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 9. 7. 13:08ㆍ종주산행
◈ 산 행 지 : 전라북도 남원시, 전라남도 구례군, 경상남도 산청, 하동, 함양군(지리산 천왕봉 해발 1,915m)
◈ 산행일시 : 2022년 9월2일(금) ~ 3일(토) 무박2일
◈ 산행코스 : 화엄사-금정암-내원암-용소-서어나무쉼터-연기암-참샘-무넹기-노고단대피소-노고단-
돼지령-임걸령-임걸령샘터-노루목-삼도봉-화개재 -화개장터-토끼봉-명선봉-연하천대피소-
삼각고지-형제봉-벽소령대피소-섬비샘-덕평봉-칠선봉-영신봉-세석대피소-거림탐방센터
◈ 산행시간 : 15시간20분(점심 및 휴식3시간 포함)
◈ 산행거리 : 약34km
◈ 산행인원 : 홀산
◈ 산행날씨 : 비내리는 날씨
◈ 산행코스 안내
화엄사-7km-노고단(해발1507m)-2.8km-피아골삼거리-1.7km-노루목-1.0km-삼도봉-0.8km-
화개제-1.2km-토끼봉(해발1533m)-3.0km-연하천대피소-2.1km-형제봉(1452m)-1.5km-
벽소령대피소(해발1400m)-6.3km-새석대피소-6km-거림탐방센터
◈ 산행진행
화엄사-연기암-국수등-집선대-코재-무넹기-노고단대피소-노고단-돼지령-임걸령샘터-임걸령-노루목-
삼도봉-화개재-화개장터-토끼봉-명선봉-연하천대피소-삼각고지-형제봉-벽소령대피소-섬비샘-덕평봉-
칠선봉-영신봉-세석대피소-거림 : 34km
◈ 중간탈출구간 및 시외버스 안내<시외버스 시간표 22.09.06 기준>
1) 벽소령대피소-> 음정마을 하산-> 인월터미널 ->동서울터미널 &원지터미널->남부터미널
- 삼정발-마천, 인원방면 : 07:05, 09:00, 11:00, 12:10,14:50, 17:10, 19:20, 20:25
- 인원-동서울 : 09:20, 12:00, 14:00, 15:20, 16:30, 17:30, 17:50, 18:30(4시간\29,600)
- 동서울-인월 : 07:00, 08:20, 08:30, 09:00, 10:30, 10:40, 13:20, 15:20, 17:30, 19:00,
22:55, 23:00, 23:55, 23:59(3시간20분\32,600)
- 마천발-서울(동부) : 07:30, 09:00, 11:40, 13:40, 15:00, 16:10, 17:10, 18:10
- 마천발-서울(남부) : 11:00, 14:40, 18:40
- 마천발-안양, 부천 : 09:30, 14:10
- 마천발-대전(복합) : 18:50
- 의신-하동: 06:35, 07:45, 11:20, 13:00, 16:20, 18:30
2) 세석대피소-> 백무동 하산-> 백무동시외버스-> 동서울터미널
- 백무동-동서울 : 07:20, 08:50, 11:30, 13:30, 14:50, 16:00, 17:00, 18:00(4시간30분\32,900)
- 동서울-백무동 : 07:00, 08:20, 10:30, 13:20, 15:20, 17:30, 19:00, 23:59(4시간\32,900, 심야우등36,200)
- 남부-백무동 : 19:40(3시간50붑\24,200)
3) 세석대피소-> 거림 하산-> 택시->중산리(거북이산장식당)이동 & 원지터미널
- 중산리-서울남부 : 15:35(4시간30분\32,100)
- 원지-서울남부 : 05:00, 05:40, 07:00, 07:40, 08:40, 09:00, 09:50, 10:20, 11:20, 12:00, 12:50, 14:00,
15:50, 17:20,19:00, 19:50, 20:40, 21:30, 22:50(3시간15분\26,800, 프리미엄34,500)
- 서울남부-원지 : 06:00, 06:40, 07:20, 08:40, 09:10, 10:20, 11:40, 13:20, 14:00, 14:30, 15:00, 16:00,
17:00, 17:30, 18:40, 19:00, 20:00, 20:30, 22:10, 23:30(3시간15분\26,800, 프리미엄
34,500, 심야프리미엄38,000)
지리산(智異山, 해발1,915m)
지리산은 1967년 12월 국내최초의 국립공원으로 지정 전라북도와 전라남도, 경상도 등의3개 도시와 시, 4개군, 15개읍. 면에, 속하는 산악형 국립공원이다. 지리산의 총면적은 약472제곱키로미터이고 이는 계룡산 국립공원의7배, 제주도 면적의4/1이자 서울시 면적보다는 조금 작은 크기이다. 지리산(智異山)의 명칭은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으로 달라진다" 라는 뜻에서 유래된 것으로 이는 수많은 은자들이 이산에 숨어 도를 닦으며 정진해 왔음을 말해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은 지리산의 산세가 높고 웅대하여 수백리에 웅거하는 산으로, 백두산의 산맥이 뻗어내려 여기에 이른 것이라 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 부른다고 전한다. 또한 지리산(地理山)혹은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하였는데, 두보의 시중 "방장은 삼한 외(方丈 三韓外)이다" 라는 주석에서 방장은 바로 지리산을 말한다고 전한다. 신라시대에 경주인들은 지리산을 남악(南岳)으로 삼아 중사(中祀)에 올렸으며, 고려와 조선에서도 이를 따랐다. 또한 "신동국여지승람" 은 이산을 둘러싼 10개읍이 있는데, 북쪽으로는 함양이, 동남쪽으로는 진주가, 서쪽에는 남원이 있다고 전한다. 산에는 기이한 봉우리와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헤아릴 수 없이 많은데, 동쪽의 천왕봉과 서쪽의 반야봉이 가장높다 하였다. 산기슭에 먹구름 끼고 비가오며 천둥소리가 요란해도 천왕봉과 반야봉은 청명하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해마다 가을 하늘이 높을 때면 북쪽에서 매가 몰려든다. 10개읍의 사람들은 다투어 그물을 쳐서 매를 잡았다고 한다. 항간에는 이산에 북극신(北極神)이 거주해 수많은 신선들이 모이고, 덕망 높은 승려가 거쳐를 두는 곳이라고 전해지기도 한다. 이를 증명하듯 지리산의 최고봉인 천왕봉에는 약1천년 전부터 성모사라는 사당이 자리를 지켜왔으며, 그 안에는 성모석상이 봉안되어 있었다. 또한 천왕봉에서 정면으로 바라다 보이는 노고단에는 남악사가 있으니 지리산은 금강산, 한라산과 함께 삼신산(三神山)의 하나로 숭상된 영원한 우리민족의 산이다.
여기에 묘향산을 더하면 우리나라의 4대신산(四大神山)이요 구월산을 합하면 5대 신산이되는데, 이 5대신산에서도 으뜸은 지리산이라고 전해진다.
지리산의 산세는 천왕봉에서 노고단으로 이어지는 주 능선은 25.5km에 이르며 이산의 둘레는 320km에 달한다. 이넓은 터에 해발 1500m가 넘는 봉우리가 20여개가 있는데 그 가운데 동쪽의 으뜸은 천왕봉 (1915m)이고 서쪽의 으뜸은 반야봉과(1732m) 노고단(1507m)이다. 이를 세 봉우리를 지리산의 3대 주봉이라 부른다. 최고봉인 천왕봉(1915m)에서 능선을따라 서쪽으로이동하면 제석봉(1806m), 연하봉(1730m), 촛대봉(1703m), 영신봉(1651m), 칠선봉(1576m), 덕평봉(1522m), 명선봉(1586m), 토끼봉(1534m), 반야봉(1732m), 노고단(1507m), 만복대(1433m), 고리봉(1304m), 바래봉(1165m)이있으며, 천왕봉의 동쪽에는 중봉(1875m), 하봉(1781m), 써리봉(1640m), 웅석봉(1099m)이있다. 이 가운데천왕봉에서 노고단사이의 산행을 종주산행이라 말하며, 동쪽 끝의 웅석봉에서 서쪽끝의 바래봉까지의 산행을 지리산 태극종주산행이라 부른다.
지리산에는 또한 20여개의 긴계곡들이 있다. 동쪽 천왕봉에는 칠선계곡, 한신계곡, 대원사계곡이 있으며 서쪽 반야봉에는 피아골 뱀사골, 심원계곡이 있는데 어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저마다의 매력으로 넘친다. 지질학적으로 볼때 이산은 애초에 넓은 바다로 속했으나 모래등이 퇴적된 뒤 선캄브리아기와 고생대를 거치면서 육지와 호수 바다로 번갈아 바뀌었다가, 중생대에 발생한 거대한 지각변동으로 우리나라 전지역이 육지로솟았을때 지리산이 가장 높이우뚝 솟았다고한다.
[에필로그]
한동안 장거리 무박산행을 접고 근교 산행만 진행하던중 지인으로 부터 장거리 산행 요청이 들어와 아무런
생각없이 참석 약속을 하고는 설악산 공룡능선(소공원-마등령-공룡능선-무너미고개-소공원)길에 올라선다
아뿔사! 예전 생각만하고 초반부터 무리하여 마등령 오름길에서 근육이 긴장하여 일명 쥐가 나고 약의 도움
으로 무사히 마등령에 올라 휴식을 취하니 공룡능선을 무사히 진행할수가 있었다. 공룡능선길 이어가는 동안 몸속 깊은곳에서 산에 대한 욕정이 생겨 집에 돌아와 장거리 산행을 위해 인터넷 검색을 해 본다.
"화대종주" 화엄사에서 천왕봉, 대원사까지 약46km 거리를 걸어야 하는 대장정... 시간은 중요하지 않지만
과연 한동안 산행을 못한 이몸으로 걸어갈수 있을까? 생각하면서 먼저 체력 테스트 차원으로 설악산 산행(한계령-대청봉-오색)을 진행해 본다. 설악산 산행 결과 아직까지 예전의 쳬력이 아니라 화대종주 산행은 원샷 보다는 1박2일 코스로 진행하는것으로 결정한다.
화엄사에서 진행하여 세석대피소 1박 후 다음날 세석-천왕봉-대원사로 진행하는 방법과 무박으로 두번
(1. 화엄사-세석-거림, 2. 백무동-세석-천왕봉-대원사) 나누어 진행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후자를 선택하여
먼저 백무동에서 대원사코스를 먼저 탐방하고 이후 대원사에서 거림으로 산행을 완주 한다.
태풍 힌남노 영향으로 전국이 어수선한 상태이며 안내산악회 버스도 취소자가 많아 3대에서 1대로 변경하여 정상진행 한다는 공지 안내문구가 올라와 있다. 주변 지인들도 태풍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면서 다음에 다녀 오라고는 하지만 우중산행의 묘미를 잘 몰라서 하는 소리라 생각하고 집결지인 사당역으로 출발한다.
생각보다 취소자가 많아 여유롭게 지리산으로 출발하여 양재, 죽전(고속도로)경유하고 여산휴게소에서 잠시 휴식을 취하고는 3시40분이 소요되어 화엄사 주차장에 도착한다. 베낭과 스틱, 해드렌턴을 장착하고는 화엄사 경내 에 있는 관광안내소에서 지리산종주 인증 스템프를 찍기 위해 찾았지만 어디에 있는지 찾을수가 없다.
지리산종주 인증 스템프를 찍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다가 찾은 관광안내소 새벽이라 더욱더 찾을수가 없었다
낮이라면 지리산화엄사 정문을 들어가 좌측편 건물앞에 있는곳에서 찍으면 되지만 새벽이라 문이 닫혀 있어
우측편 10m 지점에 문이 있는데 그틈 사이로 들어서면 좌측편으로 건물이 있고 건물을 끼꼬 돌아가면 지리산화엄사 정문이 나온다. 정문 바로 좌측편 건물앞에 지리산종주 인증 스템트가 마련되어 있다.
지리산종주 인증를 마치고 정문에서 인증샷을 남기고는 지리산 노고단으로 출발한다. 우중산행이라 긴장을 하였지만 비님은 내리지 않고 계곡의 물소리만 요란하게 들려온다. 정문앞 마당에서 보이는 다리를 건너 좌측방향으로 방향전환하면 이정표가 나오고 10m 앞에 지리산 출입게이트가 나온다.
지리산 출입 게이트를 통과하여 산죽이 무성한 임도길로 진행하다 보니 원등로길 공사중으로 우회로가 만들어져 있다 나무로 만든 계단을 올라서니 다시 임도길이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금정암, 내원암이 차례로 나온다. 내원암을 지나면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이지점에서 직진하여 진행하면 돌고 돌아서 나중에 연기암입구에서 합류하게 된다. 직진방향 버리고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원등로길로 합류하여 용소, 서어나무쉼터, 연기암입구로 진행하게된다.
원등로길 합류하여 오르면 용소가 나오고 완만하게 진향하면 서어나무쉼터가 나오고 고도를 높혀 오르면 임도길에 접속하는데 연기암입구라는 표지가 보인다. 임도길에서 좌측편으로 가면 연기암방향이고 노고단방향은 우측편방향으로 조금 진행후 좌측편 등로길로 올라서야 한다.
연기암입구에서 오르면 참샘터가 나오는데 그냥 지나쳐 갈까도 생각했지만 물한모금 마시고 가고픈 마음에
몸을 구부러 물을 마시는 중 베낭앞에 넣어둔 핸드폰과 보조밧데리가 참샘물속으로...어찌하오리 보조밧데리는 물을 먹어 작동이 안되고 핸드폰은 빨리 조치하여 그나마 작동이 되지만 밧데리가 얼마남지 않았다.
참샘터을 지나 오르면 국수등이 나오고 너덜길이 시작되는데 어두운 밤길이라 등로길이 잘보이지 않고 대충
바위를 보면서 진행하다보니 중재에 도착한다. 고도를 높이면서 오르면 집선대에 도착하고 너덜길 힘들게
오르면 코재 이정표앞에 도착한다.
코재에서 물한모금 마시면서 휴식을 취하고 다시 오름길을 올라 무넹기 임도길에 접속하게 된다. 무넹기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노고단 가는 삼거리가 나오고 직진으로 임도길 따라 진행하면 넓은 공터 우측편으로
노고단대피소로 오르는 등로길이 나온다.
노고단대피소에서 아침식사를 하는데 비가 내린다. 보조밧데리를 말려보지만 작동이 안되고 하는수 없이 핸드폰 밧데리를 아끼는 차원에 비행기 모드로 전환하여 노고단으로 오른다. 비가 갈수록 많이 내려 노고단에서 인증샷만 찍고는 돼지령과 임걸령을 지나 임걸령샘터에서 물맛이 맛나다는 소문에 샘물 한잔 마시고는 노루목으로 향한다.
노루목에 도착하니 산우님들의 베낭이 즐비하게 있는데 아마도 베낭을 두고 반야봉으로 올라가신 모양이다. 노루목을 지나면서 부터 핸드폰 밧데리가 완전방전되어 사용할수가 없어지고 삼도봉 이후부터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어찌할꼬...삼도봉과 화개재, 화개장터를 지나 토끼봉으로 오르는 등로길은 예전이나 마찬가지로 힘든 구간이다. 토끼봉에 몇명의 산객분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어 물한모금 마시고는 명선봉으로 향한다. 명선봉은 등로길에서 벗어나 있어 오르지 않고 나무계단길 내림길로 내려 연하천대피소에 도착한다.
연하천대피소 직원분께 부탁드려 핸드폰 충전을 하는 관계로 1시간 가량 휴식을 하고는 삼각고지(음정마을 갈림길)을 지나 벽소령대피소에 도착한다. 벽소령대피소에서 지리산종주 인증을 찍고는 섬비샘에서 물한모금 마시고 덕평봉을 지나 제일봉, 칠선봉에 도착한다.
덕평봉에서 물한모금 마시고 영신봉으로 진행하는데 무척 힘들어 계속하여 쉬어서 진행한다. 낙남정맥 시작점과 끝점인 지점에 도착하고 영신봉은 등로길에서 벗어나 있지만 영신봉 이정목을 확인 후 세석대피소로 내려선다.
세석대피소에 도착하니 15시 거림까지 내려서면 약2시간 소요되면 중산리에서 지나가는 안내산악회 버스를 만날수 있어 안내산악회 대장님께 문자로 세석대피소에서 거림으로 내려 큰도로까지 내려 가겠다고 문자를 보내고는 신속하게 진행한다.
거림탐방센터에 도착하여 도로 따라 한참을 내려서니 삼거리가 나오고 우측편에 버스정류장 박스가 있어 그곳에서 대충 옷을 갈아입고 안내산악회 버스를 기다려 보지만 오지 않는다. 핸드폰 밧데리도 없는 상태인데 핸드폰을 보니 연락부탁이라는 안내산악회 대장의 문자가 있어 전화하니 기다리다가 안와서 출발했다고 하신다. 나중에 안 사실은 이곳에서 약7km 내려가면 또 다른 삼거리가 있다고 하는데 그곳에서 버스가 기다렸다고 한다. 안내를 재대로 해 주어야지... 안내산악회 대장말 택시타고 원지로 가서 서울가는 버스 타고 귀경하시라고 하시네...이런 무책임한 말 처음부터 안된다고 하면 세석대피소에서 백무동으로 하산하여
백무동에서 출발하는 버스로 서울가면 되는데...
난감한 처지라 비도 내리고 핸드폰 밧데리도 방전되고 차도 지나가지 않고...
버스정류장 아래 불빛이 보여 찾아가 보니 송화식당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그곳에 들어가 사정이이갸를
하니 밧데리 충전기와 따뜻한 커피한잔과 포도를 주시면서 택시를 불려 주시겠다고 하신다. 얼마나 고마운지 주인을 바라보면서 모든 세상에 나쁜사람만 있는것이 아니다는걸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친절하신 여주인께 인사를 나누고는 택시에 올라 원지터미널로 향한다. 표를 구입하고는 주변을 보니 마트가 있고 그곳에서 컵라면 한그릇을 먹고는 버스에 올라 정신없이 꿈나라 여행을 떠난다. 남부터미널에 무사히 도착하고 지하철을 이용하여 집에 도착 후 오늘 산행을 마무리해 본다.
01:40~50 지리산 화엄사(해발 240m) 불이문
지리산종주 인증 스템프를 찍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다가 찾은 관광안내소 새벽이라 더욱더 찾을수가 없었다
낮이라면 지리산화엄사 불이문을 들어가 좌측편 건물앞에 있는곳에서 찍으면 되지만 새벽이라 문이 닫혀 있어
우측편 10m 지점에 문이 있는데 그틈 사이로 들어서면 좌측편으로 건물이 있고 건물을 끼고 돌아가면 지리산 화엄사
불이문이 나온다. 불이문 바로 좌측편 건물앞에 지리산종주 인증 스템트가 마련되어 있다.
지리산 화엄사 불이문에서 인증샷
지리산 화엄사는 대한불교조계종 19교구 본사 정적이 깃든 산사이며 화대종주 출발지점이다
화엄사(華嚴寺)는 문화재가 많은 거찰로 찾는 사람들이 사시사철 끊이지 않는다. 우리나라 10대 사찰, 31본산이 하나인 이 사찰은 신라 진흥왕 5년(544년) 연기조사가 세웠으며, 선덕여왕 12년(643년) 자장율사에 의해 증축되었다. 그 후 당나라에서 귀화한 의상(義湘)이 화엄십찰(華嚴十刹)을 두게 되면서부터 화엄사는 늘 많은 대중이 모이는 큰 절이 되었다.
화엄사는 정유재란(1579년) 때 왜병의 방화로 전소됐는데, 이때 장육전(각황전의 전신)과 그 벽에 화엄경 80권을 새긴 석경(石經)이 파괴되어버렸다.30년 동안 폐허로 남아있던 화엄사를 1630년 벽암선사가 복구하고, 숙종 25년(1699년)에는 계파선사가 각황전을 재건하였다.
계파선사의 각황전 재건에는 유명한 전설이 있다.'장육전이 불탄 뒤 그 재건에 고심하던 벽암스님은 계파스님에게 중건의 대업을 맡겼다. 계파스님은 현재의 대웅전에서 100명의 스님이 100일 기도를 올리게 하고, 그 자신은 중건불사의 성취를 위해 기도승을 시봉하는 공야주를 자원했다. 이윽고 100일 기도가 끝나는 회향일(廻向日)이 된 날, 한 노장스님이 말했다."간밤의 꿈에 하얀 노인(文殊大聖)이 나타나 장육전 중건을 위한 화주승(化主僧, 돈 모으는 스님)은 물 묻은 손으로 밀가루를 만져 손에 밀가루가 묻지 않은 사람으로 삼으라고 일러주셨소."이에 따라 모든 스님이 밀가루를 만져본 결과 계파스님만이 밀가루가 손에 묻지 않았다.계파스님은 밤새껏 부처님께 기도를 올렸다.
정성껏 기도를 올리던 그의 앞에 한 노인이 나타나 말했다."그대는 내일 아침 바로 화주를 위해 길을 떠나되, 제일 먼저 만나는 사람에게 반드시 시주를 권하라."계파스님은 날이 밝기 무섭게 산문을 나섰다. 동구 쪽으로 내려가던 계파스님이 첫번째로 마주친 사름은 뜻밖에도 이 고을 일대를 떠돌아다니던 걸인 노파였다. 계파스님은 걸인 노파를 알고 있었으므로 난감하기 짝이 없었으나, '문수대성'의 가르침을 생각하고는 노파에게 간곡하게 시주하기를 청했다.
당장 자신이 먹을 쌀 한 톨 없는 걸인 노파는 스님의 시주 간청에 하늘만 올려다보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그녀는 이윽고 화엄사를 향해 합장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이 몸이 죽어 왕궁에 태어나 큰 불사를 이루가리오니 문수대성은 가피(加被)를 내리소서."걸인 노파는 그 말과 함께 그만 옆의 웅덩이에 몸은 던져 목숨을 끊었다. 이 모양을 지켜본 계파스님은 너무 놀란 나머지 그 길로 멀리 도망가 5~6년을 걸식을 하며 돌아다니다 한양까지 가게 되었다.하루는 계파스님이 창덕궁 앞을 걸어가다 나이 어린 공주와 마주쳤다. 이 공주는 계파스님을 보자 무척 반가와하며 달려와 어릴 때부터 꼭 쥐고 있던 손을 펴보였다. 공주이 손에는 '장육전(丈六殿)'이라는 글자가 씌어 있었다.공주가 스님을 만나 손바닥을 펴게 되었다는 얘기를 전해들은 숙종은 곧 계파스님을 대궐로불러들였다.
숙종은 공주의 손바닥에 새겨진 글자의 내력을 스님으로부터 듣게 되었다. 왕은 크게 감명하여 곧 왕명으로 장육전 중건을 하게 했다.마침내 장육전이 완공되자 계파스님은 이 건물 이름을 대왕을 깨우쳐 보전(寶殿)을 중건하였다고 하여 각황전(覺皇殿)으로 고쳐 부르게 했다.이것이 각황전의 이름 내력이다. 이 건물은 국보 제67호로 지정받아 보호를 받고 있다. 또 이 건물 앞의 석등은 국보 제12호, 4사자 3층석탑은 국보 제35호이다. 화엄사에는 그 밖에도 많은 문화재가 있고, 수령 300여년의 올벚나무가 천연기념물 제38호로 지정되어 있다.화엄사 바로 앞에 서있는 남악사(南岳祠)는 원래 노고단에 있던 것으로 신라 때부터 나라에서 제사를 모셨던 유서 깊은 사당이다.
화엄사 불이문 옆문의 모습
지리산 화대종주하시는 산객님들 새벽에 화엄사 지리산종주 스템프를 찍기 위해서는 지리산 화엄사 불이문 옆 10m 에 있는 문틈 사이로 들어가서 좌측편 건물끼고 돌아서 진행하면 화엄사 일주문에서 올라오는 도로를 만나고 도로 건너 건물앞에 지리산종주 스템프가 위치하고 있습니다. 낮이라면 화엄사 불이문을 지나 좌측편 건물(종무소, 관광안내소)앞에 지리산종주 스템프가 있습니다.
화엄사 불이문앞에서 바라본 연기암 가는 다리의 모습
화엄사 불이문에서 인증샷을 남기고는 반대편 다리를 건너 바로 좌측방향에 이정표가 위치하고 있으며 20m 앞에 지리산 출입 게이트를 통과하여 진행한다.
01:50 화엄사 이정표
화엄사 불이문에서 다리를 건너면 좌측편에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으며 연기암, 노고단방면으로 진행하면 된다.
지리산 화엄사입구 게이트의 모습
지리산 출입 게이트를 통과하여 산죽이 무성한 임도길로 진행하다 보니 원등로길 공사중으로 우회로가 만들어져 있다 나무로 만든 계단을 올라서니 다시 임도길이 나오고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금정암, 내원암이 차례로 나온다. 내원암을 지나면 넓은 공터가 나오는데 이지점에서 직진하여 진행하면 돌고 돌아서 나중에 연기암입구에서 합류하게 된다.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원등로길로 합류하여 용소, 서어나무쉼터, 연기암입구로 진행하게된다.
화엄계곡 치유탐방로 안내판
화엄계곡 치유탐방로는 계곡과 숲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환경요인들로 인하여 인체의 면역력을 높이고 보다 활기찬 기운을 북돋을 수 있는 곳입니다.
피톤치드와 음이온, 산소, 햇빛, 다양한 동,식물들을 통해 활기찬 기운 충전하세요
지리산국립공원 입산시간 안내판의 모습
지리산 출입 게이트를 통과하면 우측편으로 지리산국립공원 입산시간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으며 임도길 따라 진행한다.
산죽군락지 임도길의 모습
지리산 출입 게이트를 통과하면 임도길이 나오면서 양옆으로 어른키보다 큰 산죽이 군락을 이루고 있다.
우회하는 등로길의 모습
부드러운 임도길 진행하면 공사중인 현장이 나오고 우회도 나무계단을 올라서면 임도길이 나온다. 임도길에서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금정암과 내원암을 지나게 되고 잠시후 넓은 공터에 도착한다. 넓은공터에서 직진임도길로 진행하면 돌고 돌아 연기암입구에서 다시 합류하면 원등로길은 좌측방향 계곡쪽으로 내려서야 한다.
02:05 용소(해발 340m)
금정암, 내원암을 지나 넓은 공터에서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조금전 공사중인 원 등로길와 합류하게 된다.
용소의 모습
용소에 설치되어 있는 안내판의 모습
02:20 서어나무쉼터(해발430m)
용소에서 완만하게 약15분 진행하면 서어나무쉼터에 도착하는데 어둠속이라 어느곳에 쉼터가 있는지 분간할수가 없다.
02:25 연기암 입구 임도길 접속
서어나무쉼터에서 오르면 임도길 접속하며 좌측방향이 연기암방향이며 코재, 무넹기방향은 우측방향이다.
02:25 연기암(해발 480m)
연기암입구에 설치되어 있는 이정표 서어나무쉼터에서 올라서면 임도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진행해야 하는데 처음에는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다 연기암이 나와 따시 돌아서 이지점으로 왔다.
지리산 화엄사 연기암
지리산에 자리잡은 연기암은 해발 560고지의 화엄사 산내암자로서 섬진강이 굽어보이는 수려한 경관과 사계가 늘 아름다운 문수보살 기도도량이다. 화엄사의 원찰인 연기암은 1500여년 전 백제 성왕 때 인도의 고승 연기조사께서 화엄사를 창건하시기 이전에 최초로 토굴을 짓고 가람을 세워 화엄법문을 설하신 유서깊은 사찰이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임란을 당하여 잿더미로 변하여 4백여년 동안 칡넝쿨과 가시덤불에 파묻혀 축대만 남아 세월만이 무상하게 흘러갔다.
이에 원응당 종원선사께서 복원의 서원과 불보살님의 가피력으로 1989년에 먼저 대적광전, 문수전, 관음전, 적멸당, 원응당, 일맥당 등을 건립하였으며, 근래 국내최대 문수보살상(높이 13m)을 조성하여 화엄법문의 지리산에 다시 울리고 세계로 퍼져나가 모든 중생이 화엄의 열반락에 동참 환회 도록 도량을 중창하시었다.
연기암 에서 노고단으로 가는 등로길의 모습
연기암입구를 통과하면 완만한 등로길이 나오고 우측편 계곡에서 흘려가는 물소리 들어면 진행한다.
02:35 참샘터(해발 520m)
연기암입구에서 오르면 참샘터가 나오는데 그냥 지나쳐 갈까도 생각했지만 물한모금 마시고 가고픈 마음에
몸을 구부러 물을 마시는 중 베낭앞에 넣어둔 핸드폰과 보조밧데리가 참샘물속으로...어찌하오리 보조밧데리는 물을 먹어 작동이 안되고 핸드폰은 빨리 조치하여 그나마 작동이 되지만 밧데리가 얼마남지 않았다.
참샘약수터의 모습
비가 많이 내려 계곡에는 수량이 많은데 약수물은 약하게 나오고 있었다.
03:10 국수등(해발 720m)
참샘터을 지나 오르면 국수등이 나오고 너덜길이 시작되는데 어두운 밤길이라 등로길이 잘보이지 않고 대충
바위를 보면서 진행하다보니 중재에 도착한다. 고도를 높이면서 오르면 집선대에 도착하고 너덜길 힘들게
오르면 코재 이정표앞에 도착한다.
03:35 중재(해발 820m)
국수등에서 계속하여 고도를 높혀 오르면 중재에 도착한다.
03:50 집선대(해발 930m)
중재에서 집대선까지 오르는 등로길에는 산죽 군락지도 있고 곰출현 안내판이 설치되어 혼자라 약간의 무서움이...
마음속으로 부처님을 부르며 진행한다.
04:30 코재(해발 1,194m)
얼마나 힘들고 고도를 높혀야 하는 등로길이라 이름조차 코재라고 표시 했을까...코가 땅에 땋을 정도로 힘들게 오르는
구간이라고 하는데...
무넹기 도착
임도 좌측방향은 성삼재방행이며 노고단고개방햐은 우측편 임도길로 진행하면 된다
04:40~45 무넹기 고개(해발 1,300m)
코재에서 한차례 밀어 올리면 무넹기 고개에 도착하고 한다. 무넹기는 '물이 넘쳐 마을로 들어온다' 라는 뜻을 가진 "무너미" 에서 유래됀 것으로 보인다.
04:48 성삼재 갈림길의 모습
화엄사에서 코재, 무넹기 고개를 올라서면 임도길에 도착하고 좌측방향으로 성삼재로 내려서는 등로길이 있지만 노고단고개 우측방향으로 약100m 진행하면 성삼재로 내려서는 갈림길에 도착한다
▶ 성삼재(姓三峙, 해발1,102m)
성삼재(姓三재)는 전라남도 구례군 산동면 좌사리와 구례군 광의면 사이의 고개이다. 지리산국립공원에 속해 있으며 정상에 지방도 제861호선의 휴게소인 성삼재휴게소가 위치해 있다. 대체로 지리산의 절인 천은사와 성삼재휴게소까지의 구간을 성삼재라고 하며 높이는 1,102m이다. 성삼재를 기점으로 하여 동쪽으로 노고단 등 지리산의 주요 봉우리들이 이어져 있다. 마한 때 성씨가 다른 세 장군이 지켰다고 하여 성삼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성삼재 : 먼 옛날 마한땅의 어느 왕이 진한의 난리를 피해 지리산 골짜기에 숨어 들어 달의 궁전을 짓고 산기슭에 도성을 쌓았다. 그뒤에 각 능선마다 장수를 파견해 지키게 했는데 그곳이 지금의 달궁둘레에 있는 정령치, 황령치,팔랑치, 상삼재라는 곳이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지리산 종주를 시작하는 곳으로 유명한 성삼재는 성이 다른 3명의 장수가 방어했던 곳이라 해서 성삼재라고 불리는 곳이다
노고단대피소 갈림길의 이정표
임도길 따라 진행하면 넓은 공터가 나오고 우측편으로 노고단대피소방향으로 올라가는 등로길이 나온다.
노고단대피소 갈림길 앞에 설치되어 있는 안내판의 모습
노고단 대피소 도착
노고단대피소 갈림길에서 약10여분 오름길 오르면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한다.
05:00~30 노고단 대피소
노고단대피소에 도착하여 취사장에서 아침식사를 하는데 비가 내린다. 보조밧데리를 말려보지만 작동이 안되고 하는수
없이 핸드폰 밧데리를 아끼는 차원에 비행기 모드로 전환하여 노고단으로 오른다.
노고단 대피소 취사장의 모습
노고단 대피소에서도 지리산종주 인증 스템프를 찍어야 하는데 어디에 있는지 몰라 다른분께 여쭈어 보니 바로 아래 노고단 대피소 앞에 있다고 하여 인증 스템프를 찍고 취사장으로 오는데 비가 내린다.
노고단대피소에서 인증샷
05:35~40 노고단(老姑壇, 해발1,507m)
노고단(1,507m)은 천왕봉, 반야봉과 함께 지리산의 3대 주봉으로 꼽힌다. 지리산 종주의 시작점이며 북쪽으로 심원계곡 을, 남쪽으로 화엄사 계곡과 문수 계곡, 피아골 계곡에 물을 보태는 큰 봉우리이다. 이곳은 신라시대 시조 박혁거세의 어머니 선도성모(仙桃聖母)를 지리산 산신으로 받들고 나라의수호신으로서 모셔 매년 봄과 가을에 제사를 올리던 곳으로 전해지고 있다. 제사는 선도성모(仙桃聖母)의 사당인 남악사(南岳祠)를 세워 올렸는데 지금은 화엄사 앞으로 옮겨 구례 군민들이 해마다 곡우절을 기해 산신제를 올리는 곳으로 이용되고 있다. 노고단은 고산지대로 노고단에서 내려다보이는 섬진강과 운해, 봄의 철쭉, 여름의 원추리, 가을의 단풍, 겨울의 설화 등 철따라 변하는 아름다움이 극치를 이루고 주위에는 종석대, 관음대, 집선대, 문수대, 청연대, 만복대 등 명승지가 둘러 서 있다. 그리고 성삼재를 넘는 관광도로가 개통된 후 한층 가까워진 노고단은 ‘한국의 알프스’로 불리며 고산 휴양지의 메카로 떠오르고 있다.
▶ 노고단 유래
노고단(길상봉)은 해발 1,507m로서 천왕봉(1,915m), 반야봉(1,732m)과 더불어 지리산 3대 봉우리의 하나이며, 옛날에 지리산 신령인 산신할머니(노고-老姑)를 모시는 곳(단-壇)이라 하여 노고단(老姑壇)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합니다. 또한 이곳은 고산지대로서 전망이 매우 좋고 시원해 신라시대에는 화랑들의 심신 수련장으로 이용되었다고 하며, 과거 1920년대에는 선교사들이 풍토병을 치료하기 위해 건물을 짓고 여름을 보냈다고 합니다.
노고단(老姑壇)
노고단이란 늙은 시어머니를 위한 제사터를 말하며 우리 말로는 할미단이라고 하는데 노(老)는 존칭의 의미이며,
고(姑)는 마고를 뜻하기도 해서 마고할매를 위한 제사터라고 한다
마고는 인류최초의 인간을 탄생시킨 여신으로 그가 사는 곳은 마고성이라고 한다. 원래 마고는 젊은 여성이었으나
오랜 전설속의 여신이므로 마고할매라고 불린다
06:30 돼지평전(해발 1,370m)
멧돼지가 종종 출몰하기 때문에 '돼지평전'이라고 불리는데, 실제로 이곳에는 멧돼지가 좋아하는 원추리 뿌리며 둥글레 뿌리가 많다고 한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등산로에 "멧돼지 출몰 조심" 이라는 안내판도 서있다
돼지령의 모습
돼지령에서 바라본 노고단방면의 모습
돼지평원의 모습
멧돼지가 종종 출몰하기 때문에 '돼지평전'이라고 불리는데, 실제로 이곳에는 멧돼지가 좋아하는 원추리 뿌리며 둥글레 뿌리가 많다고 한다. 이를 증명이나 하듯 등산로에 "멧돼지 출몰 조심" 이라는 안내판도 서있다
돼지평원에 설치되어 있는 안내판의 모습
06:00 피아골삼거리(해발 1,336m)의 모습
돼지령에서 약30여분 진행하면 피아골로 내려서는 삼거리에 도착하고 지리산 10경(景)에 속하는 피아골은 우측방향이며
진행하면 반야봉, 삼도봉방향은 좌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된다.
▶ 피아골
“피아골”은 지리산의 관문인 노고단의 등너머 섬진강으로 흐르는 물줄기가 동남쪽으로 깊이 빠져나간 큰 계곡이다. 피아골의 어원을 살펴보면 흔히 한국전쟁 직후 “피아골”이란 영화작품이 나왔던 탓으로 흔히들 한국전쟁 때 이곳에서 동족상잔의 피를 많이 흘려 피아골이라 불리게 된 것으로 잘못 알려져 있다. 정확한 어원은 옛날에 속세를 버리고 한적한 이곳 선경(仙境)을 찾은 선객(仙客)들이 이곳에 고대 오곡중의 하나인 피를 많이 가꾸었던 이유로 자연히 피밭골이라 불리게 된 것이 그 후 점차 발음이 피아골로 전화된 것이다.
▶ 피아골
전남 구례군 토지면(土旨面) 내동리(內東里) 소재 연곡사에서 반야봉(般若峰/1,751m)에 이르는 연곡천 계곡이다. 피아골은 길이 약 20km. 지리산 제2봉인 반야봉의 중턱에서 발원한 맑고 풍부한 물이 임걸령 ·불무장 등의 밀림지대를 누비며 피아골 삼거리 ·연곡사 등을 지나 섬진강으로 빠진다. 폭포·담소(潭沼)·심연이 계속되는 계곡미가 뛰어나다. 특히 이곳의 단풍은 지리산 10경(景)의 하나로 손꼽힌다. 옛날 이 일대에 피밭(稷田)이 많아서 ‘피밭골’이라는 이름이 생겼고 이것이 변해 피아골이 되었다고 한다. 임진왜란·한말(韓末) 격동기·여순반란사건·6 ·25전쟁 등 싸움이 벌어질 때마다 많은 사람이 이곳에서 목숨을 잃었다. 해마다 10월 말에는 전국에서 모이는 등산객들이 피아골 단풍제를 지내는데, 이 산신제는 1977년부터의 연례행사이다
피아골삼거리(해발 1,336m)
지리산의 단풍 산행코스로 유명한 피아골은 6.25전쟁때 국군과 빨치산의 전투로 피로 물들은 계곡이라해서 피아골로 불린다고 알려져있으나 피아골이란 지명은 이곳에 피밭(직전,稷田)이 많아 붙은 이름이다. 오곡중 하나인 피를 많이 심었던 골짜기라, 즉 피밭골에서 유래되었다 하는데 피는 보이지 않고, 빨치산과 토벌대가 흘린 수많은 피가 먼저 생각나는건 아마도 어감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된다.
피아골계곡, 삼홍소(三 紅 沼)
피아골의 가을은 나무의 단풍이붉은데서 비롯된 말이다.
그 붉은 단풍이 산을 붉게 물들고 산홍(山 紅),
이 붉은 산이 계곡물을 붉게 만들고 수홍(水 紅),
그 물이 반사되어 사람의 얼굴도 붉어진다 인홍(人 紅),
그리하여 삼홍소(三紅沼)라 불리는 곳이다
표고막터 : 표고버섯을 재배한 곳이라 해서 표고막터라고 불리는데, 이 일대 계곡이 선유담이다.
06:35 임걸령(林傑嶺, 해발1,320m)
지리산 노고단에서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중간 지점에 있는 고개로, 높이 1,320m이다. 고령(高嶺)임에도 불구하고 우뚝 솟은 반야봉이 북풍을 막아주고, 노고단 쪽 능선이 동남풍을 막아주어 아늑하고 조용한 천혜의 요지가 되었다. 임걸령에서 노고단은 3.2㎞, 반야봉은 2.3㎞, 뱀사골대피소는 3.3㎞, 피아골대피소는 2㎞ 떨어져 있다.
옛날에 임걸(林傑) 또는 임걸년(林傑年)이라는 이름의 의적이 은거하던 곳이어서 임걸령(林傑嶺)이라는 이름이 붙었다고 전해진다. 이곳의 샘에서는 언제나 차가운 물이 솟으며, 물맛 또한 좋기로 유명하다.
임걸령
조선 선조때의 좀도둑인 임걸년(林傑年)은 지금의 시천에서 태어난 인물로 그의 활동무대는 반야봉일대였다고 한다.
그는 화계장터에서 넘어오는 보부상을 털거나 인근 사찰을 털었는데 '연려실기술'이 전하는 말에 의하면 한참 강성했을 때의 임걸년은 지리산의 모든 사찰을 털었다고 한다. 이고개는 그가 활동한 장소라해서 임걸령(林傑嶺)이란 이름이 붙었는데 숲이 울창해서 고갯마루라고는 여겨지지 않는다.
06:45~55 임걸령 샘터
임걸령에서 샘터까지는 지척에 있어 잠시 방문하여 물보충하면 좋은 지점이다.
임걸령 약수터의 모습
갈수기도 아닌데 물줄기가 약한 이유는 화엄사에서 올라올때 참샘터 약수도 물줄기가 약했는데...
산행후기를 보니 이곳에서 꼭 약수물 한사발 드시고 가시라는 말에 내려와서 두사발을 마시고 삼도봉으로 향한다.
임걸령 쉼터의 모습
임걸령에서 약400m 오름길을 오르면 우측편으로 나무테크로 된 쉼터가 나오고 조금 오르면 노록목 삼거리 또는 반양봉 삼거리에 도착한다.
임걸령 쉼터 이정목의 모습
노루목 삼거리의 모습
노루목에 도착하니 산우님들의 베낭이 즐비하게 있는데 아마도 베낭을 두고 반야봉으로 올라가신 모양이다. 노루목을 지나면서 부터 핸드폰 밧데리가 완전방전되어 사용할수가 없어지고 삼도봉 이후부터는 사진을 찍을 수가 없었다.
07:25 노루목(해발 1,480m)
노루목이란 이곳의 지형이 노루의 목을 닮았다 해서 붙은 지명인데 항간에는 노루가 다니던 길이라는 뜻에서 붙었다 한다.
▶ 반야봉(般若峰, 해발1,732m)
반야봉은 지리산 3대 주봉 중 하나인 반야봉은 지리산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봉우리이다. 천왕봉과 노고단, 만복대 등 지리산의 중심에 있어 지리산의 전경을 한눈에 조망할 수 있다. 맑은 날이면 무등산과 덕유산까지 보이고, 특히 이곳에서 바라보는 낙조(落照)는 지리산 10경중의 하나이다. 정상에서 북쪽으로 약 600m 거리에 있는 반야봉의 북봉은 아름드리 구상나무 거목이 상록 원시림 지대를 이루고 있으며 반야봉 남쪽 중턱 경사진 고원은 철쭉군락지로 5월 하순경이면 붉은 철쭉꽃으로 장관을 이룬다.
반야봉에는 지리산 산신 중 여신인 천왕봉의 마고할미와 관련된 전설이 있다. 그 여신은 선도성모 또는 마고할미, 노고할미라 불리는데 바로 천신의 딸이다. 그 천신의 딸인 마고할미는 지리산에서 불도를 닦고 있던 도사 반야를 만나 결혼해 천왕봉에서 살았으며 그들은 딸만 8명을 낳았다. 그러던 중 반야는 더 많은 깨우침을 얻기 위해 가족들과 떨어져 반야봉으로 떠났고 마고할미가 백발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다. 마고할미는 반야봉에서 깨우침을 얻기 위해 외로이 수도하는 남편 반야를 그리며 나무껍질을 벗겨 남편이 입을 옷을 만들었다.
그리고 마고할미는 딸들을 한명씩 전국 팔도에 내려 보내고 홀로 남편을 기다렸다. 기다림에 지친 마고할미는 끝내 남편 반야를 위해 만들었던 옷을 갈기갈기 찢어버린 뒤 숨지고 만다. 갈기갈기 찢겨진 옷이 바람에 날리어 반야봉으로 날아가니 바로 반야봉의 풍란이 되었다. 후세 사람들은 반야가 불도를 닦던 봉우리를 반야봉이라 불렀고 그의 딸들은 팔도 무당의 시조가 되었다.
반야봉
반야봉은 지리산 8경의 하나인 반야 낙조로 유명한 산이다 지리산 어느 곳에서나 이산은 아기엉덩이 처럼 보이기 때문에 "아기궁뎅이처럼 보이는 산이 반야봉이야"라는 말이 유행할 정도로 산의 곡선미가 우아하고 여성스럽다.
이런 반야봉은 사실 남성을 상징하는 산이다. 반야는 산스크리트어의 프라냐(prajna)를 음역한것으로 불교경전의 반야경(般若經)에 의해 알려진 명칭이다. 반야의 뜻은 '절대변하지않는 완전한 지혜'를 의미하므로 지리산에서 지혜를 얻는다" 라는 말은 반야봉에서 유래된 것이라 추정할 수 있다.
전설에 따르면 천왕봉의 마고할매가 반야도사를 만나 혼례를 하였다. 그러던 어느 날 반야는 훗날 돌아오겠다고 약속하며 서쪽으로 떠난 뒤 영영 돌아오지 않고 불도를 닦았다. 그 후 그가 도를 닦았던 산은 반야봉이라 불리면서 남성미를 상징하는 산이 되었지만, 생김새가 한없이 부드러워 여성성도 가지고 있는 산으로 알려졌다.
지리산에는 불교와 관련된 지명이 제석봉 등 여러 가지가 있는데, 불교와 관련된 지명만으로 나열하면 반야봉을 제일 꼭대기에 있는 봉우리라 해석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실제로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는 천완봉이지만 불교적인 관점에서는 반야봉을 지리산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라 말한다.
반야봉보다 높은 제석봉, 중봉, 하봉을 제쳐두고 반야봉을 천왕봉 다음의 제2봉으로 치는 것도 반야봉에는 불교적인 관점이 개입되어 있기 때문이다.
07:45~50 삼도봉(三道峯, 해발1,499m)
삼도봉은 전라남도와 전라북도, 경상남도의 경계면이 만나는 곳이다. 원래 삼도봉은 이곳 모양이 '낫의 날' 같다 하여 낫날봉 이라 불리다가 "닐리리 맘보'를 연상시키는 "날라리봉"으로 바뀌었는데 지금은 삼도의 경계면에 있다하여 '삼도봉으로 명명되었다. 이 삼도봉 정상에는 석재가 아닌 강철제질의 삼각 구조물이 세워져 있다.
삼도봉 이정표의 모습
삼도봉(三道峯)은 반야봉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어 외소해 보이기도 하지만, 반야봉을 가장 가까이에서 바라 볼 수 있어 좋은 경관을 제공하고 동쪽으로 촛대봉에서 연하봉, 천왕봉으로 이어지는 주릉을 조망할 수 있으며, 동남쪽으로 남부능선을 조망할 수 있다.
08:05 화개재(해발1,316m)
화개재는 먼 옛날 하동의 화개장터와 남원의 산내장터 봇짐장수들이 물물교환을 했던 고갯마루를 말한다.
화개재에는 먼옛날 산내장터애서 올라온 70대의 소금장수가 이 고개를 넘다 너무 힘들어 죽었다는 가슴아픈 전설이 서려 있는 곳이다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뱀사골 계곡이 이어지는데 피아골의 단풍과 견줄만한 곳이다.
▶ 뱀사골계곡
지리산 북쪽 기슭에 위치한 뱀사골계곡은 토끼봉과 삼도봉 사이의 화개재에서 남원시 산내면 반선리 집단시설지구까지 12km, 장장 39여리의 물줄기의 웅장한 계곡이다. 반야봉과 토끼봉에서 남원시 산내면으로 뻗어내린 골짜기의 가을단풍은 아름답기가 피아골의 단풍과 우열을 가르기 힘들다. 옛날 송림사라는 절의 전설 때문에 뱀사골이라고 불리워졌다 한다. 계곡은 언제 찾아도 수량이 풍부하고, 수림이 울창하여 대표적인 여름피서지로도 유명하다. 가을철에 이곳을 찾으면, 불붙는 단풍과 암반 위로 흐르는 계류, 그 아래로 형성된 담소들이 한데 어우러져 일대 장관을 이루어 발길을 붙잡는다. 선인대, 석실, 요룡대, 탁용소, 병소, 병풍소, 제승대, 간장소 등과 같은 명승지가 도처에 있다.
이에 더불어 탄소중립 지킴이 양성과 친환경적 탐방문화 확산을 위해 '탄소중립을 향한 1%의 도전', '탄소중립 쓰레킹(쓰레기 줍기+트래킹)', '숲 속에 내 몸을 던져라' 등 소규모 가족/단체를 대사으로 저탄소 생태체험 프로그램도 운영한다.
▶ 뱀사골계곡 - 전북 남원시 산내면에 있는 지리산 반야봉에서 반선까지의 계곡
뱀사골의 지명유래는 몇 가지가 있다. 정유재란에 불타버린 석실 부근의 배암사라는 절에서 유래되었다는 설과 지리산 북사면의 계곡으로 돌돌골이라고도 하여 물이 뱀처럼 곡류한다 하여 뱀사골이라 부른다는 설이 있다. 또 뱀사골은 뱀이 죽은 계곡이라는 전설에서 나온 것이라 전해지고 있다. 그 전설에 따르면 뱀사골 입구에 송림사라는 절이 있는데, 이 절에선 칠월 백중날 신선대에 올라가 기도를 하면 신선이 된다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었다. 이 일을 괴이하게 여긴 어느 대사가 신선대에 올라 기도를 하려는 스님의 가사장삼에 몰래 명주실과 독을 매달아 두었다. 다음날 뱀소 부근에 용이 못된 이무기가 죽어 있었다고 하여 뱀사골이란 명칭이 붙여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이무기에 죽어갔던 스님들의 넋을 기리기 위해 반쯤 신선이 되었다 하여 뱀사골 입구 동네를 반선이라 부르게 되었다는 것이다. 또 다른 유래로 뱀과는 관련이 없는 비탈이 심한 사이 골짜기란 뜻의 밴샅골이 변해 뱀사골로 불리어졌다는 설이 있다.
뱀사골은 크게 보면 만수천 계곡 전체로서 산내면의 전체라고도 할 수 있다. 산내 삼거리에서 운봉과 인월로 빠지는 남천과 실상사를 지나 남동진하는 남천의 부근을 빼면 나머지 산내면은 모두 뱀사골 내에 있을 정도로 크다. 산내면 덕동리, 부운리, 내령리, 입석리, 장항리가 뱀사골 내에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구체적으로 뱀사골하면 반선에서 반야봉까지의 계곡 약 14㎞를 말한다. 특히 뱀사골은 완만하고, 수목이 울창하여 여름에는 기온이 낮고, 수많은 폭포와 소와 반석, 절벽 등이 전설과 함께 나타나 뛰어난 경관미를 보여준다. 소룡대, 탁룡소, 뱀소, 병풍소, 간장소, 단심폭포 등의 명소가 많다. 수목이 울창하여 녹색댐의 영향이 커서 홍수 및 가뭄에 자연적 대비가 되고 있다. 그러나 계곡의 유역 면적이 크고 모든 물줄기가 하나의 계곡으로 집중하기 때문에 뱀사골 내에 집중호우가 쏟아지면 계곡의 물은 쉽게 증가하고 급류를 이루기 때문에 자칫 야영객이나 등산객들이 불변을 당할 수도 있다. 뱀사골의 유역 면적은 매우 크고 토산으로 이루어진 주변 고산의 산릉으로 둘러싸여 지표유출이 많은 곳이다. 따라서 항상 물이 마르지 않는 특징도 있으나 하계의 집중호우 시에는 빠른 지표유출로 계곡의 수위가 급상승하여 재난으로 이어질 가능성도 있다. 또한 토양층이 아주 깊지는 않은 표층풍화로 사면이 임계치 이상의 함수를 한 경우 기반암에서 토사가 흘러내리는 산사태의 위험도 상당히 많은 곳이다. 이런 곳은 안정된 식생의 보전과 함께 도로 건설에 따른 사면의 안정도를 해치는 일이 없어야 한다. 전체적으로 북서방향의 구조선을 따라 뱀사골이 개석되고 있으며 양 사면의 차이도 북서사면은 좀 완만하고 남동사면은 급하고 굴곡이 심한 비대칭사면을 이루는 것은 과거 빙하기 환경에서 일어난 기후차에 따른 사면의 이동물질의 진전에 따른 차이를 보여주는 것이다.
여름철에 토산을 이룬 주변의 산지들이 충분히 토양수분을 함유할 때 비가 오면, 금새 지표유출이 발생하여 계곡의 수위가 급증할 수 있으므로 주의해야 한다. 2002년도에 집중호우로 인하여 많은 사상자가 이 계곡에서 발생한 것도 이런 자연적 환경이 원인이다. 다행히 뱀사골 주변에 수위측정기와 홍수예방시스템이 갖추어져 있어, 사고를 미리 막기 위해 노력하고는 있으나 완벽할 수는 없다. 한편 뱀사골은, 이곳 지리산을 비롯하여 특히 식량과 거처가 용이한 곳이어서 여순사건 등을 거치면서 많은 희생자를 냈던 역사의 아픔을 간직한 곳이기도 하다. 이렇게 많은 전설과 숱한 사연을 간직한 뱀사골은 아무리 더운 여름철에도 섭씨 15도 이상 오르지 않아 피서 인파로 성시를 이룬다. 뱀사골 등반은 산내면 부운리 반선에서 시작된다. 지방도 861호선이 뱀사골을 따라 나있으며, 구산선문의 실상사를 비롯 많은 암자와 명승지가 자리하고 있다. 콘도, 민박, 야영이 가능한 시설 등이 잘 갖추어져 있고 교통이 편리한 편이다.
뱀사골 : 지리산 뱀사골은 돌골돌이라고도 하며, 지리산 반야봉에서 반선(伴仙)까지 산의 복사면을 흘러내리는 총길이는 14Km의 골짜기를 말하며. 뱀사골계곡산행은 장장8.5Km에 달하는데, 길고 긴 뱀사골은 지리산을 대표하는 아름다운 계곡이자, 국내에서 손꼽히는 계곡이다.
지리산 국립공원안에 있는 여러 골짜기들 가운데서 가장 계곡미가 뛰어난 골짜기의 하나로 꼽히며, 전구간이 기암절벽으로 이루어져 있고, 이 계곡에는 100여개의 크고 작은 폭포와 소(沼)가 곳곳에 있다. 봄철에는 철쭉꽃이 계곡을 메우고, 가을철에는 빛깔이 다양한 단풍이 계곡을 덮으며, 또 여름철에는 녹음이 짙은 계곡안에 삼복더위를 얼어 붙게하는 냉기가 감돈다.
뱀사골이라는 이름은, 골짜기가 뱀처럼 심하게 곡류하는데서 유래된 것이라고도 한다.
뱀사골계곡의 간장소 : 제승대에서 1.1Km가량 오르면 계곡의 끄트머리에 간장소가 있다. 먼옛날 화개장터에서 넘어온 소금장수들이 이곳을 지나다 미끄러지면서, 물의 색깔이 간장색으로 변했다는 곳이 이곳 간장소이다.
뱀사골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소인 간장소는 목좋은 장소를 찾아 잠시 쉬어가는 곳으로 안성맞춤인데, 기념사진을 찍는 사람들이 지금도 간장소에 빠진다고 하니 전설로 전해오는 이야기가 헛된 말은 아닌것 같다
08:40 토끼봉(해발1,534m)
이 봉우리는 반야봉에서 볼때 24방위 가운데 정동(正東)에 해당하는 묘방(卯方)에 해당하고, 묘(卯)는 토끼를 상징하기 때문에, 토끼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그러므로 토끼가 많이 살기 때문에 토끼봉이라는 이름이 붙었다는 이야기는 순전히 와전된 이야기다.
10:00~11:00 연하천대피소
연하천(烟霞泉)이란 이름은 오래전부터 전래된 이름이 아니라 구례의 연하반 산악회(현 지리산 산악회)에서 명명한 이름이다.
'구름속에 물줄기가 흐르고있다' 라는 뜻을 가진 이름처럼 연하천의 샘물은 사계절 마르지 않을 뿐아니라 이지역 자체가 늪지대를 연상시킬 정도로 항상물에 흥건하게 젖어 있다.
연하천 대피소
연하천 대피소에 도착하여 제일 먼저 대피소 직원께 핸드폰 충전을 부탁드리고 간식과 물을 보충한다. 이곳에서 1시간 가량 휴식을 취하고는 벽소령대피소로 향한다.
연하천 대피소에서 인증샷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이원규시인)
행여 지리산에 오시려거든 천왕봉 일출을 보러 오시라
삼 대째 내리 적선한 사람만 볼 수 있으니 아무나 오지 마시고
노고단 구름바다에 빠지려면 원추리 꽃무리에 흑심을 품지 않는
이슬의 눈으로 오시라
행여 반야봉 저녁노을을 품으려면 여인의 둔부를 스치는 유장한 바람으로 오고
피아골의 단풍을 만나려면 먼저 온몸이 달아오른 절정으로 오시라
굳이 지리산에 오려거든 불일폭포의 물방망이를 맞으러
벌 받는 아이처럼 등짝 시퍼렇게 오고 벽소령의 눈 시린 달빛을 받으려면
뼈마저 부스러지는 회한으로 오시라
그래도 지리산에 오려거든 세석평전의 철쭉꽃 길을 따라
온몸 불사르는 혁명의 이름으로 오고 최후의 처녀림 칠선계곡에는
아무 죄도 없는 나무꾼으로만 오시라
진실로 진실로 지리산에 오려거든 섬진강 푸른 산그림자 속으로
백사장의 모래알처럼 겸허하게 오고 연하봉의 벼랑과 고사목을 보려면
툭하면 자살을 꿈꾸는 이만 반성하러 오시라
그러나 굳이 지리산에 오고 싶다면
언제 어느 곳이든 아무렇게나 오시라
그대는 나날이 변덕스럽지만
지리산은 변하면서도 언제나 첫 마음이니
행여 견딜 만하다면 제발 오지 마시라
지리산의 눈으로
지리산의 가슴으로
지리산의 가르침으로
연하천 대피소에 있는 대중교통 안내도
연하천에서 약700m 진행하면 삼각고지(음정, 삼정삼거리)에서 음정마을로 내려서는 등로길이 있다. 그리고 벽소령대피소에서도 음정마을로 탈출할수 있다.
음정(삼정발) 대중교통 시간표
삼정발--->마천, 인원방면 : 07:05, 09:00, 11:00, 12:10,14:50, 17:10, 19:20, 20:25
마천발 대중교통 시간표(055-962-5017)
마천발--->서울(동부) : 07:30, 09:00, 11:40, 13:40, 15:00, 16:10, 17:10, 18:10
마천발--->서울(남부) : 11:00, 14:40, 18:40
마천발--->안양, 부천 : 09:30, 14:10
마천발--->대전(복합) : 18:50
연하천 이정표
11:05 삼각고지(음정삼거리)
연하천대피소에서 약700m, 소요시간 5분 진행하면 삼각고지 또는 음정마을 갈림길에 도착하고 이곳에서 음정마을로 탈출할수 있는 지점이다. 음정마을방향은 좌측방향이며 벽소령대피소방향은 우측편으로 진행한다.
▶ 음정(陰丁)마을
음정마을은 양정, 하정마을과 합하여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에 속하며 또한, 음지에 위치한 집단촌으로 취락을 이루고 살아간다는 뜻에서 음지정제이라고도 한다. 마을전설에 의하면 음지말 남쪽 골짜기를 비리내골, 옛날 선녀가 지상에 내려와 나무꾼과 살다가 날개옷을 찾은 뒤 남편과 자식들을 두고 날개옷을 입고 하늘로 올라가는데 그 남편과 아들이 하도 원통하여 눈물을 흘려서 비리내 골이 만들어 졌으며 그 자리에서 바위로 변하였다고 하는데 현재, 벽소령 정상에는 부자(父子)바위가 서 있다. 비리내골에는 현재 산림청에서 많은 자본을 투입하여 자연 휴양림을 지어 신비의 자연림과 맑은 옥류천은 유명한 관광지로 각광을 받고 있다. 마을 뒤쪽 골짜기에 위치한 영원사는 통일신라시대 영원대사가 지었다하여 절 이름도 영원사라 한다. 천혜의 자연이 살아 있는 곳에서 생산되는 토종꿀, 곶감, 오미자, 산죽차, 고로쇠수액, 산나물 및 산채류(고사리, 취나물 등), 약초(상황버섯 등) 등은 자연이 인간에게 베푸는 무공해 식품으로써 음정마을의 자랑거리이다.
삼각고지에 세워져 있는 간이탐방지킴이센터의 모습
삼각고지 탐방 안내도
삼각고지 이정표
형제봉(해발 1,452m)
지리산 주능선에 있는 형제봉이 바로 이 바위인데 여기에는 두형제의 전설이 깃들어 있다. 먼 옛날 두형제가 이곳에서 불도를 닦던 중 지리산 요괴의 유혹을 받았단다, 요괴의 유혹을 뿌리치기 위해 두형제는 서로 등을 맞대고, 불도를 닦았는데, 그 자세로 굳어져 지금의 바위가 되었다는 전설이 그것이다.
통천문 같은 협곡
언제나 이곳을 지날때면 마음이 포근해 지는 지점이다. 오늘도 이산객의 마음을 알고 있는지 바람골에서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잠시 걸음을 멈추고 피로감을 풀어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벽소령(碧宵嶺, 해발1,400) 이정표
벽소령에서 보는 달빛이 너무도 희고 맑아서 푸른빛으로 보인다해서 벽소령(碧宵嶺)이란 이름이 붙었다. 벽소령은 지리산종주 코스의 중간에 해당하며, 음정과 의신으로 내려가는 하산로가 있는 곳이다.
벽소령대피소 이정표
벽소령대피소는 요충지인것 같다. 사방으로 진행할수 있으니까
뒤편으로 연화천, 성삼재방면, 직진으로 세석,장터목, 천왕봉방면, 좌측 음정,삼정마을, 우측 의신마을로 가는
등로길이 있다.
12:10~15 벽소령(碧宵嶺)대피소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와 함양군 마천면을 연결하는 고개이다. 벽소령은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매우 희고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이므로 ‘벽소한월(碧宵寒月)’이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벽소령의 달 풍경을 일컫는 벽소명월(碧霄明月)은 지리산 십경 중 제4경이다.
밀림과 고사목 위로 떠오르는 달은 천추의 한을 머금은 듯 차갑도록 시리고 푸르다. 벽소령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약 45㎞에 이르는 지리산 종주길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고개로 높이는 1,350m이다. 옛날에는 함양군 마천면과 하동군 화개면을 이어 주던 교통로였다. 벽소령에는 부자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의 음정마을 전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에게 흔히 ‘나무꾼과 선녀’로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다.
지금의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하정에 인걸(仁乞)이란 사내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매일 나무와 사냥을 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연못에서 선녀들이 목욕을 하는 걸 훔쳐보던 인걸은 날개옷을 훔쳐서 오다가, 그중 아미(阿美)라는 선녀의 날개옷이 돌부리에 걸려 찢어져 하늘나라로 올라가지 못하게 되었다. 인걸은 아미 선녀를 집으로 데려왔다.
인걸은 그 후 하늘나라에서 아미 선녀와 살 것을 허락받고 두 남매를 낳아 아주 행복하게 살았다. 어느 날, 아미가 장난삼아 보관 중이던 찢어진 날개옷을 한번 입어 보자고 했다. 인걸이 찢어진 곳을 기워서 입혀 주자 아미는 그만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 후 인걸과 두 남매는 아미가 내려오기를 기다렸지만 끝내 내려오지 않았고, 기다리다 지친 이들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뒤 벽소령 높은 곳에 바위 셋이 솟아올랐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부자바위라 칭하고, 후세 사람들은 이 계곡을 아미 선녀가 날아서 떠났다 하여 비리내계곡[비린내골]이라고 부른다.
벽소령대피소 의신, 양정 버스시간표 안내
의신-하동 : 06:35, 07:45, 11:20, 13:00, 16:20, 18:30
삼정발-마천, 인원방면 : 07:05, 09:00, 11:00, 12:10,14:50, 17:10, 19:20, 20:25
벽소령에서 의신으로 가는 등로길의 모습
벽소령대피소에서 직진방향은 세석대피소방향이며 의신방향은 우측편 벽소령대피소 건물 옆으로 내려서면 된다.
▶ 벽소령(碧宵嶺)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와 함양군 마천면을 연결하는 고개이다. 벽소령은 달밤이면 푸른 숲 위로 떠오르는 달빛이 매우 희고 맑아서 오히려 푸르게 보이므로 ‘벽소한월(碧宵寒月)’이라 한 데서 유래한 이름이다. 벽소령의 달 풍경을 일컫는 벽소명월(碧霄明月)은 지리산 십경 중 제4경이다. 밀림과 고사목 위로 떠오르는 달은 천추의 한을 머금은 듯 차갑도록 시리고 푸르다.
벽소령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약 45㎞에 이르는 지리산 종주길 중간 지점에 해당하는 고개로 높이는 1,350m이다. 옛날에는 함양군 마천면과 하동군 화개면을 이어 주던 교통로였다. 벽소령에는 부자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는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의 음정마을 전설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우리에게 흔히 ‘나무꾼과 선녀’로 많이 알려진 이야기이다.
지금의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 하정에 인걸(仁乞)이란 사내가 홀어머니를 모시고 매일 나무와 사냥을 하며 살고 있었다. 어느 날 연못에서 선녀들이 목욕을 하는 걸 훔쳐보던 인걸은 날개옷을 훔쳐서 오다가, 그중 아미(阿美)라는 선녀의 날개옷이 돌부리에 걸려 찢어져 하늘나라로 올라가지 못하게 되었다. 인걸은 아미 선녀를 집으로 데려왔다.
인걸은 그 후 하늘나라에서 아미 선녀와 살 것을 허락받고 두 남매를 낳아 아주 행복하게 살았다. 어느 날, 아미가 장난삼아 보관 중이던 찢어진 날개옷을 한번 입어 보자고 했다. 인걸이 찢어진 곳을 기워서 입혀 주자 아미는 그만 하늘로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그 후 인걸과 두 남매는 아미가 내려오기를 기다렸지만 끝내 내려오지 않았고, 기다리다 지친 이들은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그 뒤 벽소령 높은 곳에 바위 셋이 솟아올랐다. 사람들은 이 바위를 부자바위라 칭하고, 후세 사람들은 이 계곡을 아미 선녀가 날아서 떠났다 하여 비리내계곡[비린내골]이라고 부른다.
13:15~20 선비샘(德坪峰, 해발1,521m)
경상남도 함양군의 지리산 주능선인 덕평봉 남쪽 상덕평 해발 1,500m에 있는 샘터이다. 이 샘을 선비샘이라 한 데는 한 화전민의 사연이 전한다. 옛날 덕평마을에 이씨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노인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화전민의 자식으로 가난에 쪼들리며 평생을 살았다. 배우지 못한데다 못생겨 주위 사람들로부터 천대를 받으며 살아왔던 노인은, 단 한번이라도 사람다운 대접, 선비대접을 받으며 살고 싶었다. 살아생전에는 소원을 이루지 못한 그는 마지막 유언으로 상덕평 샘터 위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고, 효성이 지극한 두 아들은 아버지의 유해를 샘터 위에 매장 했다. 그로부터 매년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은 샘에서 물을 마실 때면 반드시 노인의 무덤 앞에 인사를 하게 되니, 생전에 받고 싶었던 선비대접을 죽어서나마 이루었던 것이다.
웅석봉 : 지리산 천왕봉에서 시작된 산줄기가 중봉과 하봉을 거쳐 쑥밭재, 새재, 왕등재,밤머리재로 이어져 동쪽끝에서 크게 치솟는데, 이봉우리가 웅석봉이다. 웅석봉(熊石峰)이란 이름은 산세가 하도 가파라서 곰이 떨어져 죽었다해서 붙은 이름이다.
선비샘(德坪峰/1,521m)의 유래
경상남도 함양군의 지리산 주능선인 덕평봉 남쪽 상덕평 해발 1,500m에 있는 샘터이다. 이 샘을 선비샘이라 한 데는 한 화전민의 사연이 전한다. 옛날 덕평마을에 이씨 노인이 살고 있었는데, 노인은 조상 대대로 내려온 화전민의 자식으로 가난에 쪼들리며 평생을 살았다. 배우지 못한데다 못생겨 주위 사람들로부터 천대를 받으며 살아왔던 노인은, 단 한번이라도 사람다운 대접, 선비대접을 받으며 살고 싶었다. 살아생전에는 소원을 이루지 못한 그는 마지막 유언으로 상덕평 샘터 위에 묻어 달라고 부탁했고, 효성이 지극한 두 아들은 아버지의 유해를 샘터 위에 매장 했다. 그로부터 매년 지리산을 찾는 등산객들은 샘에서 물을 마실 때면 반드시 노인의 무덤 앞에 인사를 하게 되니, 생전에 받고 싶었던 선비대접을 죽어서나마 이루었던 것이다.
선비샘(德坪峰)의 모습
샘비샘과 임걸령샘 처럼 수량이 약하게 나오고 있다.
13:55 제일봉의 모습
제일봉에서 바라보는 조망이 일품인데 곰탕으로 인하여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다.
제일봉에 설치되어 있는 안내판
14:05 칠선봉(해발 1,558m)
칠선봉이 영신봉 옆에서 기다리고 있다. 봉우리 자체가 암장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일곱 개의 바위가 오밀조밀 모여서 정상을 이룬 모습이 마치 일곱 선녀가 한자리에 모여 노는 형상과 같다고 해서 칠선봉이라 불린다. 기암괴석으로 이뤄진 비경의 암봉들이 구름이 스쳐 지나갈 때면 더욱 아름답고 고요한 운치를 돋운다.
칠선봉 이정표
영신봉의 모습
낙남정맥 시작점과 끝점인 지점에 도착하고 영신봉은 등로길에서 벗어나 있지만 영신봉 이정목을 확인 후 세석대피소로 내려선다. 영신봉은 등로길 좌측편으로 오르면 바위가 있는곳이 정상이다.
14:50 영신봉(靈神峰, 해발1,652m)
경상남도 하동군의 화개면 대성리에 있는 봉우리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서쪽으로 제석봉·연하봉·영신봉·칠선봉으로 이어지는 주능선에 자리 잡았다. 하동군 화개면과 함양군 마천면, 산청군 시천면의 경계에 위치한다. 영신봉은 낙동강의 김해 분산(盆山)까지 이어지는 낙남정맥의 출발점이다. 서쪽으로 칠선봉과 덕평봉, 동쪽으로 촛대봉, 남쪽으로 삼신봉에 이어지는 주요 능선들이 영신봉에서 갈라지는 분기점을 이룬다.
조선시대 하동의 주요 관찬지리지와 군현지도에는 영신봉이 표기되어 있지 않다. 산의 남사면으로는 산청군 시천면의 거림골, 하동군 화개면의 큰세개골과 대성 계곡, 북사면으로는 함양군 마천면의 한신 계곡이 있다. 영신봉에서 남서쪽 사면으로 내려오면 화개면 대성리인데, 영신봉과 삼신봉 연맥의 서사면 산기슭에 의신·대성·단천 등의 자연마을이 입지하였다. 산골짜기에서 발원한 화개천 상류가 남서방향으로 흘러나간다.
영신봉의 이름은 영신사(靈神寺)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진주)에, "영신사(靈神寺)는 지리산에 있다. 절 뒤 봉우리에 깎은 듯한 돌이 섰고, 그 꼭대기에 작은 돌이 평상처럼 놓여 있는데 좌고대(坐高臺)라 부른다."라는 기록이 있다. 1472년에 지리산을 유람한 김종직 (1431~1492)의 『유두류록(遊頭流錄)』에는 "영신봉과 좌고대(坐高臺)를 바라보니 여전히 멀리 있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세석갈림길의 모습
좌측방향으로 내려서면 한신계곡을 지나 백무동으로 이어지고 직진은 천왕봉방향이며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거림, 청학동, 의신으로 내려설수 있다.
15:00 세석대피소
세석대피소(細石待避所, 해발1,560m)
세석대피소는 해발 1,560m에 위치하고 지리산 능선 안부 낮은 곳에 있는 건물이 세석대피소이고 그 옆에 세석천 약수터가 있어 등산객들의 식수로 이용된다. 대피소 뒤에 있는 봉우리가 영신봉(1,652m)이며, 그 뒤로 지리산 종주 코스가 계속 이어진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이 운영하는 대피소는 말 그대로 대피소이다. 과거 군대 내무반을 연상케하는 나무 침상에 달랑 모포 한 장을 지급한다. 식사까지는 바라지 않는다. 하지만 세석대피소 고도의 2배가 넘는 말레이시아의 키나발루에서도, 일본의 야리가다케에서도 가능했던 깔끔한 침구와 온수 샤워를 바라는 것은 너무 과한 일일까?
세석대피소 안내판
오늘 산행은 너무 여유롭게 진행하였다. 세석대피소에 도착하니 빗줄기는 거세지고 안내산악회 버스를 만날수 있을것 같아 백무동으로 내려서지 않고 안내산악회 대장님께 문자를 하고 거림으로 내려간다
세석대피소 이정표
세석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거림 또는 삼신봉, 청학동방향으로 진행하는 등로길이다. 거림(巨林)은 아름드리 거목들이 이 골짜기를 빼곡히 메우고 있어 붙어진 이름이다. 숲이 빼속히 메우고 지리산 세석평전에서 시작되어 거림마을까지 계곡으로 이어지고 클 거(巨) 수풀 림(林)을 써 거림이라 했다
거림계곡(巨林溪谷)은 경상남도 산청군 시천면 내대리에 있는 계곡이며 지리산 세석평전에서 시작되는 거림골을 본류로 하여 연하봉과 촛대봉에서 발원한 도장골, 세석평전에서 삼신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한벗샘에서 발원한 자빠진골 등의 지류가 모여 형성된 커다란 계곡이다. 깊은 계류와 울창한 원시림을 따라 세석평전까지 8㎞를 흐른다. 거림(巨林)이라는 이름처럼 아름드리 나무가 울창하게 계곡을 메우고 있는데, 일제강점기에는 군수용으로 많이 베어졌고 8·15광복 후에는 땔감으로 마구 베어져 한때 벌거숭이 계곡이 되기도 했다. 계곡을 따라 난 등산로는 세석평전으로 가는 가장 가깝고 완만한 길이고, 5월 하순부터 6월 초순까지 등산로를 따라 철쭉이 만발한다. 지류인 자빠진골과 도장골의 경관이 빼어나 본류는 상대적으로 한적한 편이다. 찾아가려면 진주나 산청(원지)에서 중산리행 버스를 탄다. 승용차로 가려면 산청군 시천면 덕산에서 중산리 방면으로 가다가 곡점마을 삼거리에서 좌회전한다.
거림삼거리의 모습
거림삼거리 이정표
거림탐방지원센터의 모습
지리산 탐방안내도
17:00 거림탐방지원센터
거림탐방센터에 도착하여 도로 따라 한참을 내려서니 삼거리가 나오고 우측편에 버스정류장 박스가 있어 그곳에서 대충 옷을 갈아입고 안내산악회 버스를 기다려 보지만 오지 않는다. 핸드폰 밧데리도 없는 상태인데 핸드폰을 보니 연락부탁이라는 안내산악회 대장의 문자가 있어 전화하니 기다리다가 안와서 출발했다고 하신다. 나중에 안 사실은 이곳에서 약7km 더 내려가면 또 다른 삼거리가 있다고 하는데 그곳에서 버스가 기다렸다고 한다. 안내를 재대로 해 주어야지... 안내산악회 대장말 택시타고 원지로 가서 서울가는 버스 타고 귀경하시라고 하시네...이런 무책임한 말 처음부터 안된다고 하면 세석대피소에서 백무동으로 하산하여
백무동에서 출발하는 버스로 서울가면 되는데...
난감한 처지라 비도 내리고 핸드폰 밧데리도 방전되고 차도 지나가지 않고...
버스정류장 아래 불빛이 보여 찾아가 보니 송화식당이라는 간판이 보인다. 그곳에 들어가 사정이이갸를
하니 밧데리 충전기와 따뜻한 커피한잔과 포도를 주시면서 택시를 불려 주시겠다고 하신다. 얼마나 고마운지 주인을 바라보면서 모든 세상에 나쁜사람만 있는것이 아니다는걸 느끼는 순간이었습니다.
친절하신 여주인께 인사를 나누고는 택시에 올라 원지터미널로 향한다. 표를 구입하고는 주변을 보니 마트가 있고 그곳에서 컵라면 한그릇을 먹고는 버스에 올라 정신없이 꿈나라 여행을 떠난다. 남부터미널에 무사히 도착하고 지하철을 이용하여 집에 도착 후 오늘 산행을 마무리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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