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 2구간 부소령에서 판동고개 산행후기(역방향)

2014. 3. 2. 22:43★ 9 정맥/- 3. 금북[완료]

금북정맥 2구간(부소령~판동고개)

 

 

 

산 행 지 : 경기 안성군 서운면  /충남 천안시 북면,입장면 / 진천군 백곡면  금북정맥 2구간

산행일시 : 2014년 3월1일(토요 당일산행)

산행코스 : 부소령(부수문이고개)-459봉-엽돈재-395.4봉-440봉-헬기장-서운산(547.7m)-배티고개(이티

               재)-헬기장-장고개-422.3봉-철탑-에머슨GC, 중앙GC-판동고개-학동마을-낙성교

산행시간 : 09:30~14:00 (4시간30분, 식사 및 휴식포함)

산행거리 : 약16.7Km(정맥14.2Km, 접속구간2.5Km), GPS 17.8Km

산행날씨 : 맑음

산행인원 : 42명

산행코스 및 구간거리 :부소령(부수문이고개)-2.6/3km(60분)-엽돈재-4.5/5.2km(1시간40분)-서운산-

                                2.2/2.5km(40분)-배티고개(이티재)-3.1/3.5km(60분)-판동고개-2.2/2.5km(40

                               분)-학동마을(성대저수지 낙성교 앞)

 

구간

거리 (km)

출발시간

소요시간

비고

부소령

-

09:30 

 

해발274m, 부소문이 고개(부수문이 고개), 57번 지방도, 천안시 입장면 양대리에서 북면 운용리로 넘어가는 고개

엽돈재

 3

10:15 

45분 

해발323m, 34번국도,  경기도, 충청북도, 충청남도 등 삼도(三道)가 만나는 지점이다.

서운산

  5.2

12:05

1시간50분

해발547m, 정삭석, 나무테크,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과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경계에 있는 산.

배티고개

  2.5

12:45

40분

해발341m, 일명:이치재, 313번 지방도, 충북 진천군 백곡면과 안성시를 넘는 고개로 이 지역에 배나무가 많다고 해서 이치(梨峙)재라고 했고 그것을 순수한 우리말로 배티재라 불렀다는

판동고개

  3.5

13:40

55분

산행종료

학동마을

2.5

14:00

20분

판동고개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학동마을이 나오고  성대저주지를 지나 낙성교 앞에서 산행종료

마루금 거리

14.2 

 

4시간30분

 

접속 거리

 2.5

 

 

 

총 거리

16.7

 

 

 

GPS거리

17.8 

 

 

 

 

 

금북정맥 2구간(부소령-부소산-엽돈재-서운산- 판동고개)지도

 

금북정맥 산행 지도

 

금북정맥 2구간(부소령-부소산-서운산-판동고개)고도표  

 

금북정맥(錦北正脈) 개요

백두산에서 지리산을 향하여 줄기차게 달려가던 백두대간이 속리산 천왕봉에서 가지를 쳐 안성의 칠장산까지 한강과 금강의 물줄기를 가르며 이어간 한남금북정맥이 안성 칠장산에서 다시 가지를 쳐 금북정맥과 한남정맥으로 가른다. 금북정맥은 경기도 안성의 칠장산(491.2m)에서 충남 태안의 태안반도 안흥진까지 금강의 윗쪽에서 물길을 모으는 산줄기로 거리는 약 267km에 달한다. 산경표에서는 칠현산에서 분기한다고 되어 있지만 칠현산군에 칠장산도 포함되고 실제 도상거리도 2km밖에 되지 않은 가까운 거리이기 때문에 산경표와 현대의 지리가 맞아 떨어지는 곳이다.

 

금북정맥은 분기점 칠장산에서 칠현산 - 서운산 - 성거산 - 국사봉- 광덕산 - 백월산에서 방향을 전환하여 오서산 - 보개산 - 수덕산 - 가야산 - 성왕산 - 백화산 - 안흥진으로 약 267km를 이어간다. 금북정맥이 금강 북쪽의 분수령이 되려면 금강하구로 향하여야 하는데 백월산에서 방향을 틀어 태안 앞바다 안흥진으로 향하는 바람에 금남정맥이 금강하구로 향하지 않고 부여 구드레나루로 향한 것 같이 금강을 수계로 하는 남북의 산줄기 명칭에 논란이 있다. 산경표 원작자의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이는 여러 정맥 중에서 특이한 정맥에 속한다. 하여 산자분수령의 원리를 적용하여 정확하게 물길의 흐름을 구분하려 하는 사람들은 이 맥의 이름을 새로 지어 부르려 하지만 그것보다는 산경표상의 이름을 그대로 부르는 것이 옳지 않을까.

 

백두대간은 험한 산줄기가 굳건한 성이되어 고구려, 백제, 신라, 가야 등 각 나라의 경계선이었던데 비해 한남금북정맥의 주변은 백제, 고구려, 신라의 각축장이되었다. 한편 금북정맥은 금강의 수계를 형성하면서 조선시대에 차령을 중심으로 그 문화적 교류가 남북으로 나누어 지다 호서지방으로 접어들면서 해양문화와 육지문화가 서로 교류하고 외국의 문물까지 교역하는 길이 된다. 서산 마애삼존불과 태안 마애삼존불은 중국 불교 문화의 영향을 받아 그 길목에 형성된 문화들이다. 또한 천주교의 유입이 이곳 안흥진을 경유하여 들어왔기 때문에 금북정맥 인근에는 순교지가 많다.

 

 

* 종주에 필요한 지형도 도엽명;

- 1:50,000 지도 : 근흥, 만리포, 서산, 당진, 홍성, 청양, 보령, 예산, 전의, 평택, 진천, 안성 (12매)
- 1:25,000 지도 : 근흥, 소원, 태안, 서산, 운산, 해미, 덕산, 홍성, 라원, 청양, 대흥, 유구, 대술, 광덕,

전의, 의당, 천안, 병천, 서운, 만승, 죽산 (21매)

 

* 금북정맥 대표 산 (도상거리 : 약 267km)

* 칠장산-칠현산-덕성산-무이산-서운산-성거산-태조산-경암산-고려산-국사봉-봉수산-천방산-극정봉-장학산-국사봉-금자봉-문박산-천마봉-오봉산-백월산-오서산-남산-일월산-홍동산-수덕산-뒷산-가야산-일락산-상왕산-동암산-은봉산-간대산-성상산-금강산-장군산-물래산-오석산-백화산-퇴비산-구수산-전막산-지령산-안흥진

 

금북정맥 개략도

 

금북정맥

한남 금북정맥의 끝인 경기도 안성시 칠장산(491m)에서 태안반도의 안흥진(安興鎭)까지 금강의 서북쪽을 지나는 산줄기로 칠장산에서 서남쪽으로 뻗어 칠현산(516m), 덕성산,서운산, 성거산(579m), 태조산, 국사봉, 봉수산 등 충남을 가로질러 청양의 백월산(395m)에 이르고 여기에서 다시 서북으로 뻗어 오서산(791m)·보개산(274m), 일월산(395m), 수덕산(495m), 가야산(678m)에 이르러 다시 서쪽으로 뻗어 성왕산
오석산, 백화산, 오석산, 지령산을 거친 뒤 태안반도의 끝인 안흥진에서 그 맥을 다 하는 약 280km에 달하
는 산줄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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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북정맥 출정식을 마치고 2주동안 무척이나 바쁜주를 보낸것 같다. 지방출장에다 큰아이 대학입학식까지 바쁜주를 보내고 이번에 시행하는 금북정맥 2구간을 위하여 베낭을  챙긴다.

 

전날 친구들과 진하게 모임을 하는 관계로 집에 늦게 귀가하여 베낭을 챙겨놓았는데 카메라을 챙기지 못하고 집에서 나왔다. 집결지에서 알았다면 집으로 달려가 챙겨올수 있었는데 산행지에 도착하고서야 카메라가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핸폰으로 후기사진을 올려본다.

 

상일동 육교 집결지에서 회장님과 대원들을 반갑게 조우하고는 도착하는 버스에 올라 중부고속도로을 질주한다. 잠깐 눈을 부쳐다고 생각했는데 음성휴게소에 버스는 도착하고 아침식사을 못하신 대원들은 간단하게 요기을 하고는 버스는 다시 중부고속도로을 달린다.

 

버스내에서 회장님께서 오늘 산행에 대해 간략하게 설명을 하시고 판동고개에서 부소령(부소문이재)로 이어가야 하지만 이곳에 물이 없는 관계로 역방향으로 산행을 하신다고 한다.

 

버스는 진천 톨게이트을 나와 34번 국도 엽돈재에서 단축산행하시는 대원들을 내리고는 다시 34번 국도을 지나 57번 지방도상에 있는 부소령에 도착한다. 부소령은 천안시 입장면 양대리에서 북면 운용리로 넘어가는 고개에 위치하고 있으며  57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백제때 이곳에 부소문을 달았다고 하여 소나무(  '부소'는 '솔(松)'이라는 뜻으로 )고개의 뜻을 지녔다고 하며, 부수문이고개는 '扶蘇門嶺'이라 하고 백제시대에 이곳에 부소문을 세웠다고 해서 얻은 이름입니다. 편도 1차선의 좁은 산길이지만 의외로 차량통행은 많은 편이었다.

 

부소령 이정석과 다음산행 들머리지점을 확인하고는 57번 지방도로을 횡단하여 건너편  능선을 한차례 밀어 올리며 금북정맥 2구간 산행이 시작된다.

 


부소령(해발274m, 扶蘇岺)들머리지점

위치 : 충남 천안시 동남구 북면 운용리 69

다음구간의 들머리지점을 사진에 담아본다 오늘진행하는 금북정맥 마루금은 57번 도로건너 능선 역방행(부소령~판동고개)으로 이어간다. 부소문이 고개라고도 하고 부소치라고도 불런다.

부소령에는 57번 지방도가 지나고 우측편으로 부소령 이정석과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었다. 이고개는 천안 입장면 양대리에서 북면 운용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며 백제 온조왕이 위례성에서 도읍하였응때 이곳에 문을 세워부소문 고개라 불리어 지고 '부소'는 '솔(松)'이라는 뜻으로 소나무산 고개라고도 한다


천안 성거산 위례성 안내판

 

부소령 들머리지점

부소령 이정석 57번 도로 건너편으로 능선으로 진행하면 부소산- 엽돈재-서운산(547.7m)-배티고개(이티

재-판동고개로 이어진다. 오늘 산행은 부소령에 물이 없어 역방향으로 진행한다.

 

부소령 57번 지방도의 모습

부소령에서 바라본 천안시 입장면 양대리방면의 57번 지방도 방면

 

부소령[해발274m, 扶蘇岺, 부소치(扶蘇峙), 부소문이 고개, 부수문이 고개]
부소령은 천안시 입장면 양대리에서 북면 운용리로 넘어가는 고개이며 57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백제때 이곳에 부소문을 달았다고 하여 소나무 고개의 뜻을 지녔다고 하며, 부수문이고개는 '扶蘇門嶺'이라 하고 백제시대에 이곳에 부소문을 세웠다고 해서 얻은 이름입니다. 편도 1차선의 좁은 산길인데 의외로 차량통행은 많은 편입니다

 

부소령 표시석에 표시한 부소령 설명석이 있는 부소이문 고개(扶蘇門峙)는 충남 천안시의 동남구 북면 운용리와 입장면 양대리 경계에 위치한 고개이다.

『팔도군현지도』(목천)와 『조선지도』(목천)에서 직산, 안성과의 경계부에 부소치(扶蘇峙)가 나타난다.

『조선지형도』에 북면 운용리와 입장면 양대리 경계에 부소령(扶蘇岺)이 있다.

백제 온조왕이 처음 도읍한 위례성에 대하여는 광주위례성설과 직산위례성설이 있다. 이곳은 직산 위례성설의 그 위례성과 가까운 곳으로서 온조왕이 처음 도읍하였을 때 이곳에 문을 세웠으므로 부소문이고개라 부른다고 한다.

 

부소령 2등 삼각점의 모습

 

부소령(부소치(扶蘇峙), 부소문이 고개, 부수문이 고개)에서 판동고개까지 역방향 산행 관계로 부소령이정석이 있는곳에서 57번 지방도로을 횡단하여 급경사 오름길을 올라선다. 한차례 경사지을 올라서면 평탄한 등로길이 나오고 낙엽이 쌓여있어 폭신하고 둘래길 같은 느낌이 들어온다.

 

완만하게 무명봉을 넘고 묘지가 있는곳을 통과하여 오르면 지도상에는 459봉이라고만 표기되어 있는 부소산에 도착하게 된다. 부소산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입장면 양대리와 북면 대평리 경계에 위치한 산이며, 부소산에는 정상석과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었고 주변 조망은 없었다.

 

부소산 정상을 찍고는 우측방향으로 내려섰다 오르면 무명묘지 두 곳을 지나게 되고 올라서면 무명봉 삼거리 우측편에 부소산 "400m" 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지점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선두조는 우측방향으로 진행하여 알바을 하고는 후미조와 조우하여 진행한 지점이다.

 

무명봉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올라섰다가 내려서면 완만한 등로길이 나오고 계속진행하면 만뢰지맥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지점에서 우측방향은 만뢰지맥 등로길이고, 마루금은 좌측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만뢰지맥은 금북정맥의 서운산에서 남쪽으로 5.1km 떨어진 엽돈재(34번국도) 남쪽 200m에서 분기하여 서남진하면서 만뢰산( 612.2m.일부 지도엔 만근산으로 표기),덕유산(德裕山.412m),환희산(歡喜山. 402.2m),취령산(鷲嶺山.목령산(鶩嶺山 .229.1m.)을 일구고 취령산(목령산)에서 방향을 바꿔 서남진하며 다시 상봉산(196m),국사봉(國師峰.171m)을 일구고 경부고속도로를 건넌후 마지막으로 응봉산(175.4m)을 들어 올린후 청주시를 바라보며 미호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9.5km의 산줄기를 말한다.이산줄기를 지나는 산들중 제일높은 산인 만뢰산의 이름을 따서 만뢰지맥이라고 한다.

 

만뢰지맥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니 경사지가 무척이나 미끄럽다. 낙엽 아래에 눈이 녹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상당한 상태다. 조심하여 진행하니 엽돈재에 도착한다.

 

엽돈재(해발323m)는 경기도, 충청북도, 충청남도 등 삼도(三道)가 만나는 지점이며 34번 국도가 지나고 있다.  금북정맥(차령산맥)에 걸친 고개로 동쪽은 충북 진천시 이월면 , 서쪽은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 남쪽은 충남 천안시 북구 입장면이다.엽돈재를 다른 이름으로 엽전재(葉錢峙), 엽둔재(葉屯峙), 엽둔티, 율둔티 등으로도 불렀다.

 

부소령(부소문이고개 275m)

부소령(부수문이고개)는 천안시 입장면과 북면를 가르는 2차선 도로. 부소령은 백제 첫 도읍지 하남 위례성 직산 백제시대(BC18 ~ 6 , 13 년)부소령은 충청남도 천안시의 동남구 북면 운용리와 입장면 양대리 경계에 위치한 고개이다.

 

편안한 등로길의 모습

부소령에서 능선으로 한차례 밀어올리면 편안한 등로길이 나온다. 둘래길을 영상하게하는 등로길은 낙엽이 쌓여 폭신하기까지 하다. 

부소산정상 이정표

 

부소산(扶蘇山, 해발 459.1m) 정상석의 모습

 

부소산 삼각점(진천, 314)


부소산(扶蘇山:459.1m)

백제 온조왕이 마한 목지국의 진왕으로 부터 북동 100리땅을 봉토 받아 백제 첫 도읍지(하남 위례성)을 세운곳으로 전행진다.

부소문이고개는 부소산과 위례산성을 이어주며 부소령, 부소치, 부소문치등으로 규장각 고지도에 전하며 일명 부수문이고개라 불리어진다.

비류와 온조가 첫 도읍지를 전하는데 부소는 솔(松)의 뜻이며 백제어로 부소모 이었다.

 

 

부소산(扶蘇山:459.1m)정상석에서 인정샷

충청남도 천안시의 동남구 입장면 양대리와 북면 대평리 등의 경계에 위치한 산이다(고도:459m).

『조선지형도』에 북면 운용리와 입장면 양대리 경계에 부소령이 있다. 산 북쪽에 있는 엽돈재가 충청북도 진천군과 충청남도의 경계가 된다.

천안을 비롯하여 부여와 개성의 부소산, 태백산의 부쇠봉 등 여러 곳에 같은 계열의 지명이 분포하고 있다.

이 산이 백제 시조 온조의 직산 위례성설에 의한 위례산 바로 동쪽에 위치하고 있어서 역사적으로 해석되기도 하고 부여족 민족의 대이동과 관련되어 설명되기도 하다.

부소산은 단군의 아들 부소의 이름을 붙인 산으로 추측되기도 한다. 이 산 남쪽에 부소문이(부수문이)고개가 있다

 

부소산 이정표

무명묘지 두 곳을 올라서면 무명봉 우측편에 부소산 "400m" 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고 이지점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선두조는 우측방향으로 진행하여 알바을 하고는 후미조와 조우하여 진행한 지점이다

 

이정표 표지판 : 부소산정상 300m / 깊은골 

우측방향은 깊은골방면이고 금북정맥 마루금은  좌직진방향이다.

 

만뢰지맥 분기점

 

만뢰지맥이란

만뢰지맥은 금북정맥의 서운산에서 남쪽으로 5.1km 떨어진 엽돈재(34번국도) 남쪽 200m에서 분기하여 서남진하면서 만뢰산( 612.2m.일부 지도엔 만근산으로 표기),덕유산(德裕山.412m),환희산(歡喜山. 402.2m),취령산(鷲嶺山.목령산(鶩嶺山 .229.1m.)을 일구고 취령산(목령산)에서 방향을 바꿔 서남진하며 다시 상봉산(196m),국사봉(國師峰.171m)을 일구고 경부고속도로를 건넌후 마지막으로 응봉산(175.4m)을 들어 올린후 청주시를 바라보며 미호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9.5km의 산줄기를 말한다.이산줄기를 지나는 산들중 제일높은 산인 만뢰산의 이름을 따서 만뢰지맥이라고 한다.

 

만뢰지맥의 동쪽으로 흐르는물은 백곡천이나 성암천이 되어 미호천으로 흘러들고 서쪽물은 병천천(46.75km)이 되어 충남의 천안시 북면, 병천을 거쳐 충북의 오창과 옥산면을 거쳐 청원군 강외면에서 미호천(89.20km)에 합류되어 서남진하여 연기군 동면 합강에서 금강(397.79km)에 합류하여 공주로 흘러간다 

 

만뢰산 [萬賴山]

충청북도 진천군의 서부에 위치한 산이다(고도:612m). 진천군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천안시와 경계이다. 인근에 진천읍 연곡리 보련 마을이 있어 보련산이라고도 한다. 정상부에 만뢰산성이 있으며 조선 시대는 이흘산성(伊訖山城)으로 불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을 서쪽 24리에 있다. 돌로 쌓았는데 둘레가 3천 9백 80척이요, 안에 우물 하나가 있었는데 지금은 폐지되었다."라는 기사 내용이 있다. 병자호란 당시 산 정상에 있는 만노산성(萬弩山城)에서 유창국(柳昌國)이 조감(趙瑊)과 함께 적과 맞서 수천 명의 피란민을 구했다고 전한다. 『세종실록지리지』의
태령산(胎靈山) 관련 기사에서 '만노군태수(萬弩郡太守)'라는 내용이 있어 이 지명은 당시 이곳에 있었던 만노군과 관련이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보련산(寶連山)'으로 수록되어 있으며 "고을 서쪽 20리에 있다."라는 기사가 있다. 『여지도서』에는 "협탄령에서 뻗어 나와, 떨어진 줄기가 성산(城山)이 된다."라는 내용이 있다. 대부분의 옛 지도에서도 만노산이 기재되어 있으며, 보련산은 따로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해동지도』에서는 만노산과 보련산이 다른 위치에 지명이 기재되어 있어 이에 대한 상세한 검토가 필요하다.

 

엽돈재(해발323m)의 모습

위치 : 충남 천안시 서북구 입장면 도림리 24-3

경기도, 충청북도, 충청남도 등 삼도(三道)가 만나는 지점이다. 해발 고도 323m 로서 34번 국도가 여기를 지나며, 금북정맥(차령산맥)에 걸친 고개로 동쪽은 충북 진천시 이월면 , 서쪽은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 남쪽은 충남 천안시 북구 입장면이다.엽돈재를 다른 이름으로 엽전재(葉錢峙), 엽둔재(葉屯峙), 엽둔티, 율둔티 등으로도 불렀다. 

고개이름 유래가 확실한 것이 없지만, 마을 주민들의 이야기로는 옛날 장을 보려고 이 재를 넘나드는 사람이 많았는데, 숲이 워낙 깊어 장꾼을 노리는 도둑이 많았던 관계로 엽전을 가지고 가던 사람은 모두 빼았겼다고 한다.

 

엽돈재(해발 323m)의 모습

엽돈재 : 충남 천안시 입장면과 충북 진천군 백곡면 도경계로 34번 국도와 경기도 안성시의 3도경계지이다.

충청남도 천안시 서북구입장면 도림리와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 사이에 위치한 고개이다. 『1872년지방지도』(직산)의 진천과 경계부에 '청룡산'과 함께 '엽돈치(葉頓峙)'가 나타난다. 고개가 높고 험해서 옛날에는 도둑이 많았으며, 엽전을 가지고 이 고개를 넘는 사람은 모두 도둑에게 털리었으므로 엽돈재라 부르게 되었고, 변하여 엽둔재, 율둔티, 엽전티 등으로도 불렀다. 고개 아래 보덕원(普德院)이라는 원(院) 마을이 있어서 이 고개를 넘는 행인들의 편의를 보아주었다 

충청북도 진천군의 백곡면 갈월리와 충남 천안시 입장면 도림리, 경기 안성시 서운면 도림리 사이에 있는 고개이다. 현재 34번 국도가 지나고 있다. 임진왜란 당시 안성에 사는 홍계남(洪季男)이 의병 수천 명을 모아 왜군과 접전하여 승전한 곳이다. '엽둔재' 인근에는 홍계남이 쌓은 것으로 추정되는 성터가 남아 있다.
조선 시대에는 협탄령(脇呑嶺)으로 불렸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고을 서쪽 협탄소(脇呑所)에 있으니, 직산현 경계이다."라는 기록이 있고, 『여지도서』에는 "관아의 서쪽 38리에 있다. 대문령에서 뻗어 와서, 한 줄기는 길상산(吉祥山)이 되고, 한 줄기는
보련산(寶蓮山)이 되었다."라는 기사 내용이 있다. 『1872년지방지도』에는 지명과 함께 '직산계 청룡동 38리'라는 주기가 있다. '협탄(脇呑)'은 이곳에 '협탄원(脇呑院)'이라는 원이 있어서 붙여진 이름으로 추정된다. 『여지도서』에 협탄원에 대해 "관아의 서쪽 24리에 있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라는 기록이 있다.

 

 

엽돈재의 수준점(06-02-13-09, 해발323m)

 

엽돈재의 충남 천안시 입장면 방면 모습.

엽돈재는 충북 진천군, 충남 천안시 입장면, 경기 안성시 서운면의 3도 경계지이고 도로 표지판 기준 천안시 입장면 방면에 서운산 들머리가 있다. 엽돈재 주변에는 이정표와 삼각점 그리고 34번 국도가 지나고 있었다.

 

엽돈재의 충북 진천군 백곡면 방면모습

엽돈재 동쪽방면에 진천군 백곡면 갈월리에 "엽돈"마을이 위치하고 있다. 엽돈재는 일명 엽둔고개, 엽둔티, 엽전리, 율둔티하고도 불리어 지는데, 옛날에 도둑이 많아서 엽전을 가지고 가는 사람은 모두 빼앗겼다고 해서 생긴 지명이다. 엽돈재는 경기도, 충청북도, 충청남도 삼도의 경계입니다. 지리산, 거창, 영동에 있는 삼도봉처럼 이곳도 삼도가 나눠지는 곳이니,이름을 '三道嶺'이라 부르는 것도 좋을 듯합니다.

 

엽돈재 들머리지점

부소산, 만뢰지맥삼거리에서 내려 34번 국도을 무단횡단하여 천안시 입장면 입간판 앞 공터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이정판이 있고 능선으로 한차례 밀어 올리면 벌목지대가 펼처진다.

 

벌목지대(개활지)을 완만하게 진행하면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의 수인사로 내려서는안부가나오고 안부에서오르면 백곡임도 삼거리에 도착한다 백곡임도 삼거리는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상백마을 방면으로 연결되는 임도 갈림길이다.

 

백곡임도 삼거리에서 직진으로 완만하게 진행하면 팟줄이 설치된 경사지가나오고 한차례 밀어올리면 좌측편으로 헬기장이나온다. 헬기장에 들려 확인하고는 우측편으로 올라서니 서운산정상에 도착한다.

 

서운산정상부에는정상석과 나무테크로 이루어져 있었고 조망이 좋았다. 서운산정상부에서 인증샷을 남기고는 정상아래에 나무의자가 있어 대원들이랑 이른 점심을 하고는 삼거리에서 좌측편으로 진행하니 삼각점이있는 봉우리을 넘고  내려서니 석남사 갈림길이 나온다. 석남사 갈림길에서 직진으로 진행하여 내려서면 두번에 걸쳐 석남사 갈림길이 나오고 이곳에서 직진방향 버리고 우측방향으로 방향전환하여 내려선다.

 

우측방향 배네고개로 내려서면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경사지을  내려섰다오르면  배티성지 갈림길에도착하고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경사지가 나오는데 낙엽아래 눈이녹아 등로길이 상당히 미끄러웠다. 천주교 무명순교자 6인묘지 갈림길을직진으로 진행하면 완만한등로길이 나오고  다시 팟줄이 설치된 경사지을내려서면 배티고개에 도착한다.

 

엽돈재 들머리 이정표 : 서운산정상 5.4km, 청룡사 6.7km, 중앙골프장입구도로 6.8km,  베티성지 8.1km

 

엽돈재 들머리지점 등로길의 모습

 

벌목지대 통과

엽돈재에서 경사지을 한차례 밀어올리면 정방이 확트이는 벌목지대가 나오고, 벌목지에 낙엽송으로 보이는 묘목이 식재되어 있었다. 우측방향으로 백곡면 방면에서 돈엽재를 오르는 34번국도가 조망되었다.

 

벌목지대에서 바라본 앞으로 이어갈 마루금의 모습

 

안부통과

벌목지대을 지나 내려서면 안부가 나오는데,  좌측방향은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의 수인사로 내려가는 갈림길이다.

 

백곡임도 갈림길

백곡임도 갈림길은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상백마을 방면으로 연결되는 임도 갈림길이며 마루금은 직진으로 진행한다.

 

백곡임도 삼거리 이정표 : 엽돈재3.1km, 백곡입도0.5km, 서운산정상 2.3km

 

이정표 : 엽돈재 4.5km, 서운산정상 0.8km

백곡임도 갈림길을 지나 무명봉을 넘어 내려서면  휴식년제로 폐쇄된 갈림길이 나오며 마루금은 계속하여 짖진으로 진행한다.

등산로 휴식년제 알림판의 모습

 

조릿대나무의 안내판

 

층층나무 안내판

서운산 정상 부근에 조릿대와 층층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는것 같았다.

 

 

 

서운산으로 오르는 등로의 모습

백곡임도 갈림길에서 무명봉 찍고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갈림길에서 직진으로 오르면 완만하게 계속하여 올름길이 나오고 헬기장 직진에는 팟줄과 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헬기장의 모습

서운산 직전에 있는 헬기장은 마루금에서 좌측편으로 약간 비껴 있었다. 모산악회에서 시산제을 지냈는지산악인들이 많이 모여 있어 헬기장을 찍고는 우측편으로 오른다. 좌측편으로  진행하면 서운산성이 나온다. 서운산으로 오르는 등로길은 마치 둘래길을 영상케 하며 가족 나들이 하기에는 안성마춤인것 같았다.

 

헬기장 이정표(해발500m) : 서운산정상 0.2km, 은적암 0.2km

 

헬기장 갈림길 이정표 : 엽돈재(금북정맥) 5.3km, 정자 0.2km, 정상 0.2km.

헬기장을 찍고 서운산으로 오르면 백곡임도 갈림길에서 오르는 마루금길과 접하고 직진으로 완만하게 행하면 서운산정상에 도착한다 .

 

헬기장 갈림길에 있는 이정표의 모습

 

이정표 : 서운산 정상 0.1km, 배티고개 석남사, 청룡사 2.5km

서운산 갈림길 직전에 있는 이정표이며, 이 이정표만 보고 우측방향 배티고개로 진행하면 서운산 정상을 올라서지 못하고 지나칠수 있다.

 

서운산정상 갈림길

헬기장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완만하게 진행하면 이정표가 두개 나오고 두번째 이정표 앞이 서운산 갈림길 이다 이지점에서 서운산정상은 좌측방향 약80m 금북정맥 마루금에서 비껴나 있다 금북정맥길은 이곳에서 우측방향 배티고개로 진행하면 된다. 

 

서운산 갈림길 이정표 : 서운산 정상, 배티고개 석남사, 청룡사

 

서운산 정상의 소나무 안내도

서운산 정상부에 멋진 소나무들이 몇그루 자생하고 있고, 주변 경관이 아름다웠다. 정상 아래에는 나무로 만든 식탁이 있어 한가롭게 점심을 하면서 삼림욕을 할수있는 장소이기도 하다.

 

차령산맥 (車嶺山脈)
태백산맥의 오대산(五臺山)에서 갈라져서 충북의 북부, 충남의 중앙을 남서 방향으로 뻗은 산맥. 길이 250 km. 평균고도 600 m. 마식령(馬息嶺)·광주(廣州)·소백(小白)·노령(蘆嶺)산맥 등과 함께 한국에서 가장 오래 된 중생대 말의 습곡산맥으로 편마암과 화강암으로 구성된 구릉성 산지이다.
또 차령산맥은 최한월(最寒月) 평균기온 -3 ℃의 등온선과 일치하여 한국의 기후구를 남부의 온대와 북부의 냉대로 크게 구분하는 경계가 되고 있다. 산맥 중에는 차령·백운산(白雲山)·만뢰산(萬山)·칠갑산(七甲山)·금계산(金鷄山)·서운산 (瑞雲山) 등이 솟아 있고 금·은·중석 등이 매장되어 있다. 특히 칠갑산을 중심으로 한 일대는 경치가 아름다워 1973년 충남 도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백과사전에는 '차령산맥'을 위와 같이 정의하고 있으며. 태백산맥에서 갈라진 2차 산맥이고, 오대산에서 시작되어 경기도 충청도를 남서 방향으로 뻗어 보령, 서천까지 이어간다 . 그러나 이 차령산맥은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산맥입니다. 우리나라의 산맥개념은 1903년에 일본인 '고토 분지로'가 망아지 네 마리에 짐을 싣고서 인부 여섯명과 함께 일년 두달만에 완성한 거라고 합니다. 삼천리 우리 강산을 망아지 끌고 일년만에 태백산맥, 소백산맥, 낭림산맥, 차령산맥 등 14개의 산맥이 존재한다고 결론 지었다는 겁니다.

1903년이면 일본이 한창 우리 나라를 집어 삼킬려고 음모를 진행하던 시절입니다. 이것으로 그의 연구목적이 무엇 때문이었는지는 자명한 사실입니다. 어쨌거나 차령산맥이란 개념은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개념인데, 고토 분지로는 땅속의 지질학적 연속성만 따져 산맥이라고 규정한 겁니다.

최근 KBS에서 항공촬영을 한 결과 차령산맥은 치악산을 지나면서 맥이 끊기고, 남한강에 막혀 그 여맥을 다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또, 국토연구원 지리정보시스템 연구센터에서 위성사진을 토대로 연구한 결과도 차령산맥이란 개념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결론입니다.

그러나 100년전 한 일본인이 망아지 타고 다니면서 연구한 잘못된 결과가 아직도 수정되지 않아 우리 아이들은 학교에서 태백산맥, 차령산맥 등을 외우고 있고, 금북정맥 종주하고자 지도 검색을 하니 아직도 우리나라 지도에는 차령산맥이라는 말이 등재되어 있습니다. 오늘 구간의 서운산 자락에도 여지없이 차령산맥이란 글자가 굵은 글씨로 적혀 있었다

 

서운산정상(현위치 3-3, 해발564m) 이정표 : 청룡사 2.5km, 석남사 2.8km

 

서운산성 안내도

서운산성은 선운산에서 서남쪽 방향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곳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헬기장이 나오고 헬기장에서 직진으로 이어가면 산성에 도착한다.

 

서운산(瑞雲山, 해발547m)정상에서 인증샷
서운산은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과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 경계에 있는 산. 높이는 547m이며. 경기도의 최남단인 안성시 서운면과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을 경계로 차령산맥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안성시에서 남쪽으로 약 12km 떨어져 있다.아담하고 바위가 거의 없는 유순한 산세를 가졌다. 4월초가 되면 계곡과 능선에 진달래가 피고 5월이면 철쭉이 군락을 이룬다.청룡사, 석남사 등의 산사와 청룡사 대웅전(보물 제824호), 청룡사 삼층석탑, 명부전, 관음전 및 조선 현종 때 주조한 무게 약 5톤의 동종 등의 문화재가 있다. 청룡사는 고려 원종 6년(1265년)에 명본국사가 대장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절로 공민왕 때 나옹화상이 중건하면서 청룡이 서운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하여 산 이름은 서운산, 절 이름은 청룡사로 하였다 한다. 임진왜란 때에 홍계남이 수축하여 방어전을 전개하였던 산성이 있는데,반면식 토축산성으로서
서쪽 능선에서 남방향으로 해발 535m에서 460m 지점까지 펼쳐져 있다.

서운산(瑞雲山, 해발547m)정상에서 인증샷
서운산[瑞雲山]은 경기 안성 서운면·금광면, 충북 진천 백곡면에 걸쳐 있는 높이 547m의 산이며 정상 나무테크에서 바라보면 평택시,안성시를 조망이 된다. 정상에서 북쪽 성남사 방면으로 내림길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많은 산객들이 이 등로를 이용하고 서운산 정상을 올라서고 있다. 금북정맥길은 되돌아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서운산(瑞雲山, 해발547m)정상 표지목

 

서운산(瑞雲山, 해발547m)정상에 있는 소나무의 모습

 

서운산 정상석

119현위치 표지목3.3 : 청룡사2.5km / 석남사2.8km

서운산 정상석은 나무테크 바로 아래에 정상석이 있고 나무테크 위에는 나무로 만든 정상 표지목이 도 하나 있었다. 서운산성은 현위치에서 서남쪽방향 541봉에 위치하고 있으며 헬기장에서 이어진다.

 

서운산성은 서운산 서쪽 능선에서 서남 방향에 있다. 해발 535m에서 460m 지점에 걸쳐 골짜기처럼 비탈진 경사면을 따라 삼태기 모양을 이루며 형성한 반면식(半面式) 토축(土築) 산성이다. 둘레는 약 620m, 성벽의 높이는 6∼8m로 지형에 따라 차이가 있다. 성안에는 우물터와 절터, 돌부처가 있고, 용굴로 불리는 작은 동굴도 있다. 정확한 축조년대는 알 수 없으나 대략 삼국시대 성으로 추정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신립 장군 휘하에 들어온 홍계남(洪季男, 1564∼1597) 의병장이 수축하여 방어전을 폈다. 경기도 기념물 제69호이다.

 

서운산 [瑞雲山]

높이는 547m이다. 경기도의 최남단인 안성시 서운면과 충청북도 진천군 백곡면을 경계로 차령산맥의 중간지점에 위치하고 있으며, 안성시에서 남쪽으로 약 12km 떨어져 있다. 아담하고 바위가 거의 없는 유순한 산세를 가졌다. 4월초가 되면 계곡능선진달래가 피고 5월이면 철쭉이 군락을 이룬다.청룡사, 석남사 등의 산사와 청룡사 대웅전(보물 제824호), 청룡사 삼층석탑, 명부전, 관음전 및 조선 현종 때 주조한 무게 약 5톤의 동종 등의 문화재가 있다.
청룡사는
고려 원종 6년(1265년)에 명본국사가 대장암이라는 이름으로 창건한 절로 공민왕 때 나옹화상이 중건하면서 청룡이 서운을 타고 내려오는 것을 보았다 하여 산 이름은 서운산, 절 이름은 청룡사로 하였다 한다. 임진왜란 때에 홍계남이 수축하여 방어전을 전개하였던 산성이 있는데, 반면식 토축산성으로서 서쪽 능선에서 남방향으로 해발 535m에서 460m 지점까지 펼쳐져 있다

 

서운산 삼각점 (해발 548m)

서운산 삼각점은 정맥길 배티고개 방면에 있고, 정상석은 정맥길에서 약80m 정도 북쪽방향에 있었다.

 

서운산 삼각점 (해발 548m, 진천 21)

서운산정상 갈림길에서 좌측방향 배티고개 방면 좌측 약30m 거리에 서운산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었다.

 

석남사 갈림길의 모습

 

석남사 갈림길 이정표 : 정상0.4km / 석남사1.3km / 배티고개1.5km

 

석남사

안성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이 서운산이다. 서운산 남쪽 기슭에 청룡사가, 그 너머 동북쪽 기슭에 대한불교 조계종 제2교구 본사 용주사 말사인 석남사가 있다. 313번 지방도로를 타고 배티고개를 넘어 호젓한 산길로 접어 들어 10여 분 올라가면, 세월의 무게와 역사의 기품을 간직한 천년 고찰 석남사가 푸근하고도 웅자한 자태를 드러낸다. 큰 절은 아니지만 곱게 매만진 흔적에 서리서리 정성이 녹아 있다.

석남사는 신라 문무왕 20년(680)에 당대의 고승 석선(奭善)이 개산하면서 창건했다. 그 후 문성왕 18년(856) 가지산문의 2조인 염거국사(廉居國師)가 주석하면서 중수했고, 고려 광종의 아들 혜거국사(慧炬國師)가 크게 중건하는 등 이름 높은 스님들이 석남사를 거쳐갔다. 따라서 이들 스승을 흠모하는 수많은 제자들이 찾아들어 수행지도를 받았으니, 석남사는 당시 수백인의 참선승이 머물렀던 수행도량이었다.
이에 세조는 석남사의 전통을 살리고 수행도량의 면모를 지켜나가도록 당부했다. "석남사에 적을 둔 모든 승려의 사역을 면제하니 수도에만 전념토록 하라"는 친서교지(親書敎旨)를 내렸던 것이다. 임진왜란 때 병화(兵火)를 당하고 영조 때 해원선사(海源禪師)가 중수했으나 본래의 절 모습을 되찾지 못한 채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 남아 있는 건물은 대웅전과 영산전뿐이지만, 영산전(보물 제823호)은 조선 초기 건물의 특징 양식을 손색없이 지니고 있어 당시의 절 분위기를 짐작케 한다.
석남사에는 현재 영산전과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8호인 대웅전, 향토유적 제11호인 고려시대 오층석탑 2기가 있고, 절 입구에 향토유적 제28호인 석종형 부도 2기가 있다. 절 왼쪽 등산로를 따라 오르면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109호로 지정된 마애여래불상이 있어 만나볼 만하다.
석남사는 계단식으로 3단의 축대를 쌓아 대웅전과 영산전, 한 채뿐인 요사채가 있지만 넓은 공터가 많다. 삼면을 산줄기가 에워싸 다소 답답한 감이 없지 않으나 앞골이 트이고 계곡물이 절 앞으로 흘러 시원스럽다. 석남계곡은 특히 승방골·주왕골·험한골·대밭골·방아골 등 열두 굽이가 있으며 여름이면 짙푸른 녹음이 앞을 가린다. 그 뒤 산 정상으로는 서운산성이 둘러쳐져 있다

 

석남사 갈림길에서 배티고개로 내려서는 등로길에 설치되어 있는 팟줄의 모습

 

 

석남사 갈림길의 모습

서운산에서 내려서면 두번째 나오는 갈림길이며 마루금은 우측방향으로 내려선다.

 

 

석남사 갈림길 이정표 : 정상 0.5km, 석남사 1.3km,배티고개 1.4km

첫번째 석남사갈림길을 통과하면 두번째 석남사 갈림길이 나오고, 이지점에서 직진방면은 석남사 방향이며  배티고개 방면으로우측방향으로 진행한다.

 

석남사 갈림길의 모습

 

 

석남사 갈림길 이정표 : 정상 0.6km, 석남사 1.5km, 배티고개 1.3km

세번째 맞이하는 석남사 갈림길이정표다.

 

급경사지에 팟줄로 설치되어 있는 모습

 

 

배티성지 갈림길의 모습

 

 

배티성지 갈림길 이정표 : 정상 1.2km , 배티성지, 무명순교자6인묘, 배티고개

서운산정상에서 내려서면 석남사 갈림길이 나오고  팟줄이 설치되어 있는 급경사지을 내려 완만하게 진행하면 배티성지 갈림길이 나온다, 마루금은 좌측방향이고, 배티성지는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배티성지 [梨峙聖地]

배티(梨峙)는 신유박해(1801년)로부터 병인박해(1866년)까지 이어지는 천주교 박해시대 때 천주교인들이 박해를 피해 숨어들었던 골짜기로, 1830년을 전후로 교우촌(비밀신앙공동체)이 형성되기 시작하여 1866년 즈음에는 교우촌이 15곳에 이르렀던 곳이다. 또 조선교구 최초의 신학교가 있던 마을이고, 한국 천주교회의 첫 번째 신학생이자 두 번째 사제였던 최양업(토마스 1821~1861) 신부의 사목 중심지로 교리서인 <천주가사>가 탄생되었던 곳이었다. 또 배티와 그 주변으로는 27여 기에 이르는 순교자들의 무덤이 산재해 있다.
1976년 9월 성지로 개발된 배티성지에는 1996년 6월 완공된 성당(최양업 신부 탄생 175주년 기념성당)과 성당에서 야외제대까지 연결된 청동으로 만든 십자가의 길, 야외제대 및 성모상, 최초의 조선교구 신학교와 최양업 신부의 성당 및 사제관으로 사용되던 초가집을 재현한 건물, 양업영성관 및 수련관, 무명순교자 6인 묘역 및 14인 묘역, 최양업 신부 동상 등이 조성되어 있다.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노고산 아래 위치한 배티성지는 많은 순교자의 종교정신을 기리고 기도하는 장소와 피정의 집으로 활용되었으나 십자가와 묵주만이 남아 천주교 박해의 정도를 가늠케한다. 동네어귀에 배나무가 많은 배나무 고개라서 이치란 말이 생겨났고 이것이 순수한 우리말로 배티라 불리게 되었다는 설과 조선 영조때 이인좌가 난을 일으켰을 때 백곡을 지나다 이 마을 노인 이순곤이 이끄는 주민에게 패한 뒤 다시 안성쪽으로 향하다 오명황이 이끄는 관군에게 진압 패전하였다는데서 패치라 불리우다 바뀌었다는 설이다.
1870년부터 다시 신앙이 싹 터 1884년에는 선교사들이 진천에 배티, 삼박골, 용진골, 새울, 굴티 등 5곳에 공소를 설정하게 되었으며 1890년에는 배티공소에 "교리학교"가 세워지기도 했다. 그러나 일제시대에 신자들이 하나, 둘 떠나 현재 이곳 배티에는 신자들이 생업을 영위하던 옹기점과 무명순교자의 묘 만이 남아있다. 한편 배티성지에서는 배티성지개발 후원회를 조직 교회사연구소와 피정의 집을 계획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급경사지 통과

배티성지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급경사지가 나오고 내려서면 무명순교자6인묘 갈림길이 나온다.

 

 

무명 순교자6인묘 갈림길의 모습

 

무명 순교자6인묘 갈림길 이정표 : 정상 1.5km, 무명순교자 6인묘, 배티고개 0.6km

무명순교자 6인묘는 정맥 마루금에서 우측방향 약30m 벗어나 있었다. 마루금은 이지점에서 직진으로 진행한다.

 

급경사지의 모습

무명 순교자6인묘 갈림길에서 내려서면 급경사지에 팟줄로 설치되어 있는곳이 나오고 잠시후 배티고개에 도착한다.

 

배티재(이티재, 해발 370m) 의 모습

배티고개는 충북 진천군 백곡면과 경기도 안성시 금광면의 도경계로 충북 313번지와 경기 325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고,  서운산 방면에는 "정상 3.2km" 라는 이정표가 있었다. 

 

배티 [梨峙, 이티재]고개
1866년 병인박해 때 인근에서 여러 명의 순교자가 탄생한 곳으로 尹義炳(바오로) 신부의 박해 소설《은화》(隱花)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차령산맥 줄기의 산간 지대로 충북 진천군과 경기 안성군의 경계가 되는 고개에 자리잡고 있는데 마을 어귀에 꿀배나무가 많아서 '배나무 고개'로 불리다가 梨峙라는 한자로 표기하고 그 훈독인 배티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곳에 천주교 교우촌이 형성된 것은 1820~1830년대 무렵으로 기록상으로는 1839년 기해박해로 성 崔京煥(프란치스코)이 순교한 뒤 그의 아들들이 친척 집에서 양육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당시 최경환의 장남 최양업은 마카오에 유학하고 있었다. 그후 최양업 신부는 1849년에 귀국하여 제3대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로부터 임지를 부여받고 배티 이웃의 동골에 거처를 정하고 6개월 동안 전국 5개도에 있는 교우촌들을 순회하였다.   1857년 무렵에는 배티와 절골 주변의 삼박골(양백리), 용진골(용덕리), 정삼이골(용덕리), 발래기(백곡면 명암리), 명심이(명암리), 지구머리(백곡면 사송리), 새울(이월면 신계리), 지장골(진천읍 지암리), 굴티(문백면 구곡리) 등지에도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다.   깊은 산촌이었던 까닭에 성직자들의 휴식처로 알맞아 M.A.프티니콜라[朴德老] 신부가 이곳에 거처를 정하고 목회(사목)활동의 중심지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1861년 최양업 신부가 사망하고 프티니콜라 신부도 배론의 신학교로 떠나자 한동안 성직자가 없다가 경상도 서부지역을 담당한 칼래(Calais) 신부가 1866년 문경의 한실 교우촌에서 박해 소식을 듣고 인근으로 탈출하였다. 병인박해는 배티 인근의 교우촌에 큰 타격을 주어 1866~1868년 사이에 이 지역 출신이거나 거주자로서 순교한 이는 오반지(바오로), 이 생원 등 모두 27명에 이른다.   1870년 무렵 흩어진 신자들이 다시 모여 교우촌을 재건하여 1888년에는 E.C.두세[丁加彌] 신부에 의해 배티 공소가 설립되었고 이후에 새울과 용진골, 삼박골이 공소로 설정되었다. 이후 이 곳 공소는 여러 명의 성직자를 배출하였고 1901년 안성 본당 소속이 되었다가 1956년 이후에는 모두 진천 본당 관할 공소로 변경되었다.

배티고개 백곡면 이정석의 모습

배티고개에서 서운산 들머리지점에는  백곡면 이정석이 설치되어 있었고, 이정석에는 생거진천(生居鎭川) 이라고 적혀있었다. 생거진천이란 유래는 신라말의 고승인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용인땅의 형세가 "금닭이 알을 품고 있는 형상" 이라며 생거진천 사거용인(生居鎭川 死居龍仁)이란 말이 생겨났는데 즉 살아서 진천이요 죽어서는 용인이란 말이다.

 

배티고개(이치재, 해발370m )

배티고개는 313번 지방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충북 진천군 백곡면과 안성시를 넘는 고개다.  이 지역에 배나무가 많다고 해서 이치(梨峙)재라고 하였다.  순수한 우리말로 배티재라 불렀다는 설과 조선시대 영조때 이인좌가 난을 일으켰을 때 백곡을 지나다 이 마을의 이순곤이라는 노인이 이끄는 주민들에게 패한 뒤 다시 안성쪽으로 향하다 오명황이 이끄는 관군에게 패했다고 해서 패치라고 불리다가 변했다는 설도 있다.

배티이티에서 ‘티’는 고개를 뜻한다. 그러나 현대로 오면서 티 대신 재나 고개라는 말을 자주 쓰게 되고,

그에 따라 티의 뜻이 불분명해지자 유의어 고개를 중복하여 배티고개로 부른 것이다. 배티배티고개

그 뜻은 같지만, 현재 배티는 마을 이름으로, 배티고개는 고개 이름으로 나누어 사용되고 있다.

고구려백제의 옛 지명에 ‘영(嶺)’·‘현(峴)’계 지명이 여럿 발견되는 것으로 미루어, 고개는 일찍부터 지명에 사용되어 왔음을 알 수 있다.
백곡면 양백리 노고산 아래에 있는 배티마을은 원래 아랫말·중간말·꼭대기말로 이루어졌으나 현재 중간말은 없어졌다.
배티마을한국 천주교의 대표적인 교우촌으로, 이곳에 교우촌이 형성된 것은 1820~1830년대 무렵이다.

1857년 무렵에는 배티절골 주변의 양백리 삼박골, 용덕리 용진골·정삼이골, 백곡면 명암리 발래기·명심이, 백곡면 사송리 지구머리, 이월면 신계리 새울, 진천읍 지암리 지장골, 문백면 구곡리 굴티 등에도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다. 배티는 1866년 병인박해(丙寅迫害) 때 신도 30여 명이 관군에게 학살당한 곳으로 지금은 성역화하여 순례지가 되었다. 윤의병(尹義炳) 바오로 신부의 박해 소설 『은화(隱花)』의 배경이 된 곳이기도 하다.

 

배티 [梨峙]

1866년 병인박해 때 인근에서 여러 명의 순교자가 탄생한 곳으로 윤의병(尹義炳, 바오로) 신부의 박해 소설《은화》(隱花)의 배경이 되기도 하였다.

차령산맥 줄기의 산간 지대로 충북 진천군과 경기도 안성군의 경계가 되는 고개에 자리잡고 있는데 마을 어귀에 꿀배나무가 많아서 ‘배나무 고개’로 불리다가 이치(梨峙)라는 한자로 표기하고 그 훈독인 배티로 굳어지게 되었다.
이곳에 천주교 교우촌이 형성된 것은 1820~1830년대 무렵으로 기록상으로는 1839년
기해박해로 성 최경환(崔京煥, 프란치스코)이 순교한 뒤 그의 아들들이 친척 집에서 양육된 것으로 밝혀졌으며 당시 최경환의 장남 최양업은 마카오에 유학하고 있었다. 그후 최양업 신부는 1849년 12월 3일에 귀국하여 제3대 조선교구장 페레올 주교로부터 임지를 부여받고 배티 이웃의 동골에 거처를 정하고 6개월 동안 전국 5개도에 있는 교우촌들을 순회하였다.
1857년 무렵에는 배티와 절골 주변의 삼박골(양백리), 용진골(용덕리), 정삼이골(용덕리), 발래기(
백곡면 명암리), 명심이(명암리), 지구머리(백곡면 사송리), 새울(이월면 신계리), 지장골(진천읍 지암리), 굴티(문백면 구곡리) 등지에도 신앙 공동체가 형성되어 있었다.
깊은 산촌이었던 까닭에 성직자들의 휴식처로 알맞아 M.A.
프티니콜라[朴德老] 신부가 이곳에 거처를 정하고 목회(사목)활동의 중심지로 이용하였다. 그러나 1861년 최양업 신부가 사망하고 프티니콜라 신부도 배론의 신학교로 떠나자 한동안 성직자가 없다가 경상도 서부지역을 담당한 칼래(Calais) 신부가 1866년 문경의 한실 교우촌에서 박해 소식을 듣고 인근으로 탈출하였다. 병인박해는 배티 인근의 교우촌에 큰 타격을 주어 1866~1868년 사이에 이 지역 출신이거나 거주자로서 순교한 이는 오반지(바오로), 이 생원 등 모두 27명에 이른다.
1870년 무렵 흩어진 신자들이 다시 모여 교우촌을 재건하여 1888년에는 E.C.두세[丁加彌] 신부에 의해 배티 공소가 설립되었고 이후에 새울과 용진골, 삼박골이 공소로 설정되었다. 이후 이 곳 공소는 여러 명의 성직자를 배출하였고 1901년 안성 본당 소속이 되었다가 1956년 이후에는 모두 진천 본당 관할 공소로 변경되었다.
1970년 청주교구에서는 한국 순교 복자 수녀회와 함께 인근의 교우촌과 무명 순교자들의 무덤을 조사하여 현재의 위치에 경당을 지었고, 1993년 4월에 배티 사적지 전담 신부가 된 장봉훈(張奉勳, 가브리엘) 신부가 성당 건립을 추진하여 1997년 4월15일에 축성식을 갖게 되었다. 현재 이곳에서는 최양업 신부의 시복 운동이 전개되었고, 배티 순교자 묘역 조성할 계획도 추진되어 왔다.

 

배티고개(이티재)

배티고개에서 바라본 충북 진천군 백곡면방향의 모습이고, 에머슨GC 골프장으로 진입하는 도로가 좌측편으로 있고 마루금 단축코스 이다.

금북정맥 마루금은 배티고개 에서 313번 지방도로을 횡단하여 직벽인 등로길을 팟줄을 이용하여 올라야 하며, 올라서면 그때부터는 완만한 등로길이 펼쳐진다.

 

배티고개 들머리지점

배티고개는 서운산에서 내려서면 313번 도로가 나오고 무단으로 횡단하여 바로 앞에 있는 급경사지을 밧줄로 이용하여 올라선다.

 

배티고개 경사지을올라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등로 중앙부에 이름모를 삼각점이 나오고 조금더 진행하면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에서 11시방향 좌측편으로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에머슨 골프장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보이고 등로 따라 직진으로 진행하면 골프장 경내에 도착한다.

 

골프장 경내에서 좌측방향 임도길로 올라서면 안부에 멋진묘지가 나오고 아마도 이골프장 가족묘인것 같았다. 가족묘지을앞에두고 좌측편 능선으로 올라 완만하게 진행하면 송전철탑 29, 35번이 차례대로 나오고 잠시후 422.3봉에도착한다.

 

422.3봉에서 우측편으로 내려서면 완만한 등로길이나오고 잠시후 오늘의 산행 종료점인 판동고개에 도착한다. 판동고개에서 우측방향 학옹마을로 내려서면 정면으로성대저수지가 나오고 성대저수이옆으로난 도로 따라 진행하면 낙성교가 있는곳에 도착하며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한다.

 

 

급경사 오름길의 모습

배티재에서 장고개, 판동고개 방면의 마루금은 가파른 오름길이라 로프 두개가 설치되어 있었다.

로프을 이용하여 올라서면 되는데 무리하게 두명이 동시에 올라서면 위험 함으로 하명이 올라서야 한다. 주변의 흙이 마사토라 미끄럽고 돌맹이가 떨어지는 경우가 있기 때문에 주의하여 올라서야 한다.

삼각점 통과

배티재에서 올라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등로 중앙부에 이름모를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다 아마도 골프장 도로 경계지로 활용되는 기준점이 아닐까 생각해보며 장고개로 진행한다.

헬기장 통과

장고개의 모습

헬기장에서 좌측방향으로 완만하게 진행하면 장고개에 도착하고 에머슨GC 경내에 도착한다.

에머슨 GC경내에서 좌측방향 도로로 진행하면 정상부에 가족묘가 있는 지점에서 다시 좌측편 능선으로 진행하면 판동고개에 도착한다.

에머슨GC(장고개)날머리지점

배티고개에서 삼각점, 헬기장을 지나 내려서면 에머슨골프장으로 이어지는 임도에 내려선다. 임도에서 좌측으로 오르면  장고개 갈림길이 나오고 정맥길은 우측방향 가족 납골묘 방면 도로따라 올라서면 된다.

장고개의 북서쪽 상중리 방면은 골프장에서 차단 시켜놓은 상태로 막혀있었고 장고개 북쪽은 깊은골을 사이에 두고 안성시 금광면 상중리의 "상촌마을" 과 한운리의 "상동마을"로 양분되어 임도가 연결된다.  

남쪽은 200m 거리에 메머슨골프장 주차장과 클럽하우스가 있고, 골프장에서 ㅐㄱ을 이어가는 산꾼들을 통제 하는지 않았고 배티고개에서 이곳까지 포장도로 연결되어 있어 단축코스로 도로따라 진행해도 무방할것 같았다. 

 

장고개의 모습

 에머슨GC의 모습

 

장고개의 모습

 

갈림길 통과

장고개에서 약 30m 올라서면  가족납골묘 직진에서 좌측방향으로 전환하여 진행하면 마루금으로 이어지고 직진으로 가면 호화 납골묘와 정자가 있다 아마도 골프장 가족의 묘인것 같았다.

 

가족 납골묘지의 모습

서운만승 29번 송전철탑 아래 통과

 

서안성-신진천 35번 송전철탑을 통과

29번 송전철탑을 통고하여 오르면 오름길 우측편에 35번 송전철탑을 만난다.

422.3봉 통과

송전철탑 두개을 통과하여 진행하면 422.3봉에 도착하고 내려서면 오늘의 종착지점인 판동고개에 도착한다.

판동고개 에서 정맥길 종료

지나번 칠장사에서 도착한 판동고개에서 오늘 산행을 종료하고는 우측편 경사지을 내려 학동마을을 거쳐 성대저수지 중간부분 낙성교에서 종료한다.

판동고개는 안성시 금광면 한운리 새터마을과 진천군 백곡면 성대리 학동마을을 잇는 고개마루이다.

지도상에는 판동고개로 되어 있는데 어느 산악회에서 이곳을 "장고개"라는 이정판를 나무에 붙혀 놓았다.

이정판의 위치가 잘못된 것 같고 장고개는  이곳에서 조금더 진행하면 에머슨GC골프장 경내 주변  또는 헬기장 바로 아래부근인것 같은데 헬기장 주변으로는 등로길이 보이지 않았고 골프장에서 내려서면 희미하게 넘어가는 등로길이 보였고 골프장에서 막아 놓았다 아마도 이곳이 장고개인것 같았다.

 

판동고개에 붙혀있는 장고개 이정표의 모습

학동마을 내려서면서 억새가 있는 사진에 담아본다

학동마을 진입

 

성대저수지 상부 진입

 

성대저수지의 모습

낙성교(산악회 본부)도착

성대저수지 중간부근 낙성교 삼거리에 산악회 본부가 위치해 있었고 이곳에서 오늘 산행이 종료된다.

낙성교가 있는 이곳 삼거리에서 서쪽으로 임도따라 넘으면 메머슨GC로 연결된다. 산악회에서 준비한 음식을 먹고는 예정시간보다 이른시간에 서울로 출발한다.

오늘도 아무런 사고없이 한구간을 마칠수 있게 도움을 주신분들께 감사의 말씀전하며 대원들 모두 다음 구간에서 반갑게 만나요

 

 

[부소령~엽돈재]

부소령(부소치(扶蘇峙), 부소문이 고개, 부수문이 고개)에서 판동고개까지 역방향 산행 관계로 부소령이정석이 있는곳에서 57번 지방도로을 횡단하여 급경사 오름길을 올라선다. 한차례 경사지을 올라서면 평탄한 등로길이 나오고 낙엽이 쌓여있어 폭신하고 둘래길 같은 느낌이 들어온다.

 

완만하게 무명봉을 넘고 묘지가 있는곳을 통과하여 오르면 지도상에는 459봉이라고만 표기되어 있는 부소산에 도착하게 된다. 부소산은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입장면 양대리와 북면 대평리 경계에 위치한 산이며, 부소산에는 정상석과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었고 주변 조망은 없었다.

 

부소산 정상을 찍고는 우측방향으로 내려섰다 오르면 무명묘지 두 곳을 지나게 되고 올라서면 무명봉 삼거리 우측편에 부소산 "400m" 를 안내하는 표지판이 설치되어 있다  이지점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선두조는 우측방향으로 진행하여 알바을 하고는 후미조와 조우하여 진행한 지점이다.

 

무명봉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올라섰다가 내려서면 완만한 등로길이 나오고 계속진행하면 만뢰지맥 갈림길에 도착한다. 이지점에서 우측방향은 만뢰지맥 등로길이고, 마루금은 좌측방향으로 내려서야 한다.

 

만뢰지맥은 금북정맥의 서운산에서 남쪽으로 5.1km 떨어진 엽돈재(34번국도) 남쪽 200m에서 분기하여 서남진하면서 만뢰산( 612.2m.일부 지도엔 만근산으로 표기),덕유산(德裕山.412m),환희산(歡喜山. 402.2m),취령산(鷲嶺山.목령산(鶩嶺山 .229.1m.)을 일구고 취령산(목령산)에서 방향을 바꿔 서남진하며 다시 상봉산(196m),국사봉(國師峰.171m)을 일구고 경부고속도로를 건넌후 마지막으로 응봉산(175.4m)을 들어 올린후 청주시를 바라보며 미호천 그 맥을 다하는 도상거리 49.5km의 산줄기를 말한다.이산줄기를 지나는 산들중 제일높은 산인 만뢰산의 이름을 따서 만뢰지맥이라고 한다.

 

만뢰지맥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니 경사지가 무척이나 미끄럽다. 낙엽 아래에 눈이 녹아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상당한 상태다. 조심하여 진행하니 엽돈재에 도착한다.

 

엽돈재(해발323m)는 경기도, 충청북도, 충청남도 등 삼도(三道)가 만나는 지점이며 34번 국도가 지나고 있다.  금북정맥(차령산맥)에 걸친 고개로 동쪽은 충북 진천시 이월면 , 서쪽은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 남쪽은 충남 천안시 북구 입장면이다.엽돈재를 다른 이름으로 엽전재(葉錢峙), 엽둔재(葉屯峙), 엽둔티, 율둔티 등으로도 불렀다.

 

[엽돈재~배티고개]

부소산, 만뢰지맥삼거리에서 내려 34번 국도을 무단횡단하여 천안시 입장면 입간판 앞 공터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이정판이 있고 능선으로 한차례 밀어 올리면 벌목지대가 펼처진다.

 

벌목지대(개활지)을 완만하게 진행하면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의 수인사로 내려서는안부가나오고 안부에서오르면 백곡임도 삼거리에 도착한다 백곡임도 삼거리는 진천군 백곡면 양백리 상백마을 방면으로 연결되는 임도 갈림길이다.

 

백곡임도 삼거리에서 직진으로 완만하게 진행하면 팟줄이 설치된 경사지가나오고 한차례 밀어올리면 좌측편으로 헬기장이나온다. 헬기장에 들려 확인하고는 우측편으로 올라서니 서운산정상에 도착한다.

 

서운산정상부에는정상석과 나무테크로 이루어져 있었고 조망이 좋았다. 서운산정상부에서 인증샷을 남기고는 정상아래에 나무의자가 있어 대원들이랑 이른 점심을 하고는 삼거리에서 좌측편으로 진행하니 삼각점이있는 봉우리을 넘고  내려서니 석남사 갈림길이 나온다. 석남사 갈림길에서 직진으로 진행하여 내려서면 두번에 걸쳐 석남사 갈림길이 나오고 이곳에서 직진방향 버리고 우측방향으로 방향전환하여 내려선다.

 

우측방향 배네고개로 내려서면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경사지을  내려섰다오르면  배티성지 갈림길에도착하고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경사지가 나오는데 낙엽아래 눈이녹아 등로길이 상당히 미끄러웠다. 천주교 무명순교자 6인묘지 갈림길을직진으로 진행하면 완만한등로길이 나오고  다시 팟줄이 설치된 경사지을내려서면 배티고개에 도착한다.

 

[배티고개~판동고개]

배티고개는 서운산에서 내려서면 313번 도로가 나오고 무단으로 횡단하여 바로 앞에 있는 급경사지을 밧줄로 이용하여 올라선다. 배티재는 충북 진천군 백곡면과 안성시를 있는 고개로 이 지역에 배나무가 많다고 해서 이치(梨峙)재라고 했고 그것을 순수한 우리말로 배티재라 불렀다는 설과 조선시대 영조때 이인좌가 난을 일으켰을 때 백곡을 지나다 이 마을의 이순곤이라는 노인이 이끄는 주민들에게 패한 뒤 다시 안성쪽으로 향하다 오명황이 이끄는 관군에게 패했다고 해서 패치라고 불리다가 변했다는 설도 있다.

 

배티고개 경사지을올라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등로 중앙부에 이름모를삼각점이나오고 조금더 진행하면 헬기장이 나온다. 헬기장에서 11시방향 좌측편으로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에머슨 골프장으로 들어가는 도로가 보이고 등로 따라 직진으로 진행하면 골프장 경내에 도착한다.

 

골프장 경내에서 좌측방향 임도길로 올라서면 안부에 멋진묘지가 나오고 아마도 이골프장 가족묘인것 같았다. 가족묘지을앞에두고 좌측편 능선으로 올라 완만하게 진행하면 송전철탑 29, 35번이 차례대로 나오고 잠시후 422.3봉에도착한다.

 

422.3봉에서 우측편으로 내려서면 완만한 등로길이나오고 잠시후 오늘의 산행 종료점인 판동고개에 도착한다. 판동고개에서 우측방향 학옹마을로 내려서면 정면으로성대저수지가 나오고 성대저수이옆으로난 도로 따라 진행하면 낙성교가 있는곳에 도착하며 이곳에서 산행을 종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