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2010. 5. 20. 12:42★ MOUNTAIN/- 산행이야기


[백두대간]


동방의 우리나라는 산이 높고 물이 맑아(山高水麗) 고려(高麗)라 하였고, 아침햇살이 곱고도 밝아(朝日鮮明) 조선(朝鮮)이라하였다.

‘일편금(一片金)’이라는 풍수서에서 한반도 지세를 총론적으로 평한 글이다. 이어서 한반도의 산줄기의 흐름을 다음과 같이 소개하고 있다.

“우리나라 큰 산줄기는 중국의 곤륜산에서 파생되는 세 개의 큰 산줄기 가운데 북쪽 산줄기로부터 수 천리를 뻗어내려 온 것인데, 나라의 오른쪽(평안·경기·충청·전라 지역)에 작은 산줄기들을 많이 만들어 놓았다. 큰 산줄기는 작은 산줄기를, 작은 산줄기는 다시 그보다 작은 산줄기를 만들었으며, 이들이 끝나는 지점에 각각 혈(穴:무덤, 마을, 중소대도시가 들어설 자리)을 만들었는데, 이 모두 부귀를 가져다 줄 땅들이다.”

여기서 말한 ‘큰 산줄기’는 백두대간을 의미한다. 백두대간은 백두산에서 시작하여 한반도 남쪽 끝까지 내려가면서 여러 산줄기를 만들어내고 이들은 다시 크고 작은 산들을 사람들이 사는 곳 뒤에 만들어 놓고 멈춘다. 한반도 풍수에서 모든 산의 조종(祖宗)을 백두산으로 보는 것은 단순한 상징적 의미에서가 아니라 실제 모든 산들이 백두대간을 통해 백두산으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풍수뿐만 아니라 신경준의 ‘산경표’나 김정호의 ‘대동여지도’의 제작 원리도 이와 같은 인식에 근거한다. 백두대간이 남으로 내려가면서 만들어 내는 크고 작은 산줄기 사이 사이에 크고 작은 터전을 만들어 놓는데, “산줄기가 1리, 혹은 10리, 혹은 100리를 나아가기도 하여, 큰 것은 도읍지가 되며, 작으면 군이나 중소도시가 된다”고 조선조 지관(地官) 선발시험 과목인 ‘명산론(明山論)’은 적고 있다.

산줄기의 길이, 굵기, 생김새, 토질, 뻗어가는 모양 등이 어떠한가에 따라 들어설 입지의 규모나 용도, 성격 등이 달라지기 때문에 풍수에서는 동네 뒤의 작은 산줄기 하나까지도 세심하게 관찰하고 조심스럽게 다루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러한 풍수관에 의한 터 잡기 관념은 단지 옛 이야기가 아니라 지금도 여전함을 최근 우리사회의 화두가 되고 있는 ‘행정중심복합도시’의 경우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현재 행정중심복합도시가 들어설 충남 연기군 남면의 경우 ‘백두산→백두대간→속리산→한남금북정맥→칠현산→금북정맥→원수산→금강’으로 이어진다.

왜 이렇게 풍수에서는 산줄기의 흐름을 중시하며, 또 크고 작은 산줄기가 풍수에서는 무슨 의미를 갖는 것일까? 이에 대해 ‘명산론’은 땅과 사람을 다음과 같이 관계짓고 있다.

“흙은 살이 되고, 돌은 뼈가 되고, 물은 피가 되고, 나무는 모발이 된다.”

이러한 대지관은 묘지 풍수를 신봉했던 조선 성리학자들뿐 아니라 묘지 풍수를 부정했던 실학자들에게도 그대로 수용되어 담헌 홍대용의 대지관에도 반영된다.

“지구는 우주의 활물(活物)이다. 흙은 그 살이고, 물(水)은 그 피이며, 비와 이슬은 그 눈물과 땀이고, 바람과 불은 그 혼백이며 기운이다. (…) 풀과 나무는 지구의 모발이고, 사람과 짐승은 지구의 벼룩이며 이(蝨)다.”

우리나라에서 백두대간은 등골뼈인 셈이다. 등골뼈가 건강하고 온전해야 그로부터 파생되는 뼈대가 건강하다. 따라서 ‘산맥을 자르면(斷脈)’ 곧바로 재앙을 불러일으키는 것으로 믿어왔다.

예를 들면, 진시황의 명령으로 만리장성을 쌓았던 몽염 장군은 자신이 억울한 죽음을 당할 때, 만리장성을 쌓으면서 수많은 맥을 자른 천벌로 자기가 죽음을 당하는 것이라고 탄식을 했다. 수나라가 망하자 당시 민간에서는 수나라가 대규모 운하를 건설하면서 많은 지맥을 잘랐기 때문에 망했다고 믿었다. 태종 이방원이 그의 형 이방간(2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게 패한 후 유배지 전주에서 죽음)의 무덤 뒤 맥을 잘랐던 것도 이방간 후손의 번창을 막기 위해서였다. 임진왜란 때 명나라 이여송이 조선에 인재가 나오지 못하도록 전국에 맥을 잘랐다는 전설이나, 일제 때 일본인이 박았다는 쇠말뚝 이야기도 맥을 자르면 재앙이 생긴다는 관념에서 생긴 일들이다.

우리가 의지하고 살아가는 모든 산들은 크고 작음을 가리지 않고 백두대간이라는 벼리에 엮어진 그물 줄이다. 이쪽의 그물코가 헤어지면 저쪽의 그물코가 느슨해지듯, 백두대간을 벼리로 하는 한반도 산줄기들은 하나의 유기체로서 어느 한쪽이 다치면 그 통증이 인간에게까지 전해진다는 것이 풍수의 논리이다.

이렇게 ‘산이 파손되면 인간에게 재앙이 생긴다(山破人悲)’는 풍수적 경고는 당위론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 그래왔기 때문에 생겨난 것이며, 그래서 ‘돌멩이 하나, 주먹만한 흙 한 덩이(寸石拳土)’도 함부로 하지 않았던 것이다. 이러한 풍수관에서 보면 백두대간이 훼손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제, 주변의 수많은 산줄기들뿐 아니라 백두대간조차 이리 저리 잘리고 터널들이 뚫리는 상황에서 풍수가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인간에게 재앙이 내릴 것이라고 말한다면 미신에 지나지 않는 풍수설로 ‘혹세무민’한다고 할 것이다. 확실한 것은 “산이 높고 물이 맑아 고려(高麗)라 하였고, 아침햇살이 곱고도 밝아 조선(朝鮮)”이라 했다는 아름다운 산하의 모습은 조만간 사라질 것이라는 점이다. 이렇게 계속 산을 없애고 잘라나간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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