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남정맥 6구간 황령재에서 수락재까지 산행후기

2013. 5. 3. 11:43★ 9 정맥/- 7. 금남(완료)

 

금남정맥6구간(황령재~수락재)

 

산 행 지 : 충남 금산군 벌곡면/양촌면 함박산(404m),바랑산(555m),월성봉(651m)  금남정맥 6구간

산행일시 : 2013년 5월 4일(토요 당일산행) 07:00 잠실출발

산행코스 : 황령재-함박산-398봉-347봉-임도-391봉-깃대봉-덕목재-지하통로통과-곰치재-363.9봉-물한이

                재-426봉-작은물한이재-421봉-바랑산-547봉-법계사갈림길-월성봉-흔들바위-533봉-전망대-

                수락재-수락주차장=========================6시간30분

산행시간 : 10:10~15:37 (5시간27분, 식사 및 휴식)

산행거리 : 약 16.1Km(정맥14.3 Km, 접속구간 1.8Km), GPS 16.8Km

산행날씨 : 맑음

산행인원 : 81명

산행코스 및 구간거리 : 황령재-0.5/0.7km(20분)-함박산-1.8/2.1km(50분)-깃대봉-0.8/0.9km(20분)-덕목재

                                  4.3/4.9km(90분)-물한이재-2.3/2.6km(60분)-바랑산-1.5/1.7km(40분)-월성봉-

                                  1.3/1.4km(40분)-수락재-1.6/1.8km(40분)-수락주차장====14.1/16.1km   

 

구간

거리(km)

출발시간

소요시간

비고

황령재

 

10:10

 

해발235m, 2차선 20번 지방도로, 황산벌 안내판, 넓은 공터, 조망지 

함박산

0.5/0.7km

10:23

13분

해발404m, 산불감사초소, 송신탑, 추모비

깃대봉

1.8/2.1km

10:54

31분

해발394m, 삼각점(논산 23), 이정표

덕목재

0.8/0.9km

11:15

21분

해발260m, 호남고속도로 지하통로 통과, 덕목리정류장

물한이재

4.3/4.9km

12:53

1시간38분

물한이재터널, 동물이동통로,낙석방지 철조망으로 진행하여 사면으로 오름

바랑산

2.3/2.6km

13:58

1시간5분

해발555m, 이정표, 안내판, 삼각점

월성봉

1.5/1.7km

14:36

38분

해발651m, 이정석, 산불감시카메라, 안내판, 헬기장, 조금 아래 흔들바위, 조망지

수락재

1.3/1.4km

15:16

40분

해발310m, 이정표, 넓은안부삼거리(직:마루금 마천대방면, 좌:수락주차장방면)

수락주차장

1.6/1.8km

15:37

21분

대형주차장, 화장실, 수락계곡, 대둔산안내판등

도상/실거리

14.1/16.1km

 

5시간27분

 

GPS거리

16.8km

 

 

 

 

 

금남정맥(錦南正脈)

금남정맥을 이루는 주요 산은 주화산을 시작으로 연석산(925m), 운장산(1,125.9m), 인대산(666m), 대둔산(877.7m), 월성봉(650m), 바랑산(555m), 천마산(287m), 계룡산(845m), 부소산(106m) 등이다.

금강의 남쪽 울타리를 이루는 산줄기로 금남호남정맥이 호남정맥과 분기하는 조약봉에서 북쪽으로 머리를 튼다. 이후 운장산, 대둔산, 계룡산을 지나 부여 낙화암으로 떨어지는 도상거리 128km의 산줄기다.

 

[산경표]의 금남정맥은 "산자분수령"의 대원칙과는 다소 동떨어진 모양세를 취하고 있는데 이는 옛 백제의 고도인 부여를 포함하기 위함이라든가, 또는 정감록에서 지칭한 새로운 수도인 계룡산을 포함하기 위함이라는 해석을 낳기도 한다.

이에 [신산경표]에서는 진정한 금강의 남쪽 울타리로 금강하구까지 이어지는 산줄기를 '금강정맥'으로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금남정맥(錦南正脈)

금강의 남쪽 울타리. 금남호남정맥의 끝인 주화산(珠華山 560m)에서 북으로 금강과 나란히 올라가며 계룡산에 이르고 다시 서쪽으로 틀어 부여의 부소산 아래 백마강 조룡대에서 마감한다. 금강의 남쪽과 서쪽으로 만항강, 동진강의 분수령이 되어 자연히 군산을 중심으로 한 평야지방과 내륙지방을 양분하고 있다.금남정맥을 이루는 주요 산은 주화산을 시작으로 연석산(925m), 운장산(1,125.9m), 인대산(666m), 대둔산(877.7m), 월성봉(650m), 바랑산(555m), 천마산(287m), 계룡산(845m), 부소산(106m) 등이다.

 

도엽명

1/50000 : 진안, 금산, 논산, 공주, 청양(5)
1/25000 :
신정, 대아, 금산, 장선, 평촌, 연산, 월암, 하봉, 탄천, 부여(10)

 

 

 

 

 

금남정맥6 월성봉구간 트렉도      

 

금남정맥6 월성봉구간 고도표

 

 

아내와 결혼한지 올해로 20주년이 되는해 있다.

그런데 지금 아내는 외롭게 병마와 싸우고 있는 중이다.

4년전 갑상선암 선고을 받고 수술을 잘받았다고 믿었는데... 임파선으로 암이 전이가 되어 얼마전에 대수술을 하고는 직장에서 한달간 휴가을 얻고 쉬고 있는 모습이 안스럽다 

 

몇년전 부터 외국여행을 미루어 왔는데 이번에 결혼 20주년 및 기분 전환도 할겸 해외여행을 계획해 본다. 어디로 가야하나 마땅한곳이 없었다. 여행사에 이리저리 물어보고는 5박6일 일정으로 베트남(하롱베이)과 캄보디아 (앙코르왓)을 선정하고는 비행기에 오른다.

 

베트남 하롱베이에 있는 섬들의 모습이 환상적이었고, 바다인지 아니면 호수인지 모를 정도로 파도가 없고 바다의 그 특유의 냄새도 나지 않았다. 베트남에서 2박을 하고는 캄보디아로 이동하여 거대한 왕국의 도시인 앙코르왓의 유적을 구경하고는 비행기에 몸을 싫어 서울로 복귀하여 일상 생활을 하는데 날씨가 너무 변덕 스럽다.

 

베트남과 캄보디아 날씨는 보통 25~47도을 영상케하는데 인천국제공항에 새벽에 도착하니 초겨울 날씨 같았다. 다시 가고싶은 충동이 생기며 언제 다시 해외 여행을 할수 있을지...근로자의날(5월1일) 시간을 만들어 체력 테스트겸 집에서 가까운 아차산에 올라 몸상태을 점검하고는 주말에는 어린이 날이라 막내랑 시내로 나와 광화문, 경북궁, 역사박물관, 숭례문을 둘려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일주일 동안 휴가로 사무실을 비운관계로 일들이 밀려 있었고, 회사에서 밀린 일들을 처리하다 보니 일주일이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게 지나간다. 내일이면 금남정맥 출정하는날인데 체력이 소진되어 큰일이다.

지난구간은 다리가 불편한체로 무리하게 눈덮인 빙판길을 내려서면서 엉덩방아도 많이 찍고하여 아직까지 호전되지 않았는데... 퇴근길에 백화점에 들려 간식을 준비하고는 집에 향한다.

 

기상벨 소리에 일어나 베란다을 바라보니 날씨가 흐려 무척 무더운 날씨가 될것 같은 예감이 들어오고 베낭을 챙겨 집결지인 상일동 육교로 나간다. 너무 일찍 도착하여 인근 식당에서 간단하게 아침식사을 하고먼저 오신 대원들과 인사을 나누고는 버스에 올라 회장님으로부터 산행설명을 듣고는 꿈나라로 향한다.

 

버스는 중부고속도로을 거쳐 경부고속도로상에 있는 죽암휴게소에서 간단하게 휴식을 취하고 다시 경부고속도로에서 지난번 처럼 대전 진주간 고속도로가 아닌 이번에는 서울에서 가까운 호남고속도로로 진입하여 계룡IC에서 내려 20번 국도을 구불구불 지나 황령재 고개마루에 도착한다.

 

황령재 고개마루 좌측편에는 넓은공터가 있었고 조망이 좋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벌판이 바로 황산벌이라고 안내판에서 설명되어 있어고 베낭을 챙겨 간단하게 준비운동을 하고는 사진 몇컷을 찍고 수락재로

산행이 시작된다.

 

금남정맥 황령재에서 수락재까지 산행지도

황령재 공터에서 바라보면 서쪽(좌측)방향은  충남 논산시 연산면 신암리방면이며, 동쪽(우측)방향은  충남 논산시 벌곡면 한삼천리방면이고, 20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마루다.   

 

황령재 공터에서는 조망이 좋았고, 논산시 주요 관광지와 황산벌전투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었다.

이곳에서 안내판이 있는 우측방향으로 조금 진행하면 황령재 들머리지점이 나온다.

황령재 들머리지점에는 이정표(함박봉 정상 0.63km)가 설치되어 있었고, 이정표가 있는곳에서 좌측방향 나무 목책계단으로 오르면 산행이 시작된다.

 

오늘 진행하는 금남정맥 마루금은 신라와 백제의 전투현장이었던 황산벌의 전적지인 황령재에서 남쪽방향으로 함박산, 덕목재, 물한이재, 바랑산을 걸처 수락재까지 역방향으로 산행한다.

 

황령재에서 나무계단을 오르면 삼천리교육장으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마루금은 우측방향이고, 직진방향은 삼천리교육원으로 진행하는 갈림길이다. 우측방향으로 한차례 밀어올리면 편안한 등로가 나오고 다시 나무계단이 나온다. 나무계단을 또 다시 한차례 밀어 올리면 좌측편으로 기독교 공원 묘지가 나오고, 안부에 올라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첫번째 봉우리인 함박봉에 도착한다.

 

황령재(해발235m)

위치 : 충남 논산시 벌곡면 한삼천리 334-11

황령재는 2차선 20번 지방도로가 지나는 고개마루에 위치하고 있으며 황령재 좌측편으로 조망이 좋은 공터가 있었고, 공터에는 이정표와 논산시 주요 안내 및 황산벌전투 안내판이 설치되어 이었다.

황령재 공터에서 우측방향은 논산시 벌곡면 벌곡리방면이고, 좌측방향은 논산시 연산면 영산리방면이다.

 

황령재에서 바라본(좌측) 논산시 연산군 연산리방면의 20번 지방도의 모습.

사진은 좌측방향의 모습이고, 반대편 우측방향으로 조금 내려서면 다음구간(천호산-계룡산)의 마루금 들머리가 나온다.

 

황령재에서 바라본 논산시 연산군 신암리 일대의 전경

이곳이 바로 계백장군과 백제군의 기상이 보얐던 그곳 황산벌... 5천의 결사대로 그 열배가 넘는 5만명의 신라군을 맞아 죽을 각오로 전쟁에 치루어 네번의 전투를 크게 이겨 신라군을 곤혹스럽게 만들었던 곳이다. 하지만 신라의 어린 화랑들의 목숨을 건 임전태세와 중과부적의 수적열세 때문에 결국 다섯번째 전투에서 대패하여 5천결사대와 함께 장렬히 전사하니 이 모든 것이 지금으로부터 1400여년전 황산벌에서의 이야기이다.

황산벌은 지금의 논산시 연산면 일대로서 고려조에 연산군이란 지명을 얻은 이래 지금에 이르고 있고, 벌곡면, 양촌면, 계룡시 등과 접하였고, 논산천에 이르러 금강과 합류하는 여러 지류가 흐르고 있으며, 계룡산에서 천호산, 대둔산으로 이어지는 험준한 준령으로 둘러 싸여 있는 전형적인 분지형태의 고장입니다.

 

이러한 지형조건때문에 나당연합군이 수도 사비에 이르지 못하도록 막는 백제 최후의 방어선이 이곳 황산벌 일대와 그를 둘러 싸고 있는 여러 산성들에 설치가 되었던 것이다..

 

20번 지방도로에서 바라본 황령재 공터의 모습

황령재 공터에는 논산시 주요 안내판과 황산벌전투의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었고 그 옆으로 화장실이 있고 마루금은 우측방향에 있다.

 

황산벌 전투 안내판의 모습

 

황산벌전투(黃山伐戰鬪 )내용

황산벌 전투는 660년 음력 7월 9일 무렵에 황산벌(오늘날의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신양리 및 신암리 일대)에서 백제군과 신라군 사이에 일어났던 전투이다. 삼국사기 계백 열전, 삼국유사 태종무열왕조 등에 전투 내용이 나온다.백제가 신라를 자주 공격하자, 신라는 고구려의 힘을 빌리려 하였으나 실패하고 당에 구원을 요청한다. 김춘추는 당으로 건너가 나,당 간의 동맹을 맺었다.

 

660년 김유신이 이끈 신라군 5만 명과 소정방이 이끄는 당군 13만, 합하여 18만의 군사가 백제로 쳐들어갔다. 당나라는 수로를 이용해 백제의 백강 쪽으로 쳐들어갔고, 신라군은 육로를 이용하여 백제의 탄현쪽으로 쳐들어갔다. 660년 나-당연합군이 백제를 대대적으로 침공하자, 의자왕은 대소신료들과 대책을 논의하였다. 빠르게 대처해야 한다는 편과 지연작전을 써야 한다는 편이 나눠 다투는 동안 연합군은 요충지인 백강(白江)과 탄현(炭峴)을 넘어 왔다. 이에 의자왕은 급히 계백을 황산벌로 보내 신라군과 싸우게 하였다.

 

계백은 5천 정예병을 뽑으면서 "한 나라의 군사로 당나라와 신라의 대군을 상대해야 하니, 국가의 존망을 알 수 없다. 처자식이 포로로 잡혀 노예가 될지도 모른다. 살아서 모욕을 당하느니 죽는 것이 낫다."며 스스로 가족들을 죽이고 전열을 다졌다. 음력 7월 9일 신라군이 황산벌에 도착했을 때, 백제군은 이미 산직리 산성, 모촌리 산성, 황령 산성 3곳에 진영을 두고 기다렸다. 당시 달솔 계백은 좌평 충상, 달솔 상영과 함께 백제군을 지휘하였다. 이때 계백은 가족들을 죽이고 비장한 각오로 전투에 나섰다.

 

황산벌에 도착한 계백은 "옛 월왕 구천은 5천으로 오나라 70만 군사를 격파하였다. 용기를 다하여 싸워 국은에 보답하자"며 병사들을 독려했고, 과연 백제군은 사기가 올라 신라군과 네 번 싸워 네 번 격파하였다. 이에 김유신의 동생 김흠순이 아들 반굴(盤屈)을 전장에 투입하니, 반굴은 힘껏 싸우다 죽었다. 반굴이 죽자 김유신의 조카인 좌장군 김품일은 16세의 아들 관창(官昌)을 시켜 선봉에 서게 하였다.

 

관창을 붙잡은 계백은 관창의 나이가 어린 것을 보며 "신라에게 대적할 수 없겠구나. 소년도 오히려 이와 같거늘 하물며 장정들이랴!"라 탄식하며 돌려보냈다. 신라군으로 돌아간 관창은 품일에게 간단한 인사만 한 후 또다시 백제군에 쳐들어 갔다. 결국 계백은 관창을 잡아 목을 베었다. 관창의 죽음에 신라군은 죽을 각오로 덤비니 결국 백제군은 패하고 부하들과 함께 계백은 죽었다. 이때 백제군은 모두 전멸한 것이 아니라 일부 좌평 충상, 달솔 상영 등 20명이 살아남아 신라의 포로로 잡혔다. 황산벌 전투가 있던 날 소정방의 당군은 기벌포에서 백제군을 격파하고 신라군과 합류하였다. 당시 소정방은 김유신에게 약속 기일이 늦은 것을 문제삼아 독군 김문영(金文穎)을 참수하려 하였다. 이에 김유신이 노하여 "황산의 싸움을 보지도 않고 기일이 늦은 것만 책망하니, 나는 죄없이 모욕을 당할 수 없다.

 

먼저 당군과 결전을 치른 후 백제를 공략하겠다."라며 군문에 나서니 소정방은 김문영을 풀어주었다. 이후 백제의 수도인 사비성이 나당 연합군에 포위되어, 사비성 공방전을 치르나 얼마 버티지 못하고 패배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백제군의 저항은 계속되어 20여 성이 저항에 합류하였다. 그러나 태종무열왕이 친정하여 이례성(尒禮城)을 치니 저항군은 항복하였다.

 

11월이 되어 전공을 논할 시 태종무열왕은 항복한 충상, 상영 등을 최대한 예우해주는 차원에서 왕족을 제외한 가장 높은 신분인 6두품과 그에 걸맞은 관직인 일길찬의 관직을 주고, 기타 백제인들에게도 백제 시절의 서열을 고려하여 그에 걸맞은 두품과 관직을 하사하였다.

 

그러나 흑치상지 등의 백제 부흥 운동은 계속되었다. 또한 당군이 백제 땅을 신라에게 넘기겠다고 약속했음에도 불구하고 웅진도독부를 설치한 점, 김유신과 소정방의 갈등 등이 이후 나, 당간의 불화의 씨앗이 되었다.

 

논산시 주요 안내판의 모습

 

황령재의 설치되어 있는 황산벌 전적지 안내판의 모습

 

황산벌전투

660년(태종무열왕 7)에 있었던 신라와 백제 사이의 큰 전투로서 황산벌은 지금의 충청남도 연산지방이다.

7세기 중반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압력이 가중되자 당과의 외교관계를 강화했고, 당 역시 여러 차례의 고구려원정에서 실패하자 백제를 선제공격하기로 하여 당과 신라 사이에 군사동맹이 체결되었다. 그리하여 660년 3월 당 고종은 소정방(蘇定方)을 시켜 13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산둥[山東] 반도를 출발하여 백제를 공격하게 했다. 이에 호응하여 신라군은 그해 5월에 김유신 등의 장군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경주를 출발하여 6월 18일 남천정(南川停 : 지금의 이천)에 머물렀다. 그리고 태자 법민(法敏)을 보내 병선 100여 척을 거느리고 덕물도(德物島 : 지금의 덕적도)에 가서 소정방을 맞이하게 했다. 이때 당군과 신라군은 백제의 수도인 사비에서 합세하여 공격할 계획을 정했다.

 

태자가 돌아오자 무열왕은 대장군 김유신과 장군 품일(品日)·흠춘(欽春) 등과 함께 정예 군사 5만 명을 거느리고 사비성(지금의 부여)으로 향하게 했다. 당시 백제 조정에서는 방비책을 강구하던 중당군이 백강(白江 : 지금의 금강)에 상륙하지 못하게 하고 신라군이 탄현(炭峴 : 지금의 충남 대덕)을 넘지못하게 해야 한다는 흥수(興首)의 견해를 묵살했다. 그리하여 백제군은 백강에 상륙한 당군에게 대패했고, 신라군은 이미 탄현을 넘어 황산벌로 진군했다. 의자왕은(階伯)에게 5,000명의 결사대를 주어 이를 막게 했다.

 

계백은 가족을 죽인 뒤 비장한 각오로 출전하여 황산벌에 먼저 도착하고 3군데에 진영을 설치했다. 신라군은 군사를 3갈래로 나누어 4번을 싸웠으나 이기지 못했고 군사들은 지쳤다. 이때 신라의 장군인 흠춘이 아들 반굴(盤屈)을 적진으로 보내 힘껏 싸우다 죽게 했다. 그러자 장군 품일 역시 아들(官昌)을 내보내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게 하여 결국 죽게 했다.반굴·관창의 용감한 모습에 감격한 신라군은 죽음을 각오하고 진격하여 크게 승리했다.

 

백제군은 중과부적으로 대패하여 계백이 전사했고 좌평(佐平)·충상(忠常)·상영(常永) 등 20여 명이 사로잡혔다. 그 전투에서 신라군이 당군과 합세하기로 약속한 기일에 늦었다고하여 당군과 신라군 사이에 마찰이 생겼다.

 

황령재 들머리

황령재공터에서 우측방향으로 조금 진행하면 좌측편으로 이정표가 나오고 그 옆으로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나무계단으로 오르면 금남정맥 6구간(함박산-깃대봉-덕목재-물한이재-바랑산-월성봉 수락재)산행이 시작된다.

 

황령재 이정표 : 함박봉 정상 0.63km(해발404m)

황령재에서 나무계단으로 오르면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방향(기독교 연수원인 삼천리 연수원) 버리고 우측방향으로 한차례 더 밀어 올리면 편안한 등로가 나온다. 편안한 등로로  잠시 진행하면 다시 나무계단이 나타난다.

 

편안한 등로길의 모습

황령재에서 나무계단을 한차례 밀어 올리면 안부가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편안한 등로가 나오고 조금 진행하면 다시 나무계단이 나온다.

 

나무 목책 계단 통과

나무계단을 진행하다보면 좌측방향으로 기독교 공동묘지가 나온다.

 

공동묘지 통과

황령재에서 오르면 우측편으로 기독교인들의 공동묘지인듯한 무덤들이 보이고 나무계단을 이용하여 안부에 올라 좌측방향으로 한차래 밀어 올리면 함박산에 도착한다.

 

계백장군과 백제군 5천 결사대의 충절정신과 충청인의 얼 살아있는 황산벌  

삼남지방과 기호지방을 연결하는 논산을 이야기할 때 계백장군 유적지를 빼놓고을 수 없다

계백장군은 660년 소정방과 김유신의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요충지인 탄형과 백강으로 쳐들어오자

5천의 결사대을 이끌고 맞서 싸웠다. 일당 백의 열세에도 불구하고 네번의 싸움에서 이겼내고 다섯번째

전투에서 백제군은 결국 중과부적으로 패배하고 말았다.

현재의 계백장군 묘는 장렬하게 전사한 계백장군의 충절어린 의로운 죽음을 보고 백제 유민들이

장군의 시신을 거두어 은밀하게 가매장한 것이었다. 현재 계백장군이 잠들어 있는 묘역을 중심으로

성역화 사업이 진행 중이며 계백장군의 위패를 모신 충장사에서 매년 제향을 봉행하고 있다.

또 백제군사박물관이 개관돼 장군의 충의정신을 기리는 역사 문화교육의 장으로 활용되고 있다.

 

황산벌 전투 내용

660년(태종무열왕 7)에 있었던 신라와 백제 사이의 큰 전투.

황산벌은 지금의 충청남도 연산지방이다. 7세기 중반 신라는 백제와 고구려의 압력이 가중되자 당과의 외교관계를 강화했고, 당 역시 여러 차례의 고구려원정에서 실패하자 백제를 선제공격하기로 하여 당과 신라 사이에 군사동맹이 체결되었다. 그리하여 660년 3월 당 고종은 소정방(蘇定方)을 시켜 13만 명의 군사를 이끌고 산둥[山東] 반도를 출발하여 백제를 공격하게 했다.

 

이에 호응하여 신라
무열왕은 그해 5월에 김유신 등의 장군과 함께 군사를 이끌고 경주를 출발하여 6월 18일 남천정(南川停 : 지금의 이천)에 머물렀다. 그리고 태자 법민(法敏)을 보내 병선 100여 척을 거느리고 덕물도(德物島 : 지금의 덕적도)에 가서 소정방을 맞이하게 했다. 이때 당군과 신라군은 백제의 수도인 사비에서 합세하여 공격할 계획을 정했다. 태자가 돌아오자 무열왕은 대장군 김유신과 장군 품일(品日)·흠춘(欽春) 등과 함께 정예 군사 5만 명을 거느리고 사비성(泗沘城 : 지금의 부여)으로 향하게 했다. 당시 백제 조정에서는 방비책을 강구하던 중 당군이 백강(白江 : 지금의 금강)에 상륙하지 못하게 하고 신라군이 탄현(炭峴 : 지금의 충남 대덕)을 넘지 못하게 해야 한다는 흥수(興首)의 견해를 묵살했다. 그리하여 백제군은 백강에 상륙한 당군에게 대패했고, 신라군은 이미 탄현을 넘어 황산벌로 진군했다.

 

의자왕은
계백 (階伯)에게 5,000명의 결사대를 주어 이를 막게 했다. 계백은 가족을 죽인 뒤 비장한 각오로 출전하여 황산벌에 먼저 도착하고 3군데에 진영을 설치했다. 신라군은 군사를 3갈래로 나누어 4번을 싸웠으나 이기지 못했고 군사들은 지쳤다. 이때 신라의 장군인 흠춘이 아들 반굴(盤屈)을 적진으로 보내 힘껏 싸우다 죽게 했다. 그러자 장군 품일 역시 아들 관창 (官昌)을 내보내 단신으로 적진에 뛰어들게 하여 결국 죽게 했다.

 

반굴·관창의 용감한 모습에 감격한 신라군은 죽음을 각오하고 진격하여 크게 승리했다. 백제군은 중과부적으로 대패하여 계백이 전사했고 좌평(佐平)·충상(忠常)·상영(常永) 등 20여 명이 사로잡혔다. 그 전투에서 신라군이 당군과 합세하기로 약속한 기일에 늦었다고 하여 당군과 신라군 사이에 마찰이 생겼다.

 

함박봉 정상 오름길의 모습

 

활공장 아래부분에 있는 추모비

추모비 내용

[하늘 날기를 사랑했던 한 사나이가 여기 있다! 그의 고향은 푸른 창공 이었고..

이제 그는 이곳에 고단한 날개를 접었다.

뜨거운 인생을 날았던 안타까운 서른여덟 해. 오늘 문득 그의 힘찬 비상을 다시 한번 보고싶다.

2000년 5월 최훈정을 기리며.. 좋았던 친구들이]라고 쓰인 추모비가 함방봉 활공장 아래에 설치되어 있었다페러그라이딩을 하다가 사고를 당한 고인을 그리워하며 친구들이 이곳에 추모비을 설치한것 같다.

 

함박봉(해발404.4m)

함박봉(404.4m) 정상은 활공장으로 사용하며 시야가 트여 조망이 양호하다. 함박산 정상에서 연산면 일대와 계백장군과 백제군사들이 신라군에 맞서 용맹스럽게 싸우던 드넓은 황산벌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함박봉에서 바라본 이어갈 마루금의 모습

 

함박봉에 설치되어 있는 산불감시초소와 통신탑의 모습

 

함박봉에 있는 산불감시초소와 활공장의 모습

 

함박봉(함박산,해발404m)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한삼천리와 연산면 신양리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 함박봉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와 통신탐이 정상을 점령하고 있었고 정상석은 없었다.

 

함박산 정상에서 바라보는 전망은 정말 일품이었다. 산 아래에는 삼국시대에 망해가는 백제를 구하기 위해 5000결사를 이끌고 5만의 신라 군대를 맞선 백제의 마지막 장수 계백의 恨이 서린 황산벌이 한 눈에 보인다.

 

이곳은 페러글라이더 활공장이기도 한다. 박봉은 한자로 다咸, 후박나무 朴자를 쓰는데, 한자 이름은 그냥 한자로 음차된 것이고 크게 밝은 산봉우리라 '한밝봉'이라 부르다 음차되면서 변음된 것이 아닐까 짐작해본다.

 

급경사 내림길의 모습

함박봉에서 산불감시초소가 설치되어 있는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밧줄이 설치되어 있었다. 급경사 내리막이 나오고 조심하여 내려섰다가 오르면 398봉이 나온다 다시 내렸다가 완만하게 진행하면 347봉이 나온다.

347봉에서 경사지을 내려서면 지도상에 있는 넓은 임도가 나오고 임도에서 우측임도방향 버리고 좌측방향 능선으로 오르면 송전철탑이 나오고,  완만하게 391봉을 지나 오르며 394봉인 깃대봉에 도착한다.

 

송전철탑 통과

함박산에서 내려서면 좌측편으로 송전철탑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한다

 

임도길 통과

347봉에서 경사지을 내려서면서 사진에 담아본 임도길의 모습 임도길에는 출입금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 주변에 장뇌삼과 산나물을 재배하여 관리하는것 같았다.

임도에서 우측방향 능선길로 오르면 마루금이 시작된다.

 

임도길에 설치되어 있는 안내판의 모습

이지역 임야는 사유림으로 장뇌산 및 임산물 재배지역임을 알리는 안내문이 임도 우측편에 설치되어 잇었다.

 

임도길 통과후 뒤돌아본 모습

이지점에서 함박산으로 진행한다면 좌측방향 능선으로 올라야한다.

 

송전철탑 통과(154kv, No.27)

 

편안한 등로길의 모습

송전철탑을 통과하는 완만하게 오름길이 나오고 낙엽이 등로길에 많이 쌓여있어 산행하는데 어려움이 없었다.

 

쉼터 통과

송전철탑을 통과하여 무명봉 하나을 넘어서면 안부에 나무의자가 설치되어 있고 주변에는 철쭉꽃들이 만발하여 잠깐 멈추어 눈팅을 하고는 출발한다.

 

391봉 통과

 

벌곡면갈림길 이정표 : 함박봉정산1.3km, 벌곡면사무소2.9km,깃대봉정상0.7km

 

깃대봉 조망

벌곡면 갈림길에서 내려서면 정면으로 깃대봉이 조망되고 이곳에서 깃대봉까지는 완만하게 진행하면 깃대봉 직진에는 급경사지을 올라야 정상에 도착한다.

 

갈림길 통과

391봉에서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방향 버리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깃대봉에 도착하게된다.

 

무명봉 우회하여 통과

 

깃대봉 오름길의 모습

깃대봉 오름길이 시작되는 지점에 갈림길이 나오는데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깃대봉 오르지 않고 마루금을 진행 하므로  직진으로 깃대봉 올라  좌측방향으로 내려서길 바랍니다.

 

깃대봉(해발394m)

깃대봉은 충청남도 논산시 벌곡면 덕목리와 연산면 신양리 능선에 있는 봉우리이며, 깃대봉 정상에는 정상표지기와 삼각점(△ 논산 23 1984 복구)이 있고 정상석은 없었다.

 

깃대봉 정상 표지기의 모습

깃대봉 정상에는 서래야 박건식님의 표지기가 한쪽 모서리 나무에 붙혀있었고 정면에 삼각점이 있었다

표지기가 없었다면 그냥 지나칠수 있는 봉우리이며 이곳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덕목재에 도착한다.

 

깃대봉(393m) 삼각점의 모습

 

깃대봉(393m) 삼각점(논산 23)

지리적 위치 경도 : 127도14분24초,  위도 : 36도11분20초

높이(표고, 해발높이) : 393m

 

깃대봉 삼각점(논산 23)

 

깃대봉에서 인증샷

깃대봉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급경사지가 나오고 다시 너덜지역이 나타나고 등로 주변에는 철쭉꽃들이 만발하여 산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덕목재로 내려서는 등로길에 호남고속도로가 조망되고 묘지가 있는곳에서 경사지을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좌틀하여 진행하면 공사현장이 나온다 

공사 현장에서 직진으로 능선길 다라 진행하다가 덕목재 68번 국도변으로 내려서면 덕목리 정류장이 나오고 조금더 진행하면 지하통로가 나온다.

 

깃대봉 급경사지 내림길의 모습

깃대봉에서 좌측방향으로 방향 전환하여 내려서면 급경사지가 나오고 올라온 만큼이나 내려서야 한다.

 

너덜지역 통과

 

등로길에 연분홍 철쭉이 많이 피어 잠시 쉬어간다.

 

마루금 등로 주변에 화사하게 피어 있는 연분홍 철쭉의 모습

 

소나무 숲과 편안한 등로길의 모습

 

호남고속도로 조망

깃대봉에서 내려서면서 우측편으로 호남고속도로가 조망되고 저멀리 바랑산과 월성봉도 조망 된다.

 

무명묘지 통과

묘지을 우측편에 두고 진행한다.

 

묘지을 통과하면 완만한 내림길 등로가 나오고 내려서면 공사현장이 나온다.

 

갈림길 통과

묘지에서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갈림길에서 우측방향 버리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노인 요양원 건설현장

깃대봉에서 내려서면 건축중인 시설물이 나오는데 이곳이 아마도 양촌노인전문복지의료시설물이 아닐까 추정해 보며 주변에 공사현장이 있어 마루금이 절개되고 선두조는 이곳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알바을 하고는 다시 복귀하여 절개지로 진행한다. 

 

노인 요양원 건설현장과 또 다른 공사현장 중간부분인 수로변을 따라 진행

 

진행하면서 뒤돌아본 모습

깃대봉에서 내려 임도 따라 덕목재 정류장까지 진행하는것도 무방하리라 생각한다.

 

노인 요양원 건설현장 앞에 있는 또 다른 공사현장의 모습

공사 때문에 마루금이 절개되고 덕목재는 호남고속도로 대문에 절개되어 맥을 절단한 흔적을 한눈으로 바라보며 안타까움을 느껴본다.

 

절개된 마루금의 모습

호남고속도로가 없었다면 정면에 보이는 철계단으로 진행하여 바랑산으로 이어지는데... 이곳에서 덕목재 정류장으로 진행하여 고속도로 지하통로로 통과하여 진행한다.

 

덕목재

위치 : 충남 논산시 벌곡면 덕목리 230-4 

덕목재는 호남고속도로와 68번 지방도가 지나고 위치에 있으며 바로 아래에는 덕목리 버스 정류장이 있고 좌측편으로 덕목리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버스 정류장을 통과하면 마을 진입로 앞에 무량사와 벌골낙시터 입간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직진으로 약30m진행하다가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호남고속도로와 68번 지방도의 지하통로가 나온다.

 

 

덕목리 정류장에서 뒤돌아본 모습

철탑이 있는곳에서 내려왔지만 우측방향 도로로 내려와도 무방할것 같았다.

 

 

논산시 벌곡면 덕목재 앞의 68번 지방도로에  도착

이지점에서 약30m 진행하면 좌측방향에 지하통로가 나온다.

 

덕목리 버스 정류소

공사현장터(노인양원원)에서 능선을 이용하여 무명봉 하나을 넘어서니 호남고속도로가 나오고 절개지가 나타난다.

덕목리 마을 입구에 내려 직진으로 68번 지방도을 따라 진행하면 덕목리 버스정류장이 나오고 약30m 진행하다가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호남고속도로 지하차도가 나온다.

지하차도에는 인근 농수로에서 흘러드는 물이 가득차고 어두워서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고 선답자님들이 만들어 놓은 돌맹이를  징검다리 삼아 무사히 통과할수 있었다.

 

논산시 벌곡면 도로명주소 안내판의 모습

덕목리 정류장 안에 있는 안내판을 사진에 담아본다

 

덕목리 정류장에 설치되어 있는 논산 시내버스 노선 안내도

 

덕목재(160m)

충남 논산시 양촌면 산직리와 벌곡면 덕목리의 경계로 호남고속도로와 68번 지방도가 지나는 곳에 위치하고 있고, 덕목리 정류장에서 약30m 진행하다가 좌측방향으로 내려 지하통로을 이용하여 호남고속도로 지하도을 지나 마루금을 이어 간다.

 

지하통로 입구의 모습

68번 지방도와 호남고속도로 지하통로을 진입하는 대원들의 모습

 

 

지하통로 통과

지하통로가 어둠고 통로에 물이 흘려 조심하여 돌맹이을 이용하여 무사히 통과했다.

 

지하통로 통과 후 우측방향 수로 옆으로 진행하면서 지나온 마루금을 바라보면 마루금 이어간다

저멀리 보이는 송전철탑에서 부터 여기까지 맥을 이어왔다.

 

나무숲 통과

지하통로을 지나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나무숲길이 나오고, 진행하면  임도길이 나온다. 임도길에서 진직으로 진행하면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해도 무방하지만 직진으로 오르면 다시 갈림길이 나온다. 이지점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마루금으로 이어지는 등로길이지만 우측방향은 마루금이 절개되기전에 이어지는 등로길이다  우측방향 그 아래로 철계단이 있고. 좌측방향 임도길 따라 이어가다가 좌측능선을 빡세게 한차례 밀어올리면 무명봉에 도착하며  경사지을 내려서면 곰치재에 도착하게 된다.

 

나무숲을 통과하면 임도길이 나오고 임도길 따라 진행한다.

 

임도 삼거리 통과

이곳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해도 무방하지만 정맥길 따라 진행하면 직진으로 올라 갈림길에서 좌틀하여 진행한다.

 

삼거리 통과

우측방향은 원정맥(호남고속도로 공사로 인하여 절개되어 이용하지 못하고 지하통로로 이동)길이며,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68번 지방도와 호남고속도로 지하수로를 통과하여 마루금에 복귀하여 진행방면을 사진에 담아본 모습.

바로 앞에 있는 무명봉을 올라 내려서면 곰치재에 도착한다.

 

임도 갈림길 통과

임도 갈림길에서 우측 임도길 버리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하여 능선을 오른다.

 

급경사 오름길의 모습

임도길에서 능선으로 오르면 한차례 급경사지을 밀어 올려 내려서면 곰치재에 도착한다.

 

무명봉 통과

 

무명봉에서 내려서면 안부가 나오는데 여기가 곰치재인줄 착각한 지점 이곳에서 조금만 더 진행하면 곰치재 임도가 나온다.

 

무명봉 통과

 

평탄한 등로길의 모습

 

곰치재(275m )

무명봉에서 내려서면  임도가 나오는데 이곳이 곰치재이며 좌측 임도길 버리고 우측방향 능선길로 올라서면 산성성터 흔적이 나타나고, 391봉을 지나면 등로길 완만하게 이어지고 암릉지대가 나온다. 암릉지에서 바라본 조망이 일품이다. 앞으로 이어갈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오고 완만하게 올라서면 지도상에 있는 394봉이 나오는데 이곳에 물한이산이란 표지기가 나무에 붙혀있고 394봉에서 경사지을 내려서면 물한이재에 도착하게된다.

 

무명봉 통과

 

산성터의 흔적이 있는 지점 통과

 

성터에 올라 내려서면 뒤돌아본 모습

 

무명봉 통과

 

조망지 통과

 

양촌면 모촌리방면의 모습

 

조망지 우측에 있는 바위의 모습

 

암릉 조망지의 모습

 

암릉 조망지에서 바라본 양촌면 모촌리방면의 모습

 

무명봉 통과

 

조망지 통과

 

벌곡면 우암리방면의 모습

 

조망지에서 바라본 바랑산과 월성봉의 모습

 

지나온 마루금의 모습

 

바위지대 통과

 

363.9봉(물한산)정상부의 모습

 

363.9봉 (물한산)

지도상에는 363.9봉이라 적혀 있는데 서래야 박건석님이 물한산 이란 표지기을 나무에 걸어놓았다.

아무래도 이 아래에 있는 고개 이름이 물한재이라 그지명을 이용하여 물한산이라고 명명한것 같았다.

정상 중앙에는 큰돌위에 물한산이란 글자가 적혀 있고 그 옆으로 국가기준 2급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었다.

 

363.9봉에 붙혀있는 표지기의 모습

 

물한산 삼각점(금산 444)

 

삼각점 : 금산 444

지리적 위치 경도 : 127도 16분 12초, 위도 : 36도 09분 51초

높이(표고, 해발고도) : 364m

 

물한산 돌맹이 정상석의 모습

물한산정상부 중앙에는 어느 산객이 맘들어 놓았는지 모르는 돌로 만든 정상석이 중앙부에 설치되어 있었다.

 

물한산(363.9봉)에서 물한이재로 내려서는 등로길의 모습

 

물한이재 안부

363.9봉에서 내려서면 절개지 안부가 나오고 이지점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동물이동통로가 나오고 동물이동통로을 통과하여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된다.

 

물한이재터널과 절개지의 모습

 

절개지 마루금을 이어가는 대원들의 모습

동물이동통로을 지나 좌측방향으로 내려 낙석방지철망 사이길로 진행하다가 우측편 사면을 올라서는 대원들의 모습을 사진에 담아본다.

 

물한이재 공사로 인한 환경파괴의 모습

물한이재는 도로건설(터널)과 함께 높은 절개지가 생겨 환경파괴문제와 동물생태계 단절문제로 지역언론이나 환경단체로부터 공격을 받은 곳입니다. 그래서 논산시에서 그 타개책으로 20여억원의 예산을 들여 터널식 동물이동통로를 건설하였다. 그러나 정작 동물들이 이동하기에는 위험한 구간들이 너무 많아 보였다.

 

물한이재 동물이동통로에서 바라본 벌곡면 반암리방면의 모습

 

물한이재 공사 현장을 신음하는 충청의 산 이라 지적한 현주소

논산시 벌곡면 덕곡리 도로공사 현장은 인간의 이기주의 덕분에 파헤쳐지고 망가진 우리나라 산림의 현주소를 실감케 한다. 왕복 2차로를 만들기 위해 산을 깎아내면서 이곳저곳에 섬들이 생겨났고 40여m를 파헤쳐 내려간 산비탈은 급경사를 이기지 못해 흘러내린 토사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90년대와 2000년대 연차적으로 착공된 도로공사이지만 그야말로 환경과 생태계, 경관은 전혀 고려치 않고 마구잡이식 개발을 진행한 개발독재 폐해의 종합판이다. 대전 도솔산악회 김기완 산악대장은 “이곳은 대둔산을 거쳐 논산의 덕목재, 황룡재, 공주 계룡산으로 이어지는 금남정맥 줄기”라며 “산등성이 끊기는 것은 사람의 손발이 아닌 몸통 자체가 잘려나가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안타까워했다.

 

산줄기를 따라 구불구불한 급경사의 도로를 내면서 야생동물들의 이동로와 서식지는 전혀 고려치 않은 채 곳곳을 동강 내놓는가 하면 혹시 모를 낙석방지를 위해 쳐 놓은 철망마저 야생동물의 이동을 철저히 봉쇄해 놓고 있다. 아름다운 산이 흉측한 몰골을 드러내 ‘경관’이란 말 자체가 무색할 정도다. 주민 박모씨(48)는 “공사를 벌인 지 10년이 넘었는 데 아직도 공사중”이라며 “언제 끝날지도 모르고 눈 오면 다니지 못할 도로를 왜 만드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박씨는 “이 산에는 노루, 멧돼지, 고라니, 족제비, 오소리 등 갖가지 산짐승이 살았었는 데 요즘은 잘 안보인다”며 “환경훼손도 심각하고 산 비탈을 너무 가파르게 깎아서 그런지 산사태도 일어났다”고 말했다. 논산시는 산사태 등으로 인한 도로의 안전성을 장담할 수 없게 되자 산능선의 경사도를 낮추는 것보다 절개지를 메워 복원한 뒤 터널을 뚫을 계획을 세우고 있다.

 

시 관계자는 “지난해 안전진단 결과 침출수 등으로 인해 안전도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나왔다”며 “올 가을 쯤 20억원을 들여 붕괴위험도 없고 생태계 복원도 가능토록 터널을 뚫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2000년대나 들어서야 생태통로 개설 등 환경문제가 대두됐지 90년까지만 해도 무조건 사업비가 적게 들어가는 공법만 채택했다”고 말했다.

 

물한이재

위치 : 논산시 양천면 반암리 177-2

물한재는 충남 논산시 양촌면 반한리와  벌곡면 덕곡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2009년도에 완공된 물한재 터널이 있다. 터널을 만들면서 맥을 절개하고 또 주변의 환경을 엄청나게 훼손하는 이런 공사는 자제해 주어서면 하는 이 산객의 간절한 바램이다.

 

물한산(63.9봉)에서 급경사지을 내려서면 물한이재에 도착한다. 절개지 안부에서 우측방향에 있는  동물이동통로를 이용하여 좌틀하여 내려서면 낙석방지 철조망이 나오고. 그 옆으로 진행하다가 우측방향 사면에 설치되어 있는 낙석방지 거물을 잡고 능선으로 올라서면 수로가 나온다. 수로 안부 따라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다가 다시 좌측방향인 능선으로 오르면 등로에 대둔산 도립공원 이라는 표지석이 나온다.

 

완만하게 진행하면 426봉이 나오고 내려서면 작은물한이재가 나오는데 이정표나 표지기가 없어 그냥 지나칠수 있는구간이었다.

 

작은 물한이재을 지나 올라서면 무명봉을 지나 421봉에 도착하고 내려서면 급경사지(로프 설치된 곳)가 나오는데 여산우님들이 이곳에서 무척 힘들어 하신다.

 

로프가 설치된곳을 통과하면 편안한 등로길이 나오고 주변에는 화사한 분홍색의 철쭉꽃들이 만발하여 맥을 이어가는 산객의 발걸음을 잠시 잡아둔다.

 

편안한 등로을 통과하면 밧줄이 설치된 오름 경사지가 나오고 안부에 올라 좌측방향으로 진해하면 영주사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좌틀하여 진행하면 암릉지가 나오고 조망하기에 좋은 장소이며 계속하여 진행하면 급경사지가 나온다 경사지에 올라 좌틀하여 갈림길에서 직진으로 진행하면 바랑산 정상에 도착한다.

 

낙석방지 철조망 사이길의 모습

 

낙석방지망 사면으로 올라서야 마루금으로 이어갈수 있다.

 

낙석방지망 사면을 오르기 전에 뒤돌아본 모습

좌측안부에서 동물이동통로을 지나 터널방향으로 내려서 이지점에서 우측 사면으로 오르면 마루금에 접속할수 있다.

 

안부에 올라 지나온 물한이재 주면의 모습

 

안부 수로의 모습

낙석방지망을 올라서면 안부에 수로가 나오고 수로 따라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좌측방향 능선으로 오르면 마루금에 접속된다.

 

수로길로 올라 좌측능선으로 진행하면 마루금을 접속할수 있는 지점의 모습

 

대둔산 국립공원 표지석 앞에서 지나온 마루금 조망

물한이재 건너편 절개지 안부에서 내려서면 우측방향 동물이동통로 통과하여 낙석방지망 사이로 진행하여 사면으로 올라서면 이곳에 도착할수 있다 이곳에서 역방향으로 진행한다면 같은 방법으로 역으로 내려서면 된다. 하루 빨리 동물이동통위에 흙을 덮혀 건너편 안부의 높이와 일치하게하여 동물이나 산객들이 위험하지 않게 만들어 주어서면 한다.

 

대둔산 도립공원 이정표 

 

426봉 통과

 

작은 물한재

지도상에 작은 물한재라고 하는데 아무런 표식이 없다

 

바위지대 통과

 

무명봉 통과

 

421봉 통과

 

로프 설치된 급경사지 통과

421봉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급경사 암릉지가 나오고 먼저온 대원들이 이곳에서 지체가 되어 모두 모여 있었다. 여성대원들이 급을 먹고 내려가지 못해 많이 지체가 되어 중간 중간에 남성 대원들이 끼어 내려서니 안전하고 빨리 내려설수 있었다.

 

바랑산 조망

 

무명봉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

 

등로길 주변에 철쭉꽃이 아름다워 사진에 담아본다.

 

편안한 등로가 이어진다.

 

계속되는 경사지 통과

 

무명봉 통과

급경사지을 올라서면 넓은 공터가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조망지가 나온다.

 

조망지의 모습

 

바랑산 직진에 있는 암릉지의 모습

 

지나온 마루금의 모습

 

영주사 갈림길의 모습

 

영주사 이정표: 영주사1.5km, 월성봉 정상 1.46km

 

등로길에 피어 있는 철쭉꽃의 모습

 

암릉지

물한이재에서 바랑산으로 오름길에는 조망지가 많았다.

 

벌곡면 반암리일대의 모습

 

급경사 오름길의 모습

 

바랑산 직진에 있는 갈림길의 모습

우측방향 버리고 직진으로 오르면 바랑산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바랑산(해발555.4m) 

충남 논산시 양촌면 반암리와 벌곡면 수락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이 산의 유래는 어느 고승(高僧) 한 분이 입적할 곳을 찾아 바랑을 둘러매고 헤매다 겨우 찾았다는 산이라해서 바랑산이라 불렀다 전하고, 또 다른 이야기로는 산의 생김새가 바랑처럼 생겼다 해서 그렇게 불렀다는 설도 전해지고 있다.

이건 어디까지나 설 일뿐 명확한 근거는 알 수는 없다. 바랑이란 스님들이 메고 다니는 배낭(背囊)을 말하는데  그 배낭이 變音이 되어 바랑이라고 한다. 걸망이라고 한다.

 

바랑산 삼각점

 

바랑산(해발555)에서 인증샷

바랑산정상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멋진 소나무와 함께 조망지가 나오고 완만하게 진행하면 오산2리갈림길 도착한다.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오르면 추모비가 있는 547봉에 도착하고  내려서면 볍계사가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지가 나온다.

 

조망지에서 좌틀하여 내려서면 법계사 갈림길이 나오고 직진으로 진행하면 암릉지에 멋진 소나무와 조망지을 통과하여 오르면 달이산성터가 나온다.

 

한차례 밀어올리면 월성봉 직진에 있는 헬기장이 나오고 헬기장을 가로질려 통신탑 및 산불감시카메라가 있는곳으로 진행하면 월성봉 이정석 지나온 마루금과 법계사 조망이 한눈에 들어오는 지점이었다.

 

바랑산(해발555m)정상 표지기

바랑산 정상부에 올라서면 좌측편 나무에 표지기가 두개가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에서 준,희님의 표지기을 만날수 있었다. 건강하게 잘 지내고 계시는지 지난해 낙동정맥에서 만나 인사을 나누고는 부산 다대포에서 만나기로 했는데 건강 때문인지는 물라도 얼굴을 보지 못했다.

 

바랑산 안내판의 모습

명칭유래: 산의 생김새가 바랑(걸낭)같이 생겼다 하여 바랑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자연환경: 바랑산(555.4m)은 논산시 양촌면과 벌곡면에 걸쳐 있는 산으로, 북서 사면은 식생으로 낙동 사면은 응회암류의 가반암 절벽이 산정을 이루고 있다.

명칭유래에 바랑,걸낭이 나오지만 사실 이 뜻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바랑:배낭(背囊)’의 변한 말. <불교>중이 등에 지고 다니는 자루 모양의 큰 주머니. ≒걸낭. [명사][방언]‘바라(哱囉)’의 방언(제주)

 

바랑산에서 계룡산 방면의 금남정맥 조망포인트

 

바랑산에서 내려서면 조망지가 나온다.

 

월성봉 방면의 마루금의 모습

 

법계사일대의 모습

 

오산2리 갈림길의 모습

갈림길은 조망지대에 설치되어 있었고 전망이 좋았다.

 

오산2리갈림길 이정표: 바랑산정상0.21km, 오산2리방향, 월성봉정상1.3km

 

바랑산 정상을 통과하면 대둔산까지 암능지가 시작된다.

금남정맥 마루금을 기준하여 논산,완주의 서남쪽면은 천길 벼랑같아 보이는 암능지이며, 동쪽의 논산,금산 방면은 온화한 산세를 보이고 있다.

바랑산과 월성봉 능선은 아름다운 소나무와 기암이 있고 조망도 좋아 법계사와 연결하여 산행하면 최상의 산행지가 될 것 같다. 산악인들이 매년 대둔산을 찾는데 이곳 월성봉 능선은 많이 찾지 않고 있는 실정이지만 대둔산 못지않게 장엄하고 엄숙한 느낌의 산행지이다.

 

바랑산의 서쪽면 절개지에서 바라본 능선의 모습

 

벌곡면 오산리일대의 모습

 

547봉의 모습

정상에는 정상석은 없고 추모비 하나가 중앙에 설치되어 있었다.

 

추모비

547봉에는 뜸띠고개(법계사 갈림길 삼거리) 직전에서 덕배라는 山友가 이곳에서 生을 마쳤는지 산우들이 덕배님을 위해 추모비를 설치해 두었다.  세상을 살면서 친한 친구 한명만 있어도 그사람은 성공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그럼 이 산객도 그런 친구가 있는지 생각해 본다.

비록 이세상과 이별을 했지만 행복한 산객이라 생각하며 슬픔은 슬픔일뿐 이번 산행에서 두번이나 등로길에서 추모비을 보았는데 조금의 아쉬움이 들어 온다.

추모비의 내용

산이 있네  싸리문밖  느티나무 꼭대기  달을   걸어 놓으니 속세의 시름이야  흐르는 세월의 강을 건너네  산이여!

고독해 하지마라  강 건너 덕배 머무는 이곳은  극락이니 행여 외로울까 이 마음  한 웅큼 떼어놓고 가네 이 마음

 

547봉 조망지점

바랑산에서 안부를 통과 후 547봉 정상 등로에서 우측으로 3m정도 벗어나 있는 조망포인트이며 조망지에서 바라보며 법계사가 바로 앞에 보인다.

 

능선 안부에서 바라본 법계사의 모습

법계사는 충남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에 있으며 바랑산에서 월성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상의 법계사는 400명의 비구니 스님들을 수용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스님들 노후복지시설이라 한다.

일생을 선행과 참선으로 살아온 스님들의 말로를 책임지는 곳으로 모두 6개동으로 되어있고 108개의 별실과 선방, 식당들로 이루어져 아파트 형식으로 지어놓았다고 한다.

절을 소유하지 않은 비구니 스님들이 수행하거나, 은퇴한 노스님들이 지내는 곳으로 아파트 같이 얻어 기거하는 곳이라 한다. 법계사 근처에는 바랑산, 장삼봉, 절골 등 불교와 관련된 지명들이 많다.

 

대둔산 주능선 조망

 

법계사 일대 조망

 

법계사 갈림길( 뜸띠고개)

이곳 능선은 정말 절경으로 왜 금남정맥을 ‘정맥의 꽃‘이라 부르는 이유와 이곳 대둔산을 ’소금강산’이라고 부르는 이유를 오늘에서야  조금 알것 같다.

그만큼 조망이 뛰어나고 멋진 암릉들이 많다.  능선에서 아래쪽을 내려다보면 아찔할 정도로 천길 낭떠러지가 있다.

 

법계사 갈림길에서 바라본 법계사로 내려서는 등로길의 모습

 

547봉과 월성봉 사이의 법계사 갈림길 이정표: 바랑산 정상1.2km, 법계사0.8km, 월성봉 정상1.26km

 

등로길 우측편 암릉지에 자생하고 있는 소나무 한그루가 자태를 뽐내고 있는 모습

 

달이산성

달이산성은 충남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에 있으며. 달이산성은 석축으로 쌓았고, 둘레가 약 2Km에 달했다는데 정상 부근에 아직도 성터흔적이 남아 있었다.

옛날 이곳에 ‘달이’라는 의적이 은거해 주둔했던 곳이라 해서 붙여진 이름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는 권력으로 모은 사람만의 재산을 빼앗아 백성들에게 나눠줘 사람들이 많이 모여 들었다.

 

어느 해 조정 군사들이 의적 소탕을 위해 산성을 포위하기 시작했다.

군사들과 싸우기를 3년, 지칠대로 지친 의적들은 포위망을 뚫고 북쪽으로 탈출하기 시작했다.

달이도 칼을 내팽겨치고 의적들에게 말하기를  "자 ~  우리도 이젠 고향에 가서 농사나 짓고 살자."라고 하자 의적들이 뿔뿔히 헤어졌다고 한다. 그후부터 사람들은 달이가 진을 쳤던 곳이라 하여 달이산성으로 부르게 되었다 전한다

 

달이산성(達伊山城)

충청남도 논산시 월성봉에 있는 시대 미상의 산성이다. 해발 620m 월성봉의 정상부에서 중턱에 걸쳐있다. 지형적으로는 북고남저(北高南低)의 삼태기형, 즉 사모봉형(紗帽峰形) 산성의 형태를 하고 있다. 산성은 성벽 전체를 석성으로 축조하였는데, 대부분이 붕괴되고 일부만 남아 있다. 규모는 1,800m로 매우 큰 편이지만 성 안의 시설물은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달이산성이 있는 월성봉의 월(月)과 달이(達伊)는 같은 음이며, 성(星)은 성(城)을 뜻하는 것으로 추측된다

 

안부갈림길의 도착 후 뒤돌아본 모습

법계사 갈림길에서 이곳 안부까지는 급경사지로 힘들게 올라야 하며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월성봉에 도착한다.

 

월성봉 정상의 이정표와 헬기장: 바랑산1.65km, 수락주차장1.8km, 수락주차장3.2km

 

월성봉 헬기장 이정표: 바랑산정상1.46km, 수락계곡(매표소)1.36km, 흔들바위0.18km

 

월성봉 헬기장에 설치되어 있는 탐방로 안내판의 모습

 

 

현위치 번호 : 대둔06-7

 

월성봉 헬기장 통과

월성봉에는 넓은 헬기장과 산불감시카메라가 설치되어 잇었다.

 

월성봉에 설치되어 잇는 산불 감시 카메라와 안내판의 모습

 

월성봉(月星峰, 해발651m)

오늘 진행하는 금남정맥(황령재-수락재구간) 마루금 산행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며 산행지도에는 월성봉이라 적혀 있지만 현지 주민들은 달이봉, 다리성봉(達里城峯)이라 불리어지고 있다고 한다. 달이성봉( 달과 별이 만들어낸 봉우리) 을 한자로 표기해 '월성봉'으로 된듯하다.

 

월성봉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대둔산 월성고지 전적 안내판이 나오고 완만하게 진행하면 구급함이 설치되어 있는 안부에 도착하면 이곳에서 오르면 암릉지에 흔들바위가 있고 그 주변으로 나무의자가 있어 조망을 하면서 쉬어갈수 있는 쉼터가 마련되어 있었다.

 

흔들바위에서 내려서면 소나무 군락지인 쉼터가 나오고 법계사 갈림길을 지나 내려서면 암릉지대가 나오고 대둔산 능선이 한눈에 조망된다. 암릉지대을 통과하면 나무계단이 나오고 조금더 진행하면 조망지에 다시 나무계단이 길게 설치되어 내려서면 수락재에 도착한다.

 

월성봉에서 암릉지 및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지난번 종료지점인 수락재에 도착하고 수락재에서 오늘 산행을 종료하고는 좌측편으로 수락계곡을 세번 번갈아가면 지나고 다시 철계단을 지나 수락주차장에 도착한다.

 

월성봉에서 바라 본 좌측의 547봉과 우측의 바랑산(555m)의 모습 ...547봉에서 근거리 법계사의 모습을 볼 수 있다.

 

월성봉 정상에서 법계사 방면의 모습

 

월성봉에서 조망 포인트

 

월성봉에서 조망 포인트

 

월성봉 (月星峰, 해발651m)의 정상석의 모습

월성봉은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와 벌곡면 수락리의 경계 능선에 있는산으로서 이 지역 사람들은 달이 뜨는 봉우리라 부른다고 한다. 월성봉을 일명 다리성봉(達里城峯) 또는 달이봉으로 불렀다 한다. 달이성봉을 한자로 표기해 '월성봉'으로 된듯하다.

 

월성봉 정상석에서 인증샷

월성봉은 역사의 흔적이 많은 산이다고 말할수 있다. 가까이는 한국전쟁 당시 월성고지 격전이 있었던 곳이고 멀게는 산 전체가 달이산성이라는 성채로 둘러 쌓인 천혜의 요새로써 숱한 전란을 겪은 곳입니다. 월성봉이란 이름조차 달이산성에 걸린 달빛의 수려함을 기려 月城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이 산을 제대로 느끼기 위해서는 달 밝은 밤에 월성산정에서 달빛 구경하면서 술 한 잔 마셔봐야 한다는 얘기가 되는데 친구들이랑 이곳에서 비박하면서 그 느낌을 만끽할날을 손꼽아 본다.

 

월성봉(月星峯, 해발651m) 또 다른 표지기에서 인증샷

월성봉은 충청남도 논산시 양촌면 오산리와 벌곡면 덕곡리·수락리에 걸쳐 있는 산이며. 높이는 650m이다. 월성봉에는 두개의 정상석과 표지기가 설치되어 있었고, 정상에서 바라보는 조망은 일품이었다.  월성봉은 월성봉이라는 봉우리 이름보다 월봉성, 다리성 등 성채의 이름으로 더 많이 불렸다. 고려 때 토적(土賊) 달리(達里)가 이곳에 웅거하며 노략질이 심하여 관군이 포위한 지 한 해가 지나서야 겨우 토벌할 수 있었다고 전한다. 월성봉이란 이름은 토성(土城)에 달이 비치면 그 고요함이야 말로 숨을 죽이는 듯했고, 성벽에 비친 달빛의 수려함이 으뜸이라 하여 월성(月城)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대둔산도립공원에 속하며, 논산시 시가지로부터 남동쪽에 위치해 있다. 노령산맥의 한 줄기로 동쪽의 대둔산을 비롯하여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서쪽의 장성천이 동서 방향으로 흐르며, 북쪽의 대곡천이 남북 방향으로 흐르며, 이에 의해 북쪽의 장성천에는 수락저수지와 수락리, 남서쪽에는 채광리가 들어서 있다. 월성봉의 북쪽으로는 국가지원지방도 68지방도가 동서를 따라 지나고 있으며, 서남쪽에는 지방도 697호가 지나고 있다. 이를 중심으로 기타 도로로 월성봉과 여러 마을을 연결하고 있다.

 

대둔산 월성고지 전적지

대둔산 월성고지 안내판은 월성봉에서 흔들바위 등로길 좌측편에 설치되어 있었다

월성봉 일대는 역사가 깊은 곳 중에 하나이며. 6.25전쟁중 유엔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38선이 차단되어 미쳐 월북하지 못한 북한군이 전북 덕유산을 거쳐 이곳 대둔산에 북한군 6개 지대 1,200여명과 좌익계 1,000여명이 지방 각 곳에 은거하면서 지역민의 인명과 재산을 약탈하는 만행을 저지르는 도중 이곳 양촌 지역민이 혼연일체가 되어 전투대를 조직하여 공비와의 대작전을 시작하였고 이곳 양촌 면민들은 이곳에 월성고지를 구축하고 공비와의 처절한 전투를 벌인 장소입니다.

 

대둔산 월성고지의 모습

월성봉 정상 좌측편에 설치되어 있었고. 월성고지에서 바라보면 정면 앞에는 산불감시카메라 송신탑과 헬기장이 보인다.

 

월성봉에서 바라본 흔들바위정상부의 모습

 

월성봉과 흔들바위 중간에 설치되어 있는 비상구급함의 모습

 

흔들바위 정상부의 모습

흔들바위 정상부에는 쉼터의자와 정상석과 표지기가 설치되어 잇었고 조망 또한 일품이었다.

 

흔들바위

흔들바위 뒷편으로 보이는 봉우리가 547봉 추모비가 있는 봉우리이며 그 뒤편으로 높아 보이는 산이 바랑산정상이다.

흔들바위정상 표지기의 모습

월성봉을 지나면 좌측편으로 대둔산 월성고지 전적지 안내판이 나오고 직진으로 진행하면 흔들바위 안부에 도착한다. 흔들바위는 마치 거북이 등처럼 넓적하게 생김 바위가 있었고, 흔들바위 주면에는 표지석과 나무의자 쉼터가 있었고 조망이 일품이었다.

장난기 많은 한 대원이 흔들바위에 올라 흔들어 보니 흔들바위가  조금씩 흔들리고 흔들바위 바로 아래는 절벽이라 조심해야 한다.

 

흔들바위 위에서 인증샷

 

흔들바위 정상석에서 인증샷'

 

흔들바위 정상석의 모습

 

흔들바위에서 바라본 월성봉 정상부의 모습

 

흔들바위에서 바라본 547봉과 바랑산의 모습이 조망.

 

흔들바위에서 바라본 법계사와 그 일대의 모습이 조망

 

흔들바위에 있는 외로운 소나무 한그루

 

수락재로 떠나면서 뒤돌아본 흔들바위의 모습

 

요상한 소나무의 모습 그 아래는 절벽이라 너무 휘험한곳이다.

 

등로에 있는 멋진 소나무의 모습

 

등로 절벽지의 모습

현위치번호 : 대둔05-16

 

절벽지에 있는소나무의 모습

 

마루금에서 벗어나 있는 절개지에 걸처있는 기암모습

 

대둔산 주능선 조망

 

대둔산 마천대정상의 모습

 

등로 우측편에 피어 있는 진달래의 모습

 

완만한 내림길의 모습

 

쉼터와 소나무

흔들바위에서 내려서면 소나무군락지가 나오고 그곳에서 돗자리 깔아놓고 쉬었다 가면 참 좋을것 같았다.

 

소나무 쉼터에 있는 소나무의 모습

 

법계사 갈림길의 모습

 

법계사 갈림길 이정표: 월성봉0.63km/양촌(법계사)1.15km/주차장2.39km

 

현위치번호 : 05-15

 

현위치번호 : 05-14

 

완만한 등로의 모습

 

경찰 충혼탑 조망

 

등로상에 있는 소나무의 모습

 

현위치번호 : 05-13

 

 

경찰 충혼탑

월성봉에 암릉구간 안부 계단길을 내리던 중, 좌측편 대둔산 수락계곡 기슭에 있는 로켓 모양의 충혼탑이 멀리 보인다. 충청남도 경찰국에서 1986년 5월 31일 건립한 승전탑이라 한다. 

6.25때  인천상륙작전으로 38선이 차단되는 바람에 미쳐 월북하지 못한 북한군이 전북 덕유산을 거쳐 이곳 대둔산에 2200여명이 은거하고 있었는데 논산의 양촌면의 주민들과 이 지역의 국군 사단과 경찰 등이 이곳 월성봉에 고지를 구축하고 북한군과 치열한 전투를 많은 사상자를 냈다고 한다.

당시 한이 서린 비극의 현장으로서 대둔산 공비토벌 작전에 참가한 경찰관, 의용경찰, 애국청년 등 1,376명이 조국을 위해 목숨바쳐 장렬하게 전사한 것을 기리기 위해 세운 것이라 한다.

 

533봉에서 바라본 대둔산 주능선의 모습

 

533봉에서 바라본 암릉지의 모습

 

암릉지 내려서면서 뒤돌아본 533봉의 모습

 

나무계단 통과

흔들바위에서 내려서면 쉼터 소나무군락지가 나오고 군락지에서 내려서면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잇는 지점에 도착한다.

 

나무계단의 모습

 

현위치번호 : 대둔05-12

 

전망대의 모습

 

전망대에서 바라본 지나온 533봉과 그 뒤편으로 월성봉이 조망.

 

전망대에서 바라본 법계사일대의 모습

 

전망대에서 바라본 대둔산 주능선의 모습

 

전망대에 있는 두번째 나무계단의 모습

 

전망대에서 내려서면 다시 나타나는 나무계단의 모습

 

나무계단 내려서면서 지나온 마루금의 모습

뒤편으로 보이는 월성봉 사진에 담아본다.

 

나무계단 내려서면서 수락계곡을 사진에 담아본다

 

수락재에서 대둔산으로 이어지는 마루금의 모습

 

멋진 소나무와 바위의 모습

 

 

수락재(해발364m)

수락재에는 이정표와 나무의자, 현위치번호(대둔05-10)가 설치되어 있었다.

수락재는 논산 벌곡면 수락리에서 양촌면 오산리 오미로 넘는 고개이며 지도상에는 무수재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곳 계곡이 수락계곡이라 칭한 모양이다. 

대둔산 능선이 달이성봉 바랑산으로 이어지는 산릉 안부로 지금은 등산로로 이용되고 있을뿐이다. 수락재 동서로 위령탑이 있는데, 수락재 동쪽 너머 수락리 끝닿는 곳에는 경찰승전탑이 있고, 수락고개 서쪽 양촌의 오산리 버스종점에는 6.25동란시 북한군에 무참히 살해당한 영령을 기리는 위령탑이 2006년에 건립되었다.

 

현위치번호 : 대둔05-10

 

수락재 이정표 : 수락주차장1.35km, 양촌.오산2.75km, 마천대4.25km, 월성봉1.66km

 

수락재에 있는 참나무시들음병 방제 표지기의 모습

 

수락재에서 바라본 대둔산 방면의 마루금

 

수락재에서 바라본 월성봉방면의 마루금

 

수락재에서 바라본 수락재주차장방면의 모습

수락계곡의 모습

 

승천교 앞 이정표 수락주차장0.3km, 마천대3.1km, 월성봉(흔들바위)2.6km

 

승천교 앞에 있는 탐방로 안내도

 

승천교와 탐방로 안내도의 모습

 

대둔산공원지구 자연생태연구소

 

승천교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수락재주차장에 도착한다.

 

대둔산 도립공원 건강산책로의 모습

 

수락주차장으로 내려서는 도로의 모습

 

수락재 주차장

 

 

대둔산 도립공원 안내도의 모습

 

수락재 주차장

위치 : 충남 논산시 벌곡면 수락리 117-20

수락재 주차장은 대둔산 도립공원 안내도와  논산시 관광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었고 그 옆으로 화장실과 수락계곡이 있었다.

 

수락계곡에서 지친몸을 간단하게 정리하고는 산악회에서 준비한 참치회 덮밥과 막걸리 한잔을 마시고 금남정맥 6구간을 마무리 한다.

 

지난구간은 폭설로 인하여 조망없이 힘들게 산행을 했지만 이번에서 정반대로 날씨와 조망이 좋아 여유롭게 산행을 하고 도한 계곡에서 알탕도 하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산악회에서 준비한 참지덮밥과 막걸리 한잔 마시고는 버스에 올라 서울에서 내려온 역순으로 버스는 딸려 상일동에 도착한다.

 

선두에서 리딩해 주신 선두대장님과 중간 후미대장님께 감사의 말씀 전하며 함께하신 대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그리고 맛난 음식 준비해 주신 회장님과 수석김대장님께도 노고의 말씀 전하며 대원들 모두 건강하시고 다음 금남정맥 마루금 산행길에서 반갑게 뵙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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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령재 공터에서 바라보면 서쪽(좌측)방향은 충남 논산시 연산면 신암리방면이며, 동쪽(우측)방향은 충남 논산시 벌곡면 한삼천리방면이고 20번 지방도가 지나는 고개마루다.

 

황령재 공터에서는 조망이 좋고, 논산시 주요 관광지와 황산벌전투 안내문이 설치되어 있었고 이곳에서 우측방향으로 조금 진행하면 황령재 들머리지점이 나온다.황령재 들머리지점에는 이정표(함박봉 정상 0.63km)가 설치되어 있고 좌측방향 나무 목책계단으로 오르면 산행이 시작된다.

 

오늘 진행하는 금남정맥 마루금은 신라와 백제의 전투현장이었던 황산벌의 전적지인 황령재에서 남쪽방향으로 함박산, 덕목재, 물한이재, 바랑산을 걸처 수락재까지 역방향으로 산행한다.

 

황령재에서 나무계단을 오르면 갈림길이 나오고 마루금은 우측방향이고, 직진방향은 삼천리교육원(기독교)으로 진행하는 갈림길이다. 우측방향으로 한차례 밀어올리면 편안한 등로가 나오고 다시 나무계단이 나온다. 나무계단을 또 다시 한차례 밀어 올리면 좌측편으로 기독교 공원 묘지가 나오고, 안부에 올라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첫번째 봉우리인 함박봉에 도착한다.

 

함박봉에서 산불감시초소가 설치되어 있는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급경사 내리막이 나오고 조심하여 내려섰다가 오르면 398봉을 거쳐 우회하여 진행하면 347봉이 ㄷ착한다.

 

347봉에서 한차례 내려서면 지도상에 있는 넓은 임도가 나온다. 임도에서 우측방향 버리고 좌측방향 능선으로 오르면 송전철탑이 나오고 완만하게 391봉을 지나 오르며 394봉인 깃대봉에 도착한다.

 

깃대봉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급경사지가 나오고 다시 너덜지역이 나타나고 등로 주변에는 철쭉꽃들이 만발하여 산객의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덕목재로 내려서는 등로길에 호남고속도로가 조망되고 묘지가 있는곳에서 경사지을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좌틀하여 진행하면 공사현장이 나온다

 

공사현장터에서 능선을 이용하여 무명봉우리 하나을 넘어서니 호남고속도로가 나오고 절개지가 보인다.

덕목리 마을 입구에 내려 직진으로 68번 지방도을 따라 진행하면 덕목리 버스정류장이 나오고 약30m 진행하다가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호남고속도로 지하차도가 나온다.

 

지하차도에는 인근 농수로에서 흘러드는 물이 가득차고 어두워서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았고 선답자님들이 만들어 놓은 돌맹이를  징검다리 삼아 무사히 통과할수 있었다

 

공사 현장에서 직진으로 능선길 다라 진행하다가 덕목재 68번 국도변으로 내려서면 덕목리 정류장이 나오고 조금더 진행하면 지하통로가 나온다.

 

덕목재는 호남고속도로와 68번 지방도가 지나고 위치에 있으며 바로 아래에는 덕목리 버스 정류장이 있고 좌측편으로 덕목리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다

버스 정류장을 통과하면 마을 진입로 앞에 무량사와 벌골낙시터 입간판이 설치되어 있었다.

직진으로 약30m진행하다가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호남고속도로와 68번 지방도의 지하통로가 나온다.

 

지하통로을 지나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나무숲길이 나오고, 진행하면 임도길이 나온다. 임도길에서 진직으로 진행하면 삼거리가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해도 무방하지만 직진으로 오르면 다시 갈림길이 나온다. 이지점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마루금으로 이어지는 등로길이지만 우측방향은 마루금이 절개되기전에 이어지는 등로길이다 우측방향 그 아래로 철계단이 있고. 좌측방향 임도길 따라 이어가다가 좌측능선을 빡세게 한차례 밀어올리면 무명봉에 도착하며 경사지을 내려서면 곰치재에 도착하게 된다.

 

무명봉에서 내려서면 임도가 나오는데 이곳이 곰치재이며 좌측 임도길 버리고 우측방향 능선길로 올라서면 산성성터 흔적이 나타나고, 391봉을 지나면 등로길이 완만하게 이어지고 암릉지대가 나온다. 암릉지에서 바라본 조망이 일품이다. 앞으로 이어갈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오고 완만하게 올라서면 지도상에 있는 394봉이 나오는데 이곳에 물한이산이란 표지기가 나무에 붙혀있고 394봉에서 경사지을 내려서면 물한이재에 도착하게된다.

 

물한재는 충남 논산시 양촌면 반한리와  벌곡면 덕곡리를 이어주는 고개로 2009년도에 완공된 물한재 터널이 있다. 터널을 만들면서 맥을 절개하고 또 주변의 환경을 엄청나게 훼손하는 이런 공사는 자제해 주어서면 하는 이 산객의 간절한 바램이다.

 

물한산(63.9봉)에서 급경사지을 내려서면 물한이재인 절개지 안부에 도착하고 우측방향에 있는  동물이동통로를 이용하여 좌틀하여 내려서면 낙석방지 철조망이 나온다. 그 옆으로 진행하다가 우측방향 사면에 설치되어 있는 낙석방지 거물을 잡고 능선으로 올라서면 안부 수로가 나오고 수로 안부 따라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다가 다시 좌측방향인 능선으로 오르면 등로에 대둔산 도립공원 이라는 표지석이 나온다.

 

완만하게 진행하면 426봉이 나오고 내려서면 물한이재가 나오는데 이정표나 표지기가 없어 그냥 지나칠수 있는구간이었다.

 

작은 물한이재을 지나 올라서면 무명봉을 지나 421봉에 도착하고 내려서면 급경사지(로프 설치된 곳)가 나오는데 여산우님들이 이곳에서 무척 힘들어 하신다. 로프가 설치된곳을 통과하면 편안한 등로길이 나오고 주변에는 화사한 분홍색의 철쭉꽃들이 만발하여 맥을 이어가는 산객의 발걸음을 잠시 잡아둔다.

 

편안한 등로을 통과하면 밧줄이 설치된 오름 경사지가 나오고 안부에 올라 좌측방향으로 진해하면 영주사 갈림길이 나온다. 갈림길에서 좌틀하여 진행하면 암릉지가 나오고 조망하기에 좋은 장소이며 계속하여 진행하면 급경사지가 나온다 경사지에 올라 좌틀하여 갈림길에서 직진으로 진행하면 바랑산 정상에 도착한다.

 

바랑산정상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멋진 소나무와 함께 조망지가 나오고 완만하게 진행하면 오산2리갈림길 도착한다.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오르면 추모비가 있는 547봉에 도착하고  내려서면 볍계사가 한눈에 들어오는 조망지가 나온다.

 

조망지에서 좌틀하여 내려서면 법계사 갈림길이 나오고 직진으로 진행하면 암릉지에 멋진 소나무와 조망지을 통과하여 오르면 달이산성터가 나온다.

 

한차례 밀어올리면 월성봉 직진에 있는 헬기장이 나오고 헬기장을 가로질려 통신탑 및 산불감시카메라가 있는곳으로 진행하면 월성봉 이정석 지나온 마루금과 법계사 조망이 한눈에 들어오는 지점이었다

 

지난구간은 폭설로 인하여 조망없이 힘들게 산행을 했지만 이번에서 정반대로 날씨와 조망이 좋아 여유롭게 산행을 하고 도한 계곡에서 알탕도 하고 기분 좋은 마음으로 산악회에서 준비한 참지덮밥과 막걸리 한잔 마시고는 버스에 올라 서울에서 내려온 역순으로 버스는 딸려 상일동에 도착한다.

 

선두에서 리딩해 주신 선두대장님과 중간 후미대장님께 감사의 말씀 전하며 함께하신 대원 여러분께 감사의 말씀 전합니다. 그리고 맛난 음식 준비해 주신 회장님과 수석김대장님께도 노고의 말씀 전하며 건강하시고 다음 산행길에서 반갑게 뵙길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