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남정맥 34구간(최종회) 탄치재에서 외망포구까지 산행후기

2012. 11. 14. 21:15★ 9 정맥/- 6. 호남[완료]

 

호남정맥 34구간(탄치재~외망포구)

 

: 전남 광양 망덕산. 국사봉. 천왕봉. 정박산(445M) 호남정맥 34회 최종회

산행일시 : 2012년 2월 2일(토요일, 당일산행) 06시30분 출발

             06시 30분  잠실역 2호선 1번출구(8호선 11번출구 송파구청 쪽

             06시 40분 천호동 국민은행앞(5호선 천호역 6번 출구)

             06시 45분 길동 GS주유소 앞(보훈병원입구) 

             06시 50분 상일동 육교밑(상일초교 건너편) 

산행코스 : 탄치재-국사봉-상도재-정박산-배암재-잼비산-삼정치-중산재(지하통로)-천왕산-194봉전망

               대-2번국도-망덕산-부석정-외망포구=====(5시간30분)

산행시간 : 11:10~16:00 (4시간50분. 식사및 휴식시간 포함)

산행거리 : 약 13.9Km (정맥 13.9Km 및 접속구간 0Km) , GPS 16.5Km

산행인원 : 55

운행차량 : 버스 1대, 봉고 1대

산행날씨 : 맑음(봄 날씨 같은 화창한 가운데 마지막 호남구간 종주)

산행코스 및 구간거리 : 탄치재-2.5/2.8(60분)-국사봉-2.1/2.3(50분)-상도재-1.4/1.6(30분)-배암재-

                                2/2.3(50분)-중산재-0.75/0.9(30분)-천왕산-1.95/2.2(40분)2번국도-0.6/0.8

                                (30분)-망덕산-0.8/1(30분)-망덕포구==========12.1km/13.9km(5시간20분)

 

구간

거리(km)

출발시간

소요시간

비고

탄치재

-

   11:10 

 

해발168m, 2번지방도, 표지석,매치재

국사봉

 2.5/2.8 

  12:03

  53분

해발445m, 이정표와 삼각점(하동15 1991재설), 통신중계탑

상도재

 2.1/2.3

  12:41

  38분

광양시 진월면 치사리와 진상면 청암리를 잇는 조그만 고개

배암재

 1.4/1.6

  13:18

  37분

광양시 진상면과 진원면의 경계

2번 국도 통과

중산재

  2/2.3

  13:53

  35분

남해고속도로 굴다리, 중산마을 이정석 

천왕산

  0.75/0.9

  14:18

  25분

해발228m, 이정표, 조망좋음 

2번구도

 1.95/2.2

  15:02

  44분

중앙분리대 밑으로 통과 

망덕산

  0.6/0.8

  15:27

  25분

해발196m, 이정석, 이정표 

망덕포구

  0.8/1

  16:00

  33분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 23-3, 외망포구 

도상거리

12.1/13.9

 

4시간50분 

 

접속거리

 

 

 

호남정맥거리

13.9 

 

 

 

GPS거리

 16.5

 

 

 

 

 

 

 

: 중식, 식수, 행동식, 방풍방한복, 여벌옷, 스틱, 렌턴, 카메라, 상비약등

* 스틱은 사용법을 잘 익혀 사용하면 체중을 분산시켜 무릎에 부담을 덜어줍니다

** 무릅보호대는 관절과 인대를 보호하므로 장거리 산행에 도움이됩니다

 

 

 

백두대간상에 있는 영취산에서 분기하여 서쪽으로 뻗어 조약봉에서 끝나는 산줄기가 금남호남정맥이며조약봉에서 다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이 분기된다. 호남정맥은 3정맥 분기점인 조약봉에서 시작하여 호남 내륙을 관통하여 백운산과 망덕산을 거쳐 광양만 외망포구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430km의 산줄기를 말하며 9정맥중에서 가장 긴 정맥이다.

호남정맥상에 있는 주요산은 내장산, 추월산, 강천산, 무등산, 제암산, 조계산, 백운산 등 명산도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약 70여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마루금에 있는 주요 산들은 조약봉, 만덕산, 갈미봉, 경각산, 오봉산, 묵방산, 성옥산, 왕자산, 고당산, 내장산, 백암산, 대각산, 도장봉, 추월산, 치재산, 용추봉, 강천산, 산성산, 덕진봉, 봉황산, 서암산, 괘일산, 무이산, 연산, 만덕산, 수양산, 국수봉, 북산, 무등산, 안양산, 오산, 천왕산, 구봉산, 천운산, 태악산, 노인봉, 성재봉, 촛대봉, 두봉산, 계당산, 봉화산, 고비산, 군치산, 숫개봉, 봉미산, 국사봉, 깃대봉, 삼계봉, 가지산, 용두산, 제암산, 사자산, 일림산, 활성산, 봉화산, 방장산, 주월산, 존제산, 백이산, 고동산, 조계산, 오성산, 유치산, 문유산, 바랑산, 농암산, 갓꼬리봉, 형제봉, 도솔봉, 백운산, 매봉, 갈미봉, 쫓비산, 불암산, 국사봉, 천왕산, 망덕산 등이며 그 중 최고봉은 광양의 백운산(1,218m)이다.

호남정맥구간 종주계획(조약봉~망덕산)

호남정맥은 조약봉에서 시작하여 광양만 외망포구로 내려가면서 종주하기로 하였으며 이 구간의 도상거리는 약 430km정도 되고 26구간으로 나누어서 구간 종주를 하려고 한다. 호남정맥은 거리가 먼곳에 있기에 하루전 대중교통이나 자가운전을 하여 산행기점으로 이동하기로 하였다.

종주는 금년 7월 하순경에 시작하여 한달에 두번정도 계획을 세우다 보니 내년 말쯤에 끝날 것같고 종주인원은 나홀로 종주하려고 하는데 가끔 집사람과도 함께 갈려고한다.

그리고 종주를 할려면 지도가 있어야 하는데 국토지리원에서 나온 1:50,000 지형도로 개념도를 그려 종주한 후에 틀린 부분을 수정하기로 하였다.

 

 

전라북도 장수군 주화산(珠華山)에서 뻗어 내장산에 이르러 전남 지역을 동서로 가로지르며 다시 전남 광양시의 백운산에 이르는 산줄기의 옛 이름. 한반도 13정맥의 하나로, 금남호남정맥(錦南湖南正脈)의 종착지인 주화산에서 갈라져 남서쪽으로 내장산에 이르고, 내장산에서 남진하여 장흥 제암산(帝巖山)에 이르며, 제암산에서 다시 남해를 끼고 동북으로 상행하여 광양 백운산(白雲山)에 이르는 산줄기이다.

이 산줄기는 영산강 유역을 이루는 서쪽 해안의 평야지대와 섬진강 유역을 이루는 동쪽의 산간지대로 갈라놓았다. 이 산줄기의 산들은 대체로 곰재·만덕산·경각산(鯨角山)·오봉산·내장산·백암산·추월산(秋月山)·산성산(山城山)·설산(雪山)·무등산·천운산(天雲山)·두봉산(斗峰山)·용두산·제암산·일림산(日林山)·방장산(方丈山)·존제산(尊帝山)·백이산(伯夷山)·조계산·희아산(戱娥山)·동주리봉·백운산 등이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원본을 보실 수 있습니다.

호남정맥 망덕산구간 트렉도   

 호남정맥34 망덕산구간 고도표

 

 

호남의 산불기와 물줄기
금남,호남정맥은 백두대간 장수 영취산에서 분기하여 북서쪽으로 63.3km를 뻗어가며, 장안산. 수분령. 신무산. 팔공산. 성수산. 마이산.부귀산을 거쳐, 완주의 조약봉에서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으로 나뉜다.
여기서 금강과 섬진강이 발원하는데, 신무산의 '뜬봉샘'에서 발원한 금강의 물줄기는 장수를 지나, 전북과 충남을 거쳐 군산(금강하구둑)에서 서해로 흘러드는데 길이가 장장 407.5km나 된다. 진안 팔공산 '데미샘'에서 발원한 섬진강은 호남의 옥토를 가꾸는 젖줄기로 광양만까지 225km를 흘러간다.

호남정맥은 산경표상, 모래재 북쪽 0.6km지점의 완주 조약봉에서 남북으로 호남정맥과 금남정맥으로 나뉘는데 호남정맥이 전북지역을 지나는 동안 웅치, 만덕산, 슬티, 경각산, 오봉산, 내장산, 백암산, 추월산, 강천산, 산성산 등을 일구고 전남지역을 지나면서는 무등산, 제암산, 사자산, 일림산, 주월산, 조계산, 백운산 등을 일군다.
호남정맥은 그 이름처럼 호남땅의 16개 시군을 지나는 산줄기로 동서로 물을 가르고 문화와 풍습을 가른다. 섬진강을 중심으로 왼쪽은 판소리와 농악 등에서 특이한 문화권을 형성하며, 평야가 많은 만경강, 동진강, 영산강, 탐진강 등은 평야지대의 문화권을형성하고 있다. 남북으로 향하는 산줄기(조약봉-사자산)는
호남좌도의 서편제, 호남좌도농악과, 호남우도쪽으로는 동편제 및 호남우도농악을 가르는 경계가 된다.

<상세안내>

 

 

 

탄치재/매치재/2번국도(광양 진상면-진월면)/표지석

269봉/헬기장

안부 사거리/좌 대리 경모정(2km) 우 신촌마을

국사봉(445.2m)/산불감시시설/석축/일등삼각점(하동15)/삼봉산갈림길/매봉(0.6km)전망대 갈림길

송전탑(#37)

상도재/시멘트 임도/유실수 농장

정박산(167.2m)/원형 소삼각점

배암재/2번국도/정면의 묘지지대

잼비산(117m)

삼정치/시멘트 임도 삼거리/임도따라 감

곰인형 밭

헬기장

중산마을집 앞마당

남해고속도로 굴다리 (마루금에서 벗어난 산행)

중산 마을에 내려와 바라보니 헬기장 전에서 우측으로 틀어 절개지타고 내려와야할듯

천왕산(228m)/바위정상

2번국도/철망팬스 틈사이로 통과/중앙분리대 횡단조심

망덕산(196m)/호남정맥 마지막산/묘소/삼각점(남해301)/뒤쪽에 정상석

망덕산 정자,전망바위

외망포구/호남정맥 종점/9정맥중 8정맥 완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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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을 기점으로 1대간1정간13정맥의 마루금을 이어가지만 북한땅에 절반(진부령~백두산)인 북두대간과 1정간4정맥이 있고, 남한땅에는 절반(지리산~진부령)인 북대두간, 9정맥을 있어 맥잇기을 시작한지도 많이 세월이 지나가고 있다.

 

백두대간 진행을 위해 한북정맥 마루금을 먼저 시작하여 한남정맥, 낙동정맥, 금남호남, 호남정맥을 종주하고는 나머지 4정맥(금남, 금북,한남금북,낙남정맥)이 남아 있는 상태다.

 

금남호남 및 호남정맥은 2011년 5월21(토)  한달(1,3주)에 두번를 진행하면서 1년9개월만인 2013년 2월 2일(토) 백두대간상 영취산(무령고개)~망덕(외망)포구에 도착한다.

 

산경표상 호남정맥의 종착점인 백운산 상봉에 도착했지만 산자분수령(山自分水嶺)의 취지에 맞춰 섬진강 물길을 가르는 호남기맥구간인 백운산에서 망덕산을 거쳐 섬진강 하구 광양시 외망(망덕)포구까지 진행하여 드디어 목적에 안착한다.

 

옛날사람들이 이 땅의 산맥개념을 1대간 1정간 13정맥으로 나누고 山自分水嶺의 원칙으로 산길과 물길을 연결하였음은 어느 왜인 학자가 세운 지질학적 개념도 아니요, 지형적 구별을 짓기 위함도 아니요, 행정적 편의를 도모하기 위함도 아닐것이다.

 

백두대간을 동맥으로 삼고, 1정간, 13정맥으로 정맥을 삼으며, 굵직한 기맥으로 작은 핏줄을 이루는 한편, 무수한 기맥, 지맥, 분맥으로 모세혈관을 이루어 이 땅의 모든 산줄기가 살아있는 생명체의 순환계처럼 끊어짐 없이 하나로 이어짐을 의미하며, 산길이 산길로 독립되는 것이 아니라 산자분수령에 의해 그 산길에서 始源한 물줄기가 산길과 연계되어 조화를 이룸으로써 비로소 그 속에 깃들어 사는 인간세의 울타리와 삶의 터전을 이루기 때문이라 할수있다.

 

호남정맥 마지막구간이라 긴장이 풀려서인지 전날 회사에서 회식이 있어 새벽까지 회포를 풀고는 집으로 귀가하여 베낭에 대충 준비물을 챙겨 놓고는 잠자리에 들어 기상벨 소리에 기상하여 베낭을 챙겨 상일동 집결지에 도착하니 먼저오신 대원들이 반겨주시고 잠시후 버스가 도착한다. 버스에 올라 대원들께 인사를 나누고는 상일동을 출발하여 중부고속도로, 경부-호남고속도로상 여산휴게소에서 아침식사를 마치고는 호남고속도로 전주분기점에서 전주~순천간 고속도로를 이용하여 순천에서 남해고속도로를 거쳐 광양시 옥곡I.C에서 나와 2번 지방도를  이용하여 탄치재에 도착한다.

 

남쪽지방인 광양시 진월면 탄치재 주변 산에는 기온이 영상의 날씨라 눈들이 보이지 않고 봄바람이 불어온다. 탄치재에서 우측방향에 있는 표지석과 조금 떨어져 있는 국가기준수준범(삼각점)을 찾아 사진에 남기고는 우측방향 능선으로 오늘 산행이 시작된다.

 

탄치재(매치재, 해발168m) 표지석

위치 : 광양시 진월면 월길리 1455-1

탄치재는 전남 광양에서 경남 하동으로 넘어가는 고개이며, 2번 지방도가 지나고 있었다.

탄치재 아래에는 터널이 지나고 있고  그 터널은 순천에서 밀양 삼랑진으로 연결하는 慶全線 철길이 지나는 곳이다.

탄치재에는 ‘탄치재’ 표지석이 도로 우측편 삼거리에 설치되어 있었고, 표지석 뒤편 화단안에는 수준점이 설치되어 있었다. 탄치재는 옛 지형도에는 ‘매치재’라 표기되어 있는데 최근 지형도에는 ‘탄치재’로 병행하여 사용하고 있다.

석탄 ‘매(煤)’ 와 숯 ‘탄(炭)’ 자를 사용하는데 이곳의 지명은 숯과 탄이 많이 매장되어 있다는 이유로 명명 되었다고 한다. 옛날 이곳에서 숯가마를 운영했나 싶지만 숯을 구워서가 아니라 숯고개란 말 자체가 크고 높은 고개를 의미한다고 합니다.

탄치재 표지석은 오래전에 설치한 듯 한데 해발 100m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고도계와 수준점에는  표고 해발고도는 168m를 가르키고 있었다.

 

진상면 유래

진상면의 유래는 진상면 청암리에 있었던'숭어쏘 나루터'를 중심으로 나루터 위쪽에 위치한 고을이 다하여'津上面'이라 하였으며, 이와 대칭적으로 나루터 아랫쪽에 위치한 고을을'津下面'이라 하였는데 현재의 진월면 차사리∙진정리에서부터 신아리에 이르는 지역 고을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그 당시 숭어쏘 나루터 위치는 진상면 청암리 목과마을에서 면소재지쪽 도로를 따라 150m지점 있었으며 그곳 부근지역을 '효자문터'라고도 부르는데 이곳에서 태어난 효자 양복수(梁福洙)란 분이 동짓달 추운 날씨에 숭어쏘에서 숭어를 잡아 부친의묘상(墓床)에 올렸다는 이야기가 전해오는데 그 분의 효행을 기르기 위하여 조정에서 정려를 처음 세웠던 지역이기도 하다.

 

탄치재 삼거리의 모습

탄치재삼거리에서 우측방향에 탄치재표지석과 국가 기준 수준점이 있고, 우측능선으로  마지막구간의 들머리지점이 보이고,  직진방향은 하동과 진주로 이어가는 2번 지방도이며 좌측 낙석방지철망 끝나는 부분에서 능선으로 오르면 불암산으로 이어지는 지난구간의 들머리지점이다.

 

탄치재 삼거리에서 바라본 2번 지방도 하동방면의 모습과 철조망 끝부분 좌측능선으로 진행하면 불암산으로 이어진다.

 

탄치재 삼각점

 

수준점

탄치재 삼거리 우측 공원에 설치되어 잇었다.

탄치재 표지석은 오래전에 설치한 듯 한데 해발 100m라고 표기되어 있는데 고도계와 수준점에는  표고 해발고도는 168m를 가르키고 있었다.

 

 국가 기준 수준점

수준점(BM; Bench March)이란 수준원점으로부터 표고를 정밀측정하여 영구적인 말뚝을 설치하고, 차후 부근의 수준측량에 이용할 수 있도록 그 표고를 국토지리정보원의 수준측량 성과표에 등록해 놓은 기준점을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의 수준점은 인천만의 평균해수면을 기준으로 하고 있으며, 이를 바탕으로 인천시 남구 용현동에 수준원점을 측설하고 그 표고를 정밀하게 결정해 놓았는데, 이 수준원점의 표고값은 26.6871m이다.

아울러 주로 국도 주변에 수준점을 설치하여 놓았는데 1등 수준점은 약 4㎞, 2등 수준점은 약 2㎞간격 설치되어 있다.

 

호남정맥 마지막구간(탄치재~외망포구)인 들머리지점

탄치재 삼거리에서 우측능선으로 오르기 시작부터 가파른 오르막이 이어지고 어제 내린비로 인하여 등로가 매우 미끄러운 상태다. 안부에 올라 내려서면 임도가 나오고 인도 중간부분에서 좌측 능선으로 한차례 밀어 올리면  269봉인 헬기장에 도착한다. 헬기장 주변은 조망이 없고 잔나무들만 무성하다.  직진으로 내려섰다가 다시 오르고를 반복하면서 국사봉에 도착한다. 

 

헬기장으로 올라온 만큼 아래로 내려서니 고개안부가 나오고 그곳 이정판에 국사봉까지는 2.8km라 적혀있었다. 탄치재에서 출발할때도 국사봉까지 2.8km라고 적힌 이정판을 보았는데.... 안타까운 마음이...

이정판을 설치해 주신 마음은 고마우나 정맥을 잇는 군들께 혼돈하지 않게 세섬히 잘 설치해 주시길 지자체 관계자께 부탁의 말씀 전하며  다시 위로 가파르게 밀어 올리는데 우측방향으로 백운산 지나온 마루금이 보이고 아래로 수어저수지가 조망된다.

 

286봉을 넘고 잠시 내렸다가 한차례 더 밀어 올리면 국사봉 정상에 도착한다. 초반부터 땀이 많이 흘려 내리고 국사봉정상에서 시원한 바람을 맞으면서 휴식을 취하고는 다시 이어간다.

 

탄치재에 설치되어 있는 이정표 : 국사봉가는길 2.8km

탄치재삼거리에서 이정표가 있는 우측능선으로 올라 진행하면 된다.

 

임도통과

탄치재에서 오르면 소각장으로 연결되는 임도가 나오고 임도로 진행하며, 우측편으로 묘지가 나오고 정면으로 소각장을 바라보면 좌측방향능선으로 오른다.

 

소각장 직전에서 임도길 버리고좌측방향 능선으로 진행.

 

헬지장(249m) 통과

소각장 임도에서 좌측능선으로 급경사지를 한바탕 밀어올리면 249봉인 헬기장에 도착한다.

헬기장 주변에는 억새가 무성하고 나무로 가로막혀 잇어 조망이 없었고 직진으로 통과하여 내려서면 안부사거리에 도착한다.

 

 

안부 사거리 통과

249봉(헬기장)에서 내려서면 국사봉 사이에 있는 안부가 나오고 좌,우방향 버리고 직진으로 진행한다.

서쪽(우측방향)방향은 산촌마을로 가는 고개길이며 동쪽(좌측방향)방향은 대리마을로 내려서는 고개길이다.

 

안부 사거리 이정표 : 국사봉2.8km, 대리경모정2.0km

 

억불봉 조망

안부사거리에서 직진으로 오르면 조망이 확터인 곳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비평리, 수어저수지 그리고 저멀리 백운산 주능선과 억불봉이 조망된다.

 

철탑통과

안부사거리 통과하여 올랐다가 내려서면 45번 철탑과 286봉 오름길이 나오고 등로 좌측편으로 철탑이 나오고 빡세게 오르면 좌측편으로 지나온 마루금인 백운산주능선이 한눈에 들어온다.

 

등로길에 세워진 안내문구판

절개지 능선에 약초와 고사리 재배지가 있어 입산금지 및 CCTV 작동중이란 안내판이 있었다.

 

 

진월면 비평리 하탄치와 상탄치 마을과 억불봉,백운산 조망

좌측방향으로 수어저수지가 보이고 저멀리 지나온 마루금이 한눈에 들어온다

수어저수지를 땡겨본 모습

286봉 통과

철탑에서 급경사지를 오르면 286봉이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하여 또 다시 밀어 올리면 암릉지가 나오고

조망이 좋은 암릉 전망대에서 조망을 하고는 국사봉으로 오른다.

오늘 산행에서 제일 높은 봉우리이다.

 

완만한 등로길의 모습

 

암릉지대 통과

 

암릉 조망지의 모습

전망대에서 바라본 섬진강과 하동읍의 전경이 조망되며 저 멀리 지리산 주능선도 조망된다.

 

호남정맥의 주요산

마루금에 있는 주요 산들은 조약봉, 만덕산, 갈미봉, 경각산, 오봉산, 묵방산, 성옥산, 왕자산, 고당산,
내장산, 백암산, 대각산, 도장봉, 추월산, 치재산, 용추봉, 강천산, 산성산, 덕진봉, 봉황산,
서암산, 괘일산, 무이산, 연산, 만덕산, 수양산, 국수봉, 북산, 무등산, 안양산, 오산, 천왕산,
구봉산, 천운산, 태악산, 노인봉, 성재봉, 촛대봉, 두봉산, 계당산, 봉화산, 고비산, 군치산,
숫개봉, 봉미산, 국사봉, 깃대봉, 삼계봉, 가지산, 용두산, 제암산, 사자산, 일림산, 활성산, 봉화산,
방장산, 주월산, 존제산, 백이산, 고동산, 조계산, 오성산, 유치산, 문유산, 바랑산, 농암산, 갓꼬리봉,
형제봉, 도솔봉, 백운산, 매봉, 갈미봉, 쫓비산, 불암산, 국사봉, 천왕산, 망덕산 등이며
그 중 최고봉은 광양의 백운산(1,218m)이다.

 

암릉 조망지에서 하동읍과  좌측 저멀리 지리산 방면 조망

암릉지에서 바라본 지리산 주능선의 모습들 날씨가 맑아 한눈에 조망된다.

 

암릉지에서 지리산배경으로 인증샷

 

▶호남정맥이란? 

백두대간상에 있는 영취산에서 분기하여 서쪽으로 뻗어 조약봉에서 끝나는 산줄기가 금남호남정맥이며,
조약봉에서 다시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이 분기된다. 호남정맥은 3정맥 분기점인 조약봉에서 시작하여
호남 내륙을 관통하여 백운산과 망덕산을 거쳐 광양만 외망포구에서 그 맥을 다하는
약 430km의 산줄기를 말하며 9정맥중에서 가장 긴 정맥이다.
수계상 섬진강을 기준하여 서남쪽에 위치하고 있다.
호남정맥상에 있는 주요산은 내장산, 추월산, 강천산, 무등산, 제암산, 조계산, 백운산 등
명산도 다수 포함되어 있으며 약 70여개의 산을 넘어야 한다.

국사봉정상부의 모습

국사봉정상에는 정상석은 없고 이정표와 삼각점(하동15 1991재설)이 설치되어 있고 그 옆으로 통신중계탑이 있으며 봉우리 주변은 돌로 쌓은 성터를 연상케 하는 돌들이 많았다.

 

국사봉 삼각점(하동 15)

 

국사봉(國師峰, 해발445.2m)

국사봉(해발445.2m) 이정표 : 매봉(전망대)0.6km, 매치재2.8km,차동3.7km

국사봉은 호남정맥 마지막구간에서 제일 높은 최고봉이며 조망이 일품이다.

마루금을 잇다보면 백운산이나 깃대봉이란 봉우리 명칭들이 수없이 많다. 國師가 난 곳이라 해서 국사봉이라 붙이기도 하지만 조선시대에 선비들의 자기과시욕에 의해 국사봉이라 붙여진 곳도 많다. 또다른 하나는 나라의 제사를 지내는 곳도 국사봉이라 부른다. 이곳 국사봉은 정상에 널려진 돌무더기로 보아 아마 제단인 모양이다

 

국사봉에서 바라본 외망포구방면의 마루금의 모습

 

국사봉에서 인증샷

국사봉 동쪽의 무명봉을 이곳에서 "매봉"이라 안내를 하고 있으며, 탄치재는 "매치재"라 하고, 차동은 상도재 남쪽 차사리에 "차동"이란 마을이 있다.  백운산 방면의 조망이 좋고 광양만의 공단지대가 육안에 들어온다. 상도재까지 긴 내림길이다.

 

국사봉에서 바라본 억불봉과 백운산 그리고 호남정맥 마루금 조망

 

국사봉 내림길에서 바라본 광양(光陽)

조선시대 영조때 암행어사 박문수는 광양을 두고 “朝鮮之 全羅道요, 全羅道之光陽이라” 하며 광양을 예찬 하였다고 한다. 卽 조선에서는 전라도가, 전라도에서는 광양이 가장 살기 좋다는 뜻이다. 그는 이곳 광양에 머물때 이곳을 評하기를 뒷문을 열고보니 산이 있어 재목이 많을터이고, 앞문을 열고보니 들판이 펼쳐 있어 곡식이 넉넉할 터이고, 멀리는 바다가 있어, 해물과 소금이 많을 터라고 하면서 이런 말을 했다는 것이다.

 

광양시는 1개읍과 6개읍을 보유한 15만여명의 인구가 살고 있으며 전남에서 재정자립도 1위의 도시라고 한다. 백운산에서 돼지의 정기를 받아 부자도시가 되었다고 하지만 이 지역 사람들의 근면과 성실함 때문이 아닐까?

 

옛날에 한 광양사람이 순천에서 광양까지 벼룩 몇만마리를 풀섶으로만 몰고 삼십리를 왔는데 광양에 도착하여 벼룩을 세어보니 벼룩이 한마리도 빠지지 않고 다 몰고 왔더라는 얘기가 있다. 광양사람들이 얼마나 치밀하고 빈틈없음을 말해주는 일화이다.

 

힘든 세상사 야무짐으로 이야기하자면 광양사람을 따를 수 없다고 한다. 광양사람들은 고추가루 서말을 먹고도 속 10리를 간다고 했고 흔히 이웃지방인 순천사람과 견주어 “광양의 죽은 송장하나가 순천 산 사람

셋과 맞먹는다”는 말이나 “광양 여자가 순천남자에게 시집가면 잘 살지만 순천여자가 광양남자에게 시집을 오면 게을러서 못산다”는 말은 광양사람 특히 광양 여자들이 생활력이 유난히 강함을 알 수 있다.

이런 이유로 전라남도 총각사이에는 “광양 큰 애기한테는 두말않고 장가들겠다”고 하였단다. 이곳 광양출신들이 한때는 우리나라 중앙기관부서의 사무관급 공무원을 가장 많이 배출한 곳이기도 하였단다.

 

철탑통과

국사봉에서 상도재로 내려서는 등로 좌측편으로 철탑이 나오고 조금더 내려서면 대밭이 나오고 임도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상도재에 도착한다.

 

대밭을 통과하며 임도가 나오고 임도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상도재에 도착한다.

 

임도통과

국사봉에서 내려서면 좌측방향에 송전철탑이 나오고 철탑을 지나 내려서면 대밭이 나온다. 대밭에서 세멘트포장 임도길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우측편에 38번 송전철탑이 보인다.

 

상도재에서 뒤돌아본 모습

우측능선으로 오르면 국사봉이 나온다.

 

 

상도재 통과

위치 : 광양시 진월면 치사리와 진상면 청암리를 잇는 조그만 고개이다.

상도재는 삼거리로 되어 있고 국사봉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었다  상도재 삼거리에서 좌,우방향 버리고 직진으로 진행하면  정박산, 배암재, 잼비산, 또 야산과 마을길을 지나 남해고속도로 굴다리 앞인 삼정치에 도착한다.

 

 

상도재 이정표 : 국사봉 2.9km

 

상도재 통과후 정박산 오르면서 뒤돌아본 모습

정면으로 보이는 송전철탑방향으로 오르면 국사봉에 오를수 있다.

 

상도재에서 정박산으로 오르는 마루금의 모습

 

정박산 정상 산소에 안에 있는 국립건설 연구소 삼각점

 

정박산(해발167.2m)

광양시 진상면 청암리와 진월면 치사리의 경계능선에 있으며 일개 봉우리인데도 산 이름이 붙어 있었다.

정상에는 묘지가 하나있고 묘지안에  국립건설 연구소 삼각점이 있다.

정박산이란 이 아래 동네에 혹 정씨와 박씨들이 많이 살아서 붙인 이름인지?. 호남 첫구간에 슬치 오기전에 있던 박이뫼산도 아래 동네에 박씨와 이씨가 많이 살아서 박이뫼산이라고 불렀는데 혹 그와 유사하지 않을까  생각하지만 검색을 해도 자료가 전혀없다.

 

일산에 있는 정발산(鼎鉢山)은 마두1동(馬頭1洞), 마두3동(馬頭3洞) 그리고 장항2동(獐項2洞)의 경계에 있는 해발 88m의 산인데, 산이름의 유래는 산밑에 사는 마두 1리에는 정(丁)씨가, 그리고 마두2리에는 박(朴)씨가 각기 씨족촌(氏族村)을 이루고 살았기 때문에 산이름을 정박산(丁朴山)이라고 부르다가 정발산이 되었다는 것과  같은 이유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정박산(해발167.2m)

정박산 정상부에는 중앙부에 묘지가 있었고, 그 옆으로 소삼각점이 설치되어 있었다.

유심히 보지 못하면 놓칠수 있는지점이다. 주변 소나무숲으로 조망은 할 수 없는 낮은 곳으로 "정박산"이란 표지기가 없다면 아무 생각없이 지나칠 수 있는 봉우리였다 좌측편으로 또 다른 이정표가 있는데 삼각점봉(준,희님)이라 적혀 있었다.

 

준,희님의 시그널 발견 삼각점봉(167.2m)

상도재에서 오르면 발견하기 어려운 위치에 붙혀있었다

고마운 마음 마음속으로 전하며 마루금 이어간다.

 

정박산(삼각점봉)을 지나 내려서면 무명묘지가 좌측편으로 나오고 계속하여 진행하면 밤나무와 매실나무가 많은 과수원길이 나온다 과수원에서 늦은 점심을 간단하게 하고는 외망포구로 발걸음을 옴겨본다. 저 멀리 광양 가야산이 조망된다.

 

매실밭 사이에서 10분간 휴식겸 간식을 하고는 천왕산으로 출발...

전면으로 보이는 높은 봉우리가 좌측편 망덕산과 우측편 천왕산이다.

저 봉우리만 지나면 호남정맥이 종료된다.

 

과수원에서 뒤돌아본 모습

 

뱀재(배암재, 해발140m )

뱀재는  광양시 진상면과 진원면의 경계로 2번 국도가 지나는 2차선의 포장국도이며 지도상에는 배암재로 기록되어 있다.

 

배암재에서 바라본 광양시 진월면 마룡리방면의 모습

 

배암재에서 바라본 광양시 진상면 진상방면의 모습

정박산에서 내려서면 과수원 농장이 나오고 잔봉을 넘어 내려서면 임도가 나오고 임도에서 약간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묘지가 나오고 그 아래로 떨어지면 배암재에 도착한다

배암재 2번 국도에서 우측방향 낙석방지 철조망 끝나는 지점으로 오르면 가족공동 묘지가 나오고 임도길 따라 계속 진행하며, 임도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잼비산정상에 도착한다.

 

 

배암재 2번국도를 통과하여 뒤돌아본 모습

임도에서 좌측능선으로 오르면 여러 묘지가 나오고 다시 임도를 만나며 직진으로 진행하면 정박산에 도착한다.

 

뱀재는 2번 지방도로가 지나고 있으며, 우측방향(북쪽) 탄치재, 좌측방향(남쪽) 태인도로 연결된다.

"하동13km"라는 도로표지판 맞은편에 설치되어 있고 반대편 경사면을 올라 잼비산으로 이어간다.

도로가 한산하여 차량이 없고 2번국도를 탄치재에 이어 두번째 만나는데 조금후 천왕산에서 내려서면 망덕산 오르기전에 다시 만난다.

 

뱀재(배암재)로 내려와 우측 낙석방지 철조망 옆으로 오른다

 

배암재에서 올라 뒤돌아본 모습

 

임도 통과

배암재에서 경사지를 오르지 않고 시멘트 임도길로 진행하여도 무방하다.

 

임도 삼거리 통과

배암재에서 임도길로 진행하면 삼거리가 나오고 이곳에서 우측방향 임도길 버리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잼비산으로 이어진다.

 

잼비산

뱀재에서 약8분정도 오르니 산봉우리도 아니고 그냥 능선길 같은곳에 잼비산이라고 표지판을 붙혀있었다. 아무리봐도 산 이름이 붙을 자리가 아닌것 같은데 표지판이 없었다면 그냥 지나칠수 밖에 없는 지점이다

 

삼정치 통과

잼비산에서 매실밭을 지나고 묘지 몇기를 지나 내려서면 삼정치에 도착한다. 삼정치는 시멘트 포장도로이며 삼거리로 이루어져 있었다.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임도길로 올라가니 다시 등로가 나오고  밤나무와 단감나무 단지가 나타난다. 그리고 천왕산과 망덕산, 섬진강과 수어천이 조망되는 조망지가 나온다. 

 

삼정치에서 뒤돌아본 모습

삼정치에서 잼비산 오르는 등로길

 

삼정치 삼거리에서 좌측방향으로 오르는 임도길의 모습

 

과수원 통과

삼정치에서 임도길로 오르다가 다시 등로로 이어지고 과수원을 통과하면 천왕산과 망덕산을 사이에 두고 섬진강과 수어천이 조망된다. 이곳에서 중산재까지는 평탄한 등로길이며 중산재에서 천왕산 정상까지 약200m의 고도가 있어 빡세게 올라야 한다.  

 

천왕산과 수어천 조망

광양시 진월면 앞의 수어천에서 흘러가는 광양만은 썰물로 인해 뻘이 드러나 있다.

진월면(津月面)의 유래는 일제시대인 1914. 4. 1 행정구역 개편으로 당시 기존에 있던 행정구역 지명인 진하면(津下面)과 월포면(月浦面)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각각 첫글자를 따서 진월면(津月面)이라 하였다. 이곳은 일제시대 여러 부락을 통합하여 자기들 편한대로 부른 지명이 많은 곳이다.

 

남해고속도로와 천왕산 그리고 망덕산 조망

호남정맥 끝이 보인다

1년9개월 동안 이어온 호남정맥 마루금 앞으로 두개(천왕산,망덕산)의 산만 넘고 내려서면 호남정맥 종착점인 외망(망덕)포구에 도착한다.

 

임도길 통과

삼정치에서 올라 밤나무밭과 매실나무밭을 지나면 임도가 나온다

임도길로 내려서면 임도삼거리가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진정리마을로 내려가는 할미당고개로 예상된다 마루금은 이곳에서 직진으로 진행하여 평탄한 등로길로 이어간다.

 

마루금 루트

임도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여 묘지와 밭 사이길로 진행하면 등로가 나온다.

 

 

광양시 진월리 진정리일대와 지나온 마루금이 조망된다

 

중상재 통과

평탄한 등로길로 진행하다가 대밭에서 직진하여 중산마을로 내려 남해고속도로 지하통로로 진행하여도 무방하지만 대밭에서 급우회전하여 과수원밭을 통과하여 내려서면 도로 절개지 부분이 나오고 정면으로 남해고속도로와 천왕산 그리고 망덕산이 조망된다.

 

중산재(해발15m)

절개지에서 내려서면 중산재인 남해고속도로 지하통로에 도착하며 좌측편에 중산마을 이정석이 설치되어 있었고 우측 지하통로를 지나 처놩산으로 오른다.

 

중산재에서 뒤돌아본 마루금의 모습

전붓대에서 우측 절개지를 올라 과수원밭과 대밭을 통과하여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임도길을 만난다.

국사봉에서 중산재까지의 루트

우측 중산마을로 내려서지 않고 화살표 방향으로 진행하여 중산재로 내려서야 하며 중산마을로 내려서도 무방하다. 천왕산 오름길에서 되돌아 본 중산재와 중산마을... 

호남정맥 마루금이 국사봉에서 중산재까지 반원을 그리며 진행한다.

 

중산재 지하통로 통과

남해고속도로 아래에 있는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우측방향으로 진행한다.

 

지하통로 앞에서 본 중산마을 입구의 모습

 

지하통로 통과후 우측방향 전붓대가 있는 대각선 절개지를 올라 천왕산으로 오른다.

 

지하통로 통과후 루트

중산재에서 남해고속도로 지하통로를 지나 왼쪽방향 맞은편 절개지로 올라서면 정면으로 (주)대신E&S/E&C 건물이 나오고  좌측방향 절개지를 오르면 산능선이를 계단식으로 개간하여 과수원이 나오는데천왕산으로 오르는 등로길이 무척이나 힘들었다.

천왕산정상부에 오르면 바닷가가 가까이 잇어 시원한 찬바람이  불고 천왕산정상부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일품이다. 천왕산의 이름은 거창하지만 고도가 고작 228m에 불과한데 고도 0에서 출발하니 높이에 비해 고도감은 상당한 산이다. 과수원에서 한차례 밀어 올리면 비로소 정상에 올라설 수 있다.

막상 천왕산 정상에 올라보니 높이에 비해 정상에서의 조망은 아주 일품이며 지나온 마루금이 한눈에 펼쳐진다, 천왕산 아래로 광양시 진월면 일대의 인간세와 건너편에 우뚝솟아 있는 호남정맥 마지막 산인 망덕산이 기다리고 있다. 그옆으로 저멀리 제철소와 광양만이 조망되고, 발걸음을 재축하여 망덕포구로 이어간다.

 

(주)대신E&S/E&C 건물의 모습

남해고속도로 지하통로를 통과하여 맞은편 절개지를 오르면 정면에 공장건물이 있다.

 

(주)대신E&S/E&C 건물에서 절개지를 오르면서 뒤돌아본 마루금의 모습

아래로 지하통로와 남해고속도로가 보이고 ,중산마을과 지나온 마루금이 조망된다.

 

중산마을 조망

 

남해고속도로와 수어천의 모습

 

하동 금오산 모습 조망

 

과수원 임도길 통과

절개지를 올라 내려서면 과수원내 임도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좌측방향 계단으로 오르면 천왕산에 도착한다.

 

임도길 통과

이지점에서 좌측방향 계단으로 오른다.

 

천왕산 정상부에서 바라본 지나온 마루금이 파노라마 처럼 한눈에 펼쳐진다

 

천왕산 정상 직전에 묘지의 모습

 

수어천이 바다와 만나는 신금리 일대.

진월면 앞의 수어천에서 흘러가는  광양만은  썰물로 인해 뻘이 드러나 있다.진월면(津月面)의 유래는 일제시대인 1914. 4. 1 행정구역 개편으로 당시 기존에 있던 행정구역 지명인 진하면(津下面)과 월포면(月浦面)을 통합하는 과정에서 각각 첫글자를 따서 진월면(津月面)이라 하였다. 이곳은 일제시대에 여러 부락을 통합하여 자기들 편한대로 부른 지명이 많은 곳이다.

 

 광양만(光陽灣)의 광양제철과 우측 이순신대교

 

광양만 하면 聖雄 이순신 장군을 빼놓을 수가 없는 곳이다. 임진왜란 침입이후 왜군이 2번째 침입한 정유재란이 끝나갈 무렵인1597년 11월부터 1598년 11월까지 1년동안 이 순신 장군은 명나라 수군과 함께 광양 앞바다에서 해상봉쇄작전을 펴서 고니시 유키나가(小西行長) 이끌던 왜군 1만 3천명을 꼼짝달삭 못하게 포위하는데 성공했다.

소서행장이 지휘하는 왜군은 순천시 해룡면 신성포에 주둔하면서 본국인 일본으로 돌아갈 궁리를 하는데 이 순신이 광양만에서 퇴로를 막아버리자 꼼짝을 못하는 소서행장은 명나라 수군 장수에게 뇌물을 주고 노량 앞바다로 달아나는 걸 알아챈 이 순신은 경남 남해군 노량 앞바다를 봉쇄하여 커다란 전투가 벌어진다.  이곳에서 일어난 전투가 노량해전인데 이것이 이 순신의 마지막 전투지이자, 전사지가 된 곳이다.

이곳 광양만은 그때 1년동안 크고 작은 전투가 수없이 벌어졌는데 지금도 광양 앞바다에는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군량미를 쌓아 두었던 창고터가 곳곳에 있으며 소섬, 염소섬, 나팔섬, 북골, 징골, 통사골 등 전장과 그때 당시 전쟁과 관련된 지명들이 아직도 많이 남아있다. 

 

천왕산 정상에서 바라본 광양시

이곳 광양 봉강면 출신인 신재 최산두 선생은 조선시대에 조광조와 도덕정치,개혁정치를 이끈 핵심적인 인물이었고, 매천 황현선생은 봉강면 서석촌 출신으로 한일합방 때 ‘나라가 망하는데 책임지는 선비하나 없다’ 고 하면서1909년 그는 서울 남산에 올라 한양 장안을 물끄러미 내려다보았다.‘남산에 올라 한번 굽어 본 서울 땅/보는 것마다 더욱 처량하고 혼미하여라…/예전에 망한 나라가 다 이 모양이었던가/망한 것이 분명하니 슬플 수도 없구나’ 하면서 스스로 목숨을 끊어 선비의 지조지키신 분이다. 그 밖에 이곳에는 수많은 애국지사들이 많이 난 곳이기도 하다.

 

백운산 억불봉 조망

 

천왕봉에서 바라본 진월면 마룡리 마을

이곳에는 물맛이 좋기로 유명한 공동샘이 있으며 천왕산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 이 마을 사람들은 천왕산을 문필봉으로 부르며 자부심이 대단하다.

왜 문필봉이라고 부르냐 하면 이 마을에서 인재가 많이 나왔다고 문필봉이라 부른단다. 함안 조씨, 창녕조씨, 진주 강씨의 집성촌이기도 하다.3,4,5 대 국회의원과 1960년대 초에 법무부장관과 내무부 장관을 지낸 조 재천씨도 이 마을 출신이라고 한다.

 

 

천왕산(해발225.6m) 정상에서

천왕산 정상은 암릉으로 되어 있고, 정상석은 없고 표지판이 나무에 붙혀있었다.정상부에 올라서니 고도가 225.6m 밖에 되지 않는 산을 천왕산이라 부르는 이류를 알것만 같았다

천왕산 아래로 남해고속도로 진월I.C가 보이고, 저너머로 섬진강과 섬진강 휴게소도 보인다. 그리고 저멀리 보이는 높은 산이 하동 성제봉이다.

 

호남지방에서 가장 큰 젓줄인 섬진강 남북한을 합쳐서 9번째로 긴 강이지만 남한에서는 4번째로 긴 강인

섬진강. 흔히들 MB정권에서 4대강 사업을 하면서. 낙동강, 한강, 금강, 영산강을 개발하면서 영산강이 섬진강보다 긴 줄을 알지만 실제로 섬진강(225km)이 영산강(136km)보다 훨씬 긴 4대강이다.

다만 영산강은 남도의 대도시인 광주, 나주, 목포를 거치는 바람에 4대강 사업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이다.

남도지방의 가장 큰 젓줄이기도 한 섬진강(蟾津江)은 호남 동부지방을 적시며 도도히 흐르는 물길로 수많은 哀歡을 지니고 있다.

섬진강은 특히 고운 모래가 유명해서 다사강(多沙江), 사천(沙川)으로 불리기도 했고 고려 우왕 11년(1385년)에 왜구가 강 하류로 침입했을 때 수십만리의 뚜꺼비떼가 울부짖어 왜구를 퇴각시켰다고 해서 ‘뚜꺼비 蟾’字를 붙여 섬진강이라고 부르기 시작한 이 강은 백두대간과 호남정맥의 사이를 유유히 흐르며 전북 진안의 팔공산 기슭인 데미샘에서 시작하여 전북의 진안, 임실, 순창, 남원을 거쳐 전남의 곡성, 구례를 적신 뒤, 광양과 경남 하동의 경계를 가르며 광양만을 지나 남해로 흘러드는 총 225km의 물길이다.

주요 지류는 추령천, 이중천, 오수천, 심초천, 경천, 옥과천, 요천, 수지천,보성강, 황전천, 서시천, 가리내, 화개천, 횡천강 등이다.

 

진안군 백운면과 마령면 등에서충적치를 발달시키고 성수면에서 구비구비 흘러 임실군 운암면에서 운암강이란 이름으로 옥정호로 흘러든다.

섬진강 댐에서 잠시 가로막혀 흐름을 멈추다가 실낱같은 물을 끌어모아 순창군 적성에서 적성강이란 이름을 얻어 다시 조금씩 강의 면모를 갖추기 시작한다.

 

순창은 단백질이 많고 때깔이 고우며 알싸한 맛을 지녀 임금님의 수라상에 진상했다는 순창 고추장이 유명하며, 순창을 지난 섬진강은 곡성에서 판소리의동편제의 고장인 남원에서 흘러오는 요천을... 전라선의 압록역 근처에서는 호남정맥의 저 깊숙한 곳을 적신 보성강을 받아들여 품을 한껏 넓히고 구례로 접어든다.

 

구례부터 섬진강은 협곡을 형성하며 전라도와 경상도 사람들이 섬진강을 넘나들며 만든 그 유명한 화개장터를 뒤로하고 박 경리 선생의 소설 “土地”로 유명한 평사리를 지나 지리산과 백운산의 계곡을 빠져나와 하동포구에 다다른다.

30~40년 전만해도 수백척의 어선들이 정박하여 밤새 흥청거렸던 광양만은 이제 우리나라 경제의 충추적인 역할을 하는 광양제철소가 그 위용을 자랑하고 섬진강 명산물로는 재첩과 은어, 참게 등이 있다.

 

 

천왕산(해발 225.6m)

천왕산정상에서 인증샷 기념사진을 남기고 멋진 조망을 담아 서울에 있는 집사람에게 전송한다. 남해바다 위에 섰있는 모습이 일품이라...멋진 조망을 감상하고는 망덕산으로 진행한다. 망덕산으로 이어지는 등로길은 우회하여 ㄱ자 형태로 194봉을 찍고는 급좌회전하여 내려서면 2번 국도에 도착한다.

 

이순신 장군이 해상봉쇄작전 편 해상전적지 광양 앞바다

광양만은 정유재란이 끝나갈 무렵인 1597년 11월부터 1598년 11월까지 1년 동안 이순신 장군이 명나라 수군과 함께 해상봉쇄작전을 펴서 고니시키 유키나가(小西行長) 이끌던 왜병 1만 3천명을 무찌른 해상 전적지이다.
당시 소서행장이 거느린 왜군은 순천시 해룡면 신성포에 머무르면서 본국인
일본으로 돌아갈 기회를 엿보고 있었는데, 이순신 장군이 광양만 해상을 봉쇄하자 꼼짝없이 갇히게 되었다. 그러나 소서행장은 명나라 장수에게 뇌물을 주고 끝내 노량으로 달아나게 되었으나 이를 미리 알아낸 이순신 장군이 경남 남해군 노량 앞 바다에서 퇴로를 막음으로써 큰 싸움이 벌어지게 되었으며, 이 노량해전에서 이순신 장군은 전사한다. 이순신 장군에 의해 해상봉쇄가 이루어졌던 1년 동안에 광양만에서는 크고 작은 싸움이 여러 차례 벌어졌는데, 광양만연안에는 임진왜란당시 군량미를 쌓아 두었던 창고 터가 곳곳에 있으며, 소섬, 염소섬, 나팔섬, 북섬 징골, 통사촌 등 전장과 관련하여 붙여진 지명들이 많다.

 

섬진강/ 김용택

가문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퍼가도 퍼가도 전라도 실핏줄 같은

개울물들이 끊기지 않고 모여 흐르며

해 저물면 저무는 강변에

쌀밥 같은 토끼풀꽃,

숯불 같은 자운영꽃 머리에 이어주며

지도에도 없는 동네 강변

식물도감에도 없는 풀에

어둠을 끌어다 죽이며

그을린 이마 훤하게

꽃등도 달아 준다

흐르다 흐르다 목메이면

영산강으로 가는 물줄기를 불러

뼈 으스러지게 그리워 얼싸안고

지리산 뭉툭한 허리를 감고 돌아가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섬진강물이 어디 몇 놈이 달려들어

퍼낸다고 마를 강물이더냐고,

지리산이 저문 강물에 얼굴을 씻고

일어서서 껄껄 웃으며

무등산을 보며 그렇지 않느냐고 물어 보면

노을 띤 무등산이 그렇다고 훤한 이마 끄덕이는

고갯짓을 바라보며

저무는 섬진강을 따라가며 보라

어디 몇몇 애비 없는 후레자식들이

퍼간다고 마를 강물인가를.

 

 

 

이순신대교 조망

전남 광양~여수 이순신대교  여수엑스포로 지난해 5월10일 임시개통 후 2013년2월7일 완전개통.호남정맥 완주를 기념해 주는느낌이다. 

전남 광양과 여수를 잇는 이순신 대교가 2월7일 개통식을 갖는다. 이순신대교는 세계에서 4번째로 긴 현수교라는 것 외에도 대림산업이 건설 70년의 노하우를 집대성해 순수 국산기술로 시공한 최초의 현수교라는 점에서 대한민국 건설의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이순신 대교는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6번째로 현수교 기술 완전 자립국이 되었음을 선언하는 의미도 갖고 있다. 이순신대교는 2007년 11월 착공해 5년 3개월 만에 개통식을 갖는다.

 

◇ 이순신 대교 명명 이유

당초 발주처인 전남도는 대림산업 측에 1400m(주탑과 주탑 사이 길이)의 현수교를 요구했지만 대림산업은 이 지역의 상징성을 감안해 충무공 탄신년(1545년)에 맞춰 길이를 늘렸다. 이순신대교라 이름 붙인 이유도 이 자리가 임진왜란때 노량해전이 벌어졌던 곳이기 때문이다.

한편, 대림산업은 국내 해상 특수 교량공사 실적에서 확고부동한 1위를 기록하고 있다. 1984년 돌산대교를 시작으로 서해대교, 광안대교 등 대한민국 교량 건설 역사의 주요 이정표를 세워왔다.

현재 이순신대교 뿐 아니라 국내에서 2번째로 긴 현수교가 될 적금대교, 세계 최초의 해협횡단 다경간 현수교인 새천년대교 등 전국 곳곳에서 현수교 4개와 사장교 6개를 시공했다.

천왕산에서  망덕산배경으로 인증샷

 

광양숯불구이는 쇠고기를 구리 석쇠에 놓아 참숯불에 구워먹는 재래식 고기구이이다. 불고기는 전국 어느 도시를 가더라도 광양불고기를 볼 수 있으나 원조는 따라갈 수 없다. “天下一味 馬老火炙” (馬老: 광양의 옛 지명)으로 의례적으로 광양에 와서 숯불구이를 먹어야만 광양을 다녀왔다는 말이 될 정도로 광양 숯불구이는 널리 알려진 광양전통음식이다.

광양숯불구이

조선시대시대 김해 김씨 성을 가진 부부가 사연 끝에 아들을 데리고 광양으로 들어와 성밖 김씨 성을 쓰며 광양읍성 밖에 거주하였고 역시 성밖 인근에 조정에서 벼슬을 하다 귀양 온 선비들이 살고 있었다고 한다.

이 선비들은 성밖에 사는 천민의 아이들을 가르치게 되었고, 김씨 부부는 그 보은의 정으로 어린 송아지나 연한 암소를 잡아 갖은 양념을 하여 참숯불을 피우고 구리 석쇠에 고기를 구워 접대를 했다.
그 선비들 중 혹간 귀양에서 풀려나 다시 관직에 복귀하여 한양에 가서도 광양에서
맛본 그 고기맛을 못 잊어 천하일미 마로화적 (마로: 광양의 옛 지명)이 라며 광양 불고기의 맛을 그리워 했다고 한다.

 

 

조망지

천왕산에서 내려섰다가 오르면 우측 암릉지의 모습

 

조망지에서 바라본 광양시 가야산의 모습

광양시 광영동 뒷쪽의 가야산(494m)과 우측 수어천변은 "광양신금일반산업단지" 조망

 

수어천과 백운산 조망

 

 

이순신대교 조망

이순신대교는 세계 6번째 현수교이며 대림산업건설 70년 노하우로 건설한  순수 국산기술로 시공된 최초의 현수교다. 대한민국이 세계에서 6번째로 현수교 기술 완전 자립국이 됐다는 의미다.

현수교의 설계에서부터 시공 및 유지보수까지 모든 분야를 자국 기술로 소화할 수 있는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미국, 중국, 일본, 영국, 덴마크 등 5개국에 불과하다.

 

연결하는 케이블 가설 작업은 현수교 건설의 핵심 공정으로 그동안 일본 장비를 임대해 사용했다. 하지만 대림산업은 100% 순수 국내 기술로 가설장비를 개발해 이순신 대교 가설공사를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이에 따라 이순신대교 프로젝트에만 약 200억 원 정도의 기술수입 대체효과를 거뒀다. 이순신대교는 고도의 기술력과 발상의 전환을 바탕으로 공사 과정에서 각종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다.

주탑은 주야 24시간 연속으로 콘크리트를 타설 할 수 있는 슬립폼(Slip Form) 공법으로 하루 2m씩 높혔으며 가로보는 육상에서 사전 제작해 유압식 기계로 끌어올려 시공하는 헤비리프팅(Heavy Lifting) 공법을 도입했다. 이를 통해 기존 최고 높이인 덴마크 그레이트 벨트교의 경우 30개월이 걸렸던 주탑 전체 공정을 11개월로 줄였다.

 

또한, 유선형의 비행기 날개 모양으로 생긴 트윈박스 거더(TWIN BOX GIRDER)를 국내 최초로 적용해 초속 120m의 태풍까지 견딜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의 내풍 안전성도 확보했다. A급 태풍(초속 45m) 3개가 한꺼번에 몰려와도 문제가 없다는 이야기다.

정 교량 위에서 화재가 발생하면 온도센서가 작동해 자동으로 소화작업이 진행되는 등 국내 최초 최첨단 유비쿼터스 시스템도 도입됐다. 교량 상판에 국내 최초로 30년 수명의 에폭시 아스팔트 포장을 적용해 내구성과 평탄성을 높였다.

 

2번국도 통과

천왕산정상에서 내려섰다가 오르면 암릉지가 나오고 암릉지를 오르면 전망이 좋은 조망지가 나온다. 조망지에서 194봉까지는 완만한 등로길이며 194봉에서 좌회전 경사지를 내려서면 등로길에 눈이 녹아 등 미끄러움 때문에 조심히 내려서면 2번국도에 도착한다.

2번국도 탄치재에서 출발할때 보고,다음으로 배암재에서두번째 만나고, 다시 이곳에서 세번째 만나게 된다. 도로를 무단횡단하여 중앙분리대 아래로 통과하여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망덕산에 도착한다.

 

2번국도 통과후 뒤돌아본 모습

2번국도는 4차선도로이며 중앙분리대가 높아 베낭을 벗고 밑으로 통과하는 것이 편하였다. 2번국도는 광양제철과 남해고속도로와 연결되어 많은 차량이 과속으로 질주하여 무단횡단시 조심하여 산우님 도움을 얻어 통과하여야 한다.

 

2번국도

전남 신안(목표)에서 출발하여 목포를 거친 강진, 보성, 벌교, 순천을 거쳐 남해고속도로 연결하여 진주, 마산을 지나 부산으로 연결하며 남쪽에서 동쪽으로 잇는 도로이다.

 

망덕산 오름길에 뒤돌아본 모습

2번국도의 4차선도로  태인대교를 걸처 "태인도"와 광양제철소 방면의 모습

 

2번국도 통과 임도 갈림길에서 우측방향 저멀리 보이는 묘지방향으로 진행한다.

 

함안조씨묘 통과

아래로 나매고속도로 진월IC와 저멀리 백운산 억불봉이 조망되고,  완만하게 진행하다가 매실밭을 통과하면 코가 땅에  닿도록 급경사지를 올라야한다.  안부에 올라서면 조망지가 나오고 조금더 밀어 올리면 호남정맥 마지막을 장식하는 해발 196m의 망덕산정상이 나온다. 

  

망덕산정상부의 모습

 

망덕산 오름길에 있는 괴암석의 모습

 

망덕산 직진에 잇는 조망지에서 바라본 천왕산의 모습

 

이순신대교 조망

이순신대교는 왕복 4차로로 총 다리길이는 2260m다. 주탑과 주탑 사이의 거리(주경간장)는 1545m로 일본의 아카시대교(1991m), 중국 샤우먼교(1650m), 덴마크의 그레이트 벨트교(1624m)에 이어 세계에서 4번째로 긴 현수교다.

 

이순신대교가 주경간장 길이를 1545m로 설계한 것은 이순신 장군의 탄신년인 1545년을 기념하기 위해서다. 또 대교 양쪽 주탑의 높이는 해발 270m이며 콘크리트 주탑으로는 세계에서 가장 높다. 현존하는 최고 높이의 현수교 콘크리트 주탑인 덴마크의 그레이트 벨트교(해발 254m)보다 16m가 높다.

여수산단과 광양제철소간 이동거리를 60㎞에서 10㎞로, 이동시간은 80분에서 10분으로 단축시켰다.

바다에서 상판까지 평균 높이는 71m이며 주탑 사이 선박운항 가능 폭은 국내 최장인 1310m로 길이 440m의 1만8000TEU급(20피트 길이 컨테이너 1만8000개 선적) 초대형 컨테이너 선박들도 안정적으로 통항할 수 있다.

 

이순신대교는 진도 7~8의 강진에도 견딜 수 있는 내진 1등급으로 설계됐다. 주탑과 주탑을 연결하는 케이블은 세계 최초로 1860MPa(메가파스칼)급의 인장강도를 지닌 직경 5.35㎜의 초고강도 강선이 사용됐다.이는 피아노줄 굵기의 강선 1가닥이 4톤의 하중을 지지할 수 있는 세계 최고 수준이다.

케이블은 강선 1만2800가닥을 촘촘하게 엮어 만들어지며 두 개의 케이블에 들어가는 강선의 길이는 7만2000㎞로 지구를 약 2바퀴 도는 거리에 해당한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순신대교 건설에 따른 생산유발은 1조8734억 원, 부가가치 3494억 원, 고용창출 효과는 2만6192명에 이르는 것으로 분석했다.

 

조망지에서 바라본 남해고속도로 진월IC와 백운산 억불봉 조망

 

망덕산(해발196m)정상

망덕산 정상부에는 표지판과삼각점 그리고 중앙부에 묘지가 있고 정상석은 없었다

이곳에서 약20m 진행하면 큰 정상석이 설치되어 있었다.

 

망덕산(望德山, 해발197.2m)

망덕산정상부 나무에는 준,희선생의 표지기가 붙혀있고 그 아래부분에 삼각점도 있었다. 

망덕산은 조정에 나가 천자를 받드는 천자봉의 조형의 명당이 있다고 하여 많은 풍수지리가와 사람들이 찾는곳이라 한다.

망덕산 자락에 있는 망덕포구는 섬진강 하구언과 남해가 맞닿아 있는 곳이며 그 옆에 망덕산을 보고 절을 하는 형상이라고 하여 이름 붙여진 배알도가 있다. 그 너머에는 거대한 광양제철소가 보인다.

 

망덕산삼각점(남해301)

 

망덕산(해발196m)정상에서 인증샷

 

망덕산 표지석<望德山 해발197.2m, 호남정맥의 시발점 또는 종착점>

또 다른 망덕산의 표지석(정상석) 망덕산 삼각점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정상석이 있었고 지도상에는 해발196m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곳의 표지석은 197.2m로 적혀있다

광양시 진월면에서 세운 표지석에는 "호남정맥의 시발점"이라 표현을 하였지만, 호남정맥 대장정 34회 산행의 끝지점이 되었다.

아무런 감정이 없다...얼마나 힘들었던 순간들이 지나갔는지...아픈몸으로 중간에 포기없이 이곳까지 왠지 가슴이 뭉글해진다.

 

호남정맥 함께한 산우님과 멋진 인증샷 남기고...

 

196봉(망덕산 부석정과 전망바위)의 모습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광양시 진원면일대와 섬진강대교 그리고우측편에 있는 금오산 조망

 

전망바위에서 바라본 망덕포구의 모습

광양시 진월면 우측 하류 부분이 외망포구, 금오산 방면의 좌측 섬진강대교. 진월면 진원마을 망덕산 부석정과 전망바위(浮石)에서 본 외망포구와 섬진강의 모습

 

섬진강하구의 모습

 

광양시 진월면일대의 모습

 

백운산 방면의 호남정맥 마루금

 

부석정의 모습

 

부석정(浮石亭) 입간판의 모습

암봉으로 되어 있는 신선대는 섬진강 조망 포인트이다.

 

부석정에서 백운산 억불봉 모습

 

부석정앞 기암

 

부석정(浮石亭)

조선시대(1770년경) 부호군을 역임하셨던 이채환옹이 주변경치에 매혹되어 정자 반구정을 세우소 송시열의 5대손인 송환기 의정부 우찬성(종1품)께서

반구정기를 지으셨는데 세월이 흘러 정사는 흔적이 없고 반구정기는 문헌으로만 전해져오고있음.........

IMF의 ....공공근로 사업을 추진.... 이터에 정자를 복원하고 망덕을 찾는 관관객이 이곳에 오르도록 탑방로를 개설하고 약수터와 운동시설을 설치하였으며

정자이름은 지역원로들이 모여 곁에 있는 흔들바위가 떠있는 모습을 하고있다 하여 부석정이라 하였다./2001년1월 진월면장 

 

부석정에서 바라본 망덕포구, 섬진구, 섬진강대교, 그리고 금오산 조망

 

섬진강 안내도

부석정,신선대를 조망하고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조망이 있는곳에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고 이곳에서 섬진강 배알도를 조망할수 있다.  

 

배알도 조망

섬진강하구 우측방향에는 광양산업단지와 광양제철소 그리고 전남 광양시 태인동 1630-1번지에 자리한 배알도는 섬진강 하구 태인도의 맨 북쪽에 자리잡고 있다.

행정구역상으로는 광양시와 경남 하동군의 경계 부근에 위치해 있으며, 배알도라는 이름은 해수욕장 건너편의 망덕산(광양시 진월면 망덕리소재)을 향해 절을 하는 형상이라고 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1940년경 배알도에 정자가 세워지고, 주민들이 이 해변에서 해수욕을 즐기게 되면서부터 망덕리해수욕장이라 불리다가 점차 백사장이 줄어듦으로써 1970년 말에 폐장되었다

 

섬진대교와 태인도

2번 국도가 지나가는 태인대교를 연결하는 섬인 이곳은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김이 생산된 곳이며 광양 김의 원산지이다.

본래 이름도 없던 한 바다말이 ‘김’이라는 이름을 얻은것은 300여년 전쯤이다.이곳 태인도에 살았던 어부 김 여익이 섬진강 하구에 떠 있는 밤나무 가지에 이름모를 바다말이 붙어 있는 것을 발견하고 그것을 뜻어내어 돗자리에서 말려 밥상에 올렸더니 꽤나 맛이 좋았다고 한다. 그래서 이것을 많이 거두어 들여 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개펄에서 조릿대를 꺽어다 꽂아 양식을 하였는데 이것이 우리나라 김 양식의 효시라고 한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그 바다말을 김 여익을 성을 따 ‘김’이라고 불렀다고 한다.

 

 

약수터 갈림길 

부석정에서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이지점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호남정맥 종착지인 망덕포구가 나온다.

 

호남정맥의 시발점 망덕산 안내판의 모습

부석정에서 내려서면서 안내판 직진에 냇물이 흘려내려 간단하게 세면을 하고는 옷을 갈아입고 호남정맥 해단식 장소로 이동한다

 

망덕포구와 섬진강대교 조망

 

망덕포구에 설치되어 있는 정자의 모습

 

호남정맥(한반도 최장맥) 시발점 안내도의 모습

이곳에서 호남정맥 마루금을 종료한다.

 

호남정맥길의 종착지(외망포구 날머리)

백두대간 영취산에서 오망포구까지 1년9개월동안 걸어서 전라도 땅 16개. 시군을 거치면서 참으로 많은걸 배우고 느꼈다. 머나먼 무라금 여정과 무거운 베낭을 내려좋고 벅찬 감동과 희열을 느끼며 함께한 호남정맥 대원들의  훈훈한 情에 감사드리며 송백 산악회의 무궁한 발전을기원한다. 얼마전에 낙동정맥을 완주하고 또다시 호남정맥 대장정을 마무리 하니 가슴이 포근해진다 앞으로 4정맥(금남,금북,낙남,한남금북)을 완주하면 1대간9정맥 졸업을 하는데 언제 졸업을 할지...이젠는 건강도 생각하며 쉬엄쉬엄 마루금 이어갈까 한다  함께하신 대원들 모두와 송백 집행부 관계자 여러분께 고마운 말씀 지면으로 전하며 山友님들 늘 건안하시고 안산/즐산하시길...

 

 외망포구의 모습

망덕산 바깥에 있는 마을이라 하여 외망이라 불렀고 마을 앞에 있는 포구를 합쳐서 외망포구라고 부른다.

 

백두대간 한반도 최장맥 산끝 망덕산

 

외망포구의 상류방면

 

외망포구의 하류방면

 

망덕횟집

위치: 전남 광양시 진월리 망덕리 23-3

망덕횟집에서 호남정맥 해단식을 하며 서로의 노고를 치하하며 한잔의 술잔을 부디쳐 본다.

 

외망포구(망덕포구) 호남정맥 완주(종료) 인증샷

 

호남정맥완주

호남정맥 및 금남호남정맥 종주

망덕횟집 해단식 내부의 모습

호남정맥 및 금남호남정맥 해단식장에서 인증샷

외망포구 망덕횟집에서 호남정맥완주파티

망덕횟집 차림상의 모습

호남정맥완주증 수여

호남정맥 및 금남호남정맥 수여식

호남정맥 및 금남호남정맥 완주증

호남정맥 함께한 대원들...

 

 

망덕포구/望德浦口
외망마을은 약 220년전 진주강씨(晋州姜氏)가 처음 이곳에 입촌하여 마을이 형성되었다고 전하나 임진왜란시(1592년)에 이곳에 이미 왜적의 침입을 방어하기 위한 군사요충지였음을 고려하면 이보다 훨씬 앞서 마을이 형성되었음.외망(外望)이름 유래에 대해서는 먼저 망덕산(望德山) 명칭부터 살펴보면 여러가지 설이 있는데 그 하나는 전북 무주군의 덕유산(德裕山)을 마주 바라보고 있다하여 망덕산(望德山)이라 하였다고 전하고, 다른 하나는 경남 남해 망운산(望雲山)을 바라보고 있다하여 망덕산(望德山)이라 했다고 하나 모두 구체적인 근거없이 주민들간에 전해오는 말이라 생각됨. 한편 망덕(望德)의 본래 우리 고유이름은「망뎅이∙망댕이」라 하였는데 망을 보기에 알맞은 위치에 있는 마을이란 의미를 갖고 있음. 이곳은 섬진강 하구로서 망덕산에서 보면 밖으로 한려수도의 미려한 전경을 한 눈에 조망할 수 있는 곳이고 안으로는 섬진강지류를 이용하여 다압의 옛 섬진진, 구례, 곡성으로 가는 유일한 길목이 되기 때문에 파수(망)를 보기에 알맞은 장소에 위치하여‘망뎅이’라 하였는데 이를 한문식으로 표기하면서 유교적 관념 사상을 주민들에게 심어주기 위해 망덕(望德)이라 하였고, 외망(外望)은 망덕산을 기준하여 바깥쪽에 위치한 마을이라 바깥망덕 즉 외망(外望)이라 이름한 것으로 생각됨. 망덕산 부근에는 천자봉조혈(天子奉朝穴)의 명당이 있다하여 과거에 풍수들이 많이 찾아들었는데 약 60년전 황매천(黃梅泉)의 제자임을 자처하는‘방산’이라는 호를 가진 신씨가 천자봉조혈이 망덕산 아래의 바다속에 있다고 믿고 그 곳을 찾고자 물에 뛰어 들어갔는데 3일 후에야 죽은 시체로 발견
된 사실이 있음(당시 목격자가 많았음). 한편 전하는 바에 의하면 망덕산의 천자봉조혈은 왕비(王妃)가 날 자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함. 왕비(王妃)를 보고 배알하는 형국이고, 망덕산 뒤에 바로 위치한 장재∙구룡 뒷산인‘천황산(天皇山)’은 이름 그대로 왕(王)을 상징하고 있으며, 망덕리의‘양산등’은 망덕산의 남쪽능선인데 시녀가 왕비에게 양산을 받쳐 보좌하고 있고, 시녀도(섬)는 옛 지섬(지새미∙쥐섬)에서 700m 동쪽에 있는 섬인데 시녀들이 왕비를 시중하는 형국이며, 가마등(가맷등)은 양산등 너머 태인교쪽으로 내리뻗은 산등을 말하는데 왕비가 타고 다니는 가마를 뜻하고, 인통(印桶)이란 지명은 배알도 우측에 있는 섬으로 왕비를 인증하고 하교시 사용하는 상징적 관인 성격을 갖는다고 전함. 이 곳 배알도(태인동 산 1번지) 에는 1940년에 진월면장 안상선(安尙善)의 찬조금으로 건립된 해운정(海雲亭)이 있었으나 1960년대초 사라호 태풍으로 붕괴되었음. 외망 마을은 섬진강이 바다와 만나는 곳으로 배알도 부근 태인동 지역에 배알도 해수욕장이 있어 인근 광양제철소와 연계하여 수용주민 휴식처와 섬진강 휴게소, 강과 바다가 합류되는 좋은 입지여건을 갖고 있어 관광개발여지가 많은 고을임. 망덕산정에는 직경 15m 정도의 흔들바위가 있는데 미는 힘은 달라도 흔들림의 정도가 항상 같은 바위임. 또한 배알도가 바로보이는 마을 뒤 산등성이에 위치하였던 반구정(伴鷗亭)이란 정자는 옛날 부호군(副護軍)이었던 이채한(?採漢)이 이곳 경치에 매혹하여 지었으며 성담(性潭) 송환기(宋煥箕)가 정기(亭記)를 새겼었음. 2000년에는 망덕산 정상에 부석정(浮石亭)을 세워 옛 정취를 되새기고 이곳을 찾는 사람들의 휴식처가 되고 있음.

 

호남정맥 및 금남호남정맥 완주자 단체사진

 

정녕 마지막이란 말인가...꿈을 꾸고 있는 듯하다.

온몸이 갈기 갈기 찢기고 거동조차 할 수 없는 고사목이 되어 간다.

그래도 한줄기 정신만큼은 또렷이 남아 백운산에서 본 일출에서 부터 섬진강 하구 망덕포구에서의

고통속 환희가 떠오르며 여덟 계절의 변화가 주마등처럼 스쳐지나 간다.

   

2011년 5월 백두대간상 영취산에서 출발한지 1년9개월만에 전남 광양시 진월면 망덕리

섬진강하구 망덕포구에도착했다.

지나온 시간을 뒤돌아보면 금남호남 및 호남정맥 마루금을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 소중한 감동의 연속

마루금에는 격동의 현대사 속에서 이름없이 쓰러져간 민초들의 한이 담겨있고

고단한 살림살이를 정직하게 일궈나가는 일꾼들의 땀이 묻혀있는곳이다.

산은 삶의 일부이고, 죽어서 묻히는곳이다.

또한 산은 수많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려놓은 현장이었고

찬란한 문화를 꽃피운 보물창고이기도 하다.

 

山自分水領의 이치를 몸으로 느끼며 걸어온 마루금

그러나 내가 만난 산은 높은산과 낮은산이 사이좋게 어깨동무하고

저 홀로 우뚝하지 않은 높은산, 거기에 주눅들지 않은 낮은산이 보이지 않은 손으로 감싸주고 있다.

낮은산이 몸을 낮취 높은산을 오르는 길을 안내하고,

높은 산마루가 허리를 낮춰 길을 열어주면서......

 

언제나 제자리를 지키는 산의 모습을 닮고 싶고

비바람 속에서도 함부로 자리를 옮기지 않은 나무처럼 살고 싶다.

 

선답자가 걸어 온 그 마루금 위에 내 발자국 찍으며 조금이나마 조국 사랑과 자연의 소중함을 배웠듯이

후답자가 내 발자취에 또 발자국 포개며 좀더 아름답고 멋진 우리나라를 지키고 가꿔주길 바라는 마음으로

대장정에 마침표를 찍어 본다...

 

금남호남 및 호남정맥을 진행하면서 많은 도움을 주신 고마운 분들이 여러분 계신다

송백산악회 회장님 그리고 리딩해 주신 대장님과 먹거리 준비해주신 수석대장님등,

후기글 작성에 도움을 주신 남파님, 범여의 세상사는 이야기, 하쿠나마타타님등 고마운분들이 너무나 많다

이분들이 영취산에서 섬진강 외망포구까지 완주하게 만들어 주신 장본인들이시다

어려울때 동료처럼 감싸주신님, 힘들고 지칠때 함께 고난을 이겨내주신님, 새로운 출발을 위해

도움을 주신님, 이곳까지 무사히 진행할수 있게 도움을 주신님등 서면으로나마 고마운의 마음을 표시해본다.

마지막까지 물신양면으로 도움을 준 아내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고난과 역경 그리고 동료애

살아가면서 많은 도움이 될것같다

잊지못하고 그리워질 금남호남 및 호남정맥 대원들 그대들의 앞길에 무궁한 영광이 있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금남호남 및 호남정맥 완주를 하면서...

 

아름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