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산 의상봉에서 의상능선 삼천사까지 산행

2020. 11. 8. 21:54카테고리 없음

북한산 의상봉에서 의상능선 삼천사까지 산행

 

 

산 행 지 : 서울특별시 은평구, 경기도 고양시 일대

 

산행일시 : 2020년 11월 8일(일요일, 당일산행)

 

산행코스 : 북한산성입구-의상봉-가사당암문-용출봉-용혈봉-증취봉-부왕동암문-나월봉-

                  나한봉-715봉(상원봉)-청수동암문-문수봉-청수동암문-삼천탐방지원센터 갈림길-

                  부왕동암문 갈림길-삼천사-삼천탐방지원센터

 

산행시간 : 10시50분~17시00분(총6시간10분, 식사 및 휴식 포함)

 

산행거리 : 약 8.38km

북한산성입구-(1.73km)-의사봉(가사당안문-용철봉)-(2.65km)-용혈봉-(2.71km)-증취봉(부왕동암문-나월봉)-(4.0km)-나한봉(715봉)-(4.26km)-청수동암문(문수봉)-(4.64km)청수동암문(삼천사계곡 갈림길-(7.31km)-

삼천사-(8.38km)-삼천탐방지원센터

 

산행인원 : 4명

 

산행날씨 : 약간 쌀쌀한 가을 날씨

 

□ 대중교통(전철) 이용방

- 접근 : 하남-광역버스(9301)-종로3가역-3호선(구파발)-시외버스(34번)-북한산성 입구

- 귀가 : 삼천사-택시(구파발역)-3호선(종로3가)-5호선(강동역)-시내버스(112-5)-하남

 

북한산 의상능선 산행이야기

북한산 16성문 탐방을 지난주에 하였고 이번주 토요일은 응봉능선 탐방에 그리고 오늘은 의상능선 탐방을 기획한다. 북한산 의상능선은 의상봉(502m)에서 용출봉(571m), 용혈봉(581m), 증취봉(593m), 나월(651m), 나한봉(688m), 715봉, 문수봉(727m)으로 이어지는 환상의 등로길이다.

의상능선의 유래는 의상봉 부근에서 신라 시대 고승인 의상대사가 머물렀던 곳이라 하여 "의상봉" 이란

이름이 유래 되었다고 한다.

북한산 의사능선을 설악산에 있는 공룡 능선가 비교하는데, 설악산 공룡능선보다 규모는 적지만 바위에서 풍기는 장엄함과 웅장함이 설악산의 공룡 능선과 비교할수가 없을것 같다. 왜냐하면 그곳 지형이나 특성에 따라 산에서 풍기는 맛이 다르기 때문에 어느것이 월등하다는 표현은 삼가해야 할것이다. 북한산 의상능선산정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경의 아름다움은 북한산 등산로 중에서 으뜸이라 자부할수 있다.

 

북한산을 탐방하면서 탕춘대능선, 비봉능선, 응봉능선, 형제봉능선, 칼바위능선, 진달래능선, 산성주능선,

상장능선(비탐방구간) 그리고 의상능선을 답사하였지만 아직도 못다한 사자능선(비탐방구간)이 남아있다.

 

오늘 의상능선 탐방길에 친구들이 동행하여 외롭지 않을 산행길이 될것 같다. 立冬(11.7)이 지나면서 등로길에 단풍잎들이 떨어지고 나무가지는 앙상하게 있는 모습이  人生無常함이 느껴지는 것을 보면서 북한산성 입구에서 의상봉으로 향한다.

 

북한산 및 북한산성 소개

서울의 진산 북한산은 조선조 초기에는 삼각산(三角山)으로 불렀다. 삼각산이란 이름은 신증동국여지승람'삼각산은 양주의 경계에 있다. 일명 화산(華山)이라 하고, 신라시대에는 부아악(負兒岳)이라고 불렀다.

 

북한산은 경성(京城)의 진산으로 동명왕의 아들 온조가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살폈다'는 기록이 있으며, '백운봉 (白雲峰, 지금의 백운대), 인수봉 (仁壽峰), 만경봉 (萬景峰,지금의 만경대)등 세 봉우리가 있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라고 유래를 기록하고 있다.

 

북한산성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북한지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북한산성은 백제 온조왕이 터를 잡았고 그후 개루왕 때 성터를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에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치른 뒤 숙종 37(1711)에 시작하여, 6개월 만인 그해 10월에 완공하였다 한다.

 

북한산성은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정상을 기점으로 서쪽 산자락부터 원효봉,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용암봉, 문수봉, 나한봉, 나월봉, 용출봉, 의상봉까지 연결하여 쌓은 산성으로 총 길이가 10km에 달한다. 당시 산성에는 14개의 성문을 냈는데, 산성의 정문 격인 대서문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수문, 서암문(시구문), 북문, 백운대를 지나 위문, 용암문, 대동문, 보국문, 대성문, 대남문, 청수동암문, 대서문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산성에는, 부황동암문, 가사동암문이 설치되었다.

 

현재는 대부분 성문을 복원하였다. 북한산에 수많은 등산로 거미줄 같이 얽혀 있어 산행시 주의를 요하는 곳이다. 북한산의 산행 들머리는 대표적으로 여섯 군데를 꼽고 있다. 우이동 기점, 4.19탑 기점, 정릉 기점, 세검정 기점, 불광동 기점, 구파발 북한산성 기점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북한산(해발 837m)국립공원

북한산은 서울 특별시와 경기도 고양시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해발 837m인 주봉 백운대를 중심으로 동북 쪽의 인수봉(해발 803m)과, 동남쪽의 만경대(해발 800m)가 삼각을 이루고 있어 삼각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세 봉우리를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상장봉, 남쪽으로는 석가봉 · 보현봉 · 문수봉 등이 있다. 봉우리들은 한결같이 경사도가 가파른 험한 암벽으로 되어 있으며, 대체로 서쪽의 경사도가 더 심하다. 북한산은 산 모양이 웅장하고 아름다워 예로부터 서울의 진산으로 귀중하게 여겨져 왔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금강산 · 묘향산 · 지리산 · 백두산과 함께 우리 나라 5대 명산으로 지정되어 나라에서 큰 제사를 지내던 산이기도 하다.

 

이 산에는 미선나무를 비롯한 여러 희귀 식물과 다람쥐 · 살쾡이 · 오소리 등 20여 종의 포유동물, 홍방울새 · 찌르레기 · 쇠딱따구리 등 50여 종의 조류가 살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둘째 아들인 비류와 셋째 아들인 온조가 이 산에 올라 장차 터를 잡고 살 곳을 둘러보았다고 한다. 또, 무학 대사가 조선 태조 이성계를 위하여 도읍지를 정할 때, 백운대에서 만경대를 거쳐 비봉까지 갔었다고 전해진다. 비봉은 이 산의 남서쪽에 있는 해발 560m의 산봉우리이다. 국보 제3호로 지정된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이 봉우리에서 발견되어 이름을 비봉이라고 한다.

 

북한산에는 1711년에 쌓은 길이 10km의 북한 산성이 있다. 이 성에는 원래 14곳에 성문이 있었다고 한다. 그 밖에도 북한산 구기라 마애 석가 여래 좌상 · 태고사 원증 국사 탑비 · 태고사 원증 국사 탑 · 동장대지 등 많은 유물과 유적이 있으며, 상운사를 비롯하여 진관사 · 승가사 · 문수암 · 태고사 · 화계사 · 도선사 · 원효암 등 30여 곳의 절이 있다. 북한산 꼭대기에서는 서울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멀리 서해도 보인다. 계곡마다 물이 많고 삼림이 울창하다.

 

서울 시내에서 산 입구까지의 교통이 편리하여 서울 시민의 1일 등산 코스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등산로는 대개 경사가 완만한 동쪽의 우이동 · 정릉 · 세검정 등지에서 올라가 서쪽의 구파발 · 북한 산성 입구 쪽 등으로 내려온다. 백운대 · 인수봉 등은 암벽 등반 훈련장으로도 이용된다. 이 산은 서울에 가까이 있으면서 경치가 아름다워 1983년에 근처의 도봉산 일대와 함께 북한산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북한산국립공원 입간판에서 기념 인증샷

북한산성 탐방지원센터 맞으편 북한산국립공원 입간판 앞에서 의상능선에 함께할 친구들과 함께 기념사진을

남기고는 의상봉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의 모습

어제보다 날씨가 많이 추워서인지 아니면 우리일행이 산행이 늦어서인지는 몰라도 에전의 모습하고는 많은

달라 보인다. 예전에는 버스에서 내리는 등산객과 온라인 동우회 산우님들이 人山人海 였는데...

아무튼 한산해서 좋다.

의상봉 들머리지점의 모습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에서 약300m 직진으로 진행하면 우측편으로 의상봉방향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에서 우측편

통나무계단으로 올라서면 부드러운 등로길을 완만하게 진행하게 되고 잠시 후 백화사에서 올라오는 등로길과 합류하게 된다. 백화사 갈림길에서 좌측편 돌계단을 오르면 암릉지에 도착하고 암릉길에서 약한 릿지 맛을 보면서 암릉지에 오르면 토끼 모양의 형상을 한 쌍 토끼바위에 도착한다.

의상봉 들머리에 있는 이정표(의상봉 1.2km,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0.3km)

의상봉까지는 1.2km 짧은 거리이지만 암릉구간이 많아 정체가 되고 위험하여 소요시간이 40~50분 걸리는 구간이다

의상봉 들머리에 설치되어 있는 등산 안내도

오늘 진행하는 의상능선은 봉우리가 8개[의상봉(502m), 용출봉(571m), 용혈봉(581m), 증취봉(593m), 나월봉(651m),

나한봉(688m), 715봉, 문수봉(727m)] 있는데 그 중 의상봉이 제일 낮은곳에 위치하고 있고 문수봉이 제일 높은곳에

위치하고 있다.

부드럽고 편안한 등로길의 모습

한적하면서 고요한 등로길을 친구들과 오붓하게 걷는것도 힐링이 아닐까 생각하며 의상봉을 향해 천천히 진행한다.

백화사 갈림길의 모습

의상봉 들머리지점에서 완만하게 진행하면 백화사에서 올라오는 등로길가 합류하고 게속하여 직진으로 진행한다.

백화사 갈림길 이정표(←의상봉 0.7km,↓산성탐방지원센터 0.8km,→백화사1.0km)

의상봉 들머리지점에서 백화사 갈림길까지 오르는 중간에 식사하기 좋은 넓은 공터가 몇개 있지만 식사를 하고

암릉지를 오르는것 보다 의상봉 정상에서 휴식을 하면서 식사하는것이 다음 진행하는데 좋을것 같아 의상봉으로

향한다.

처음으로 맞이하는 암릉지의 모습

암른지대 바위들이 미끄러워 조심하지 않으면 큰 사고가 일어날수도 있는 지점이다.

두번째 맞이하는 암릉지의 모습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암릉지의 모습

암릉지가 많고 위험하여 단체산악인들과 혼합하게 되면 정체가 많이 되는 지점이다. 오늘도 우리일행 앞에  모산악회

일행들이 암릉지를 올라가지 못해 수많은 시간들이 지났다.

암릉지와 소나무의 조화

쌍 토끼바위의 모습

암릉지를 오르면 우측편으로 토끼를 닮은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쌍 토끼바위라고 한다. 방향 각도에 따라서

약간 달리 보이지만 두귀의 모습이 흡사하다.

성량지(城廊止)

성곽에 딸린 초소 건물이자 병사들의 숙소였던 성량이 있었던 곳이다. 북한산성에는 143개소가 있었다.

의상봉 오르는 나무계단의 모습

오래간만에 의상봉을 오르는것 같다. 예전에는 암릉지 팟줄을 잡고 또는 릿지를 하면서 올라던 기억이 나는데

이제는 이렇게 편리하게 오를수 있도록 나무계단이 설치되어 있어 감사할 따름이다. 수고 하시는김에 위험구간에

모두 나무계단을 설치해 주시면 어떠할지? 지자체 관계자님들 심사숙고 해 주세요.

계속되는 나무계단 오름길의 모습

나무계단을 오르면서 뒤돌아보니 조금전에 올라온 등로길과 저멀리 은평구와 고양시일대가 한눈에 펼쳐진다.

의상봉 전위봉에서 원효봉,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배경으로 인증샷

의상봉 전위봉에서 바라본 원효봉,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의 모습

의상봉 전위봉에서 원효봉,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 배경으로 단체인증샷

의상봉(해발502m, 義湘峰) 정상

의상봉의 유래는 이곳에 신라 시대 고승인 의상대사가 머물렀던 곳이라는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고 전하고 있다고 한다.

의상봉 앞쪽으로는 절벽지역이라 밧줄난간이 설치되어 의상봉정상석이 없지만 이정목이 설치되어 있어 정상을 알리고 있었다. 

의상봉(해발502m, 義湘峰) 이정표(산성탐방지원센터 1.5km, 백화사 1.7km, 대남문 3.0km)

의상봉은 북한산 10경 중 제8경에 속하고 있다.

 

의상팔선(義湘八仙)

제여곰 다른 모습 팔선(八仙)과 악수하고

콧노래 불러가며 파도 탄 의상능선

어느새 열락(悅樂)을 얻어 봉래도(蓬萊島)에 닿았네

* 의상능선에 있는 문수봉, 715, 나한봉, 나월봉, 증취봉, 용혈봉, 용출봉, 의상봉 등 8개봉으로, 산행거리 5.3km이다. 환경부 선정

북한산 제8.

* 팔선 ; 도교의 깊은 이치를 체득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종리권(鍾離權여동빈(呂洞賓장과로(張果老한상자(韓湘子이철괴(李鐵拐

조국구(曹國舅남채화(藍采和하선고(何仙姑-) 등 여덟 신선을 말한다. 각기 독특한 모습인데다, 기물을 하나 씩 가지고 있어

식별이 용이하다.

* 봉래도; 신선이 산다는 이상향으로 전설상의 섬.

* 제여곰은 제각기또는 각자등의 뜻을 지닌 고운 옛말이다

의상봉(해발502m, 義湘峰) 정상 이정목에서 인증샷

초반부터 힘들게 암릉길을 올라 의상봉에 도착하였다. 의상봉정상 넓은 공터에는 모 산악회 회원들이 진을 치고 앉아

있어 정상 조금 아래 국녕사 대불상이 보이는 양지 바른곳에 앉아 점심을 즐기면서 오손도손 시간이 가는줄 모르고

수다 三昧境 이다. 언제 출발 할건지 ㅎㅎ

국녕사(國寧寺) 대불상

국녕사는 조선 1711년(숙종 37)에 북한산성 축성과 함께 만들어졌고 산성의 수비를 위해 창건한 북한산 13개

승영사찰(僧營寺刹) 중 하나이다. 이곳에 승군을 주둔시키고 산성의 수비와 성곽 관리를 맡겼는데, 무기고가 있는

병영 역할도 겸하게 했다. 86칸 규모로 승려 청휘(淸徽)와 철선(徹禪)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국녕사는 갑오경장으로 의승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존속했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폐사되었다가

근래 들어 새롭게 조성됐다.

북한산성 성곽(가사당암문 위 성곽)

북한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뒤, 1711년(숙종37년)에 이르러 유사시를 대비해 만든 "산속의 도성"이다. 숙종 즉위 초부터 은밀히 논의되다가 37년후 축성이 결정되자 단 6개월 만에 완성되었다.

 

삼국시대 이래 군사적 요충지요 천연의 요새로, 백제 초기에 토성으로 쌓았으며 고려조의 증보수를 거쳐 조선 숙종 때 석성으로 증축되어 오늘에 이른다.

 

북한산성 축조 시 팔도도총섭 직책을 맡아 축조에 기여한 승려 성능(性能)이 지은 북한지(北漢誌: 1745(영조21))의 기록에 따르면 둘레는 7620보이고, 성에는 문 14, 장대 3, 상곽(성랑) 143, 26, 우물 9개소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벽둘레는 약 12.7km이고 넓이는 약 6.2㎢(200만평 정도)이다. 성벽 출입시설로는 대문6, 암문8, 수문2곳의 총 16개의 문과 병사들이 머무는 초소인 성랑143곳 등이 있다.


성 내부 시설로는 임금이 머무는 행궁, 주둔 부대가 머무는 군영 3, 군량미를 보관하는 창고8, 승군이 주둔하던 승영 사찰이 13, 군사지휘소인 장대 3곳 등이 있었다. 상주인원은 1600여명(군사1000여명, 승군 350여명, 일반인 250여명)이었다고 한다. 국력이 쇠하고 방치되다가 1907·1915·19253차례의 수해로 수문 및 행궁, 중흥사 등 많은 시설물들이 유실되었고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많은 시설물이 파손되었다

 

여장(女墙)

여장은 성벽의 몸체 부분위에 설치한 낮은 담장이다. 성가퀴 도는 살받이터라고도 한다. 성을 지키는 병사를 보호하고, 적을 관측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다.

여장에는 대개 총안(적에게 총이나 활를 솔 수 있도록 성벽 여장에 나있는 구멍)을 뚫었다. 비스듬하게 뚫어 성벽 가까이 접근한 적을 공격할 수 있게 한 총안을 근총안이라 하고, 수편으로 뚫어 멀리 있는 적을 효과적으로 공격할수 있게 한 총안을 원총안이라 한다.

북한산성의 여장은 적당히 다듬은 할석(깬돌)으로 쌓았다. 이 점은 전돌로 쌓은 남한산성의 여장이나 잘 다듬은 돌을 사용한 화성의 여장과 차이를 보이는 축성법이다.

여장(女墙)

여장은 성을 지키는 병사를 보호하고, 적을 관측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다.

가사당암문 (해발 488m)

가사당암문은 의상봉(義相峯)과 용출봉(龍出峯) 사이 고갯마루에 위치한 평거식(平据式) 성문으로서 북한산성 동쪽

아래에 국녕사(國寧寺)가 있다고 하여 국녕문(國寧門) 또는 국녕사암문(國靈寺暗門)으로도 불렸다. 숙종 37년(1711년)에 북한산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만든 8개의 암문 중 하나이며. 다른 암문과 마찬가지로 문루는 없다.

*암문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때로는 구원병의 출입로로 활용된 일종의 비상출입구이다.

가사당암문 (해발 488m) 안내판

가사당암문 (해발 488m) 이정표

우측편 가사당암문을 통과하여 진행하면 백화사로 향하고 좌측편으로 내려서면 국녕사 및 북한산성탐방지원센터

방향으로 진행하는 등로길이다.

용출봉 오름길의 모습

가사당암문을 통과하여 진행하면 경사지에 로프가 설치된 난간이 나오고 경사지를 한차례 밀어 올리면 용출봉

정상에 도착한다.

용출봉 전위봉에서 바라본 삼각산의 모습

용출봉 정상 오름길의 모습

용출봉 정상부의 모습

용출봉 정상부는 넓은공터와 이정표는 있지만 정상석은 없다. 정상을 알리는 이정목은 이정표 뒤편에 설치되어 

잘 살펴보지 안으면 그냥 지나칠수 있는 지점이다.

용출봉(해발 571m, 龍出峰) 정상목

가사당암문에서 경사지를 한차례 밀어 올리면 용출봉 정상에 도착하고 정상에서 우측편 1시방향으로 철계단을 내려서면 등로길 우측편으로 할미바위가 나오고 다시 오르면 용혈봉 정상으로 이어진다. 용풀봉에서 용혈봉까지는 짧은 거리에 위치하고 있다.

용출봉(해발 571m, 龍出峰) 이정표

용출봉(해발 571m, 龍出峰)에서 바라본 앞으로 이어갈 의상능선 길의 모습

용출봉(해발 571m, 龍出峰)에서 바라본 앞으로 이어갈 의상능선 길의 모습

용출봉 내려서면서 바라본 용혈봉의 모습

 

용출봉 철계단의 모습

용출봉정상에서 용혈봉으로 내려서는곳에 설치되어 있는 철계단이다. 철계단 통과 후 뒤돌아본 용출봉의 모습이다.

할미바위의 모습

용출봉에서 철계단을 내려서면 우측편으로 희귀한 바위가 있는데 이것이 할미바위라고 한다.

용혈봉 정상 직전에 있는 암릉지의 모습

용혈봉(해발 581m, 龍穴峰) 정상목

용혈봉정상에 올라서면 사방이 확트여 있어 시원한 바람과 조망이 일품인 곳이다. 좌측편으로 원효봉을 필두로

염초봉, 백운대, 인수봉, 만경대, 노적봉등, 정면으로 앞으로 이어갈 의사능선의 나월봉,나한봉,문수봉 그리고

우측편으로 승가봉, 사모바위, 응봉, 비봉, 향로봉등이 조망되는곳이다

용혈봉(해발 581m, 龍穴峰)에서 바라본 향로봉방면의 모습

산불감시초소의 모습

용혈봉에서 내려서면 등로 좌측편 아래에 산불감시 초소가 보이고 다시 급경사지를 한차례 밀어올리면 증취봉에

도착한다

증취봉 경사지 오름길의 모습

증취봉에서 바라본 삼각산

증취봉(해발 593m, 甑炊峰) 정상 이정목

증취봉 정상 이정목은 등로길 좌측편 암릉길 위에 위치하고 있다.

증취봉 아래 전위봉에서 본 돼지바위의 모습

증취봉 직전 전위봉에서 바라본 지난온 의상능선

설악산에 공룡 능선이 있다면 북한산에는 의상 능선이 있다. 규모는 작아도 바위가 풍기는 장엄미가 설악산의 

그것에 비견한다. 특히 그 암릉길에서 바라보는 주변 풍경의 아름다움은 북한산 등산로 중에서 으뜸이다

 

증취봉 아래에 있는 바위의 모습

 

부왕동암문(해발 521m,扶王洞暗門)

부왕동암문은 증취봉(甑炊峯)과 나월봉(蘿月峯) 사이 산 능선에 위치한 평거식(平据式) 성문으로 북한산성의 8개 암문 중 가장 규모가 크다. 부왕동암문 높이는 9척이고 너비는 8척이나 되며 이곳으로 부왕동암문을 지나 내려서면 삼천사 계곡으로 이어진다.

부왕동암문은 정식 홍예(虹霓)는 아니지만 위쪽 성돌을 둥글게 파서 홍예문처럼 만든 아름다운 성문이다. 부왕동은 증취봉 아래에서 발원하여 삼천사로 내려가는 계곡이다. 소남문(小南門) 또는 원각사암문(圓覺寺暗門)이라고도 불렸다. *바깥쪽만 홍예문 형태.

부왕동암문(해발 521m,扶王洞暗門) 안내판

부왕동암문(해발 521m,扶王洞暗門) 이정표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나월봉 경사지 오름길의 모습

나월봉 갈림길의 모습

부왕동암문에서 밧줄이 설치되어 있는 암릉지를 오르면 나월봉 갈림길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는곳에 도착한다.

나월봉정상은 암릉지로 위험구간이라 출입금지 안내판이 설치되어 있고 우회하는 등로길도 만들어져 있다.

예전에는 위험한것도 모르고 정상을 올랐는데 이제는 안전을 위해 우회 등로길로 진행한다.

나월봉 갈림길 이정표(← 대남문 1.2km, → 의상봉 1.8km, 가사당암문 1.5km)

나월봉 아래에 있는 에스컬레이터 바위 모습

예전에는 나월봉정상에서 에스컬레이터 바위를 두손,손발을 의지하여 딛고 내려선던 그 바위 지금은 금지구간이라

나월봉을 우회하여 바라보기만 하네...

나월봉정상부의 모습

나한봉 전위봉에서 바라본 지나온 의상능선의 모습

짧은 거리지만 오르 내림이 심한구간이고 땀 한번 흘리고 나니 마음은 상쾌하다. 이제는 나한봉을 지나 715봉

청수동암문을 거쳐 문수봉까지 올라 북한산 조망을 보고 다시 청수동암문으로 내려와 삼천사로 진행할 예정이다.

나한봉 전위봉에서 바라본 나한봉 치성의 모습

나월봉을 우회하여 진행하면 나한봉 전위봉 암릉지에 도착하고 조금더 진행하면 나한봉갈림길에 도착하는데

이곳도 나월봉 처럼 출입금지 푯말이 붙혀있다. 나한봉은 암릉이나 위험한 구간이 아닌데 왜? 출입금지 푯말이

붙혀 있는지 궁금하여 몰래 올라가 보니 나한봉 치성 공사가 한창이다. 공사 때문에 출입금지라는 것을 알고는

내려와 715봉으로 향한다.

나한봉(해발 688m, 羅漢峰) 정상부의 모습

예전  탐방시에는 정상부에 나한봉 정상을 알리는 이정목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공사로 인하여 어디로 갔는지

찾을수가 없었다. 나한봉 치성 공사를 위하여 정상부에는 엉망진창인 상태다.

나한봉 치성(해발 688m羅漢峰 稚城) 안내판

나한봉 치성은 성곽 일부분을 네모나게 돌출시켜 밖으로 내어 쌓은 구조물로, 적군의 접근을 초기에 관측하고

할때 접근하는 적을 정면이나 측면에서 격퇴하기 위해 설치한 방어 시설물이다.

 

"치성(稚城)"의 "치"는 꿩의 머리처럼 돌출되었다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고도 하며, 성곽의 역할이 몸을 숨기고

주변을 살피는 꿩의 습성과 비슷하다고 해서 지은 이름이라고 한다.

 

해발 866m에 조성된 나한봉 치성은 성곽의 만서쪽을 관측하기 좋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한양을 비롯한 한강

유역을 한눈에 관측할수 있으며, 서쪽의 한강 하구와 멀리 강화도까지 조망할수 있다.

 

나한봉 치성의 구조는 3~4단의 성벽이 있고 삼면이 모두 깎아지른 자연 절벽으로 이어진다. 북서쪽은 30cm

내외로 흙을 사용해 바닥을 평편하게 했으며, 외성벽 아래족에 계단식으로 만등러 성벽을 보강했다.

 

치성의 길이는 10m, 너비는 4.4m이며 남아 있는 성벽의 높이는 1m 내외다. 내부에서는 선물지로 추정되는

초석1기와  초석을 받친 적심 유구2기가 발견되었는데 130m 내외로 간격이 일정하다. 지붕을 만든 재료로

보이는 기와도 발견되었다.

나한봉 치성(해발 688m羅漢峰 稚城)에서 바라본 715봉 암릉길의 모습

715봉으로 오르는 암릉지 로프난간의 모습

715봉(상원봉)이정표

어느 선답자의 후기글을 보면은 715봉을 "상원봉"으로 칭하고 있었다. 지도상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데 어디에서

찾았는지 궁금할 따름이다. 715봉 이정표가 있는곳에서 산성쪽 우측방향으로 가면 삼각점이 있다. 봉우리 명칭을

붙혀주는것도 좋을것 같은데...

청수동암문(해발 694m)

청수동암문은 문수봉(文殊峯)과 715봉, 나월봉(羅月峰) 사이 고갯마루에 위치한 평거식(平据式) 암문이다. 1711년 설치. 산성주능선과 의상능선과 비봉능선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있다. 청수동암문을 지나 내려서면 진관사로 내려서는 등로길이 나오고 직진으로 진행하면 비봉능선을 지나 향로봉, 불광동 또는 연신내역으로 이어지는 등로길이다.

청수동암문(해발 694m) 안내판

청수동암문(해발 694m) 안내도

청수동암문(해발 694m) 앞 이정표

문수봉(해발 727m, 文殊峰)정상 이정목

문수봉은 행정구역상 경기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문수봉 명칭은 봉우리 아래 문수사가 있어

문수보살 이름을 붙혀 문수봉으로 불리어 지는것 같다.

 

문수사(文殊寺)

문수사는 서울시 종로구 구기동 2번지 북한산 남장대 앞 문수봉 아래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직할사찰이다. 문수사는 예로부터 오백나한을 모시는 기도처로 유명했으며 아직도 그 치성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절이 자리한 곳은 북한산 남장대(南將臺, 해발 716m) 앞 문수봉 아래로, 북한산 안에 있는 사찰 가운데 주위 경관이 좋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가깝게는 동쪽으로 보현봉이, 서쪽으로는 비봉이 절을 감싸고 있으며 좀 더 멀리 시야를 넓혀 보면 남쪽으로 관악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또 멀리 서쪽으로는 한강 하류와 인천 앞바다가 펼쳐진다. 그런 까닭에 많은 시인묵객들이 풍류를 좇아 이곳을 찾아 시를 읊곤 했는데, 고려시대의 이장용(李藏用)과 탄연스님, 조선시대의 최립(崔立), 홍세태(洪世泰)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문수사의 창건주인 탄연스님이 이 곳 문수사에 대해 읊은 시 한수가 전하고 있다.

한 칸 방 어찌 그리 너무도 고요한가, 일만 인연 모두 적막하네.
길은 돌 틈으로 뚫고 가고, 샘은 구름 속에서 새어나네.
밝은 달 처마 끝에 걸려 있고, 산들바람 숲 속에서 일어나네.
누구 저 스님 따라, 고요히 앉아 참 낙을 배우려나.

문수사에는 문수굴로 불리는 천연동굴이 있다. 이 동굴법당은 영험이 있는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박사도 그의 어머니가 멀리 황해도 평산에서 이곳까지 와, 동굴 속에 모셔진 오백나한상에게 치성을 드린 끝에 그를 낳았다고 한다. 그와 같은 인연으로 4 · 19 직전 이승만 박사가 당시 82세의 고령을 무릅쓰고 이곳을 방문하여 ‘문수사’ 현판을 직접 썼다고 하며, 당시 스님들과 함께 찍었던 빛바랜 흑백사진도 절에 남아 있다. 또한,북한산 비봉에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유명한 신라진흥왕순수비에는, ‘한성(지금의 경기도 광주 춘궁리 일대)을 지나 고개를 올라 … (중략) 한 도인(道人)이 석굴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여 이 근처에 있는 어느 석굴에서 도인을 만났다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서의 석굴을 바로 이 문수굴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문수봉(해발 727m, 文殊峰)정상 이정목에서 단체 인증샷

문수봉(해발 727m, 文殊峰)에서 바라본 비봉, 향로봉방향의 모습

문수봉(해발 727m, 文殊峰)에서 바라본 의상능선의 모습

나무계단 내림길의 모습

문수봉을 찍고 다시 청수동암문을 복귀하여 암문을 통과하면 나무계단 내림길을 맞이한다. 잠시 후 너덜지대

내림길을 지나면 삼천사갈림길이 나오고 우측방향으로 진행한다.

너덜지대 내림길의 모습

북한산의 지형경관 자원 안내판

청수동암문 아래에 있는 애추지형 "애추"우리말로 "너덜", "돌서렁" 이라 부르는데 주로 빙하기에 한랭 건조한

기후의 영향으로 암석의 기계적 풍화가 활발히 일어나서 생성됩니다.

암벽에서 떨어져 나온 암설들이 오랜 세월 겹겹이 쌓여 돌밭을 이루고 절벽은 침식과 풍화에 의해 점점 깍여 나갑니다. 이런 과정들이 오랜 세월 반복되면서 애추가 형성 됩니다. 또한 돌들은 대개 모난 모양이며 큰 암설일수록 떨어질 때의 운동량이 크기 때문에 더 멀리 이동합니다. 그래서 작은 암설은 사면 상부에, 큰 암설은 멀리 이동하여 사면 하부에 집적되는 경향이 나타납니다.

북한산국립공원은 암봉의 하부 및 계곡부 일대에서 대,소규모로 이완된 암괴가 퇴적된 다양한 형태의 애추지형이 관찰되고 있으며, 현재 이곳은 문수봉에서 떨어진 암설들이 우리 눈앞에 펼쳐져 있습니다.

삼천탐방지원센터 갈림길

청수동암문에서 "애추"(너덜지대)를 지나 내려서면 갈림길이 나온다. 직진방향은 승가봉, 사모바위, 비봉, 향로봉

방면이고, 우측편 등로길은 삼천사계곡, 삼천사, 삼천탐방지원센터로 이어지는 등로길이다.

그리고 비봉, 사모바위, 승가봉방면에서 문수봉으로 진행하다 보면 지금의 이 등로길은 편하게 진행할수 있는

우회등로길이다.

삼천탐방지원센터 갈림길(← 대남문 0.6km, ↓삼천탐방지원센터 3.5km, →비봉)

너덜지대 내림길

삼천탐방지원센터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전환하여 내려서면 이 지역도 "애추"(너덜)지역이다. 잠시 후 계곡을

이리 저리 왔다 갔다 하면서 지나야 하는데 계곡에 물이 없어 그나마 다행이다. 한여름 이곳을 지날때면 물이 많아

건널때도 위험했던 기억이 있다.

부왕동암문 갈림길 이정표

삼천탐방지원센터 갈림길에서 1.6km 내려서면 부왕동 암문에서 내려오는 등로길과 합류되는 지점에 도착한다.

지금부터는 등로길이 완만하여 삼천사까지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삼천사와 문수봉의 모습

문수봉에서 삼천사로 이어지는 협곡이 깊어 계곡에 물이 많을때에는 진행하는데 어려움이 많은 구간이지만 한여름

산행의 피로를 풀기에는 아주 좋은 계곡이다.

삼천탐방지원센터 입구의 모습

삼천탐방지원센터 탐방로 안내도

삼천탐방지원센터

차가운 날씨속에 함께한 친구들께 감사의 말씀 지면으로 전하며 무사히 의사능선 산행을 마칠수 있어 행복하다.

처음에는 나홀로 산행을 계획 했다가 친구가 함께 하자고 하여 외롭지 않은 산행길이 되었다.

또 다시 북한산 산행길에서 뵙길 기대하면서...

삼천탐방지원센터 앞에 있는 돼지집

산악회 단체모임을 많이 하는 식당이다. 요즘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이용은 못하고 있지만 언젠가는 다시 찾을

것이다. 친구들과 산행 뒤풀이는 북한산온천 뒤편에 있는 "산가" 소고기집에서 마무리 하기로 하고는 걸어서 백화사

입구까지 진행 후 길을 건너 골목으로 한창을 진행하니 비닐하우스동 안에 산행을 마치고 온 산객들이 무수히 많다.

 

이 음식점은 산악인들께 소문으로 찾아오는 곳인것 같았다. 8명이상이면 봉고차량이 태우려 온다고도 한다. 그리고

다시 구파발역까지 태워 주신다고 하는데 우리일행은 4명이라 안된다고 하여 택시를 콜하여 구파발역까지 이동하여

마무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