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남정맥 9구간 만월산구름다리에서 징매이고개까지 산행후기

2012. 2. 15. 14:30★ 9 정맥/- 4. 한남[완료]


한남정맥 9구간(만월재~징매이고개)


산  행  지  : 인천광역시 남동구, 부평구, 서구, 계양구일대  만월산(해발187m), 철마산(해발165m),

               원적산(해발196m), 철마산(해발221m), 중구봉(해발276m) 한남정맥 9구간

산행일시  : 2012년 2월 26일(일요일, 당일산행)

산행코스 : 만월산구름다리-만월산-46번국도-백운공원-구루지고개-장고개-철마산-원적로-원적산-

               철마정-164봉-134봉-아나지고개-226봉-철마산-헬기장-286봉-중구봉-징매이고개

산행시간 : 08:32~13~32(5시간, 식사 및 휴식시간 포함)




산행거리 : 약16.8km(정맥 15.8km, 접속구간 1km) GPS거리 18.22km

산행인원 : 35명

산행날씨 : 맑음

산행코스 및 구간거리 : 도상거리(14.8km ), 실거리(16.8km), 소요시간( 5시간30분), GPS거리(18.22km)

만월재-2km/2.3km(30분)-망월산-4km/4.6km(2시간)-장고개-3.8km/4.3km(60분)-아나지고개-1.8km/2km(40분)-천마산-3.2/3.6km(70분)-징매이고개-1.1km(20분)-집결지


지명

거리

(km)

출발

시간

소요

시간

비 고

만월재

-

 08:32

해발 75m,북쪽은 "부평삼거리역"이 위치하고 있으며 남쪽 700m 거리에 간석사거리가 위치하고 있으며 SK농장주유소 왼쪽방향 대각선으로 도로를  횡단하여 구름다리 왼쪽 철조망 사이로 진행

망월산

 08:49

17분  

해발 187m, 인천시 남동구 간석동에 있는 만월산(187.1m)은 옛 인천부 朱雁面에 소재한 朱雁山이다. 이 산의 흙과 돌이 모두 붉은 빛이라 朱자와 산의 형국이 기러기가 나는 것 같다하여 雁자를 붙이어 주안산이라 했다고 전한다.

장고개

4.6

10:07

  1시간18분

해발 m, 서구 가좌동에서 부평구 산곡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옛날 산곡동에는 너른 초지가 있어 말을 키우는 곳이었다(마장뜰) 장고개는 마장으로 가는길이었다 지금은 산곡동쪽으로 군부대가 들어서 장고개는 고개의 기능을 잃었다.

아나지고개

4.3

11:35

1시간28분

해발 m, 부평구 청천동과 서구 가정동 사이에 있는 고개

마산

2.0

 12:09

34분

해발 221m, 인천시 서구 가정동과 계양구 효성동 경계 능선에 있는 산

징매이고개

3.6

  13:22 

   1시간13분

해발 m, 계양산 서쪽을 관통한 서곶에서 부평으로 넘나들던 고개로 옛날 중국으로 통하는 큰길이었다고 한다

집결지

1.1

 13:32

  10분    

해발 m, 9300번 좌석버스 차고지와 계산수영장 부근

 

 

 


 

마루금거리

16.8 

 

4시간50분

 

접속거리

1.1

 

      10분      

 

총 거리

17.9

 

5시간 

 

GPS거리

18.22

 

 

 







[한남정맥]

경기도 안성시 칠장산에서 북서쪽으로 뻗어 김포시의 문수산에 이르는 한강 이남으로 형성된 13정맥중에 하나이다
백두대간상의 속리산 천왕봉에서 가지를 쳐 내려온 한남금북정맥이 끝나는 칠장산에서 북서로 해발고도 200미터 내외의 낮은 산들이 이어져 한강 본류와 남한강 남부유역의 분수령을 이룬다
이 산줄기를 이루는 산들은 도덕산, 국사봉, 상봉, 달기봉, 무너미고개, 함박산, 학고개, 부아산, 메주고개, 할미성, 응봉, 형제봉, 광교산, 백운산, 수리산, 소래산, 성주산, 철마산, 계양산, 가현봉, 필봉산, 학운산, 것고개, 문수산 등이고 총 도상거리는 약190 km로 이어진다

 





한남정맥9구간 (만월산~천마산~징맹이고개)트랙


 한남정맥9구간 (만월산~천마산~징맹이고개)고도표


 




 한남정맥9구간 (만월산~천마산~징맹이고개)지도



[산행 상세안내]

SK농장주유소, 만월재삼거리(북쪽방향 부평삼거리역와 남쪽방향 간석사거리 연결되는 도로), 주유소

    에서 11시 좌측방향 대각선으로 도로를  횡단하여 구름다리 밑을 지나 좌측편 나무테크계단으로 진행

- 만월재 구름다리 이정표 : 만월산정상0.84Km, 만수산정상(도룡뇽마을)1.55Km

- 만월재 구름다리 통과후 나무테크 오름길 진행

- 운동시설물 통과

- 산불감시탑과 KBS 만월 중계기지 통과

- 만월산약수터 삼거리 이정표 : 좌측방향 만월산약수터, 직진방향 팔각정 진행

- 팔각정(SK 주유소에서 약 20여분 소요)

- 시멘트 구조물 있는 무명봉 통과

- 만월산 정상(187), 태극기와 지적삼각점

- 쉼터 통과, 나무의자, 막걸리상점, 조망지, 마루금 우측방향으로 진행

- 나무계단 통과

- 부평삼거리 및 약사사 이정표, 부평삼거리 방향으로 (약사사 방향도 무방)

- 원통이고개, 약사사 맞은편 화장실 건물 좌측 능선이 정맥길

- 무명봉에서 좌측방향 내려 도로 접속후 우측방향 팬더아파트로 진행

- 팬더아파트A동앞 골목으로 진행후 횡단보도 46번 지방도로를 건너 직,우측편 골목으로 진행

- 도로 옆 정양사 입구 입간판에서 정양사 방향으로 진행

- 정양사 입구 지나 온누리장작구이 도로 삼거리에서 좌측으로 진행

- 온누리 장작구이식당 통과후 우측편 능선으로 진행후 좌측편 갈림길로 올라 임도접속후 우측편으로 진행- - 동암산정상, 운동시설이 있는 넓은 공터, 산불감시초소 직진으로 진행

- 두개의 갈림길 좌측방향으로 통과

- 4-1번 송전탑옆 통과

- 등로길 중앙에 삼각점 통과

- 송전철탑 통과

- 철조망 펜스 좌측방향으로 진행후 도로에서 우측편으로 진행

- 도로 철길 위 십정과선교 위를 지나 계속 직진으로 진행

- 횡단보도 직진으로 통과후 부평아트센터 지나 백운공원방향으로 도로건너 삼거리도로 횡단

- 횡단보도 건너 좌측 석바위쪽으로 진행

- 봉천사 입간판에서 우측 능선으로 진입

- 임도길 접소ㄱ 좌측편으로 방향전환후 우측편 능선으로 진행

- 넓은 공터에서 직진으로 진행

- 6번 송전탑을 우측으로 돌아 오르면 산불초소가 있는 무명봉, 삼각점

- 2번 송전탑 지나 구루치고개

- 호봉산 삼거리 이정표 : 로얄타운1.2Km, 호봉산정상0.3Km

- 호봉산 삼거리

- 5번 송전탑과 30번 송전탑 지나 안부, 30번송전탑 이정표 약수터0.5Km, 호봉산정상

- 안부지나 3번 송전탑 지나면 군부대가 있는 장고개 도착

- 장고개, 우측으로 군부대 철조망 및 시멘트 담장을 만나 함께 진행

- 서구노인문화센터 삼거리 이정표 : 호봉산정상1.1Km, 서구노인문화센터50m, 원적산방향

- 정자 직전 운동시설 있는 곳, 감시초소에서 우측으로 진입

- 27번 송전탑 지나

- 군부대 철조망으로 내려서서 좌측으로 진행하면

- 철마산(165), 철만 있는 봉우리

- 도로 절개지, 우측방향 새사미아파트쪽으로 내려가면 6차선 포장도로

- 새사미아파트 앞 횡단보도를 통해 도로 건넌 후 다시 능선으로 진입해 정맥 등로(2016년도 다시 찾은

   마루금에서는 이곳에 동물이동통로가 생겨 급경사지를 내려 동물이동통로로 진행함)

- 119 부평-1 현위치 통과, 능선 타고 무명봉에 오르면 삼각점

- 이정표: 산곡동0.5km, 철마약수터0.7km, 철마정0.8km

- 원적산((元積山, 해발196m), 삼각점, 안내도, 정상석2개, 조망지

- 원적정(179) 지나 164.3봉 통과, 정자, 안내판, 이정표1 : 원적산 정상250m, 내려가는길1.5km

- 이정표2 : 철마약수터1.5km, 석남약수터0.6km, 가정약수터1.2km

- 24번 송전탑 지나 삼거리 돌탑, 우측방향으로 진행

- 돌탑 삼거리 이정표 : 철마정(팔각정)0.7km / 석남동0.3km 가정동0.3km/ 청천도시숲

- 134봉 지나 연속되는 두개의 팔각정 지나 폐쇄된 직진 등로를 계속 타고 진행하면

- 22번 송전탑 통과, 가정약수터갈림길 이정표: 철마정0.9km, 가정약수터0.3km

- 소공원 이정표 : 철마정 1.3km, 내려가는길(부평구 청천동)150m

- 묘목 식재한 구간 지나 현진테크 공장 앞마당으로 내려 진행

- 계속 직진 하면 우측편으로 조이모텔이 나오고 좌측 횡단보도를 건너 진행

- 횡단보도 건너면 좌측에 산행 들머리를 알리는 띠지가 있는 소공원으로 진행

- 소공원 화장실을 지나면 우측편으로 경인고속도로 위의 육교를 통과(아나지고개 방면에 경인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어, 육교이용을 위해 청천동버스정거장 있는 곳에서 우회), 6번 지방도로를 건너 우측으로 진행

- 육교 계단을 내려 공사중인 도로을 우회하여 사거리 횡단보도를 건너 우측방향 보도블록으로 진행

- 전통장작가마솥 입간판 있는 곳에서 좌측 능선으로 진행(전통장작나무식당으로 진행하여 식당마당을 통과

  하여 오르면 마루금 단축로이며 권장)


- 군부대 철조망 통과

- 표적봉갈림길, 좌(표적봉방향) 우(철마산방향), 우측방향으로 진행


- 철마산(鐵馬山, 해발 229.5m), 정자, 안내판, 철마산 삼각점(김포328, 1993 복구), 조망지,

   이정표 : 서곶근린공원2.6km

- 119현위치 : 철-2, 헬기장, 삼각점 H-9655

- 119 현위치 : 철-3, 헬기장

- 119현위치 : 철-4, 이정표 : 계양산1.5Km, 서곶근린공원1.1Km, 동우약수터2.0Km, 천마산1.2Km

- 등로 좌측편 쉼터 정자 통과

-  119현위치 : 철-5, 헬기장

- 119현위치 : 철-6

- 중구봉 가기전에 있는 폐초소 무명봉(286봉),직좌측방향으로 진행

- 119현위치 : G-37, 지적삼각점

- 중구봉(重九峰, 해발275m),  돌탑, 이정표, 정상석, 마루금 계양산방면 좌측 등로길로 진행

- 119현위치 : G-41, 나무계단 내림길 진행

- 징매이고개(장명이고개)-생태이동 통로 계양산 갈림길에서 좌측방향으로 하산

- 징매이터널앞에서 산행종료

 

인천광역시에 있는 한남정맥 마루금 철마산 주능선을 걸으며...


 

기상벨 소리가 요란하게 들려온다. 어제(토요일) 낙동정맥 마루금 등로길의 피로감 때문인지 자리에서 일어서기가 싫고 이불속으로 들어가고 싶다. 그래도 일어나야지...맥을 이어가야지...낙동정맥 산행길은 접속거리가 약12km이며 정맥길이 21Km, 총33km라 어려운 산행길 중간에 트럭(5km)으로 이동하여 약28Km를 감기 몸살이 걸린 상태로 완주하는 그 자체가 이상할 정도였다. 중간에 포기도 생각했지만 이어가야 하는 정맥길이 있어 천천히 낙동정맥 한구간(영양군 신기리-위삼승령-율치재-양구리)을 완주하고는 한남정맥을 위해 베낭을 준비해 본다. 

 

창밖의 날씨는 포근한 봄날씨를 알리고 있지만 몸상태는 엉망이다.  베낭을 챙겨 상일동 육교 앞에 도착하니 한사람도 보이지 않고 이상하여 잠시 생각해보니 시간을 착각하고 30분 먼저 나왔다. 시간에 맞추어 대원들이 도착 하고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는 도착하는 버스에 올라 오늘의 들머리지점인 곳으로 이동한다.

 

버스는 상일동을 출발하여 중부고속도로를 거쳐 외곽순환도로 복정역부근 상부에서 정차하여 산우님 몇분을 태우고는 버스를 목적지로 달려간다. 잠시후 외곽순환도로 간이휴게소에서 간단하게 휴식을 취하고 오늘의 들머리 지점인 만월재 앞 SK주유소 맞은편에 도착한다.

 

지난구간에 이어 이번에도 만월재에 도착하여 오늘은 반대방향인 만월산방향으로 진행한다.베낭을 챙기고 버스에서 내려 사진기로 주변의 위치를  담고는 철조망 사이 우벽을 타고 만월/만수 연결된 구름다리 방향으로 오르면 산행이 시작된다.


08:32 SK농장주유소

위치: 인천 남동구 간석동 1-485(만월로22)

산악회 버스에서 내려 SK주유소방향으로 사진기에 담아본다. 오늘은 지난 구간의 반대방향으로 시작하며 구름다리를 지난 북진 방면으로 한남정맥 9구간의 산행이 시작된다.


08:32 SK주유소에서 바라본 만수/만월구름다리의 모습


08:33 낙석방지 철조망옆으로 통과

버스에서 내려 좌측편 철조망으로 오르면 만월재 구름다리가 나온다. 이곳에서 우측방향으로 방향전환하여 만수/만월구름다리를 건너면 산행이 시작된다. 뒤편으로는 지난구간의 등로가 보이고 이곳으로 오르는 등로는 위험하나 인도 따라 조금더 직진하면 나무테크 계단이 있어 편리하게 올라갈수 있다.

 

08:34 구름다리 이정표 : 만월산정상0.84Km, 만수산정상(도룡뇽마을)1.55Km

이지점에서 지난 구간은 반대방향으로 시작하며 오늘 구간은 구름다리를 지난 북진 방면으로 산행이 시작된다

구름다리 통과

만수/만월 구름다리를 건너 나무계단으로 오르면 능선에  오르고 완만하게 진행하면 운동시설이 설치된곳이 나오고 조금더 진행하면 송신탑이 나온다.


만수/만월구름다리에서 바라본 SK주유소의 모습

 

나무테크계단의 모습

만수/만월구름다리에서 바라본 나무계단 낙석방지 철조망 사이로 올라오는것 보다 조금더 직진으로 진행하여 나무계단으로 오르는것이 안전할것 같다.


나무계단 통과

만수/만월구름다리 지나면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고 이지점에서 약15분 정도 진행하면 만월산정상에 도착한다.

08:35 계단 오르면서 뒤돌아본 만수/만월구름다리의 모습

 

08:35 갈림길 통과

만수/만월구름다리에서 계단을 통과하면 좌측편에도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이곳으로 오르면  편리할것 같다.

 

08:39 운동시설물 통과

만수/만월구름다리에서 계단을 오르면 넓은 공터에 도착한다 주변에는 운동시설물이 설치되어 있고 이곳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정맥길이다.

 

08:39 부평농장 삼거리에서 팔각정방향으로 진행

 

08:41  만월산정상 가기전에 있는 통신탑이 있는 무명봉

만월정가는 길에 산불감시탑과 KBS 만월 중계기지가 설치되어 있고 마루금은 직진으로 진행한다.

08:42 통신탑이 있는 무명봉에서 바라본 인천광역시 부평구 시내의 모습

인천의 최초 명칭은 미추홀(彌鄒忽)이다. 이 지역이 하나의 행정구역으로 등장하는 것은 고구려 장수왕 때(475)로 매소홀현(買召忽縣)이었다. 이후 신라가 삼국을 통일한 후 경덕왕 때 한자식으로 바뀌어 소성현(召城縣)이 되었다.
고려 숙종(1095~1105) 때 숙종 어머니의 내향(內鄕)이었던 관계로 경원군(慶源郡)으로 개칭·승격되었다. 그 뒤 인종(1122~1146)때에 순덕왕후 이씨의 내향(內鄕)이라 하여 인주(仁州)로 승격되었는데 이자겸(李資謙)의 난으로 인주 이씨가 몰락하다시피 하였으나 공양왕 2년(1390)에 이르러 다시 경원부로 환원되었다.
그것은 ‘칠대어향(七代御鄕)’이라 하여 문종에서 인종에 이르는 7대 동안
고려왕실과 관련이 있는 왕비가 탄생한 지역이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왕조가 개창되면서 경원부는 다시 인주로 환원되었다.

그러나 태종 13년 주(州)자를 가진 도호부 이하의 군·현 명을 산(山), 천(川) 두 글자 중 하나로 개정토록 하여 현재의 인천으로 탄생하게 되었고, 그날 (1413년 10월 15일)을 기려 ‘인천시민의 날’ 이 제정되었다.

 

만월정 조망

통신탑이 있는 무명봉에서 직진으로 진행하면 평탄한 등로가 나오고 저멀리 만월산정상 팔각정의(만월정)모습이 조망된다.

 

08:43 만월산약수터 삼거리 이정표 : 좌측방향 만월산약수터, 직진방향 팔각정 진행

 

만월산약수터삼거리를 뒤돌아 본 모습

 

08:46 만월산정상 오르면서 지나온 마루금 등로길 뒤돌아본 모습

 

08:49 만월산정상에 설치되어 있는 팔각정(만월정)의 모습

만월정(滿月亭)

만월정에 오르니 등산객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고 인천시내와 부평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 만월산 아래 부평쪽 골짜기엔 문둥이 시인으로 잘 알려진 한 하운님의 한이 서려있는 곳이다.

‘문둥이 시인’으로 알려진 한하운은 거렁뱅이 생활을 끝내고 부평에 정착해 한센병환자들의 유토피아를 건설하려는 꿈을 실천해가기 시작한다.

그의 시 구절처럼 ‘앞날이 없는 문둥이는 / 돌아서 돌아서면서 무너지는 가슴에’ 희망을 갖기 어렵지만 그는 하루빨리 구걸이나 구호에 의지하지 않는 생활과 경제의 독립을 성취하고 싶어 했다.

 

함경남도 함주 출생인 한하운은 1948년 월남한 후 문전걸식을 하며 쓴 그의 첫 시집 <한하운시초>가 출판되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명동성당 안의 방공호, 용산 삼각지 다리 밑, 강릉, 수원 등지를 헤매며 떠돌이 생활을 하던 한하운은 서울, 경기, 강원 일대의 한센병환자들을 모아 부평에 수용하자는 정부의 교섭안을 받아들여 1949년 12월 30일 밤 우선 70여명의 환자를 이끌고 부평 공동묘지 골짜기로 향한다. 

 

한하운은 부평의 요양원을 성혜원(成蹊院)이라고 이름 붙였다. ‘도리지하 자성혜(桃李之下 自成蹊)’라는 글귀에서 따왔다고 스스로 밝힌 바 있으나 그가 한때 일본에 머물며 몸담았던 곳이 도쿄세이케이고등학교(東京成蹊高等學校)였으니 아직은 온전한 몸으로 일본, 북경 등지를 유랑하며 문학가를 꿈꾸던 아름다운 한 시절을 잊지 못한 때문이기도 하리라. 본래 이 말은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실린 ‘도리불언 하자성혜(桃李不言 下自成蹊)’에서 유래하는데 복숭아와 오얏꽃은 달리 말을 하지 않아도 그 아래에 저절로 길이 생긴다는 뜻이다.

천형의 낙인을 찍고 세상과 등져야 하는 지독한 외로움. 사람들의 눈길을 피해 울타리를 치고
지친 몸을 쉬게 하고 싶은 패배감. 그럼에도 조심스럽게 세상을 향해 손을 내밀고 싶은, 꿈틀대는 갈등이 또한 이 말 속에 담겨있다.

부평을 기지로 하여 시 창작과 한센병환자 복지사업에 더욱 몰두하던 한하운은 <보리피리>, <나의 슬픈 반생기> 등을 연이어 출판하고 보육원, 제약회사, 출판사 등을 운영하며 세상으로부터 인정받을 수 있었다. 1976년 십정동에서 사망한 그의 묘는 지금 김포공원묘지에 자리 잡고 있다.

한하운은 아무도 찾지 않는 만월산의 골짜기를 그들만의 낙원으로 만들고자 했다.
하지만 유토피아를 꿈꾸며 그가 부평에 내딛은 첫 발자국의 자취는 지금은 거의 사라져 버렸다.

한하운은 인간임을 자랑스러워할 수 있는 영원한 ‘이상촌(理想村)’과 자연과 벗하며 지낼 수 있는 문인들의 마을을 건설하고 싶어 했다. 그 꿈의 흔적만이라도 부평에 재현해 볼 수는 없을까. 죽어서 파랑새가 되고 싶었던 한하운의 힘겨운 날갯짓을 우리가 거두어 줄 때가 되지 않았나.


08:49 만월산 정상(187봉)

만월산정상에는 서래야님의 표지기가 나무에 붙혀 있고 조망이 좋았다.

[만월산]
원통산→주안산→만월산으로 바뀌었다. 인천시 남동구 간석동에 있는 만월산(187.1m)은 옛 인천부 朱雁面에 소재한 朱雁山이다. 이 산의 흙과 돌이 모두 붉은 빛이라 朱자와 산의 형국이 기러기가 나는 것 같다하여 雁자를 붙이어 주안산이라 했다고 전한다. 그러나 1861년에 간행된 고산자의 대동여지도에는 한문 표기에 '雁을 岸'으로 바뀌어 朱岸山으로 되어 있다. 이 주안산을 주산으로 한 지봉이 서해바닷가를 휘돌아 해안에 접하고 있었으니 朱岸山이라 함도 그리 잘못된 것으로 보기 어렵다. 이 만월산은 한일합방 후 인천지방의 지지조사에 의하면 인천부 주안면 元通山이라고 기록되어 있고 1986년에 발간된「한국지명 총람」에 「원통산-선유산, 간석동과 만수동 경계에 있는 산, 높이 187m, 신선이 놀았다고 함」이라 기록되어 있다. 옛부터 부평사람들은 주안산으로 부르지 않고 이산을「원통산」 으로 불러 왔으며 지금의 시립묘지 입구인 십정동에서 약사사로 넘어가는 고개를 "원테이 고개"라고 불렀다.그러나 이 산 중턱에 약사암을 창건하며 '東方滿月世界 藥師如來 淨瑠璃國'이라는 佛國을 건설하여 일체 중생의 질병을 치료할 것을 서원하고 본래 산이름인 주안산, 원통산을 「滿月山」이라 고쳤다.

 

08:49 시멘트 구조무리 있는 무명봉 통과

만월산정상에서 내려서면 등로 가운데 시멘트로 만든 구조물이 있다. 무엇에 사용하는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이지점에서 좌틀하여 내려선다,

 

08:50 만월산정상부의 모습

만월산정상에서 진행하면 암능지가 나오고 조심하여 이어간다. 한남정맥 마루금을 진행하면서 육산이 많았는데 이곳 암능지에는 지적삼각점이 있고 그 옆으로 깃대봉에 태극기가 설치되어 있었다. 2016년에 다시 찾았는데 이곳에 만월산 정상석이 설치되어 있었다.

 

08:50 깃대봉에서 바라본 인천시립승화원 공원묘지의 모습

 

08:51 만월산(滿月山:187m)의 모습

인천 광역시 남동구와 부평구의 경계능선에 있는 나즈막한 산으로서 광학산 좌측 능선은 U자 형태로 왼쪽을 향해 입을 벌리고 있고  그 남서쪽을 만월산이 막아주고 있는 형태로 인천 시립공원묘지가 자리를 잡고 있다.

‘만월산(滿月山)’의 원 지명은 ‘원통산(怨通山, 元通山, 圓通山)’이다. 이 산의 흙과 돌이 모두 붉은 빛이라 朱자와 산의 형국이 기러기가 나는 것 같다하여 雁자를 붙이어 주안산이라 했다고도 전한다. 그러나 1861년에 간행된 고산자의 대동여지도에는 한문 표기에 '雁을 岸'으로 바뀌어 朱岸山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주안산(朱雁山, 朱岸山)’, ‘선유산(仙遊山)’, ‘약산(藥山)’이라고도 한다. 怨通’이 ‘元通’으로 바뀐 것은 영조 때 전으로 짐작할 수 있다.

 

 

 

‘원통산(怨通山)’은 굴포운하 실패 이후 당시 주민들에 의해 붙여진 지명이다. 당시, 공사에 동원된 인구를 읍지에서 추정해볼 수 있다. 『여지도서(與地圖書)』에 기록된 동소정면의 인구는 162가구 636명이다. 1가구당 약 4명 정도이다. 노동할 수 있는 인구를 가구당 3명으로 본다면 약 480여 명이다. 국가의 사업으로 인해 생업(농사)을 포기하고 부역(賦役)에 강제로 동원된 것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이에 원통해서 ‘원통(怨通)’의 지명이 남아있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지금의 만월산(滿月山)이름은 1920년경 보월(普月:韓性安)스님이 산 정상에 올라서 산은 그리 높지 않지만 동서남북이 한눈에 다 보이고, 특히 산세가 인천 도심쪽을 향해 좌우로 팔을 벌려 모든 만물을 감싸 안을 듯한 형태를 취하고 있어서 동방만월세계약사유리광불 (東方滿月世界藥師琉璃光佛)이 계신 연원을 취한 데서 유래되었다.
만월산의 약사사(藥師寺)는 전통 불교문화를 접할 수 있는 전통사찰로, 전설을 지닌 ‘돌우물 약수터’에서
흘러 모아진 연못에 꽃과 각종 생태들이 생존하고 있어서 교육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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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8:51 지적삼각점 안내석의 모습

만월산 삼각점은 만월산을 비롯한 인천의 산에 설치된 삼각점은 다른곳에서 본 삼각점과는 다르다.

삼각점의 기준이 되는 수준원점이 인천시 남구 용현동 인하공업전문대 안에 있기 때문에 다른 지역과 좀 특이하게 한 모양이다.


08:53 깃대봉에서 조금 진행하면 수신장치가 있는 무명봉이 나오고 이곳을 통과하면 쉼터가 나오고 주변에는 나무의자가 설치되어 있고 조망이 좋다.

 

08:54 쉼터의 모습

쉼터 주변으로 막걸리 파내하는 노점상이 있고 나무로 만든 의자들이 설치되어 있으며 조망이 좋았다. 마루금은 우측방향 급경사지로 내려선다.

 

 

한남정맥 안내도

조망이 좋은 쉼터 앞에는 "한남정맥 안내도"가 설치되어 있고 이지점에서  앞으로 진행할 마루금이 잘 보이는 위치이다

08:54 마루금에서 바라본 부평구의 모습

쉼터에서 조망이 좋아 인천시 서구와 부평구 사이로 이어지는 한남정맥의 마루금을 바라보면 사진에 담아본다 오늘 앞에 있는 작은 봉우리를 모두 통과해야 한다. 고려시대인  1310년(충선왕 2년)에 부평부(富平府)라는  명칭을 처음 사용하였다고 한다.원래는 이곳이 황무지였으나 농경지를 개척하여  넓은 곡창지대가 되고 수확량이 많았으므로 ‘부할 부(富)’자와 ‘넓은 평(平)’자를 써서 부평이라고 하였단다.

 

08:55 나무계단 통과

 쉼터에서 내려서면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다.

 

08:55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진행

 

08:56 약사사 갈림길 통과

부평삼거리 및 약사사 이정표 : 부평삼거리 방향으로 진행한다. 그러나 약사사 방향으로 진행해도 무방하다.

 

08:57 부평삼거리 및 약사사 이정표가 있는곳에서 내려서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지점에서 좌,우방향 버리고 직진이 정맥길이다.

 

08:58 갈림길 통과

이곳에서 우측방향 버리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했는데 이지점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해도 무방하다 도로로 내려서면 팬더아파트가 나온다.

 

08:59 능선 안부에서 내려서면 도로가 나오고 도로에서 우측으로 진행

 

09:00 도로에서 직진으로 야산을 넘어야 하지만 우측으로 팬더아파트방향으로 진행

 

09:02 팬더아파트 : 인천 남동구 간석동 팬더아파트 다동-나동-가동 진행 후 "경인로728번길"로 방향전환하면 경인로46번도로가 나온다.

 

09:02 능선안부 갈림길에서 좌틀하지 않고 우틀하면 이곳으로 내려온다. 아마도 이곳으로 내려오는것이 좋을것 같다.

 

09:03 팬더아파트 앞에서 골목길로 좌회전하여 진행하여 횡단보도를 통과

 

09:04 46번국도에서 횡단보도 건너 직진으로 골목길 통과

46번 국도는 예전에 십정동에서 약사사로 넘어가는 고개였다고 한다. 굴포천을 뚫어면서 국가의 사업으로 인해 생업(농사)을 포기하고 부역(賦役)에 강제로 동원된 이 얼마나 억울하겠는가? 이에 원통해서 ‘원통(怨通)’의 지명이 남아있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다 원통고개 또는 원테이 고개라고 불렀다고 한다. 이곳에서 건널목을 건너서 한미 부동산, 타올을 끼고 골목으로 들어간다.


09:04 46번국도 횡단보도 통과후 뒤돌아본 모습

 

46번도로 통과 부분 위성사진

 

경인로 46번도로 횡단보도를 건넌 후 "경인로728번길" 뒷모습 경인로725번길로 진입 후 골목길은 우측 정양사 방면으로 방향전환한다.

 

09:05 46번국도 횡단보도 통과후 정양사방향으로 진행하는 모습

 

09:07 정양사 칠대복당의 모습

 

09:08 삼거리 통과

정양사를 통과하면 삼거리가 나오고 이지점에서 우측방향 버리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09:08 온누리 장작구이식당 삼거리

46번국도에서 횡단보도를 통과후 인도 따라 직진으로 진행하여 좌측방향으로 전환하여 이도로 따라 올라도 무방하다 우측편으로 온누리 장작구이 식당이 위치하고 있다.


09:09 담벼락 사이로 보이는 온누리 장작구이 식당의 모습


동암산 입구의 모습


온누리 장작구이 삼거리에서 좌회전하면 진입로 표지판에 "동암산입구"라고 적혀 있고 정맥길은 직진으로 임도길 따라 진행한다.


09:09 온누리장작구이 내부의 모습


09:11 동암산 들머리의 모습

임도길 따라 진행해도 무방하지만 우측으로 단축등로길을 이용하여 진행한다. 동암산 입구 표지판을 따라 2분정도 올라가다가 포장도로를 버리고 우측 등로로 접어드니 선답자들의 시그널이 보인다... 그러다 곧 포장도롤를 만나면서 110봉이 나온다.


09:11 삼거리 통과

임도에서 우측으로 오르면 삼거리가 나오고 이지점에서 좌측으로 오른다. 직진으로 진행해도 무방한 등로길이다.


09:14 동암산(銅岩山, 해발110m)

인천시 부평구 십정동에 위치한 조그만 봉우리로 지도상에는 나타나지도 않는 이름으로 이곳에 옛날에 구리 광산이 있어서 동암산(銅岩山)이란 지명으로 불리워 진다는데 정상에는 그 아무런 표지판도 있지않다

정상에는 산불감시초소가 있고 넓은 공터에 체육시설이 설치되어 있다. 임도에서 오르면 넓은 공터가 있는곳이 나오고 정면에는 산불감시탑이 보이고 그 옆으로 체육시설물이 설치되어 있는 무명봉에 도착한다.


09:16 갈림길 통과

산불감시초소 통과후 갈림길이 나오면 우측방향버리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09:18 갈림길 통과

동암산 산불감시초소에서 진행하면 두번째 갈림길이 나오고 갈림길에서 우측방향 버리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09:18 4-1번 송전탑옆 통과


09:19 넓은공터 통과

4-1번 송전탑을 통과하면 넓은 공터가 나오고 이지점에서 좌측으로 진행하면 정맥길이다.


09:19 등로길 중앙에 삼각점의 모습

등로길 중앙부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고 마루금은 우측방향으로 내려선다.


09:20 송전철탑 통과

우측편으로 송전철탑이 나오고 내려서면 십정과선교에 도착한다.


09:21 뒤돌아본 모습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 버리고 좌측으로 진행


09:22 철조망 옆으로 진행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철조망 옆으로 진행하다 도로가 나오고 우측에 있는 십정과선교를 지나서 횡단횡도로 통과한다.


십정과선교의 모습


십정과선교 통과

인천시 부평구 십정동에 위치한 다리로 바로 우측에 백운역이 보인다. 십정동(十井洞)은 우물이 열개가 있어서 열우물이 있는 마을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고 이곳에 흐르는 개울이 선래천(仙來川)으로 표기되어 있는데

잘못 표기된 거라고 한다. 옛날에 이곳에 배(船)가 들어와 선래천(船來川)이었는데 이곳에 간척사업을 하면서 바다가 육지로 바뀌면서 ‘신선 선(仙)’으로 바뀌는 바람에 선래천(仙來川)이 되었다고 한다.

과선교는 옛날에 배가 통과하는 다리라 하는 과선교(過船橋)라 부르는 모양이다. 지금은 배가 아닌 열차가 지나가고 있으니 상전벽해(桑田碧海)가 된 곳이다.




09:22 십정과선교

삼각점이 있는 능선에서 내려서면 도로가 나오고 우측 인도 따라 진행하면 십정과선교가 나온다. 통과하면 횡단보도가 나오고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부평아트센터가 나오고 좌측 도로 건너편에는 백운공원이 있다.


09:23 십정과선교에서 바라본 1호선 백운역의 모습


횡단보도 통과

십정과선교에서 직진으로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횡단보도가 나오고 횡단보도 통과후 직직으로 진행하면 부평아트센터 옆으로 진행한다.


횡단보도 통과후 뒤돌아본 모습

한남정맥 남진방향 마루금은 십정과선교를 지나 좌측편 철조망 등로길로 올라야 한다.


09:25 부평아트센터

부평아트센터 길 건너편에는 백운공원이 있고 이 지점에서 직진후 삼거리에서 석바위방면 좌측방향으로 횡단보도 건너고 다시 횡단보도 건너후 좌측방향으로 진행하여 봉천사 입간판 앞에서 우측편 능선으로 진행한다.


부평아트센터의 모습


백운공원앞 횡단보도 통과

부평아트센터에서 도로건너 진행하면 횡단보도가 나오고 통과후 좌측으로 진행하다가 봉천사 입간판 앞에서 우측 능선으로 오른다.


09:27 열우물 고개(十井峴)

백운역에서 동암역 사이의 고개를 열우물고개[十井峴]라 하고 이 고개 너머 산중턱에 있는 마을을 열우물이라 한다. 열우물은 다른 마을에서는 대동우물 하나 파기에도 온 마을 사람들이 서둘러 몇 날 몇 달이 걸렸는데 이 마을에서는 혼자서 몇 시간이면 우물을 팔 수 있어서 몇 집 안 되는 마을 사람들이 너도나도 우물을 파서 한 마을에 우물이 열 개도 넘는다 하여 열우물이라 하였다고 전한다.

십정이나 십정리는 열우물을 한자로 표기한 것이다. 일설에는 십정(十井)은 십정(十丁)의 오기로 십정리(十丁里)는 이곳에서 산맥이 십(十)자로 교차되어 생긴 이름이라고 한다. 즉 소래산 산맥이 서쪽으로 흘러 주안산에 이르러 크게 꺾이어 계양산 남쪽 줄기인 원적산 줄기와 교차되어 대정(大丁)도 생기고 십정(十丁)도 생겼다는 것이다.


09:28 봉천사 입구 통과

백운공원 입구 횡단보도 통과 후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다가 봉천사 입간판 앞에서 우측 능선으로 오른다.


백운역-백운공원 통과 루트

한남정맥 마루금은 전철1호선으로 단절되어 십정과선교를 통과하여 횡단보도를 건너 백운공원앞으로 진행한다.


십정과선교-백운공원앞 통과 루트의 위성사진의 모습


 

백운공원 통과루트

백운공원앞 삼거리에서 도로를 건너 절개지 낙석방지 보호철망이 끝나는 부분에서 우측편으로 진행한다. 직전에 "봉천사" 입간판이 있다. 부평아트센타를 통과 후 삼거리에서 부터 등로 모습이다.


09:28 봉천사 입간판 앞에서 우측 능선으로 진행


09:31 임도길 통과

봉천사 앞에서 능선으로 오르면 임도가 나오고 이지점에서 오른쪽  임도 따라 진행하면 되는데 직진 능선으로 오른다.


09:34 능선 안부에서 바라본 지나온 마루금의 모습

능선에서 바라보면 좌측은 부평아트센터이며 우측은 백운공원이다 정면으로 보이는 봉우리를 넘어왔다.


송전철탑 통과

봉천사에서 진행하면 임도가 나오고 임도 우측으로 진행하면 송신탑 옆길이 나오고 이곳으로 오르면 편리할것 같다.


09:34 임도에서 오르면 직진으로 이어지는 마루금


09:36 넓은 공터에서 직진으로 진행


09:37 저멀리 정맥길은 산불감시초소와 송신탑이 있는 곳으로 이어가야 한다


09:39 산불감시초소를 좌측에 두고 진행

09:40 산불감시탑을 통과 후 진행방면의 마루금 모습

오늘 한남정맥 마루금은 계양산 직전에 있는 중구봉을 넘어 징맹이재에서 산행을 종료한다.


09:41송전철탑 통과

이곳에서 부터는 송신탑이 있는곳으로 진행하면 정맥길이다


09:42 송신탑을 통과

오른쪽이 산곡동 방향이고 왼쪽이 가좌동 방향이다. 조금을 지나가니 멋진 데크목이 나오고  곧이어 구르지고개가 나타난다.

가좌동의 유래를 보면 가재가 많이 사는 건지(乾池)가 있었고 고려시대에는 큰 가재 한 마리가 건지에서 나와 ‘가재울’이라 부르던 것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가재리(佳裁里)’라 하였고, 이후 ‘가재’가 변음되어 ‘가좌(佳佐)’가 되었다고 한다. 한편으로 이곳을 건지가 있던 곳이라 하여 ‘건지골’로도 불리었다고 한다.

 

09:44 갈림길 통과

나무계단을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 버리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09:45 구르지고개(九老峴)

인천광역시史에 나오는 지명유래를 보면 화랑농장에서 서쪽 산을 넘어 가좌동이나 십정동을 넘어가는 고개를 말한다. 구르지 고개는 6.25전쟁이후에 생선장수나 소금장수들이 많이 넘어 다녔는데 경사가 급하여 그만 ‘굴러 넘어지지’ 하는 뜻에서 붙어진 이름이라는 설도 있고 또 다른 설은 일제때 군용으로 이 곳 산에다가 굴을 많이 파놓았기 때문에 연유된 이름이라고도 한다. 즉 구르지는 군용지(軍用地)의 변음으로 본다. 얼마전까지도 새우젖 장수들이 이곳 굴에다 새우젖을 보관하기도 하였단다.


호봉산 삼거리 이정표 : 로얄타운1.2Km, 호봉산정상0.3Km


09:46 호봉산 삼거리 통과

호봉산 삼거리 이정표에서 오르면 갈림길이 나오고 이지점에서 좌틀하여 진행한다.


09:52 . 호봉산(해발136m)

지도상에는 136봉으로 표기되어 있는 호봉산 정상에는 아무런 표지판도 없고 4등 삼각점(△ 인천 416 1994 재설)만이 정상을 덩그러니 지키고 있다. 정상을 들렸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우측 정맥길로 걸어간다.30번송전탑이 있는 무명봉에서 우측으로 약30m 이어가면 호봉산(136m)정상이 나오고 이곳에는 이정석이나 표지기가 없다 그리고 정맥길에서 벗어나 있다.


호봉산정상에서 바라본 30번송전탑의 모습

저곳에서 호봉산까지 왕복하고 우측으로 내려선다.


09:53 30번송전탑 이정표 약수터0.5Km, 호봉산정상


09:53 30번송전탑 무명봉에서 바라본 이어가야할 마루금의 모습


09:56 군부대 담벼락으로 진행

30번 송전탑에서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우측에는 담벼락이 있고 정맥길은 담벼락 옆으로 진행한다.


10:01 쉼터 통과

담벼락 따라 오르면 나무의자가 있는 쉼터가 나오고 정맥길은 이지점에서 우측으로 진행한다.


10:03 갈림길 통과

쉼터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지점에서 우측으로 진행한다.


10:03 사각정자 통과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정자 및 운동시설이 있는 공터가 나오고 이지점에서 정자 통과후 좌측으로 내려선다.


10:06 장고개의 모습

사각정자가 있는 쉼터에서 내려서면 군부대 담벼락 옆으로 오르면 된다.


10:07 장고개

서구 가좌동에서 부평구 산곡동으로 넘어가는 고개. 옛날 산곡동에는 너른 초지가 있어 말을 키우는 곳이었다(마장뜰) 장고개는 마장으로 가는길이었다 지금은 산곡동쪽으로 군부대가 들어서 장고개는 고개의 기능을 잃었다.


효성동에서 남쪽으로 멀리 떨어진 부평조병창까지 초지가 무성한 넓은 들판이 있었는데 옛날에 이곳을 마장뜰(馬場)이라 불렀었고 말을 키우며 훈련하던 곳이었고 장고개는 이 마장뜰에서 넘는 고개라는 뜻에서 붙혀진 이름이라 場고개인데 많은 사람들이 마당 장(場)을 긴 장(長)으로 잘못 알고있다. 이 고개는 군부대가 점령을 하는 바람에 확실한 위치를 알 수가 없다.  

 

장고개를 내려서니 좌측엔 텃밭과 버스 종점이 보이고 서구노인문화센터가 보이고 우측에는 군부대 블럭 담장과 군부대 망루가 있으며 고개가 막혀버려 고개인지 알 수가 없다. 그리고 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개울이 있어 山自分水嶺을 위반(?)한다.

 

군부대 너머 조병창은 일제시대에 1939년 조병창 공사가 시작되면서 일제의 군수공장들도 같이 들어와 섰다고 한다. 그 최초의 기업이 ‘홍중(弘中: 히로나까)’이고, 1943년 삼릉(三菱: 미쓰비시)에 인수됐다. 이 공장 터가 현재는 ‘부평공원’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공장 노동자들의 집단 거주지를 공장 남쪽 맞은편에 만들었고 이곳을 ‘삼릉’이라고 부르고 있다. 또한 도로 주변 상점에는 ‘삼릉약국’, ‘삼릉갈비’ 등의 상호를 볼 수 있다. 이 일대는 1960년대에 현재의 부평 6동과 2동을 합해 ‘동수동’이라고 했고, 1970년에 부평6동이 정식 행정동인 ‘동수동’이 됐다가 1977년에 부평6동으로 개칭됐다. 


10:08 원적산 갈림길 통과

장고개를 지나면 원적산 갈림길이 나오고 이곳에서 직진으로 진행한다.


10:09 서구노인문화센터 삼거리 이정표 : 호봉산정상1.1Km, 서구노인문화센터50m, 원적산방향

장고개에서 군부대 담장을 우측에 끼고 조금 올라오니 서구노인문화센터 내려가는 길이 나오고 둘레길 조형물이 등로길 좌측편에 설치되어 있다.


10:15 서구노인문화센터 삼거리 이정표 에서 오르면 산불감시초소가 나온다

10:20 산불감시초소를 지나면 깃대봉이 나온다


깃대봉에서 바라본 이어갈 마루금의 모습 내려서면 철마산터널 현장이 나온다

깃대봉에서 뒤돌아 보면서 지나온 마루금의 모습

10:22 깃대봉을 지나면 저멀리 보이는 곳이 천마산정상이다


철마산(鐵馬山, 해발165m)

인천시 부평구 산곡동 능선에 있는 산으로서 인천을 통과하는 한남정맥길에 오늘 첫번째 만나는 철마산이며 잠시후 다시 계양에 있는 철마산을 만난다. 이 지역사람들은 명신여고 뒷산으로 알려져 있다. 산 정상에는 철마산이란 표식은 그 어디에도 없고 군부대에서 설치한 깃대만 있다. 이곳에서 급경사의 미끄런 자갈길을 내려가니 엄청난 절개지에 터널공사가 한창이다.


10:23 철마산 삼각점


10:26 철마산터널 현장공사장의 모습(철마산터널은 동물 이동통로 형태로 복원할 듯 공사중이다)

2016년 다시 찾아보니 동물이동통로가 완공되어 도로 아래로 내려서지 않고 동물이동통로를 이용하여 우너적산으로 진행할수 있다.

철마산에서 내려서면 새사미아파트가 나온다


10:26 원적산의 모습

철마산정상에서 내려서면서 건너편 원적산정상 마루금을 보며 사진에 담아본다.


10:29 천마산에서 내려서면 우측으로 새사미아파트가 나오고 도로에서 횡단보도 건너 능선으로 오른다.


횡단보도 통과

새사미아파트 앞 도로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능선으로 오르면 원적산정상에 도착한다. 횡단보도 옆으로 버스정류장이 보인다.


10:30 새사미아파트 옆 등로상 한남정맥안내도


10:33 횡단보도 통과후 좌측으로 진행하면 버스정거장이 있고 이지점에서 우측방향으로 오른다


10:40 119 부평-1 현위치 통과

 철마산터널 공사현장 도로에서 오르면 나무계단이 나오고 119 부평-1 현위치 안내판이 나온다


10:43 원적산 직전의 삼각점이 있는 무명봉 이정표: 산곡동0.5km, 철마약수터0.7km, 철마정0.8km


원적산 삼각점


10:43 원적산정상 옆에는 조망이 좋은곳에 나무로 테라스를 만들어 놓았다


10:50 원적산정상 이정석


원적산(元積山, 해발196m)

인천시 부평구와 서구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서 2개의 표시석과 만월산에서 만난 똑같은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고 전망대도 있다. 우측의 부평과 좌측의 인천시내가 한 눈에 들어온다. 한가지 아쉬운 점은 박무로 인하여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고산자 김정호의 “大東地紙”에는 원적산(園寂山)으로 표기되어 있고 여암 신경준의 山經表에는 “元積山 富平西十五里”라고 표기되어 있다.또 다른 원적산 이정석(자연보호 인천산악회 기증)


원적산 이정석에서 인증샷


10:51 원적산정상 옆에는 한남정맥 안내도

오늘 만월산에서 장명이고개(징맹이고개)까지 산행을 마치면 앞으로 3구간이면 한남정맥을 졸업한다. 수도권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는 정맥길이기에 산행하기에는 안성마춤 이나 난 개발로 인하여 정맥길이 절개되고 군부대로 인하여 맥이어가는것이 어려움이 많았다.


10:51 원적산(해발196m) 정상에서 또 다른 원적산 이정석

해발 211m, GPS기준 : 인천광역시 통,리장연합회 기증


10:54 원적정(예전에는 철마정)

원적산정상에서  250m 진행하면 철마정(팔각정)이 나온다 주변에는 이정표와 안내판이 있고 그 옆으로 나무의자가 있어 쉬어갈수 있게 만들어 놓았다 이곳에서 간단하게 물한모금과 점심식사를 하고는 장명이고개로 진행한다.


철마정 이정표1 : 원적산 정상250m, 내려가는길1.5km

           이정표2 : 철마약수터1.5km, 석남약수터0.6km, 가정약수터1.2km


원적정(元積亭)

5년에는 철마정(사진 참조) 으로 되어있었는데 2016년 방문시에는  원적정으로 바뀌었고 정자도 상당히 깔끔하다.


원적정의 유래 표지판

철마정(鐵馬亭)

철마산은 원래 천마산으로 산중턱 큰 바위에 말밥굽 자국과 같이 파져 있어 이를 마제석(馬蹄石)이라 하고 이 산을 마제봉이라 불러오고 있다.

 이 산밑에 가정동 마을에는 합천이씨가 대성을 이룬 명문이데 이 문중에서 아기장사가 태어나 그 부모는 후환이 두려워 아기장사를 죽이자 이 산에서 용마가 나와 울면서 떠났다는 전설이 있어 마제석은 그 용마의 발자국이라 전하고 이 산을 천마가 나왔다고 하여 천마산이라 부르게 되었다 한다.

또한 철마산은 192,000평의 광활한 산림과 표고 226m로 우리 서구 및 부평구와 계양구등 3개구가 연접하고 있으며 1966년8월31일 건설부 고시 제2701호에 의거 도시자연공원으로 지정되었으나 주민 편의 시설등이 없어 서기 1995년 석남약수터 주변 개발계획을 구체화 하게 되었다.

따라서 이 산의 이름을 따서 서구 관내를 한눈에 조망할 수 있는 철마정 건립계획을 수립하여 한식목구조 및 철근콘크리트 구조로 총 사업비 2억9천만원을 들어 건축면적 43.83평방미터, 높이 5.55m 2층으로 96.9.9일부터 97.6.30일에 걸쳐 환공, 오늘에 이르게 되었다./1997.6.30/인천광역시 서구청    

                   

10:55 철마정에 있는 원적산 등산로 안내도


철마정에서 바라 본 진행방면의 마루금


11:05 철마정에서 간식을 하고 내려서면 우측에 이정표와 원적산 등산로 안내판이 있다


11:10 돌탑통과

원적산 철마정에서 약10여분 진행하면 돌탑이 나오고 이지점에서 좌측방향 버리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11:10 돌탑 삼거리 이정표 : 철마정(팔각정)0.7km / 석남동0.3km 가정동0.3km/ 청천도시숲


11:12 가정약수터갈림길 이정표: 철마정0.9km, 가정약수터0.3km

원적정에서 내려서면 24번 송전철탑이 나오고 곧바로 커다란  돌탑이 나타난다. 이곳에서 직진으로 진행하면 가정동방면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한남정맥 마루금은 우측방향이다. 동네 사람들은 가정동으로 가는 사람들이  많다.(독도에 주의를 요함) 조선시대 개국공신인 숙위공(肅魏公) 조반의 별장인 가정(佳亭)이 있었다고 해서 유래된 동명이라고 한다.


11:17 가정약수터갈림길 통과

가정약수터갈림길 이정표에서 진행하면 갈림길이 나오는데 이지점에서 좌측방향 버리고 우측방향으로 직진하면 정맥길이다.


11:18 원적정에서 내려서면 돌탑이 나오고 돌탑에서 우틀하여 진행하면 우측편에 잘 정리된 묘지가 나온다 이지점에서 진직으로 진행하면 청천동 도로(아나지고개 직전 도로)가 나온다


11:19 공원 통과

원적정(철마정)에서 내려서면 공원 같은 곳이 나오고 동네 주민들이 산책을 하시는 모습도 가끔보인다 군데 군데 정자가 있어 여름에는 쉬어가는곳으로도 안성마춤이라 생각된다


11:20 소공원 이정표 : 철마정 1.3km, 내려가는길(부평구 청천동)150m, 어디로 내려가는것인지 정말 궁금하며 이정표가 요상하다.


11:20 쉬어가는 장소(쉼터1)

쉼터 우측편으로 청천동 공장지대가 나타나고 서구에서 조성한 조림지가 나타나고 정자가 있다. 이쪽에서 우측 공장으로 내려가는 좌측은 한신빌리지 내려가는 길이다. 원적산 등산 안내도를 끼고 좌측으로 내려간다.

이 우측에 공장지대가 옛날의 안하지골이다. 철마산 동쪽에 있는 깊은 골짜기로 청천(淸川)의 발원지이다

. 이 골짜기는 도둑의 소굴로 ‘도둑굴’이라 불렀는데 조선조 말기 이 곳을 본거지로 신출귀몰한 도둑의 두목이 있어 행인들을 몹시 괴롭혔다. 고종 22년 정병하(鄭秉夏)가 당진현감에서 부평부사로 승진되어 와서 이 도적떼를 소탕시켰다 한다. 일제 때에는 일본군 포병대가 병참(兵站)에서 이 깊은 골짜기에 대포를 쏘아 연습하던 곳이기도 하다.


11:23 정자를 통과하여 내려서면 민가가 나오고 진입하여 급우회전하여 진행하면 절개지가 나온다.


11:24 민가을 들어가서 급 우회전하여 진행하면 민가 뒤편에 있는 밭 사이로 진행한다

민가에서 급우회하여 밭에서 절개지로 내려와 청천동 버스정거장앞 횡단보도를 건너 넓은 공원로를 따라간다 

11:25 절개지 내려와서 뒤돌아본 장면


청천동 도로(아나지고개 직전 도로)


11:26 청천동 버스정거장앞  횡단보도 건너 직진으로 진행한다


11:26 횡단보도 지나 직진으로 진행하면 놀이시설이 있고 곳이 나오고 이지점에서 계속 직진으로 진행한다


11:28 공원로 놀이시설 지나면 좌측에 화장실이 있고  통과 후 갈림길 우측에 있는 육교를 진행한다


11:29 컨테이너가 있는 지점에서 우틀하여 경인고속도로 위의 육교를 통과(아나지고개 방면에 경인고속도로가 통과하고 있어, 육교이용을 위해 청천동버스정거장 있는 곳에서 우회하였다)


경인고속도로 위의 육교의 모습


컨테이너 모서리에 붙혀있는 한남정맥 표지기의 모습


11:30 경인고속도로 위 육교에서 바라본 서울방면

서울 인천 사이 잇는 고속 도로. 길이 24킬로미터, 너비 20.4미터로, 정식 명칭 ‘서울 인천 고속 국도이다. 1969 7월에 개통된 우리나라 최초 고속 도로이다.


경인고속도로 위 육교에서 바라본 인천방면 바로앞 입간판에는 서인천로 가는 안내판이 보인다


경인고속도로위 육교를 지나면 구도로의 육교가 나오고 첫번째 무시하고 끝에 있는 우측 계단으로 내려서면 정맥길이다


11:31 육교에서 바라본 부천방면의 모습


육교에서 바라본 가정오거리(서인천)방면의 모습


육교에서 우측으로 내려섰다가 직진으로 아나지고개까지 진행한다


인도에 내려와 지나온 육교를 사진에 담아본다


11:32 하나아파트 입간판 있는 곳에서 좌틀하여 조광아파트 지나 하나아파트까지 진행 하나아파트 201동 우측에 있는 나무계단으로 올라도 되지만 직진하여 아나지고개에서 좌측 능선으로 오른다


11:33 하나아파트 입간판을 직진으로 지나면 조광아파트 시내버스정류장이 나오고 조금더 진행하면 좌측편에는 재개발을 위해 빈 아파트가 있었다


11:35 아나지고개(아나지골)

안아지 고개는 부평구 청천동과 서구 가정동 사이에 있는 고개를 말한다. 이 고개의 이름에 관해서는 그럴 듯한 여러 가지 전설이 있다. 첫째는 이곳의 지형이 마치 기러기가 날아드는 모습이라 붙여진 이름이라는 것이다. 즉 청천동 동쪽에서 바라보면 서구 가정동 앞바다에서 기러기가 날아드는 것이 보였다.사람들은 말했다.
“기러기가 날아드는 모습이 참으로 아름답군.”그때부터 한자의 기러기 안(雁)자를 써서‘기러기가 내려 앉는다’는 뜻으로 안하지(雁下地)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둘째는 조선 태조 이성계와 무학대사와 관련된 전설이다. 이성계는 새 도읍지를 정하려고 무학대사를 시켜

적당한 장소를 찾게 하였다. 무학대사는 한양을 거쳐 부평에 왔다. “이곳은 들이 넓고 비옥하여 새 나라의 수도로 삼을 만하군.”무학대사는 중얼거렸다.그러나 그는 곧 탄식했다.“아, 참으로 아깝군. 풍수의 이론으로 보면 이곳에 백 개의 고개가 있어야 하는데 아무리 세어보아도 아흔 아홉 개밖에 없지 않은가.”그의 말에 따라 그때부터 아흔아홉 번째 고개라는 이름이 붙었는데 그것이 안하지로 바뀌었다. 위에서 말한 원통현도 이 전설과 연관하여 또 다른 뜻이 있다.무학대사는 탄식했다.“아, 고개가 아흔아홉 개밖에 없으니 원통하다.” 그래서 이때부터 원통현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것이다.


셋째는 위의‘굴포천과 원통이 고개’에서 말한 김안로의 운하사업과 관련된 전설이다. 그때 운하를 만들면서 세 번째 시도로 굴포천에서 현재의 청천동 청천천과 연결시켜 수로를 깊이 팠다.“여기도 실패하면 그 때는 끝이야. 어떻게든 성공해서 전하와 조정의 걱정을 덜어야 해.”그는 일꾼들을 독촉해 청천천을 깊이 팠다. 그때 깊이 판 청천천이 고개 안에 있는 형상이 되었던 터라 ‘고개 안에 있는 낮는 땅’이라는 뜻으로 ‘내하지(內河地)’라 했는데 그 말 중 한자의 안 내(內)자가 우리말로 변해 안하지가 되었다는 것이다.


넷째는 주막에서 술을 파는 여인의 이름과 관련된 전설이다. 1884년 조선 조정은 현재의 원창동 갯말(한자음을 빌어 포리라고도 했다)에 큰 배가 닿을 수 있는 포구를 만들었다. 그리고 거기 전조창이라는 세곡 보관 창고를 지어 세곡을 보관했다가 때에 따라 필요한 만큼 우마차에 싣고 한양으로 갔다. 우마차 짐꾼들은 현재의 가정동과 청천동 사이에 있는 고갯길을 넘으면서 한 번씩 쉬며 지친 소에게 여물을 먹이고 자신들도 막걸리로 목을 축였다. 그들이 쉬고 간 주막에‘안아지’라는 아름다운 여인이 있었다.“여러분, 애쓰셨어요. 어서 막걸리 한 사발로 목을 축이세요.”그녀가 반색하여 외치면 우마차꾼들은 고개를 끄덕이며 우마차를 세웠다.“안아지, 그대는 참 아름답소. 그대가 아름다운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준다면 우리는 더욱 행복할 것이오.”사람들은 땀을 닦으며, 막걸리를 마시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안아지라는 여인은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며 주막 밖으로 나와 노래를 불러 주었다.우마차꾼들은 그렇게 한숨을 돌린 뒤 다시 정부 세곡을 실은 우마차를 끌고 서울로 향했다.


한 곳의 땅이름을 두고 이렇게 네 가지 전설이 있는 것은 드문 일이다. 그만큼 중요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고개였던 것이 분명하다. 지금 서울대학교에 있는 조선 시대의 관립 도서관인 규장각 도서 중에 옛 지도가 있는데 그것에는 안하지 고개가 ‘구십현(九十峴)’이라는 한자 이름으로 실려 있다. 

아나지고개
조선을 건국한 이성계는 무학대사로 하여금 도읍지가 될 만한 곳을 두로 살펴보게 하였다. 산수가 좋은 곳을 찾아 다니던 무학대사는 부평에 이르러 들이 넓고 기름지며 가까이 한강까지 끼고 있으므로 도읍지로 충분하다고 생각하였다. 도읍 터는 백 개의 봉우리를 가져야 하는데 세어 보니 봉우리가 꼭 백 개였다. 그 소식을 듣고 달려 온 이성계는 부평 땅이 능히 도읍이 될 만한 곳이라 기뻐하며, 주안산(만월산)에 있던 주안사로 무학대사를 보내어 산신께 제사를 지내도록 당부하고는 흡족한 마음으로 개성으로 돌아갔다.뒤에 다시 백관을 이끌고 찾아와 확인하니 백 개였던 봉우리가 아흔 아홉 개밖에 되지 않았다. 한 개의 봉우리를 미처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한 개의 봉우리는 원통해서 주저앉아 원통이 고개가 되었다고 한다. 마지막 99번째 봉우리로 가는 고개는 지금도 아흔 아홉 번째라는 뜻의 '아나지 고개'로 불리고 있다


아나지골 전통장작구이 입간판 뒷능선 진행

한남정맥길은 아나지고개 좌측편 전통장작가마솥 아나지골 입간판이 세워져 있는 곳으로  진행하다가 능선으로 오른다 능선 안부에는 송전탑이 있어 인도에서 송전탑을 보고 오르면 된다.


11:35 입간판 뒤편에 있는 능선으로 진행

아나지골 전통장작구이 입간판 뒤편 능선으로 오르면 무명봉에서 좌틀하여 내려서면 우측편으로 군부대 철조망이 나온다. 완만하게 한차례 밀어올리면 조망이 좋은 철마산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11:38 군부대 철조망 통과

아나지고개에서 능선으로 오르면 군부대 철조망이 나오고 이지점에서 좌측방향 오르막으로 진행한다.


11:49 이정표 통과

아나지고개에서 약10여분 철조망 따라 오르면 등로길에 표지기가 설치되어있다. 표지기에서 계속 직진으로 진행하면 철마산, 중구봉을 지나 징맹이재(장명이고개)로 이어진다.


12:00 표적봉 갈림길 통과

군부대 철조망 따라 오르면 표적봉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편에는 돌탑의 표적봉이 있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철마산정상으로 진행한다.


 표적봉정상의 모습

표적봉 정상은 마루금에서 좌측방향으로 약간 비껴 있지만 다녀온다. 정상부 주변에는 정상석은 보이지 않고 표지 표지기만 있고 중앙부에는 돌탑이 설치되어 있었다. 아나지고개 하나아파트 뒤편으로 올라서면 표지봉을 찍고 철마산으로 이어갈수 있다.

표적봉정상 중앙 돌탑에 있는 표지기


12:01 표적봉 갈림길 통과

표적봉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철마산정상이 나온다

 

12:09 철마산(鐵馬山, 해발 229.5m) 정상의 정자

현위치 : 철-1

인천시 서구 가정동과 계양구 효성동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 오늘 한남정맥길 인천구간에서 3번째 만나는 철마산이다. 대체적으로 천마산(天馬山)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이 곳에서 용마가 났다고 하여 용마골이라 부르기도 하고 산 중턱 바위에 말발자국처럼 보이는 흔적이 곳곳에 남아 있어 마제석이라 하기도 하고 마제봉이라 하기도 하고, 다른 하나의 구전은 이 곳이 고려말 합천 이씨의 집성촌인데 문중에 날개 달린 장사

아기가 태어났는데 태어난 지 이레만에 걸어 다니고 양 어깨에 날개가 있어 날아 다니기도 하였단다.

당시 나라에는 이런 아기가 태어나면 구족까지 멸하는 법이 있어 후환이 두려운 부모는 아이를 다듬이 돌로 눌러서 죽였다고 합니다. 그 때 하늘에서 천마가 나타나 집 주위를 돌면서 구슬프게 울어 아이의 죽음을 슬퍼하다가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 때부터 이 곳을 天馬山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철마산
계양산의 한 줄기가 서쪽으로 뻗어 높이 뭉친 산을 철마산(鐵馬山) 이라 부르고 있으나 원래의 이름은 천마산(天馬山)이다. 이 산의 유래는 암석에 말발굽(馬蹄) 이 많이 새겨져 있기 때문이다.또한 산 계곡을 용마가 나타난 곳이라 부르는데 이 산에서 천마가 나왔다고 전해지기 때문이다. 이 산 기슭에는 고려 때부터 살아 왔다는 합천 이씨와 백천 조씨가 많이 산다. 조선조 중기 이 이씨 문중에는 한 장사가 태어났는데 그 아기는 태어난 지 일주일만에 걸음을 걸었다 하며 아기의 양어깨에 날개가 달려 하늘을 오르내렸다 한다. 그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장사가 나면 나라님께 반역할까 두려워하여 장사를 없애버리는 관습이 있었는데 이 장사의 부모들도 벌벌 떨며 외인이 알기 전에 이 아기장사를 죽이고자 다듬이 돌로 눌려 죽이려 할 때 천마산에서 천마가 나타나 큰 소리를 내어 울며 아기장사의 집을 빙빙 돌다가 아기장사의 목숨이 끊기니 천마도 어디론가 사라졌다고 한다. 이씨 문중에는 많은 인물이 배출되었으나, 그런 후에는 큰 인물도 나지 않았다고 하며, 그래서 이산을 神聖視 하고 天馬山, 馬蹄峯 이라 부르고 있다.


12:10 철마산 삼각점(김포328, 1993 복구)


12:10 천마산정상에서 바라본 서인천의 모습


천마산정상에서 서쪽방향으로 바라본 모습 바로 앞에 아파트건설 현장이 보이고 저멀리 희미하게 영종도가 보인다.


12:11 천마산정상 이정표 : 서곶근린공원2.6km


12:11 철마산에서 진행방면의 계양산


12:13 철마산과 계양산 우측방면에 있는 군부대의 모습


12:16 119현위치 : 철-2


12:17 삼각점 H-9655


12:17 삼각점이 있는곳에서 직진으로 진행


12:19 천마산에서 바라본 인천 서구 심곡동의 모습


12:26 119 현위치 : 철-3 


12:35 119현위치 : 철-4


12:36 이정표 : 계양산1.5Km, 서곶근린공원1.1Km, 동우약수터2.0Km, 천마산1.2Km


12:37 쉼터 정자가 있는 무명봉를 우측으로 진행


12:46  헬기장과 철마산 286봉


12:46 119현위치 : 철-5


12:52 119현위치 : 철-6


12:55 중구봉 가기전에 있는 폐초소 무명봉(286)의 모습

인천시 서구 심곡동과 계양구 효성동의 경계능선에 있는 산으로 산전체가 군부대이다. 이곳은 군부대 초소가 있어서 초소봉이라 불렀으나 지금은 군부대가 철수하여 등산객들이 마음대로 왕래를 할 수 있는 곳으로 막걸리 장사와 정자와 벤치들이 설치되어 있고 인천 사람들이 효성산이라 부른다고 한다. 


12:56 폐초소(286) 무명봉에서  직진으로 중구봉방향으로 진행


12:57 폐초소(286) 무명봉에서 바라본 부천방향의 모습


12:57 중구봉으로 진행하면서 좌측방향으로 바라본 계양산 정상의 모습


13:00 119현위치 : G-37


중구봉 삼각점

급경사지을 힘들게 치고 오르니 좌측편으로 철조망이 있고 중구봉 삼각점이 나타난다.

대체적으로 정상에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는데 이곳 중구봉 삼각점은 3분정도 못 간 거리에 따로 설치가 되어있다.


13:06 중구봉 직진에 있는 지적삼각점


13:09 중구봉정상

중구봉 정상에는 중앙부에 돌탑이 설치되어 있고 삼각점과  무인카메라, 이정표가 있다.마루금은 계양산방향 징맹이재로 내려서야 한다.



13:09 중구봉(重九峰, 해발275m)

이정표 : 천마산, 계양산670m(징매이고개), 교대2,020m 육각정자740m, 효성약수터660m

인천시 계양구 효성동과 서구 심곡동의 경계 능선에 있는 산으로서 경명산(景明山)으로도 불린다. 중구봉은 고려시대에 붙혀진 이름으로 인천이씨들의 전성기인 고려시대에 인천이씨가문에서 왕비들을 많이 배출하여 ‘왕비들의 친정’ ‘御鄕’으로 불리면 많은 행사가 있었다고 한다. 중구봉은 고려시대때 불교행사인 중구절(重九節: 음력 9월9일)의 행사를 치른 산이라 하여 중구봉이라고 되었다고 한다.


13:12 119현위치 : G-41


13:22 중구봉에서 본 장명이고개(징매이고개의 생태동물이동통로의 모습)와 계양산의 모습


중구봉에서 내려서면 나무계단이 있고 장명이고개의 도착한다 



13:22 징매이[徵鷹峴]고개에서 계양산 방면의 모습 터널의 모습



13:24 징매이[徵鷹峴]고개 이정표: 중구봉670m /계양산정상1480m 피고개1,680m



징매이[徵鷹峴]고개 생태통로 안내문


계양산갈림길 통과

중구봉에서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오늘의 산행은 이곳에서 종료된다. 좌측으로 내려서면 장명이고개에 내려서고 우측으로 진행하면 다음구간의 계양산 정상으로 이어간다.



13:25 징맹이[徵鷹峴]생태통로에서 바라본 나무계단의 모습과 장명이(징매이)고개의 모습



징맹이고개[徵鷹峴]의 모습

장명이생태통로에서 바라본 인천 계양구 계산동(인천 서구 심곡동)방면의 모습 반대편은 인천 서구 공촌동방면이다. 계양산 서쪽을 관통한 서곶에서 부평으로 넘나들던 고개로 옛날 중국으로 통하는 큰길이었다고 한다,

고려 때는 삼남 지방에서 개성으로 통하는 길이기도 하다. 징맹이고개 라고 부르는 이 고개를 중심으로 동서(한남정맥)의 능선을 따라 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아 중심성을 쌓았는데, 지금은 완전히 없어지고 성문 공해루가 있던 초석만 남아있다고 한다.

징맹이 고개란 말은 매를 징말한다는 징매에서 나왔는데 고려 중엽에 매를 길들여 꿩, 비둘기 등을 잡는 매사냥이 성행해 나라에서는 도성 안에 매방을 설치하였다고 하는데. 매 때문에 주민의 피해가 커지자 충렬왕은 이를 경명현으로 옮기면서 징맹이고개라는 이름을 얻게 되었다.징맹이고개 서쪽 50m 지점인 공촌동에는 고려 때 나라에서 세웠던 국영 매방자리가 있다.

고려 충렬왕은 매사냥을 즐겨 송도에 있던 매방을 이곳으로 이전하고 자주 이 곳을 찾아오게 되고, 그래서 계양 도호부를 길주목이란 목사 고을로 승격시켰다고 한다. 심곡동은 깊은 곳에 있는 마을이라는 뜻으로 이 마을이 탁운봉 바로 밑 깊숙한 골짜기에 있어서 생긴 이름이라 한다.  

이 고개는 고려 때 고을 이름을 따서 ‘수주고개[樹州峴]’라 이름하였는데, 원(元) 간섭기 충렬왕(忠烈王)이 매사냥을 즐겨 국영 응방(鷹坊)을 이곳에 설치하고 재위시 다섯 차례나 이곳에 들러 좋은 매를 징발한 것에 유래하여 ‘징매이고개[徵鷹峴]’라 부르게 되었다고 한다.

후에 변음되어 ‘징맹이고개’가 되었고 한자로 표기하면서 다시 ‘경명이고개[景明峴]’로 변음되었다고 한다.

한편 ‘경맹이고개’라고도 하는데, 이는 충렬왕이 매사냥을 즐길 때 매를 경쟁시켜 산짐승을 잡았다 하여 생긴 이름이라고도 전한다.



계양산방향의 모습

중구봉에서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으로 내려가면 장명이(징매이)고개터널이 나오고 우측으로 진행하면 다음 구간인 계양산으로 오른다.



13:26 징매이[徵鷹峴]고개

위치 : 인천광역시 서구 공촌동 163-20

징매이[徵鷹峴]동물이동통로에서 좌측편 계단을 내려 오늘 한남정맥 9구간 산행을 종료하고는 산악회 본부가 설치되어 있는 집결지로 터널을 통과하여 진행한다.

징매이고개에서 서쪽으로는 인천 서구 공촌동이 있고 동쪽으로는 인천 계양구 계산동이 있으며  연결하는 경명대로의 상부이다. 오늘 산행의 한남정맥길은 징매이고개에서 종료를 하고, 터널을 지나 우측편에 있는 9300번 좌석버스 차고지와 계산수영장 부근의 집결지로 이동한다.


 


한남정맥 마루금 인천광역시[만월산-호봉산-철마산-중구봉] 구간을 걸으며...


지난구간에 이어 이번에도 만월재 SK주유소 맞은편에 버스가 도착한다. 베낭을 챙겨 낙석방지 철조망 사이 웅벽을 올라 만수/만월 연결다리를 건너 만월산정상에 오른다. 정상주변에는 송신탑과 팔각정, 삼각점이 설치되어 있었고 사방이 확트여 있어 만월산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좋았다

 

만월산정상에서 나무계단으로 내려서면 부평삼거리 및 약사사 갈림길이 나오고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는 지점에서 조금더 내려서면 삼거리가 나온다. 이지점에서 좌,우방향 버리고 직진이 진행하면 안부가 나오고 안부에서 내려서면 도로가 나온다

 


도로에서  팬더아파트가 있는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다가 한빛교회, 마트, 팬더아파트 A동앞 우측 골목으로 진행하면 46번국도가 나오고 국도를 횡단하여 정양사 사찰 방향으로 진행하다가 온누리장작구이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방향전환하여 조금 진행후 우측편 능선으로 오른다

 

임도에서 우측편 능선으로 오르다가 갈림길에서 좌측편으로 한차례 밀어올리면 임도길에 도착하고 임도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넓은 공터가 있는곳이 동암산정상이다. 바로 앞으로 산불감시탑이 보이고 그 옆으로 체육시설물이 설치되어 있고 직진으로 진행하면 두개의 갈림길이 나오는데 우측으로 진행한다

 

송전탑을 지나 갈림길에서 좌측으로 내려서면 철조망 옆으로 진행하다 도로가 나오고 우측에 있는 십정과선교를 지나서 횡단횡도로 통과한다. 그리고 부평아트센터를 지나 삼거리에서 횡단하여 좌측편 인도로 진행하다가 보천사입간판 앞에서 우측편 능선으로 오른다. 능선으로 오르면 임도가 나오고 이지점에서 오른쪽  임도 따라 진행하면 되는데 직진 능선으로 오른다

 

산불감시초소를 좌측에 두고 통과하면 송신탑이 나오고 통과하면 나무계단이 나온다 내려서면 갈림길인 구라지고개 임도가 나오고 임도를 직진으로 건너 능선으로 오르며 송전탑이 있는곳에서 우측으로 조금 이어가면 호봉산정상이 나오고 다시 복귀하여 우측정맥길 이어간다

 

군부대 담벼락을 따라 진행하면 쉼터가 있는 갈림길에서 우측으로 진행하면 정자 및 운동시설이 있는 공터가 나오고 이지점에서 정자 통과후 좌측으로 내려서면 장고개가 나온다

 

장고개를 통과하여 오르면 천마산정상이 나오고 천마산에서 내려서면 우측에 새사미아파트가 보이고 도로에서 횡단보도 건너 능선으로 오르면 원적산정상에 도착한다

 

원적산정상에서 진행하면 원적정이 나오고 약10여분 진행하면 돌탑이 나오고 이지점에서 좌측방향 버리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아나지고개가 나온다

 

도로에서 횡단보도 지나 직진으로 진행하면 놀이시설이 있고 곳이 나오고 이지점에서 계속 직진으로 진행하다가 컨테이너박스가 잇는 갈림길에서 우측방향 경인고속도로육교위를 지나 육교를 내려서면 인도에 하나아파트 입간판 있는 지점에서 좌틀하여 조광아파트 지나 하나아파트까지 진행 하나아파트 201동 우측에 있는 나무계단으로 올라도 되지만 직진하여 아나지고개에서 좌측 능선으로 오른다

 

아나지고개에서 능선을 오르면 군부대 철조망 갈림길이 나오고 군부대 철조망 따라 오르면 표적봉 갈림길이 나오고 좌측편에는 돌탑의 표적봉이 있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철마산이 나온다

 

철마산에서 헬기장을 지나면 폐초소가 나오고 조금더 진행하면 오늘 산행지에서 제일 높은 최고봉인 중구봉이 나온다

 

중구봉에서 나무계단으로 내려서면 징매이고개 생터이동통로가 나오고 오늘 산행의 종료지점이기도 하다

 

우측방향은 다음 산행의 들머리지점이며 오늘은 좌측 징매이터널로 내려선다 터널을 지나 9300번 좌석버스 차고지와 계산수영장 부근의 집결지로 이동하여 산악회에서 만들어준 김치찌게와 막걸리 한잔 마시고는 출발하는 버스에 올라 깊은 꿈나라로 떠나본다

오늘도 무사히 한구간 끝낼수 있게 도움을 주신 모든분께 감사의 말씀 지면으로 전하며 다음 산행에서 반갑게 뵙길... 

 

 



 




2016년 따뜻한 봄날 다시찾은 한남정맥 철마산구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