쪽에 보이는 나지막한 능선으로 진행한다.
굴포운하/掘浦運河
실패한 굴포 운하지 주변에는 과수원과 서산 육종 마늘밭, 생강밭, 목장, 농장들이 즐비하였고, 운하지에는억새만 가득하다.
멋진 느티나무 쉼터와 뒤로 구세군 진장교회(태안읍 진장리 소재)가 있는곳 통과
굴포지운하에서 오석산까지의 위선사진의 모습
굴포지운하 통과 루트
1. 굴포지운하지 안내판에서 직진으로 통과하면 우측편으로 쉼터가 나오고 큰 느티나무가 있다.
2. 느티나무 쉼터에서 직진으로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군세군 진장교회가 나오고 잠시 후 인평3리(하창)
버스 정류잔과 다목적 회관을 우측편에 두고 진행
3. 도내1리(도루째) 오거리에서 파란지붕(도내3리, 127번지)을 우측편에 두고 진행하면 좌측편으로 축사가
나오고 계속하여 진직으로 진행
4. 도내1리(소한말) 버스정류장을 좌측편에 두고 직진으로 진행
5. 계수농원 입간판 좌측편에 두고 진행
6. 계수농원 입간판을 통과하면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진행
7. 북창마을 버스 정류장을 우측편에 두고 사거리에서 직진으로 진행
8. 벧엘목장 입간판 우측편에 두고 진행
9. 도일목장 입간판 우측편에 두고 진행
10. 붉은재 들머리(도일목장 입간판에서 약50m 진행하면 좌측편 능선 나무에 표지기 몇개가 있음)
11. 붉은재에서 좌측방향 임도길로 진행하다가 우측편 능선에 올라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를 이리저리 피해가며 무명봉을 내려서면 수원백씨와 김해김씨 합장묘을 좌측편에 두고 진행
12. 묘지 임도에서 좌측편 능선으로 오르면 오석산 정상부에 도착
인평3리(하창)버스정류장과 다목적회관의 모습
인평3리(하창)버스정류장의 모습
인평3리 마을회관
농촌건강장수마을 이라는 입간판이 회관 옆에 설치되어 있었다. 이곳이 장수마을인가??
태안읍 인평3리 지역 안내도의 모습
태안읍 인평3리 다목적회관 앞에서 바라본 팔봉산의 모습
도내1리(도루째)
오거리에서 파란지붕(도내3리, 127번지)을 우측편에 두고 진행하면 좌측편으로 축사가 나오고 계속하여 진직으로 진행
도내3리, 127번지(도루째 앞에 있는 민가주택)
축사 통과
팔봉중학교에서 붉은재까지는 농로길과 과수원, 생강밭, 목장, 축사들이 모여 있는곳이다
시멘트 농로길로 직진으로 계속 진행
도내1리(소한말) 버스 정류장의 모습
양배추의 모습
마치 무궁화 모양으로 하고 있어 사진에 담아본다.
계수농원에서 인증샷
계수농원 입간판의 모습
우측편으로 농장이 있고 좌측편에는 은행나무와 갈대밭이 있다. 마루금은 직진으로 진행한다.
계수농원에 있는 소나무의 모습
은행나무 터널에서 인증샷
갈림길 통과
계수농원을 통과하면 갈림길이 나오고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북창마을 버스정류장에 도착한다.
북창마을 버스 정류소
북창마을 버스 정류장 앞에 2차선 도로 삼거리가 있고 마루금은 직진으로 진행하며, 이 지역 주변의 지명들이 하창, 상창, 북창,창평, 창벌이라 불리고 있는데 이는 이전 굴포운하지의 창고가 있었던 마을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유채꽃의 모습
북창마을 버스정류장을 직진으로 통과하니 우측편 배수로에 제철을 잊고 피어난 유채꽃이 있어 사진에 담아본다.
벧엘목장 통과
북창마을 버스정류장을 통과하면 우측편으로 벹엘목장이 보이고 조금더 진행하면 도일목장이 나온다.
도일목장의 모습
도일목장 통과
도일목장 입간판에서 직진으로 조금 진행하면 좌측편으로 산악회 표지기 붙혀있는곳이 불은재 들머리지점이다. 임도길로 진행하면 등로길이 파혀쳐져 있는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고 우측방향으로 올라 능선에서 진행하면 지난 태풍 곤파스의 잔해들로 인하여 무척 힘들게 진행한다.
군부대에서 각계전투하는 모양으로 오리조리로 쓰러진 나무들을 넘고 넘어 올르면 좌측편으로 무명묘지가 나오고 잠시후 129봉에 도착한다. 129봉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또 다시 한차례 전투훈련을 하고 내려서면 김해김씨 합장묘지가 좌측편으로 있고 우측편으로 진행하다가 갈림길에서 다시 좌측편 능선으로 진행 하여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설치되어 있는 오석산정상에 도착한다.
오석산정상부에는 삼각점과 삼각점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고 준,희님의 표지기가 붙혀있었다. 오석산은 흑석산이라고도 부러며 정상석은 없었다.
오석산에서 직진으로 내려서면 오래되지 않은 묘지가가 나오고 임도길로 나오고 임도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오르면 주변이 고사리밭으로 이루져 있었다. 고사리밭을 오르면 130봉인 옥녀봉이 나오고 옥녀봉에서 내려서면 충남 태안읍 산후리 원산후 부락과 상옥리 고일마을 이어주는 시멘트돌로인 강실고개에 도착한다.
강실고개에 직진으로 오르면 넓은 밭이 나오는데 그곳에 단호박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선두에서 농작물에 손대지 말라는 무전이 았어 한개정도 따고 싶은 충동감이 왔지만 그냥 지나친다. 밭을 지나 완만하게 진행하면 벌목지대가 정면으로 보이고 갈대밭에 도착한다.
갈대밭에서 태안시내와 서해바다을 조망하고는 완만하게 오르면 흥주산 갈림길에 도착한다. 전망대가 있는 좌측방향으로 진행하여 전망대에서 지나온 마루금과 팔봉산 서해바다 그리고 태안읍내을 조망하고는 다시 214.7봉 흥주산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멋진 소나무 등로길이 나온다.
편안한 등로길로 내려서면 시멘트 임도가 나타나고 백화산0.6km 이정표가 있는곳에서 직진으로 진행하면 로프로 연결한 등로가 나오고 잠시후 나무계단이 연속으로 나오며 잠시후 백화산 갈림길 안부에 도착한다. 안부 우측편으로 군부대 철조망과 표지판이 나타난다. 백화산 정상은 커다란 암반으로 되어 있고 태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그야말로 태안의 진산다운 면목을 보여주고 있었다. 씽괴대 바위를 지나 우측편 나무계단으로 하산하여 태을암에 들려 태을동천이라고 새겨진 바위와 태안마애삼존불을 감상하고는 태을암을 나와 도로 좌측편으로 내려서면 우측편으로 백조암이 나오고 조금더 진행하면 좌측편으로 진행한다.
백조암에서 약50여마터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우측편 백화산 솔바람길 구간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는 지점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그냥 지나쳐도 되지만 낙조봉을 조망하기 위해 좌측편 암릉지을 올라본다. 낙조봉에서 태안시내와 태안여고을 조망하고는 우측편으로 내려 임도길에서 다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우측편 숲속으로 진행한다.
임도길을 버리고 우측편으로 내려서면 2차선 구도로가 나오고 직진으로 건너 작은 텃밭을 넘어서면 태안종합학습센터가 나오고 태안여고 후문(ROSE HALL건물)이 있는 모을고개에 도착한다.
붉은재(해발51m)
위치 : 충남 태안국 태안읍 어은리 31-8
도일목장에서 약50m 진행하면 붉은재들머리에 도착하고, 마루금은 좌측편으로 이어진다. 붉은재의 유래는
'나무는 없고 붉은 흙만 있다'고 해서 다른 일설로는 '황토가 많아 붉게 보인다'고 지어진 이름이라고 한다.
유실된 임도길의 모습
비로 인하여 등로길이 유실되어 조심하여 진행하다가 우측편 능선으로 진행한다.
무명봉 통과
태풍으로 인하여 쓰러진 나무들이 등로길을 막고 있어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한바탕 전쟁을 치려고는 온전한 등로길을 만난다.
갈림길 통과
우측방향 버리고 좌측방향으로 진행 또 한차례 쓰려진 나무와 전쟁이 시작된다.
쓰려진 나무들 통과
태풍으로 쓰러진 나무들과의 전쟁을 하며 오석산으로 향한다.
수원백씨와 김해김씨 합장묘 통과
쓰려진 나무 등로길을 헤져 나오니 좌측편으로 잘 정돈된 묘지가 나오고 우측편 임도길에서 좌측능선을 오르면 오석산 정상에 도착한다.
수원백씨와 김해김씨 합장묘비의 모습
임도길 탈출
수원백씨와 김해김씨 합장묘에서 내려서면 넓은 임도길이 나오고 이 임도길은 아마도 묘지 조성하면서 만든 임도길인거 같았다. 임도길 버리고 좌측방향 능선으로 진행한다.
갈림길 통과
임도길에서 완만하게 올라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오석산방향은 우측방향으로 진행한다.
오석산(해발169m) 정상부의 모습
오석산은 태안군 태안읍 어은리와 도내리를 경계하고 있는 산이며, 정상 주변에는 삼각점과 삼각점 안내판 그리고 산불감시초소가 있지만 숲으로 인하여 조망은 없었다. 일부 지도에는 오석산(烏石山)으로 되어 있으며 , 네이버 지도에는 "어석산"이라는 이름으로 등재되어 있으나 근거는 알 수 없었다.
오석산(해발169m) 삼각점(서산 311)
오석산(해발169m) 삼각점(서산 311) 안내판의 모습
오석산(烏石山, 해발169m)
까마귀가 많아서 까마귀 오(烏)자를 썼는지 또 다른 이름으로 검을 흑(黑)자를 써서 흑석산으로 기록한 자료들도 보인다.
오석산(해발169m) 인증샷
오석산(해발169m) 인증샷
제주고씨 묘지 통과
갈림길 통과
제주고씨 묘지을 내려서면 임도길이 나오고 임도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옥녀봉(해발130m) 통과
지도상에 없는 봉우리 지명이다.
옥녀봉(해발130m) 표지기의 모습
내림길의 모습
옥녀봉을 지나면 급경사지가 나오고 내려서면 시멘트도로인 강실고개에 도착한다.
강실고개
강실고개는 충남 태안읍 산후리 원산후 부락과 상옥리 고일마을 이어주는 고개이며, 시멘트 도로로 포장 되어있었다.
단호박 밭 통과
강실고개에서 직진으로 진행하면 정면으로 밭이 나오고 밭 옆으로 진행하여 오르면 산불지대가 나오고 갈대밭에 도착한다.
갈대밭의 모습
이곳에서 서해바다을 조망하고 지나온 마루금과 앞으로 이어갈 마루금을 조망하면서 휴식을 취해본다.
서해바다 조망
갈대밭에서 바라본 흥주산 전망대와 갈림길 조망
서해바다 조망
태안군 태안읍 상옥리 일대의 모습
흥주산 갈림길
흥주산 갈림길에서 백화산방향은 우측편으로 내려서면 되지만 마루금에서 약간 비껴있는 흥주산 전망대을 찍고 복귀한다.
241.7봉(흥주산) 이 지역 주변으로 산불이 크게 난 모양이었다. 나무를 베어버려 전망은 좋으나 어렵게 잘란 나무들이 산불로 인하여 없어져 버리니 안타깝기만 하다. 이곳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유명한 은행나무가 있는 흥주사가 나오고 금북정맥길은 우측방향으로 내려선다.
흥주산 전망대의 모습
흥주산(백화산솔바람길) 전망대 이정표 : 흥주사 0.6km, 태을암 1.6km
흥주사(興住寺)
태안군 태안읍 상옥리 산 1154번지 백화산(白華山)에 위치하며,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修德寺)의 말사(末寺)이다. 창건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전하지 않으나 전설에 따르면 222년(구수왕 9)에 흥인조사(興仁祖師)가 창건하였다 하나 역시 신뢰성은 떨어진다.
한편으로는 조선시대 백화산성(白華山城) 내 군영사찰로 1417년 산성과 함께 창건된 것으로 보는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두 설 모두 정확한 근거가 없어 신빙성이 떨어지며, 현존하는 유물 등을 볼 때 흥주사는 고려시대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대웅전 앞에 있는 삼층석탑(유형문화재 제28호)은 구조나 양식으로 미루어 고려 때 조성되었기 때문이다. 창건 이후의 역사 또한 자세하게 알려진 것이 없다.
다만 1993년 만세루를 해체하였을 때 1527년(중종 22)년에 건립한 뒤 1691년(숙종 17), 1751년(영조 27), 1798년(정종 22)에 중수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였으며, 이후에도 1944년에 해체 복원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만세루는 1990년에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133호로 지정되었다.
이외에 1722년(영조 48)에는 원통전을 중수하였다는 내용을 적은 기록이 있어 원래 흥주사의 주불전은 원통전이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18세기 후반에도 불사가 있었던 것 같다. 원래 대웅전에 있던 후불탱화는 1861년(철종 12)에 조성한 아미타후불탱화였는데 지금은 수덕사 성보박물관으로 옮겨 보관하고 있다.
흥주사 은행나무
태안 흥주사 은행나무는 태안읍 백화산(白華山)에 있는 흥주사의 약 40m 전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흥주사 경내에는 만세루와 삼층석탑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아득히 먼 옛날 먼길을 가던 노승이 백화산 산기슭에서 잠시 쉬고 있는데 꿈인 듯 하얀 산신령님이 나타나 노승이 가지고 있던 지팡이를 가리키며 이곳을 장차 부처님이 상주할 자리이니 지팡이로 이곳에 표시를 하라는 말을 듣고 깜짝 놀라 깨어보니 꿈이었다. 기이한 일이구나 생각한 노승은 꿈에 산신령님이 가리킨 지팡이를 그곳에 꽂아두고 불철주야 기도를 하니 신비스럽게도 지팡이에서 은행나무 잎이 피기 시작하였고 노승은 예사로운 일이 아닌 것을 짐작하고 더욱더 기도에 정념하니 또다시 산신령님이 나타나 말씀하시길 이 나무에 자식 없는 자 기도를 하면 자식을 얻게 되고 태어나 자식들이 부귀영화를 얻어 부처님을 모실 것이니라 하며 사라지셨다. 그 후 몇 십 년 후 산신령님 말씀대로 그 자손들에 의해 사찰이 지어졌고 이 나무에 주렁주렁 열린 탐스런 은행과 항상 푸르름처럼 부처님의 손길이 자손만대에 전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그 노승은 절의 이름을 흥주사라 이름하였다 한다.
태안 흥주사 은행나무는 나이가 900년 정도로 추정되며, 높이 20m, 둘레 8.5m이다. 이 은행나무는 약 4m 높이까지는 외줄기로 되어 있고 그 위부터 몇 개의 줄기가 곧게 하늘을 향해 갈라져 있다. 은행나무의 주간부(株間部)가 외형적 손상없이 완전하고 수피도 깨끗하며 생육상태가 양호할 뿐만 아니라 나무의 형태도 아름다워 문화재로서 가치가 있다.
흥주산 삼각점(서산 26)
흥주산 삼각점(서산 26)안내판의 모습
흥주산에 설치되어 있는 백화산 솔바람길 구간 안내도의 모습
흥주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백화산 정상의 모습
흥주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태안읍의 모습
태안은 동쪽으로만 서산에 이어져 있을 뿐, 西南北의 3면이 모두 바다에 둘러 싸인 반도다. 그 지형을 자세히 살펴보면 동으로는 서산, 서쪽으로는 서해바다, 남으로는 보령군의 원산도를 마주 보고, 북쪽으로 경기도의 덕적군도를 바라 보고 있다. 동쪽으로 접하고 있는 서산이內陸으로 연결되는 육상교통의 유일한 관문이다.
태안에서 서쪽방향인 서해로 315㎞를 나가면 中國의 산동반도에 이르게 되는데, 일찌기 대륙문화가 이 서해의 물길을 통해 태안반도에 들어 왔으며, 그 옛날 백제시대 불교문화가 이곳 태안을 통해 수입 번창하였고, 태안반도의 끝이자 금북정맥의 종착지인 안흥항(安興港)은 여송 무역선(麗宋貿易船)의 기항지로 널리 알려져 있던 곳다.
또 북쪽의 원북 청산리는 해상 교통이 발달하여 인천항을 내왕하는 정기 여객선이 1960년대까지 활발하게 이어져 京仁文化 수입에 한 몫을 다했던 곳이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육상 교통의 발달로 인해 이제는 해상 교통은 두절되고 말았지만 태안은 그 이름부터가 '크게(泰) 편안한(安) 고장'이라 옛부터 살기 좋은 고장으로 유명하다. 몇해 전 겨울 기름유출 사고로 이 지역 일대에 비애을 주었고, 그러나 지역주민들의 강인한 재활 의지와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보기 힘든 우리 국민들의 환난상휼(患難相恤) 정신이 총집결되어 어느 정도 상처를 씻어 가는 중이다.
태안 솔향기길 모습
흥주산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양편으로 수나무 군락지가 나오고 완만하게 내려서면 도로에 도착한다.
소나무 숲길의 모습
241.7봉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태안 솔향기 둘래길가 교차되고 지금부터 백화산까지는 편안한 등로길이 이어진다.
119 긴급구조 현위치 번호 : 흥주사길 04-03
돌계단 지역 통과
편안한 등로길을 부드럽게 소나무향기을 느끼며 내려서면 돌로 만든 계단이 나오고, 잠시 후 로프지대, 약수터 갈림길 그리고 백화산갈림길 포장도로에 도착한다.
로프지대 통과
약수터 갈림길 통과
돌계단, 로프지대을 통과하여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한다.
갈림길 이정표 : 백화산정상 0.7km, 흥주사 1.1km, 약수터 0.3km, 솔향기길
백화산 갈림길 임도
태안읍 오룡동과 냉정골을 잇는 고개이며, 241.7봉과 백화산 사이에 있는 안부이다. 백화산 방면의 임도에서 직진으로 진행하면 계단과 로프가 설치되어 백화산 정상까지는 완만하게 진행할수 있다.
백화산 갈림길 임도 이정표 : 백화산정상 0.6km, 흥주산 1.2km, 솔향기(냉천길 1.1km)
백화산 갈림길 임도 이정표 : 백화산정상 0.6km, 흥주산 1.2km, 솔향기(냉천길 1.1km),, 냉천골(산림욕장)
0.7km, 갈두천(갯벌체험관)1.3km
백화산 갈림길 임도길 통과후 뒤돌아본 모습
백화산으로 오르는 등로길의 모습
119 긴급구조 현위치 번호 : 흥주사길 04-04
로프지대 통과
나무계단 통과
로프지대 통과
나무계단 통과
나무계단 통과
119 긴급구조 현위치 번호 : 백화산길 01-05
로프지대 통과
백화산 갈림길 안부의 모습
백화산 갈림길 안부 이정표 : 태을암 0.6km, 흥주사 1.6km
군부대 조망
백화산 우측편으로 군부대(8423부대)가 점령하고 있어 능선안부에서 좌측방향 백화산 정상으로 진행한다.
능선 안부에는 부대장의 경고문이 있고(예전에 매설된 지뢰를 조심하라는 경고문) 철조망 설치되어 있었다.원래는 이곳으로 올라 백화산 줄기를 이어가야 하는데 공군부대가 자리를 잡고있어 부득히 우회하여 모래기재로 내려선다.
능선 안부에서 바라본 백화산방면의 모습
편안한 등로길의 모습
백화산 우측편 능선에 있는 공군부대의 모습
백화산 직진에 있는 멋진바위의 모습
백화산은 태안의 진산으로 이곳에 오니까 등산객들을 만날수가 있었다.
백화산(白華山, 284 m)
충남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에 위치한 태안 8경중 제1경에 속하는 태안의 진산이다. 산 전체가 하얀 화강암으로 덮여 있어 그 모양이 괴이하여, 봄이면 마치 부용화(芙蓉花) 같기도 하고, 또 가을이면 돌 꽃이 활짝 핀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즉 백화(白花)가 난만한 느낌을 주는데, 이 백화산은 서울을 등지고 있기에 조선조 500년 동안 태안에서 과거에 급제한 자가 한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백화산은 작고 아담한 산이지만, 서해 바다를 끼고 있어 풍경이 아름답다. 산에는 기암괴석들이 많고, 바위들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고, 특히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최고의 장관이라고 한다.
백화산 정상에서 바라본 태안읍(太安邑)의 모습
태안의 명칭은 국태민안(國泰民安)의 준말로서 국가가 태평하고 국민이 평안하다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태평하고 안락하다」는 의미인 태안은 가장 살기좋은 곳이란 뜻이다.
백제가 기원전 18년 한강유역인 위례성에서 온조왕에 의해 건국되어 근초고왕이 마한의 전지역과 대방군 등을 병합하여 고대정복국가(古代正服國家)로 등장하면서 발전해갔다. 369년에 근초고왕이 마한 54개국을 완전 정복하여 백제국에 병합할 때 이곳 태안에 위치했던「신소도국」과「고랍국」도 예외가 아니여서 백제의 판도에 편입되는데, 이때 태안은성대혜현(省大兮懸)으로 개편된다.
태안군은 타의에 의해 서산군에 병합되어 75년간 내려오다 지난 1989년 1월 1일 법률 제 4050호에 따라 태안군에 복군됨으로서 군민이 모두 군세 발전에 활기찬 전진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리고 태안군은 현재 행정구역상 8개 읍면에 65개 법정리, 186개 행정리에 822개의 반, 그리고 493개의 마을로 형성되어 있다.
동으로는 서산, 서쪽으로는 서해바다, 남으로는 보령군의 원산도를 마주보고, 북쪽으로는ㅠ경기도의 덕적군도를 접하고 있다. 결국 동쪽을 접하고 있는 서산으로 가는 길이 내륙으로ㅠ통하는 육상교통의 유일한 관문이다. 태안반도에서 바다로 315km 정도를 나가면 중국의 산둥반도를 통하는데 일찌기 대륙문화가 서해를 통해 태안반도로 들어왔다고 한다.
그 옛날 백제시대 불교문화가 이곳 태안을 통해 들어와 번창하였고 안흥만(安興灣)은 여송무역선(麗宋貿易船)의 기항지로 널리 알려졌던 곳이다. 또 안흥만의 북쪽의 원북면 청산리는 해상 교통이 발달하여 인천항을 내왕하는 정기 여객선이 1960년대까지 성황을 이뤄 京仁文化 유입에 한 몫을 했으나 육상교통의 발달로 이제는 해상교통이 완전두절 되었다.
백화산(白華山, 해발284m)
충남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에 위치한 태안 8경중 제1경에 속하는 태안의 진산이다. 산 전체가 흰돌로 덮혀있어 그 모양이 괴이하여, 봄이면 마치 부용화(芙蓉花) 같기도 하고 또 가을이면 돌꽃이 활짝 핀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고 한다. 즉 백화(白花)가 난만한 느낌을 주는데, 이 백화산은 서울을 등지고 있기에 조선조 500년동안 태안에서 과거에 급제한 자가 한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백화산은 작고 아담한 산이지만, 서해 바다를 끼고 있어 풍경이 아름답다. 산에는 기암괴석들이 많고, 바위들과 소나무가 어우러져 있고, 특히 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일몰은 최고의 경관이다.
백화산(해발284m, 白華山)
태안읍 동문리(泰安邑 同門痢 )에 우뚝 솟은 해발 284미터의 진산(鎭山)이다. 산 전체가 흰 돌로 덮여있어 그 모양이 괴이하여, 봄이면 마치 부용화(芙蓉花) 같기도 하고, 또한 가을이면 돌 꽃이 활짝 핀 것 같이 보이기도 한다.즉 백화(百花)가 난만한 느낌을 주는데, 이 백화산은 서울을 등지고 있기 때문에 조선조 500년간 태안에서 과거에 급제한 자가 한 사람도 없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백화산이 만약 黑華山으로 변모할 때는 이 태안에서 文萬武千이 난다고 전하여 내려왔는데, 다행히도 일제말엽에 들어와 소나무가 울창해져 산을 덮었으므로 태안 사람들은 큰 기대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미구에 해방과 더불어 일부 몰지각한 사람들의 도벌과 남벌로 인하여 흑화산이 다시 백화산으로 변하였기 때문에 태안에서는 출세한 사람이 없다고 전하여지는 이야기다. 하지만 근래에 들어와 자연보호와 더불어 치산 녹화 운동이 전개되어 다시 흑화산으로 변모해 가니 앞으로 기대할 만 하다.
백화산 정상에서 인증샷
백화산 관광 안내도의 모습
백화산정상부 아래에 설치되어 있는 등산 안내도다.
백화산 정상의 봉화대지
백화산은 서산시 팔봉면의 금광산(金光山)의 줄기가 도내리와 어은리로 뻗어내려 오석산을 이루어고 다시 두줄기로 갈라져 한줄기는 서우산 또 한줄기는 옥녀봉으로 이어지고 옥녀봉에서 뻗어나온 산이 백화산이다. 백화산은 산전체가 바위로 되어있고 예전에는 산림이 우거져 숲을 형성하고 있었다. 그러나 남벌로 암석만 남아 백화산(白華山)이되었다니 가슴아프다. 백화산 정상의 백화산성은 고려 충열왕때 축조되었으며 두개의 우물과 봉화대가 설치되었다고 하며 현재는 정상에 봉수대터와 700m의 성곽만 남아있다.
백화산성 터(충청남도 지정문화재 자료 제212호)
위치 :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 산 41-2
백화산 정상에 축조된 백화산성은 고려 충열왕(1275-1308)때 축성되었으며, 성의 규모는 길이 700m, 높이 3.5m로 성안에는 2개의 우물이 있고 봉화대가 설치되어 있어 동쪽으론 서산의 북주산, 남쪽으론 부석의 도비산과 연락을 취했다. 지금은 폐성되어 700여m의 성곽만이 남아 있다.
태안읍지(1872년)에 의하면 축성한 지가 이미 오래되어 현재는 퇴락하였으나 지세가 사면이 절벽으로 되어있어 사람이 발붙이기 어려운 곳이라고 기술되어 있다
[백화산성 안내문]
해발284m의 백화산 정상에 축조된 산성으로 대부분 붕괴되고 정상부근에 약 100여미터 정도만 남아 있다.
초선 초에 왜구를 방어하기 위해 둘레 약 700m 정도의 성을 쌓았다고 전하나, 삼국시대의 산성을 고쳐 쌓아 이용했을 가능성도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1417년(조선 태종17년)에 왕이 왜국의 침번으로 황폐폐된 태안군의 복구를 명하여 성을 쌓고 관청을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있으나 이 성과의 관계는 분명하지 않다.
성안에는 소태(蘇泰라는 마을과 우물이 있었고 전한다.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2~3m 내외이다.
소성현(蘇城縣) 때 읍성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백화산 정상에서 바라본 태안군 상옥리일대의 모습
백화산 정상에서 바라본 태안읍(太安邑)의 모습
백화산(白華山)에서 바라본 태안읍의 모습
백화산정상 바로 아래에는 국보 제307호 태안마애삼존불상과 고려 충렬왕 13년(1286년)에 축조된 백화산성 위치하고 있다. 이 산성은 둘레 619m이고 높이 3.3m이다. 성벽은 거의 무너진 상태이며, 성 안에는 우물터 2곳과 서산 북주산과 부석면의 도비산에 연락을 취하던 봉수대가 설치되어 있다.
수령한 산세와 유서깊은 고적이 자리잡은 명산 정상으로 오르면 서해의 리아스식 해안이 그림처럼 펼쳐진다.
(태안8경)
태안1경 백화산,2경 안흥성,3경 암면송림,4경 만리포,5경 신두사결,6경 가의도, 7경 몽산해변, 8경 할미알아비바위
태안 1경 (백화산)
태안2경(안흥성)
태안3경 안면송림
태안4경 만리포
태안5경 신두사구
태안6경 가의도
태안7경 몽산해변
태안8경 할미,할아비바위
태안반도 지도
백화산 이정표 : 태을암 0.4km, 흥주사 1.8km
쌍괴대(雙槐臺)
쌍괴대는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커다란 고목으로 백화산 정상에 있던 느티나무를 어느 마차꾼이 마차바퀴를 만든다고 베어 갔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내려오고 있다.
쌍괴대(雙槐臺)의 유래
두 그루의 느티나무가 있던 자리라고 한다. 커다란 고목으로 백화산 정상에 있던 느티나무를 어느 마차꾼이 마차바퀴를 만든다고 베어 갔다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내려 오고 있다.
백화산에서 태을암으로 내려서는 계단의 모습
긴급신고 현위치 : 교장바위길 02-07
나무계단 통과
등로상에 있는 이정표 : 대림아파트(태안초등학교) 1km, 헬기장0.5km, 백화산정상 0.5km
백화산정상에서 태안읍일대을 조망하고는 우측방향 나무계단으로 내려서면 태을암으로 내려서는 갈림길이 나오고 마루금은 우측편으로 이어져 있어 우측편으로 진행하여 임도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태을암 방면의 모습
시멘트 임도길에서 우측방향은 공군부대방향이며, 마루금은 좌측방향으로 도로 따라 진행한다.
태을암 약수터의 모습
이름모를터의 흔적
태안 마애삼존불
위 치 : 충남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 817-2
태을암 경내 우측편에 백제시대 태안마애삼존불이 위치하고 있었다.
태안마애삼존불 (泰安磨崖三尊佛)
서해바다가 내려다 보이는 백화산 기슭의 바위에 새겨져 있는 마애불로 백제시대의 대표적인 불상이다.
중국의 석굴에 새겨진 불상들과 닮았기 때문에 중국 문화와의 교류 흔적 내지는 중국 석굴의 영향을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예로 주목되는 작품이다. 또 돌기둥에 새긴 충청남도 예산의 사방불(四方佛)을 제외하고는 돌에 새긴 불상 가운데 가장 오래된 작품이란 점에서도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외형적으로도 가운데에 보살입상을 세우고 좌우로 커다란 불상을 조각한 독특한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이런 형식은 현재까지 발견된 세계 유일의 예로 강건하면서도 세련된 백제 불상양식의 독특한 아름다움과 함께 불상의 가치를 높여준다.
왼편의 불상은 민머리 위에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표현되었고, 귀는 어깨까지 길게 내려오고 있다. 양 어깨에 걸쳐 입은 옷은 무겁게 처리되었는데, 배에 있는 띠모양의 매듭, U자형의 짧은 옷주름, 측면의 지그재그형 옷주름이 특징적이다. 오른쪽의 불상은 다른 것보다 손상이 별로 없으며 표현 방법은 기본적으로 왼편의 불상과 동일하다. 손모양에 있어 손가락 끝을 구부린 모습은 백제시대 불상양식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가운데 보살상은 양쪽의 큰 불상 사이에 있어서 더 작고 빈약해 보인다. 특징적인 것은 다리에 X자형으로 교차된 옷자락을 표현하고 있는 점인데 이는 부여 군수리 보살상과 비슷한 표현 방법이다. 불상이 서 있는 대좌는 연꽃이 엎어진 모양으로 날카롭게 표현되고 있어 서산 마애삼존불상(국보 제84호)과 동일한 모습을 볼 수 있다. 독특한 불상의 배치와 아울러 상투 모양의 머리, 강건한 얼굴, 당당한 신체와 무겁게 처리된 옷자락 등에서 6세기 후반의 백제 불상양식을 잘 보여주는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되고 있다.
태을암(太乙庵)
태안군 태안읍 동문리 산42번지 백화산(白華山)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7교구 본사 수덕사의 말사이다.
절이 창건된 것은 고려시대 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때는 왜구가 서해안에 출몰하며 한창 기승을 부릴 당시인데, 바닷가에 면한 태안 지방은 인근의 서산과 마찬가지로 가장 피해를 많이 입어 군민 대부분이 다른 지방으로 이주할 정도였다.
이 같은 사정은 조선이 개국되면서 많이 좋아져, 1413년(태종 13) 태안군이 되어 활기를 띠게 되었다. 그리고 1479년(성종 10) 경상북도 의성현(義城縣)에 있던 태일전(太一殿)을 이곳 백화산으로 옮기고 그 때 함께 이운한 단군 영정을 봉안하게 하였다. 그것은 곧 국조신(國祖神)이랄 수 있는 단군을 이곳으로 모셔옴으로써 그의 가호를 받아 민생 안정을 도모하기 위한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옮겨 온 태일전 아래에는 백제시대에 조성한 마애삼존불상이 있었으나, 태일전과는 직접적 관련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태일전은 이렇듯 바다의 안녕을 바라는 목적이 짙었는데, 그러나 실제 거리가 연해(沿海)와는 다소 먼 곳에 위치해 있었으므로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불편을 느꼈다. 그래서 1480년 태일전은 그대로 두고 단군 영정만 안흥진 성 안으로 이안하였고, 남은 태일전 건물에는 불상을 모시고 태을암이라 하였다.
이렇게 해서 태을암이 창건된 것이다. 더군다나 태일전 아래에는 마애삼존불상이 있으므로 절을 창건하기에는 적합한 조건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약 80여 년간이 지나니 건물은 점차 퇴락되어 가는데, 그 규모가 워낙 크므로 쉽사리 중수하기에 벅찼던 모양이다. 그래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와 몇 차례의 중건과 중수를 거치며 오늘에 이른다. 최근에는 1978년 법당과 요사를 중건하였다. 절에서 서쪽으로 10여m 지점에 태안마애삼존불상이 봉안된 보호각이 있다.
태안 마애삼존불 옆 바위에 적힌 태을동천(太乙同天)의 모습
태안 마애삼존불 옆 바위에는 태을동천(太乙同天)글씨가 새겨져있고 일소계(一笑溪)라 새긴 석판이 세워져있는데 절과는 어울리지 않는 글귀는 이곳 벼슬아치나 유생들이 이곳을 유유자적하며 풍류를 일삼던 곳이였으리라 짐작해 본다. 계해년 한가을에 김 규항이 썼다고 적혀 있는데...신성한 사찰내에 이 무슨 짓인지 조선시대에 숭유억불(崇儒抑佛) 정책의 한 단면을 보는것 같아 씁쓸함이 앞선다.
일소계(一笑溪)의 모습
태을동천 아래에 일소계(一笑溪)라고 새겨진 글씨는 김규항의 자손인 김 윤석이란 사람이 쓴 글이라고 한다. 태을동천 아래에 작은 연못과 연결되어 있다.
감모대(感慕臺)
태을암 뒷쪽 도로의 축대 아래에는 높이 850mm의 8각으로 되어있는 감모대가 있다. 이곳은 조선시대의 불교 탄압의 한 단면을 보는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당시 유생들이 이곳 감모대에서 바로 아래에 있는 삼존불 부처님께 돌을 던져 맞히는 놀이를 하였고, 한 문중(金海 金氏)의 족보보관 장소로 사찰내에 있는 일소계 일대의 장소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리고 맞은편 바위위에 새겨진 바둑판은 이런 유생들이남긴 훼불의 흔적이라고 한다.
삼존불 안내판의 모습
태안 동문리 마애삼존불입상(泰安 東門里 磨崖三尊佛立像 : 국보 제307호)
우리나라 마애불상의 초기 예로 부채꼴 바위 면에 사각형 감실을 마련하여 중앙에 보살상을 두고 좌우에 불상을 배치해 놓음으로써, 1구의 불상과 2구의 보살상으로 이루어지는 일반적인 삼존불상과 달리 2구의 불입상과 1구의 보살입상이 한 조를 이루는 특이한 삼존불상 형식을 보여주고 있다.
2구의 불입상은 양감 풍부한 얼굴에 크게 번지는 미소, 넓게 벌어진 당당한 어깨와 장대한 체구, U자형 주름과 y형 내의가 보이는 착의법, 도톰한 듯 날카로운 대좌의 연꽃무늬 등 세부적으로는 거의 동일한 양식 특징을 보인다.
좌우 두 불상 사이에 끼여 있는 듯 뒤로 물러나 작게 새겨진 보살입상은 높은 관에 아무런 무늬도 나타나 보이지 않지만 본래는 장식이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타원형으로 길고 통통한 얼굴은 잔잔한 미소를 머금어 원만상이다. 어깨를 덮어 내린 천의는 길게 내려와 무릎 부분에서 X자형으로 교차하며 묵중하게 처리되었으며 배 앞에 모은 두 손은 오른손을 위로 하여 보주를 감싸 쥔 이른바 봉보주인(捧寶珠印)을 나타내고 있다.
불신의 하반부가 노출되어 백제시대의 연화대좌가 확인됨으로써 그 도상적 가치를 더욱 돋보이게 하고 있다.
중국과의 교류상 요충지에 자리함으로써 6세기 중반 경 중국 북제양식 불상과의 영향 관계 파악에 매우 중요한 작품이며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국보 제84호)에 선행하는 조형양식을 지닌 백제 최고(最古)의 마애불상이란 점에서 국보로서의 가치가 인정된다.
태을암 삼성각의 모습
백조암의 모습
태을암에서 마애산존불을 관람하고 다시 좌측방향 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백조암이 나오고 바위뒤로 보이는 태안의 모습은 아름답고 가야할 퇴비산도 시야에 들어온다.
백조암 표지석의 모습
도로 탈출
백조암에서 약100m를 내려 진행하면 좌측방향으로 등로길이 이어지고 등로길에서 좌측편으로 바라보니 지나온백화산과 태을암이 조망된다
마루금 갈림길 우측편에 설치되어 있는 백화산 솔바람길 구간 안내도의 모습
태안 솔바람길의 모습
낙조암 갈림길의 모습
태을암에서 내려서면 도로을 버리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낙조암 갈림길이 나오고 마루금은 우측방향으로 진행하지만 낙조대 조망을 위해 좌측방향을 올라 낙조대을 직진으로 내려 다시 등로길을 만난다.
낙조봉(落照峰)
백화산 중턱에 위치한 매모양의 낙조봉은 소성팔경의 하나로 낙지봉 또는 동경대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어 진다. 화창한 날 이곳에 오르면 서해를 감싸안고 도는 저녁노을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 보듯 장관이어서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곳이라 한다.
낙조봉의 안내판
낙조봉(落照峰)의 유래
백화산 중턱에 위치한 매모양의 낙조봉은 소성팔경의 하나로 '낙지봉' 또는 '동경대'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어 진다. 화창한 날 이곳에 오르면 서해를 감싸 안고 도는 저녁노을이 마치 한 폭의 동양화 보듯 장관이어서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아름다운 곳이라 한다.
동경대의 모습
백조암에서 바라본 태안읍 삭선리의 모습
갈림길 통과
낙조암에서
태안읍내를 조망하고는 우측방향으로 꺽어져 내려오면 다시 등로길을 만나고 좌측방향으로 약50m 진행하다가 우측방향 숲속길로 진행한다. 등로길이 종흔곳으로 내려서면 태안 대림 아파트가 나오며 이지점에서 주의하여 진행하여야 한다 잘못하면 대형알바 하기 쉬운지점이다. 이곳에서좌측방향으로 전환하여 약10여분내려서면 모래기재에 도착한다.
모래기재
충남 태안읍 삭선리와 남문리를 잇는 603번 도로가 지나는 곳으로 고개마루에는 태안여고와 태안 종합학습센터, 교육청 그리고 태안초교가 자리를 잡고있다.
모래기재(도로명 성안1길) 통과
지금은 태안여고 앞으로 새로운 길 603번도로가 확장개설되어 있다. 마루금은 직진으로 진행한다.
태안종합학습센터의 모습
태안종합학습센터의 모습
태안여고
주변위치 : 충남 태안군 태안읍 원이로 7-1 (남문리 416)
모래기재에서 직진으로 진행하면 태안 종합학습센터 건물이 나오고 우측편으로 태안여고와 603지방도가 나온다. 603지방도는 태안읍에서 북쪽 만대항으로 연결되는 도로이다. 태안여고 정문에서 금북정맥 16구간 산행을 종료하고는 산악회에서 준비한 식사와 막걸리 한잔을 먹고는 태안종합학습센터 화장실에서 간단하게 세면을 마치고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 서울로 귀경한다.
다음 구간은 태안여고 우측방향으로 돌면 태안여고 로즈홀이 나오고 그 옆 도로를 따라 마루금이 이어진다.
다음 구간을 기약하면 숙면을 취해본다.
함께하신 대원 여러분과 선두에서 길잡이해 주신 대장님께 감사의 말씀 지면으로 전하며 건강한 모습으로 다음에 뵈겠습니다.
[쥐뿔이재-수량재]
지난구간에 이어 쥐뿔이재에 다시 한번더 발걸음을 하게된다. 지난구간은 팔봉산 명산 연계 산행으로 서산 금강산 팔봉지맥 분기봉에서 종료하는 관계로 마당한 접속구간이 없어 쥐뿔재에서 시작하게 된다.
쥐뿔재 명칭은 이 지역(서산, 태안)의 산꾼인 괜차뉴님이 지역 노인들의 口傳을 통해 이 고개의 이름을 발취하여 알리게 되었다고 한다. 지도상에는 나타나지 지명이다. 시멘트 포장도로에서 올라서면 성황당에서나 볼수있는 커다란 당산나무 한그루가 자리잡고 있고 그 형체가 여신의 모습 같았다.
느티나무에서 사진을 찍고는 임도길로 완만하게 올라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여 올랐다 내려서면 좌측편으로 묘지가 보이고 우측편으로 한차례 밀어올리면 멋진바위들이 나오고 잠시후 거북이 형상한 바위 앞을 지나게 된다.
거북바위을 지나면 295봉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한차례 밀어올리면 서산의 금강산에 도착한다. 금강산 주변에는 정상석과 삼각점 그리고 삼각점 안내판이 있지만 조망은 없었다.
금강산에서 내려서면 큰 암릉이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하여 내려서면 팔봉지맥 분기점에 도착한다. 지난번에는 이지점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여 팔봉산을 찍고 주차장을 하산 하였지만 이번에는 등로길이 희미한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팔봉지맥 분기점을 통과하면서 부터 진짜 산행이 시작되는데 잡풀이 무성하고 등로길에 태풍으로 쓰러져 있는 나무들을 오리조리로 피해가면서 진행하는것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무명봉 두개을 넘어 급경사지을 올라서면 장군봉이란 표지기가 있는작은 바위 봉우리에 도착하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며 하마바위가 나온다. 이곳에서 내려서면 급경사 등로길이 나오고 조심하여 내려서면 서산예비군 훈련소 입구에 도착하며 잠시후 32번 국도가 보이는 수량재에 도착을 한다.
[수량재~물래산]
서산예비군훈련장 입구 도로 따라 내려서면 2차선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방향 홍성중기공업사 건물이 있는 방향으로 진행하여 32번 국도 지하차도을 통과하여 우측방향으로 조금 진행하면 좌측편으로 차리버스 정류장이 나온다.
차리버스 정류장에서 물한모금 마시고는 직진으로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32번 국도가 보이고 송림씽크 입간판이 나온다. 송림싱크 입간판을 조금 지나 좌측편 전붓대 뒤편 갈림길로 진행하면 민가주택 한채가(차리 수량재길 2-7) 나오고 민가 주택 옆 밭을 통과하며 넓은 임도길이 나오고 임도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넓은 임도길로 진행하면 정면으로 파란지붕으로 되어있는 건물 앞 삼걸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다가 갈림길에서 우측방향 전환하여 다시 좌측방향 능선으로 진행하면 물탱크가 설치되어 있는 차리배수지(한국 수자원공사 서산수도 관리단)에 도착한다.
차리배수지 철조망 옆으로 지나 멋진 바위가 있는 능선에 올라 서산시 인지면 일대와 지나온 마루금을 조망하고는 산불로 인하여 간벌이 되어 있는 곳을 완만하게 오르면 물래산에 도착한다. 물래산 정상에는 정상석은 보이지 않고 준,희님의 표지기가 소나무에 설치되어 있었다.
[물래산~붉은재]
물래산에서 우측방향으로 전환하여 진행하니 태풍에 쓰려진 잡목들로 인하여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다. 무명봉을 두개정도 넘어서니 나무로 만등 의자에 도착하는데 이곳이 지도상에 있는 100봉이다.
100봉에서 내려섰다가 경사지을 올라서면 커다란 바위가 나오고 나무에 진산이라는 표지기가 보인다. 표지기가 없었다면 그냥 아무것도 모르고 지나칠수 있는 지점이다. 진산에서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갈림길에서 좌측 진장리방향으로 내려서니 넓은 임도길이 나온다. 좌측편으로 축사가 나타나고 우측방향으로 비포장도로를 따라 진행하면 32번국도 아래지하도에 도착한다. 지하도를 빠져 나오면 우측편으로 팔봉중학교가 보이고 팔봉 중학교 교내에서 점심식사을 한다.
팔봉중학교에서 식사을 간단하게 마치고는 교내 건물 뒤편으로 이어진 마루금을 따라 시멘트도로로 진행하다 보면 공동묘지가 나오고 저멀리 이동통신 통신탑이 보이는데 그곳까지 이어가야 한다.
이동통신 통신탑을 지나면 삼거리가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전환하여 진행하면 등로길에 과수원이 나온다. 도로를 따라 계속 진행하면 주택앞을 지나고 우측방향에 배 과수원도 나타난다. 배과수원을 지나면 삼거리가 나오고 삼거리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우측편에 굴포운하지의 유래 안내판이 나타난다.
굴포운하지에서 직진으로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정자가 나오고 잠시후우측편으로 구세군교회와 인평3리 다목적회관이 나온다. 도로로 계속진행하면 도내1리(도루재) 버스정류장이 나오고 갈림길에서 좌측편 10시방향으로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축사가 나오고 잠시후 도내1리(소하말) 정류소에 도착한다.
계수농원을 우측편에 두고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방향 전환하여 진행하면 북창마을 버스 정류소앞에 도착한다. 도로을 직진으로 건너 진행하면 벧엘목장이 나오고 잠시후 도일목장이 나타나고 조금 더 진행하면 붉은재 들머리에 도착한다.
[붉은재~모래기재]
도일목장 입간판에서 직진으로 조금 진행하면 좌측편으로 산악회 표지기 붙혀있는곳이 불은재 들머리지점이다. 임도길로 진행하면 등로길이 파혀쳐져 있는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고 우측방향으로 올라 능선에서 진행하면 지난 태풍 곤파스의 잔해들로 인하여 무척 힘들게 진행한다.
군부대에서 각계전투하는 모양으로 오리조리로 쓰러진 나무들을 넘고 넘어 올르면 좌측편으로 무명묘지가 나오고 잠시후 129봉에 도착한다. 129봉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또 다시 한차례 전투훈련을 하고 내려서면 김해김씨 합장묘지가 좌측편으로 있고 우측편으로 진행하다가 갈림길에서 다시 좌측편 능선으로 진행 하여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설치되어 있는 오석산정상에 도착한다.
오석산정상부에는 삼각점과 삼각점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고 준,희님의 표지기가 붙혀있었다. 오석산은 흑석산이라고도 부러며 정상석은 없었다.
오석산에서 직진으로 내려서면 오래되지 않은 묘지가가 나오고 임도길로 나오고 임도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오르면 주변이 고사리밭으로 이루져 있었다. 고사리밭을 오르면 130봉인 옥녀봉이 나오고 옥녀봉에서 내려서면 충남 태안읍 산후리 원산후 부락과 상옥리 고일마을 이어주는 시멘트돌로인 강실고개에 도착한다.
강실고개에 직진으로 오르면 넓은 밭이 나오는데 그곳에 단호박들이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선두에서 농작물에 손대지 말라는 무전이 았어 한개정도 따고 싶은 충동감이 왔지만 그냥 지나친다. 밭을 지나 완만하게 진행하면 벌목지대가 정면으로 보이고 갈대밭에 도착한다.
갈대밭에서 태안시내와 서해바다을 조망하고는 완만하게 오르면 흥주산 갈림길에 도착한다. 전망대가 있는 좌측방향으로 진행하여 전망대에서 지나온 마루금과 팔봉산 서해바다 그리고 태안읍내을 조망하고는 다시 214.7봉 흥주산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멋진 소나무 등로길이 나온다.
편안한 등로길로 내려서면 시멘트 임도가 나타나고 백화산0.6km 이정표가 있는곳에서 직진으로 진행하면 로프로 연결한 등로가 나오고 잠시후 나무계단이 연속으로 나오며 잠시후 백화산 갈림길 안부에 도착한다. 안부 우측편으로 군부대 철조망과 표지판이 나타난다. 백화산 정상은 커다란 암반으로 되어 있고 태안 시내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는 그야말로 태안의 진산다운 면목을 보여주고 있었다. 씽괴대 바위를 지나 우측편 나무계단으로 하산하여 태을암에 들려 태을동천이라고 새겨진 바위와 태안마애삼존불을 감상하고는 태을암을 나와 도로 좌측편으로 내려서면 우측편으로 백조암이 나오고 조금더 진행하면 좌측편으로 진행한다.
백조암에서 약50여마터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우측편 백화산 솔바람길 구간안내도가 설치되어 있는 지점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그냥 지나쳐도 되지만 낙조봉을 조망하기 위해 좌측편 암릉지을 올라본다. 낙조봉에서 태안시내와 태안여고을 조망하고는 우측편으로 내려 임도길에서 다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우측편 숲속으로 진행한다.
임도길을 버리고 우측편으로 내려서면 2차선 구도로가 나오고 직진으로 건너 작은 텃밭을 넘어서면 태안종합학습센터가 나오고 태안여고 후문(ROSE HALL건물)이 있는 모을고개에 도착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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