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0. 10. 31. 21:15ㆍ카테고리 없음
북한산 16성문 종주
◈ 산 행 지 : 서울특별시 강북구·도봉구·성북구·은평구·종로구, 경기도 고양시·양주시·의정부시 일대
◈ 산행일시 : 2020년 10월 31일(토요일, 당일산행)
◈ 산행코스 : 북한산성입구-수문터-서암문(시구문)-원효암-원효봉-북문-상운사-대동사-위문(백운동암문)-
용암문-대동문-보국문-대성문-대남문-문수봉-청수동암문-나한봉-나월봉-부왕동암문-증취봉-
용혈봉-용출봉-가사당암문-궁녕사-중성문-중성(시구문)-중성(수문지)-대서문-북한산성 입구
◈ 산행시간 : 07시50분~15시40분(총7시간50분, 식사 및 휴식 포함)
◈ 산행거리 : 약 17.35km
북한산성입구-(0.8km, 10분)-수문지-(1.85km, 20분)-서암문(시구문-(2.93km, 50분)-원효봉-(3.18km,10분)-
북문-(4.75km, 1시간)-위문(백운동암문)-(5.89km, 35분)-용암문-(7.43km, 15분)-대동문-(8.03km, 27분)-
보국문-(8.70km, 20분)-대성문-(9.13km, 15분)-대남문-(9.44km, 13분)-문수봉-(9.55km, 5분)-청수동암문-
(10.76km, 48분)-부왕동암문-(11.05km, 17분)-증취봉-(11.27km, 10분)-용혈봉-(11.49km, 10분)-용출봉-
(11.90km, 15분)-가사당암문-(12.10km, 7분)-궁녕사 -(13.11km, 31분)-중성문, 시구문, 수문지-(16.28km,
37분)-대서문-(17.35km, 15분)-북한산성입구
◈ 산행인원 : 나홀로 산행
◈ 산행날씨 : 맑음
□ 대중교통(전철) 이용방
- 접근 : 하남-광역버스(9301)-종로3가역-3호선(구파발)-시외버스(34번)-북한산성 입구
- 귀가 : 북한산성-식당버스이용 연신내역-3호선(종로3가)-5호선(강동역)-시내버스-하남
북한산성
북한산성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고 난 뒤, 1711년(숙종37년)에 이르러 유사시를 대비해 만든 "산속의 도성"이다. 숙종 즉위 초부터 은밀히 논의되다가 37년후 축성이 결정되자 단 6개월 만에 완성되었다.
삼국시대 이래 군사적 요충지요 천연의 요새로, 백제 초기에 토성으로 쌓았으며 고려조의 증보수를 거쳐 조선 숙종 때 석성으로 증축되어 오늘에 이른다.
북한산성 축조 시 팔도도총섭 직책을 맡아 축조에 기여한 승려 성능(性能)이 지은 북한지(北漢誌: 1745년(영조21년))의 기록에 따르면 둘레는 7620보이고, 성에는 문 14개, 장대 3개, 상곽(성랑) 143개, 못 26개, 우물 9개소가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성벽둘레는 약 12.7km이고 넓이는 약 6.2㎢(200만평 정도)이다. 성벽 출입시설로는 대문6곳, 암문8곳, 수문2곳의 총 16개의 문과 병사들이 머무는 초소인 성랑143곳 등이 있다.
성 내부 시설로는 임금이 머무는 행궁, 주둔 부대가 머무는 군영 3곳, 군량미를 보관하는 창고8곳, 승군이 주둔하던 승영 사찰이 13곳, 군사지휘소인 장대 3곳 등이 있었다. 상주인원은 1600여명(군사1000여명, 승군 350여명, 일반인 250여명)이었다고 한다. 국력이 쇠하고 방치되다가 1907·1915·1925년 3차례의 수해로 수문 및 행궁, 중흥사 등 많은 시설물들이 유실되었고 일제강점기와 6·25를 거치면서 많은 시설물이 파손되었다.
북한산성 16성문 종주는 과거 북한산성12성문 종주였던 것인데, 이후 이것이 16성문으로 늘어났다. 여기서 16성문은 대문 6개, 암문 8개, 수문(터) 2개를 통틀어 말한다.
북한산 및 북한산성 소개
서울의 진산 북한산은 조선조 초기에는 삼각산(三角山)으로 불렀다. 삼각산이란 이름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삼각산은 양주의 경계에 있다. 일명 화산(華山)이라 하고, 신라시대에는 부아악(負兒岳)이라고 불렀다.
이 산은 경성(京城)의 진산으로 동명왕의 아들 온조가 한산(漢山)에 이르러 부아악에 올라가서 살 만한 곳을 살폈다'는 기록이 있으며, '백운봉 (白雲峰, 지금의 백운대), 인수봉 (仁壽峰), 만경봉 (萬景峰,지금의 만경대)등 세 봉우리가 있으므로 그렇게 이름한 것이다'라고 유래를 기록하고 있다.
북한산성에 대해서는 〈신증동국여지승람〉과 〈북한지〉에 상세히 기록되어 있다. 북한산성은 백제 온조왕이 터를 잡았고 그후 개루왕 때 성터를 쌓았다는 기록이 있으며, 조선시대에 임진왜란, 병자호란을 치른 뒤 숙종 37년(1711년)에 시작하여, 6개월 만인 그해 10월에 완공하였다 한다.
북한산성은 험한 산세를 이용하여 정상을 기점으로 서쪽 산자락부터 원효봉,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용암봉, 문수봉, 나한봉, 나월봉, 용출봉, 의상봉까지 연결하여 쌓은 산성으로 총 길이가 10km에 달한다. 당시 산성에는 14개의 성문을 냈는데, 산성의 정문 격인 대서문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수문, 서암문(시구문), 북문, 백운대를 지나 위문, 용암문, 대동문, 보국문, 대성문, 대남문, 청수동암문, 대서문에서 북서쪽으로 이어지는 산성에는, 부황동암문, 가사동암문이 설치되었다.
현재는 대부분 성문을 복원하였다. 북한산에 수많은 등산로 거미줄 같이 얽혀 있어 산행시 주의를 요하는 곳이다. 북한산의 산행 들머리는 대표적으로 여섯 군데를 꼽고 있다. 우이동 기점, 4.19탑 기점, 정릉 기점, 세검정 기점, 불광동 기점, 구파발 북한산성 기점으로 구분할 수 있다.
북한산(해발 837m)
북한산은 서울 특별시와 경기도 고양시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해발 837m인 주봉 백운대를 중심으로 동북 쪽의 인수봉(해발 803m)과, 동남쪽의 만경대(해발 800m)가 삼각을 이루고 있어 삼각산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 세 봉우리를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상장봉, 남쪽으로는 석가봉 · 보현봉 · 문수봉 등이 있다. 봉우리들은 한결같이 경사도가 가파른 험한 암벽으로 되어 있으며, 대체로 서쪽의 경사도가 더 심하다. 북한산은 산 모양이 웅장하고 아름다워 예로부터 서울의 진산으로 귀중하게 여겨져 왔다. 특히 조선 시대에는 금강산 · 묘향산 · 지리산 · 백두산과 함께 우리 나라 5대 명산으로 지정되어 나라에서 큰 제사를 지내던 산이기도 하다.
이 산에는 미선나무를 비롯한 여러 희귀 식물과 다람쥐 · 살쾡이 · 오소리 등 20여 종의 포유동물, 홍방울새 · 찌르레기 · 쇠딱따구리 등 50여 종의 조류가 살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고구려의 시조 주몽의 둘째 아들인 비류와 셋째 아들인 온조가 이 산에 올라 장차 터를 잡고 살 곳을 둘러보았다고 한다. 또, 무학 대사가 조선 태조 이성계를 위하여 도읍지를 정할 때, 백운대에서 만경대를 거쳐 비봉까지 갔었다고 전해진다. 비봉은 이 산의 남서쪽에 있는 해발 560m의 산봉우리이다. 국보 제3호로 지정된 북한산 신라 진흥왕 순수비가 이 봉우리에서 발견되어 이름을 비봉이라고 한다.
북한산에는 1711년에 쌓은 길이 8km의 북한 산성이 있다. 이 성에는 원래 14곳에 성문이 있었다고 전하나 지금은 대서문을 비롯한 대남문 · 대성문 · 보국문 · 대동문 · 용암문 등이 남아 있다. 그 밖에도 북한산 구기라 마애 석가 여래 좌상 · 태고사 원증 국사 탑비 · 태고사 원증 국사 탑 · 동장대지 등 많은 유물과 유적이 있으며, 상운사를 비롯하여 진관사 · 승가사 · 문수암 · 태고사 · 화계사 · 도선사 · 원효암 등 30여 곳의 절이 있다. 북한산 꼭대기에서는 서울 시가지가 한눈에 내려다 보이고, 멀리 서해도 보인다. 계곡마다 물이 많고 삼림이 울창하다.
서울 시내에서 산 입구까지의 교통이 편리하여 서울 시민의 1일 등산 코스로 많이 이용되고 있다. 등산로는 대개 경사가 완만한 동쪽의 우이동 · 정릉 · 세검정 등지에서 올라가 서쪽의 구파발 · 북한 산성 입구 쪽 등으로 내려온다. 백운대 · 인수봉 등은 암벽 등반 훈련장으로도 이용된다. 이 산은 서울에 가까이 있으면서 경치가 아름다워 1983년에 근처의 도봉산 일대와 함께 북한산 국립 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북한산 16성문 산행기
어느듯 가을이 성큼 다가오고 온세상이 빨간색으로 변하는 시절 마음속에만 간직했던 북한산 16성문 종주를 위해 자료를 찾아보고 기획해 본다. 10년전 회사 산악동호회에서 진행한 14성문 종주를 하고는 약10년만에 종주길에 접한다.
북한산 성문 종주는 산악인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선답자의 산행 후기글을 보면 각각 북한산 12성문, 14성문, 16성문, 18성문으로 탐방한 기록을 볼수가 있다. 북한산 12성문을 탐방하며 "서암문{시구문)-북문-위문-용암문-대동문-보국문-대성문-대남문-청수동암문-부왕동암문-가사당암문-대서문"이며, 여기에 중성문, 중성문옆 시구문을 더하면 14성문이고, 여기에 수문지터(대서문 계곡 1개, 중성문 계곡 1개) 2개를 더하면 16성문이고, 여기에 홍지문, 탕춘대성암문을 더하면 18성문이 된다.
대부분 산악인들은 북한산 16성문을 종주 목표로 하며 북한산 16성문은 대문 6개(북문, 대동문, 대성문, 대남문, 중성문, 대서문), 암문 8개(서암문, 위문, 용암문, 보국문, 청수동암문, 부왕동암문, 가사당암문, 중성 시구문), 수문(터) 2개(대서문 계곡, 중성문 계곡)로 이루어 있다.
아직 어둠이 내리지 않은 새벽 바람을 맞으며 아파트를 빠져나와 버스에 오른다. 종로3가에서 지하철로 환승하고 구파발에서 다시 버스로 환승하여 들머리지점인 북한산 산성입구에 도착한다. 베낭과 장비를 챙겨 첫번째 봉우리인 원효봉방향으로 등로길을 잡아 탐방길 진행한다.
북한산국립공원 입간판이 설치되어 있는 쉼터
버스정류장에서 도로 따라 우측방향으로 진행하면 북한산성 국립공원 입간판과 쉼터가 나오고 이곳에서 베낭과
장비를 챙겨 직진으로 진행한다.
북한산성 주차장 단풍 모습
북한산국립공원 주차장에 아름답게 물든 단풍나무가 있어 진행길을 멈추고 핸드폰으로 담아본다.
북한산국립공원 입간판의 모습
버스정류장에서 약500m 진행하면 정면으로 북한산국립공원이라는 입간판이 보이고 좌측편으로 북한산 탐방센터가 나온다. 원효봉방향은 좌측방향으로 진행한다.
북한산 상가지역의 모습
북한산 탐방센터를 통과하면 좌측편으로 화장실이 나오고 그 옆으로 상가건물들이 즐비하게 설치되어 있는곳
옆 보도블륵 따라 진행한다.
백운대 갈림길
북한산탐방센터를 지나면 첫번째 갈림길이 나온다. 백운대방향은 좌측방향이나 우측방향 도로 따라 진행해도 무방하지만 좌측편 방향이 단축로다. 백운대 위문방향은 좌측편 앞에 보이는 둘레교에서 우측방향으로 가면 되고 원효봉방향은 좌측편 둘레교를 통과하여 북한산둘래길로 진행 후 서암문(시구문)으로 오르면 된다.
백운대 갈림길 이정표
좌측방향 백운대, 향로봉방면이고, 우측방향 대서문, 의상봉, 백운대방향이다.
둘레교앞 북한산국립공원 등산 안내도
둘레교의 모습
우측방향은 대서문 수문지(터), 백운대방향이며, 좌측방향 둘레교방면은 북한산둘레길과 서암문(시구문),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등로길이다
둘레교앞 이정표
북한산성 계곡의 모습
종전에는 수문지(터)를 알수가 없어 대충 이곳이 수문지라고 상상하고는 진행한 기억이 난다. 그러나 이번에 탐방을 하고 보니 수문지(터)의 위치는 둘레교에서 우측방향으로 약1km 진행하면 대서문에서 북한산성이 이어지는 계곡에 위치하고 있었다. 아래 수문 안내판과 수문지(터) 계곡을 사진에 담아본다.
수문 안내판
수문(水門) 이곳은 북한산성에 설치한 2개의 수문 중 한곳이다. 다른 수문은 중성지역계곡에 있다.수문은 성벽 하단에 문을 내어 성 안의 물을 외부로 흘려보내는 배수시설이다. 대개는 적의 침투에 대비한 철책 시설을 마련해 방어 기능까지 갖추고 있으며 수문의 규모가 작을 경우는 수구라 했다.
북한산성을 쌓을 때는 패장이라는 기능별 감독관을 두었는데 성벽 축조를 담당한 "축성 패장"과 수문과 수구의 공사를 지휘한 "수구 패장"도 별도로 두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수문 축조에 고도의 건축기술이 필요했다고 보인다.
대서문 수문터의 모습
원효봉 갈림길의 모습
예전 12성문을 할때 효자농원에서 이지점을 지나 서암문(시구문)으로 진행한 기억이 생생하게 살아난다.
그 당시에는 어디가 어딘지 모르고 젊은 패기로 올라는데...
원효봉 갈림길 이정표
원효봉 갈림길 북한산 둘레길 안내도
서암문(시구문)오름길의 모습
원효봉 갈림길에서 우측방향으로 완만하게 진행하면 서암문(시구문)에 도착하고, 서암문(시구문)을 지나 좌측방향으로 방향 전환을 하면 돌계단이 나오는데 원효봉 정상까지 계속하여 급경사지 등로길로 이어진다. 오늘 산행에서 두번째로 힘든 구간이며 제일 힘든 구간은 잠시 후에 나오게 될 북문을 내려서 상운사, 대동사에서 백운대 위문으로 오르는 구간이 오늘 산행에서 제일 힘든것 같았다.
서암문(해발180m, 西暗門, 시구문)
서암문은 대서문 북쪽, 수문(水門)에서 원효봉으로 오르는 산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문루는 없지만 입구는 다른 암문과 달리 홍예형이다. 성 안에서 생긴 시신을 성 밖으로 내보내던 문이라 하여 시구문(尸柩門)이라고 불렸다. 1711년 설치한 8개의 암문중 하나이며 서암문의 높이는 7척, 너비는 7척이다
서암문(해발180m, 西暗門)안내판
사암문은 1711년(숙종37년) 북한산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설치한 8개의 암문중 하나이다. 암문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였으며, 때로는 구원병의 출입로로 활용됐다. 주로 적의 공격이 예상되는 취약한 지점에 설치하였다. 서암문도 창릉천에서 쉽게 오를수 있는 구릉의 정상부에 위치하고 있다.
서암문은 여느 암문과 마찬가지로 성문 상부에 문루를 마련하지 않았다. 대부분의 암문 출입구가 네모난 형태를 보이는데 서암문은 외관상 무지개 모양의 홍예형태를 띠고 있다. 문 내부에는 문짝을 달았던 지도릿돌과, 장군목이라는 빗장을 건너질던 방형의 구멍이 남아있다.
서암문의 주변은 지형이 낮고 험하지 않아 취약지대에 속한다. 이를 감안해 다른 암문에 비해 성벽을 높게 쌓았다. 또한 성문과 연결된 벽을 ㄱ자 모양으로 돌출시켜 접근하는 적을 측면에서도 공격할수 있도록 했다.
서암문은 성내에서 생긴 시신을 내보내는 문이라 해 시구문이라고도 불렀다.
서암문앞 이정표
원효봉 암릉길 안내도
북한산성 여장의 모습
서암문에서 원효봉방향으로 오르다 보면 좌측편으로 여장이 나오고 그옆으로 안내판도 설치되어 있다.
잠시 안내판에 있는 여장이 어떤 용도로 사용했는지 확인하고는 원효봉으로 출발한다.
여장(女墙)
여장은 성벽의 몸체 부분위에 설치한 낮은 담장이다. 성가퀴 도는 살받이터라고도 한다. 성을 지키는 병사를 보호하고, 적을 관측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다.
여장에는 대개 총안(적에게 총이나 활를 솔 수 있도록 성벽 여장에 나있는 구멍)을 뚫었다. 비스듬하게 뚫어 성벽 가까이 접근한 적을 공격할 수 있게 한 총안을 근총안이라 하고, 수편으로 뚫어 멀리 있는 적을 효과적으로 공격할수 있게 한 총안을 원총안이라 한다.
북한산성의 여장은 적당히 다듬은 할석(깬돌)으로 쌓았다. 이 점은 전돌로 쌓은 남한산성의 여장이나 잘 다듬은 돌을 사용한 화성의 여장과 차이를 보이는 축성법이다.
여장(女墙)
여장은 성을 지키는 병사를 보호하고, 적을 관측하거나 방어하기 위한 목적으로 만들었다.
상량지(城廊止)
성곽에 딸린 초소 건물이자 병사들의 숙소였던 성량이 있었던 곳이다. 북한산성에는 143개소가 있었다.
원효봉 오름길 급경사 돌계단의 모습
조망지
서암문에서 돌계단 급경사지를 오르면 첫번째 맞이하는 조망지 이정표가 설치되어 있는곳에서 좌측편으로 이동하면
서울 은평구와 경기도 고양시일대가 조망되는 지점이다. 이곳에서 잠시 물한모금 마시고 원효암, 원효봉으로 진행한다.
등로길 이정표
군진지의 모습
군벙커위에 올라서니 넓은 공터에 굴뚝이 있고 조망이 멋지게 펼쳐진다
무명봉에서 바라본 경기도 고양시일대의 모습
성랑지의 모습
원효암 직전에 있는 시멘트계단의 모습
원효암에서 바라본 의사능선의 모습
원효암(元曉庵)의 모습
원효암은 원효대사가 수행했다는 원효봉 아래에 있는 암자로, 북한산성을 쌓을 때 지어졌다. 원효암 근처에는 원효가 좌선하였다는 원효대가 있고, 원효암에서 보는 낙조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성호 이익이 "삼각산 8경" 중 하나로 꼽았다
삼각산10경
1. 백운일출(白雲日出) 환경부 선정 북한산 제1경
2. 인수귀운(仁壽歸雲)
3. 영봉세우(靈峰細雨) 환경부 선정 북한산 제3경
4. 은벽홍엽(隱壁紅葉) 환경부 선정 북한산 제4경
5. 산성영월(山城迎月) 환경부 선정 북한산 제5경
6. 노적청설(露積靑雪)
7. 족봉자하(蔟峰紫霞)
8. 의상팔선(義湘八仙) 환경부 선정 북한산 제8경
9. 효계벽류(孝溪碧流)
10. 보현야조(普賢夜眺)
* 삼각산은 전체가 대한민국 명승 제10호로 지정되었다.(2003. 10. 31)
1. 백운일출(白雲日出)
한 조각 구름인양 백련 핀 화강암봉 불덩이 솟은 바위 민족의 소망 담아 펄럭인 태극기 안에 눈부셔라 홍사리
* 백운대는 북한산의 주봉(836,5m)으로 정상에 늘 태극기가 펄럭인다. 새해 아침 장엄한 일출을 보러 경향 각지에서 수많은 인파가 모인다. 환경부 선정 북한산 제1경
2. 인수귀운(仁壽歸雲)
남근이 발기하면 한울님 심란하지 귀두(龜頭) 위 머문 백운 어디서 왔다든고 어진 이 오래 살터니 바위꾼아 집착 마
* 한국 암벽등반의 요람 인수봉(804m)은 예부터 부아악(負兒岳)으로 불려, ‘아기를 업은 뫼’로 비유하나, 한편 하늘을 향한 송곳처럼
생겨 늠름한 남근을 상징하기도 한다(삼국사기 백제본기). 꼭대기에 머문 흰 구름은 암벽가일까? 아니면 백운대 신선일까?
3. 영봉세우(靈峰細雨)
뻐꾹 운 영봉(靈峰)에는 옛 시인 석비 있어 간 자는 말 없는데 온 자는 시끄러워 비스듬 내린 빗줄기 진달래에 맺히네
* 북한산의 대표 경관인 인수봉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영봉은, 故 정공채 시인의 시비가 있다. 백제 비류왕과 온조왕이 이 봉(604m)을 올랐
다는 기록이 있다. 환경부 선정 북한산 제3경.
4. 은벽홍엽(隱壁紅葉)
인수(仁壽)밑 숨은벽은 범고래 뛰어놀고 갈바람 불어오니 단풍 한결 붉으료 잘 봐라 참된 인걸(人傑)은 눈에 띄지 않느니
* 백운대와 인수봉 뒤에 있는 ‘숨은 벽’ 제3구간은 말등 혹은 고래등을 닮은 전문등반가용 암릉이다. 전체가 단풍비경지다. 환경부 선정
북한산 제4경.
5. 산성영월(山城迎月)
환하게 비친 달빛 호젓한 밤 산성길 연인과 팔짱 끼고 몇 만리 걸었드냐 아뿔사 도깨비 잊고 달그림자 탓하네
* 북한산성은 1711년 숙종 때 쌓은 석성으로, 현재 12.7km가 남아 있다. 사적 제162호. 환경부 선정 북한산 제5경.
6. 노적청설(露積靑雪)
토종 밀 노적가리 푸른 눈 덮어쓰니 한 순간 찐빵 되어 뽀얀 김 모락모락 길손은 내장 가르며 팥소 먼저 빼먹군
* 노적봉(716m)을 북쪽, 서쪽에서 바라보면 마치 포대화상 혹은, 찐빵을 닮아 푸짐한 느낌을 주는 희멀건 화강암봉우리다. 눈이 쌓이면
더 보기 좋다. 삼각산은 흔히 백운봉(대), 인수봉, 만경봉(대) 세 봉우리를 말하나, 만경봉 대신 노적봉을 넣기도 한다,
7. 족봉자하(蔟峰紫霞)
누나가 시집갈 때 곱게 쓴 족두리지 게딱지 바위 볼에 연지곤지 찍으니 보랏빛 저녁노을이 눈썹 위에 맴도네
* 족두리봉 상단부는 게의 등딱지처럼 보이기도 한다. 암벽장비 없이 오르내리는 건 위험하다.
8. 의상팔선(義湘八仙)
제여곰 다른 모습 팔선(八仙)과 악수하고 콧노래 불러가며 파도 탄 의상능선
어느새 열락(悅樂)을 얻어 봉래도(蓬萊島)에 닿았네
* 의상능선에 있는 문수봉, 715봉, 나한봉, 나월봉, 증취봉, 용혈봉, 용출봉, 의상봉 등 8개봉으로, 산행거리 5.3km이다. 환경부 선정
북한산 제8경.
* 팔선 ; 도교의 깊은 이치를 체득하여 신선이 되었다는, 종리권(鍾離權)·여동빈(呂洞賓)·장과로(張果老)·한상자(韓湘子)·이철괴(李鐵拐)·
조국구(曹國舅)·남채화(藍采和)·하선고(何仙姑-여) 등 여덟 신선을 말한다. 각기 독특한 모습인데다, 기물을 하나 씩 가지고 있어
식별이 용이하다.
* 봉래도; 신선이 산다는 이상향으로 전설상의 섬.
* 제여곰은 ‘제각기’ 또는 ‘각자’ 등의 뜻을 지닌 고운 옛말이다.
9. 효계벽류(孝溪碧流)
사기막 비취 계류 낮달은 물장구쳐 소금쟁이 짝짓기에 파문이 살짝 이니 과댁(寡宅)은 밤꽃에 취해 종아리를 내보여
* 효자리계곡으로 흔히 사기막골을 지칭한다. 청정수로 주위에 밤나무가 많다. 정액냄새가 나는 밤꽃향기는 묘하게도 여성의 욕정을
자극한다. 정작 음심(淫心)을 품는 자는 발을 씻는 과수댁이 아니라, 새하얀 종아리를 보며 침을 흘리는 바로 내 자신 아닐까?
10. 보현야조(普賢夜眺)
큰 대(大) 자(字) 보현봉은 정적이 감도는데 불 밝힌 서울 밤은 환락이 넘쳐나니
영고(榮枯)는 속절없어라 명멸하는 저 별빛
* 웅장한 보현봉을 남쪽에서 바라보면 한자 ‘大’ 자 모양이다, 조망이 좋고, 그 밑 대남문에서 본 서울 야경은 형제봉의 그 것과 더불어
일품이다. 항상 태극기가 걸려있다
원효암(元曉庵) 안내판
원효암은 원효대사가 수행했다는 원효봉 아래에 있는 암자로, 부한산성을 쌓을 때 지어졌다. 북한산성의 수비와 관리는 병사들과 승려 병사인 승군이 함게 맡았는데 이 승군이 주둔을 위해 1711년(숙종37년)에 북한산성을 쌓으면서 11개의 사찰과 2개의 암자를 새로 지었다. 이에 지어진 10개의 사찰은 용암사, 보국사, 보광사, 부왕사, 서암사, 원각사, 국녕사, 상운사, 태고사, 진국사(현 노적사)이며, 2개의 암자는 원효암과 봉성암이다.
원효암은 7세기 후반에 원효대사가 좌선해 수행했다는 원효봉 아래에 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 전한다. 원효암 근처에는 원효가 좌선하였다는 원효대가 있고, 원효암에서 보는 낙조는 조선 후기의 실학자인 성호 이익이 "삼각산 8경" 중 하나로 꼽았다.
원효암 뒤편 능선에 있는 이정표
이정표의 모습
원효봉 전위봉 오르는 돌계단
조망지의 모습
좌측편으로 의상능선,정면으로 은평구 일대, 우측편으로 노고산과 경기도 고양시일대가 조망된다.
암릉길에 설치되어 있는 철과 로프 구조물의 모습
원효봉 전위봉 오름길의 모습
원효봉 전위봉
사방이 조망되고 바람 또한 불어와 피곤함이 사라진다. 로프를 의지하여 내려가 다시 오르면 원효봉 정상에 도착한다.
원효봉 전위봉 통과하여 뒤돌아본 모습
원효봉으로 이어지는 돌계단 경사길
성곽길 옆으로 진행
원효봉 정상
원효봉 이정표
원효봉 정상부의 모습
원효봉(해발 505m, 元曉峰)
원효봉은 행정구역상으로는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에 속한다. 원효봉 명칭은 봉우리 아래에 있는 원효암에서
유래한 것으로, 지나온 원효암은 신라시대 원효(元曉) 대사가 수도하였던 토굴이다. 원효봉능선은 북문~염초봉~백운대로 이어지는데 암릉지대라 우회하여 진행한다
정상에 올라서면 좌측편으로 상장능선이 보이고 정면으로 염초봉, 백운대정상, 만경대, 노적봉 그리고 우측편으로
오늘 이어갈 의상능선 조망되는 아주 좋은 조망지이다.
원효봉(해발 505m, 元曉峰)에서 인증샷
원효봉에서 의상능선 배경으로 인증샷
원효봉에서 바라본 염초봉, 백운대, 만경대, 노적봉의 모습
북한산 봉우리 안내도
북한산 봉우리 안내도
원효봉에서 바라본 삼각산의 모습
성곽 배경으로 삼각산을 담아본다.
원효봉에서 북문으로 내려서는 등로길의 모습
북문(해발430m, 北門)
북한산성 동서남북 성문 중 북쪽을 대표하는 성문이다. 원효봉(元曉峰)과 영취봉(靈鷲峰-현재 염초봉의 본래 이름) 사이
안부에 위치한다. 북한산성 6대문(대서, 대남, 대동, 대성, 중성, 북문) 중의 하나이지만, 대문으로서 북문(높이 11척, 너비 10척)이 차지하는 비중이 낮아 '대'자를 붙이지 않은 듯하다. 홍예문으로 지어졌으나 현재 문루는 없으며 그 자리에 초석만 남아 있다.
북문(해발430m, 北門) 안내문
북문(해발430m, 北門) 에 설치되어 있는 등산 지도
북문(해발430m, 北門) 에 설치되어 있는 이정표
북문(해발430m, 北門) 배경으로 인증샷
북문에서 상운사로 내려서는 등로길의 모습
주변이 모두 단풍으로 물들어 지친 산객의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 산행을 포기하고 막걸리 한잔 마시며 풍류를 즐겨볼까도 생각했지만 ㅎㅎ 그래도 모처럼 준비해 산행길 이어간다.
상운사 갈림길 이정표
단체 산행길이라며 그냥 지나칠수 있지만 나홀로 산행이라 가능한 사찰은 구경하고 참배하고 갈려고 생각한다.
경내를 구경하려 하지만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출입을 금지하여 멀리서 나마 참배를 한다.
상운사입구의 모습
상운사 약사여래불 성지 안내도
약사여래 부처님 성지는 예로부터 대구 팔공산 갓바위, 경주 백률사, 북한산 상운사 약사굴(1497년) 등을 꼽아 왔습니다.
약사여래불 성지는 "약사여래부처님이 계시는 성스러운 곳"이란 뜻으로 이곳에서 기도를 하게 되면 그 어느 곳보다 약사여래 부처님의 가피를 잘 받는 것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맑고 향기로운 삶
마음의 변덕을 따라 일저리 흔들리지 말라
항상 마음을 잘 다스려서
부드럽고 순하고 고요함을 지니도록 하라.
마음이 하늘도 만들고 사람도 만들고,
지옥도 만들고 천국도 만든다.
그러니 마음을 쫒아가지 말고,
항상 마음의 주인이 되도록 노력하라. 법구경 중에서...
상운사(祥雲寺)
상운사의 실질적인 창건은 1722년(경종 2)에 승장(僧將) 회수(懷秀)스님에 의해서이다. 1745년에 성능(聖能)스님이 편찬한 북한산성의 지리지인 『북한지(北漢誌)』에 의하면 북한산성 안에는 중흥사(中興寺), 태고사(太古寺), 용암사(龍巖寺), 보국사(輔國寺), 보광사(普光寺), 부왕사(扶旺寺), 원각사(元覺寺), 국녕사(國寧寺), 상운사(祥雲寺), 서암사(西巖寺), 진국사(鎭國寺), 봉성암(奉聖庵), 원효암(元曉庵) 등 모두 13개의 사찰이 있었으며, 이중 중흥사와 태고사를 제외한 나머지 사찰들은 북한산성을 축성한 이후 산성의 수비와 관리를 위해 창건하였다고 전한다. 창건이후 상운사는 승군이 주둔하는 사찰로 그 명맥을 이어왔던 것이다.
현재 상운사는 사찰의 규모는 그다지 큰 편이 아니지만, 한때는 130여 칸에 달하는 건물이 세워져 있었다고 한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북한산성 안의 많은 사찰들이 흔적 없이 사라져버린 상황 속에서도 상운사는 굳건히 그 자리를 지키며 남아 있는 것이다. 북한산에서 3번째로 높은 곳에 위치한 사찰, 경내에 있는 오래된 향나무는 아이를 못 낳는 분에게 아이를 낳게 해 주고, 영험있는 약사부처님이 있는 절로도 유명하다고 한다. 빼어난 주변 경관으로 인해 불자들뿐만 아니라 많은 등산객들이 즐겨 찾은 곳이기도 하다.
상운사 경내의 모습
상운사는 북한산성을 축성하면 산성의 수비와 관리를 위해 승군이 주둔하는 사찰로 그 명맥을 이어왔다고 한다.
지금은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외부인 접근을 금하고 있어 모처럼 찾은 상운사 경내 구경을 포기하고 대동사로 발길을 옮겨본다.
대동사 입구
상운사 바로 아래에 위치하고 있는 대동사 사찰, 대동사도 상운사와 마찬가지로 코로나바이러스 때문에 출입을 금지하고 있어 바로 위문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북한산성에서 백운대로 연결하는 등로길 합류
대동사 입구 이정표
대동사 입구에서 부터 백운동 암문인 위문까지 계속되는 경사지를 올라야 한다. 오늘 진행하는 산행 구간중
제일 난이도가 있는 구간이다.
등로길 이정표(백운대 1.3km)
백운봉암문(위문) 오름길에 바라본 오색으로 물든 단풍의 모습
대동문 갈림길 이정표
등로길 이정표(백운대 0.4km)
백운봉암문(위문) 방향의 모습
대동문 갈림길에서 좌측편 나무계단으로 올라 백운봉암문(위문)에서 인증샷을 찍고는 다시 이곳으로 복귀하여 우측편 대동문방향으로 진행한다.
백운봉암문(해발700m, 白雲峰暗門)
삼각산의 주봉인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 16성문 중 가장 높은 곳에 자리하고 있다.
축조 당시(1711년)의 이름은 백운봉암문이었으나 일제강점기 때부터 위문으로 바꿔 불려왔다. 일제 잔재의 청산 차원에서 다시 원래의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다른 암문과 같이 문루는 없고 평거식이다. 암문의 높이가 1.7m, 폭 1.9m로 이루어져 있다. 이 암문은 우이동에서 북한산성입구로 연결되는 암문이기도 하다.
백운봉암문(해발700m, 白雲峰暗門) 안내판
백운봉암문(해발700m, 白雲峰暗門) 인증샷
백운봉암문에서 대동문방향으로 내려서는 나무계단의 모습
북한산 정상부의 모습
지나온 마루금의 모습
원효봉과 위험구간이라 진행이 어려운 염초봉 조망
원효봉, 염초봉, 백운대(정상) 조망
원효봉 조망
백운대 조망
백운대 당겨본 모습
용암문암문(해발580m, 龍巖峰暗門)
대동문 북쪽의 암문. 1711년 설치. 원래 이름은 용암봉암문(龍巖峰暗門)으로 무인대피소인 지금의 북한산장 부근 용암봉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과거 이 일대의 수비를 담당하던 용암사(龍巖寺)가 부근에 있었다 한다. 상부의 여장은 1996년에 복원한 것. 용암문암문의 높이가 6척 5푼, 너비 7척 5푼이다. 용암문암문으로 내려서면 도선사와 우이동으로 연결되는 등로길이다
용암문암문(해발580m, 龍巖峰暗門) 인증샷
용암문암문(해발580m, 龍巖峰暗門) 안내도
용암문암문(해발580m, 龍巖峰暗門) 앞 이정표
동장대(해발610m)
동장대는 북한산성의 동쪽에 있대 장대로 1712(숙종38년)에 지어졌다. 장대는 전쟁 시 군사 지휘에 용이한 곳에 지은 장군의 지휘소로 동장대, 남장대, 북장대가 있었으나 현재는 동장대만 남아 있다.
전체 모습이 수원 화성의 서장대를 닮았으나, 원래의 모습이 아니라는 설도 있다. 이 장대는 소실된 것을 1996년에 복원한 것이다
동장대(해발610m) 전망 안내도
동장대(해발610m) 앞 이정표
동장대(해발610m) 안내도
동장대(해발610m) 안내도
대동문(해발540m, 大東門 )
북한산성 동서남북 성문 중 동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우이동 진달래능선과 수유동과 우이동을 잇는 관문이다.
성문의 모양은 대남문, 대성문과 같으나, 홍예문은 이 문이 가장 크다. 소실된 문루는 지난 1993년에 복원했는데
이때 상부의 여장도 같이 복원하였다. 성문의 높이가 9척, 너비 10척이다
*여장 : 아군이 몸을 숨기고 활이나 총을 쏠 수 있도록 설치한 군사시설.
대동문앞 이정표
대동문 인증샷
대동문 앞 탐방 안내도
칼바위능선 이정표
대동문에서 보국문으로 가는 중간부분에 칼바위능선으로 가는 등로길이 있다. 날등이 뽀쪽하다하여 칼바위능선을 부르고 있다고 한다. 오래전에 정릉매표소에서 칼바위능선을 올라 백운대, 영봉을 거쳐 우이동으로 하산이 적이 있었다.
칼바위능선의 모습
칼바위능선 입구 통과 후 뒤돌아본 모습
보국문(해발567m, 輔國門)
보국문운 북한산성의 동남쪽에 있는 암문으로 산성이 축성된 1711년(숙종37년)에 지어졌다. 보국문은 소동문(小東門), 동암문(東暗門)이었으나 아래에 보국사를 창건한 이후 보국문으로 불리고 있다. 1993년에 상부의 여장을 복원하였고, 부분적으로 수리하였다. 보국문 높이가 6척 6촌, 너비가 6척 5촌이다.
*조선시대 길이의 단위: 1자 = 32.1~31.2cm
보국문 인증샷
보국문앞 이정표
보국문 안내판
보국문에서 대성문으로 가는 성곽길 뒤돌아본 모습
성곽 주능선 전망에서 바라본 삼각산
문수봉으로 이어지는 성곽의 모습
대성문(해발626m, 大城門)
대성문은 보현봉(普賢峯) 동북쪽으로 이어지는 산성 능선에 위치한 성문으로 북한산성 6성문 중에서 가장 큰 문이다. 초기의 이름은 대동문(大東門)이었다. 원래 처음에는 소동문(小東門)으로 불리우는 작은 암문이었으나 임금이 출입하는 성문으로 위용을 갖추고자 대성문(大城門)으로 바꾼 것이 아닌가 추측된다.
대성문 높이가 13척, 너비 14척이나 되니 북한산성문 중 제일 큰 문은 사실이다. 대성문을 통과하여 내려서면 정릉과 형제봉 그리고 국민대학교와 평창동으로 가는 등로길이 나온다.
대성문(해발620m, 大城門) 인증샷
대성문(해발620m, 大城門) 앞 이정표
대성문(해발620m, 大城門) 안내판
대남문(해발683m, 大南門)
대남문은 북한산성 동서남북 성문 중 남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으로 처음 축조(1711년) 당시는 소남문, 문수봉암문(文殊峯暗門)으로 불렸다. 대남문은 보현봉(해발 715m, 普賢峯)과 문수봉(해발 727m,文殊峯)이라는 두 거봉을 잇는 능선 중간 안부(鞍部)에 위치한다. 비봉능선을 통해 도성의 탕춘대성과 연결되는 전략상 중요한 성문이다. 현재의 문루는 1991년에 복원 되었고 대남문의 높이는 11척, 너비는 11척이다. 그리고 대남문을 지나 내려서면 구기동으로 진행한다.
대남문(해발683m, 大南門) 인증샷
대남문(해발683m, 大南門)앞 이정표
대남문(해발683m, 大南門) 안내판
문수봉(해발 727m, 文殊峰)
대남문에서 급경사 성곽길 따라 오르면 암릉으로된 봉우리에 도착하는데 이곳이 문수봉이다. 문수봉 아래로 문수사가 자리잡고 있어 문수봉으로 불리어졌다고 한다. 문수봉에 올라서면 조망이 아주 좋아 사방이 한눈에 다 들어오는 곳이다.
문수봉(해발 727m, 文殊峰) 인증샷
문수봉(해발 727m, 文殊峰) 이정목
문수봉은 행정구역상 경기 고양시 덕양구 북한동에 위치하고 있으며, 문수봉 명칭은 봉우리 아래 문수사가 있어 문수보살 이름을 붙혀 문수봉으로 불리어 지는것 같다.
문수사(文殊寺)
문수사는 서울시 종로구 구기동 2번지 북한산 남장대 앞 문수봉 아래에 자리한 대한불교조계종 직할사찰이다. 문수사는 예로부터 오백나한을 모시는 기도처로 유명했으며 아직도 그 치성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절이 자리한 곳은 북한산 남장대(南將臺, 해발 716m) 앞 문수봉 아래로, 북한산 안에 있는 사찰 가운데 주위 경관이 좋기로 손꼽히는 곳이다. 가깝게는 동쪽으로 보현봉이, 서쪽으로는 비봉이 절을 감싸고 있으며 좀 더 멀리 시야를 넓혀 보면 남쪽으로 관악산이 한눈에 들어오고, 또 멀리 서쪽으로는 한강 하류와 인천 앞바다가 펼쳐진다. 그런 까닭에 많은 시인묵객들이 풍류를 좇아 이곳을 찾아 시를 읊곤 했는데, 고려시대의 이장용(李藏用)과 탄연스님, 조선시대의 최립(崔立), 홍세태(洪世泰) 등이 대표적이다. 이 중 문수사의 창건주인 탄연스님이 이 곳 문수사에 대해 읊은 시 한수가 전하고 있다.
한 칸 방 어찌 그리 너무도 고요한가, 일만 인연 모두 적막하네.
길은 돌 틈으로 뚫고 가고, 샘은 구름 속에서 새어나네.
밝은 달 처마 끝에 걸려 있고, 산들바람 숲 속에서 일어나네.
누구 저 스님 따라, 고요히 앉아 참 낙을 배우려나.
문수사에는 문수굴로 불리는 천연동굴이 있다. 이 동굴법당은 영험이 있는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있는데 특히 우리나라의 초대 대통령이었던 이승만 박사도 그의 어머니가 멀리 황해도 평산에서 이곳까지 와, 동굴 속에 모셔진 오백나한상에게 치성을 드린 끝에 그를 낳았다고 한다. 그와 같은 인연으로 4 · 19 직전 이승만 박사가 당시 82세의 고령을 무릅쓰고 이곳을 방문하여 ‘문수사’ 현판을 직접 썼다고 하며, 당시 스님들과 함께 찍었던 빛바랜 흑백사진도 절에 남아 있다. 또한,북한산 비봉에서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옮겨진 유명한 신라진흥왕순수비에는, ‘한성(지금의 경기도 광주 춘궁리 일대)을 지나 고개를 올라 … (중략) 한 도인(道人)이 석굴에 있는 것을 보았다……’고 하여 이 근처에 있는 어느 석굴에서 도인을 만났다는 말이 있는데, 여기에서의 석굴을 바로 이 문수굴이라고 보는 견해도 있다.
문수봉(해발 727m, 文殊峰)에서 바라본 비봉, 향로봉방향의 모습
문수봉(해발 727m, 文殊峰)에서 바라본 의상능선의 모습
청수동암문(해발 694m)
청수동암문은 문수봉(文殊峯)과 715봉, 나월봉(羅月峰) 사이 고갯마루에 위치한 평거식(平据式) 암문이다. 1711년 설치. 산성주능선과 의상능선과 비봉능선으로 향하는 갈림길이 있다. 청수동암문을 지나 내려서면 진관사로 내려서는 등로길이 나오고 직진으로 진행하면 비봉능선을 지나 향로봉, 불광동 또는 연신내역으로 이어지는 등로길이다.
청수동암문(해발 694m) 인증샷
청수동암문(해발 694m) 앞 이정표
청수동암문(해발 694m) 안내판
청수동암문(해발 694m) 안내도
715봉의 모습
청수동암문에서 급경사지를 오르면 무명봉이 나오는데 이곳이 지도상에 있는 715봉이다. 우측방향은 북한산성과 행궁지입구로 가는 등로길이고, 의상봉방향은 좌측방향 내림길로 진행하면 된다.
715봉이정표
715봉 아래에서 바라본 의사능선
로프가 설치되어 있는 급경사 암릉길을 내려서면 성곽길이 나오고 그 옆으로 하여 오늘 진행할 나한봉-나월봉-
부왕동암문-증취봉-용혈봉-용출봉-가사당암문으로 이어지는 등로길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제 마음의 준비를 하고는
의상능선길로 진행한다.
나한봉에서 바라본 의상능선
의상능선 배경으로 인증샷 1
의상능선 배경으로 인증샷 2
의상능선에서 바라본 삼각산의 모습
나월봉 이정표
등로길 이정표
부왕동암문 이정목
청수동암문에서 부왕동암문까지 등로길은 최악으로 험하고 위험하다. 그리하여 일부 구간은 위험지대라 우회하여
진행하도록 유도하여 놓았다. 여기서 부터는 완만하게 가사당암문까지 진행할수 있다.
부왕동암문(해발 521m,扶王洞暗門)
부왕동암문은 나월봉(蘿月峯)과 증취봉(甑炊峯)과 사이 산 능선에 위치한 평거식(平据式) 성문으로 북한산성의 8개 암문 중 가장 규모가 크다. 부왕동암문 높이는 9척이고 너비는 8척이나 되며 이곳으로 내려서면 삼천사 계곡으로 이어진다.
부왕동암문은 정식 홍예(虹霓)는 아니지만 위쪽 성돌을 둥글게 파서 홍예문처럼 만든 아름다운 성문이다. 부왕동은 증취봉 아래에서 발원하여 삼천사로 내려가는 계곡이다. 소남문(小南門) 또는 원각사암문(圓覺寺暗門)이라고도 불렸다. *바깥쪽만 홍예문 형태.
부왕동암문(해발 521m,扶王洞暗門) 인증샷
부왕동암문(해발 521m,扶王洞暗門) 안내판
증취봉 오름길에 바라본 붉게 물든 운치
증취봉 직전 전위봉에서 바라본 향로봉방향의 모습
증취봉 직전 전위봉에서 바라본 지난온 의상능선
증취봉 직전 전위봉에서 바라본 지난온 의상능선 배경으로 인증샷1
증취봉 직전 전위봉에서 바라본 지난온 의상능선 배경으로 인증샷 2
증취봉 직전 전위봉에서 바라본 지난온 의상능선 배경으로 인증샷 3
증취봉 직전 전위봉에서 바라본 지난온 의상능선 배경으로 인증샷 4
증취봉(해발 593m, 甑炊峰) 정상목
부왕봉암문에서 증취봉으로 오르면 등로길에서 우측편 암릉지에 정상을 알리는 이정목이 있어 잘 살피지 않으면
그냥 지나칠수 있는 구간이다.
증취봉(해발 593m, 甑炊峰) 인증샷
증취봉에서 바라본 삼각산
산불감시초소의 모습
증취봉에서 용혈봉방향으로 내려서면 우측편으로 산불감시초소가 나온다.
산불감시초소 능선에 설치되어 있는 이정표
용혈봉(해발 581m, 龍穴峰) 정상목
용혈봉정상에 올라서면 사방이 확트여 있어 시원이 바람과 조망이 일품인 곳이다. 지나온 마루금을 바라보며
인간의 다리가 대단하다는걸 다시 한번더 확인하는 계기가 된다.
용혈봉(해발 581m, 龍穴峰) 정상목에서 인증샷
용혈봉(해발 581m, 龍穴峰)에서 바라본 향로봉방면의 모습
용출봉(해발 571m, 龍出峰) 이정표
용출봉(해발 571m, 龍出峰) 이정목에서 인증샷
용출봉(해발 571m, 龍出峰)
용혈봉에서 내렸다가 한차례 밀어 올리면 용출봉에 도착하는데 거리도 짧아 단시간에 오를수 있는곳이다.
용출봉 정상목은 등로길에서 우측편으로 약간 안쪽에 위치하고 있어 대부분 산객들은 그냥 지나칠수 있다.
용출봉에서 내려서면 가사당암문이 나오고 의상봉에 올라볼까 생각을 산행중 내내 했지만 의상봉은
다음에 별도로 올라 보기로 하고 중성문, 대서문으로 진행하기로 하면서 급 경사지를 내려선다.
용출봉(해발 571m, 龍出峰)에서 바라본 오늘 지나온 삼각산의 모습
가사당암문 (해발 488m)
가사당암문은 용출봉(龍出峯)과 의상봉(義相峯) 사이 고갯마루에 위치한 평거식(平据式) 성문으로서 북한산성 동쪽에
아래에 국녕사(國寧寺)가 있다고 하여 국녕문(國寧門) 또는 국녕사암문(國靈寺暗門)으로도 불렸다. 숙종 37년(1711년)에 북한산성 성곽을 축조하면서 만든 8개의 암문 중 하나이며. 다른 암문과 마찬가지로 문루는 없다.
*암문은 비상시에 병기나 식량을 반입하는 통로이자, 때로는 구원병의 출입로로 활용된 일종의 비상출입구이다.
가사당암문 (해발 488m) 인증샷
가사당암문을 빠져나가 내려서면 백화사로 진행하며, 직진방향은 의상봉방면이고 우측방향으로 내려서면 국녕사,
북한산성입구로 진행하는 등로길이다.
가사당암문 (해발 488m) 안내판
가사당암문 (해발 488m) 앞 이정표
가사당암문 (해발 488m) 앞 이정표
가사당암문에서 국녕사로 내려가는 등로길의 모습
국녕사 대불상 뒷 모습
국녕사(國寧寺)
국녕사는 조선 1711년(숙종 37년)에 북한산성 축성과 함께 만들어졌고 산성의 수비를 위해 창건한 북한산 13개 승영사찰(僧營寺刹) 중 하나이다. 이곳에 승군을 주둔시키고 산성의 수비와 성곽 관리를 맡겼는데, 무기고가 있는 병영 역할도 겸하게 했다. 86칸 규모로 승려 청휘(淸徽)와 철선(徹禪)이 창건하였다고 전해진다.
국녕사는 갑오경장으로 의승제도가 폐지될 때까지 존속했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폐사되었다가 근래 들어 새롭게 조성됐다.
국녕사(國寧寺) 국녕대불상의 모습
국녕사(國寧寺) 국녕대불상에서 인증샷
국녕사(國寧寺) 안내판
단풍이 물든 오솔길의 모습
북한산성길 합류지점 이정표
국녕사에서 직진으로 내려서면 이지점에서 만난다. 중성문은 대남문방향으로 약500m 올라야한다. 중성문과 시구문
그리고 수문지(터)을 확인하고 다시 이곳을 지나 대서문으로 향할 예정이다.
북한산성 이정표
북한산성 등산안내도
계곡 암반에 건물을 짓었던 흔적의 모습
중성문 (해발 274m, 中城門)
중성문은 노적봉과 증취봉 사이 협곡에 쌓은 중성(重城)에 설치된 성문. 이 중성(길이 약 200m)은 적의 공격을 이중으로 방어할 수 있는 차단성이다. 중성문 높이는 11~13척이고 너비는 13~14척이다. 중성문 축성 후 1년 후인 1714년(숙종 40년)에 완공하였는데, 현재의 문루는 1998년에 복원 되었다.
중성문 옆의 암반의 폭 .1m, 높이 1.8m 규모의 작은 암문이 숨겨져 있다. 이 암문은 원래 이름이 없었으나 성안에서 시신이 중성문을 통과하지 못하고 이 문을 통해 나간다고 해 "시구문이라 불렀다. 한편 중성문 바로 옆을 흐르는 계곡에는 수문이 설치돼 있었으나 현재는 남아있지 않다.
중성문 (해발 274m, 中城門) 안내판
중성문 (해발 274m, 中城門) 옆 시구문
중성문 (해발 274m, 中城門) 옆 시구문에서 인증샷
중성문 (해발 274m, 中城門), 시구문 옆 계곡 수문지터의 모습
중성문을 탐방하고 대서문으로 향하는 등로길의 모습
보리사, 태고사 갈림길의 모습
보리사, 태고사 갈림길 안내판
보리사, 태고사 갈림길 이정표
이정표에서 백운대방향은 좌측이나 우측으로 방향을 잡아 진행해도 무방하지만 우측방향은 한참을 돌아가는 방향이다. 좌측방향이 급경사가 심하지만 단축로는 좌측방향이다.
쉼터 및 화장실 앞 북한산 등산지도
쉼터에서 조금 내려서면 대서문으로 가는 등로길과 수문으로가는 등로길이 나누어 진다. 먼저 수문지(터)를 방문하고
대서문으로 향하고자 한다.
처음 북한산성에서 출발할때 북한산 둘레교로 진행하지 않고 우측편 계곡길로 진행하여 수문지(터)를 탐방하고 서암문,
원효봉으로 이어갔다면 번거로움을 피할수 있었는데...다음에는 이렇게 진행할 예정이다.
수문(水門) 안내판
수문(水門) 이곳은 북한산성에 설치한 2개의 수문 중 한곳이다. 다른 수문은 중성지역계곡에 있다.수문은 성벽 하단에 문을 내어 성 안의 물을 외부로 흘려보내는 배수시설이다. 대개는 적의 침투에 대비한 철책 시설을 마련해 방어 기능까지 갖추고 있으며 수문의 규모가 작을 경우는 수구라 했다.
북한산성을 쌓을 때는 패장이라는 기능별 감독관을 두었는데 성벽 축조를 담당한 "축성 패장"과 수문과 수구의 공사를 지휘한 "수구 패장"도 별도로 두었다. 이런 사실로 미루어 수문 축조에 고도의 건축기술이 필요했다고 보인다.
수문(水門)
대서문 북서쪽 근처 산성계곡에 있었던 큰 규모의 수문(水門, 폭 50척 높이 16척)으로 1925년 8월 을축년대홍수(乙丑年大洪水)때 성돌과 장대석 하나 남기지 않고 완전히 유실되었다고 한다. 현재는 시구문과 대서문으로 오르는 계곡 양옆 산비탈에 성곽의 흔적만이 남아 있다.
대서문(해발165m, 大西門)
대서문은 의상봉(義相峯) 서북쪽 있으며, 16문 중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성문으로 북한산성 성문 중 동서남북, 4개 방위 중 서쪽을 대표하고 있는 성문인 동시에 북한산성의 정문(正門)이었다. 6대문 중 대성문 다음으로 규모가 큰 문이며. 현재의 문루는 1958년에 복원한 것으로 북한산성 문루 중 가장 오래되었다. 대서문 성문 크기은 11자X13자이고. 홍예 출입구은 높이 4m, 폭 3.3m이다.
(*이하 단위는 조선시대 단위로 1자 = 31.2~31.2cm이다.)
대서문(해발165m, 大西門) 인증샷
대서문(해발165m, 大西門) 안내판
의상봉 갈림길 이정표
의상봉 갈림길 등산 안내도
북한산국립공원 탐방센터
오래간만에 북한산 16성문 종주를 하였다.
누구나 할수 있지만 누구나 나설수 없는 산행길...
새벽부터 원정길이 아닌 원정으로 버스 지하철 다시 버스를 타고 북한산성입구에 도착하여
선답자의 발자취를 찾아 탐방을 하면서 많은 생각에 잠기는 시간을 가져보았다.
오늘도 아무런 사고없이 무탈하게 북한산 16성문 종주를 마칠수 있어 고맙고 행복하다.
예전에 몰랐던 수문지(터) 2곳과 중성문 옆 시구문을 이번 탐방을 하면서 새로운 사실을 알았고
북한산성을 축성하면서 승영사찰(僧營寺刹)도 알게되는 계기가 되었다. 사찰은 산성의 수비를 위해 승군을 주둔시키고 산성의 수비와 성곽 관리를 맡겼다고 하는데 무려 13개의 사찰이 북한산성안에 축성 되었다고 한다.
이번 탐방은 나에게는 많은 것을 알게하는 산행길이었다.
다음에는 홍지문에서 시작하여 탕춘대성암문을 지나 북한산 18성문 산행을 기약하면서...
날씨도 산행하기에 적당하고 산행길도 좋은 하루였다.