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1. 25. 09:47ㆍ★ MOUNTAIN/- 예비 산행지
[경춘선변의 명산들]
드름산(357.4m)
춘천시 신동면 의암리와 갓박골에 걸쳐 있는 산으로
삼악산과 동쪽 사면이 서로 마주보는 나지막한 산입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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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 아래로 북한강의 물줄기를 담아낸 의암호가 한 폭의 그림처럼 펼쳐지는
곳!
엄동에 지친 심신을 달래주고 또한 추억과 낭만이 깃든 기차여행의 향수와
길위에 펼쳐진 김유정시인기념관에서의 서정을 품으며 의암호의 붕어섬이
발아래 펼쳐져있는 기암절벽의 풍경에 매료되는 드름산 종주길로 여러분들
을 초청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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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위) 드름산 전망대에서 본 의암호 전경. 붕어섬이 발 아래 깔렸다. (아래) 울창한 잣나무 숲을 지나고 있는 등산객.
[드름산 산행도]
김유정역도착-김유정 기념관-금병초교지나-기문교차로-팔미육교-잣나무숲길-350m고지
-정자,웃바우고개-드름산정상(중식후)-돌탑,전망대-인어상 하산-BUS로 춘천우리송어양식장
-춘천역-상봉역 (대략 오후 6시 전후로 도착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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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름산 일정의 이모 저모
1.첫번째 만나게되는 김유정 시인의 기념관
내가 본 김유정 시인::생가 {유적지}
김유정 역사그림 ; 지금은 말끔히 단장했습니다
아래; 김유정기념관 입구
김유정 시인겸 소설가 그에 대한 평론이 요즈음에 많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김유정은 29살을 살다 간 짧은 생애속에서도 주옥 같은 단편과 시를 남김으로서
우리 문단에 끼친 영향이 그에 대한 연구 논문으로서도 후세에서 더 명성을 얻는
소중한 작가이기도 합니다.
김유정의 봄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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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5년 <조광(朝光)> 12월호에 발표된 단편소설.
혼인을 핑계로 일만 시키는 교활한 장인과 그런 장인에게 반발하면서도 끝내 이용당하는 순박하고 어리숙한 머슴 '나'의 갈등을 해학적으로 그린 소설. 희극적 상황의 설정과 유머러스한 토속적 언어 사용, 엇갈린 시간 구성이 뛰어나다. 이 작품에서 1930년대 농촌 사회의 '있는 자'와 '없는 자' 사이의 갈등 구조를 읽어 낸다는 것은 과잉 해석이다. 농촌 젊은이들의 순박한 사랑이 중심일 것이다.
1930년 8월 말이다. 스물 두 살의 청년은 늑막염이었다. 청년은 유산을 틀어쥐고 앉아 있는 고향의 형에게 치료비
와 생활비를 보내달라는 간곡한 편지를 썼다. 그때 청년은 둘째 누나 집에 얹혀살고 있었다. 형은 고향에서 술과
난봉질로 가산을 탕진하고 있으면서도 병석의 동생이 보낸 구조 신청을 외면했다. 겨우 몇 푼 보내주는 시늉을 하
고서는 입을 씻은 것이다.
이 청년이 바로 소설가 김유정(金裕貞, 1908~1937)이다. 김유정은 스물아홉 짧은 생애 동안 소설 30편,
수필 12편, 편지․일기 6편, 번역소설 2편을 남긴 작가다. 1996년까지 김유정 문학에 대한 연구 논문이 무려 360편
에 이르는데, 이렇게 쏟아지는 연구 논문은 그의 문학사적 위치의 중요성을 말해준다. 그는 1935년 조선일보와
중외일보의 신춘문예 공모에 각각 소낙비와 봄봄을 발표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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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두번째 만남.
드름산 정상을 지나서
전망대에서 바라 본 붕어섬과 의암호의 천혜의 전경
▲소양강처녀 노래비 - bus속에서 보게될 소양강 처녀상
지금으로부터 40여년을 거슬러 올라간
1968년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명보극장 앞 네거리에서 을지로 3가 방향으로 한 10여M 내려가다 보면
`한국가요반세기가요작가 동지회`라는 사무실이 있었다.
지금은 이 사무실이 등촌동으로 옮겨 가버렸지만,
당시는 명보극장과 스카라 극장 주변이 스카라 계곡이라고 불리우며
(예전에는 중대부속병원에서 을지로 3가 방향으로 가는 길에
남산에서 흘려 내리는 물로 계곡을 이루었으나 훗날 복개되어 현재에 이름)
영화와 쇼, 그리고 가요에 관계된 인사들이
삼삼오오 모여 정담을 피우던 그런 곳이었다.
이 작가 동지회 사무실에는 윤기순(尹基順)이라는 18세 소녀가
여사무원으로 일을 하고 있었는데,
그녀가 여기서 일을 하게 된 동기는
장차 가수가 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가수의 화려한 꿈을 안고 서울에 온..
강원도에서 가난한 집안의 장녀로 태어난..
가사를 돕는데 책임이 막중한 그런 소녀였다.
이런 그녀의 딱한 사정을 들은 인정파 젊은 가요작가 김종한 선생이
개인레슨을 해주며 한을 풀어주려고 백방으로 뛰고 있었다.
평소에 레슨비도 제대로 못내는 윤기순은
죄송스러워 어쩌지 못하다가 한가지 묘안을 내어
스승인 김종한 선생을 비롯해서, 회장인 반야월선생을 비롯
작사가 고명기, 류노완, 월견초 선생등을
자기의 고향인 소양강 댐에 초청했고,
고향집의 아버지도 자기 딸을 지도해 주는 서울 손님을 맞을 준비를 했다.
윤기순의 아버지는 소양강에서 민물고기를 잡아 생계를 꾸려 가는 어부였다.
윤기순의 부모는 서울에서 귀한 손님이 오셨다고
민물고기 매운탕을 끓인다..
토종닭을 잡는다는 등 부산을 떨고 있을 때의 여가를 틈 타,
윤기순은 반야월 선생에게
"회장님, 저기 조그마한 갈대 숲 섬이 보이시지요?
거기가면 아주 경치도 좋고 놀기도 좋아요.
우리 저 섬으로 놀러가요." 하고 청했다.
일행은 나룻배를 타고 섬으로 건너갔다.
그야말로 시상(詩想)이 저절로 떠오르는 경치에
일행은 시상을 가다듬었다.
바로 이때............
청천벽력으로 시커먼 비구름이 몰려오면서
비바람이 세차게 몰아쳤다.
소나기 비바람이 몰아치며 잔잔하던 강 물결이
산천초목을 삼킬듯이 일렁거리고
갈대 숲이 난리 부르스를 추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소나기에 흠뻑 젖은 윤기순이
"어머 무서워!"하면서 반야월 선생의 품에 안기는 것이다.
바람은 10여분간을 몰아쳤고
언제 그랬냐는듯 먹구름을 거두고
다시 맑은 햇살이 내리 쪼이는 변화 무쌍한 심술을 부렸다...
일행은 다시 뭍으로 나와 젖은 옷을 말렸고,
반야월선생은 이때의 느낀 감정을 메모해 두었다가
다듬어서 <소양강 처녀>라는 가사를 만들었다.
1.해 저문 소양강에 황혼이 지면
외로운 갈대밭에 슬피 우는 두견새야
열여덟 딸기 같은 어린 내 순정
너마저 몰라주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 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2.동백꽃 피고 지는 계절이 오면
돌아와 주신다고 맹세하고 떠나셨죠
이렇게 기다리다 멍든 가슴에
떠나고 안 오시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1969년 봄, 반야월선생은 이 가사를 가지고
오아시스 레코드사를 방문하여 신곡으로 쓰라고 내어 주자,
회사 문예부의 상담역이던 작곡가 이호선생이 자기가 작곡한다고 자청했다.
가사가 마음에 들어서인지 바로 악상이 떠오른 모양이었다.
노래에는 가수 지망생중에서 김태희가 선택되었다.
당시는 음반한장(12곡)에 옴니버스 스타일이어서
10여명의 가수가 필요하던 시절이었다.
12곡의 취입이 끝난 뒤
회사는 어느 곡을 타이틀로 할것인가 하는 고민 끝에,
오아시스 전 직원을 모아놓고 노래를 들려준 후
무기명투표로 타이틀을 결정했고
여기서 소양강 처녀가 뽑혔다.
LP음반이 나오자 김태희(본명 박영옥)의 아버지는
답례로 반야월선생에게 양복을 선물했다는 후일담도 있었고,
편곡은 박시춘 선생이 먼친척 조카뻘되는 김태희를 위해서
심혈을 기울였다는 말도 있다.
<소양강 처녀>는 대박이 났다.
그러나 세월은 흘러흘러.....
김태희는 <소양강 처녀> 이후 이렇다 할 뚜렷한 후속곡을 못내고
인기대열에서 멀어져갔다.
그런데 92년 한서경이라는 가수에 의해
현대적 감각으로 편곡된, 종전에 없던 3절 가사를 넣은
<소양강처녀>(역시 반야월선생이 작사)를 리바이벌해
인기곡으로 재탄생 하면서
노래방 시대에 최고의 인기곡이 되었고,
가요팬들의 뇌리에서 잊혀져가던
김태희가 덩달아 재조명되기 시작했다.
리메이크한 소양강 처녀때문에 그곡을 편곡했던 강모씨는
지하 월세방에서 당당하게 집도 사고 작업실도 차리고
이제는 방송음악작곡가로서 일하고 있다.
정말 한곡때문에 인생이 달라진 케이스라고 할수 있다.
3.달뜨는 소양강에 조각배 띄워
사랑의 소야곡을 불러주던 님이시여
풋가슴 언저리에 아롱진 눈물
얼룩져 번져나면 나는 나는 어쩌나
아~~ 그리워서 애만 태우는 소양강 처녀
95년 춘천시에서는 작사가 반야월 선생을 초청했다.
춘천의 명소 소양강, 그리고 소양강 댐에
더 많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서<소양강 처녀> 노래비를 세울 계획을 밝히고,
노래비 건립에 관한 자문을 요청해왔다.
그리고 노랫말 중 "열 여덟 딸기같은 어린 내순정"의 모델이 누구냐며
질문을 했다고 한다.
반야월 선생은 스스럼 없이
1968년 어느 여름 소양강 상류 작은 섬에서 소나기 맞는 순간 느꼈던 감정과
사무실 직원 윤기순의 일화를 피력했다.
여기서 노래비와 소양강소녀 동상도 만들기로 결정이 되었다.
한데.......
노래의 주인공이 된 윤기순의 행방이 묘연했다.
소양강 상류에 살고있는 윤기순네는
이사를 가 버린지 오래되었다고 한다.
춘천시에서는 경찰국에 협조를 의뢰,
전국적인 컴터 조회 탐지로 윤기순이
광주시에 살고 있는것을 알아냈다.
그녀는 끝내 가수의 꿈을 버리지 못한채,
또한 가정 형편상 동생들의 뒷바라지를 위해
취입곡 하나 없는 한많은 무명가수 윤미라로
광주의 밤무대에서 노래하고 있다는걸 알아냈다.
http://tvpot.daum.net/v/ykBqUbezaUA$
그후 윤기순과 <소양강 처녀>에 얽힌 사연은
KBS-TV <이것이 인생이다>시간을 통해서 방송되기도 했다.
***이글은 방송내용과 연예칼럼 리스트 김주명씨의 자료를
토대로 작성한 것입니다.
3.세번째 인어상으로 하산후 뒷풀이 장소
[춘천 우리송어 양식횟집]
춘천시 신북읍 율문리 567-1호 (신북농협앞)
대표 ; 최호준
전화 033 242 1143
hp ; 011 379 6838
산행시작 약 5시간 뒷풀이 마당에서 만날 송어의 살보기[1인분 \11,000원 무한리필 조건 - 부드러운 육질,
혀끝을 녹듯이 감칠맛 나게 자극하는 식감 - 여러분을 맛의 세계로 안내합니다
비호감님을 위해서 ; 송어까스
http://tvpot.daum.net/v/kIcrz5Kq5uw$
4. 네번째,춘천역에서 상봉역을 향해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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