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 4. 14. 19:14ㆍ★ 수도권 55산 종주/수도권 55산 종주
수도권 55산 제8구간 국민대에서 형제봉, 백운대, 영봉 우이동까지
◈ 산 행 지 : 서울특별시 강북구·도봉구·성북구·은평구·종로구, 경기도 고양시·양주시·의정부시
◈ 산행일시 : 2019년 5월 11일(토요일, 당일산행)
◈ 산행코스 : 국민대학교-북악공원지킴터-형제봉-일선사갈림길-대성문-보국문-대동문-동장대-
용암문-위문-백운대-백운산장-하루재-영봉-육모정고개-육모정지킴터-북한산우이역
◈ 산행시간 : 12시55분~18시45분(5시간50분)
◈ 산행거리 : 약 13.18km
◈ 산행인원 : 나홀로 산행
◈ 산행날씨 : 무더운 날씨(27~30도)
◈ 산행코스 및 소요시간 : 도상거리(km),실제거리(km),소요시간(시간분), GPS 거리(km)
국민대-(1.8 km)-형제봉-(1.9 km)-대성문-(700 m)-보국문-(650 m)-대동문-(530 m)-동장대-(940 m,)-
용암문-(1.3 km)-위문-(250 m)-백운산장-(650 m)-인수대피소-(220 m)-하루재-(200 m)-영봉-(720 m)-
육모정고개-(1.1 km)-육모정공원지킴터-(1.3 km)-북한산우이역-산행종점
◈ 교통 : 대중교통(지하철, 버스)
- 갈때 : 하남-천호역(5호선)-동대문운동장(4호선)- 길음역 3번출구-171번 버스(30m 전방)-국민대학교
- 올때 : 북한산우이역(경전철)-성신여대입구역(4호선)-동대문운동장역(5호선)-천호역-하남
◈ 산행 상세안내
길음역(4호선) 3번 출구로 나와 우측방향 ‘길음역’버스정류소에서171번 버스로 국민대 이동
국민대학교 버스정류장에서 좌측편 북악터널방향으로 진행 후 우측편 북악지킴터로 진행
북악공원지킴터/이정표/탐방로안내판/포장 도로를 따라 진행
북한산 둘래길 삼거리/이정표/안내도/좌측편 나무계단으로 진행
나무계단 오름길 진행
현위치 119 북한산 정릉-04
북악산 갈림길/이정표/우측방향으로 진행
평창동방향 북한산 둘래길 갈림길의/이정표/직진으로 진행
119 현위치 북한산 05-01 이정목이 설치되어 있는곳 통과
조망이 좋은 암릉지 통과
대흥사 갈림길/우측편 사찰 내방 후 복귀하여 직진으로 진행
급경사 오름길 진행
전망대 오름길에 설치되어 있는 난간 진행
전망대/조망 좋음/암릉지대/직진으로 진행
조망지 통과
현위치 119 북한산 05-02 이정목이설치된곳 통과
작은 형제봉 정상/급경사 내림길 진행
형제봉 갈림길/이정표/직진으로 암릉지 올라 진행
형제봉 정상/넓은 공터/조망지/ 직진으로 내려 진행
형제봉 갈림길/이정표/직진으로 진행
현위치 119 북한산 07-03 이정목이 설치된 지점 통과
통나무계단 오름길 진행
넓은 공터 통과
북악공원지킴터 갈림길/이정표
현위치 119 북한산 07-04 이정목이 설치된 지점 통과
나무계단 오름길 진행
평창공원지킴터 갈림길/이정표/직진으로 진행
일선사 갈림길/이정표/우측편으로 진행
일선사 갈림길/이정표/직진으로 나무계단으로 진행
대성문 직진에 설치되어 있는 나무계단 오름길 진행
대성문(gps 617 m, (大城門))/대성문 통과 후 북한산성 성곽길로 진행
현위치 119 북한산 08-06 이정목이 설치된 지점 통과
보국문(gps 566 m)/현위치 119 북한산 09-04 이정목/이정표/성곽길로 진행
헬기장 통과
칼바위능선 갈림길/이정표(대동문 0.4 km) 직진으로 통과
대동문(gps 548 m)/이정표/안내도/넓은 휴식공간/직진으로 진행
동장대(gps 614 m)/이정표/안내도/ 직진으로 진행
용암문 삼거리/이정표/직진으로 진행
용암문(gps 572 m)/이정표/안내도/용암문에서성곽 길은 버리고 등산로로 진행
119 병풍암 이정표와 그 뒤로 병풍암이 보인다.
노적봉(gps 667 m)삼거리/이정표(백운대)/119 현위치 북한산 22-01 이정목/안내도
나무계단 통과
조망이 좋은 암릉지/노적종과 백운대, 원효봉 조망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갈림길/이정표/우측편 나무계단 오름길로 진행
백운봉 암문(gps 720 m, 백운봉암문, 白雲峰暗門))/이정표/안내도/좌측편 성곽위로 진행
북한산 백운대 정상/조망지
백운산장 통과/백운의 혼’ 현충묘
백운산장에서 하루재로 내려서는 나무계단 진행
북한산 인수봉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인수암 통과
백운대피소 통과.
하루재(gps 497 m)/도선사에서 백운대로 연결하는 깔딱고개/이정표(영봉 0.2 km)/좌측방향 오름길 진행
영봉 갈림길/이정표/직진으로 영봉 찍고 복귀하여 우측편으로 진행
영봉(604 m)/헬기장/조망지
무명봉 암릉정상/철난간 내림길 진행
현위치 119 북한산 69-04 이정목
헬기장(gps 497 m)통과
육모정고개(gps 389 m)/이정표/우측편 나무계단으로 내려 진행
용덕사 입구 통과
육모정공원지킴터(gps 140 m)통과
소귀교 통과
북한산우이역
산행종점
◈ 에필로그
전날 과음으로 인하여 몸상태가 매우 안좋은 상태다.
강북 5산(불,수,사,도,북) 진행하는 친구들 마중 산행을 계획 하였는데 ㅜㅜ
몸믈 추스려 베낭을 메고 밖으로 나온다. 몸이 흔들리고 머리가 빙돌아 주변에 있는
식당에 들려 해장을 하고는 북악지킴터로 향한다.
대중교통 버스, 지하철을 이용하여 국민대학교 정문앞에 도착하여 직진으로 약150m 진행하니
북악지킴터에 도착한다. 몇장의 사진을 남기고는 편안한 등로길 따라 수도권 55산 제8구간
산행이 시작된다.
나아갈수록 몸은 무겁기만 하고 속도가 나질 않는다.
둘래길을 접어들고 약간의 암릉지를 올라서니 온 몸이 땀으로 목욕을 하는 상태다.
등로길 우측편으로 대흥사라는 절이 있어 잠시 들려 약수물 한사발을 마시고는 가파른 암름길을
올라서니 앞으로 나아갈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온다.
형제봉을 지나 내려서 진행하니 일선사갈림길에 도착하고 한차례 밀어올리니 대성문에 도착한다.
대성문에서 우측방향 성곽길 따라 진행하면 차례로 보국문-대동문-동장대-용암문-위문으로 이어지고
백운대 정상에 올라 인증샷을 남기고는 영봉으로 향한다.
백운산장, 하루재를 지나 영봉에 올라 지나온 등로길을 짚어보며 육모정고개로 내려선다.
육모정고개로 내려서는 등로길이 가파르고 미끄러워 몇번을 넘어지면서 육모정 고개에 도착한다.
육모정고개에서 우측방향 나무계단으로 내려서면 용덕사 사찰을 지나고 잠시후 육모정지킴터 앞에 도착
편안하고 부드러운 인도길 따라 내려서면 소귀교를 지나고 북한산우이역에서 수도권 55산 제8구간이 종료된다. 우이역 인근에 있는 식당에서 한우해장국 한그릇을 하고는 집으로 복귀한다.
무덥고 술기운으로 헤이한 상태로 아무런 사고 없이 무사히 마칠수 있어 다행이라 생각하며
다음 부터는 산행이 있는날에는 과음은 삼가해야 될것 같다.
검단지맥 개념도
[한남정맥 검단지맥]
칠장산에서 분기한 한남정맥은 석성산을 거처 향린동산(88CC 입구)에서 아스팔트 도로 따라 경부고속도로를 가로질러 아차지고개를 지나 수원 광교산으로 이어가고, 또 하나의 산줄기가 향린동산(88CC 입구)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법화산(383m), 불곡산(335m), 영장산(414m), 검단산(542m), 청량산(438m), 용마산(596m), 검단산(657m)을 거처 하남시 창모루마을 한강변에서 그 맥을 한강에 넘겨주는 도상거리 43km인 이 산줄기를 한남검단지맥(漢南黔丹枝脈)이라 부른다.
[수도권 강동&강남 25산(약104km)]
하남 검단산-용마산-고추봉-남한산(벌봉)-청량산(수어어장대)-성남 검단산-망덕산(왕기봉)-고불산-영장산-불곡산-광교산-백운산-바라산-우담산-국사봉-이수봉-청계산(망경대)-매봉-인능산-대모산-구룡산-우면산-관악산-삼성산-호암산(민주동산)
[수도권 강북30산(도상거리150km)]
예빈산(직녀봉)-예봉산-철문봉-갑산-고래산-백봉-천마산-철마산(철마산남봉)-내마산(북봉)-시루봉-주금산-수원산-국사봉-죽엽산-노고산-천보산-북곡산(상봉)-상투봉-임꺽정봉-호명산-한강봉-꾀꼬리봉-챌봉-사패산-도봉산-영봉-백운대-형제봉-북악산-인왕산-안산
검단산-용마산-남한산(벌봉)-청량산-검단산-왕기봉-영장산-불곡산-시루봉-광교산-백운산-바라산
예빈산 → → → → 국사봉
예봉산 이수봉
철문봉 ↑ ↓ 청계산/망경대
적갑산 매봉
갑산 인능산
백봉 * 또는 반시계방향 * 대모산
천마산 붉은 글씨는 강동/강남 25산 구릉산
멸도봉 ↑ 푸른 글씨는 강북 30산 ↓ 우면산
둥글봉 관악산
철마산 삼성산
시루봉 민주동산
주금산 와우산
수원산 ↑ ↓ 안산
국사봉 인왕산
죽엽산 ← ← ← ← 향로봉
노고산 백운대
천보산--상봉(불곡산)-상투봉--임꺽정봉--호명산--한강봉-꾀꼬리봉-챌봉--사패산-도봉산-- 영봉
북악지킴터의 모습
길음역(4호선) 3번 출구로 나오면 우측편 약 30m 거리에 버스정류소이 있고 이곳에서 171번 버스을 타고 국민대학교로 이동한다. 1213번, 7211번 등 국민대학교로 가는 버스가 수시로 있다.
국민대학교 정류장에 내려 북악터널 방향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북악지킴터가 나오고 북악지킴터에서 베낭을 정리하고는 수도권 55산 제8구간 산행이 시작된다.
북악지킴터앞에 설치되어 있는 등산 안내도
북악지킴터앞에 설치되어 있는 이정표
북악지킴터에서 대성문까지 3.4km 날씨가 무덥고 암릉지가 있어 약 1시간30분 소요 예상하면서 포장된 도로 따라 진행한다.
좋은길 따라 진행
신록이 물든 등로길 따라 진행하니 마음 또한 정화되는 느낌이다.
그래도 베낭을 메고 산으로 나온것이 잘되었고 생각하며 풀향기 맡으면 진행한다.
잠시후 둘래길 삼거리에 도착하고 좌측편 북한산 둘래길 따라 진행하여 형제봉에 올라 앞으로 이어갈 마루금을 바라보고는 대성문으로 향한다.
북한산 둘래길 삼거리의 모습
북한산 둘래길 삼거리 이정표
북한산 둘래길 삼거리에 설치되어 있는 등산 안내도
평창방향 북한산 둘래길 들머리지점의 모습
작은 돌다리 통과
등로길 좌측편 암석의 모습
나무계단 오름길의 모습
119 현위치 이정목의 모습
현위치 119 북한산 정릉-04
북악산 갈림길의 모습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북악산 갈림길이 나오고 북악 명상의 길 여래사방향은 좌측방향이며 형제봉은 직진으로 진행한다.
북악산 갈림길 이정표
북악산 갈림길 통과 후 뒤돌아본 모습
평창동방향 북한산 둘래길 갈림길의 모습
평창동방향은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북한산 둘래길이 이어지고 형제봉은 직진으로 진행한다.
북한산 둘래길과 작별을 하고는 암릉지에 있는 형제봉으로 올라선다.
평창동방향 북한산 둘래길 갈림길 이정표
작은 암릉지 통과
119 현위치 북한산 05-01 이정목이 설치되어 있는곳 통과
119 현위치 북한산 05-01 이정목
조망이 좋은 암릉지 통과
조망이 좋은 암릉지에서 국민대방향의 모습
대흥사 갈림길
형제봉방향은 직진으로 급경사지를 올라서야 하지만 잠시 우측편에 있는 사찰에 들려 물한모금 마시고 산행을 진행하도록 한다.
대흥사 갈림길 이정표
대흥사 사찰의 모습
이곳 물맛이 일품이며 사찰이 아담하면서도 조용해서 좋다.
발걸음을 멈추고 사찰을 구경하고는 갈림길로 복귀하여 형제봉으로 올라선다.
험난한 등로길의 모습
대흥사 사찰을 방문하고 등로길에 복귀하여 올르면 이렇게 험난한 급경사 등로길이 나오고 잠시로 난간이 설치된 암릉지를 오르면 전망대에 도착한다.
전망대 오름길에 설치되어 있는 난간의 모습
전망대의 모습
전망대에서 바라본 모습
바로 아래로 평창동이 보이고 넘어로 지난구간인 북악산과 저멀리 인왕산 그 옆으로 안산이 조망된다.
전망대에 있는 요상한 바위의 모습
전망대에 있는 요상한 바위을 앞에서 본 모습
바위들의 모습
고기모양의 바위
조망지
조망지에서 바라본 보현봉의 모습
조망지에서 바라본 평창동의 모습
현위치 119 북한산 05-02 이정목이설치된곳 통과
현위치 119 북한산 05-02 이정목
작은 형제봉 오름길의 모습
작은 형제봉 정상
형제봉은 쌍둥이로 나란히 맞주보고 우뚯 솟아 있다.
아래쪽에 작은 형제봉은 암릉지로 되어 있지만 큰 형제봉 정상부는 넓은 공터로 이루어져있다.
작은 형제봉 정상 바라본 보현봉과 앞으로 이어갈 마루금의 모습
형제봉 갈림길의 모습
형제봉 갈림길 이정표
작은 형제봉에서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큰형제봉을 위회하는 등로길이다.
직진으로 암릉지를 올라 형제봉을 찍고는 내려선다.
형제봉 정상의 모습
갈림길에서 암릉지를 오르면 형제봉 정상에 도착하고 내려서면 대성문과 정릉으로 이어지는 갈림길에 도착한다.
형제봉 정상에서 바라본 보현봉의 모습
형제봉 갈림길의 모습
형제봉 갈림길 이정표
현위치 119 북한산 07-03 이정목이 설치된 지점 통과
현위치 119 북한산 07-03 이정목
등로길 이정표
오름길 나무계단의 모습
넓은 공터 통과
북악공원지킴터 갈림길
북악공원지킴터 갈림길 이정표
현위치 119 북한산 07-04 이정목이 설치된 지점 통과
현위치 119 북한산 07-04 이정목
나무계단 오름길 진행
평창공원지킴터 갈림길
평창공원지킴터 갈림길 이정표
일선사 갈림길
일선사는 등로길 좌측편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지점에서 정릉탐방지원센터에서 올라오는 등로길과
합류하는 지점이다.
석가탄신일이 내일이라 연등이 보이고 사찰을 찾는 사람들도 제법 보인다.
일선사 갈림길 이정표
나무테크 등로길의 모습
일선사 갈림길에서 조금 진행하면 다시 일선사로 가는 갈림길이 나오고 대성문은 직진으로 진행한다.
나무계단 오름길의 모습
대성문 직진에 설치되어 있는 나무계단의 모습
대성문(大城門)의 모습
대성문(大城門)
대성문은 보국문과 대남문 사이에 위치한 북한산성의 문으로, 초기의 이름은 대동문(大東門)이었다. 규모는
조선시대 단위로 높이 13척, 너비 14척이다. 문루는 1990년대에 와서야 우진각 지붕 형태의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복원되었다.
북한산성 안내도
대성문 안내도
등산 안내도
대성문 이정표
대성문을 빠져나와 우측편 북한산성을 옆에두고 산성길로 내려서면 보국문이 나오고 잠시후에 대동문에
도착한다.
대성문 상부의 모습
성곽따라 오름길 진행
현위치 119 북한산 08-06 이정목이 설치된 지점 통과
현위치 119 북한산 08-06 이정목
삼각산(백운대, 만경대, 인수봉)이 조망되는 주능선 공터
산성주능선에서 바라보는 북한산 안내도
보국문 상부의 모습
보국문(輔國門)
보국문(輔國門)은 대동문과 대성문 사이에 있는 북한산성의 문으로, 초기의 이름은 동암문(東暗門)이었다. 규모는 조선 시대 단위로 높이 6척 6촌, 너비 6척 5촌이다. 문 안쪽에 새겨진 명문을 보아 금위영에서 만들었음을 알 수 있다.
보국문(輔國門) 이정표
보국문길은 북한산성의 성문 가운데 하나인 輔國門으로 통하는 데서 유래되었다. 보국문길은 성북구 정릉동 164-35번지(청수교)에서 정릉제4동을 거쳐 정릉동 825번지(청수장)에 이르는 폭 15m, 길이 2,250m의 2차선 도로이다. 이 길은 1984년 11월 7일 서울특별시공고 제673호에 의해 처음 보국문길이라 이름 붙여졌다. 이 길은 정릉천 상류 부근 동쪽에서 남북으로 종단하며 정릉길과 접속된다.
현위치 119 북한산 09-04 이정목
헬기장 통과
칼바위 능선 갈림길
예전 정릉 청수장에서 북한산 오를때 칼바위능선을 종종 이용했었는데 장거리 산행에 미쳐 찾아본지 오래되었구나...시간내어 다시 한번더 찾아보아야 겠다. 칼바위능서능ㄹ 뒤로하고는 대동문으로 내려선다.
칼바위 능선 갈림길 이정표
대동문(大東門)
대동문은 북한산성의 문으로, 초기의 이름은 소동문(小東門)이었다. 규모는 조선시대 단위로 높이 9척, 너비 10척이다. 현재의 문루는 1993년도에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복원된 것이다.
북한산은 1983년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총면적(도봉산 포함)은 80.669㎢다. 북한산의 정상은 백운대(836.5m)·인수봉(810.5m)·만경대(799.5m)로 조선시대에는 삼각산(三角山)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이는 최고봉 백운대(白雲臺)와 그 동쪽의 인수봉(仁壽峰), 남쪽의 만경대(萬景臺, 일명 국망봉)의 세 봉우리가 삼각형의 모양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외에도 삼봉산(三峰山, 세봉오리로 이루어진 산), 화산(華山, 꽃이 만발하는 산) 또는 부아악(負兒岳, 어린아이를 등에 업고 있는 모습) 등 역사적으로 여러 가지 이름으로 불리기도 하였다. 북한산으로 불리게 된 것은 조선 숙종때 북한산성을 축성한 뒤부터라고 추정된다.
대동문 상부의 모습
북한산성 안내도
백제가 위례성(慰禮城)을 도성으로 삼았을 때 도성을 지키는 북쪽의 방어성으로 132년(개루왕 5)에 쌓았다. 이곳은 고구려·신라 사이에 위치한 접경지이었기에, 삼국이 여러 차례 서로 바꾸어가며 점유하였다.
백제는 주력군을 머물게 하여 고구려의 남진을 저지하였는데, 특히 근초고왕(346∼375) 때는 북정군(北征軍)의 중심 거점으로 삼기도 하였다. 하지만 고구려는 475년(장수왕 63)에 북한산성을 포위하고 함락시킨 뒤 백제의 개로왕을 죽이고 도성을 함락하였다. 백제는 공주의 웅진성(熊津城)으로 도읍을 옮기고서 신라와 힘을 합쳐 고구려의 남진을 막았다.
그 뒤 신라는 553년(진흥왕 14)에 백제의 영토인 한성(漢城) 일대를 점령하고, 북한산 비봉에 순수비(巡狩碑)를 세웠다. 하지만 고구려는 603년(영양왕 14) 8월에 장군 고승(高勝)을 보내어 신라가 장악하고 있던 북한산성을 포위하였는데, 신라의 진평왕은 친히 1만의 군사를 이끌고 와서 구원하였다. 661년(무열왕 8) 5월에도 고구려 장군 뇌음신(惱音信)이 말갈인 장군 생해(生偕)와 함께 북한산성을 20여 일 동안 포위하며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이 때 성주(城主) 동타천(冬陀川)은 군민(軍民) 2,800인과 함께 필사적으로 방어하였다. 당시 신라는 백제부흥군의 연이은 공격을 받았으므로, 고구려에게 북한산성을 빼앗기면 한강 하류 일대의 주도권을 잃을 위기에 처할 수 있었다. 때문에 신라 무열왕은 승전에 대한 보상으로 성주 동타천의 관등을 제12관등 대사(大舍)에서 제10관등 대나마(大奈麻)로 승급시켜 주기도 하였다.
고려시대에도 북한산성은 전략적으로 중시되었다. 곧 고려 현종 때 거란이 고려를 침입하자, 현종은 태조의 유해를 모신 재궁(梓宮)을 이곳으로 옮기고 건물을 증축하였다. 1232년(고종 19)에 고려군은 이곳에서 몽골군과 치열한 전투를 벌였고, 1387년(우왕 13)에는 산성을 고쳐 쌓았다.
조선시대에도 산성을 고쳐 쌓는 역사(役事)가 계속 전개되었다. 곧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 외침이 연이어 일어나자 북한산성을 도성의 외곽을 지키는 산성으로 쌓자는 의논이 일어났다. 그 결과, 1659년(효종 10)에는 국왕이 송시열(宋時烈)에게 명령하여 고쳐 쌓았고, 1711년(숙종 37)에는 왕명으로 대대적인 축성 공사를 하여 둘레 7,620보 크기의 돌로 쌓은 성벽을 완성하였다. 당시 성곽에는 대서문(大西門)·동북문(東北門)·북문(北門) 등 성문 13곳과 함께 시단봉(柴丹峰) 위쪽에 동장대(東將臺), 나한봉(羅漢峰) 동북쪽에 남장대, 중성문(中城門) 서북쪽에 북장대 등이 각각 설치되었다. 또한 1712년에는 130칸 규모의 행궁(行宮)과 140칸 크기의 군창(軍倉)도 건립되었다. 성 안에는 승군(僧軍)이 머물도록 136칸의 중흥사(重興寺)를 비롯하여 사찰 12곳을 두었고, 99곳의 우물과 26곳의 저수지가 있었다.
현재 산성에는 삼국시대에 쌓은 흙으로 된 성벽이 약간 남아 있다. 하지만 조선 숙종 때 쌓은 성벽 대부분이 성벽 위에 낮게 쌓은 여장(女墻)이 무너진 채 잘 남아 있고, 대서문과 함께 행궁터·장대터·우물터·건물터로 추정되는 시설의 일부가 확인되고 있다.
북한산 등산안내도
대동문 이정표
북한산성 동장대
동장대(東將臺)는 북한산성 동쪽에 위치한 장대이며, 북한산성 3개의 장대 중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것이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금위영의 장수가 주둔했다. 용암문에서 직선거리로 650m 떨어져 있으며, 해발고도는 586.0m이다. 1996년에 정면 3칸, 측면 3칸의 중층 누각으로 복원하였다.
기단은 정방형의 이중구조를 갖춘 중층 건물이다. 외부기단은 가로·세로 5.5m의 장방형으로 장주형 초석 12개를 배치했고, 내부 기단은 가로·세로 2.8m의 정방형으로 기단을 만들고 원형 초석 4개를 배치했다.
동장대 [
동장대 이정표
동장대에 설치되어 있는 북한산성 안내도
동장대 안내도
동장대의 모습
동작대에서 내려서면 용암문이 나오고 노적봉 삼거리를 지나 위문으로 향한다.
용암문 삼거리의 모습
용암문 삼거리 이정표
용암문(龍巖門)의 모습
용암문(龍巖門)의 모습
용암문(龍巖門)은 북한산성에 있는 암문으로, 원래 이름은 용암암문(龍巖暗門)이었다. 조선시대 단위로 규모는 높이 6척 5푼, 너비 7척 5푼이다.
북서쪽 능선에는 조선 숙종대에 쌓은 북한산성이 있으며, 대동문·대서문·대남문·대성문·보국문 등이 남아있다. 화계사를 비롯해 유서 깊은 사찰들과 많은 유물·유적이 있다. 1983년 북한산과 도봉산 일대 78.5㎢가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용암문 이정표
용암문에 설치되어 있는 북한산성 안내도
용암문 안내도
부드러운 등로길 진행
노적봉 삼거리의 모습
노적봉 삼거리 이정표
노적봉 삼거리에 설치되어 있는 119 현위치 북한산 22-01 이정목
노적봉 안내도
노적봉은 북한산의 만경대 서쪽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봉우리이며 높이는 해발 716m이다.
북한산에서 두 번째로 큰 암장으로 손꼽히는 봉우리이며 노적봉에는 재미난 전설적인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오고 있다.
노적봉 전설이야기는 임진왜란 당시 조선과 명나라 연합군이 위기에 처하였을 때 쯤...
근처에 살던 밥할머니가 꾀를 내어 이 봉우리를 볏짚으로 감싸 마치 군량미가 가득 쌓여 있는 것처럼 위장을 하고 창릉천에는 석회를 뿌려 쌀 씻는 물처럼 보이도록 해 군량미가 충분한 것처럼 왜적의 기세를 꺾어버렸다는 이야기가 전설따라 삼천리 같은 느낌으로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니다.
그 노적봉 아래 사찰이 있는데 노적사이다. 사찰 때문에 노적봉 이름을 붙혀진것 같다.
그런대 노적봉 이름은 모양이 노적가리를 쌓아 놓은 것처럼 보인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나무계단 통과
예전에는 암릉지를 올라서 어렵게 진행 했는데 지금은 나무테크로 계단을 만들어 놓아 진행하는데 한결 수월하다.
계속되는 암릉길의 모습
암릉지에서 바라본 노적봉의 모습
암릉 조망지에서 바라본 북한산 백운대정상의 모습
암릉 조망지에서 바라본 북한산 원효봉의 모습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갈림길 이정표
어려운 암릉지대를 통과하여 나무계단으로 내려서면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로 내려서는 삼거리가 나온다.
삼거리에서 우측편 위문방향으로 나무계단을 올라 북한산정상 백운대로 향한다.
위문으로 올라서는 나무계단길의 모습
북한산 위문(백운봉암문, 白雲峰暗門)
조선시대 북한산성 축성 당시의 이름은 백운봉암문이었다. 그러나 일제가 들어서면서 이름을 위문으로 고쳤다. 지금은 일제 잔재를 없애려는 노력으로 이름을 백운봉암문으로 다시 고쳐 부르고 있다.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의 크기는 높이 1.7m, 폭 1.9m(높이 6척 3촌(寸)) 가량이다.
북한산성에는 6개의 대문과 7개 암문 1개 수문이 설치되었는데, 암문은 성곽의 깊숙하고 후미진 곳에 적이 알지 못하게 만든 비상출입구로 그 중 하나이다. 백운봉과 만경봉사이에 위치해있다. 일제시대 이후 위문으로 널리 통용되고 있었다. 방형의 문으로 출입구는 높이 1.7m, 폭 1.9m 가량이다. 문 내부에는 성의 바깥쪽으로 문비(門扉)를 달았던 원형의 돌확구멍과 장군목을 건너질렀던 방형 구멍이 남아있다.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 안내도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 이정표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 앞 등산 안내도
북한산 백운봉암문(白雲峰暗門) 성곽의 모습
만경대(萬景臺) 의 모습
서울시 은평구,도봉구에 있는 삼각산의 한 봉우리로서, 국망봉이라고도 한다. 백운대 남쪽에 있는데, 고려 우왕 원년 (1375) 6월에 큰 비가 와서 이 봉우리가 무너지고 선조 30년에 이 산이 우레와 같이 소리를 내어 울었다고 한다. 그후 이곳에서 기우제와 기설제를 가끔 지냈다고 한다. 이곳에 오르면 삼라만상의 온갖 경치를 구경할 수 있으므로, 만경대라고 하였다. 조선 초에 무학대사가 태조의 명을 받고 이 봉에 올라서서 나라를 다스릴 도읍터를 바라다보았으므로, 국망봉이라고 하였다는 일화도 있다.
인수봉(仁壽峰) 의 모습
서울시 강북구 우이동과 고양시에 걸쳐있는 삼각산 세 봉우리 가운데 하나이다.
서울특별시
북한산 인수봉은 예부터 백운대, 만경대와 함께 삼각산으로 불려온 한국 암벽등반의 성지이지만 우리에게는 비교적 낯선 이름이다. 왜 인수봉인가? 산 좋아하는 사람이 아닌 다음에야 인수봉을 아는 이가 대체 얼마나 될까? 이 벌거벗은 봉우리 하나가 우리에게 어떤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백운대에서 바라본 우이동 일대의 모습
삼각산 안내도
서울시 북쪽 외곽에 병풍을 친듯이 솟아 있는 삼각산은 우이동 종점에서 등정할 수 있다. 삼각산의 유래는 산의 최고봉인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국망봉)의 높은 세 봉우리가 뿔처럼 높이 서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세봉우리 중에서 가장 높은 백운대는 해발 836.5m로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탁 틔여서 전망이 무한히 넓고, 또 봉 위에는 많은 사람이 앉을 수 있는 넓은 암반이 있기도 하다.
동북쪽으로는 산맥이 서로 통하는 도봉산의 연봉이 줄을 이어 있고 아래로 강북, 도봉, 노원구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인다. 남쪽으로 눈을 돌리면 한강 건너 옆으로 뻗어나간 남한산을 바라볼 수 있고 서남쪽으로는 관악산이 눈에 들어온다. 백운대 동쪽에 우뚝 솟은 인수봉도 온통 바위 하나가 하늘 높이 솟아 장관을 이루며, 동남쪽에 솟은 국망봉은 일명 만경대라고도 하는데, 이 국망봉의 봉명은 일찌기 이태조가 한양에 도읍을 정할때 왕사 무학이 영기에 올라가 새 나라의 도읍터를 바라 보고 정해서 국망이라는 봉명이 생겼다고 전해오기도 한다.
삼각산 일대의 지질기반은 중생대말에 관입한 화강암으로 구성되어 있다. 다른 지역에서 는 보기 드문 담조색을 띠고 있는데 장구한 세월에 걸친 지반의 상승과 침식작용으로 지표에 노출되고 다시 그 절리와 표면에 생긴 풍화작용으로 오늘날과 같은 산모양이 된 것이다. 따라서 높이에 비해 산세가 험준하고 경사가 심하며 암벽으로 된 바위 봉우리들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또한, 북한산 일대에는 옛 한성의 방어역할을 했던 북한산성이 있으며, 성의 둘레는 12.7km이고 성안의 면적은 6,611,600m² (약 200만 평)으로, 1990년부터 훼손된 대남문, 대성문, 대동문, 보국문, 동장대의 성곽들을 일부 보수 복원하였다.
한반도 서부, 서울과 경기도 북부에 솟아있는 명산. 높이는 837m로 서울시 주변에서 가장 높으며, 주봉인 백운대를 중심으로 북쪽 인수봉과 남쪽 만경대의 3봉이 삼각형으로 놓여 있어 삼각산이라고도 한다. 북서쪽 능선에는 조선 숙종대에 쌓은 북한산성이 있으며, 대동문·대서문·대남문·대성문·보국문 등이 남아있다. 화계사를 비롯해 유서 깊은 사찰들과 많은 유물·유적이 있다. 1983년 북한산과 도봉산 일대 78.5㎢가 북한산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북한산 백운대정상
북한산의 명칭은 서울의 옛 이름 한산(漢山)에서 유래한 것으로, 한산의 북쪽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세 봉우리인 백운대(836.5m), 인수봉(810.5m), 만경대(787m)를 아울러 삼각산(三角山), 삼봉산(三峰山) 또는 화산(華山)이라 부르기도 했으며, 삼국시대에는 아기를 등에 업고 있는 형상이라 하여 부아악(負兒岳)이라고도 했다.
서울과 인접한 산들 중 가장 높고 산세가 험하여 예로부터 서울의 진산으로 여겨졌다. 고구려의 왕자 온조와 비류가 남으로 내려와 북한산 봉우리에 올라 지세를 살폈다고 전하며, 고려와 조선시대에는 수도를 수호하는 천혜의 방어막 역할을 수행했다. 병자호란 이후 다음 세대인 1711년(숙종 37)에는 북한산 일대에 산성을 축조하고 이를 북한산성이라 불렀다. 북한산성은 북한산 능선 8km를 따라 이어지며 당시 건립된 14개의 성문 중에 대남문·대서문·대성문·보국문·용암문이 보존되어 있다.
북한산 백운대정상에서 인증샷
북한산 백운대정상에서 인증샷
북한산 백운대정상에서 인증샷
북한산 백운대정상에서 인증샷
북한산국립공원은 15번째 국립공원으로 1983년 지정되었으며, 그 면적은 서울특별시와 경기도에 걸쳐 약 78.5㎢, 우이령을 중심으로 남쪽의 북한산 지역과 북쪽의 도봉산 지역으로 구분된다.
북한산국립공원은 세계적으로 드문 도심 속의 자연공원으로 공원전체가 도시지역으로 둘러싸여 있으며 수도권 이천만 주민들의 자연휴식처로 크게 애용되고 있다. 연평균 탐방객이 500만에 이르고 있어 "단위면적당 가장 많은 탐방객이 찾는 국립공원"으로 기네스북에 기록되어 있다.
북한산의 주봉인 백운봉 정상에 서면 맞은편의 깍아 지른 듯 인수봉이 서 있다.국망봉, 노적봉 등 높은 봉우리들이 모두 발밑에 있음은 물론 도봉, 북악, 남산, 남한산, 관악산 등 멀고 가까운 산들이 모두 눈앞에 들어온다. 시계가 넓은 날에는 서쪽으로 강화도, 영종도 등 서해상의 섬들도 볼 수 있다.
백운봉 서쪽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은 문수봉에서 비봉능선으로 이어진다. 주능선 남쪽으로는 진달래능선, 칼바위능선, 대성능선 및 형제봉능선이, 북쪽으로는 숨은벽능선, 원효봉능선, 의상능선 등이 뻗어 내린다.
북한산 기슭에는 세검정과 성북동, 정릉, 우이동 등 여러 계곡들이 있다. 거대한 화강암으로 이루어진 주요 암봉 사이로 수십개의 맑고 깨끗한 계곡이 형성되어 산과 물의 아름다운 조화를 빚어내고 있으며, 삼국시대 이래 과거 2,000년의 역사가 담겨진 북한산성을 비롯한 수많은 역사, 문화유적과 도선국사가 창건한 도선사(道詵寺), 태고사(太古寺), 화계사(華溪寺), 문수사(文殊寺), 진관사(津寬寺) 등 100여개의 사찰, 암자가 곳곳에 산재되어 있다.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는 신라 진흥왕(재위 540~576년)이 세운 순수척경비(巡狩拓境碑) 가운데 하나로, 한강 유역을 신라 영토로 편입한 뒤 진흥왕이 이 지역을 방문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비문의 주요 내용은 진흥왕이 지방을 방문하는 목적과 비를 세우게 된 이유 등이 기록돼 있으며, 대부분 진흥왕의 영토 확장을 찬양하는 내용으로 이뤄져 있다. 진흥왕 순수비는 1972년에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으며 비봉에는 복사본이 설치되어 있다.
북한산 백운대정상에서 바라본 도봉산 사폐산방면의 모습
백운대와 인수봉, 만장봉은 중생대 쥐라기 중기의 대보조산운동으로 추가령구조곡 이남에 대보화강암이 관입하면서 형성되었다. 북한산의 기반암은 대보화강암으로, 북쪽으로는 철원, 포천과 연결되며 남쪽으로는 여주, 이천으로 연결된다. 북한산 외에 도봉산과 불암산, 수락산, 관악산, 청계산도 같은 시대에 형성되어 이 일대에 분포하고 있는 암반들을 서울화강암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후 1억년 동안 침식과 풍화작용을 거치며 다양한 형태의 지형으로 변화하게 되었다. 인수봉은 수평으로 전개된 판상절리가 발달한 암괴지형이며, 백운대는 보른하르트(bornhardt)라고 하는 화강암 돔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북한산 명칭
북한산은 백운봉(백운대 836m), 인수봉(810m), 국망봉(만경대 800m) 세 봉우리가 마치 뿔처럼 날카롭게 솟아있는 데서 유래해 고려시대부터 근대까지 1000여년 동안 삼각산이라 불려져 왔다. 1915년 조선 총독부가 북한산이란 명칭을 사용한 이후 1983년 북한산국립공원 지정과 함께 북한산이란 명칭이 공식화됐다.
1916년 조선총독부의 고적조사위원이었던 이마니시 류(今西龍)가 한강 이북의 서울지역을 가리키는 행정구역명인 '북한산'을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가노라 삼각산아. 다시보자 한강수야. 고국산천을 떠나고자 하랴마는 시절이 하 수상하니 올동말동 하여라.” 병자호란 때 김상헌(1570-1652)이 청나라로 끌려 가면서 읊었던 그 삼각산이라는 이름은 대한민국 공식문서와 지도에서 사라져버렸다.
서울 강북구는 2003년 10월 백운봉 등 3개 봉우리가 있는 지역이 삼각산이란 이름으로 국가지정문화재 명승 10호로 지정된 것을 계기로 서울시와 중앙정부에 명칭복원을 건의하고 '삼각산 제이름 찾기 범국민 추진위원회'를 구성하는 등 '삼각산 제이름 찾기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최고봉인 백운대를 위시하여 인수봉, 만경대, 노적봉 등 경관이 수려하고 도시민들의 휴식처이며 국립공원으로 지정(1983년)되어 있는 점 등을 고려하여 선정. 북한산성, 우이동계곡, 정릉계곡, 세검정계곡 등이 유명. 도선국사가 창건한 도선사(道詵寺), 태고사(太古寺), 화계사(華溪寺), 문수사(文殊寺), 진관사(津寬寺) 등 수많은 고찰이 있다
북한산 백운대정상에서 바라본 인수봉의 모습
북한산 백운대정상 내림길 우측편에 있는 오리모양의 바위
백운산장의 모습
현재 백운산장 건물은 산장을 운영하는 이영구씨, 땅은 국가 소유로 되어 있다.
북한산사무소 탐방시설과 김준석 팀장은 “오는 2017년 상반기쯤 산장 건물은 환경부에 귀속돼 국유 재산으로 등록된다”면서 “귀속 근거는 이영구 선생이 과거 국고 기부 체납에 동의했다”고 밝혔다.
이수용(한국산서회 고문)국유 재산으로 귀속된 이후 백운산장의 활용 방안은 아직 정해진 것은 없다.
산장 역사와 인수봉 구조 활동시 거점 역할이 사라지는 것 아니냐는 산악인들의 우려를 전하자 “백운산장은 중장기적으로는 대피소 역할 계획을 갖고 있다”면서 “2016년에 일부 시설물을 보수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어 “내년 7월에는 인수야영장을 폐쇄하고 야영객들은 백운산장 2층의 숙박 공간으로 유도한다는 방침을 세웠다”고 덧붙였다.
한편, 산악계 일각에선 백운산장은 산악문화유산으로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한국산서회 이수용 고문(전 우이령보존회 회장)은 “백운산장은 문화재 가치뿐만 아니라 산악인들의 정신적 고향”이라면서 “우이산장, 인수산장, 보문산장 등 유서 깊은 산장들이 다 철거되고 사라져 안타깝다. 북한산에서 유일하게 남은 백운산장은 산악인과 산악단체들이 나서서 지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4대째 산장지기를 해오고 있는 이영구씨는 인간문화재로 지정받아도 될 만한 인물”이라면서 “올해가 백운산장 설립 90주년이 되는 해인데, 여러 문화행사를 하고 싶지만 혼자서 하기엔 벅차다”고 아쉬워했다.
한편 산악인들은 존폐의 갈림길에 놓인 백운산장에 대해 촉각을 세우고 있다.
이름을 밝히지 말 것을 요구한 한 산악인은
“국립공원관리공단은 환경오염, 안전문제를 명목으로 내세워 기존 산장들을 철거한 후 여론이 잠잠해지면 나중에 자기들이 그 자리에 건물을 크게 지어 장사하는 행태를 보여왔다”면서 “백운산장의 운명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 같아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백운산장
백운산장은 이해문씨가 1924년에 지은 우리나라 최초의 1호 산장이다.
한국전쟁 때 소실됐지만 1959년 서울산악회 회원들이 나서서 1960년 11월 새로 지었다.
이후 1992년 화재로 내부가 불에 타자 산악인들이 건축자재들을 직접 산으로 실어 날라 지금의 대피소를 만들었다.
또 1983년 경찰산악구조대가 출범하기 전까지 산악사고를 전담 처리하는 역할도 했다.
현재 백운산장은 3대 이영구(84세)·김금자(74세)씨 부부와 4대 아들 이건(51세)씨가 매점과 산악인들의 잠자리를 제공하는 산장 형태로 운영하고 있다.
백운암 아래의 작은 오두막에 불과하던 산장은 한국전쟁 때 소실된 것을 산악인들이 힘을 모아 돌들을 틈틈이 쌓아 올려 1960년 재건축했다.
이후 1992년 불의의 화재로 숙소로 사용되던 공간이 전소되자, 통나무를 이용해 2층을 증축시켜 대피소를 만들고 지붕을 새로 만들어 1997년 현재의 모습이 되었다.
1924년 이래 산악인들의 쉼터이자 마음의 고향이 되어온 우리나라 1호 산장 백운산장'
1924년 이해문이 같은 장소에서 매점을 시작해서
1933년 이남수(2代)가 건축허가를 받아 석조 산장을 신축했고,
1942년 우물을 팠으며 6·25
1960년 12월 서울산악회와 산악인들의 주도로 단층 석조건물로 확장재건축되었다고 하고 있다
백운산장의 현판
백운산장의 현판. 한자로 백운산장이라고 적인 현판 아래에는 익숙한 이름이 적혀있다.
1936년 제11회 베를린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차지하고도 고개를 들지 못했던 마라톤 영웅 손기정 선수, 백운산장의 현판은 그가 써넣은 것이다. 백운산장과 인연을 맺은 손기정 선생은 90년대 중반에 직접 현판을 써 제자들에게 전달을 부탁했다
백운의 혼’ 현충묘
이 비는 한국전쟁 때 스스로 자결한 두 국군장병을 기리는 것으로 김금자 할머니는 아직도 그때를 생생히 기억한다. '그때 자결했던 양반이 이북사람인데 공부하다가 우리나라에서 군인이 됐어. 전쟁 때 이쪽을 지키고 있다가 수도가 포위됐다는 말을 듣고 이북사람들한테 죽으면 자신의 명예가 떨어진다해서 당신 총으로 당신을 쐈지. 그때 아버님과 우리 아저씨가 그 사람 시신을 묻어줬고.'그러다 1995년, 자결한 군인의 형제 되는 사람이 자기 혈족이 이곳에 묻힌 사실을 알고 찾아와 우이동에 묻힌 묘를 파내어 국립대전현충원으로 안치했다. 그 후 ‘백운의 혼’은 국가보훈처에서 현충시설로 지정되었다.
백운산장에서 하루재로 내려서는 나무계단의 모습
북한산 인수봉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인수암의 모습
백운대피소
백운대피소 이정표
백운대피소에서 하루재로 이어지는 등로길의 모습
등로길 이정표
하루재의 모습
백운대피소에서 도선사주차장 또는 백운탐방 지원센터로 이어지는 고개에 위치하고 있다.
하루재에서 좌측편 오름길로 올라 영봉을 찍고는 육모정으로 내려선다.
하루재 이정표
영봉 오름길 나무계단의 모습
영봉에서 바라본 인수봉
영봉 이정표
무명봉이 영봉(靈峯)이된 사연
서울 도봉구 수유 4동 주민들이 마을 뒷산의 무명봉에 영봉(靈峯)이라는 이름을 처음 붙인 것은 1985년 10월이다......
1985년 봄 매일 북한산에 오르던 수유 4동 주민 유병렬씨(47)와 시인 정공채씨(54) 등 10여명은 자기 동리를 굽어보는 봉우리에 이름이 없다는 사실을 알고는 그 이름을 찾기로 했다. 이들은 우선 5만분의 1 지형도에서 자기들이 이름을 찾는 봉우리의 높이가 604m 임을 확인한 후, 북한산에 관한 옛 문헌에서 이 무명봉의 이름을 찾았으나 끝내 발견할 수 없었다.
북한산에 관해서는 나에게 물어봐라고 장담하던 등산인들도 604m봉의 원래 이름을 물으면 꽁무니를 뺴곤 했다. 그러나 하루재 고개의 어원을 캐낼 수는 있었다. 옛날 우이동 인근의 주민들이 화목을 구하러 하루재 일대에 오르면 수목이 많아 꼬박 하루가 걸렸단다. 그래서 '하루재'란 고개 이름이 생겼다고 한다. 수유4동 주민대표들은 604m봉의 이름을 더이상 찾지 못하자 스스로 명명하는 수밖에 없음을 동장 윤주광씨와 같이 상의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604m봉이 주민들 간에 '영봉'이라 불린다고 한 주민이 제보해 주어 주민대표들은 영봉이 604m봉을 지칭하는 이름으로 타당한지 따지기 시작했다. 자기 동리의 산을 '영험스러운 산', '신령이 깃든 산'이라는 뜻이 담긴 '영봉'으로 이름짓자고 하는 정공채씨 등의 주장에 반대하는 주민대표들은 아무도 없었다. 604m 봉이 영봉으로 불려진 이후 수유4동에는 하루재-영봉-용덕사를 거쳐 그린파크호텔 앞으로 내려오는 등산인구가 급격히 늘었다. 영봉 꼭대기는 북한산을 살피는 또하나의 전망대이다.
인수산장 부근의 무명봉에 영봉이라는 이름이 붙자 일하기에 편해진 사람은 구청에서 자연보호를 위해 동원하는 취로인부들이다. 담당구역을 명확히 구분해서 훨씬 용이해졌다고 한다. 그린파크호텔에서 선운사- 용덕사- 육모정 고개길을 일명 청담골이라 불린다. 그린파크호텔 부근에서 영봉쪽은 서쪽이 된다. 그래서 수유4동의 등산인들은 청담골을 거쳐 영봉에 이르는 영봉코스를 서산능선이라고도 한다.
1987년에 들어 서울시가 '근교산 살리기 운동'을 전개하자, 북한산에 인접한 10개동 중, 산이 차지하는 면적이 가장 넓은 수유4동은 영봉코스 주변을 정화하는 한편, 영봉 정상에 영봉비를 세우기로 했다. 이 비는 오는 3월 중순에 세워질 예정인데, 비문은 영봉 명명작업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던 시인 정공채가 썼다. 무명봉에 이름을 붙였더니 많은 등산인이 몰려와 산에 생기가 돌기 시작합니다.
무명봉 암릉정상의 모습
암릉 내림길의 모습
영봉에서 경사지를 내려서면 바로앞에 암릉이 나오고 올라서면 조망이 일품이다
암릉지에서 내려서면 급경사지가 나오고 철난간을 이용하여 조심하게 내려 진행하면 헬기장을 지나게 된다.
현위치 119 북한산 69-04 이정목
헬기장 통과
코끼리바위 갈림길의 모습
코끼리바위 갈림길 이정표
육모정고개의 모습
육모정고개에서 직진으로 진행하면 도봉산으로 가는 우이령과 북한산의 상장능선으로 연결되는 길이다. 그러나 비탐방지역이라 진행할수 없다.
육모정고개에 설치되어 있는 등산 안내도
육모정고개 이정표
육모정고개에서 우이동으로 내려서는 나무계단의 모습
용덕사 뒤편 통과
용덕사(龍德寺)는 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 산 68-1번지 삼각산 자락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제1교구인 조계사의 직할사찰이다. 삼각산에 자리한 용덕사는 언제 누가 창건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는 사찰이다. 다만 예로부터 용의 명당터로 알려져 뭇 사람들의 기도처로써 지금까지 내려오고 있는 곳이다.이러한 차에 중천(中天) 스님은 이곳을 찾는 사람들이 부처님의 바른 법을 따르고, 용덕사를 올바른 기도도량이 되기를 발원했다. 그래서 몇 년 전 인도에서 부처님의 진신사리 3과(顆)를 모셔와 사찰의 면모를 적멸도량으로 바꾸었다.적멸도량(寂滅道場)은 석존의 진신사리(眞身舍利)를 모신 전각 또는 장소를 말하는 것으로, 석존이 깨달음을 얻은 후 최초의 적멸도량회(寂滅道場會)를 열었던 마가다국 남쪽의 보리수 아래 금강좌(金剛座)에서 비롯된 것이다.
지금의 적멸도량은 대부분 언덕 모양의 계단(戒壇)을 쌓고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봉안하고 있다. 진신사리는 부처와 동일체로 경건한 숭배 대상이 되는 것으로, 석존이 항상 그곳에서 적멸의 법을 설하고 있음을 상징하는 곳으로 여기고 있는 것이다.우리나라에서는 자장(慈藏) 스님이 당나라에서 돌아올 때 모셔온 부처의 정골사리(頂骨舍利)를 나누어 봉안한 5대 보궁이 가장 대표적인 곳이다. 그리고 완주의 안심사(安心寺), 현풍 용연사(龍淵寺), 사천 다솔사(多率寺) 등도 적멸보궁으로 익히 알려져 많은 참배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용덕사도 그러한 의미에서 부처님의 진신이 머무르는 곳으로 앞으로 많은 참배객이 찾는 도량이 될 것이다.
용덕사의 모습
용덕사는 서울특별시 강북구 우이동 산68 (우이동)에 위치하고 있는 사찰이다
용덕사 이정표
신검사 입구의 모습
육모정 매표소 통과
신검사 입구의 모습
사유지란 이유로 철조망으로 가로막아놓은 등로길의 모습
철조망 통과후 뒤돌아본 모습
아름다운 비포장 도로 따라 우이역으로 진행
계속되는 아름다운 비포장 도로의 모습
북한산 우이경전철역
전날 과음으로 산행을 포기할까도 생각했지만 그래도 진행하다가 안되면 포기할 생각으로 진행
대성문에 올라서니 성곽따라 진행하는 쉬운 코스라 무리없이 수도권 55산 제8구간을 마칠수 있었다.
다음 구간은 우이동에서 도봉산, 사패산을 넘어 율대고개까지 약14km을 진행할 예정이다.
우이역 근처 자주가는 백곰집에서 국밥 한그릇을 먹고는 집으로 귀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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